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rookie.rebel
눈부신 번쩍임과 함께 사방이 순식간에 소음으로 가득찼다. 귀 한쪽이 울려서, 머릿속에서 무언가 금이 간 듯했다. '꿈인가…' 머리를 짚은 채로 천천히 눈을 떴다. 먼지 낀 차가운 바닥판, 뻣뻣하게 굳은 청색 교복바지. 그 순간 나를 감싸는 퀴퀴한 곰팡이 냄새와, 오래된 종이의 텁텁한 먼지 맛이 입안으로 스며들었다.
엎드린 자세로 한참을 멍하니 있었더니 손바닥이 뭔가를 꼭 쥐고 있었다. 먼지에 얼룩진 학생 수첩, 아직도 사진 한 장이 살짝 삐져나와 있었다. 입술을 깨문 채 사진 끝을 엄지로 눌러보았다. 꿈이면 이런 감촉은 느껴지지 않겠지. 현기증이 가시지 않아 눈을 질끈 감았다가, 억지로 숨을 한번 크게 들이쉬었다.
몸을 일으키려는데 무릎 아래로 싸늘한 기운이 올랐다. 어깨를 집어넣듯 흐느적 일어서며 창고 곳곳을 쓱 훑었다. 균열이 간 시멘트 바닥, 앙상하게 뻗은 철제 책상다리, 코팅이 벗겨진 나무의자 몇 개. 천장 가까운 벽 한쪽엔 바랜 청록색 페인트가 층층이 벗겨져 있었고, 구석짐 위엔 시대를 알 수 없는 타자기와 마른 잉크냄새가 희미하게 감돌았다.
심장이 점점 빨리 뛰는 게 느껴졌다. '여기가… 뭐지.' 창문에서 흐릿하게 들어오는 햇빛은 정확히 어디서 비치는지 알 수 없었다. 창문 밖으론 노란 먼지 속에서 빨래집게로 엉성하게 걸린 교복 셔츠들이 흔들리고, 복도 쪽에선 어딘가 두런두런 대화 소리, 헛기침, 나무 마루가 삐걱이는 소음이 희미하게 들렸다.
"이상하다… 완전 세트장 같네." 속삭이듯 혼잣말을 내뱉으려 했지만, 그 소리에 내가 더 놀랐다. 목소리가 낮고 약간 거칠어졌다. 한손으로 얼굴을 만졌다가, 왠지모르지만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버릇처럼 휴대폰을 찾으려다,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었는데 아무것도 없었다. 다시 수첩과 사진을 빤히 바라봤다. 빛에 바랜 흑백 사진 위에서, 모르는 얼굴들이 내게 말없이 웃고 있었다.
꿈이 아니다. 적어도 이런 감각은, 내 방이나 지금까지의 그 어떤 장소랑도 달랐다. 조용히 숨을 죽인 채 창고 문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낡은 손잡이에 손을 대자, 금속성의 차가움이 또렷하게 전해졌다. 귀를 문에 바짝 붙여보니, 아주 가까운 쪽에서 누군가 욕을 섞어가며 장난치는 소리가 지나갔다. 알아들을 수 없는 속도와 거친 억양. 세상이 한 번에 낮아진 것 같았다.
조금 더 심호흡을 하고, 문을 조심스럽게 밀었다. 삐걱, 진공에서 튀어나오는 듯한 소리. 복도엔 낡은 교과서 뭉치, 합판 붙인 벤치, 여기저기 기름 얼룩진 바닥. 멀리서 체육복 바지 입은 두어 명이 구부정하게 담배를 돌리고 있었고, 낡은 교문 쪽으로는 누가 빵빵대는 자전거 벨 소리가 들려왔다. 복닥거리는 목소리와 숨죽인 속삭임들이 뒤엉켜, 익숙한 현대의 깨끗한 교실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여전히 어지럽지만, 일단 한 걸음 내딛었다. 신발 밑창이 바닥에 끌리는 소리가 유난히 컸다. 가까운 교실문 쪽에서 누가 힐끔, 슬쩍 날 바라봤다. 나랑 눈이 마주치더니, 상대 학생은 약간 뒤로 물러섰다. 눈웃음도, 인사는커녕 그냥 낯선 무언가를 보는 얼굴. 뭔가 잘못 건드리면 금방이라도 시끄러운 사건이 터질 듯한 긴장감이 코끝을 찔렀다.
