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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ytalk オリジナル · 場面 25 · チャプター 5

남의 얼굴로 먹고사는 사람

cute Komon Snake 48premiumクリエイターページ

1978년 여름, 서울 변두리의 이동식 놀이공원에서 사람 흉내를 내는 데 천부적인 재주가 있는 삼류 마술 조수는 폐장 직전마다 관람객 한 명이 거울 미로에서 사라지는 일을 덮기 위해 단장 대신 무대에 오른다. 오늘 밤 마지막 공연의 소품은 금 간 토끼 상자, 피 묻은 비둘기 케이지, 그리고 8월 14일 날짜가 적힌 회수되지 않은 입장권 묶음인데, 조수는 그 입장권을 가진 아이들이 모두 같은 회전목마 말 7번 앞에서 사라졌다는 걸 발바닥에 밴 톱밥 냄새 속에서 확인한다.

단장은 조수에게 흰 분장을 더 두껍게 바르고 관객을 웃기라고 밀어붙이지만, 거울 미로 안쪽에서는 조수와 똑같은 얼굴을 한 누군가가 아이의 풍선을 잡고 출구 쪽으로 걸어 나오고 있다. 첫 북소리가 울린 지금, 조수는 만원짜리 박수갈채를 택해 무대 위로 뛰어들지, 발전기 칼날 스위치를 내려 공원 전체를 암전시키고 관객들 사이로 뛰어들지 당장 몸으로 선택해야 한다.

  • 人物 5
  • 場所 5
  • 場面 25
  • あらすじ 5,244字
남의 얼굴로 먹고사는 사람 cover image

人物 · Characters

登場人物たち

변기태

男性

단장 대신 흰 분장을 뒤집어쓰고 마지막 밤 무대에 오르는 삼류 마술 조수

プロフィール

변기태는 오늘 밤 막차 품삯과 공원 밖으로 빠져나갈 기회를 버리더라도, 거울 미로에서 자기 얼굴로 걸어 나온 놈이 누구인지 먼저 붙잡으려 한다. 그 와중에 매표소의 오인숙이 숨겨 둔 8월 14일 입장권 묶음을 훔쳐보다가, 표를 쥔 아이들이 꼭 회전목마 말 7번 앞에서 사라졌다는 규칙을 손에 넣는다. 국봉철은 변기태를 무대 위에 세워 마지막 박수를 팔아치우려 하지만, 변기태가 암전을 택하는 순간 국봉철이 쥐고 있던 밤의 질서도 함께 끊어진다.

변기태는 누가 앞에 서느냐에 따라 어깨 각도와 웃음소리까지 바꿔 낸다; 취객 앞에서는 허리를 더 굽히고, 우는 아이 앞에서는 입꼬리를 한쪽만 올린다. 그런데 거울 속에서 자기 얼굴이 먼저 눈을 깜박이는 걸 본 뒤부터는 분장 스펀지를 쥔 손이 자꾸 멈추고, 남의 말투를 흉내 내다가도 문장 끝을 제 목소리로 잘라 먹는다. 겁이 없는 척은 잘하지만, 회전목마 말 7번 앞을 지날 때만은 발끝으로 톱밥을 밀어 선을 긋고 그 선을 밟지 않으려 비스듬히 돈다.

背景

변기태는 떠돌이 약장수 판에서 손님을 끌던 어른들 틈에서 자라, 맞기 전에 먼저 웃기는 법과 들키기 전에 먼저 남의 표정을 베끼는 법을 몸으로 익혔다. 서울 변두리까지 흘러온 뒤 국봉철의 공원에 눌러붙은 것도 대단한 꿈 때문이 아니라, 하루 끝에 현금으로 쥐여 주는 품삯과 다음 동네로 넘어갈 트럭 짐칸 한 자리가 늘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폐장 직전마다 관람객 하나가 비는 밤들을 몇 번이나 보고도 모른 척 지나친 끝에, 이번에는 자기 얼굴까지 밖으로 걸어 나오는 바람에 더는 흉내만 내고 빠져나갈 수 없게 됐다.

描写

변기태는 흰 분장을 급히 문질러 올린 얼굴 아래로 제 살빛이 군데군데 비쳐 보이는 스물일곱의 남자다. 땀에 눅눅해진 검은 머리는 옆으로 대충 넘겼고, 값싼 새틴 조끼와 해진 흰 셔츠 소매에는 비둘기 깃과 분가루, 톱밥이 들러붙어 있어 막 무대 뒤를 뛰쳐나온 사람처럼 보인다. 그는 당장 누구 목소리로든 웃을 수 있을 것 같은 입꼬리를 걸치고도 몸은 회전목마 쪽으로 비스듬히 틀어 서 있는데, 닳은 구두 끝으로 바닥의 톱밥을 밀어 얇은 선을 긋는 버릇이 그를 오래 붙잡아 둔다.

