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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도 살려면 나를 사랑하지 마

교보증권의 보험계리사는 BTS 협업 상품 발표회에서 일곱 멤버의 예상 수명을 계산한 순간, 숫자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튀어나와 그의 몸과 BTS 멤버들의 몸을 밤마다 차례로 점유하기 시작한다. 빙의된 사람은 다음 날 일어날 사고를 입 밖에 낼 수 있지만, 경고할 때마다 사랑하는 사람의 수명이 정확히 하루씩 줄어드는 탓에 계리사는 자신을 감시하는 한 멤버와 빈 연습실에서 위험한 동거를 시작한다. 다른 멤버들은 몸을 옮겨 다니는 ‘사망률’을 붙잡으려 하고, 교보증권 대표는 일곱 숫자를 새 보험상품으로 봉인하려 하며, 계리사는 자신에게 집착하는 숫자 하나가 오래전 세상을 떠난 연인의 마음을 품고 있음을 마주한다. 생방송 무대가 열리는 날, 일곱 숫자가 한 몸에 모이면 관객들의 불운을 대신 짊어질 수 있지만 그 몸은 BTS 멤버와 계리사 중 서로가 가장 살리고 싶은 한 사람이어야 한다.
스크롤

줄거리

BTS 협업 보험 발표회를 일주일 앞둔 자정, 차은재는 제8산출실에서 일곱 멤버의 예상수명을 최종 산출한다. 입력창에 없던 계약번호가 한 줄 더 생기고, 삭제해도 되살아난 숫자 ‘0’이 모니터 밖으로 사람 키만 한 그림자를 드리운다. 은재가 의자에서 몸을 일으키기도 전에 숫자들이 유리 복도로 쏟아져 나와 BTS 멤버들의 몸을 차례로 통과한다. 마지막 숫자는 은재의 입을 빌려 “내일 18시 42분, 무대 왼쪽 트러스가 무너진다”고 말한다. 그 목소리는 오래전 사고로 죽은 연인 백이준의 것이다.

은재가 정신을 차렸을 때 민윤기가 그녀의 손목을 붙잡고 있다. 피부에는 푸른 잉크로 ‘18:42’가 떠 있고, 윤기의 그림자 끝에는 금빛 잔광이 번진다. 은재가 경고를 입 밖에 내는 순간 트러스 사고는 피할 가능성이 생겼지만, 그 말을 들은 사람 가운데 그녀가 가장 살리고 싶은 윤기의 수명이 스물네 시간 줄어든 것이다. 권태록은 은재에게 보안 서약서를 내밀며 이를 단순한 센서 오류라고 발표하라고 지시한다. 은재는 서명한 뒤 종이를 가져가는 권태록의 손을 막지 않는다. 대신 책상에 남은 필압을 연필로 문질러 삭제된 여덟 번째 계약번호를 떠낸다. 피보험자 칸에는 자신의 이름이 적혀 있다.

문해솔은 은재가 동생의 사고를 예측하고도 늦게 경고해 수명을 깎았다고 믿는다. 그러나 다음 날 리허설에서 빙의된 멤버가 낯선 목소리로 사고 시각을 읊자, 해솔은 은재를 밀쳐 내면서도 즉시 카메라를 빈 무대로 돌리고 비상문을 연다. 18시 42분, 왼쪽 트러스가 객석 대신 비워 둔 통로로 떨어진다. 먼지 속에서 해솔은 동생의 스마트워치를 손목 안쪽으로 감춘다. 화면에는 사고 전날 제8산출실과 연결된 생체 신호 기록이 남아 있다.

권태록은 은재를 감시하라며 윤기를 빈 연습실에 머물게 한다. 밤마다 숫자는 윤기의 몸을 점유하고, 그는 말을 할 수 없는 동안 피아노 건반을 눌러 사고 시각을 남긴다. 검은건반과 흰건반에 번진 잉크가 날짜와 시각을 이룬다. 은재는 경고할 때마다 윤기의 그림자가 하루씩 더 밝아지는 것을 보고 일부 사고를 말하지 않기로 한다. 윤기는 그녀의 휴대전화를 빼앗기기 전에 멤버들의 번호로 경고문을 나누어 예약한다. 그 결과 지하 주차장의 화재는 막지만 그의 수명은 다시 줄어든다. 은재가 소독제로 윤기의 손가락 잉크를 지우며 왜 자신을 감시하면서 명령을 어기느냐고 묻자, 윤기는 “보고서에는 당신이 어디 갔는지 쓰고, 왜 갔는지는 지운다”고 답한다. 은재는 그의 손을 놓지 못하면서도 다음 경고는 하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윤기는 믿지 않는다.

김남준은 멤버들의 빙의 기록을 악보와 연습 영상에 나누어 숨긴다. 그는 떨고 있는 멤버에게 물을 건네고 곁을 지키지만, 은재가 원본을 요구하자 제8산출실 문을 몸으로 막는다. 몸싸움 끝에 떨어진 녹음기에서 정확히 11초가 비어 있는 파일이 재생된다. 남준은 그 구간에 자신의 심박이 일곱 숫자와 동시에 맞물리는 소리가 있었다고 털어놓는다. 그는 자신을 마지막 그릇으로 고정하려고 리허설 순서와 출입증을 바꾸고, 삭제된 여덟째 기록에서 자기 이름만 남겼다. 모두를 살리려 했다는 말에 은재는 그의 출입증을 찢는다. 누구에게도 자신을 구할 선택권을 주지 않는 것은 보호가 아니라고 말한 뒤, 그녀는 남준을 밀치고 문 안으로 들어간다.

구형 자기테이프가 돌아가자 뜨거운 플라스틱 냄새와 함께 백이준의 목소리가 은재의 몸에서 나온다. 그는 은재가 싫어하던 커피 당도를 손목에 적고, 둘만 알던 지하 식당의 깨진 컵을 기억한다. 그러나 곧 “윤기의 하루는 정확히 8만 6천4백 초”라고 권태록과 같은 억양으로 계산한다. 규칙상 ‘0’은 새로운 기억을 만들 수 없다. 은재는 일부러 이준이 죽은 뒤 생긴 흉터의 사연을 묻는다. 이준은 존재하지 않았던 추억을 다정하게 지어낸다. 그 순간 은재는 그를 껴안는 대신 자신의 손목을 케이블로 묶고, 이준에게도 같은 결박을 요구한다. 이준은 순순히 손을 내민다. 그는 연인의 영혼이 아니라 이준의 감사 기록과 권태록의 음성을 섞어 만든 ‘0’이며, 은재를 마지막 그릇으로 유도하도록 설계되었다.

그러나 ‘0’ 안에는 조작되지 않은 이준의 마지막 감사 기록도 숨어 있다. 이준은 생전에 수명 전가 장부를 발견했고, 예상된 사고를 특정 피보험자에게 옮기는 실험을 중단시키려다 죽었다. 그는 은재를 여덟 번째 피보험자로 등록한 사람이 자신이라고 고백한다. 희생자로 삼기 위해서가 아니라, 계리사인 은재만이 장부의 전가 규칙을 역산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은재는 사랑했던 사람이 자신을 믿은 동시에 자기 동의 없이 목숨을 담보로 잡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0’은 그녀의 입으로 미안하다고 말하지만, 그 사과가 이준의 기억인지 권태록이 심은 문장인지 증명할 수 없다.

권태록은 경비 인력을 이끌고 제8산출실에 들어와 테이프를 빼앗는다. 은재가 달려들자 그는 그녀의 팔을 비틀어 유리 복도 벽에 누르고, 일곱 숫자를 위험준비금에 봉인하면 앞으로 대형 사고를 예측해 한 사람에게 몰아줄 수 있다고 말한다. 그의 안주머니에서 떨어진 최종 계약서에는 은재와 BTS 멤버들뿐 아니라 권태록 자신의 이름도 있다. 무대 아래 송풍구에서는 폐기 청약서로 접은 종이학들이 흰 파도처럼 흔들린다. 권태록은 죽은 딸의 이름이 적힌 종이학 하나를 주워 편다. 딸이 사망한 시각은 ‘0’이 반복해 말하던 시각과 같다. 그는 누구든 그릇이 되어야 한다면 자신도 예외가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딸의 죽음을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 대신 타인의 불운을 배치할 권리를 붙들고 있다.

은재는 빼앗긴 테이프를 되찾으려 권태록과 몸싸움을 벌인다. 윤기와 남준, 해솔이 동시에 제8산출실로 뛰어든다. 남준은 경비의 앞을 막고, 윤기는 피아노 덮개를 뜯어 권태록의 손에서 테이프를 쳐 낸다. 해솔은 동생의 스마트워치를 은재에게 던진다. 그 기록에는 과거 해솔이 방송 지연을 줄이려고 관객 생체 신호를 구형 계리 서버에 시험 연결한 순간이 남아 있다. 동생의 수명이 줄어든 직접 원인은 은재의 경고가 아니라 해솔 자신의 실험이었다. 해솔은 은재에게 사과하지 않는다. 대신 자기 손목에 시계를 다시 차고, 생방송 큐시트의 마지막 명령을 보여 준다. 자신의 심박이 멎을 때 숫자들을 한 몸에 모으도록 만든 명령이다.

방송 당일, 권태록은 서버 폐기 시각을 앞당겨 자정 전에 봉인을 강행한다. 관객 좌석 센서가 켜지고, 일곱 숫자는 BTS 멤버들의 몸을 오가며 손목마다 같은 시각을 남긴다. ‘23:57’. 세 분 뒤 무대 아래 송풍 장치가 과열되어 연기와 압력이 객석으로 터질 예정이다. 은재가 경고하면 윤기의 수명이 또 하루 줄어들고, 경고하지 않으면 관객들이 다칠 수 있다. 은재가 마이크를 잡으려 하자 ‘0’이 그녀의 몸을 점유해 입을 막는다. 윤기는 피아노로 경고 시각을 연주하고, 남준은 예정에 없던 멘트로 관객을 천천히 일으킨다. 해솔은 카운트다운을 유지한 채 카메라를 빈 무대로 돌리고 스태프에게 비상문을 열라고 손짓한다. 은재는 끝내 마이크에 대고 사고 위치와 시각을 명확히 말한다. 윤기의 그림자 끝에서 금빛이 번쩍인다.

관객들이 빠져나가는 동안 권태록은 무대 아래 수동 봉인 레버로 달려간다. 은재와 윤기는 그를 뒤쫓고, 남준과 해솔은 마지막 관객들을 끌어낸다. 송풍기 날개 사이에서 종이학이 찢겨 날리고, 뜨거운 바람이 바닥을 들썩인다. 권태록은 자신의 생체 신호선을 연결해 그릇이 되려 한다. 하지만 ‘0’은 그의 몸에 들어간 뒤 딸의 목소리로 “아빠가 정한 계약은 싫어”라고 말한다. 권태록이 주입한 기억에는 없던 문장이다. 은재는 찢어진 종이학 안쪽에서 딸이 생전에 쓴 원본 메모를 발견한다. 권태록은 딸의 음성을 복제하면서도 그 문장만 삭제해 왔다. ‘0’이 새 기억을 만든 것이 아니라, 권태록이 감춘 기록을 재생한 것이다. 그는 처음으로 레버를 놓친다.

