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맞이 첫 반죽을 해야 할 날이 스무 날 넘도록 지나자, 첫불마을의 해빵은 화덕에서 꺼내 배급창에 놓는 사이 얼어붙는다. 열여섯 살 견습 제빵사 보늬는 마지막 빵 하나를 앞에 놓고 남은 아이들의 손을 거듭 센다. 누구에게도 빈손을 돌려주고 싶지 않아 망설이는 동안, 가장 작은 아이가 난간 아래 주저앉는다. 보늬는 아이를 화덕 옆으로 옮기고 빵을 깨뜨려 나누지만, 단단한 빛살은 아이의 입에서 녹지 않는다. 그날 저녁 보늬는 신에게 바칠 첫 빵까지 배급에 보태고 빈 제단에 밀가루로 해를 그린다. 다음 새벽 그 앞에 놓인 장작 한 토막을 발견한 보늬는 그것을 화덕지기에게 건넨다. 자신이 돌아올 때까지 아이들의 손을 데워 달라고 부탁한 뒤, 얼어붙은 해빵과 쇠집게를 챙겨 밀 창고 뒤 산길로 들어선다. 봄을 돌려받겠다는 약속을 지키려면, 모두를 세고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버릇부터 버려야 한다.
산길에서 외눈박이 늑대 잿귀가 보늬를 눈 속에 넘어뜨리고 빵 든 손을 가로막는다. 보늬는 집게를 내려놓고 해빵을 앞으로 민다. 신이 받을 몫도 먹어야 했다고 말하자, 잿귀는 빵을 깨물었다가 돌처럼 굳은 조각을 뱉는다. 잿귀를 따라 오른 정상에는 괴물에게 붙잡힌 신 대신, 눈에 턱을 묻은 늙은 하늘사슴 해받침이 누워 있다. 보늬는 잘린 뿔의 겹겹이 난 톱자국을 보고도 처음에는 새 뿔이 자라도록 도와주겠다고 말한다. 해받침은 고개를 들려다 앞다리를 접고, “이번에는 내 몸을 남겨 다오”라고 답한다. 왕들이 가져간 뿔을 왕관으로 굳힐 때마다 그는 새 뿔을 길러 태양을 떠받쳤으며, 이제 그 힘은 남아 있지 않다. 보늬가 턱 아래 눈을 치우려 손을 뻗자 잿귀가 몸으로 막는다. 해받침이 만져도 된다고 허락한 뒤에야 보늬는 그의 얼굴을 들어 마른 풀 위에 받친다.
해받침은 왕관으로 굳힌 뿔을 하나도 빠짐없이 녹여 돌려달라고 한다. 이어 왕실의 절단용 톱도 가져오라고 요구한다. 보늬가 왕관부터 구해 오겠다고 하자 그는 잘린 뿔을 눈 쪽으로 돌린다. 다시 일어선 뒤 또 베이는 일을 견딜 수는 없다. 그러면서도 해받침은 보늬의 소매를 코끝으로 밀어 올려 갈라진 손에 따뜻한 숨을 불어넣는다. 그 짧은 숨 때문에 정상에 걸린 빛이 더 낮아진다. 잿귀는 보늬를 등에 태우되, 일이 끝나면 인간들이 산에 오르지 못하도록 길을 지키겠다는 약속을 받아낸다. 보늬는 내려가는 길에 회관으로 들러 벽화 속 사슴이 왕에게 뿔을 건네는 모습을 올려다본다. 벽화 아래에는 봄맞이 행렬에 쓰던 빈 수레가 있다. 보늬는 그 수레를 끌고 왕궁으로 향한다.
