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정은 가을 주말의 솔내휴게소 서브웨이에서 빵 진열대를 채우다가 휴대전화에 뜬 가족사진을 뒤집어 놓는다. 할머니 생신상에 자기 자리만 비어 있다. 결근한 동료 대신 마감까지 맡았고, 교대 직원이 오기 전에는 미뤄 둔 휴게 시간도 쓸 수 없다. 소정이 답장 대신 식탁 사진을 확대해 보려는 순간 자동문이 열린다. 윤금례가 접이식 금색 왕관을 쓰고 들어와 유리 카운터를 두드린다. “오늘은 네가 차린 밥 먹자.” 뒤따라온 박영숙은 집에서 가져온 생일초를 내려놓고, 최준호와 최다인은 창가 탁자 세 개를 붙인다.
소정은 오늘만큼은 평생 남의 밥을 차린 할머니에게 원하는 음식만 만들어 주려 한다. 그러나 삼십 센티미터 샌드위치의 빵을 묻자 박만수가 가장 단단해 보이는 것을 짚고, 곧 손수건으로 입을 가린 채 틀니를 고친다. 금례가 “내 것도 부드러운 걸로 해”라고 하자 만수의 손가락이 슬그머니 옆으로 옮겨 간다. 치즈 앞에서는 영숙이 “나는 두 장”을 외친다. 금례가 자기 것을 덜어 주려 하자 영숙은 손바닥으로 막고 지갑을 연다. 소정은 그 손 사이에 집게를 세워 누구 치즈도 빼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여섯 조각을 전부 다르게 만들어 달라는 금례의 주문에 소정은 굽기 전 구성을 확정하려고 주문지를 한 장 더 꺼낸다. 준호가 휴대전화 메모를 읽지만, 다인은 ‘동생 것도 같은 걸로’라는 줄을 지우게 하고 매운 소스를 따로 달라고 한다. 정작 준호는 자기 칸의 ‘아무거나’를 읽다가 올리브 통을 따라 고개를 돌린다. 소정이 집게를 멈추자 그는 올리브 많이, 양파 조금, 소스는 한쪽에만 넣어 달라고 길게 덧붙인다. 가족이 웃는 사이 금례는 냅킨에 여섯 자리를 그린다. 마지막 빈 원은 소정의 자리다.
소정은 할머니에게 고르는 일까지 맡긴 셈이 되어 펜을 도로 받는다. “할머니는요?” 세 번째 질문 끝에 금례가 피클 통을 짚는다. “그건 내 쪽에 더 넣어.” 소정은 그 대답에 굵게 밑줄을 긋고 자기 조각도 직접 고른다. 구워 나온 빵에 재료를 올리는 동안 오븐이 울릴 때마다 가족이 축가를 다른 소절에서 시작한다. 소정은 금례 몫에만 피클을 두 배로 얹고, 불을 붙일 수 없는 작은 초를 종이컵에 세운다. 그때 관광버스에서 내린 정우빈이 문을 열고 들어와 왕관을 가리킨다. “저희 할아버지도 오늘 생일인데 저 주문 아직 돼요?”
소정은 완성된 여섯 조각을 내놓다가 손을 멈춘다. 우빈의 뒤로 어른들이 들어오고, 가족 식탁에는 자기 몫의 따뜻한 빵이 놓인다. 우빈은 가방의 투명 주머니에서 버스 좌석표를 꺼내더니 금례의 냅킨과 번갈아 본다. 생일 주문에는 자리 그림이 필요한 줄 아는 것이다. 준호가 웃으며 종이를 건네려다 소정을 돌아본다. 소정은 새 주문지를 펴고 우빈이 모셔 온 할아버지에게 먼저 빵을 묻는다.
대답은 뒤에 선 어른들에게서 쏟아진다. 부드러운 것, 평소 먹던 것, 빨리 되는 것으로 하자는 말이 겹치자 우빈이 두 팔을 벌려 가족을 유리에서 한 걸음 물린다. “아직 대답 안 하셨는데.” 할아버지가 메뉴판에 가까이 다가오자 만수도 옆으로 와서 손수건을 주머니에 넣는다. 그는 빵 크기를 두 손으로 가늠해 보인 뒤 “나는 이걸로 바꿨어요”라며 부드러운 빵을 짚는다. 두 노인이 천천히 고르는 동안 줄은 계산대 옆 통로까지 늘어난다. 소정은 창가에서 자기 빵을 덮고 있는 영숙의 손을 보고 주문 속도를 높인다.
우빈의 가족까지 조각마다 다르게 해 달라고 하면서, 소정의 노란 집게 아래 주문지가 겹친다. 준호가 가족들에게 냅킨 좌석표를 보여 주려다가 자기 샌드위치를 금례 앞에 놓고, 금례는 그것을 집어 들자마자 피클이 적다고 돌려준다. 뒤에서는 다인이 끌어 놓은 의자를 피해 손님이 몸을 비튼다. 다인은 벌떡 일어나 의자를 들고, 손잡이의 주황색 천이 걸린 짐가방까지 무릎 위로 끌어올린다. 소정은 두 가족의 주문을 동시에 기억하려다 새 손님의 치즈를 다시 묻게 된다. 창가 빵에서는 더 이상 김이 나지 않는다.
