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업까지 사흘 남은 옥천탕에서 박종구는 마지막 석탄 포대를 반으로 나눈다. 오늘 쓸 몫과 내일 돌려팔 몫이다. 품삯을 받아 방세부터 보내려는데, 오전 여덟 시 사십 분에 신들이 몰려와 번호표를 뽑는다. 신들은 등을 씻고 확인 도장만 받으면 된다고 한다. 종구는 세신료 선불을 요구하고, 오정임은 젖은 돈을 장부 사이에 끼우지 말라며 유리 접시를 내민다. 단수 집행서를 품고 온 천사 배관공 백수선까지 줄 끝에 서자, 종구는 배관부터 보라며 그녀의 공구 가방을 욕실로 옮긴다.
첫 손님 적박은 흉작이 농부들 탓이었다고 중얼거리는 동안에는 때가 나오지 않는다. 종구가 손을 멈추자 적박은 풍년이 계속되면 제 사당에 바칠 것이 줄어들까 봐 우박을 풀었다고 털어놓는다. 젖은 때수건이 등을 지나는 순간 얼음알이 세신대를 두드린다. 종구는 손님들에게 고무대야를 씌우고 석탄삽으로 우박을 퍼낸다. 한 알이 배수구로 굴러가자 아래층 공동 수도에서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난다. 오정임이 뛰어 내려갔다가 금 간 양동이를 들고 돌아온다. 종구는 배수구를 수건으로 막고 번호표마다 세신료 옆에 처리비를 적는다. 적박은 추가 요금에 항의하면서도 다른 손님의 발밑으로 구르는 얼음을 손바닥으로 받아낸다.
우박 속에서는 백수선의 검수 인장이 나온다. 종구가 얼음을 공구 가방 위에 올려놓자 백수선은 오래전 우박 창고의 출구를 봉인했고, 그 뒤 물을 못 받은 동네에도 같은 인장을 찍었다고 인정한다. 그녀가 내놓은 단수 집행서에는 오늘 옥천탕을 잠그라는 명령이 있다. 종구는 문을 가로막고, 관을 막으러 온 사람이면 어디로 새는지도 함께 확인하라고 한다. 그때 수도신 잠금이 죄 회수통을 끌고 들어온다. 회수통을 넘기면 영구히 물을 대겠다는 계약이다. 종구가 뚜껑을 열자 바닥에 붙은 출구에는 비탈 아래 집수정 이름이 새겨져 있다. 잠금은 종구의 손에서 뚜껑을 빼앗고, 종구는 계약서 위에 확인 도장을 엎어 놓는다.
잠금은 신들의 전용 수도부터 잠근다. 당장 씻지 못하게 된 신들이 종구를 에워싸자, 아홉 살 신 첫물은 자기가 모두 맡겠다며 회수통의 때를 몸에 붙인다. 작던 어깨가 문틀을 채우고, 가슴의 빈 의자 이름표가 팽팽해진 끈에 들린다. 그는 이만큼 커졌으니 먼저 씻겨 달라고 요구한다. 종구가 손목을 붙들고 차례를 지키라고 하자 첫물은 다른 신들을 욕실 밖으로 밀친다. 오정임의 틀니 통이 바닥을 미끄러지자 첫물은 얼른 건져 뚜껑까지 맞춰 주지만, 그녀는 통을 받은 손을 그대로 펴서 번호표도 내놓으라고 한다. 종구는 첫물의 손목에 마른 수건을 받치고 표를 다시 채운 뒤, 휘어진 세신대 밑에 벽돌을 괸다.