금서루는 침실 문 앞에서 잿귀의 길을 막는다. 보늬가 탁자에 얼어붙은 해빵을 놓자 여왕은 빵을 손바닥으로 덥히려다 실패하고, 선대의 왕관 창고를 연다. 잿귀는 왕관마다 발톱으로 두드려 속을 확인한다. 마지막 왕관을 달라는 말에 금서루는 보석함과 은그릇, 궁의 남은 장작을 차례로 내놓는다. 보늬가 집게를 거두지 않자 여왕은 그를 도담의 침상으로 데려가 잠든 아들의 손을 보늬의 손바닥에 얹는다. 여덟 살 도담의 머리에는 가지뿔 모양 왕관이 씌워져 있고, 위로 향한 작은 손에는 구리 동전 세 닢이 얼음에 붙어 있다. 보늬가 빵을 머리맡에 놓고 값을 받겠다고 말하자 도담의 손톱 끝이 희미하게 떨린다. 금서루는 그 동전으로 혼자 빵을 사는 연습을 했다고 설명하면서도, 왕관이 머리에서 떨어지는 순간 마지막 숨이 끝난다는 말을 피하지 않는다. 봄이 돌아와도 그 아이는 일어나지 못한다. 보늬는 집게를 침상 아래 내려놓는다.
보늬는 선대의 왕관만으로 뿔을 얼마나 이을 수 있는지 확인하겠다며 왕실 작업장으로 내려간다. 금서루는 장인들에게 도울 것을 명하고 직접 따라간다. 틀에 부은 왕관은 한쪽 뿔의 가지 끝을 채우기 전에 바닥을 드러낸다. 은그릇을 넣으려는 여왕의 손을 장인이 붙잡는다. 다른 금속은 뿔이 되지 못한다. 작업장 벽에는 오래된 절단용 톱이 걸려 있다. 보늬가 그것을 내리려 하자 금서루는 손잡이를 움켜쥔다. 여왕은 아직 왕실의 물건이라고 말하지만, 잿귀가 톱날 아래 제 잃은 눈을 들이밀자 손을 놓는다. 보늬는 톱을 빈 행렬 수레에 싣고 마을로 끌고 간다. 왕관을 쓰고 산에 오르던 행렬 대신, 뿔을 자르던 도구가 회관 앞을 지난다. 사람들은 벽화와 수레를 번갈아 본다. 한 사람이 톱날에 천을 덮으려 하자 보늬가 천을 걷어 자기 어깨에 두른다. 추워서 빌리겠다고 말한 뒤, 톱은 그대로 두고 화덕으로 들어간다.
궁에서 내려온 장작 덕분에 아이들은 잠시 손을 펴지만, 화덕집 뒤 우물에서는 두레박이 다시 얼음에 붙는다. 보늬는 해빵을 기다리는 줄을 세고, 다음 새벽 몫으로 남겨 둔 숯자루를 꺼낸다. 왕관을 녹일 용광로를 옮기려면 그 숯이 필요하다. 화덕지기가 자루 위에 손을 얹자 보늬는 함께 배급창으로 간다. 두 사람은 남은 빵을 모두 나누고 화덕의 불씨를 흙으로 덮는다. 내일 구울 빵을 포기한 보늬는 숯과 톱을 왕궁으로 가져간다. 잿귀는 작업장의 작은 용광로 끌채를 물고, 보늬는 계단마다 바퀴 아래 널빤지를 받친다. 침실로 오르는 마지막 계단에서 바퀴가 걸리자 금서루가 내려와 어깨로 용광로 옆면을 민다. 도담의 방을 덥히는 데만 쓰라고 말하면서도 여왕은 보늬와 함께 뜨거운 쇠바퀴를 들어 문턱을 넘긴다.
용광로가 침상 앞에 놓이자 보늬는 절단용 톱을 먼저 불에 넣는다. 장인이 내민 별도의 도가니에서 톱날이 무너지고, 여왕은 대대로 이어진 의식의 도구가 사라지는 것을 지켜본다. 이어 보늬는 선대의 왕관으로 만든 뿔 조각들을 다시 녹인다. 마지막 왕관을 넣을 도가니만 비어 있다. 창밖 돌다리에는 장작을 받으러 온 아이들이 모여 있고, 궁의 빈 수레를 끌던 한 아이가 손잡이를 놓쳐 다른 아이와 함께 얼음 위로 넘어진다. 보늬는 금서루에게 창가로 와서 아이들을 함께 세어 달라고 청한다. 여왕은 두 아이가 일어서는 것까지 본 뒤 돌아와 아들의 왕관과 집게 사이에 맨손을 넣는다. 보늬는 여왕의 손을 밀어내지 못한다. 잿귀도 왕관을 낚아채지 않는다. 늑대는 떨어진 집게의 손잡이를 보늬 쪽으로 돌려놓고, 잦아드는 불 앞에서 기다린다.