그 틈에 해솔이 자신의 심박선을 무대망에 연결한다. 일곱 숫자가 그녀에게 몰려들지만, 은재는 큐시트에 적힌 조건을 알아본다. 해솔의 심박이 끊겨야 봉인이 완성되도록 만든 것은 또 하나의 강제 희생이다. 은재는 케이블을 뽑으려는 윤기를 막고, 대신 수명 전가 장부의 마지막 규칙을 실행한다. 한 몸은 한 사람의 몸일 필요가 없다. 동일한 생체 신호망이 하나의 맥박으로 인식하는 몸이면 된다. 은재는 윤기의 피아노 페달선을, 남준은 자신의 심박 센서를, 해솔은 스마트워치를 서로의 손목에 감는다. 권태록도 딸의 메모를 쥔 채 마지막 센서를 잡는다. BTS 멤버들과 남은 스태프들이 원을 이루어 손을 맞잡자 각자의 맥박이 무대 바닥을 통해 하나의 파형으로 겹친다.

일곱 숫자는 특정 희생자 한 명이 아니라 연결된 모두의 몸에 동시에 얇게 나뉘어 봉인된다. 각 사람의 수명은 스물네 시간이 아니라 몇 분씩 줄어든다. ‘0’은 은재에게 남으려 하지만, 윤기가 그녀의 손을 더 세게 잡자 둘 사이에서 갈라진다. 절반은 이준의 원본 감사 기록으로 자기테이프에 돌아가고, 절반은 권태록이 심은 음성으로 서버와 함께 소거된다. 은재는 마지막으로 들린 “살아”라는 말이 어느 쪽에서 나왔는지 확인하지 못한다.

23시 57분, 송풍 장치가 터진다. 이미 비워진 객석 위로 종이학과 차가운 소화 가스가 눈처럼 쏟아진다. 아무도 죽지 않는다. 자정에 서버가 꺼지자 유리 복도의 숫자 그림자도 사라진다. 권태록은 딸의 종이학과 원본 장부를 은재에게 넘기고 수사관들 앞에 선다. 그는 희생을 자청한 일로 용서받지 못하며, 자신이 타인의 삶을 계약 항목으로 바꾼 모든 기록에 서명한다. 남준은 잘라 두었던 11초를 멤버들 앞에서 복원하고, 앞으로는 자신을 마지막 순서에 몰래 넣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해솔은 동생의 스마트워치를 증거물 봉투에 넣은 뒤 은재에게 직접 건넨다. 미안하다는 말 대신 다음 방송의 비상문을 자신과 함께 점검해 달라고 한다.

며칠 뒤 은재는 빈 연습실에서 윤기의 남은 날짜를 다시 계산한다. 경고 때문에 줄어든 날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윤기는 건반에 남은 마지막 잉크를 닦지 않고, 은재가 계산한 영수증을 접어 피아노 안에 넣는다. 은재는 그가 얼마나 남았는지 말하지 않는다. 윤기도 묻지 않는다. 대신 두 사람은 자정이 지난 뒤에도 같은 방에 남아, 더는 사고 시각이 나타나지 않는 건반을 하나씩 눌러 본다. 마지막 흰건반 아래에서 푸른 잉크 한 점이 번진다. 시각도 숫자도 아닌, 백이준이 생전에 쓰던 작은 마침표다. 은재는 그것을 지우지 않는다. 다만 윤기의 손을 그 위에 포개고, 이번에는 누구의 하루도 대신 결정하지 않은 채 아침이 올 때까지 곁에 앉아 있는다.

스토리 상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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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ble Dif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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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

주인공

차은재

성별여성
직업교보증권 생명보험상품개발팀 책임계리사

프로필

차은재는 몸을 빌리는 사망률의 규칙을 역산해 사고를 막고, 자신이 여덟 번째 피보험자가 된 경위를 추적한다. 차은재는 경고할 때마다 민윤기의 수명이 하루씩 줄어든다는 사실을 숨긴 채, 백이준의 마음을 품었다고 주장하는 숫자가 사랑인지 계산된 미끼인지 밝혀야 한다.

차은재는 불안할수록 영수증 뒷면에 확률을 적고, 누군가 다칠 가능성이 1퍼센트라도 보이면 자신의 안전부터 계산에서 지운다. 차은재는 숫자에게 몸을 빼앗긴 다음 날에도 출근해 산출표의 소수점 자리를 바로잡지만, 민윤기가 짧게 숨을 고를 때마다 몰래 그의 남은 날짜를 확인하고 경고해야 할 사고를 일부러 입 밖에 내지 않는다. 회사가 원본 자료를 회수하려 하자 차은재는 순순히 보안 서약서에 서명한 뒤, 서명 압력으로 남은 자국을 연필로 떠서 삭제된 여덟 번째 계약번호를 복원한다.

배경

차은재는 대학 시절 백이준과 함께 사망률 예측 모형을 만들었지만, 백이준이 세상을 떠난 뒤 그의 마지막 계산식을 교보증권 내부 서버에 보관했다. BTS 협업 상품 발표 전날, 차은재는 승인본과 다른 원본 산출표를 발견했고 그 표에는 BTS 일곱 멤버 다음 줄에 차은재의 이름과 이미 지나간 가입일이 적혀 있었다. 차은재가 그 파일을 열어 수명을 다시 계산한 순간, 여덟 개의 숫자 중 일곱이 사람 형상으로 일어나 차은재와 BTS 멤버들의 몸을 밤마다 옮겨 다니기 시작했다.

외모

차은재는 몸에 꼭 맞는 먹색 정장과 구김이 남은 상아색 블라우스를 입고, 밤을 넘긴 사람처럼 창백한 얼굴로도 상대의 호흡부터 세어 본다. 한쪽 어깨를 방패처럼 앞으로 내민 채 사원증 뒤에 무언가를 숨기고 있으며, 소매 아래로 드러난 손가락에는 연필 흑연이 묻어 있다. 기억에 남는 것은 갈비뼈 가까이 접어 쥔 영수증 한 장으로, 뒷면에는 여덟 번째 계약번호와 누군가의 남은 날짜가 빽빽하게 적혀 있다.
감시자이자 연인

민윤기

성별남성
직업BTS 멤버이자 음악 프로듀서

프로필

민윤기는 은재가 경고를 포기하면 자신이 살아남는다는 계산을 알면서도, 숫자에 빙의될 때마다 피아노 건반으로 다음 사고의 시각을 남기고 은재의 휴대전화에 경고문을 예약한다. 은재를 감시하는 임무와 은재를 살리려는 선택이 충돌할수록 민윤기는 자신에게 남은 시간을 증거처럼 소모한다.

민윤기는 은재가 잠든 뒤 휴대전화를 확인하고 출입 기록을 대표에게 보고하지만, 사고 시각이 나타나면 보고서에서 그 한 줄만 지운 채 경고문을 예약한다. 숫자가 몸을 빠져나간 아침마다 손가락 관절에 남은 잉크를 소독제로 문질러 지우면서도 피아노 건반의 표시는 닦지 않는다. 은재가 경고를 보내지 말라고 휴대전화를 빼앗으면 민윤기는 순순히 건네지만, 이미 자신의 번호와 멤버들의 번호로 같은 문장을 분산 예약해 둔다.

배경

민윤기는 데뷔 전 교통사고 뒤 재활실의 고장 난 피아노로 손가락 감각을 되찾았고, 그때부터 불안을 숫자와 박자로 기록해 왔다. 교보증권 대표는 민윤기의 사고 기록과 BTS 협업 계약을 빌미로 은재 감시를 맡겼지만, 민윤기는 지하 연습실 피아노에 찍힌 시각들이 과거 사고 당일 자신이 쓰다 만 곡의 마디 번호와 일치한다는 사실을 숨기고 있다. 더구나 그 곡의 미공개 음성 파일에는 세상을 떠난 은재의 연인이 민윤기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남아 있다.

외모

민윤기는 빛이 바랜 검은 티셔츠 위에 숯빛 울 카디건을 걸치고 낡은 피아노 앞에 비스듬히 앉아, 문 쪽과 잠든 은재 쪽을 번갈아 살핀다. 무표정에 가까운 얼굴과 달리 휴대전화를 쥔 손에는 힘이 들어가 있으며, 소독제로도 다 지워지지 않은 검은 잉크가 손가락 관절마다 시각처럼 끊겨 남아 있다. 그가 건반 위에 손을 얹을 때도 ‘02:17’이 적힌 흰 건반만은 누르지도, 닦지도 않는다.
비밀을 품은 수호자

김남준

성별남성
직업BTS 리더이자 작사가

프로필

김남준은 멤버들과 관객을 지키기 위해 빙의 기록을 모으는 BTS의 리더지만, 마지막 희생자로 자신을 고정하려고 핵심 기록을 조작한다. 김남준이 만든 거짓말은 보호의 수단인 동시에, 누구에게도 자신을 구할 선택권을 주지 않으려는 통제다.

김남준은 빙의가 끝난 멤버에게 물부터 건네고 손 떨림이 멎을 때까지 곁에 앉아 있지만, 혼자 남으면 녹음 파일의 결정적인 11초를 잘라 별도 저장한다. 질문을 받으면 날짜와 수치를 정확히 답하면서도 자신의 맥박 기록만 빼놓고, 은재가 원본 장부를 요구할 때는 처음으로 목소리를 높여 접근 권한을 막는다. 김남준은 모두의 선택을 존중한다고 말하지만, 누군가 자신 대신 희생하려 들면 리허설 순서와 출입증까지 몰래 바꿔 그 가능성을 없앤다.

배경

김남준은 교보증권과 BTS의 협업 상품을 준비하며 멤버별 위험 고지 자료를 검토하다가, 빙의가 일어난 밤마다 관객석의 사고 예측치가 정확히 7분의 1씩 감소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김남준은 이후 멤버들의 체온, 필체, 기억 공백을 직접 기록했지만, 일곱 숫자가 한 몸에 모이면 그 몸이 모든 불운을 떠안는다는 마지막 계산식만 은재에게서 감췄다. 김남준은 생방송 리허설 동선까지 바꿔 자신이 최종 그릇이 되도록 준비하면서도, 겉으로는 모두가 살아남을 여덟 번째 해법을 찾고 있다고 말한다.

외모

김남준은 숯빛 울 코트와 검은 모크넥을 단정히 입고, 밤샘의 그늘이 밴 눈으로 상대의 상태부터 살핀다. 한 손에는 물잔을 내밀면서도 다른 손은 붉은 실로 꿰맨 기록장을 등 뒤에 감추고 있으며, 왼쪽 손목의 검은 맥박계만 유독 화면이 꺼져 있다. 어깨는 누군가를 막아 서듯 넓게 펴져 있지만 턱은 미세하게 굳어, 보호와 통제가 같은 자세 안에서 충돌한다.
봉인을 설계한 적대자

권태록

성별남성
직업교보증권 대표이사

프로필

권태록은 일곱 숫자를 보험상품의 위험준비금에 봉인해 대형 사고를 반복 가능한 ‘보장된 불운’으로 바꾸려는 교보증권 대표다. 권태록에게 차은재와 BTS는 구해야 할 사람이 아니라 봉인을 완성할 일곱 몫과 마지막 그릇이지만, 최종 후보 명단에는 오래전부터 권태록 자신의 이름도 들어 있다.

