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
모든 것을 체념한 국선 변호사 권시우에게 ‘상습 시위꾼’ 강민재 사건은 그저 수많은 귀찮은 서류 더미 중 하나일 뿐이었다. 강민재는 용산 재개발 지역의 마지막 철거민으로, 수십 차례 업무방해 및 집회시위법 위반으로 기소된 전력이 있었다. 시우는 늘 하던 대로 최소한의 변론으로 형량을 줄여주는 선에서 사건을 마무리할 생각이었다. 첫 접견에서 마주한 강민재는 세상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찬, 고집 센 늙은이처럼 보였다. 하지만 시우는 그의 거친 말투 속에 숨겨진 절박함과, 낡은 점퍼 주머니 속에서 끝내 꺼내지 못한 가족사진을 얼핏 보게 된다. 한편, 이 사건의 담당 검사인 차강혁 부장검사는 강민재를 법치주의를 흔드는 사회의 암적인 존재로 규정하고, 이번 기회에 본보기를 보여주겠다며 강력한 처벌 의지를 드러낸다. 그는 법과 원칙만이 유일한 정의라 믿으며, 시우의 변호를 감상적인 동정이라 일축한다. 바로 그 순간, 법조계의 ‘팩트 사냥개’ 서은하 기자가 이 대결 구도에 흥미로운 특종의 냄새를 맡고 접근하기 시작한다.
첫 공판은 차강혁의 압승으로 끝났다. 그는 강민재의 과거 전과 기록과 폭력적인 시위 영상을 증거로 제출하며 그를 이성적인 대화가 통하지 않는 사회 부적응자로 몰아세웠다. 시우는 무기력하게 반박했지만, 냉정한 법의 논리 앞에서 강민재의 절규는 그저 소음에 불과했다. 패배감에 젖어 포기하려던 시우는 재판 후 홀로 남아 철거 현수막을 다시 묶는 강민재의 뒷모습을 본다. 그 순간, 강민재가 지키려던 것이 단순히 낡은 집이 아니라, 아내와 함께한 마지막 기억이자 삶의 존엄성이었음을 어렴풋이 깨닫는다. 마음이 움직인 시우는 처음으로 사건 기록 너머의 진실을 파고들기 시작한다. 그는 강민재의 낡은 집을 찾아가 잿더미 속에서 그의 아내가 남긴 일기장을 발견하고, 재개발 사업의 시행사인 태영건설이 저지른 비리와 용역 깡패를 동원한 불법적인 철거 과정의 증거들을 하나씩 수집한다. 이 과정에서 서은하 기자가 시우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한다. 그녀는 특종을 위해 시우가 가진 정보를 원했고, 그 대가로 자신이 취재한 태영건설의 내부 비리 자료를 넘겨주겠다며 위험한 거래를 제안한다.
시우와 은하는 위태로운 공조를 시작한다. 시우는 은하가 건넨 자료를 통해 태영건설이 정치권과 결탁하여 부당한 이익을 취했으며, 그 중심에 차강혁 검사의 장인이자 유력 정치인인 박 의원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사건의 배후가 예상보다 훨씬 거대하다는 것을 직감한 두 사람은 각자의 방식으로 진실을 추적한다. 시우는 법정에서 태영건설의 불법 행위를 증명할 증인들을 확보하려 애쓰고, 은하는 자신의 인맥을 총동원해 태영건설과 박 의원, 그리고 차강혁 사이의 검은 커넥션을 파헤친다. 이들의 움직임을 눈치챈 차강혁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 압박을 가해온다. 그는 시우의 과거 변호사 윤리 위반 징계 기록을 들추어내 변호사 자격을 위협하고, 은하에게는 언론사 상층부를 통해 압력을 넣어 취재를 막으려 한다. 위기가 깊어질수록 시우와 은하는 서로에게 의지하게 되고, 단순한 취재원과 취재 대상의 관계를 넘어 미묘한 감정적 연대를 쌓아간다. 시우는 진실을 향한 은하의 집요함 속에서 자신이 잃어버렸던 열정을 발견하고, 은하는 냉소적인 가면 뒤에 숨겨진 시우의 따뜻한 진심을 보게 된다.