보늬는 도담의 손을 덮은 천을 바로잡다가 동전 하나가 손바닥 가장자리까지 밀려 나온 것을 본다. 그는 동전을 받아 앞치마 주머니에 넣고, 침상에 둔 빵을 도담의 것으로 팔았다고 말한다. 그 작은 움직임을 왕관을 벗겨도 좋다는 대답으로 삼지는 않는다. 보늬는 금서루에게 도담을 살릴 다른 길을 찾지 못했다고 말하고, 아이를 혼자 두지 말아 달라고 부탁한다. 금서루는 손을 왕관에서 떼는 대신 도담의 뺨 아래로 옮긴다. 보늬는 데인 손바닥에 천을 감고 집게를 들어 왕관의 가지를 잡는다. 마지막으로 여왕을 바라본 뒤, 왕관을 들어 올린다. 금서루는 숨이 멎은 아들을 품에 끌어안는다. 보늬는 왕관을 불에 넣고, 꺼내 달라고 외치는 여왕의 목소리를 들으며 집게를 놓지 않는다. 금빛 가지가 도가니 안으로 가라앉을 때까지 잿귀는 침상과 보늬 사이에 서 있되 누구에게도 이를 드러내지 않는다.
장인들이 완성한 두 뿔을 식혀 수레에 고정하자 보늬와 잿귀는 곧바로 산으로 오른다. 보늬는 궁의 계단을 내려오기 전 금서루에게 돌아와 도담의 빵값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끝까지 하겠다고 약속한다. 정상에서 해받침은 잿귀의 도움을 받아 목을 들고, 보늬가 가져온 뿔을 살핀다. 보늬는 톱을 녹인 빈 도가니도 보여준다. 해받침이 허락하자 두 사람은 뿔을 남은 밑동에 맞춘다. 이어진 가지 사이로 낮게 걸렸던 태양이 움직인다. 해받침은 한 번에 일어서지 못한다. 잿귀가 어깨에 쌓인 눈을 털고 보늬가 앞발 아래 돌을 빼낸 뒤에야 그는 다리를 편다. 첫불마을 지붕의 나무뿔 사이로 두 갈래 그림자가 문턱까지 내려온다. 산 아래에서 얼음 깨지는 소리가 올라와도 해받침은 한동안 아무 말 없이 네 발로 서 있는다.
보늬는 산길 입구에 밧줄을 매고 봄맞이 행렬 수레를 가로세운다. 사람들이 감사의 빵을 들고 올라오려 하자 그는 빵을 받아 산으로 가져가지 않고 마을의 배급 줄에 보탠다. 잿귀는 밧줄 너머에서 지켜보다 몸을 돌린다. 궁에서는 금서루가 도담의 머리맡에 그리던 정원 지도를 접고, 왕관 없는 아이를 안아 해가 드는 방으로 옮긴다. 보늬가 돌아와 남은 동전 두 닢을 여왕에게 건네자 금서루는 받지 않는다. 보늬는 세 닢을 모두 화덕집 작은 접시에 놓아 둔다. 다시 구운 첫 해빵은 배급창에 이르는 동안 얼지 않는다. 보늬는 마지막 빵 하나가 남자 기다리는 아이들을 센 뒤 곧바로 가른다. 그날 오후 금서루는 왕관 없이 배급 줄 끝에 선다. 보늬가 건넨 빵에서 따뜻한 김이 오르지만, 여왕은 곧 먹지 않고 두 손으로 오래 감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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