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11시 37분, 도윤재는 서브웨이 대학로점 오븐 앞에서 세 번째 빵 트레이를 꺼내다가 손목을 멈춘다. 빵 가장자리가 지난번처럼 짙어지기 전에 꺼냈지만, 오븐 유리에는 그의 젖은 앞머리와 뒤에서 다가오는 계문식의 안경이 같이 비친다. 계문식은 말없이 빵 색을 보고, 접힌 영수증 모서리를 엄지로 한 번 더 꺾는다. 도윤재는 그 손끝을 보고 추천서 문장을 떠올린다. ‘성실함’이라는 단어 하나를 얻기 위해 그는 오늘 주문 스티커 57장을 한 장도 틀리지 않아야 한다.
반해솔은 카운터 끝에서 장갑을 새로 끼며 휴대폰 짐벌 끈을 손목 안쪽으로 숨긴다. 그녀는 매장 공식 계정에 올릴 영상을 위해 이미 오븐 타이머 소리, 빵 칼이 도마에 닿는 소리, 토마토가 한 줄로 놓이는 장면을 짧게 찍어 두었다. 마지막 장면은 정해져 있다. 도윤재가 늘 규칙대로만 움직이던 손을 잠깐 멈추고, 자신에게 마지막 아보카도 한 스쿱을 넘기는 순간. 그 장면이면 계문식 앞에서 시급 이야기를 꺼낼 수 있다고 반해솔은 믿는다. 하지만 주문 스티커는 마지막 샌드위치에 아보카도 추가를 분명히 적고 있다.
11시 40분, 서라온이 민트색 바람막이를 팔꿈치까지 걷어 올리고 매장 문을 밀고 들어온다. 그녀의 투명 클립보드에는 색깔별 주문지가 빽빽하게 꽂혀 있고, 뒤로는 방송동아리 후배 둘이 빈 박스를 들고 따라붙는다. 서라온은 카운터 앞에서 손뼉을 두 번 치며 “우리 오늘 축제보다 이쪽이 더 라이브다”라고 외친다. 줄 선 학생들이 웃고, 굳어 있던 도윤재의 어깨가 아주 조금 내려간다. 그러나 서라온은 웃는 얼굴 그대로 영수증 하단의 출력 시간을 엄지로 누르고 있다. 리허설 시작까지 남은 시간은 18분이다.
첫 번째 위기는 소스통에서 터진다. 반해솔이 허니머스터드를 집어 들고 “여기서 한 번만 빠르게 지나가면—” 하고 말하는 순간 뚜껑이 팝 소리를 내며 튀어 오른다. 노란 소스가 반해솔의 앞치마와 도윤재의 장갑 끝에 흩어진다. 계문식은 즉시 “장갑 교체”라고 말하고, 반해솔은 휴대폰을 내려놓으며 혀끝으로 웃음을 삼킨다. 촬영 흐름은 끊긴다. 도윤재는 자기 장갑을 먼저 벗는 대신 카운터 아래 휴지를 밀어 반해솔 쪽으로 보낸다. 반해솔은 그 휴지를 발끝으로 받아 올리고, 아무 말 없이 새 장갑 한 짝을 도윤재 손목 옆에 놓는다. 둘의 손이 스치지만 둘 다 보지 않은 척한다.
단체 주문은 속도를 붙인다. 도윤재가 빵을 가르고, 반해솔이 야채를 놓고, 계문식이 뒤에서 스티커 순서를 다시 세운다. 서라온은 장난스럽게 주문을 큰 소리로 읽어 주며 윤재가 놓칠 뻔한 ‘피클 제외’를 살린다. “도윤재 씨, 피클 빠진 사랑도 사랑입니다.” 줄에서 웃음이 터지고, 윤재는 귀 끝이 붉어진 채 “다음 주문이요”라고 더 크게 외친다. 해솔은 그 옆에서 올리브 집게를 잡다가 윤재의 장갑 낀 손끝과 같은 통 안에서 멈춘다. 토마토 한 줄이 비뚤어진다. 계문식은 그걸 보고도 냉장고 문을 괜히 오래 잡고 서서 본사 점검표를 보는 척한다.
11시 48분, 본사 위생 점검원이 유리문 밖에 모습을 보인다. 계문식의 얼굴에서 피곤한 웃음기가 사라진다. 그는 반해솔의 휴대폰을 보고 “촬영 멈추고 동선 비워”라고 낮게 말한다. 반해솔은 입술을 다물고 짐벌 끈을 앞치마 안으로 밀어 넣는다. 그 순간 서라온이 후배들에게 빈 박스를 들고 문가가 아니라 벽 쪽으로 붙으라고 지시해 통로를 비운다. 장난으로 분위기를 풀던 그녀가 처음으로 농담을 멈추자, 매장 안의 시계 소리 없는 시간이 더 빠르게 흐른다.