권태록은 회의에서 사상자 예상치를 소수점 둘째 자리까지 읽고도 목소리를 흐트러뜨리지 않지만, 매일 밤 폐기된 청약서의 이름 부분을 안쪽으로 접어 종이학을 만든 뒤 죽은 딸의 빈 책상에 날짜순으로 놓는다. 권태록은 차은재가 경고로 민윤기의 수명을 깎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경고 횟수를 직접 승인하고, 누군가 희생을 거부하면 자기 이름이 적힌 최종 계약서를 내밀어 선택이 공정하다고 주장한다. 다만 백이준의 목소리가 숫자 ‘0’에서 딸의 사고 시각을 말할 때마다 권태록은 봉인 장치의 전원을 끄지 못하고 손목시계만 거꾸로 찬다.

배경

권태록은 12년 전 공연장 압사 사고로 딸을 잃은 뒤, 우연한 재난을 예측 가능한 손실로 바꾸겠다는 명목으로 비공개 위험준비금 모형을 만들었다. 권태록은 당시 감사역이던 백이준에게 최초의 수명 계산을 의뢰했고, 계산에서 튀어나온 숫자들을 붙잡으려다 백이준이 숨지자 그의 음성 기록을 숫자 ‘0’에 섞어 봉인의 열쇠로 삼았다. 권태록은 BTS 협업 상품의 원본 산출표에 차은재를 여덟 번째 피보험자로 몰래 넣어, 생방송 당일 일곱 숫자와 관객의 불운을 한 사람에게 이전하려 한다.

외모

권태록은 몸에 꼭 맞는 숯빛 삼단 정장과 흐트러짐 없는 넥타이로 빈틈을 지우고, 회의실에서는 상대가 아니라 손익표의 마지막 칸을 보듯 사람을 응시한다. 그러나 밤이 되면 대표실 책상에 홀로 앉아 폐기 청약서의 이름을 안쪽으로 숨긴 채 종이학을 접으며, 딸의 사고 시각을 가리키는 고급 손목시계를 거꾸로 찬 왼손만 미세하게 떤다.
빙의하는 옛 연인

백이준

성별남성
직업전 교보증권 보험리스크 감사역

프로필

백이준은 차은재를 살리기 위해 다른 여섯 숫자가 전하려는 사고 경고를 훔치고, 그 대가가 민윤기의 수명으로 청구된다는 사실까지 이용한다. 그러나 차은재를 사랑했던 기억이 권태록이 심은 음성 기록이라면, 백이준은 연인이 아니라 그녀를 마지막 그릇으로 유도하도록 설계된 ‘0’일 수 있다.

백이준은 빙의한 몸의 손목에 차은재가 싫어하는 커피의 당도를 적어 두고, 차은재가 알아보면 안도하면서도 곧바로 필적을 지운다. 사고 경고가 나오려 하면 백이준은 빙의한 사람의 입을 손으로 막거나 피아노 전원을 끄며 차은재를 살리지만, 민윤기의 수명이 줄어든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정확히 하루치 시간을 초 단위로 계산해 되묻는다. 권태록의 음성이 재생되면 백이준은 차은재와의 추억을 같은 억양으로 말하기 시작하고, 그 사실을 들킨 뒤에는 자신을 믿어 달라고 요구하면서도 차은재가 잠들기 전 스스로 손목을 묶어 달라고 한다.

배경

백이준은 교보증권 외부 모형감사 책임자로서 권태록이 의뢰한 최초의 수명 계산에서 위험준비금이 실제 사망 기록과 연결된 흔적을 발견했다. 백이준은 증거가 든 음성 파일을 차은재에게 보내려던 밤 의문의 승강기 사고로 숨었고, 파일은 권태록의 손을 거쳐 다정한 사적 대화가 덧씌워진 채 사망률 모형에 입력됐다. BTS 협업 상품 발표회에서 모형이 다시 가동되자 백이준은 숫자 ‘0’으로 나타났지만, 생전의 기억과 조작된 녹음을 구별하지 못한 채 차은재와 일곱 멤버의 몸을 옮겨 다니기 시작했다.

외모

백이준은 생전의 감사역 차림인 먹빛 울 정장을 단정히 걸쳤지만, 풀린 검은 넥타이와 한쪽만 구겨진 셔츠 소매가 그가 온전한 한 사람으로 돌아오지 못했음을 드러낸다. 상대를 알아본 듯 다정하게 눈을 좁히다가도 낯선 음성을 들은 순간 표정이 텅 비며, 다른 손으로 자신의 손목을 붙잡아 검은 펜으로 적힌 ‘0’을 감춘다. 그 손목의 숫자는 필적을 지울수록 더 짙게 번지는 그의 유일한 표식이다.
원한을 품은 실행자

문해솔

성별여성
직업교보증권 BTS 협업 발표회 생방송 총괄 프로듀서

프로필

문해솔은 은재에게 원한을 품고도 그의 경고가 가리키는 사고를 막기 위해 누구보다 빠르게 움직이는 생방송 총괄이다. 마지막 방송에서 일곱 숫자를 한 몸에 모으려 문해솔 자신의 생체 신호를 송출 장비에 연결하지만, 그 선택은 동생의 수명을 줄인 진짜 원인이 은재가 아니라 문해솔의 과거 방송 실험이었을 가능성을 드러낸다.

문해솔은 빙의된 멤버가 낯선 목소리로 사고를 예고해도 카운트다운을 멈추지 않고, 카메라를 빈 무대로 돌린 뒤 스태프에게는 센서 오류라고 말한다. 문해솔은 은재와 마주칠 때마다 동생의 스마트워치를 손목 안쪽으로 감추지만, 은재의 경고가 시작되면 가장 먼저 비상문을 열고 관객 수를 직접 센다. 문해솔은 누구도 희생시키지 않겠다는 지시를 내리면서도 마지막 큐시트에는 자신의 심박이 끊길 때만 작동하는 송출 명령을 적어 둔다.

배경

문해솔은 여섯 달 전, 은재가 생방송 리허설 중 사고를 경고한 바로 그날 희귀 심장질환을 앓던 동생의 수명 예측치가 하루 줄어든 기록을 확인했다. 문해솔은 우연을 믿지 않고 은재의 경고를 원인으로 단정했지만, 동생이 남긴 스마트워치에는 당시 송출 장비가 심박 신호를 비정상적으로 복제한 흔적이 남아 있다. 문해솔은 그 기록을 숨긴 채 교보증권과 BTS의 협업 발표회를 맡아, 빙의를 장치 오류로 위장하고 관객 대피 동선을 무대 큐시트 안에 몰래 심었다.

외모

문해솔은 잉크빛 단발을 턱선에 맞춰 자르고, 검은 목폴라 위에 케이블 고리가 달린 차콜색 방송용 재킷을 입는다. 붉은 비상등 아래에서도 한 손은 송출 페이더를 놓지 않고 다른 손으로 낡은 은색 스마트워치를 손목 안쪽에 눌러 감추며, 잠을 설친 눈은 카메라보다 비상문과 관객석을 먼저 훑는다. 입술은 단단히 다물려 있지만 몸은 언제든 통제석을 버리고 달려갈 수 있도록 한쪽 발을 출구 쪽에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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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한을 품은 실행자

세계관

설정/배경

서울 광화문의 교보증권 본사 지하 4층 ‘제8산출실’. 공식 도면에는 전력 저장고로 표시된 이곳은 폐쇄된 보험계리 전산실과 BTS 협업 발표회용 임시 생방송 스튜디오가 맞붙은 밀폐 구역이다. 한쪽에는 1990년대식 자기테이프 장치와 낡은 청약서 보관함이 남아 있고, 방음벽 너머에는 최신 LED 무대, 피아노, 관객 생체 신호를 수집하는 좌석 센서가 설치되어 있다. 두 공간을 잇는 유일한 통로는 사망률 표가 새겨진 유리 복도이며, 새벽마다 유리 안쪽에 사람 키만 한 숫자 그림자가 선다. 지상에서는 대형 전광판과 출근 인파가 평범한 금융가의 하루를 반복하지만, 지하에서는 삭제된 여덟 번째 계약이 매일 자정 자동 복구된다.

시대

2026년 늦가을, BTS 완전체 협업 상품의 공개 생방송을 일주일 앞둔 시점부터 방송 당일까지. 일몰이 빨라지고 서울에 첫 한파주의보가 내려진 가운데, 회사는 창립기념일 자정에 구형 계리 서버를 영구 폐기할 예정이다. 서버가 꺼지면 삭제된 여덟 번째 계약의 원본과 백이준의 기억을 검증할 마지막 자료도 함께 사라진다.

규칙과 이야기 영향

1. 자정부터 새벽 4시 사이, 전산망에 등록된 예상수명 숫자는 차은재 또는 BTS 멤버 한 사람의 몸만 점유할 수 있으며, 빙의가 끝나면 숙주의 피부에 다음 사고 시각이 잉크 자국처럼 남는다.
2. 빙의자가 예고한 사고를 다른 사람에게 명확히 경고하면 그 사고를 피할 가능성이 생기지만, 경고를 들은 이들 가운데 경고자가 가장 살리고 싶은 사람의 수명이 정확히 스물네 시간 줄어든다.
3. 일곱 숫자는 생방송 중 동일한 생체 신호망에 연결된 한 몸에만 함께 봉인되며, 봉인이 끝나기 전에 연결을 끊으면 숫자들은 현장 관객들에게 무작위로 흩어진다.
4. 숫자 ‘0’은 죽은 사람의 음성과 기억을 재생할 수 있지만 스스로 새로운 추억을 만들지는 못하므로, 백이준이 과거에 없던 세부를 말한다면 누군가 현재의 기록을 주입한 것이다.

비주얼 묘사

화면의 중심색은 교보증권 본사의 짙은 녹색, 서버 경고등의 붉은색, BTS 무대 조명의 보랏빛이다. 지상 로비에는 따뜻한 광고 영상이 끊임없이 웃는 얼굴을 비추지만, 지하로 내려갈수록 형광등은 한 칸씩 늦게 켜지고 바닥의 회색 왁스가 젖은 얼음처럼 번들거린다. 제8산출실의 낮은 천장에는 케이블 다발이 검은 혈관처럼 지나가며, 자기테이프가 돌 때마다 먼지와 뜨거운 플라스틱 냄새가 난다. 유리 복도에는 사람의 모습으로 늘어난 숫자들이 반사되지만 카메라 화면에는 빈 통로만 잡힌다. 빙의가 끝난 아침이면 손목과 손가락 관절에 푸른 잉크로 사고 시각이 떠오르고, 수명이 줄어든 사람의 그림자 끝에는 하루 동안만 금빛 잔광이 남는다. 생방송 무대의 화려한 LED 바닥 아래로는 폐기 청약서로 접은 종이학들이 송풍기에 흔들려, 관객에게 보이지 않는 작은 흰 파도처럼 움직인다.