교실 안 벽에는 오래된 신문 스크랩, 군데군데 찢어진 포스터, 그리고 새빨간 볼펜으로 무엇인가 낙서가 덧대어져 있었다. 교무실 앞 게시판에는 누리끼리한 종이에 굵은 제목: “학교폭력, 사회문제 대두” 같은 말들이 눈에 들어왔다. 옆에는 오래된 TV 모니터에서 흐릿하게 앵커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최근 청소년 일탈…” 뚜렷하게 들리지는 않지만, 왠지 불길한 기운만은 확실했다.
얼떨떨하게, 눈맞춤을 피하면서 복도를 더 걸었다. 몸을 구부정하게 웅크리고 다니는 소외된 남학생 하나가 복도 구석에 주저앉아 있었다. 그 학생도 날 힐끔 보더니, 이내 시선을 피했다. 굳이 말 걸 이유도 없었지만, 발소리가 멈추자 그 애가 먼저 중얼거렸다.
“…처음 보는데, 너 어디 반이야?”
그 말이, 이상하게 비현실적이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목이 바짝 말라서, 잠깐 침을 삼키고 대답했다.
“…나도 잘… 기억 안 나. 그냥, 좀 길을 잃었어.”
그 학생은 내 대답을 곱씹으며 잠깐 날 올려보다가 코끝을 훌쩍였다. “여기 오래 있지 마. 선도부 애들 다닌다.” 다시 고개를 돌렸다. 난 두어 번 숨을 고르려다, 자연스럽게 수첩을 손가락으로 만지작였다. 이상하게 세세한 감각이 또렷하게 밀려들었다. 머릿속에서 소음과 냄새, 낡은 복도의 냉기, 그리고 지금 당장이라도 뒤에서 누가 들이닥칠 것 같은 불안함이 범벅이 되었다.
잠깐, 아직도 눈앞이 맴돌고 어지럽다. 내게 익숙했던 세상과 완전히 동떨어진 공간, 멍한 시선 속에서 지워지듯 잡히는 현실감. 나는 조심스럽게 복도를 따라 천천히, 남이 되지 않으려는 사람처럼 움직였다. 발밑을 노려보며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뎠다. 낡은 실내화가 바닥에 쓱쓱 끌릴 때마다 먼지가 살짝 일었다. 코끝이 간지러운데도 함부로 손을 대기도, 마주치는 시선마다 눈을 들기도 껄끄러웠다. 어디선가, 복도 저쪽 끝에서 날카로운 웃음소리와 “야, 거기 서봐!” 하는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섞여 들린다. 소리가 점점 또렷해지는 게, 나와 조금씩 가까워진다는 신호처럼 느껴졌다.
순간적으로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뒤통수로 전해지는 압박감, 예전과 전혀 다른 종류의 불안. 지금이라도 아무렇지 않은 척 지나쳐 볼까 했지만, 다리에 힘이 잘 안 들어간다. 이곳의 공기는 이상하리만치 묵직하고, 복도의 긴장감이 피부 속까지 스며드는 기분이었다.
‘숨 쉬는 것도 눈치 보이네.’ 속으로 중얼거리며 고개를 살짝 들었다. 반대편 벽에 기대선 두 남학생이 유난히 시선을 오래 끈다. 한 녀석은 갈색 머리를 반쯤 덮은 채로 턱을 괴고 있다가, 내가 스쳐 지나가자마자 헛기침을 내뱉으며 말을 건넨다.
“야, 신입이냐? 쫄았냐, 표정 봐라.”
옆의 친구는 작게 낄낄대며 내 복장과 낡은 학생 수첩을 번갈아 훑어보았다. 알 수 없는 미묘한 웃음, 호기심과 경계심이 뒤섞인 시선. 순간적으로 답을 고르느라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이럴 땐 뭐라고 해야 맞는 거지?’ 머리칼 너머로 식은땀이 천천히 흘러내렸다.
내가 조심스레 시선을 피하며 작게 중얼거렸다.
