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소민은 솔재학원에 입학한 첫날, 산길에서 굴러온 이불 꾸러미를 좁은 계단에서 놓친다. 짐수레를 밀고 내려오던 박건우가 받으려다 바퀴를 배수로에 빠뜨리고, 둘은 수레를 들어 올리려다 손바닥에 흙을 묻힌 채 한참을 씨름한다. 유치원 때 소민의 신발을 매번 거꾸로 신겨 주던 건우는 이제 신입생 층장이다. 그는 누구에게나 깍듯하게 말하면서 소민에게만 “너, 손 다쳤어?”라고 묻는다. 소민은 도움받는 아이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사고 보고서에 건우가 먼저 적은 자기 책임 문장 아래 자신의 잘못을 덧붙인다. 정미경 사감은 집에 변상금을 청구하지 않는 대신 두 사람에게 한 달간 밤 아홉 시 세탁실 마감을 맡긴다.
첫 당번 날, 건우는 무거운 물통을 먼저 들고 소민에게 걸레를 건넨다. 소민은 물통 손잡이를 빼앗아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고, 둘은 바닥에 쏟은 물을 두 번 닦는다. 정미경은 젖은 걸레를 만져 보고 다시 닦게 한 뒤 점검표를 소민 쪽으로 돌린다. 그날 이후 소민은 아홉 시 전에 세탁실 문을 열어 세제를 계량하고, 건우는 점호를 마치자마자 내려온다. 건조기가 멈출 때까지 둘은 숙제를 나란히 펼쳐 놓지만, 건우가 소민의 막힌 배수망을 먼저 꺼내 주면 소민은 점검표를 손끝으로 두드리며 “네 차례였거든”이라고 한다. 다음 날에는 소민이 건우의 젖은 신발에 신문지를 채운다. 건우는 말없이 남은 신문지를 밀어 주고, 소민은 그 신문지를 그의 운동화 발끝까지 눌러 넣는다.
축제 무도회 준비가 시작되자 최다인은 접수대에서 신청서를 나누며 건우에게 빠진 당번을 대신 맡아 달라고 한다. 건우는 평소처럼 “네, 제가 할게요”라고 답하고, 다인은 그가 또 자기 몫을 미루지 못했다는 듯 펜 뚜껑을 닫는다. 소민은 다인이 건우와 함께 일하는 모습을 보고 초대장을 세 번 접었다 펴지만, 건우에게 건네지 못한 채 숙제 밑에 숨긴다. 생활관에서는 층장이 신입생의 일을 대신한다는 말이 돌고, 건우는 그 말을 듣고도 다음 날 소민의 빨래 바구니를 들어 준다. 소민은 바구니를 잡아당겨 자기 쪽으로 가져가고, 젖은 옷이 바닥에 떨어진다. 둘은 말없이 주워 담지만 그날 세탁실에서는 건조기 소리만 듣는다.
며칠 뒤, 비가 밤새 내려 계단 배수로가 솔잎과 흙으로 막힌다. 아침 점호 전에 물이 생활관 지하 출입문까지 흘러들고, 학생들이 세탁실에 맡긴 축제 의상과 침구가 바닥에 놓여 있다. 정미경은 청소 직원이 오기 전까지 물길을 터야 한다며 점검표를 들고 내려온다. 건우는 층장 열쇠를 꺼내 시설 창고를 열려고 하지만 자물쇠가 걸려 돌아가지 않는다. 소민은 배수로 덮개를 맨손으로 들어 올리려다 손가락을 끼우고, 건우가 덮개를 받치는 동안 정미경은 긴 손잡이를 가져온다. 셋이 힘을 모아 덮개를 젖히자 물이 쏟아져 나가고, 소민은 젖은 의상 꾸러미를 높은 탁자 위로 옮긴다. 그 과정에서 건우는 층장 업무를 핑계로 소민을 뒤로 밀어 놓고, 소민은 그의 손목을 잡아 자기 옆에 세운다. “같이 들자.” 건우는 대답 대신 의상 꾸러미의 반대쪽을 든다.
그날 저녁, 정미경은 비가 더 올 수 있다며 세탁실 마감을 앞당기고, 축제 준비 당번표에 건우의 이름을 추가한다. 건우는 소민에게 말하지 않고 신청 칸에 자기 이름을 적는다. 소민은 그 종이를 발견해 펜을 빼앗고 자기 이름도 나란히 적는다. 건우가 “네가 또 내 일까지 할 필요 없어”라고 하자 소민은 “네가 먼저 적으면 내가 늘 뒤에 붙는 것 같아”라고 말한다. 건우는 종이를 낚아채지 않고, 대신 두 사람의 이름 사이에 그어진 선을 손가락으로 지운다. 다음 날 그는 최다인의 부탁을 거절하고, 다인은 축제 접수대 일을 다른 학생에게 나눈다. 하지만 건우가 자신을 피한다고 여긴 다인은 무도회 초대장을 직접 준비해 마지막 당번 날 세탁실로 찾아가기로 한다.
축제 전날, 소민은 초대장을 주머니에 넣고 세탁실로 내려간다. 건우는 평소처럼 의자 하나를 비워 두지만, 그날은 최다인의 부탁으로 가져온 꽃 포장지가 점검표 옆에 놓여 있다. 건우가 꽃을 다인에게 돌려주려는지, 축제 장식으로 쓰려는지 소민은 묻지 못한다. 정미경은 아홉 시가 되면 문을 잠그겠다고 알리고, 두 사람에게 마지막 바닥 점검을 맡긴다. 소민은 주머니 속 종이를 쥔 채 걸레를 빨고, 건우는 소민의 젖은 운동화에 신문지를 더 채우려다 그녀가 이미 해 둔 것을 본다. 그는 신문지를 접어 탁자에 놓는다. “오늘 끝나도, 내일은 같이 갈 수 있잖아.” 소민은 대답 대신 초대장 모서리를 손가락으로 문지른다.
마지막 당번 날, 최다인은 꽃을 들고 세탁실 문 앞에 선다. 정미경은 열쇠를 쥔 채 문을 닫으려다 멈추고, 다인은 꽃을 등 뒤로 숨기지 않는다. 소민의 주머니에서 젖은 초대장 귀퉁이가 삐져나와 찢어지기 시작한다. 건우가 다인을 향해 몸을 돌리자 소민은 초대장을 꺼내 탁자 위에 펼친다. 물에 번진 글씨를 손바닥으로 누르고 “무도회, 나랑 갈래?”라고 묻는다. 다인은 꽃을 내리지 않은 채 기다리고, 건우는 먼저 소민의 초대장을 집어 들지 않는다. 그는 다인에게 축제 준비를 도와준 건 고맙지만 함께 가고 싶다는 뜻은 아니었다고 말한다. 다인은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꽃을 접수대 장식 바구니에 놓는다. 건우는 소민에게 “가자”라고 답한다.
정미경은 아홉 시가 지난 뒤에도 문을 잠그지 않는다. 대신 점검표에 두 사람의 마감 완료 시간을 적고, 열쇠를 자기 주머니에 넣는다. 소민과 건우는 젖은 초대장을 책 사이에 끼워 말린 뒤 생활관 복도로 올라간다. 다음 날 무도회장 입구에서 건우가 소민의 신발 끈을 내려다보지만, 손을 뻗지 않는다. 소민은 자기 신발을 고쳐 묶고 그의 소매를 잡아 사람들 사이로 끌고 들어간다. 세탁실 당번은 끝났지만, 둘은 더는 그 시간이 있어야만 만날 수 있는 사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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