국봉철

男性

폐장 통보를 받은 이동식 놀이공원을 마지막 한 바퀴라도 더 돌리려 발전기 기름값까지 외상으로 막는 흥행 책임자

プロフィール

국봉철은 오늘 밤만 무사히 끝나면 공원을 접든 옮기든 숨 돌릴 틈이 생긴다고 믿고, 거울 미로에서 사라졌다는 관객 이야기를 술김의 소문으로 눌러 버티려 한다. 그 버팀값으로 그는 변기태에게 자기 목소리의 높낮이와 절뚝한 반 박자 걸음까지 외우게 한 뒤, 흰 분장을 덧발라 자기 대신 무대에 밀어 올린다. 단장실에 남겨 둔 국해란의 빈 거울 앞에 설 때마다 손이 멎는 남자라서, 변기태가 암전을 택하면 국봉철은 공연만이 아니라 자기 얼굴을 대신 살아 준 마지막 방패도 잃는다.

돈을 셀 때는 침을 묻힌 엄지로 지폐 모서리를 튕기다가도, 단장실 문만 닫히면 금 간 거울의 얼룩을 소매 끝으로 문지르며 한참 서 있다. 관객 앞에서는 허리를 깊게 접어 웃음을 구걸하지만, 뒤로 돌아서면 단원들의 발소리만 듣고도 누구인지 맞히며 말끝 하나, 걸음 하나까지 고쳐 세운다. 다급해질수록 목소리는 낮아지는데, 바로 그때 국봉철은 가장 잔인한 부탁을 가장 공손한 말투로 시킨다.

背景

한때 국봉철은 지방 장터를 돌며 직접 무대에 올라 객석을 붙잡던 사회자였고, 사람 하나의 표정만 바꿔도 매상이 달라진다는 걸 몸으로 배웠다. 딸 국해란이 공원을 떠난 뒤 그는 단장실 거울을 치우지 못한 채, 비어 버린 자리를 메우듯 변기태의 흉내 재주를 공연의 중심으로 키웠다. 몇 해째 폐장 직전마다 손님 하나가 사라졌다는 말이 따라붙었지만, 국봉철은 신고나 수색보다 다음 정차지 계약서를 먼저 접어 주머니에 넣는 쪽을 택해 여기까지 끌고 왔다.

描写

국봉철은 땀에 눅진해진 검은 포마드 머리를 옆으로 빗어 넘기고, 광택 죽은 적갈색 벨벳 재킷 위에 금실이 해진 단장 견장을 얹은 채 매표소와 무대를 한눈에 재려는 사람처럼 턱을 약간 치켜든다. 깊게 접히는 허리와 달리 어깨는 끝까지 굳어 있어, 관객 앞에서는 웃음을 빌면서도 뒤로 물러서는 순간 입꼬리가 먼저 식고, 소매 끝으로 닦아도 자국이 남는 거울 얼룩 같은 초조가 눈가에 눌어붙는다. 오른손 엄지 끝에 늘 밴 지폐 침 자국과, 딸이 떠난 뒤에도 빼지 못한 낡은 은색 회중시계 줄이 조끼 주머니에서 반쯤 늘어진 모습이 이 남자를 오래 기억하게 만든다.

오인숙

女性

회수되지 않은 입장권과 잃어버린 아이 신고 쪽지를 몰래 따로 접어 두는 매표소 직원

プロフィール

오인숙은 남편의 병원비를 내려면 하루치 표를 한 장도 빼먹지 않고 찢어야 하지만, 8월 14일 도장이 찍힌 표만은 태우지 않고 숨겨 모아 사라진 아이들의 순서를 맞추려 든다. 그 때문에 국봉철 앞에서는 장부 숫자를 흐린 여자가 되고, 변기태에게는 회전목마 말 7번 앞 판자벽에 아이들 키를 연필금으로 긋던 밤을 증언해 줄 유일한 사람이 된다. 오늘 밤 오인숙이 묶음을 내밀면 변기태는 무대로 올라가 관객을 속이는 대신 관객 사이를 뒤지게 되고, 오인숙은 그 순간 매표소 자리와 남편 약값을 함께 잃을 수 있다.