백수선은 구름 저수조에 물이 남아 있다고 말한다. 적박은 잠금이 내민 신분 보전 서류 앞에서 창고 열쇠를 삼켜 버린다. 종구가 등을 두드려도 입을 다문 그는 저수조까지 데려가면 꺼내 주겠다고 한다. 종구는 오정임에게 배수구와 첫물을 맡기고 두 신을 데리고 비상계단을 오른다. 백수선이 봉인을 뜯을 때마다 날개 깃이 한 장씩 황동 관에 달라붙는다. 그녀는 계단 끝에서 자기 안전줄을 두 번 당긴 뒤 종구의 허리띠를 잡아 철제 발판으로 끌어 올린다. 그 아래로 옥천탕 굴뚝이 성냥개비처럼 보인다.
저수조 옆에는 넘칠 만큼 찬 전용 물통들과 녹슨 공동 급수관이 나란히 놓여 있다. 백수선은 목욕탕 하나로 가는 우회관을 짚지만, 종구는 설계도에서 지워진 가지관을 찾아 손가락을 댄다. 오정임이 들고 올라온 깨진 양동이의 주소와 같다. 그는 우회관 대신 본관을 고치겠다고 한다. 적박은 열쇠를 토해 내 창고를 열고, 셋은 얼음 자루를 끌어내 빈 칸에 회수통을 놓아 본다. 죄를 내보냈던 창고를 회수 장소로 바꿀 수는 있지만, 녹은 물이 지상으로 빠지지 않게 출구를 막고 원래 주인들이 공급과 보관 책임을 함께 져야 한다. 종구는 목욕탕에서 빼 온 연결관을 그 자리에 대고, 백수선에게 설계도에서 지워진 수리공 이름부터 다시 쓰게 한다.
잠금이 발판에 올라와 연결관을 발로 밀어 떨어뜨린다. 종구가 그녀의 앞치마를 붙들고 버티는 사이 적박은 관을 붙잡다가 창고 열쇠를 놓친다. 열쇠는 아래 골목으로 떨어져, 지도에 없는 수도꼭지 옆에 걸린다. 잠금이 남들보다 먼저 난간으로 몸을 내미는 것을 본 종구는 그녀의 소매를 놓지 않은 채 함께 내려간다. 골목 수도 아래에는 지우개 가루가 섞인 물때가 남아 있다. 잠금은 장부에서 이곳을 지운 뒤 밤마다 물을 조금씩 흘렸다고 한다. 오래전 저수조를 비워 마을 전체를 말렸던 그녀는 다시는 그런 일을 만들지 않겠다며 물통을 잠가 왔다. 그러나 수도 앞에서 기다리던 이웃이 빈 양동이를 뒤집자 먼지만 쏟아진다. 종구는 잠금에게 양동이를 들리고, 직접 계량하러 계단을 오르내리게 한다.
오정임은 수술 보증금으로 잡아 둔 돈을 꺼내 운반차 보증금과 연결 부속을 산다. 종구가 돈을 말리자 그녀는 장부를 가슴으로 밀어 붙이며 물부터 배달하라고 한다. 적박이 얼음을 녹이고 종구와 백수선이 본관을 잇는 동안, 잠금은 오정임과 함께 물통을 나른다. 물을 받은 이웃 하나는 손도장을 찍은 뒤 적박의 사당에는 다시 가지 않겠다고 한다. 적박이 확인 도장을 받을 수 있느냐고 묻자 오정임은 젖은 장부를 들어 보인다. 아직 빈칸이 더 많다. 종구는 처음 받은 세신료를 세신대 밑에 눌러 놓는다.
목욕탕으로 돌아온 첫물은 물이 이웃에게 가는 것을 보고 회수통을 끌어안는다. 이 죄를 돌려주면 다시 작아져 하늘 식탁 문턱도 넘지 못한다고 한다. 그가 발뒤꿈치로 대야를 누르자 타일이 갈라지고 세신대 한쪽이 내려앉는다. 종구는 첫물을 끌어내려다 함께 주저앉고, 백수선이 둘을 안전줄로 기둥에 묶는다. 갈라진 바닥 틈으로 검은 물이 배수구를 향해 스민다. 잠금은 본관을 닫아야 한다며 밸브에 매달린다. 종구가 손잡이를 붙들어 막자 그녀는 놓으면 옥상 바닥이 버티지 못한다고 외친다. 그때 굴뚝 그림자가 창턱에 닿는다. 일몰까지 칠 분이다.