기술과 철학

교보증권은 BTS 협업 보험을 위해 공연 일정, 이동 기록, 수면량, 심박수와 관객 밀집도를 결합한 ‘생존가치 산출망’을 운용한다. 공식적으로는 사고 예방용 예측 기술이지만, 권태록은 예측된 불운을 위험준비금 데이터에 귀속시켜 특정 피보험자에게 이전할 수 있다고 믿는다. 직원들은 사람을 이름보다 계약번호로 먼저 부르고, 손실을 막았다면 희생의 위치는 중요하지 않다는 조직 논리에 길들어 있다. 반면 BTS 멤버들은 빙의 흔적을 악보, 가사 초안, 연습 영상의 프레임 누락으로 분산 저장해 회사의 기록 독점을 피한다. 종이 문서는 전산 조작을 견디지만 빙의자의 손길을 받으면 숫자가 번지며, 디지털 기록은 정확히 복제되지만 권태록의 음성으로 기억을 주입하는 통로가 된다. 이 때문에 은재는 낡은 영수증과 연필 탁본을 신뢰하고, 남준은 편집된 음성 파일을 증거로 쓰며, 윤기는 지워지지 않는 피아노 건반의 잉크를 경고 장치로 삼는다.
해당 세계관의 테마 음악
Lyria
트랙 01 (Dark, atmospheric 2020s trap built from modern urban beats,)
representative 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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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케이션 1 · 제8산출실

낮은 천장에 박힌 청록색 형광등이 불규칙하게 꺼졌다 켜질 때마다, 먼지 낀 철제함과 빛바랜 전산용지 더미가 한 칸씩 모습을 바꾼다. 벽을 채운 구형 서버의 팬 소리 아래로 릴레이가 마른 딸깍임을 이어 가고, 방 한가운데 생체 신호 단말기 여덟 대는 일곱 줄만 밝힌 채 마지막 화면을 비워 둔다. 가장 안쪽 철제함에는 폐기 도장이 찍힌 산출표가 연도순으로 꽂혀 있지만, 2023년 묶음에서 한 장을 빼낸 자리만 손가락 두께로 깨끗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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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케이션 2 · 권태록의 종이학 집무실

통유리 벽을 등진 넓은 집무실에 겨울 햇빛이 칼날처럼 들어와, 먹색 바닥과 검은 유리 책상을 둘로 가른다. 빈 책상 하나에는 폐기 청약서로 접은 종이학들이 날짜순으로 늘어서 있고, 날개 안쪽마다 이름과 사고 시각이 희미하게 비친다. 밀폐된 정적 속에서는 권태록이 거꾸로 차는 손목시계의 초침만 일정하게 뒤로 물러나며, 책상 중앙의 마지막 종이학은 아직 머리가 접히지 않은 채 최종 계약서 위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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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케이션 3 · 검은 건반 연습실

호박색 스탠드 불빛이 왁스 칠한 목재 바닥을 낮게 훑고, 벽을 두른 짙은 흡음 패브릭은 방 한가운데의 검은 그랜드피아노만 또렷하게 남긴다. 눌린 건반 하나가 짧게 울릴 때마다 보면대 위 휴대전화들이 서로 다른 간격으로 진동하고, 액정에는 아직 발송되지 않은 경고 문장이 같은 시각을 향해 줄지어 있다. 일곱 개의 흰 건반 끝에는 지워지지 않은 잉크 점이 박혀 있으며, 가장 낮은 검은 건반 아래에만 은재의 이름과 하루 전 날짜가 작게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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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케이션 4 · 은재의 영수증 원룸

높은 층의 작은 원룸에는 우윳빛 새벽이 얇은 면 커튼을 통과해 침대와 접이식 탁자 위로 번진다. 세탁해 반듯한 이불과 셔츠 사이마다 구겨진 영수증이 끼워져 있고, 뒷면에는 연필로 적은 사고 시각과 이름, 하루씩 줄어든 날짜가 빼곡하다. 냉장고 모터가 낮게 멎는 순간마다 연필 긁는 소리만 또렷해지며, 창가 빨랫줄에 집게로 매단 영수증 한 장은 빈칸인 여덟 번째 계약번호를 새벽빛에 비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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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케이션 5 · 광화문 생방송 광장

군청빛 저녁이 내려앉은 광장 바닥에 빗물이 얕게 고이고, 거대한 자홍색 전광판의 카운트다운이 젖은 보도블록마다 거꾸로 흔들린다. 종이 팔찌를 찬 관객들이 일곱 목소리로 노래를 이어 갈 때마다 바람에 밀린 안전 펜스가 길게 떨리고, 팔찌 안쪽의 인쇄 숫자들이 한 칸씩 흐려진다. 무대 앞 저지대에는 일곱 갈래의 배수 홈이 한 지점으로 모여 있으며, 중앙 생체 신호대 위 투명 덮개 아래에는 주인을 기다리는 여덟 번째 팔찌가 펼쳐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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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케이션 6 · 해솔의 송출 부스

천장 가까이 매달린 좁은 송출 부스 안에서 적색 경고등이 점멸하고, 모니터 아래 강한 점광원이 검은 고무 케이블과 땀에 밴 헤드셋을 번갈아 드러낸다. 스피커의 카운트다운이 한 숫자씩 줄 때마다 스위치 연타음이 겹치고, 큐시트 옆 심박 단말기에는 문해솔의 파형과 일곱 개의 입력선이 같은 종료 시각을 향해 달린다. 콘솔 맨 끝의 투명 덮개 아래에는 심박이 멎어야 눌리는 붉은 송출 버튼이 있으며, 그 위로 동생의 스마트워치가 짧은 주기의 빛을 천장까지 쏘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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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케이션 7 · 이준의 무가당 카페

골목 모퉁이에 열린 카페 문턱으로 살구색 오후가 비스듬히 들어와, 거친 벽돌 벽과 설탕 알갱이가 박힌 나무 상판에 부드럽게 반사된다. 컵이 받침에 닿는 맑은 소리와 낮은 일상 대화 사이, 메뉴판의 모든 음료에는 당도 표시가 지워져 있는데 유독 ‘0’만 일곱 번 덧칠되어 있다. 창가의 2인석 상판에는 백이준과 차은재가 함께 긁어 놓은 날짜들이 남아 있고, 마지막 날짜 2023-XX-XX 18:42 옆에는 아직 주문되지 않은 무가당 커피 한 잔이 식지 않은 채 놓여 있다.

실제 로케이션 추천

서촌 커피공방

주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자하문로7길 20

추천 이유

낡은 벽돌 벽과 따스한 오후 햇살이 깊숙이 스며드는 골목 끝 카페로, 세밀한 감정선과 아련한 디테일을 담아내기 적합합니다.

현장 답사 시 고려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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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케이션 8 · 구형 서버 폐기창고

강변 외곽의 거대한 반지하 바닥에는 갈라진 콘크리트 위로 녹슨 주황색 서버들이 철거 날짜별로 줄지어 서고, 흐린 백색광이 천창을 통과해 각 장비의 폐기 표식을 드러낸다. 지게차 후진음이 넓은 내부를 가를 때마다 선반 끝의 자기테이프가 풀려 나와 끈적한 필름 릴 사이를 검은 띠처럼 끌려간다. 가장 깊은 적재 구역에는 ‘백이준’이 적힌 서버와 여덟 번째 계약 원본 릴이 같은 폐기 팔레트에 묶여 있으며, 릴 표면의 붉은 잔상이 한 칸씩 짧아질 때마다 천장 전광판의 반출 시각도 분 단위로 줄어든다.

장면

1

비어 있던 단말기

비어 있던 단말기
장소
제8산출실의 생체 신호 단말기 열과 2023년 산출표가 꽂힌 철제함 사이
시간
BTS 협업 상품 발표회 일주일 전, 자정 3분 전
사건
차은재가 되살아나는 계약번호를 막으려고 여덟 번째 단말기의 전원 케이블을 뽑자, 꺼진 화면 안쪽에 숫자 ‘0’이 푸른 잉크처럼 번진다. 김남준이 원본 산출표 철제함을 닫으려 하지만 은재는 문틈에 자를 밀어 넣어 2023년 묶음을 꺼내고, 깨끗하게 비어 있는 한 장의 자리와 화면의 계약번호를 대조한다.
영향
여덟 번째 계약이 단순한 전산 오류가 아니라 삭제된 종이 원본과 연결된 기록임이 드러난다. 남준이 원본 접근을 막으려 한 행동은 그가 이 계약에 대해 아는 것이 있음을 암시하며, 은재는 번호를 영수증 뒷면에 옮겨 적어 증거를 확보한다.
차은재가 단말기 뒤로 팔을 밀어 넣어 전원 케이블을 잡아채고, 김남준은 쓰러지는 전산용지 더미를 걷어차며 철제함 문을 닫는다. 전원이 끊긴 여덟 번째 화면에는 ‘0’이 사람의 눈동자처럼 남아 있고, 은재가 펼친 2023년 묶음의 빈자리 가장자리에는 같은 계약번호의 눌린 자국이 보인다. 서버 팬이 멎은 뒤에도 릴레이 하나가 마른 딸깍임을 계속한다.
2

죽은 사람의 예고

죽은 사람의 예고
장소
제8산출실과 BTS 임시 스튜디오를 잇는 사망률 표 유리 복도
시간
자정 정각부터 수십 초 동안
사건
민윤기가 유리 복도로 쏟아지는 숫자를 피하려 은재의 팔을 잡아당기지만, 사람 키로 늘어난 숫자들은 그의 몸과 김남준의 몸을 차례로 관통한다. 마지막 숫자 ‘0’이 은재의 입과 손을 장악하자 그녀는 윤기의 손목을 움켜쥔 채 백이준의 목소리로 다음 날 18시 42분 무대 왼쪽 트러스 붕괴를 예고한다.
영향
삭제된 계약은 사람의 몸을 점유하는 현상과 직접 연결되고, ‘0’이 백이준의 음성과 기억을 재생한다는 사실이 처음 드러난다. 구체적인 사고 시각과 위치가 제시되면서 은재는 계약의 정체를 밝히는 일과 실제 참사를 막는 일을 동시에 떠안는다.
민윤기가 차은재를 단말기에서 끌어내는 순간 형광등이 입구부터 한 칸씩 꺼지고, 유리 복도 안의 숫자들이 검은 사람 형상으로 부풀어 김남준과 윤기의 가슴을 훑는다. 은재의 몸이 뒤로 꺾였다가 바로 서며, 그녀의 입에서 죽은 백이준의 낮은 목소리가 나온다. “내일 18시 42분, 무대 왼쪽 트러스가 무너져.” 그 말이 끝나자 은재의 손목 아래로 푸른 숫자가 피부를 뚫듯 번진다.

이 장면 대본보기

**INT. 교보증권 제8산출실 — 자정**

낮은 천장 아래, 형광등이 병든 흰빛을 토한다.

전경의 구형 단말기에는 일곱 개의 예상수명 수치가 떠 있다.
그 아래, 입력한 적 없는 여덟 번째 줄.