오인숙은 표를 찢을 때마다 반쪽을 손톱으로 한 번 더 눌러 날짜 숫자가 살아 있는지 확인한 뒤, 살아 있으면 소매 안쪽으로 미끄러뜨린다. 손님 앞에서는 잔돈을 또박또박 세다가도 아이가 혼자 들어오면 허리를 숙여 신발끈과 손목표부터 본다 — 눈은 웃지 않고 입만 먼저 올라간다. 누가 “기억이 틀린 거 아니냐”고 밀어붙이면 말로 맞서지 않고, 매표소 뒤 합판벽으로 데려가 연필금 높이에 자기 손바닥을 대 보인다.

背景

봄부터 남편이 병원 철제 침대에 눕자 오인숙은 낮에는 표를 받고 밤에는 회수표를 태우는 일까지 받아 쥐었다. 처음에는 숫자가 맞지 않는 날만 이상하게 여겼지만, 8월 14일 표를 가진 아이들이 하나같이 회전목마 쪽으로 뛰어가는 모습을 본 뒤부터는 태워야 할 반쪽을 몰래 접어 브래지어 안감에 숨겼다. 비가 새는 숙소 벽에 기대 서서 아이들 키를 연필로 새겨 둔 밤, 오인숙은 누가 사라졌는지보다 누가 아무 일도 없던 얼굴로 다음 표를 받으러 왔는지를 더 오래 기억하게 되었다.

描写

오인숙은 비에 눅은 매표소 창구에 어깨를 반쯤 숨긴 채 서서, 값싼 남색 폴리에스터 블라우스 위에 때가 밴 회색 앞치마를 걸치고도 옷매무새만은 흐트러뜨리지 않는다. 잔돈을 세는 손은 빠르고 단정하지만, 표를 찢은 뒤 오른손 엄지손톱으로 날짜 부분을 한 번 더 눌러 보는 버릇 때문에 손끝에만 유난히 긴장이 몰려 있고, 아이가 다가오면 입꼬리만 먼저 올라간 채 시선은 신발끈과 손목표를 훑는다. 젖은 합판벽 앞에 서면 그녀는 등을 곧게 세운 채 한 손을 연필금 옆에 대어 키를 재듯 멈추는데, 블라우스 소매 안쪽에 반쯤 숨어 있는 검은 연필 자국이 이 여자가 태우지 못한 것들을 오래 붙들고 있음을 가장 먼저 드러낸다.

국해란

女性

두 해 전 공원에서 사라진 뒤 거울 미로 안쪽 통로를 배회하며 바깥의 몸짓을 훔쳐 배우는 단장의 딸

プロフィール

국해란은 거울 밖으로 도망치는 것보다 먼저, 바깥에서 자기 얼굴로 웃고 있는 변기태의 자리를 제 것으로 되찾으려 한다. 하지만 출구는 빈손에게 열리지 않아, 국해란은 손에 감긴 아이 풍선 끈을 놓는 순간 다시 안쪽으로 밀려난다는 규칙 때문에 한 사람을 더 끌어들일지 아이를 돌려보낼지 매번 망설인다. 국봉철에게 국해란은 이미 죽은 딸인데, 그가 변기태의 얼굴에 분칠을 얹어 무대에 세우는 동안 국해란은 거울 너머에서 자기 미소가 먼저 도둑맞는 장면을 지켜본다.

국해란은 거울 앞에 선 사람의 어깨 기울기와 입꼬리 떨림을 먼저 따라 하고, 상대가 그 흉내를 알아차리는 순간에만 자기 표정을 늦게 붙인다. 아이가 울면 달래는 말보다 풍선 끈을 손목에 한 번 더 감아 쥐고, 출구 불빛이 켜질 때마다 발뒤꿈치를 반쯤 돌렸다가도 누군가의 이름 소리가 들리면 다시 안쪽으로 몸을 숨긴다. 변기태와 똑같은 얼굴로 마주 서는 순간에는 웃고 있으면서도, 먼저 눈을 깜빡이는 쪽이 지는 것처럼 끝까지 시선을 버티는 버릇이 있다.