오정임의 무릎 사이에 있던 마지막 냉수 통이 기울어진다. 종구는 통을 잡느라 첫물의 손을 놓친다. 첫물은 세신대 위로 기어오르려다가, 자신을 붙들던 종구의 손바닥이 데어 있는 것을 본다. 종구는 냉수를 세신에 쓰지 않고 과열된 연결관에 붓는다. 깨끗해질 마지막 물이 증기로 사라지는 동안 백수선은 남은 깃을 세지도 않고 최종 봉인을 뜯는다. 날개가 주저앉자 종구와 적박이 그녀의 허리를 받쳐 관 안으로 밀어 넣는다. 백수선은 몸을 반쯤 걸친 채 새 부속을 조이고, 자기 이름으로 공급 책임을 새긴다. 이제 창고까지 가는 길은 열렸지만, 바닥에 눌어붙은 죄를 옮길 손이 모자란다.
종구는 첫물에게 깨끗해졌다는 도장은 못 주지만, 오늘 무엇을 맡았는지는 적어 주겠다고 한다. 첫물은 이름표를 떼어 종구에게 건넨다. 그리고 남의 죄를 받으면 어른들이 자기 의자를 놓아 줄 줄 알았다고 말한다. 종구가 젖은 수건으로 그의 등을 밀자 무거운 때가 바닥으로 떨어지고 아이의 발이 작아진다. 잠금은 그 틈에 밸브를 닫으려다, 작아진 첫물이 기울어진 냉수 통을 두 손으로 받치는 것을 본다. 그녀는 손잡이에서 내려와 통을 함께 든다.
모두가 대야를 잇대어 때와 우박을 끌어 올린다. 오정임은 아픈 무릎으로 배수구 덮개를 누르고, 적박은 창고 입구에서 자기 우박 자루부터 받아 안는다. 잠금이 소유 인장을 찍은 손으로 출구 마개를 붙잡고 있는 동안 종구와 백수선이 죔쇠를 조인다. 마지막 회수통이 문턱을 넘자 적박이 안에서 창고 문을 당긴다. 잠금은 밖으로 나오지 않고 그 곁에 선다. 두 신이 보관 책임에 함께 서명하고, 종구와 백수선이 새 배수처를 확인한다. 해가 지는 순간 검은 찌꺼기는 인간의 집이 아니라 원래 주인들이 버티고 선 창고 바닥으로 쏟아진다.
그날 확인 도장을 받은 신은 하나도 없다. 물을 받지 못한 집이 남아 있고, 부서진 양동이와 다친 작물의 값도 정해지지 않았다. 잠금과 적박은 다음 날 아침 창고에서 회수통을 씻어 들고 내려온다. 오정임은 두 신에게 배달 주소를 나눠 주고, 미뤄진 수술 날짜를 다시 잡으러 간다. 백수선은 날개 대신 계단을 써서 부속을 나르고, 종구는 자기 품삯 일부를 공급 보증금으로 남긴다.
사흘 뒤 옥천탕은 예정대로 문을 닫는다. 종구는 마지막 수건을 걷은 뒤 세신대를 팔지 않고 매표소 앞으로 끌어낸다. 외상 장부 옆에는 미처 처리하지 못한 신들의 번호표를 걸어 둔다. 첫물은 그 앞에 작은 의자를 놓고 앉는다. 등받이 이름표에는 종구가 써 준 이름과 맡은 일이 나란히 있다. 첫물, 대야 회수. 아이가 첫 빈 대야를 받아 무릎에 포개자 종구는 닫힌 욕실 문에 붙일 종이를 쓴다. 씻는 곳은 폐업. 뒷정리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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