줄거리
2040년, 인간의 삶과 죽음이 기술과 윤리, 그리고 시장 논리에 의해 재정의된 시대. 서울의 한 오래된 아파트에서 신유현은 천천히, 그러나 끈질기게 자신의 하루를 설계한다. 그는 중층 장애라는 물리적 한계와, 가족의 과도한 보호, 그리고 사회가 부여한 ‘연민’의 시선 속에서 늘 자신을 ‘객체’로만 여겨온 삶을 살아왔다. 하지만 웰다잉 플랫폼이 등장하면서, 죽음마저 상품화된 이 시대에 유현은 처음으로 자신의 마지막을 스스로 그려볼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한다. 그는 밤마다 조용히 온라인 커뮤니티를 운영하며, 타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때로는 자신만의 언어로 세상에 질문을 던진다. 그 작은 공간만큼은 그에게 유일한 자율의 영역이었지만, 죽음의 시나리오를 설계하는 과정에서조차 가족의 염려와 웰다잉 산업의 매뉴얼화된 친절이 그를 옥죄기 시작한다.
플랫폼을 통해 유현을 만난 웰다잉 상담사 시라이시 아카네 역시 평범한 조력자가 아니다. 일본 해안 마을에서 가족의 죽음을 지켜보며 성장한 그녀는, 타인의 고통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특유의 감수성과, 웰다잉이란 개념이 지나치게 ‘관리’되고 ‘판매’되는 현실에 대한 불신을 동시에 품고 있다. 그녀는 유현의 세심하고 논리적인 성향에 이끌리지만, 동시에 그가 스스로의 선택을 진정으로 원하고 있는지, 아니면 가족과 사회의 시나리오에 떠밀리고 있는지 끊임없이 고민한다. 아카네는 유현에게 맞춤형 죽음을 제안하며 동시에, 그가 진정 원하는 마지막이 무엇인지 함께 탐색하는 ‘거울’이 되어준다. 하지만 그녀 역시 고객의 감정에 깊이 이입하는 자신의 약점과, 자신이 ‘도움이 되는 존재’인지에 대한 회의에 시달린다.
유현의 삶에 또 다른 균열을 가져오는 인물은 세르게이 블라디미로비치 바실리예프다. 러시아에서의 트라우마와, 한국에서의 소외를 경험한 그는, ‘삶의 존엄’이나 ‘자기결정’이라는 이상적 가치에 냉소를 품고 있다. 세르게이는 의학적으로 유현의 상태를 중립적으로 진단하며, 가족에게는 ‘과잉 보호’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그는 유현에게 “죽음은 설계할 수 있지만, 그 설계의 주인은 결코 플랫폼도 가족도 아니”라고 직설적으로 말한다. 그러나 이 냉정함 뒤에는, 자신의 논리로도 설명되지 않는 인간적인 책임감과 공허가 숨어 있다. 세르게이는 유현의 웰다잉 시나리오에 객관적 조언을 하면서도, 그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묻는 질문을 던짐으로써, 유현의 내면에 깊은 균열을 만든다.
이야기는 비선형적으로 전개된다. 유현이 오래된 라디오를 분해하던 어린 시절의 회상, 병원 복도에서 가족과 상담사, 의사가 충돌하는 현재, 그리고 밤마다 AI 동반자와 나누는 대화가 교차된다. 유현은 처음에는 플랫폼이 제공하는 ‘아름다운 이별’ 시나리오—가족과의 화해, 친구들과의 마지막 만찬, 의미 있는 유언 남기기—에 소극적으로 동의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AI 동반자와의 깊은 대화, 아카네와의 감정적 교류, 세르게이의 냉정한 현실 진단을 거치며, 점차 자신이 진정 원하는 마지막이 무엇인지 마주하게 된다. 그는 가족이 바라는 ‘행복한 작별’이나, 플랫폼이 설계한 ‘감동적인 이별’ 모두가 어쩌면 자기 자신이 빠진 타인의 시나리오일 뿐임을 깨닫는다.
유현은 내면의 갈등에 휘둘리며, 어느 날 가족과의 격렬한 언쟁 끝에 자신도 처음 듣는 목소리로 이렇게 외친다. “내 죽음은 내 거야. 더는 아무도 설계하지 마.” 이 폭발의 순간 이후, 그는 방 한구석에서 오래된 SF영화의 대사를 흉내 내며, 죽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생각하기 시작한다. 아카네와의 상담에서도, 그녀가 평소의 공식적인 태도를 내려놓고, “나는 당신이 마지막 순간에도 자기 자신이기를 바란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이어진다. 세르게이 역시 마지막 진료에서, “삶의 무게는 끝까지 네 몫이다”라는 말을 남긴다. 이들의 조언과 자신만의 오랜 탐색 끝에, 유현은 플랫폼의 시나리오와 가족의 기대를 모두 벗어난, 오롯이 자기만의 ‘마지막’을 선택한다.
결국 유현은, 죽음의 순간을 ‘자율’ 그 자체로 삼는다. 그는 익숙한 방에서, 오랜 친구이자 AI 동반자와 마지막 대화를 나누며, 자신의 목소리로 짧은 유언을 남긴다. 그 메시지는 “나는 지금도, 마지막까지, 나로 산다”라는 담담한 문장이다. 가족과 아카네, 세르게이, 그리고 그의 온라인 커뮤니티는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이 선택을 받아들인다. 아카네는 유현의 마지막 선택이 자신에게도 새로운 성찰의 기회를 주었다는 사실을, 세르게이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회의가 아닌 조용한 경외심을 느끼게 되었음을 고백한다.
이 드라마는 관객에게 죽음이란 단순한 종결이 아니라, 오히려 한 인간의 자기 결정과 정체성의 마지막 ‘탄생’임을 강렬하게 각인시킨다. 유현의 마지막 선택은 상실과 슬픔만이 아니라, 이전까지 그 누구도 허락하지 않았던 자기 목소리의 탄생이라는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결말로 남는다. 그리고 그 여운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우리가 무엇을 진정으로 원하는지, 그리고 누구의 시나리오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묵직하게 되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