背景

작년 여름, 국해란은 국봉철을 따라 폐장 뒤 거울 미로 전구를 끄러 들어갔다가 회전목마 말 7번 앞에서 사라졌고, 다음 날 톱밥 위에는 찢어진 풍선 고무 조각만 남았다. 바깥에서는 변기태가 국해란의 웃는 법과 고개 까딱임을 익혀 관객 앞에 서기 시작했고, 국봉철은 딸을 잃은 뒤에도 그 얼굴을 무대에서 치우지 못했다. 그 뒤로 국해란은 거울 안쪽에서 빠져나오려는 사람들의 발소리를 세며, 자기 자리를 되찾을 문이 남의 발 하나 값으로만 열린다는 사실을 몸으로 배웠다.

描写

국해란은 낡은 거울 틈에서 막 걸어 나온 것처럼, 어깨선이 남의 몸짓을 반 박자 늦게 베낀 채 멈춰 서 있다. 바랜 분홍 블라우스 위에 먼지 먹은 놀이공원 조끼를 걸치고, 무릎 아래로 내려오는 짙은 남색 치마자락에는 유리 가루와 톱밥이 들러붙어 있으며, 손목에는 아이 풍선 끈이 붉게 파고들 만큼 여러 번 감겨 있다. 입꼬리는 변기태보다 먼저 웃는 모양으로 올라가 있지만 눈은 끝까지 깜빡이지 않고 정면을 버티며, 찢어진 풍선 고무 조각을 머리핀처럼 귀 뒤에 꽂은 모습이 한 번 보면 잊히지 않는다.

서복순

女性

공연장 뒤편 발전기 칼날 스위치를 지키며 전깃줄 타는 냄새와 기계 떨림으로 공원의 숨을 읽는 과부

プロフィール

서복순은 오늘 밤만 무사히 넘겨 아들 입대 전 치를 전세금을 지키고 싶어서, 거울 미로 쪽에서 비명 비슷한 소리가 새어 나와도 발전기 스위치 앞을 떠나지 않는다. 암전 한 번이면 사람도 거짓말도 같이 멎는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그 한 번이 실종의 책임으로 자기 목에 걸릴까 봐 이를 악물고 버틴다. 그런데 변기태가 관객들 사이를 헤치고 발전기실로 달려와 스위치에 손을 얹는 순간, 서복순은 그 손목을 쳐내 공원을 계속 밝힐지, 붙잡아 함께 내릴지 몸으로 골라야 한다.

서복순은 엔진 소리가 조금만 갈라져도 담배를 입에 문 채 귀를 발전기 철판에 붙이고, 손등으로 진동을 재다가 이상하면 욕보다 먼저 연장을 집는다. 누가 사라졌다는 말이 돌면 고개를 들지 않은 채 연료통 뚜껑만 세 번 두드리는데, 그 버릇이 나올수록 눈은 오히려 출구 쪽 사람 수를 더 빠르게 센다. 변기태가 웃기는 분장을 한 채 뛰어들어와도 서복순은 먼저 그의 신발 밑창에 붙은 톱밥과 숨 넘어가는 박자를 보고, 거짓말인지 급한 일인지 가늠한 뒤에야 손을 뗀다.

背景

남편이 공사판 감전 사고로 죽은 뒤, 서복순은 전기만은 사람 편도 아니고 핑계 편도 아니라는 얼굴로 배웠고, 떠돌이 놀이공원에 붙어 발전기 옆 밥상을 펴며 돈을 모았다. 몇 해 전 다른 장터에서 정전 직후 아이 하나가 사라졌을 때, 단장은 입막음 돈 대신 서복순 근무표부터 들이밀었고, 그날 이후 서복순은 스위치 손잡이에 헝겊을 감아 자기 손자국이 남지 않게 닦는 버릇이 생겼다. 이번 여름 서울 변두리까지 따라온 것도 마지막 철수 수당과 전세금 때문이었는데, 하필 변기태가 무대 대신 어둠을 택하려는 밤에 서복순의 자리 하나가 공원 전체의 숨통이 된다.

描写

서복순은 기름때가 배어 번들거리는 감청색 작업복 저고리 위에 소매를 걷어붙인 채, 발전기 철판과 칼날 스위치 사이를 몸으로 막듯 비스듬히 서 있다. 햇볕과 매연에 그을린 얼굴에는 잔주름이 촘촘하고, 담배를 문 입매는 굳어 있는데도 눈은 출구 쪽 사람 수와 스위치 손잡이를 번갈아 재듯 날카롭게 움직인다; 손자국을 지우려 감아 둔 누런 헝겊이 스위치 손잡이에 매달려 있고, 연료통 뚜껑을 세 번 두드리던 손등의 굵은 힘줄이 지금 막 누군가의 손목을 붙잡을지 놓칠지 망설이는 순간처럼 팽팽하다.