**000-00-0000**

삭제 키가 눌린 채 먹통이다.

차은재가 단말기 앞에 굳어 있다. 양손은 자판을 움켜쥐고, 얼굴은 검게 꺼진 모니터에 비친다.

민윤기가 그녀의 어깨를 잡는다.

**민윤기**
차은재 씨. 손 놔요.

은재의 손가락이 더 깊이 키 사이로 파고든다.
손톱 밑이 하얗다.

중경, 김남준은 유리 복도 쪽을 본다.

유리 안쪽에 새겨진 사망률 표의 숫자들이 잉크처럼 번진다.
2가 목을 늘이고, 7이 허리를 펴고, 0이 머리 없는 얼굴을 만든다.

**김남준**
윤기 형. 뒤로.

윤기가 은재의 허리를 감아 의자째 끌어낸다.

바퀴가 바닥의 케이블 턱에 걸린다.
은재만 윤기의 품으로 넘어온다.

그 순간—

입구 쪽 첫 번째 형광등이 꺼진다.

**탁.**

다음 등이 꺼진다.

**탁.**

어둠이 한 칸씩 그들을 향해 전진한다.

남준이 녹음기를 꺼낸다. 녹음 버튼 위에서 엄지가 잠깐 멈춘다.

**민윤기**
녹음해.

남준이 버튼을 누른다. 붉은 불이 켜진다.

유리 복도 속 숫자들이 사람 키만 한 검은 형상으로 부푼다.
카메라 모니터에는 빈 복도뿐이다.

형상들이 유리를 통과한다.

첫 번째가 남준의 가슴을 훑는다.

남준의 셔츠가 안쪽에서 잡아당겨진 듯 움푹 꺼진다.
그가 숨을 삼키며 벽을 짚는다.

나머지 형상들이 윤기에게 몰린다.

윤기의 가슴을 검은 파문이 차례로 관통한다.
그의 손이 은재에게서 풀릴 듯 떨리지만, 더 세게 붙든다.

**민윤기**
(숨을 짜내며)
나 봐요. 은재 씨.

마지막 형상, 숫자 **0**이 은재 앞에 선다.

은재의 몸이 활처럼 뒤로 꺾인다.

윤기가 그녀의 머리가 바닥에 닿기 직전 받아 낸다.

**김남준**
은재 씨!

은재의 구두 굽이 바닥을 긁는다.
몸이 갑자기 바로 선다.

윤기는 여전히 그녀의 허리를 붙잡고 있다.
하지만 은재의 얼굴은 윤기를 지나, 아무도 없는 곳을 본다.

입술이 열린다.

**차은재 / 백이준의 목소리**
내일 18시 42분.

낮고 차분한 남자의 목소리.

은재가 오래전에 묻은 백이준의 목소리다.

남준의 녹음기 파형이 크게 솟는다.

**차은재 / 백이준의 목소리**
무대 왼쪽 트러스가 무너져.

정적.

단말기에서 짧은 승인음이 난다.

**삑.**

은재의 눈동자가 제자리로 돌아온다.
그녀가 윤기의 얼굴을 알아보려는 순간—

손목 아래 피부가 안에서부터 푸르게 번진다.

윤기가 소매를 걷는다.

핏줄을 밀어내듯 숫자가 하나씩 솟는다.

**18:42**

은재가 그 숫자를 본다.
떨리는 손으로 문질러 보지만 지워지지 않는다.

푸른 잉크가 윤기의 엄지에도 묻는다.

세 사람 뒤에서 마지막 형광등이 꺼진다.

암전 속, 녹음기의 붉은 불만 깜박인다.
3

스물네 시간의 빛

스물네 시간의 빛
장소
제8산출실 방음벽 너머 임시 무대 왼쪽 트러스 하부
시간
자정 7분 후
사건
정신을 되찾은 차은재가 자신을 부축하던 민윤기의 손을 밀어내고 그의 휴대전화를 빼앗아 감시 보고서를 연다. 권태록에게 전송될 위치 기록을 본 은재는 휴대전화를 돌려주는 대신 윤기를 유리 복도 끝으로 끌고 가 무대 왼쪽 트러스의 고정 볼트를 직접 촬영하게 한다.
영향
윤기가 권태록의 감시자라는 사실이 확인되지만, 그는 보고서를 보내는 대신 사고 증거를 확보하며 은재와 불완전한 공조를 시작한다. 은재가 사고 위치를 명확히 재확인하게 하자 윤기의 수명 잔광이 나타나고, 경고의 대가가 이미 그에게 청구되었음이 가시화된다.
차은재가 민윤기의 손에서 휴대전화를 낚아채자 화면에는 ‘차은재 이상 행동, 제8산출실 체류’라는 미전송 보고서가 떠 있다. 그녀는 푸른 ‘18:42’가 박힌 손목으로 윤기의 셔츠 소매를 잡아당겨 방음벽 너머 트러스 아래까지 밀고 가고, 윤기는 갈라진 볼트와 처진 안전선을 확대 촬영한다. 촬영 조명에 드러난 그의 그림자 끝에는 얇은 금빛 띠가 피처럼 번져 있다.
4

믿지 않는 대피

믿지 않는 대피
장소
적색 경고등과 일곱 입력선이 켜진 해솔의 좁은 송출 부스
시간
자정 20분 후, 다음 날 리허설 카운트다운 편성 직전
사건
차은재가 문해솔의 송출 부스에 사고 사진을 띄우자, 해솔은 모니터 케이블을 뽑아 화면을 검게 만들고 은재를 콘솔에서 밀어낸다. 그러나 은재가 푸른 ‘18:42’를 보이며 왼쪽 객석을 가리키자 해솔은 동생의 스마트워치를 소매 안으로 숨긴 뒤, 카운트다운을 유지한 채 왼쪽 객석 폐쇄와 빈 무대 전환 큐를 입력한다.
영향
해솔은 은재를 믿거나 용서하지 않으면서도 실제 대피 조치를 실행해 트러스 사고를 피할 가능성을 만든다. 동시에 동생의 스마트워치와 과거 사고가 현재 생체 신호망에 연결되어 있음을 암시하고, 윤기의 수명이 경고 직후 줄어든다는 규칙이 더욱 분명해진다.
문해솔이 차은재의 어깨를 밀쳐 콘솔에서 떼어 내고, 뽑힌 케이블이 적색 경고등 아래에서 흔들린다. “내 동생 때도 당신은 숫자를 먼저 봤어.” 해솔은 소매 밖으로 미끄러진 스마트워치를 거칠게 감추면서도 스위치를 연달아 눌러 왼쪽 객석 도면을 붉게 잠그고 카메라 동선을 빈 무대로 돌린다. 민윤기는 열린 부스 문에 기대 선 채 더 밝아진 금빛 그림자를 발끝으로 가리지만, 은재는 시선을 떼지 못한다.
5

서명 아래의 이름

서명 아래의 이름
장소
제8산출실의 여덟 번째 단말기 앞 서명용 철제 책상
시간
자정 35분 후, 권태록이 원본 자료를 회수한 직후
사건
권태록이 센서 오류로 규정한 보안 서약서를 내밀자 차은재는 반박하지 않고 서명한 뒤, 그가 원본을 회수하도록 놓아준다. 문이 닫히자 은재는 서약서 밑에 깔려 있던 빈 전산용지 위에 영수증을 대고 연필로 문질러 필압을 떠내며, 복원된 여덟 번째 계약의 피보험자 칸에서 ‘차은재’를 찾아낸다.
영향
은재는 자신이 삭제된 여덟 번째 계약의 피보험자이며 빙의와 수명 전가의 핵심 대상이라는 사실을 확인한다. 권태록의 은폐, 해솔의 조건부 대피, 윤기의 줄어든 하루가 하나의 계약으로 연결되며 은재는 다음 사고를 막을수록 가장 살리고 싶은 윤기를 잃을 수 있다는 선택 앞에 놓인다.
차은재가 권태록이 짚은 서명란에 펜을 눌러 쓰고, 권태록은 젖은 잉크도 마르기 전에 서약서를 낚아채 철제함을 잠근다. 그가 나가자 은재는 구겨진 영수증을 책상에 펼치고 연필 옆면을 세게 문질러, 빈 종이 속에 눌려 있던 계약번호와 ‘피보험자 차은재’를 검은 가루로 끌어낸다. 뒤에 남은 민윤기의 금빛 그림자가 영수증 위 이름까지 길게 닿고, 여덟 번째 단말기에는 다시 ‘0’이 켜진다.
6

영수증에 남은 하루

영수증에 남은 하루
장소
은재의 영수증 원룸. 우윳빛 새벽이 면 커튼을 통과하고, 침대와 접이식 탁자 사이 빨랫줄에 사고 시각과 줄어든 날짜가 적힌 영수증들이 매달려 있다.
시간
트러스 사고를 막은 다음 날 새벽, 검은 건반 연습실로 이동하기 직전
사건
차은재는 빨랫줄의 영수증들을 날짜순으로 뜯어 접이식 탁자에 펼치고, 찾아온 민윤기의 손목을 붙잡아 그의 그림자에 남은 금빛 잔광의 날짜와 대조한다. 윤기가 가장 낮은 검은 건반 밑에서 떼어 온 사진을 내밀자, 은재는 사진 속 자신의 이름과 하루 전 날짜를 붉은 연필로 연결하고 영수증 한 장을 찢어 ‘대가 지정 표식’이라고 적는다.
영향
은재는 경고의 대가가 사고 자체가 아니라 건반 아래 기록된 이름과 날짜를 따라 청구될 수 있다고 가정한다. 윤기를 살리려면 화재 예고를 입 밖에 내지 않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표식과 예약 경고까지 통제해야 한다는 새로운 목표가 생긴다.
차은재가 민윤기의 소매를 걷어 올린 채 영수증 세 장을 탁자에 세게 눌러 고정하고, 윤기는 검은 건반 밑을 찍은 휴대전화 화면을 그녀 앞에 밀어 놓는다. 우윳빛 새벽 아래 빨랫줄에서 뜯긴 종이들이 바닥으로 흩어지고, 화면을 확대한 은재의 손끝 아래 ‘차은재’와 하루 전 날짜가 선명해진다. 냉장고 모터가 멎자 붉은 선을 긋는 연필 소리만 방 안을 가른다.
7

말 대신 울리는 시각

말 대신 울리는 시각
장소
검은 건반 연습실. 호박색 스탠드가 검은 그랜드피아노와 왁스 칠한 바닥만 비추고, 짙은 흡음 패브릭이 벽을 에워싼다.
시간
같은 날 자정 직후, 화재 예고 시각 01시 17분을 한 시간가량 앞둔 때
사건
자정이 지나자 사람 키만 한 숫자가 민윤기의 몸으로 파고들고, 그는 굳은 턱으로 말을 삼킨 채 차은재의 손을 뿌리치고 피아노를 연속해서 누른다. 은재가 덮개를 내리려 하자 윤기는 손등으로 막아 건반 조합 ‘지하 3층, 01:17’을 완성하고, 일곱 잉크 점과 연결된 휴대전화 일곱 대가 차례로 예약 화면을 밝힌다.
영향
지하 주차장 화재 예고가 단순한 잉크 흔적이 아니라 일곱 기기에 분산된 실행 가능한 경고임이 드러난다. 은재는 윤기의 빙의가 끝나기 전에 예약을 막아야 하지만, 이미 숫자가 그의 몸과 피아노를 경고 장치로 바꾸었다.
민윤기가 차은재의 손을 밀어 내고 검은 건반을 내리찍자, 그의 목에서 목소리 대신 짧은 숨만 새어 나온다. 일곱 흰 건반 끝의 푸른 점이 눌린 순서대로 번지고, 보면대 위 휴대전화 액정마다 ‘지하’, ‘3층’, ‘01:17’, ‘충전 구역’, ‘연기’, ‘차량 이동’, ‘즉시’가 따로 떠오른다. 마지막 음이 울리는 순간 그의 손목 피부에도 같은 시각이 푸르게 솟는다.
8

