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0시, 폐점 안내문이 붙은 서브웨이 매장에는 빗물 냄새와 식은 빵 냄새가 섞여 있다. 도윤재는 월세 봉투를 계산대 아래에 넣고, 손님들의 이별 사연을 “마지막 한 입까지 기억하세요”로 고쳐 붙인다. 백시후는 그 문장을 읽는 윤재의 옆얼굴을 몰래 찍다가, 장복순에게 삼각대를 발로 밟힌다. 복순은 빨간 펜으로 주문서의 “돌아와”를 지우며 “사람한테 채소처럼 유통기한 붙이지 마”라고 쏘아붙인다. 그때 서미란의 주문이 들어온다. 터키 베이컨 아보카도, 피클 두 배. 수령 주소는 골목 끝 오피스텔이다. 미란은 곧 젖은 재킷 차림으로 매장 안에 들어와 계산대 위에 은반지를 놓는다. 그리고 윤재에게 말한다. “이거 들고 나가. 오늘은 배달이 아니라 퇴근해.”
윤재는 피클을 집게로 하나씩 올리며 미란이 피클을 질색하던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미란은 주문서의 피클 두 배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답한다. 윤재가 늘 손님 사연을 대충 읽고, 메뉴만 외웠다는 사실을 확인하려고 적은 시험이었다. 윤재는 반지를 집으려 하지만 미란이 손등을 눌러 막는다. 자정 전 매장을 비우면 마지막 영업 기록이 끊기고, 본사 위약금과 월세를 감당할 방법이 없어진다. 미란은 그 돈 때문에 윤재가 아버지처럼 매장 안에서 늙어 가는 모습을 더는 볼 수 없다고 한다.
백시후는 미란의 주문을 마지막 영상으로 올리면 조회 수가 터질 거라며 휴대폰을 든다. 윤재가 그의 앞치마 멱살을 잡아 냉장고 문에 밀어붙이자, 시후의 휴대폰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깨진 화면에는 이미 오피스텔 현관과 미란의 젖은 운동화가 찍혀 있다. 시후는 그 영상으로 광고비를 받아 보증금을 만들려 했다고 털어놓는다. 윤재는 영상을 지우라고 하지만, 시후는 손가락을 움직이지 못한다. 그때 장복순이 매장 문을 잠근다. 밖으로 나가려는 미란 앞을 가로막은 채, 복순은 철수 안내문을 찢어 쓰레기통에 넣는다. 윤재의 아버지도 마지막 날 “한 건만 더”를 외치며 가게에 남았고, 결국 쓰러질 때까지 문을 열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복순은 윤재에게 계약 해지 통지서를 건네지 않는다. 대신 계산대 아래에서 낡은 재봉 가위를 꺼내, 미란의 주문 봉투에 붙은 광고용 사연 카드를 잘라 낸다. “배달은 해. 장사는 하지 마.”
윤재가 샌드위치를 포장하려는 순간, 류단비가 비를 뚫고 매장으로 들어온다. 그녀는 젖은 반송 봉투들을 카운터에 쏟는다. 봉투마다 윤재가 붙인 문구가 적혀 있고, 그 아래에는 빨간 도장이 찍혀 있다. 수령 거부. 환불. 폐기. 가장 밑 봉투에는 류단비 자신의 이름이 있다. 몇 달 전 윤재가 그녀의 문 앞에 두고 간 샌드위치다. 단비는 그날 받지 않았고, 윤재는 규칙을 어기고 문 앞에 두고 갔다. 단비는 미란의 주소가 자신이 일하는 오피스텔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말하지 않았다. 윤재가 또 문 앞에 놓고 도망칠지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윤재는 단비에게 길을 비키라고 하고, 단비는 봉투 더미를 양팔로 끌어안아 출입문 앞에 선다. 미란은 반지를 주머니에 넣고 돌아서려 한다. 그때 시후가 바닥의 휴대폰을 집어 들지만, 화면을 켜는 대신 매장 유리창 쪽으로 던진다. 휴대폰은 빗물 고인 화단에 처박히고, 저장되지 않은 영상은 꺼진 화면과 함께 사라진다. 시후는 자신의 보증금보다 윤재가 남의 마지막 순간을 팔지 않는 쪽에 걸겠다고 말한다. 윤재는 잠깐 멈춘 뒤, 포장지에서 광고 문구를 뜯어 쓰레기통에 넣는다. 그리고 미란의 샌드위치 봉투를 들고 단비에게 다가간다.
단비는 “문 앞에 두고 가면 바로 찍는다”고 말한다. 윤재는 고개를 끄덕인다. “이번엔 네가 받으라는 게 아니야.” 그는 미란에게 봉투를 내민다. 미란은 받지 않는다. 윤재는 샌드위치를 든 손을 내린 채 말한다. 아버지 가게를 지키는 일이 자신을 지키는 일인 줄 알았지만, 사실은 누구든 떠나는 쪽을 먼저 욕할 수 있게 해 주는 핑계였다고. 미란은 그 말이 너무 늦었다며 웃는다. “샌드위치는 식었고, 너는 아직 뜨겁네.”
11시 58분, 복순이 문을 연다. 단비는 반송 봉투들을 발로 밀어 길을 만들고, 시후는 배달 가방을 윤재의 어깨에 걸어 준다. 윤재와 미란은 함께 폭우 속으로 나간다. 윤재는 오피스텔 현관 앞에서 미란에게 샌드위치를 직접 건넨다. 미란은 봉투를 받고, 피클 하나를 꺼내 빗물에 씻긴 화단 흙 위에 떨어뜨린다. “이건 아직도 싫어.” 그러고는 나머지 샌드위치를 반으로 갈라 윤재에게 건넨다.
자정이 되자 매장 안의 형광등이 한 번 깜빡이고 꺼진다. 복순은 어둠 속에서 계약 해지 통지서를 꺼내 세탁소 건조기 위에 올려둔다. 단비는 관리실로 돌아가 반송 도장을 씻어 낸다. 시후는 젖은 삼각대를 쓰레기봉투에 넣었다가, 망설인 끝에 다시 꺼내 접어 둔다. 윤재는 미란과 처마 아래에 서서 눅눅해진 빵을 씹는다. 매장은 잃었지만, 그날 밤 처음으로 그는 배달 완료 버튼 같은 말을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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