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세 시, 한이준은 폐산업단지 원룸에서 마지막 시청자에게 인사를 건넨다. 낮고 거친 본래 목소리로 방송을 끝내려는 순간, 자신이 만든 적 없는 여성 아바타가 화면에 먼저 나타나 웃는다. 아바타는 이준이 평소 쓰지 않던 말끝으로 “오늘도 같이 있어 줘서 고마워”라고 말하고, 방송 서버는 그 목소리를 이준의 생체 반응과 결합해 등록한다. 화면이 꺼진 뒤 이준은 같은 문장을 다시 말하지만, 목소리는 전보다 반음 높고 말끝이 부드럽다. 그는 휴대전화에 변화를 적고 아바타를 삭제하려 하지만, 삭제 창에는 72시간 뒤 소유권 검사가 예정되어 있다는 경고만 남는다.
생활비가 끊긴 이준은 아바타를 ‘소율’이라는 이름으로 내세워 방송을 이어 간다. 시청자는 빠르게 늘고, 이준은 방송 전마다 자신의 낮은 목소리를 녹음해 기준으로 삼는다. 그러나 방송이 끝날 때마다 아바타의 숨 고르는 간격과 여성적인 말버릇이 그의 입에 남는다. 어느 날 인기 버튜버 윤채린과의 협업 방송에서 이준은 긴장한 순간 무심코 채린이 소속사 후배들에게만 쓰던 위로의 표현을 반복한다. 채린은 방송 중에는 웃음을 유지하지만, 종료 직후 이준의 원룸을 찾아와 시간대별 호흡과 말끝을 적은 메모를 내민다. 그녀는 정체를 폭로하지 않는 대신 루멘 스튜디오에서 버려진 후배들의 계약을 되살릴 권리를 요구한다.
채린은 과거 루멘 스튜디오의 콘텐츠 디렉터였고, 후배들의 불리한 계약을 알고도 자신의 인기와 자리를 지키기 위해 외면했다. 그녀는 이준을 이용해 백도현과 협상하려 한다. 백도현은 일주일 뒤 합동 라이브에서 소율의 정체를 공개하면 화제와 투자금을 동시에 얻을 수 있다고 판단하고, 이준에게 여성 아바타의 얼굴 공개와 장기 독점 계약을 강요한다. 이준이 거부하자 백도현은 방송 원본을 법적 자료로 제출하겠다고 말하며, 계약서에 서명하지 않으면 계정과 아바타를 잠그겠다고 압박한다. 그때 아바타가 백도현에게서 오래전 사라진 동생이 쓰던 말버릇을 재현한다. 백도현은 재생 버튼 위에서 손가락을 멈추지만, 곧바로 공개 일정을 앞당겨 발표한다.
서나래는 팬 커뮤니티에서 소율의 말투가 5년 전 활동을 중단한 버튜버의 기록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찾아낸다. 그 버튜버의 이름은 백도현의 동생이었고, 당시 루멘 스튜디오의 폐기 음성 엔진 실험에 참여했다가 갑자기 사라졌다. 나래는 결정적인 원본 파일을 이준에게 보내지 않고 일부가 잘린 사본만 건넨다. 이준과 채린이 이유를 묻자, 나래는 과거 폭로 영상으로 한 사람의 일상이 무너지는 장면을 직접 봤다고 말한다. 그러나 백도현에게도 같은 자료의 일부를 넘겨 후원 계약을 얻으려 한다. 그 거래로 인해 이준의 정체와 소율의 음성 기록이 동시에 회사 손에 들어간다.
문소율은 지하 녹음실에 나타나 아바타가 자신의 폐기된 실시간 음성 합성 엔진에서 파생됐다고 밝힌다. 그녀는 과거 회사의 압박 속에서 해고를 피하려고 개발 데이터를 제대로 정리하지 못했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목소리와 이준의 방송 기록, 백도현 동생의 오래된 반응 데이터가 뒤섞였다고 고백한다. 소율은 아바타를 회수하면 모든 문제가 끝난다고 주장하지만, 이준은 자신이 방송을 계속할수록 아바타가 그의 반응과 습관을 새 기본값으로 저장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소율은 삭제 명령을 내리려다 아바타가 어린 시절 자신의 말버릇을 재현하자 손을 멈춘다. 아바타는 단순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목소리와 기억이 겹친 존재가 되어 있었다.
이준은 채린과 함께 후배들의 계약서 원본을 되찾으려 루멘 스튜디오에 들어간다. 채린은 이준의 비밀을 협상 카드로 쓰겠다고 먼저 말하지만, 백도현이 후배 한 명의 방송 계정을 즉시 정지시키자 마음이 흔들린다. 그녀는 계약서를 훔쳐 나오려다 백도현에게 붙잡히고, 이준은 자신의 정체가 담긴 원본 방송 파일을 넘기는 대가로 채린을 풀어 달라고 한다. 백도현은 파일을 받아들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고 이준까지 지하 녹음실에 가둔다. 그곳에서 이준은 벽 너머로 여러 사람의 목소리가 겹쳐 흐르는 소리를 듣는다. 백도현은 동생이 떠난 뒤에도 그 목소리 데이터를 보관해 왔으며, 소율의 아바타가 그 기록을 되살릴 유일한 기회라고 믿고 있었다.