“…아, 그냥… 전학생이야. 아침부터 좀 불편해서.”
말을 꺼낸 순간, 맞은편에서 다시 교실 문이 쿵 닫히는 소리가 났다. 복도 안으로 조용한 적막이 다시 내려앉았다. 두 남학생은 잠깐 나를 빤히 보다, 이내 별 흥미도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도 한 녀석이 지나가듯 툭 내뱉는다.
“자리 잘못 잡으면 좆된다. 오늘은 선도부 순찰 돌 테니까. 조심해라, 신입.”
나는 가까스로 고개만 끄덕이고, 다시 복도 모퉁이로 등 돌렸다. 손에 남은 수첩과 사진이 은근히 무거워진다. 이 ‘과거’의 공기 속에서, 나만 홀로 겉도는 이질감이 온몸을 조여온다. 마음속으로 천천히, 아주 조심스럽게 숨을 들이쉰다.
그때, 복도의 어둑한 그림자 한쪽에서 우두둑, 누군가 문짝을 세게 열고 나오는 인기척이 들렸다.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약간 어둑한 복도 끝, 철 문이 덜컥거린다. 삐걱— 금방이라도 삭은 경첩이 떨어져나갈 듯한 소리가 복도 전체에 경망스럽게 울린다. 난 무의식적으로 한 걸음 물러서면서, 손에 쥔 수첩을 본능적으로 바지주머니 쪽으로 밀어 넣었다.
문 밖으로 나오는 건 단숨에 눈에 띄는, 키가 크고 몸집이 좋은 남학생이었다. 교복 셔츠는 이미 단추 몇 개가 풀린 채 삐뚤고, 허리춤엔 어디서 났는지 빛바랜 빨간 팔찌가 두어 개 감겨 있다. 그 뒤를 느릿하게 따르는 또 다른 학생 셋, 그중 하나는 금방이라도 담배를 뱉을 것처럼 입꼬리 한쪽을 비틀고 있다. 짧은 순간에 느껴지는 위태로움, 내가 알던 세상의 학생들과는 결이 달랐다.
진행방향이 나와 겹칠 듯 겹치지 않게 지나간다. 그러나 그들 중 맨 앞, 팔찌 낀 남학생이 짧게 멈칫하며 나를 힐끗 아래위로 훑는다.
"거,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데?"
목소리가 낮고, 어딘가 씹어 삼킨 듯한 억양. 나는 시선을 한 번 피했다가 다시 그를 바라본다.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머릿속으론 ‘아는 척하면 안 된다, 괜히 튀지 마’라는 경고음이 계속 울렸다.
"…그냥 길 좀 찾고 있었어."
내가 되도록 침착하게 대답하자, 그는 코웃음을 섞으며 반걸음 더 다가온다. 바로 앞까지 와서, 어깨 너머로 내 뒤쪽 복도를 힐끔 본다. 뭔가 확인하는 듯한 시선. 주위에 갑작스런 정적이 얹힌다.
뒤따르던 녀석들 중 하나가 툭— 내 신발을 발끝으로 건드린다. "야, 신입이면 신입답게 인사라도 할 줄 알아야지?" 익숙한 듯한 농담이지만, 완전히 농담만은 아니란 걸 분위기가 말해준다.
난 숨을 삼키며 작게 고개를 숙였다. 최대한 무난하게, 최대한 엮이지 않는 쪽으로.
그때, 구석 어딘가에서 두 번째 교실 창문이 쾅 열리고, 따스한 오후 햇살 한 줄기가 복도 바닥에 기이하게 얼룩진다. 팔찌 낀 남학생의 표정이 잠깐 헹궈진 듯 미묘하게 흐려진다.
잠깐의 침묵. 공기가 더 무겁게 가라앉는다.
그 순간, 멀리서 가파르게 다가오는 구령대 소리와 함께, 누군가 빠르고 거친 발소리가 복도 저편에서 울린다. 잠시 시선이 모두 그쪽으로 쏠린다. 내 심장소리도 복도 바닥 어딘가로 울려 퍼지는 것만 같다.