노찬휘는 11시 52분에 도착한다. 그는 헬멧을 완전히 벗지도 않고 유리문 안쪽에 반쯤 걸쳐 선다. 검은 장갑을 낀 손으로 보온 가방을 벌리자 은박 안쪽이 형광등을 받아 차갑게 번쩍인다. 그의 휴대폰에서 식은 알림음이 한 번 울린다. 노찬휘는 끄지 않는다. 끝까지 울리게 둔다. 줄 선 학생들의 웃음이 살짝 낮아지고, 도윤재는 빵 칼을 쥔 손에 힘을 더 준다. “조금만요.” 반해솔이 말하자 노찬휘는 대답 대신 가방 바닥을 손바닥으로 편다. 다 편 뒤에도 그는 한 박자 더 서 있다. 심드렁한 얼굴이지만, 운동화 앞코가 보도블록 먼지를 계속 문지른다.
남은 샌드위치는 일곱 개다. 그때 주문 스티커 출력기 옆에서 작은 혼선이 난다. 서라온의 주문지 한 장이 소스 얼룩에 젖어 글자가 번지고, 도윤재가 붙여 둔 스티커 두 장의 모서리가 서로 달라붙는다. 도윤재는 손톱으로 떼려다가 장갑 끝이 찢어질 뻔하고, 계문식은 즉시 “손 빼”라고 막는다. 위생 점검원이 문 앞에서 그 장면을 본다. 도윤재는 추천서가 멀어지는 소리를 듣는 것처럼 숨을 멈춘다. 반해솔이 대신 나서려 하지만 휴대폰을 만졌던 손목 때문에 계문식이 눈으로 제지한다. 그때 서라온이 클립보드를 카운터 위로 밀어 넣고, 자신의 원본 주문지를 펼친다. “내가 복잡하게 시킨 죄가 있으니까, 내가 읽을게.” 그녀는 농담 대신 또박또박 주문을 읽는다. 후배들의 리허설 시간이 줄어드는 대가로, 그녀는 도윤재가 틀리지 않게 목소리를 내준다.
마지막 세 개가 남았을 때 반해솔은 한 번 더 틈을 만든다. 그녀는 휴대폰을 직접 들지 않고, 냉장 쇼케이스 유리에 비친 장면이 보이도록 짐벌을 계산대 옆 컵 홀더에 기대 세운다. 계문식은 그걸 보고 입술 안쪽을 깨문다. 규칙대로라면 바로 치워야 한다. 하지만 그는 위생 점검원에게 냉장고 온도표를 보여 주겠다며 몸을 돌려 시야를 막는다. 접힌 영수증 모서리가 그의 손바닥 안에서 하나 더 생긴다. 반해솔은 그 틈에 영상의 마지막 장면을 살릴 준비를 한다. 도윤재는 그걸 알아차린다. 그가 주문 스티커를 확인하는 손이 아주 잠깐 느려진다.
마지막 샌드위치가 카운터 위에 놓인다. 빵은 따뜻하고, 치즈 가장자리는 살짝 녹아 있다. 주문 스티커에는 아보카도 추가가 선명하다. 하지만 아보카도 통에는 정확히 한 스쿱만 남아 있고, 반해솔이 준비한 신메뉴 시식용 단면은 그 스쿱이 있어야 색이 산다. 노찬휘의 보온 가방은 문 앞에서 벌어진 채 기다리고, 서라온은 영수증 시간을 보다가 입술을 깨문다. 계문식은 추천서와 시급 협의권을 쥔 사람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위생 점검원은 장갑과 동선을 보고 있다.
도윤재는 스쿱을 든다. 반해솔의 눈이 잠깐 흔들린다. 그녀는 “주문서대로 해”라고 말한다. 목소리는 가볍게 꾸몄지만, 손가락이 앞치마의 허니머스터드 얼룩을 문지르고 있다. 도윤재는 그 말을 듣고 처음으로 웃지 않는다. 그는 아보카도를 주문 샌드위치 위에 정확히 올린다. 반해솔의 영상 하이라이트는 사라지는 듯 보인다. 대신 도윤재는 빵을 덮기 전, 칼등으로 아보카도를 반듯하게 펴고 토마토와 양상추가 단면에 보이도록 샌드위치를 3초간 들어 반해솔 쪽 냉장고 유리에 비치게 한다. 주문은 바꾸지 않았고, 위생 동선도 어기지 않았다. 반해솔은 그 반사된 장면을 보고 숨을 삼킨다. 그녀가 원한 양보는 아니지만, 그녀의 얼굴을 살리는 다른 방식이다.