あらすじ · Synopsis

あらすじ

첫 북소리가 울릴 때 변기태는 이미 무대 계단에 한 발을 올려둔 채, 다른 한 발로 톱밥 바닥을 긁고 있다. 흰 분장 밑으로 땀이 흘러 목까지 번지고, 거울 미로 출구 쪽에서는 자기 얼굴을 한 누군가가 빨간 풍선을 쥔 아이를 데리고 걸어 나온다. 국봉철은 뒤에서 기태의 어깨를 밀며 웃으라고, 오늘 밤만 넘기면 막차 품삯에 서울 바깥 자리까지 봐주겠다고 속삭인다. 그러나 기태는 방금 전 매표소에서 훔쳐 본 8월 14일 입장권 묶음과, 오인숙이 벽판 뒤에 연필금으로 새겨 둔 아이들 키 표시를 떠올린다. 표시들은 하나같이 회전목마 말 7번 앞에서 끊겨 있었다. 기태는 무대로 뛰어들어 단장의 목소리를 흉내 내 첫 인사를 던지지만, 박수 소리 사이로 그 아이가 말 7번 앞에서 멈춰 서는 것을 본다.

기태는 공연을 이어가는 척하며 금 간 토끼 상자를 열고 닫고, 피 묻은 비둘기 케이지를 들어 올리며 관객의 시선을 붙든다. 그 틈에 그는 국봉철의 걸음걸이와 손짓을 그대로 베껴 무대 뒤로 빠져나간다. 단장이 아직 무대 옆에 서 있는 줄 아는 관객들은 속고, 진짜 국봉철은 자기 목소리를 도둑맞은 듯 이를 문다. 기태가 회전목마 쪽으로 달려가자 오인숙이 매표소 창을 박차고 나와 그를 붙잡는다. 그녀는 남편 병원 영수증이 든 앞치마 주머니를 움켜쥔 채, 오늘도 사라지면 다들 자기 표 찢는 손만 볼 거라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숨겨 둔 표 묶음을 기태 손에 억지로 쥐여 준다. 그 표들 뒤에는 아이들 이름이 아니라 신장과 신발 색이 적혀 있다. 이름보다 몸의 흔적이 더 오래 남는다는 듯이.

말 7번 앞에는 아까 그 아이가 서 있고, 아이 손목에는 회수되지 않은 표 반쪽이 땀에 젖어 붙어 있다. 기태가 다가가자 거울 미로 안쪽 전구가 한 번 꺼졌다 켜지고, 아이는 누가 부르지도 않았는데 뒤를 돌아 “여기예요” 하고 대답한다. 그 목소리는 아이 것이지만 억양은 기태가 늘 무대에서 쓰던 능청스러운 톤과 닮아 있다. 기태가 아이를 끌어안아 물러서려는 순간, 미로 안에서 국해란이 나온다. 그녀는 기태와 같은 반쯤 웃는 입매를 하고 있고, 손목에 감긴 풍선 줄이 살을 파고들 만큼 조여 있다. 해란은 아이의 어깨를 가볍게 감싸며, 바깥은 이미 자기 자리를 다 차지했다고 말한다. 국봉철이 뒤늦게 달려와 해란을 보는 순간 다리가 풀려 주저앉지만, 딸을 끌어안지는 못한다. 해란은 아버지 쪽으로 한 걸음도 가지 않고, 대신 기태의 서 있는 각도와 턱 드는 버릇을 그대로 따라 한다.

국봉철은 관객이 알아차리기 전에 해란과 아이를 미로 안으로 밀어 넣고 입구 천막을 닫아 버리려 한다. 기태가 그의 팔을 붙잡자 둘은 합판 벽에 부딪히며 엉겨 붙는다. 국봉철은 기태 귀에 대고, 두 해 전 해란이 사라진 밤에도 자기가 공원을 멈추지 못했다고 털어놓는다. 그날 해란은 무대 뒤에서 기태 흉내를 내며 관객을 놀리다가 아이 하나를 따라 미로로 들어갔고, 국봉철은 실종 소문이 퍼지면 단속과 빚이 한꺼번에 덮친다는 걸 알아 공연을 계속 밀어붙였다. 그 뒤로 그는 해란 대신 기태를 더 두껍게 분장시켜 무대에 세웠다. 딸의 빈자리를 메우듯, 사라진 사실까지 덮이길 바라면서. 고백은 용서가 아니라 시간 벌기다. 그는 말끝과 동시에 기태의 멱살을 잡아 무대 쪽으로 끌고 가려 한다. 기태가 버티는 사이 아이가 해란 손에 이끌려 미로 안으로 한 걸음 들어간다.