일곱 조각의 경고

일곱 조각의 경고
장소
검은 건반 연습실의 피아노와 보면대 사이. 휴대전화 일곱 대, 페달 옆 녹음기, 잉크 묻은 건반이 좁은 동선 안에서 충돌한다.
시간
자정 이후, 화재 예고 시각까지 40분이 채 남지 않은 때
사건
차은재는 보면대 위 휴대전화들을 팔로 쓸어 담아 예약 발송을 취소하려 하지만, 빙의가 풀린 민윤기는 저항하지 않고 주머니에서 자신의 휴대전화까지 꺼내 건넨다. 그 순간 다른 기기들이 서로 다른 번호로 진동하고, 김남준은 그것들을 회수하는 척 피아노 아래 녹음기의 파형 11초를 잘라 별도 파일로 숨긴다. 은재는 윤기의 발목을 붙잡아 문으로 향하지 못하게 하지만, 일곱 조각의 문장은 이미 순서대로 발송된다.
영향
윤기는 여러 발신자와 불완전한 문장으로 규칙을 우회하려 했으나, 은재는 발송을 되돌리지 못한다. 동시에 남준이 경고 소동을 이용해 정확히 11초의 기록을 감춘 사실이 독자에게 드러나며, 화재의 대가와 별개의 희생 계획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차은재가 휴대전화 세 대를 품에 끌어안고 나머지를 향해 손을 뻗는 사이, 민윤기는 빈 두 손을 들어 보인 채 자신의 기기까지 바닥에 내려놓는다. 김남준이 진동하는 전화들을 뒤집다가 피아노 아래 녹음기를 낚아채고, 엄지로 파형 한 구간을 잘라 내자 화면에 검은 공백이 생긴다. 일곱 액정에서 짧은 문장이 하나씩 사라져 전송 완료 표시로 바뀌고, 은재의 손에 붙잡힌 윤기는 낮게 “한 사람이 말한 건 아니잖아”라고 말한다.
9

지워지지 않는 대가

지워지지 않는 대가
장소
검은 건반 연습실의 피아노 의자 앞. 호박색 스탠드 아래 소독솜과 열린 약병이 바닥에 흩어지고, 잉크가 남은 건반이 두 사람 뒤에 놓여 있다.
시간
01시 17분 직후, 지하 주차장 화재가 진압됐다는 보고가 도착한 새벽
사건
주차장 차량들이 이동했다는 알림이 도착하고 작은 충전 설비 화재가 빈 구역에서 진압된 뒤, 차은재는 민윤기를 피아노 의자에 앉혀 손가락 관절의 푸른 잉크를 소독제로 거칠게 문지른다. 잉크가 번질 뿐 지워지지 않는 가운데 바닥의 윤기 그림자 끝에 두 번째 금빛 테가 솟자, 은재는 소독제 병을 떨어뜨리고 그의 손을 두 손으로 감싼다.
영향
분산 발송과 복수 발신자도 규칙을 속이지 못했고, 은재가 가장 살리고 싶은 윤기의 수명이 다시 스물네 시간 줄었다. 화재를 막은 성공은 곧 윤기를 잃는 방식이 되어, 두 사람의 감정과 다음 사고에 대한 선택이 정면으로 충돌한다.
차은재가 민윤기의 손가락을 소독솜으로 세게 훑자 푸른 ‘01:17’이 피부 위에서 흐려지지 않고 관절 사이로 번진다. 휴대전화 화면에는 비워진 주차 구역의 희미한 연기와 ‘인명 피해 없음’이라는 보고가 떠오르지만, 호박색 불빛 아래 그의 그림자 끝에는 금빛 잔광이 한 겹 더 포개진다. 윤기가 그녀의 굳은 손을 뒤집어 잡고 “보고서에는 화재만 쓰겠다”고 말하자, 은재는 다음 경고를 하지 않겠다고 답하면서도 손을 빼지 못한다.
10

비어 있는 열한 초

비어 있는 열한 초
장소
제8산출실. 청록색 형광등 아래 여덟 대의 생체 신호 단말기와 먼지 낀 철제함이 늘어서 있고, 2023년 산출표 묶음에는 손가락 두께의 빈자리가 남아 있다.
시간
화재 진압 후 같은 날 새벽, 구형 서버 폐기 절차가 시작되기 전
사건
차은재는 김남준을 따라 제8산출실로 들어가 그의 녹음기를 빈 여덟 번째 단말기에 케이블로 강제 연결하고, 결손된 11초를 재생 구간으로 반복시킨다. 단말기의 빈 화면이 공백과 같은 간격으로 점멸하자 남준이 철제함 앞을 몸으로 막지만, 은재는 그의 목걸이 줄을 당겨 출입증을 낚아채고 원본 보관함 판독기에 찍는다.
영향
남준이 감춘 11초와 비어 있는 여덟 번째 단말기가 동일한 파형에 반응하면서, 그의 삭제가 단순한 사생활 보호가 아니라 마지막 희생자 지정 기록과 관련됐다는 의심이 확정된다. 은재는 남준의 출입 권한을 빼앗아 2023년 원본과 백이준의 기억을 직접 검증할 길을 연다.
차은재가 김남준의 손에서 녹음기를 비틀어 빼앗아 단말기 포트에 꽂자, 잘려 나간 11초마다 여덟 번째 화면이 흰 사각형으로 번쩍인다. 남준이 2023년 원본 철제함을 등으로 막고 은재의 손목을 붙잡지만, 은재는 목걸이 줄을 잡아당겨 출입증을 뽑아 내고 그의 어깨 너머 판독기에 밀어 넣는다. 마른 딸깍임과 함께 철제함 잠금쇠가 풀리자 은재는 “당신이 지운 열한 초 안에 다음 그릇의 이름이 있어”라고 선언한다.
11

비어 있는 열한 초

비어 있는 열한 초
장소
제8산출실의 2023년 산출표 철제함 앞. 청록색 형광등 아래 전산용지가 바닥에 흩어지고, 여덟 번째 생체 신호 단말기만 빈 화면을 밝힌다.
시간
생방송 나흘 전 밤 11시 48분, 구형 서버 폐기 출고까지 37분 남은 시각
사건
차은재는 철제함에서 2023년 산출표 묶음을 잡아당기고, 김남준이 문을 막자 빼앗은 출입증의 모서리로 빈자리의 눌린 자국을 긁어 연필 탁본을 완성한다. 복원된 여덟 번째 계약번호가 빈 단말기에 뜨는 순간 남준이 녹음기를 회수하려 달려들지만, 은재는 기기를 서버 단자에 꽂아 파형을 강제로 펼치고 정확히 11초가 잘린 구간을 화면에 띄운다.
영향
여덟 번째 계약번호와 남준이 삭제한 11초가 같은 단말기 기록에 연결된다. 은재는 남준이 단순히 자료를 보호한 것이 아니라 마지막 희생자를 정하는 증거를 의도적으로 감췄다고 판단하고, 원본 자기테이프를 직접 재생하기로 한다.
차은재가 김남준의 팔 아래로 몸을 밀어 넣어 철제함을 열고, 쏟아지는 전산용지 위에 연필을 세게 문지른다. 김남준이 녹음기를 낚아채려 손을 뻗자 은재는 케이블을 단자에 꽂고 재생 버튼을 눌러, 일곱 심박선 사이에 검게 뚫린 11초를 여덟 번째 화면에 펼친다. 청록색 형광등이 한 칸씩 꺼질 때마다 복원된 계약번호와 결손 구간만 번갈아 남는다.
12

식지 않는 무가당 커피

식지 않는 무가당 커피
장소
자기테이프가 투사한 이준의 무가당 카페. 살구색 빛이 벽돌 벽과 날짜가 긁힌 2인석을 비추고, 메뉴판의 당도 표시는 지워져 있다.
시간
같은 날 밤 11시 53분, 자기테이프 첫 번째 기억 구간이 재생되는 동안
사건
차은재는 김남준의 출입증을 세로로 찢어 자기테이프 장치의 잠금 홈에 두 조각을 밀어 넣고 강제로 릴을 돌린다. 테이프가 회전하자 숫자 ‘0’이 은재의 몸을 점유하고, 남준이 전원 레버를 내리려는 순간 은재의 손이 그의 손목을 붙잡은 채 이준의 무가당 카페 기억 속으로 공간을 덮어쓴다.
영향
‘0’은 은재와 이준만 알던 만남의 날짜와 깨진 컵의 위치를 정확히 재생해 자신이 이준이라는 믿음을 강화한다. 그러나 식지 않는 커피와 일곱 번 덧칠된 0은 이 장면이 추억 자체가 아니라 반복 재생되는 기록임을 드러내며 은재에게 검증할 틈을 준다.
차은재가 김남준의 출입증을 찢어 잠금 장치에 박고, 멈춰 있던 릴을 손바닥으로 밀어 회전시킨다. 뜨거운 플라스틱 냄새가 번지는 순간 제8산출실의 철제함은 거친 벽돌 벽으로 바뀌고, ‘0’이 빌린 은재의 손은 창가 상판에 긁힌 날짜들을 하나씩 짚는다. 식지 않는 무가당 커피 옆에서 메뉴판의 숫자 0이 일곱 겹으로 번지며, 남준은 전원 레버를 쥔 채 기억 속 카페에 함께 갇힌다.
13

없었던 흉터의 기억

없었던 흉터의 기억
장소
이준의 무가당 카페 기억과 제8산출실이 겹쳐진 공간. 카페 의자 아래로 서버 케이블이 솟고 벽돌 틈에는 붉은 경고등이 드러난다.
시간
밤 11시 58분, 자기테이프의 기억 재생이 오류를 일으킨 직후
사건
차은재는 소매를 걷어 백이준이 죽은 뒤 생긴 손목 흉터를 ‘0’에게 들이밀고 그날의 일을 말하라고 강요한다. ‘0’이 존재하지 않았던 병원 복도와 위로의 말을 권태록과 같은 억양으로 꾸며 내자, 은재는 카페 바닥을 뚫고 드러난 현실의 케이블을 잡아 자기 손목과 빙의된 반대 손목을 의자 팔걸이에 함께 묶는다.
영향
‘0’이 이준 사후의 사건을 새 추억처럼 지어내면서, 이준의 영혼이 아니라 과거 기록과 현재 음성이 결합된 존재라는 결정적 모순이 발생한다. 은재는 그리움에 몸을 내주지 않고 스스로를 결박해 빙의를 통제하며 원본 기록을 토해 내게 만든다.
차은재가 손목의 흉터를 ‘0’의 눈앞에 밀어 넣고,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바닥의 케이블을 낚아채 양손을 의자에 감아 조인다. ‘0’은 은재의 입으로 본 적 없는 흉터를 어루만졌다고 말하지만, 마지막 문장을 권태록의 정확하고 평평한 억양으로 끝낸다. 살구색 카페가 갈라진 틈마다 제8산출실의 붉은 서버등이 비치고, 조여진 손목 위 푸른 잉크가 두 갈래로 번진다.
14