그 순간 노찬휘의 휴대폰에서 두 번째 알림음이 울린다. 빨간 지연 표시가 뜨기 직전이다. 서라온의 후배 하나가 박스를 들고 성급히 앞으로 나오다 보도블록에서 들여온 물기에 미끄러진다. 포장된 샌드위치 네 개가 카운터 끝에서 밀려 떨어질 뻔한다. 노찬휘가 가장 먼저 움직인다. 그는 보온 가방을 바닥에 던지듯 내려놓고, 헬멧을 팔꿈치로 밀어내며 몸을 뻗어 박스를 받친다. 심드렁한 얼굴 그대로 “이거 터지면 나도 끝이고 너희도 끝이잖아요”라고 말한다. 그의 장갑에 포장지 모서리가 구겨지고, 앱 시간은 몇 초 더 흐른다. 도윤재는 마지막 샌드위치를 포장해 그의 가방 안쪽으로 직접 밀어 넣는다. 반해솔은 옆에서 포장지 접힌 부분을 눌러 터지지 않게 잡는다. 세 사람의 손이 같은 보온 가방 위에서 겹친다.
위생 점검원은 카운터 안을 훑어보고, 계문식의 체크리스트에 서명한다. 큰 칭찬도, 극적인 박수도 없다. 다만 “동선은 좁은데 장갑 교체는 빠르네요”라는 짧은 말만 남긴다. 계문식은 안도한 티를 내지 않으려고 영수증을 또 접으려다가, 이미 너무 작아진 종이를 보고 멈춘다. 그는 도윤재에게 “빵 색 괜찮았다”라고 말하고, 반해솔에게는 “영상 올리기 전에 위생 안내 문구 넣어. 그리고 오늘 끝나고 시급 얘기하자”라고 덧붙인다. 두 사람은 동시에 대답하려다 서로를 보고 말을 삼킨다.
노찬휘는 보온 가방 지퍼를 닫고 나가려다 멈춘다. 그는 문턱에 선 채로 서라온에게 박스 하나를 더 안쪽으로 밀어 주고, “뛰면 흔들려요. 빨리 걷는 게 낫습니다”라고 심드렁하게 말한다. 서라온은 “기사님, 오늘 우리 동아리 명예 스태프 하실래요?”라고 받아치지만, 목소리에는 진짜 고마움이 묻어 있다. 노찬휘는 대답 없이 헬멧을 쓰고 나간다. 유리문 밖에서 그의 오토바이가 출발하고, 배달 앱 알림음은 이번에는 매장 안까지 들리지 않는다.
정오 직전, 단체 주문이 빠져나간 매장에는 양상추 조각 하나와 허니머스터드 얼룩, 그리고 이상하게 조용한 형광등 소리만 남는다. 서라온은 후배들을 끌고 캠퍼스 쪽으로 달려가며 유리창 너머로 손을 흔든다. 계문식은 위생 점검 안내문을 다시 붙이고, 추천서 양식이 든 파일을 계산대 아래에서 꺼내 도윤재 쪽으로 슬쩍 밀어 둔다. “면접 전날이면 오늘 마감은 빼도 된다.” 도윤재는 파일보다 먼저 반해솔의 앞치마 얼룩을 본다. 반해솔은 컵 홀더에 기대 둔 휴대폰을 확인하고, 반사된 샌드위치 단면과 윤재의 굳은 옆얼굴이 같이 찍힌 장면에서 멈춘다.
“하이라이트는 망한 줄 알았는데.” 반해솔이 말한다.
도윤재는 장갑을 벗고 손목에 남은 자국을 문지른다. “주문서대로 했어.”
“알아. 그래서 더 웃겨.”
반해솔은 휴대폰을 내려놓고 새 장갑 한 짝을 그에게 건넨다. 이제 러시는 끝났지만, 둘 다 바로 받거나 놓지 않는다. 카운터는 여전히 좁고, 오븐은 식어 가고, 밖에서는 축제 리허설 음악이 늦게 박자를 맞춘다. 도윤재는 장갑을 받아 끼우며 “마감 전에 네 영상 문구 같이 보자”라고 말한다. 반해솔은 대답 대신 앞치마의 허니머스터드 얼룩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이건 지우지 마. 조회수 나올 얼굴이야”라고 한다. 도윤재가 결국 웃고, 계문식은 뒤돌아서 냉장고 문을 닫는 척한다. 닫히는 문틈에 초록색 유니폼 두 벌이 나란히 비친다. 고백은 없지만, 오늘의 마지막 스쿱은 정확히 제자리에 놓였고, 그 정확함 때문에 두 사람 사이에는 다음 장면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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