오인숙이 매표소 종철문을 떼어 들고 달려와 둘 사이를 후려친다. 얇은 철판이 국봉철의 어깨를 치고, 아이가 놀라 주저앉는다. 오인숙은 아이를 품으로 끌어당기지만, 해란이 풍선 줄을 그녀의 손목에 감아 잡아당기며 같이 미로 안으로 끌고 간다. 기태도 즉시 그 뒤를 쫓아 들어간다. 국봉철은 바깥에서 입구를 붙잡고 망설이다가, 딸을 다시 놓칠까 봐 결국 안으로 몸을 밀어 넣는다. 네 사람과 아이가 한꺼번에 미로 안에 갇히자 통로는 갑자기 길어지고, 출구 표시는 서로 반대 방향을 가리킨다.

안쪽에서 해란은 아이를 앞세우지 않는다. 오히려 아이를 거울 앞에 세워 두고, 기태에게 자기 대신 남으라고 한다. 바깥에서는 네가 내 웃음을 쓰고 살았으니 이번엔 네 차례라는 것이다. 기태는 처음엔 부정하지만, 해란이 그의 오래된 습관들을 하나씩 따라 하자 말문이 막힌다. 그는 국봉철의 목소리, 취객 손님, 잃어버린 아이 엄마, 심지어 해란이 사라지기 전 무대 뒤에서 웃던 소리까지 흉내 내며 살았다. 미로는 그런 사람을 제일 먼저 붙잡는다. 해란은 이미 그 규칙을 몸으로 배웠고, 기태가 미로 안에서 몇 번이나 남의 목소리로 대답했는지 세고 있었다. 실제로 기태는 통로를 헤매며 세 번 넘게 국봉철 흉내로 “이쪽이 출구다”라고 외쳤고, 그때마다 벽 속 어딘가에서 자기 발소리가 반 박자 늦게 따라왔다.

국봉철은 해란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지만, 해란은 그 손을 잡는 대신 아버지의 시계줄을 낚아챈다. 단장실 거울 앞에서 늘 만지던 그 은색 줄이다. 해란은 그것을 거울 모서리에 걸고 세게 당겨 유리를 깨뜨린다. 깨진 틈 사이로 바깥 회전목마 불빛이 아니라, 단장실의 오래된 거울이 비친다. 그 거울은 공원 어디서든 미로와 이어져 있었고, 국봉철이 치우지 못한 손자국이 길이 되어 해란을 붙잡고 있었다는 것이 드러난다. 그는 딸을 잃은 뒤 거울을 버리지 못한 것이 아니라, 버리면 해란이 완전히 사라질까 봐 못 버린 것이다. 동시에 그 거울을 남겨 둔 탓에 미로의 입구도 계속 열려 있었다. 국봉철이 울면서 깨진 틈으로 손을 넣자 손등이 찢어지고 피가 유리 위에 번진다. 해란은 그 피를 보고 처음으로 표정을 잃는다.

그사이 아이는 겁에 질려 아무 목소리로나 대답하려 하고, 오인숙은 아이의 입을 손으로 막고 자기 품에 얼굴을 묻힌다. 아이가 이름 대신 남의 말투를 따라 내뱉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그녀는 아이를 안은 채 벽에 등을 대고, 연필금으로 외워 둔 신장 표시대로 아이의 머리를 낮춘다. 사라진 아이들마다 통로의 손잡이 높이가 달랐다는 걸 기억해 낸 것이다. 몸을 낮춘 아이만 겨우 지나갈 수 있는 틈이 실제 출구 쪽으로 이어진다. 오인숙은 그 틈으로 아이를 밀어 넣지만, 자신은 어깨가 걸려 빠지지 못한다. 기태가 돌아와 그녀를 빼내려 하자 해란이 그의 발목을 붙잡는다. 그녀는 바깥으로 나가려면 안쪽에 하나가 남아야 한다는 규칙을 다시 말하지 않는다. 대신 기태의 얼굴을 하고, 기태의 목소리로 “나가면 넌 또 남의 얼굴로 살 거잖아”라고 말한다. 그 한마디에 기태는 처음으로 흉내가 아니라 자기 목소리로 욕을 내뱉고, 해란의 손을 뿌리친다.

