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태욱의 관이 비에 젖은 무덤 가장자리로 내려갈 때, 복만수는 상여꾼들 틈에서 죽은 상인의 낮고 마른 말끝을 흉내 낸다. “내 오른손을 묻지 마라.” 조문객들이 숨을 삼키는 사이, 윤설란은 피 묻은 은수저를 꺼내 관뚜껑의 못을 긁고 삽으로 흙을 걷어 낸다. 가와무라 도시오는 철문을 잠근 뒤 열쇠를 세 번 돌려 확인하고, 관을 여는 자는 모두 시신 훼손죄로 묶겠다고 선언한다. 그러나 관 속에는 윤태욱의 시신도, 잘린 손도 없다. 검은 비단 속에서 갓난아기가 울고, 만수는 반사적으로 아이를 포대째 끌어안는다.
가와무라는 아이의 울음 간격을 회중시계로 재며, 아이를 영사관에 넘기면 복순덕의 빚문서를 화로에 태워 주겠다고 말한다. 그는 만수의 젖은 소매를 문 아이에게 손을 뻗고, 만수는 그 손을 피해 관 아래로 기어든다. 설란은 삽자루로 가와무라의 팔을 막고 만수에게 은수저를 쥐여 준다. 수저 손잡이의 움푹 팬 흠집은 가와무라가 죽은 아내의 찬장에서 보았던 것과 같다. 가와무라는 잠시 손등으로 눈가를 닦지만, 곧 설란의 목덜미를 붙들어 관 쪽으로 밀친다. 그는 윤태욱이 항구 거래 장부와 아이의 출생을 한데 묶어 숨겼으며, 그 흔적을 가진 사람은 모두 사라져야 한다고 낮게 말한다.
만수는 묘지의 비탈을 달아나려다 철문 앞에서 막힌다. 담장을 넘으면 도망자로 기록되고, 아기를 안은 채 넘다가 떨어지면 아이도 다친다. 그는 포대 매듭을 세 번 만지다가, 관 앞에서 자신이 한 말을 떠올린다. “오른손을 묻지 마라”는 윤태욱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만수가 장례 전 창고에서 본 윤태욱의 장갑과, 설란이 관을 열도록 만들고 싶었던 자기 공포가 섞여 나온 말이었다. 그는 그 거짓을 설란에게 말하지 못한 채, 아기를 품고 장례식장 창고 쪽으로 달린다. 가와무라는 형사 둘에게 설란을 붙잡게 하고 만수를 뒤쫓는다.
장례식장 뒤편의 젖은 한지창 아래에서 복순덕은 화로 앞에 웅크려 있다. 그녀의 무릎 위에는 윤태욱의 오른손 장갑과 빚문서가 놓여 있다. 가와무라가 미리 던져 둔 문서는 비에 젖어도 붉은 손도장 자리는 선명하다. 순덕은 장갑 안쪽에서 딱딱한 인장을 찾아내고도 불 속에 넣지 못한다. 만수가 아기를 안고 창고로 뛰어들자, 순덕은 아이의 얼굴보다 아들 팔에 난 긁힌 상처를 먼저 본다. 뒤이어 들어온 설란은 장갑을 빼앗으려 하고, 가와무라는 순덕의 손목을 붙들어 화로 위로 끌고 간다. 손도장을 찍든지, 아이와 인장을 내놓든지 하라는 것이다.