결정적인 공판을 앞두고, 차강혁은 시우에게 은밀한 거래를 제안한다. 그는 강민재에게 집행유예를 선고받게 해주는 대신, 태영건설과 박 의원에 대한 모든 의혹을 덮으라고 종용한다. 그것이 모두를 위한 ‘현실적인’ 해결책이라며 시우를 회유하지만, 시우는 이미 예전의 그가 아니었다. 그는 차강혁의 제안을 단호히 거절하고 정면 대결을 선택한다. 마침내 마지막 공판일, 시우는 강민재의 아내가 남긴 일기장을 법정에서 낭독하며 그의 투쟁이 단순한 떼쓰기가 아닌, 한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처절한 외침이었음을 호소한다. 이어서 은하가 확보한 태영건설의 내부 고발자를 증인으로 내세워 불법 철거와 비자금 형성 과정을 낱낱이 폭로한다. 동시에 은하는 인터넷 언론사를 통해 차강혁과 태영건설, 박 의원의 유착 관계를 다룬 탐사 보도 기사를 터뜨린다. 온라인은 순식간에 뒤집히고, 여론은 강민재에게 동정적으로 돌아선다.
궁지에 몰린 차강혁은 최후의 반격을 가한다. 그는 시우가 증거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불법적인 방법을 사용했다는 점을 물고 늘어지며 증거의 신빙성을 문제 삼고, 증인을 위증으로 몰아세운다. 법정은 아수라장이 되고, 재판의 향방은 다시 안갯속으로 빠져든다. 바로 그때, 방청석에 앉아있던 강민재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는 모든 것을 체념한 듯한 표정으로 자신이 모든 것을 계획하고 불을 질렀다고 거짓 자백을 한다. 자신의 희생으로 시우와 다른 사람들을 지키고, 이 지긋지긋한 싸움을 끝내려는 마지막 선택이었다. 그의 돌발 행동에 법정은 충격에 빠지고, 시우는 절망적으로 그의 이름을 부르짖는다. 강민재의 거짓 자백은 차강혁에게는 완벽한 퇴로를, 시우에게는 감당할 수 없는 패배와 무력감을 안겨주며 재판은 그대로 종결되는 듯했다.
강민재는 방화 및 업무방해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고 수감된다. 차강혁은 이 사건을 승리로 마무리하고 검찰 내부에서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하지만, 그의 눈빛에는 이전과 같은 확신 대신 깊은 공허함이 자리 잡는다. 시우는 국선 변호사직을 그만둔다. 그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는 결코 진정한 정의를 실현할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몇 달 후, 시우는 강민재와 같은 철거민들을 위한 작은 인권 단체 사무실에서 법률 상담을 하고 있다. 더 이상 낡은 정장이 아닌 편안한 캐주얼 차림의 그의 얼굴에는 냉소 대신 지쳤지만 단단한 의지가 서려 있다. 그의 곁에는 여전히 펜을 든 서은하가 함께한다. 그녀는 강민재 사건의 후속 보도를 통해 태영건설의 비리를 집요하게 추적하고 있으며, 시우는 법정 밖에서 그녀의 가장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준다. 어느 늦은 밤, 사무실에 나란히 앉아 서류를 보던 두 사람은 잠시 일을 멈추고 서로를 바라본다. 패배했지만 끝나지 않은 싸움 속에서, 두 사람은 법복과 기자 수첩 대신 서로의 손을 잡으며 세상과 맞서는 새로운 연대를 시작한다. 그들의 사랑은 가장 치열하고 낮은 곳에서, 그렇게 조용히 피어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