바깥에서는 공연 음악이 계속 돌아가고 전구는 더 빨리 깜박인다. 발전기실에서 서복순은 칼날 스위치 손잡이에 천을 감은 채 떨림을 세고 있다. 평소보다 진동이 짧고 거칠다. 누군가 미로 안에서 경계를 흔들고 있다는 뜻이다. 그녀는 전세금이 든 봉투를 작업복 안주머니에 넣고 버티지만, 미로 벽 너머에서 기태가 자기 이름을 부르는 소리와 아이 울음이 한꺼번에 들리자 더는 숫자만 셀 수 없어진다. 복순이 스위치로 달려가려는 순간 국봉철이 피투성이 손으로 미로 밖 틈을 비집고 나와 그녀 앞을 막는다. 그는 지금 내리면 해란이 경계에 박혀 버린다고, 딸을 또 잃는다고 외친다. 복순은 그를 밀치려 하고, 국봉철은 칼날 손잡이를 붙잡는다. 둘은 발전기 앞에서 몸으로 버틴다. 기름 냄새와 뜨거운 금속 냄새 속에서 복순은 자기 아들 전세금을 떠올리다가도, 미로 안에서 들리는 아이 기침 소리에 이를 악문다. 결국 그녀는 국봉철의 다리를 걷어차 무릎을 꺾고, 그의 손등을 신발 뒤축으로 밟아 손잡이에서 떼어 낸다. 그 대가로 국봉철이 휘두른 시계줄에 복순의 뺨이 찢어진다.

같은 순간 미로 안에서는 기태가 오인숙을 뒤에서 밀어 틈 밖으로 빼내고, 해란이 다시 아이 쪽으로 몸을 날린다. 국봉철이 복순을 붙잡고 버티는 동안 기태는 깨진 거울 틈에 자기 흰 분장 묻은 손바닥을 찍어 누른다. 단장실 거울에 남아 있던 손자국 위에 자신의 자국을 겹쳐, 미로가 헷갈리게 만들려는 것이다. 해란은 그 손을 떼어내려 달려들고, 두 사람은 유리 조각 위에서 넘어지며 서로의 얼굴에 같은 상처를 낸다. 그때 복순이 스위치를 내린다.

공원 전체가 단숨에 꺼진다. 북소리도 멎고 회전목마도 덜컥 멈춘다. 어둠 속에서 미로의 통로는 잠깐 돌처럼 굳는다. 오인숙은 아이를 끌어안은 채 출구 쪽 바닥으로 굴러 나오고, 국봉철은 발전기실 문턱에 무릎 꿇은 자세로 멈춘다. 기태와 해란은 깨진 거울 앞에서 서로의 손목을 붙잡은 채 고정된다. 누가 안쪽이고 누가 바깥인지 분간되지 않는 한순간, 기태는 해란이 쥔 풍선 줄을 자기 손목에 감고, 해란의 손을 거울 안쪽으로 밀어 넣는다. 그러나 해란도 마지막 힘으로 기태의 조끼를 잡아당긴다. 두 사람의 몸이 동시에 경계를 넘나들다가, 국봉철이 어둠 속에서 딸 이름을 부르며 기어와 둘 사이에 팔을 넣는다. 그의 팔이 거울 틈에 끼고, 그 무게 덕분에 해란 쪽 경계가 안으로 기운다. 다시 불이 들어왔을 때, 바깥 바닥에는 기태와 오인숙, 아이, 피 흘리는 국봉철, 숨 헐떡이는 복순이 있다. 거울 안쪽에는 해란 혼자 서 있다. 그러나 그녀 얼굴은 더 이상 기태를 닮지 않고, 처음 보는 자기 얼굴로 돌아가 있다.

국봉철은 거울에 매달려 딸을 꺼내려 하지만, 해란은 안쪽에서 한 번만 고개를 젓는다. 그녀는 풍선 줄을 풀어 바닥에 놓고, 뒤돌아 미로의 어둠 속으로 걸어간다. 출구는 닫힌다. 국봉철은 그 자리에서 울부짖지만, 이번에는 공연 음악이 덮어 주지 않는다. 전구가 꺼진 공원에는 그의 소리만 남는다.