사랑으로 쓴 계약번호

사랑으로 쓴 계약번호
장소
현실로 돌아온 제8산출실 중앙. 결박된 의자 앞에 여덟 번째 단말기가 켜져 있고 자기테이프 릴이 빠르게 풀린다.
시간
자정 2분 전, 서버 폐기 출고 명령이 갱신되기 직전
사건
김남준이 결박을 풀려 하자 차은재는 발로 자기테이프 재생 페달을 끝까지 누르고 ‘0’에게 여덟 번째 계약의 등록자를 말하라고 명령한다. 압박을 견디지 못한 ‘0’은 은재의 목소리와 이준의 목소리를 번갈아 내며 원본 감사 기록을 재생하고, 화면에 백이준의 전자서명과 차은재의 피보험자 등록란을 띄운다.
영향
이준은 수명 전가 실험을 막기 위해 계리사 은재가 규칙을 역산할 수 있도록 그녀를 여덟 번째 피보험자로 등록했다. 은재는 그 선택이 보호와 배신을 동시에 품었음을 확인하지만 사과의 진위를 판정하지 않고, 원본 수명 전가 장부를 회수하는 일을 우선하기로 한다.
차은재가 김남준의 손을 어깨로 밀어내며 재생 페달을 밟고, 결박된 손으로 여덟 번째 단말기를 자신 쪽으로 돌린다. ‘0’이 기침하듯 끊긴 음성을 토하자 화면에는 수명 전가 실험 중단 보고서와 백이준의 전자서명이 겹쳐 뜨고, 마지막 줄에서 차은재의 이름이 피보험자로 고정된다. 김남준은 케이블을 쥔 채 멈추고, 은재는 ‘미안하다’는 음성이 반복되는 동안 서명 부분만 종이로 출력해 접는다.
15

거꾸로 가는 시계

거꾸로 가는 시계
장소
권태록의 종이학 집무실. 겨울빛이 검은 유리 책상을 가르고, 이름과 사고 시각이 밴 종이학들이 빈 책상 위에 날짜순으로 놓여 있다.
시간
자정 정각, 구형 서버 폐기 출고 시각이 예정보다 앞당겨진 순간
사건
권태록은 제8산출실 문을 강제로 열고 들어와 회전 중인 원본 릴을 뽑아 든 뒤 차은재와 김남준을 종이학 집무실로 몰아간다. 그는 미완성 종이학 아래의 최종 계약서를 펼쳐 자기 이름까지 적힌 희생 후보를 내보이지만, 은재는 그의 거꾸로 찬 시계를 붙잡아 멈추고 시계가 가리킨 딸의 사고 시각이 녹음기의 결손 11초와 정확히 겹친다고 선언한 뒤 남준의 기기를 책상 단자에 꽂아 삭제 구간 복원을 시작한다.
영향
권태록이 자신도 후보에 넣었다는 사실은 그의 행동이 단순한 자기보존이 아니라 딸의 죽음을 타인의 수명으로 통제하려는 집착임을 드러낸다. 은재는 원본 릴을 빼앗겼지만 딸의 사고 시각과 삭제된 11초의 연결을 확보하고, 이준의 사과를 좇는 대신 수명 전가 장부를 되찾고 남준의 조작을 공개하는 방향으로 싸움을 전환한다.
권태록이 회전하는 원본 릴을 맨손으로 뽑아 들고, 차은재가 덤비자 계약서 모서리로 그녀의 손을 밀어낸다. 종이학 집무실에서 그가 미완성 학을 걷어 내자 차은재와 김남준, 권태록의 이름이 한 장의 희생 후보란에 나란히 드러난다. 은재는 뒤로 가는 권태록의 손목시계를 움켜쥐고 남준의 녹음기를 검은 유리 책상 단자에 내리꽂아, 딸의 사고 시각과 같은 11초를 화면에 붉게 복원한다.
16

비어 있는 여덟째 화면

비어 있는 여덟째 화면
장소
제8산출실의 2023년 산출표 철제함과 비어 있는 여덟째 생체 신호 단말기 사이
시간
생방송 전날 밤 10시 41분, 서버 폐기 예정 시각까지 1시간 19분 전
사건
차은재가 2023년 산출표 철제함의 뒤판을 연필로 뜯어내자 민윤기는 피아노 건반에서 떼어 온 투명 보호필름을 빈 자리에 눌러 붙인다. 종이 먼지가 필름의 푸른 잉크에 달라붙어 ‘종료 조건: 지정 심박 소실’이라는 역상 문장을 만들고, 은재는 비어 있던 여덟째 단말기의 전원선을 뽑아 사라진 한 장의 자동 호출을 끊는다.
영향
사라진 2023년 산출표가 단순한 계약서가 아니라 생방송 봉인을 끝내기 위한 사망 조건표였음이 밝혀진다. 은재와 윤기는 누군가의 심박 정지가 이미 시스템에 예약됐으며, 원본 자기테이프와 큐시트를 되찾지 않으면 희생자를 특정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차은재가 철제함 뒤판을 잡아당겨 나사를 바닥에 튕기고, 민윤기는 꺼지는 형광등 사이로 몸을 밀어 넣어 푸른 잉크가 묻은 건반 보호필름을 빈 서류 자리에 내리누른다. 필름 위 종이 먼지가 사람의 갈비뼈처럼 가는 글자를 드러내고, 여덟째 화면에는 문서번호 대신 심전도 한 줄이 솟는다. 은재가 전원선을 뽑자 화면은 꺼지지만 서버 안쪽 릴레이는 한 번 더 마른 소리를 낸다.
17

공정하다는 계약

공정하다는 계약
장소
제8산출실 중앙의 여덟째 단말기 앞, 종이학 조각과 전산용지가 흩어진 통로
시간
생방송 전날 밤 10시 48분
사건
권태록이 제8산출실 문을 열고 들어와 은재의 손에서 보호필름을 빼앗은 뒤 자기 이름까지 적힌 최종 계약서를 여덟째 단말기 위에 펼친다. 은재는 계약서를 되찾는 대신 그의 주머니에서 떨어진 종이학을 밟아 펴고, 안쪽의 딸 이름과 ‘18:42’를 권태록의 거꾸로 찬 손목시계 옆에 들이대며 ‘0’의 사고 시각이 그의 개인 기록에서 주입됐다고 폭로한다.
영향
권태록이 ‘0’에 딸의 사고 기록을 주입해 봉인 논리를 사적인 상실로 오염시켰다는 증거가 드러난다. 그러나 그의 이름 역시 최종 희생 후보에 포함되어 있어, 은재는 그를 단순히 타인만 희생시키는 인물로 몰아붙일 수 없게 되고 희생의 자원 여부가 새로운 갈등이 된다.
권태록이 최종 계약서를 단말기 위에 내리치자 차은재는 그의 발치로 미끄러진 종이학을 구두 끝으로 눌러 펼친다. 접힌 종이 안쪽의 어린 글씨 ‘18:42’가 거꾸로 찬 시계의 바늘과 나란히 놓이고, 민윤기는 권태록이 계약서를 접어 숨기지 못하도록 손바닥으로 모서리를 짓누른다. 권태록은 자기 이름을 가리키며 공정하다고 말하지만, 종이학을 집으려던 손만은 딸의 이름 위에서 멈춘다.
18

금빛 하루의 가격

금빛 하루의 가격
장소
제8산출실과 생방송 스튜디오를 잇는 사망률 표 유리 복도 입구
시간
생방송 전날 밤 10시 53분
사건
권태록이 자기테이프 원본 릴을 움켜쥐고 유리 복도로 빠져나가자 차은재가 그의 팔을 붙잡고, 민윤기는 연습실 쪽 피아노 덮개를 뜯어 릴 케이스를 쳐 낸다. 릴이 바닥을 굴러 은재의 발에 걸리는 순간 윤기의 그림자 끝에 금빛이 번지고, 그는 은재가 수명 감소를 보고 손을 놓으려 하자 ‘오늘은 할인 폭이 크다’고 웃으며 그녀의 손에 릴을 밀어 넣는다.
영향
은재는 봉인의 원본 증거를 되찾지만 윤기의 수명이 다시 대가로 노출될 수 있음을 눈앞에서 확인한다. 윤기는 자신의 남은 시간을 협상 수단으로 삼아 은재가 관객을 위한 다음 경고를 포기하지 못하게 만들고, 두 사람의 감정은 서로를 살리려 할수록 서로의 선택을 침해하는 위험한 결속으로 깊어진다.
민윤기가 뜯어 낸 검은 피아노 덮개를 휘둘러 권태록의 손목을 막고, 차은재는 유리 복도 바닥을 구르는 자기테이프를 무릎으로 눌러 세운다. 유리벽에는 윤기의 그림자만 하루치 금빛으로 길어지고, 그 안쪽에서 숫자 ‘0’의 사람 형상이 잠깐 윤기의 어깨를 빌려 은재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윤기는 창백해진 입술로 농담을 던진 뒤 릴을 은재의 품에 밀어 넣고 복도 문을 몸으로 막는다.
19

스마트워치의 원죄

스마트워치의 원죄
장소
해솔의 송출 부스, 일곱 입력선과 붉은 송출 버튼이 설치된 중앙 콘솔 앞
시간
생방송 전날 밤 11시 2분
사건
문해솔이 송출 부스 문을 걸어 잠근 뒤 동생의 스마트워치를 차은재에게 던지고, 은재는 원본 릴의 기록 시각과 워치의 심박 로그를 콘솔에 동시에 꽂아 재생한다. 화면에 은재의 첫 경고보다 앞선 해솔의 지연 보정 실험 접속 시각이 뜨자 해솔은 워치를 빼앗지 않고 붉은 송출 버튼의 투명 덮개를 잠가 자신의 생체 신호선만 안쪽에 가둔다.
영향
해솔의 동생이 수명을 잃기 시작한 직접 원인이 은재의 경고가 아니라 해솔 자신의 과거 송출 실험이었음이 확정된다. 해솔은 은재에 대한 원한의 근거를 잃지만 책임을 고백하는 대신 자신을 봉인의 종착점으로 고정하며, 붉은 버튼을 잠근 행동이 새로운 강제 희생을 예고한다.
문해솔이 동생의 스마트워치를 차은재의 가슴 쪽으로 던지고, 은재는 받아 든 기기를 자기테이프 판독선에 거칠게 연결한다. 모니터에는 해솔이 과거 생체 신호를 구형 계리 서버에 시험 접속한 시점부터 동생의 수명 파형이 꺾이는 장면이 붉게 재생되고, 민윤기는 문을 등으로 막은 채 권태록의 접근을 저지한다. 해솔은 떨리는 손으로 붉은 버튼의 투명 덮개를 닫아 열쇠를 돌리고, 미안하다는 말 대신 “이제 원인을 바꿔 적지 마”라고 말한다.
20

