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
해 질 무렵, 교권보호국 현장 감독관 나화진이 해오름고 교문을 넘는다. 가방에는 학생회장 권세찬에 대한 체벌 승인 공문과 가시 문양이 새겨진 회초리가 들어 있다. 그가 첫발을 내딛자 운동장이 갈라지고, 학생 이름이 돋은 검은 가시덤불이 본관을 에워싼다. 첫 번째 종이 울리자 출석부에 잉크로 적힌 학생 하나가 커다란 겁쟁이 사자로 변한다. 나화진이 사자의 앞발을 회초리로 막는 순간, 멀리 있던 배단비의 교복 안감에서 수놓인 낙엽 하나가 검게 타고 손목에 같은 통증이 번진다. 나화진은 회초리를 집에 밀어 넣는다. 그는 자정 전까지 권세찬을 제압하고 학생들을 구하려 하지만, 먼저 자신이 내린 명령과 벌이 어떻게 저주를 만들었는지 인정해야 한다.
나화진은 살아남은 학생들과 함께 본관 2층 자율학습실로 피한다. 출입문은 대답을 피할 때마다 가시로 좁아지고, 정직한 오답이 나오면 잠깐 열린다. 교탁 아래에는 국어 교사 문복례가 웅크려 있다. 문복례는 종이 울린 시각과 괴물이 된 학생들의 이름을 칠판 귀퉁이에 적어 왔지만, 첫날의 이름만 소매로 문질러 지웠다. 책장에서는 말하는 국어 교과서 백문식이 튀어나와 나화진의 손가락을 문 뒤, “벌은 벌을 준 사람에게 남는다”라는 문장을 또박또박 읽는다. 배단비가 “아니야. 가장 약한 사람에게 옮겨 가”라고 고치자 책장이 저절로 펼쳐지고, 여백에서 종이새들이 날아오른다. 날개 안쪽에는 학생들이 지워 버린 낙서와 수업 기억이 남아 있다.
권세찬이 왕관을 쓰고 자율학습실에 나타난다. 그는 지팡이로 바닥을 두드리며 나화진에게 자신을 때려 보라고 웃는다. 그러면서도 종이 울리기 직전 출석부를 낚아채 배단비의 이름 위에 잉크를 쏟은 척 문질러 지운다. 나화진은 그것을 단순한 조롱으로 여기지만, 문복례는 세찬이 매번 가장 겁먹은 학생의 이름을 지워 변신 순서를 늦춰 왔다고 털어놓는다. 세찬은 저주의 폭군이면서 동시에 밤마다 희생자를 줄여 온 종지기였다. 다만 자정에는 이름 하나를 반드시 남겨야 한다. 왕관을 쓴 한 사람이 돌로 굳으면 학교는 그날 밤만 살아남는다. 세찬은 그 한 사람을 배단비로 정해 두었다.
나화진은 세찬을 붙잡는 대신 칠판에 “네가 가장 두려운 것은 무엇인가”라고 쓴다. 세찬은 대답하지 않고 종줄을 당긴다. 두 번째 종과 함께 복도에 있던 학생들이 유리 구두를 신은 늑대와 종이 갑옷을 입은 거인으로 변한다. 나화진은 학생들을 쓰러뜨리지 않고 책상으로 길을 만들고, 문복례는 교탁을 밀어 가시문을 받친다. 배단비는 괴물 학생들의 이름을 하나씩 부른다. 늑대가 “집에 돌아가면 아무도 나를 기다리지 않는다”고 말하자 주둥이가 풀리고, 거인이 “틀리면 웃음거리가 될까 봐 빈 답안지를 냈다”고 고백하자 갑옷이 공책 조각으로 무너진다. 수업은 학생들을 되돌리지만, 그들이 감춘 기억이 돌아올수록 칠판의 최초 문장도 짙어진다.