영숙이 포장지를 걷어 한꺼번에 가져와 데워 달라고 하자 소정은 오븐 손잡이를 잡는다. 금례는 벌써 샌드위치를 다시 싸고 있다. 소정이 “할머니 건 제가 따뜻하게 드리려고 했는데”라고 말하자 금례가 포장지를 멈춘다. “그럼 네 거는 누가 따뜻할 때 먹여?” 금례는 자기 빵 대신 소정 몫을 들어 보인다. 치즈가 포장지에 붙어 한쪽으로 늘어난다. 소정은 오븐 손잡이를 놓고, 빵만 자꾸 다시 데워서는 자기가 식탁에 갈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 금례에게 앉아 계시라고 한 뒤, 조금 전 도착해 안쪽에서 재료 상자를 정리하던 교대 직원에게 지금 주문을 마치면 휴게 시간을 쓰겠다고 직접 말한다.
그러나 우빈의 가족은 버스 출발 시각이 가까워졌다며 다시 메뉴를 바꾼다. 한 사람은 아이 것에서 야채를 빼 달라고 하고, 다른 사람은 생일 주인부터 포장해 달라며 앞으로 나온다. 소정이 작업을 멈추자 우빈의 할아버지가 자기 가족 쪽으로 몸을 돌린다. 그는 먼저 정한 빵을 가리키고 그대로 먹겠다고 말한다. 우빈은 바닥 타일 줄을 따라 어른들을 다시 세운다. 소정은 우빈과 눈을 맞추고, 한 사람의 대답이 끝난 다음 다음 사람에게 묻는다. 교대 직원도 옆에 서서 완성된 주문부터 계산한다.
창가에서는 금례가 자기 의자를 밀어 통로를 내주려 한다. 다인이 의자 등받이를 붙잡고 탁자를 창 쪽으로 당긴다. 준호는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고 반대쪽 탁자를 밀며, 영숙에게 냅킨을 달라고 손을 내민다. 영숙은 접힌 모서리를 고치려다가 그대로 건넨다. 세 사람이 길을 넓히는 사이 만수는 금례의 의자를 식탁 안으로 당겨 준다. 금례는 앉은 채 왕관부터 바로 쓴다. 소정에게 오라고 손짓하려던 영숙은 그 대신 자기 샌드위치를 먼저 한 입 먹는다.
소정은 마지막 소스통을 내려놓고 교대 직원 앞에서 남은 주문을 짚어 준다. 직원이 새 장갑을 끼고 카운터를 맡자 비로소 자기 장갑을 벗는다. 우빈이 왕관을 달라는 말을 못 하고 손가락만 들었다 내리는 것을 본 금례가 소정을 부른다. 소정은 잠깐 망설이다 금례에게 왕관을 벗겨 주지 않고, 우빈에게 작은 초가 선 종이컵을 건넨다. “이건 불 안 켜는 생일초야.” 우빈은 두 손으로 받아 자기 할아버지 앞에 놓는다. 금례는 왕관을 쓴 채 옆 식탁의 생일 주인에게 고개를 숙인다.
소정이 카운터 밖으로 나오자 우빈의 가족 한 사람이 추가 주문을 하려고 그녀를 부른다. 소정은 몸을 돌리다가 멈추고 카운터의 직원을 손바닥으로 가리킨다. “저는 지금 밥 먹으러 가요.” 다인은 소정이 앉을 의자를 빼고, 준호는 그녀의 앞치마 끈이 의자에 끼지 않도록 뒤로 넘겨 준다. 오븐이 울린다. 두 가족이 동시에 노래를 시작하지만, 이번에는 우빈 쪽이 반 박자 빠르다. 소정은 노래를 바로잡지 않고 식은 빵을 크게 베어 문다. 금례가 손녀의 입가에 붙은 소스를 가리키다가 냅킨만 밀어 준다.
우빈의 가족은 먼저 식사를 마치고 버스로 돌아간다. 우빈은 종이컵을 돌려주려다 할아버지가 들고 가겠다고 하자 가방 앞주머니를 비운다. 금례는 접이식 왕관을 잠깐 벗어 두 사람 사이로 내민다. 사진 한 장을 찍고 돌려받은 왕관에는 접힌 선이 하나 더 생긴다. 영숙은 빈 포장지를 모으려다 준호가 내민 손에 넘기고, 다인은 가방을 발밑에 둔 채 따로 받은 매운 소스를 아주 조금 찍어 먹는다. 기침이 나자 만수가 물컵을 밀어 준다. 누구도 못 먹을 줄 알았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휴게 시간이 끝나자 소정은 자기 자리의 냅킨을 접어 앞치마 주머니에 넣는다. 금례는 다음에는 자기도 빵 이름을 외워 오겠다며 진열대를 다시 본다. 소정은 이름을 몰라도 가리키면 된다고 말하고 새 장갑을 낀다. 가족이 식탁을 정리하는 동안 자동문이 또 열린다. 작은 여행 가방을 끈 손님이 메뉴판 앞에서 한참 서 있다가 “둘이 나눠 먹을 건데 입맛이 달라도 돼요?”라고 묻는다. 소정은 집게를 들고 먼저 묻는다. “빵은 같이 고르실 수 있으세요?” 창가에서 금례가 웃고, 두 손님이 서로를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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