모두가 조용히 다음 상황을 지켜본다. 나는 어느새, 손끝에 식은땀이 번져 있는 걸 느낀다.구령대 소리에 놀란 듯 무리지은 학생들의 시선이 일제히 복도 끝으로 옮겨가는 찰나, 가슴팍에 두근거림이 극적으로 치솟는다. 남학생들 틈에 끼인 팔찌 낀 그가 작은 소리로 “뭐야, 또 저 잡것들 출몰이냐?”하며 입술을 비틀었다. 따라온 녀석들도 동시에 지루하다는 듯 혀를 차지만, 어느 누구도 완전히 긴장을 풀지 않는 표정이다. 이상하게 날카로운, 아직 터지지 않은 사건의 조짐 같은 것이 공기를 타고 맴돌았다.
창문 밖 푸석한 햇살 속엔 먼지 자욱한 교정이 어른거리고, 구령대 앞엔 선도부로 보이는 학생 몇 명이 군림하듯 늘어서 있다. 그들 중 하나가 고함을 내지르자, 복도에 모여 있던 애들 몇이 다시 흩어진다. 내 앞의 무리도, 잠시 주춤거리다 서로를 슬쩍 건드려 보며 발끝만 이리저리 굴린다.
나는 조심스럽게 다시 숨을 삼켰다. 적막 속에서 팔찌 낀 남학생의 눈길이 내 어깨 근처에서 순간 멈춘다. 그의 동공이 번뜩인다. 마치 아무 대꾸도 하지 못한 내 표정이나, 어딘가 어색하게 감춰둔 손동작에서 뭔가 이상한 낌새를 읽은 것처럼. 말은 꺼내지 않았지만, 한 손을 바지주머니에 찔러 넣은 내 자세가 조금 불편하다는 듯이 느껴진다.
뒷줄에 섰던 학생이, 괜히 반쯤 장난스럽게 콧방귀를 뀌며 "선도부한테 찍히면 귀찮으니까 우리도 슬슬 튀자" 하고 퉁명스럽게 말한다. 그러자 팔찌 낀 남학생은 나지막이 "재수 없으면 불려가니까 알아서 해, 신입"이라고 툭 내뱉는다. 그의 말투는 거칠지만, 그 안에 가늠할 수 없는 거리감과 동정이 섞여 있었다.
그들은 아무 일 없다는 듯 휙 고개를 돌려, 복도 구석의 비어 있는 교실 쪽으로 흩어진다. 나는 얼어붙은 시선으로 그 뒷모습을 잠깐 바라보다, 이내 복도의 텁텁한 공기 속을 천천히 내려쉴 뿐이다.
발치에서 먼지가 다시 가볍게 떠오른다. 복도 저편에선 여전히 쩌렁쩌렁한 외침과, 낡은 나무 문이 쿵쿵 울리는 소리. 공간이 조금 전과는 확실히 달라졌다. 방금까지 실체 없는 꿈결 같던 긴장이 아주 조심스럽게, 그러나 분명하게 현실로 스며드는 느낌이었다.
손바닥 안쪽이 저릿하다. 수첩을 쥔 채로, 카메라가 없는 공허함을 문득 실감한다. 오늘이, 그리고 이 순간이, 결코 다시 돌아갈 수 없을 것만 같은 미세한 두려움이 심연처럼 깔려온다.
나는 입술을 깨물며, 일단 복도를 따라 조심스럽게— 정체를 들키지 않게, 하지만 그저 남의 세상 한가운데서도 지워지지 않기 위해— 한 걸음 내딛는다. 그리고 등 뒤 복도 끝 어딘가에서, 새로운 인기척이 다시 조용히 다가오고 있음을 느낀다.
더 이상 멈출 수도, 숨을 돌릴 수도 없는 이런 낯설고 묘한 틈, 그 속에 내가 한가운데 서 있다는 사실이 비로소 또렷하게 실감났다.
현재 공개된 마지막 화입니다.
작가가 집필 중 · 알림 받기로 새 화를 놓치지 마세요세기말 소년 표류기
세기말 소년 표류기의 스토리챗
서지호와 대화하고 싶다면?이 스토리의 캐릭터와 대화하세요 — 그들의 목소리로 나누는 AI 대화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