종이새 한 마리가 나화진의 주머니를 찢고 체벌 승인 공문을 끌어낸다. 공문에는 해오름고에 직접 오기도 전, 나화진이 문복례의 보고만 읽고 권세찬을 “본보기로 강경 교정할 것”이라고 지시한 서명이 있다. 나화진은 반사적으로 공문을 접어 숨긴다. 그 순간 출입문이 가시로 닫히고 학생들의 시선이 그에게 꽂힌다. 세찬은 공문을 빼앗아 소리 내어 읽으며 나화진의 수업도 답을 강요하는 새로운 처벌일 뿐이라고 몰아붙인다. 학생들이 다시 입을 다물자 가시는 천장까지 번지고, 배단비의 낙엽 자수가 연달아 검게 변한다. 나화진은 자신의 짧은 은폐가 저주를 키웠음을 깨닫지만, 사과만으로는 칠판의 문장을 지울 수 없다. 그 문장을 처음 쓴 교사와 학생이 함께 바로잡아야 한다.
백문식은 “최초의 문장은 종탑에서 쓰였다”고 일부러 틀리게 읽는다. 문복례가 떨리는 목소리로 “자율학습실에서 썼어요”라고 고치자 종이새들이 교탁 아래로 파고든다. 그곳에서 오래된 반성문 한 장이 나온다. 첫 문장은 문복례가 쓴 “잘못한 한 명을 벌하면 나머지는 바르게 된다”이다. 문복례는 세찬이 급우들의 잘못까지 뒤집어쓴 반성문을 제출했을 때, 교실을 빨리 조용하게 만들려고 그 문장을 받아 적게 했다. 이후 나화진의 강경 교정 공문이 도착했고, 세찬이 반성문을 찢어 종탑에 매단 순간 저주가 깨어났다. 문복례가 지운 첫날의 이름은 세찬이 아니라 배단비였다. 단비는 그날 세찬이 억울하게 벌받는 것을 보고도 아무 말 못 한 첫 증인이었다.
세 번째 종이 울리기 전, 일행은 가시가 가득한 급식실로 밀려난다. 화덕 속에서는 불꽃 도깨비 노을쇠가 별 모양 달고나를 굽고 있다. 그는 왕관을 주면 숲을 태워 길을 열겠다고 제안한다. 나화진이 왕관의 용도를 묻자 노을쇠는 달고나로 그의 입을 막으려 하고, 거래를 거절당하자 불길을 숲 가장자리까지 뻗어 보인다. 그러나 학생 하나의 도시락이 화덕 쪽으로 미끄러지자 노을쇠는 맨손으로 불 속에 뛰어들어 그것부터 꺼낸다. 불꽃은 도시락의 종이 띠조차 태우지 못한다. 배단비는 노을쇠의 손이 왕관을 볼 때마다 떨리는 것을 알아챈다. 왕관은 노을쇠의 봉인을 여는 열쇠이며, 그가 직접 돌려 쓰는 순간 아이를 해칠 수 없다는 제약도 사라진다.
권세찬은 왕관을 넘기려 한다. 숲을 태우면 자정 전에 종탑으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나화진이 그의 손목을 붙잡자 세찬은 몸으로 밀어붙이며 왕관을 화덕에 던진다. 노을쇠가 불길을 뻗지만, 왕관 대신 배단비가 건넨 식은 도시락을 움켜쥔다. 단비는 “풀려나고 싶은 게 아니라, 풀려난 뒤가 무서운 거잖아”라고 말한다. 노을쇠는 화를 내며 화덕 문을 걷어차지만 끝내 왕관을 쓰지 않는다. 대신 도시락마다 남겨 둔 작은 불씨를 한 줄로 깨워, 마른 숲 전체가 아니라 종탑으로 향하는 가시만 태운다. 아이를 해치지 못하는 봉인이 약점이 아니라 불길의 정확한 경계였던 것이다.
종탑으로 오르는 계단에서 네 번째 종이 울린다. 문복례가 기록에서 숨긴 마지막 학생들이 괴물로 변하고, 복도는 끝없이 늘어난다. 백문식은 자기 페이지를 찢어 종이새로 만들며 학생들의 잊힌 고백을 되돌려 준다. 페이지가 줄어들 때마다 그의 목소리도 흐려진다. 마지막 장에는 교칙의 뒷부분이 적혀 있다. “벌을 받은 자의 상처는 가장 약한 자에게 옮겨 간다. 단, 가장 약한 자가 스스로 약하다는 이름을 거부하고 모두가 그 상처를 자기 몫으로 읽으면, 벌은 누구에게도 남지 않는다.” 백문식은 학교 밖으로 나가는 길을 열려면 이 마지막 장을 찢어야 하며, 그러면 자신이 책에서 완전히 지워진다는 사실을 뒤늦게 밝힌다.