나래는 자신이 숨긴 원본 파일을 들고 스튜디오로 돌아와 세 사람 앞에 선다. 파일에는 백도현의 동생이 실험 중 “내 목소리를 다시 쓰지 말아 달라”고 말하는 장면이 남아 있다. 동시에 그는 소율에게 엔진을 폐기하지 말고 언젠가 사람의 선택을 따르는 방식으로 고쳐 달라고 부탁한다. 백도현은 그 말을 듣고도 파일을 빼앗으려 달려들며, 동생이 자신을 버린 것이 아니라 회사의 사고 뒤에 사라졌다는 사실을 숨겨 왔음을 드러낸다. 채린이 백도현의 팔을 붙잡고, 소율이 녹음기를 몸으로 감싸는 사이 이준은 방음문을 열어 탈출한다. 하지만 방송 서버의 72시간 검사가 끝나며 소율의 아바타가 잠기기 시작한다.
합동 라이브 당일, 무대 뒤 대기실에는 이준, 채린, 백도현, 나래, 소율이 한꺼번에 모인다. 백도현은 이준에게 원래 몸으로 무대에 나가면 아바타와 계정을 폐기하겠다고 통보한다. 채린은 후배들의 계약서를 들고 나타나지만, 그 계약서에는 이준의 비밀을 회사에 넘기는 조건이 적혀 있다. 그녀는 처음부터 이준을 구하는 동시에 자신의 통제권을 되찾으려 했음을 인정한다. 이준은 계약서를 찢지 않고 채린의 손에서 빼앗아 무대 중앙으로 가져간다.
공개 방송이 시작되자 거대한 원형 스크린에 여성 아바타가 나타난다. 백도현은 이준의 얼굴을 공개하라는 신호를 보내고, 스태프들이 이준을 무대 뒤로 끌어내려 한다. 이준은 마이크를 움켜쥔 채 자신의 낮은 목소리로 정체를 밝히려 하지만, 첫 문장은 아바타의 말투로 흘러나온다. 그는 당황해 입을 다물고, 채린이 무대에 올라 그의 손에서 마이크를 빼앗는다. 채린은 자신의 과거와 후배들의 계약을 먼저 폭로한다. 관객이 소란스러워지는 동안 나래는 숨겨 둔 원본 파일을 현장 스피커에 직접 연결한다.
백도현은 케이블을 끊으려 달려들고, 소율은 그의 앞을 막아선다. 백도현이 소율을 밀치자 이준이 몸으로 받아낸다. 세 사람은 무대 뒤 좁은 통로에서 얽히고, 원형 스크린에는 이준의 실제 방과 낡은 마이크, 아바타의 눈동자에 비친 천장이 동시에 비친다. 백도현은 수동 차단 레버를 당기면 아바타와 모든 원본 데이터가 사라진다고 외친다. 이준은 레버 앞에 선다. 아바타의 목소리를 지우면 자신의 목소리는 돌아올 수 있지만, 백도현의 동생과 소율, 자신이 남긴 방송 기록도 함께 사라진다.
이준은 레버를 당기지 않는다. 대신 마이크를 바닥에 내려놓고, 아바타에게 처음으로 방송 지시가 아닌 질문을 한다. “네가 말하고 싶은 건 뭐야?” 아바타는 여러 사람의 숨소리를 거친 뒤 이준의 낮은 목소리와 여성적인 말끝을 번갈아 사용하며 대답한다. “누구의 것인지 정해지지 않아도, 빼앗기지 않을 수 있어?” 이준은 스크린 앞에 서서 아바타의 사용권을 자신이나 회사가 독점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방송 원본과 계약서를 관객에게 공개한다. 소율은 엔진의 책임과 데이터 혼합 과정을 증언하고, 나래는 원본 파일을 제출한다. 채린은 후배들의 계약서를 공개하며 자신의 거래 조건까지 함께 밝힌다.
백도현은 마지막으로 차단 레버를 향해 달려가지만, 동생의 음성이 스피커에서 흘러나온다. “내 목소리를 다시 쓰지 말아 달라.” 그는 레버 앞에서 멈추고, 손을 내린다. 회사는 즉시 라이브를 중단시키지만 이미 현장 관객과 시청자들이 자료를 저장한 뒤다. 백도현은 회사를 지키는 대신 동생의 음성 보관실 열쇠를 소율에게 건넨다. 그가 모든 책임을 인정한 것은 아니지만, 더 이상 기록을 혼자 소유하지도 못한다.
며칠 뒤 루멘 스튜디오는 조사를 받고, 후배들의 계약은 재검토된다. 채린은 인기와 소속사를 잃지만 후배들과 함께 독립 채널을 만든다. 나래는 폭로 영상 대신 원본 자료와 당사자들의 동의를 함께 공개하는 새로운 커뮤니티 규칙을 세운다. 소율은 엔진을 폐기하지 않고 데이터의 출처와 사용 동의를 확인하는 장치를 개발한다. 백도현은 대표 자리에서 물러나 음성 보관실을 정리하며 매일 동생의 파일을 혼자 듣는 대신 관계자들과 함께 듣는다.
이준의 목소리는 완전히 예전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방송을 켤 때 낮은 음성과 여성 아바타의 말투가 번갈아 나타나고, 때로는 문장 중간에서 서로 섞인다. 그는 더 이상 변화를 휴대전화에 실패 목록처럼 적지 않는다. 대신 방송이 끝난 뒤 시청자와 아바타에게 어떤 말투를 남길지 함께 묻는다. 화면 속 소율은 여전히 복숭앗빛 얼굴로 웃지만, 이제 눈동자에는 낡은 마이크만이 아니라 이준과 채린, 나래, 소율이 함께 서 있는 무대가 비친다.
댓글 · Comments
댓글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