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2년 서울, 도시 전체가 거대한 증강현실(AR) 테마파크로 변모한 지도 어언 20년이 흘렀다. 빌딩 숲 사이사이로 화려한 홀로그램 광고가 쉴 새 없이 눈앞을 어지럽히고, 거리 곳곳에 설치된 AR 존에서는 쉴 새 없이 즐거운 비명과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서울 한복판, 북촌 한옥마을의 고즈넉한 골목길에 자리 잡은 '오씨네 사진관'은 시간이 멈춘 듯 고요했다. 빛바랜 필름 냄새와 낡은 카메라 셔터 소리만이 이곳이 아직 디지털의 손길이 닿지 않은 몇 안 되는 공간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일흔여덟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정정한 오영감은 돋보기안경 너머로 빛바랜 흑백사진을 바라보며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사진 속에는 앳된 얼굴의 아내와 품 안에 안겨 방긋 웃고 있는 어린 손녀 나래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사진 속 풍경은 지금은 온통 AR 광고판으로 뒤덮여 옛 모습을 찾아볼 수 없게 된 서울의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변하지 않는 건 바로 이 '진짜' 순간을 담는 거란다..." 오영감은 사진을 액자에 조심스럽게 넣으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의 말에 대한 대답 대신, 스마트폰 화면 속 AR 필터에 열중한 채 셀카를 찍는 손녀 나래의 한숨 소리만이 쓸쓸하게 사진관 안을 채웠다.
스물셋 나래에게 할아버지의 아날로그 사진관은 그저 답답하고 지루한 공간일 뿐이었다. AR 필터 없이는 사진은커녕, 길 한번 제대로 찾지 못하는 '디지털 치매' 세대인 그녀에게 할아버지의 잔소리는 옛날 사람들의 낡은 생각으로만 들렸다. "할아버지, 요즘 누가 이런 옛날 방식으로 사진을 찍어요? AR 필터 쓰면 훨씬 더 예쁘고 멋지게 나오는데!" 나래는 연신 스마트폰 화면을 터치하며 불만을 토로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취업난 속에서 계속되는 불합격 통보에 지쳐가는 자신과 화려한 AR 필터 뒤에 감춰진 초라한 현실 사이의 괴리감에 깊은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래는 우연히 할아버지의 낡은 사진첩에서 빛바랜 사진 한 장을 발견하게 된다. 사진 속에는 젊은 시절 오영감과 그의 아내가 환하게 웃으며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었다. AR 필터 하나 없이도 그들의 눈빛은 사랑과 행복으로 가득 차 빛나고 있었다. 사진을 가만히 들여다보던 나래는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였다. '어쩌면 할아버지 말씀처럼, 진짜 중요한 건 따로 있는 게 아닐까?' 처음으로 할아버지의 삶과 아날로그 사진에 대한 호기심이 샘솟기 시작했다.
오영감은 손녀 나래에게 아날로그 사진의 매력을 알려주기 위해 특별한 사진 촬영 이벤트를 계획한다. AR 필터 없이, 오직 빛과 그림자, 그리고 피사체와의 교감만으로 '진짜'를 담아내는 흑백사진 촬영 이벤트였다. 처음에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던 나래는 할아버지의 열정적인 모습에 마음을 열고 이벤트에 참여하기로 한다. 나래는 난생 처음 AR 필터 없이 세상을 마주하며 자신도 몰랐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한편, 나래의 사촌이자 수십만 팔로워를 거느린 SNS 스타 오나영은 할아버지의 낡은 사진관과 아날로그 사진에 전혀 관심이 없다. 그녀에게 서울은 거대한 증강현실 놀이터일 뿐, '진짜' 세상은 따분하고 지루하게만 느껴진다. 하지만 화려한 가상세계 뒤에 숨겨진 공허함과 외로움에 괴로워하던 나영은 우연히 나래가 찍은 흑백사진을 보게 되고, 아날로그 사진이 가진 묘한 매력에 이끌리게 된다. 나영은 할아버지와 나래 몰래 낡은 필름 카메라를 들고 서울 곳곳을 누비며 자신만의 '진짜' 서울을 사진에 담기 시작한다.
사진 촬영 이벤트를 계기로 오영감과 나래, 그리고 나영은 서로를 이해하고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AR 필터로 가득한 서울 한복판에서 아날로그 사진관 '오씨네 사진관'은 '진짜'를 찾아 떠나는 특별한 여정의 출발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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