끈적이는 여름밤, 에어컨마저 꺼져 버린 낡은 아파트는 숨 막히는 열기로 가득했다. 얇은 잠옷만 걸친 채 침대에 누워 뒤척이던 윤서아는 짜 frustration에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젠장, 이게 뭐야.” 그 순간, 정적을 깨고 천둥번개가 요란하게 울리더니 온 집안의 불빛이 꺼져 버렸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서아는 본능적인 불안감에 휩싸였다.
“서아 씨, 괜찮아요?” 낮고 차분한 목소리, 바로 옆집에 사는 청운이었다. 서아는 안도감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곧이어 청운이 건넨 촛불 하나에 의지해 겨우 주변을 살필 수 있었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완전 정전인가 봐요.” 당황한 기색은 청운도 마찬가지였다. “혹시 몰라서 양초 몇 개 더 가져왔어요.” 청운은 땀으로 살짝 젖은 머리를 쓸어 올리며 말했다. 희미한 촛불 아래 드러난 청운의 탄탄한 팔뚝과 땀으로 젖은 목덜미는 평소 느끼지 못했던 야성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서아는 알 수 없는 묘한 긴장감에 휩싸였다.
"고마워요, 청운 씨." 서아는 애써 평정심을 유지하며 청운의 눈을 마주했다. 어색한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청운은 불현듯 서아의 손목에 걸린 붉은 팔찌를 발견했다. "어? 이 팔찌..." 놀란 듯 중얼거리는 청운의 눈빛은 어린 시절, 뜨겁고도 아련했던 여름밤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혹시... 이거..." 사실 청운은 서아가 자신의 첫사랑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있었다. 어릴 적, 부모님을 잃고 세상에 홀로 남겨진 자신에게 유일한 위로가 되어주었던 아이, 서아. 하지만 갑작스러운 이별 후 오랜 시간이 흘러 다시 만난 서아는 청운에게 있어 아련한 추억이자, 동시에 닿을 수 없는 존재였다. 그래서 청운은 친구라는 이름 뒤에 자신의 감정을 숨긴 채 묵묵히 서아의 옆집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응... 나 기억나." 서아의 입술 사이로 나지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정전된 아파트, 촛불 하나에 의지한 채 서로의 숨결만큼 가까워진 두 사람. 오랜 시간 친구라는 이름으로 억눌렀던 감정이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 순간, 서아는 청운에게 털어놓지 못했던 또 다른 비밀을 떠올렸다. 사실 서아는 오랜 시간 동안 청운을 짝사랑해왔던 것이다. 하지만 어릴 적 상처로 인해 쉽게 마음을 열 수 없었던 서아는 자신의 감정을 애써 감추고 친구로만 남아있기로 결심했었다.
"그때... 네가 준 거야." 서아는 수줍게 팔찌를 내보였다. 청운은 조심스럽게 그 팔찌를 만지며 과거를 회상했다. 뜨거웠던 여름, 어린 청운은 자신을 위로해주던 어린 서아에게 손수 만든 엉성한 팔찌를 선물했었다. 그리고 그날 밤, 처음으로 서아에게 입을 맞추었고, 서아는 부끄러워하며 도망치듯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었다. 그 후로 서아를 다시 만나기까지 청운은 꽤 오랜 시간을 홀로 보내야 했다.
서아는 용기를 내어 청운에게 다가갔다. "나... 아직도 그때 기억나." 숨 막힐 듯 가까워진 두 사람, 청운은 서아의 눈을 깊게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더 이상 어린 소년의 것이 아니었다. 오랜 시간 억눌러왔던 욕망이 뒤섞인 눈빛. 망설이던 청운은 거부할 수 없는 이끌림에 서아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포갰다. 서아는 청운의 목에 팔을 두르며 그의 키스에 응답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오랜 시간 동안 억눌러왔던 감정을 불태우듯 뜨겁게 입을 맞추었다.
정전된 아파트, 어둠 속에서 서로의 온기를 나누는 두 사람. 그들은 그날 밤, 육체적인 관계를 넘어 서로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한 욕망을 확인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타오른 불꽃은 쉽게 꺼지기 마련인 법. 다음 날 아침, 묘한 분위기 속에서 두 사람은 어젯밤의 일을 애써 언급하지 않았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평소와 같은 일상을 보내려 애썼지만, 서로를 향한 눈빛은 더 이상 전과 같지 않았다. 과연 그들은 이 끓어오르는 욕망을 억누르고 평범한 이웃으로 남을 수 있을까? 아니면 이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또 다른 관계를 시작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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