나화진은 단비를 지키겠다며 마지막 수업을 중단하고 종탑 문을 몸으로 막는다. 그러자 단비는 절뚝이는 다리로 창문을 넘어 교단 대신 종탑의 종받침 위에 선다. 교복 안감의 낙엽 자수는 거의 모두 검게 변해 있다. 단비는 처음으로 웃지 않고 도움을 청한다. 학생들은 그녀의 교복 안감에서 검어진 낙엽을 하나씩 뜯어 자기 공책에 붙인다. 상처가 실제로 나뉘지는 않지만, 누가 대신 아픈지 모두가 보게 된다. 숨겨진 고통이 드러나자 저주는 더 이상 단비를 “가장 약한 한 명”으로 고정하지 못하고 흔들린다.
자정을 앞둔 마지막 종줄 아래에서 권세찬은 왕관을 단비에게 씌우려 한다. 그는 한 명을 돌로 만들지 않으면 모두가 숲이 된다고 외친다. 나화진은 그를 때리지 않고 왕관을 자기 머리에 쓴다. 세찬이 당황한 틈에 나화진은 회초리를 꺼내 바닥에 내려놓고, 자신이 보지도 않은 학생을 본보기로 정한 공문을 직접 읽는다. 그는 변명 없이 서명한 이름까지 말한다. 문복례도 칠판에서 되살아난 최초 문장을 종받침에 옮겨 쓰고, 자신이 조용한 교실을 위해 세찬에게 모두의 잘못을 떠넘겼다고 고백한다. 세찬은 끝까지 입을 다물지만, 손바닥 속에서 하얗게 닳은 단비의 지우개가 떨어진다. 단비가 그것을 집어 건네며 왜 자기 이름을 계속 지웠느냐고 묻는다.
세찬은 마침내 자신이 가장 두려운 것은 누군가를 희생시키는 일이 아니라, 희생을 정한 뒤 안도했던 자기 마음이라고 말한다. 그 고백으로 종줄이 느슨해진다. 문복례와 세찬, 단비와 학생들, 나화진이 최초 문장을 함께 바로잡아 읽는다. “한 명을 벌해 나머지를 바르게 만들 수 없다. 잘못을 본 사람은 자기 이름으로 말해야 한다.” 문장이 지워지기 시작하지만, 자정 종은 이미 움직인다. 세찬은 종을 몸으로 붙잡고, 나화진은 왕관을 벗어 종의 틈에 끼운다. 노을쇠가 계단 아래에서 도시락 불씨를 날려 왕관의 가시 장식만 녹이고, 백문식은 마지막 페이지를 종이새로 찢어 종의 혀를 감싼다. 자정의 종은 울리지 못하고 낮은 숨소리만 낸다.
왕관이 녹자 누구도 돌로 굳지 않는다. 대신 백문식의 글자가 모두 사라지고, 종이새 한 마리만 빈 표지를 물고 창밖으로 날아간다. 가시덤불은 학생 이름이 적힌 마른 낙엽으로 무너지고, 복도는 원래 길이로 돌아온다. 노을쇠는 풀려날 기회를 놓쳤지만 화덕 문을 다시 닫고, 타지 않은 도시락을 학생들에게 나눠 준다. 문복례는 숨겨 둔 기록을 교육부 조사관에게 직접 제출하고 교단에서 물러날 각오를 한다. 권세찬은 왕관 없이 출석부를 들고 학생들의 이름을 하나씩 부르되, 대답을 재촉하지 않는다.
동이 틀 무렵 나화진은 자신의 체벌 승인 공문을 회수하지 않는다. 그는 회초리를 부러뜨리는 대신 교권보호국 증거 봉투에 넣는다. 없던 일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다. 배단비의 교복 안감에는 검은 낙엽 하나가 남아 있지만, 그녀는 그것을 뜯어 숨기지 않는다. 학교를 나서는 순간, 빈 국어 교과서 표지 안쪽에서 작은 글씨가 나타난다. “정답 하나를 또 틀렸군.” 나화진이 돌아보자 자율학습실 창문에 종이새 한 마리가 앉아 있다가 숲이 있던 운동장 위로 날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