그때 만수는 관 앞에서 뱉은 거짓을 모두 말한다. 윤태욱이 말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지어낸 말이었다고, 설란이 그 말 때문에 아버지의 관을 팠다고 말한다. 설란은 잠시 만수의 뺨을 때리려다 손을 내린다. 대신 은수저의 핏자국을 화로 불빛에 비춘다. 피는 윤태욱의 것이 아니라, 출산 뒤 피를 흘리던 복순덕이 창고 바닥에서 아이를 받아 낼 때 묻은 것이다. 윤태욱은 순덕에게 아이를 낳게 한 뒤, 항구 거래의 약점이 될 사생아를 관에 숨겼다. 그리고 자신의 오른손 장갑 속 인장으로 아이의 출생을 지워 줄 거래를 준비했다. 순덕은 윤태욱이 아이를 살려 준 것이 아니라, 필요할 때 꺼내 쓸 물건처럼 숨겼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가와무라는 인장을 낚아채려 들고, 순덕은 그의 장갑 낀 손등을 화로 가장자리에 눌러 버틴다. 만수는 아이를 설란에게 넘긴 뒤 가와무라의 외투 안쪽에서 빚문서를 잡아당긴다. 가와무라는 만수의 멱살을 쥐고 종이를 되찾으려 하지만, 설란이 삽자루로 그의 무릎 뒤를 쳐 넘어뜨린다. 넘어지는 순간 가와무라의 열쇠 꾸러미가 젖은 마룻바닥으로 굴러간다. 만수는 빚문서만 화로에 던지지 않는다. 문서를 쥔 가와무라의 손을 붙잡아 불 가까이 끌고 가고, 순덕은 자기 손도장을 찍을 손가락을 칼날 같은 은수저 끝으로 찢는다. 피가 묻은 손가락으로 그녀는 빚문서 위에 자기 이름 대신 윤태욱의 장갑 속 인장을 힘껏 찍는다. 종이는 불길에 말려 올라가고, 가와무라는 그것을 빼내려다 손바닥을 데인다.
설란은 인장을 들고 묘지 쪽으로 되돌아간다. 만수와 순덕도 아기를 안고 뒤따른다. 철문 앞에서 가와무라는 데인 손을 감싼 채 그들을 막아서지만, 설란은 열린 관 앞에 서서 조문객과 형사들 앞에 인장을 관뚜껑에 찍는다. 윤태욱의 밀수 장부가 숨겨진 비단 꾸러미와 같은 문양이 검은 옻칠 위에 번진다. 그녀는 아버지가 아이를 숨기고, 자신에게도 장부를 맡겼다고 말한다. 자기 역시 아버지의 일을 알고 침묵했으니 연행되겠다고 먼저 손목을 내민다. 가와무라는 설란을 끌고 갈 수는 있지만, 관을 비우고 아이를 빼돌리려 한 자신의 손도 함께 드러난다는 것을 안다. 그는 철문 열쇠를 쥔 손을 떨며 뒤로 물러난다.
만수는 가와무라가 물러난 틈에 열쇠 꾸러미를 집어 든다. 세 번 돌려야 열리는 자물쇠 앞에서 그는 아기 포대의 매듭을 한 번만 만진다. 순덕은 아들의 곁에 서서 손을 내밀지만, 만수는 열쇠를 그녀에게 주지 않는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열쇠가 헛돌고, 세 번째에야 철문이 비명을 내며 열린다. 설란은 문 안쪽에 남아 형사들에게 두 손을 내준다. 그녀는 은수저를 만수의 주머니에 다시 넣고, 아이에게는 이름을 붙이지 말라고 말한다. 이름이 장부에 오르는 순간 또 누군가의 소유가 될 테니, 먼저 살아서 자기 목소리를 내게 하라는 뜻이다.
새벽 전 골목으로 나온 만수는 아기를 순덕의 품에 잠깐 올려 둔다. 순덕은 아이를 내려놓지 않고, 만수는 처음으로 어머니의 젖은 손을 잡는다. 뒤에서 묘지 철문이 다시 잠기는 소리가 세 번 울린다. 만수는 더 이상 죽은 사람의 말투를 팔지 않겠다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아기가 울자 자기 소매를 내밀지 않고, 비에 젖은 골목 끝을 향해 어머니와 함께 걷는다. 주머니 속 은수저는 차갑고, 그들의 뒤에서는 설란이 남긴 관 하나와 태우지 못한 죄들이 날이 밝을 때까지 젖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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