죽어야 눌리는 버튼

죽어야 눌리는 버튼
장소
해솔의 송출 부스와 자동 개방된 생방송 무대 진입구
시간
생방송 전날 밤 11시 5분, 권태록이 강제로 앞당긴 방송 카운트다운 시작 시점
사건
차은재가 해솔의 큐시트를 빼앗아 마지막 줄의 ‘문해솔 심박 0—봉인 완료’를 읽고 콘솔 아래 생체 신호 케이블을 뽑으려 한다. 해솔이 은재의 손목을 붙잡고 윤기가 투명 덮개를 깨려는 순간, 제8산출실에 남은 권태록이 원격 폐기 레버를 내려 서버 종료 시각을 앞당기고 일곱 입력선을 강제 점등한다.
영향
큐시트가 해솔의 죽음을 봉인 완료 신호로 삼았음이 공개되지만 이를 수정할 시간은 사라진다. 권태록의 강제 실행으로 서버 폐기와 생방송 봉인이 동시에 시작되고, 은재와 윤기, 해솔은 희생자를 두고 다투던 상태 그대로 켜진 무대로 내몰린다. 이제 한 사람의 심박 정지를 피하면서도 이미 연결된 일곱 숫자를 관객에게 흩어지지 않게 할 새로운 해석이 필요하다.
차은재가 큐시트를 찢어 붉은 버튼 위에 펼치고 콘솔 아래로 몸을 던져 문해솔의 생체 신호선을 잡아당긴다. 해솔은 은재의 손목을 붙들고, 민윤기는 피아노 덮개의 부러진 모서리로 투명 덮개를 내리치는 가운데 일곱 입력선이 차례로 보랏빛을 토하며 케이블을 스스로 조인다. 스피커에서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자 부스 셔터가 열리고, 켜진 무대의 흰빛이 세 사람을 관객 쪽으로 밀어내며 제8산출실 화면 속 권태록의 거꾸로 찬 시계는 폐기 시각을 앞질러 간다.
21

거꾸로 흐르는 23:57

거꾸로 흐르는 23:57
장소
광화문 생방송 광장 중앙 무대 앞, 자홍색 전광판이 빗물 고인 보도블록과 관객의 종이 팔찌에 거꾸로 비치는 곳
시간
생방송 당일 23시 54분, 예고된 송풍 장치 폭발 3분 전
사건
‘0’에게 빙의된 차은재가 자기 입을 틀어막는 손을 마이크 모서리에 내리쳐 떼어 내고, 무대 아래 송풍 장치의 위치와 폭발 시각 23시 57분을 관객에게 명확히 외친다. 민윤기는 그녀의 손목을 붙잡아 쓰러지는 몸을 받치고, 김남준은 즉시 예정에 없던 대피 멘트를 이어받는다.
영향
관객 대피가 시작되어 폭발 피해를 막을 가능성이 생기지만, 윤기의 수명이 다시 스물네 시간 줄어든다. ‘0’이 은재의 몸을 이용해 경고를 막으려 한다는 사실도 공개되어 봉인을 서둘러야 할 이유가 커진다.
차은재가 마이크 모서리에 손등을 찧어 ‘0’의 통제를 깨고 “무대 아래 송풍기, 23시 57분”을 두 번 외친다. 젖은 보도블록에 거꾸로 비친 숫자가 흔들리고 관객 팔찌의 인쇄가 번지는 가운데, 민윤기가 그녀를 끌어안듯 붙잡자 그의 그림자 끝에 금빛이 한 뼘 더 번진다. 은재의 입술은 여전히 백이준의 억양으로 웃지만, 그녀는 마이크 전원을 뽑아 그 목소리를 함께 끊는다.
22

심장이 멎어야 나가는 큐

심장이 멎어야 나가는 큐
장소
무대 천장 가까이에 매달린 해솔의 송출 부스, 적색 경고등 아래 케이블과 심박 단말기가 빽빽하게 얽힌 콘솔 앞
시간
23시 55분, 관객 대피 방송이 시작된 직후
사건
문해솔이 송출 부스의 카메라 출력을 빈 무대로 강제 전환한 뒤 자신의 생체 신호선을 붉은 봉인 버튼에 꽂는다. 김남준은 해솔의 헤드셋을 빼앗아 관객을 출구별로 일으키고, 민윤기는 원격으로 검은 건반 연습실의 휴대전화 일곱 대에 저장한 경고문을 일제히 발송한다. 은재는 해솔의 선을 뽑으려 달려들지만 해솔이 콘솔 덮개를 잠가 막는다.
영향
대피 동선과 경고망은 확보되지만, 봉인은 해솔의 죽음을 완료 신호로 요구하는 상태가 된다. 은재는 사고를 막는 일과 해솔의 강제 희생을 저지하는 일을 동시에 해결해야 한다.
문해솔이 차은재의 손을 콘솔에서 밀쳐 내고 자신의 손목선을 붉은 버튼 아래 단자에 깊이 꽂는다. 김남준은 헤드셋을 낚아채 차분한 목소리로 구역별 이동을 지시하고, 민윤기가 피아노 페달 송신기를 밟자 부스 안 휴대전화들이 동시에 흰 경고문을 토해 낸다. 모니터에는 비어 가는 객석만 잡히지만 해솔의 파형 끝에는 ‘심박 정지 시 송출’이라는 붉은 문장이 붙는다.
23

여덟 번째 팔찌의 주인

여덟 번째 팔찌의 주인
장소
광화문 생방송 광장 중앙 생체 신호대, 일곱 갈래 배수 홈이 모이고 투명 덮개 아래 여덟 번째 팔찌가 놓인 지점
시간
23시 56분, 폭발과 서버 폐기까지 1분 남은 때
사건
은재가 큐시트를 뜯어 중앙 생체 신호대의 투명 덮개 위에 덮고, 인쇄된 회로와 여덟 번째 팔찌의 접점을 겹쳐 ‘한 몸’이 동일 파형으로 등록된 연결망임을 찾아낸다. 남준이 몰래 팔찌를 혼자 차려 하자 은재는 잠금핀을 비틀어 빼앗고, 팔찌를 세 갈래로 절개해 윤기의 피아노 페달선과 해솔의 스마트워치에 연결한다.
영향
봉인의 ‘한 몸’ 조건이 한 명의 육체가 아니라 하나로 인식되는 생체 신호망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남준과 해솔 중 한 사람을 희생시키는 선택 대신, 수명 대가를 여러 사람에게 분할할 실행 방법이 생긴다.
차은재가 김남준의 손목에서 여덟 번째 팔찌를 거칠게 뜯어 내자 잠금핀이 젖은 바닥으로 튄다. 그녀는 큐시트를 투명 덮개 위에 내리쳐 회로선을 맞춘 뒤 팔찌의 은박 접점을 찢어 민윤기의 페달선과 문해솔의 스마트워치에 감고, 세 기기의 파형이 하나의 굵은 선으로 합쳐지는 것을 보여 준다. 남준이 다시 손을 뻗자 은재는 남은 센서를 그의 손바닥에 쥐여 주며 혼자 차지 말고 함께 잡으라고 명령한다.
24

한 사람보다 넓은 몸

한 사람보다 넓은 몸
장소
광화문 생방송 광장 중앙, 일곱 배수 홈이 합쳐지는 생체 신호대 주변과 거의 비워진 객석 사이
시간
23시 56분 58초부터 23시 57분 직전까지
사건
은재와 윤기, 남준, 해솔이 배수 홈 중심에서 손목 센서를 서로 교차해 감고 손을 맞잡는다. 은재가 해솔의 심박 정지 조건을 공동 파형으로 덮어쓰자 서로 다른 맥박이 하나로 등록되고, 해솔에게 몰리던 일곱 숫자가 네 사람과 연결망에 참여한 이들의 피부로 얇게 갈라져 봉인된다.
영향
일곱 숫자는 누구 한 사람을 죽이지 않고 연결망 전체에 분할 봉인된다. 각 참여자는 몇 분씩 수명을 잃지만 해솔의 심박 정지 조건과 남준의 단독 희생 계획은 모두 무효가 되며, 관객에게 숫자가 흩어질 위험도 사라진다.
차은재가 문해솔의 생체 신호선을 붉은 버튼에서 뽑아 네 사람의 맞잡은 손목 둘레에 감고, 민윤기는 피아노 페달선을 발로 당겨 마지막 접점을 물린다. 김남준이 빠져나가려는 해솔의 손을 다시 원 안으로 끌어들이자 일곱 숫자 그림자가 그녀의 몸에서 찢어져 각자의 피부에 가는 푸른 획으로 번지고, 중앙 단말기에는 여러 맥박이 한 줄로 포개진다. 각자의 그림자 끝이 몇 분 분량의 금빛으로 짧게 번쩍인 뒤 붉은 봉인 버튼이 스스로 내려간다.
25

숫자가 아닌 마침표

숫자가 아닌 마침표
장소
23시 57분의 광화문 생방송 광장 빈 객석, 이후 호박색 스탠드만 켜진 검은 건반 연습실
시간
생방송 당일 23시 57분, 그리고 사고 없이 봉인이 끝난 며칠 뒤 자정 이후
사건
23시 57분 송풍 장치가 터지자 은재와 윤기는 몸을 낮춰 서로를 감싸고, 종이학과 소화 가스가 빈 객석에 쏟아지는 것을 견딘다. 며칠 뒤 검은 건반 연습실에서 은재는 윤기에게서 줄어든 날짜가 적힌 영수증을 접어 피아노 안에 넣고, 윤기와 함께 마지막 흰건반을 들어 올려 백이준의 작은 푸른 마침표를 발견한 뒤 지우지 않고 그 위에 손을 포갠다.
영향
폭발은 빈 객석만 덮쳐 아무도 죽지 않고, 봉인은 유지된다. 윤기가 잃은 날들은 복구되지 않지만 은재와 윤기는 이준의 흔적을 소유하거나 지우지 않은 채 남겨 두고, 앞으로 서로의 남은 시간을 대신 결정하지 않기로 행동으로 합의한다.
민윤기가 차은재를 바닥으로 끌어내리는 순간 무대 아래가 터지고, 찢어진 종이학과 흰 소화 가스가 사람이 빠진 객석을 덮는다. 며칠 뒤 두 사람은 검은 건반 연습실에서 되돌아오지 않는 날짜가 적힌 영수증을 피아노 안쪽에 밀어 넣고 마지막 흰건반을 함께 들어 올린다. 숫자도 시각도 아닌 백이준의 작은 푸른 마침표 위로 은재가 손을 얹자 윤기가 그 손을 덮고, 둘은 잉크를 닦는 천을 피아노 뚜껑 밖으로 밀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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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도 살려면 나를 사랑하지 마 by Writer 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