밤이 새기 전, 오인숙은 아이를 버스 종점 쪽으로 직접 데리고 나간다. 기태는 매표소 벽판을 뜯어 연필금으로 새겨진 키 표시들을 통째로 빼낸다. 국봉철은 도망치지 않는다. 그는 단장실 거울을 자기 손으로 들어 공터 바닥에 내던져 산산조각 내고, 경찰이 오기 전까지 회수되지 않은 표 묶음을 품에 안고 무대 앞 의자에 앉아 있다. 복순은 발전기 기름 밸브를 잠그고, 다시는 이 불이 켜지지 않게 천막 줄을 끊는다. 기태는 마지막으로 무대 위에 올라 관객 없는 객석을 향해 선다. 흰 분장은 땀과 피에 지워져 반쪽만 남아 있다. 그는 누구의 목소리도 흉내 내지 않고 자기 목소리로, 오늘 여기서 아이들이 사라졌고 단장이 알고도 덮었다고 공터 바깥 사람들에게 외친다. 버스 종점에서, 공장 담벼락에서, 철제 울타리 밖에서 몇 사람이 멈춰 돌아본다. 박수는 없다. 대신 새벽빛 속에서 공원이 장사판이 아니라 범죄 현장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기태는 막차 품삯도, 떠날 자리도 잃지만, 처음으로 자기 얼굴로 울타리 밖으로 걸어 나간다. 그의 발바닥에서는 여전히 톱밥 냄새가 나고, 뒤편 공터에서는 깨진 거울 조각들이 해 뜨기 전 마지막 불빛을 짧게 받아낸다.


世界観 · World

世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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設定

서울 서남쪽 변두리의 비어 가는 공터에, 여름마다 잠깐 들어왔다가 자국만 남기고 떠나는 이동식 놀이공원 ‘은하유원단’이 마지막 밤을 맞고 서 있다. 낮에는 버스 종점 뒤 먼지 많은 공터지만, 해가 지면 철제 울타리와 천막, 전구 줄, 덜컹거리는 회전목마, 거울 미로, 임시 무대, 매표소, 발전기실이 서로의 소음을 덮으며 하나의 닫힌 마을처럼 작동한다. 바닥은 비에 한 번 젖었다가 다시 마른 톱밥과 흙이 뒤섞여 푹신하고, 신발 밑창에는 짐승 냄새와 기름 냄새와 설탕 시럽 냄새가 함께 밴다.

공원의 중심은 회전목마다. 말 7번은 바깥에서 보면 칠이 벗겨진 평범한 목마지만, 그 앞 바닥만 유난히 닳아 있고 아이들 신발 자국이 겹겹이 남아 있다. 거울 미로는 회전목마 뒤편에 붙어 있다. 겉에서는 얇은 합판과 유리판을 대충 이어 만든 값싼 유희 시설처럼 보이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천장 높이가 미묘하게 달라지고, 지나온 전구빛이 앞에서 다시 반짝이며 방향감각을 흐린다. 출구 표시는 달려 있으나, 그 화살표는 어느 밤에는 맞고 어느 밤에는 틀리다.

무대 뒤편은 더 누추하다. 새틴 조끼와 분장통, 금 간 토끼 상자, 피 묻은 비둘기 케이지, 젖은 밧줄, 장부, 외상 기름통이 좁은 통로를 막고 있다. 단장실에는 오래된 거울 하나가 벽에 기대어 있고, 닦아도 닦이지 않는 손자국이 남아 있다. 발전기실은 공원 맨 끝, 천막과 철망 사이에 있다. 거기서는 음악보다 먼저 금속 떨림이 느껴지고, 공원의 모든 불빛이 한 덩어리 숨처럼 켜졌다 꺼질 수 있다는 사실이 손에 잡힌다.

이 세계는 넓지 않다. 그러나 울타리 안쪽 몇백 평이 서울 바깥보다 더 폐쇄적이다. 돈이 모자란 사람, 갈 데 없는 사람, 남의 얼굴을 빌려 먹고사는 사람이 잠시 기대는 곳이면서, 한번 규칙을 잘못 밟으면 바깥보다 먼저 자신을 잃는 곳이다.

時代

1978년 8월 14일 밤. 유신 체제 말기의 서울 변두리, 도시가 바깥으로 번지며 공터와 판잣집, 버스 종점, 공장 담벼락이 뒤엉켜 있던 시기다. 텔레비전과 네온사인이 점점 일상을 바꾸고 있지만, 이런 이동식 유원단은 아직 값싼 구경거리와 잠깐의 탈출을 판다. 동시에 단속, 외상, 소문, 실종이 모두 종이 장부와 입소문으로 처리되던 시대라, 사라진 사람 하나쯤은 비에 번진 잉크처럼 묻혀 버릴 수 있다.

이 밤은 공원이 서울을 떠나기 전 마지막 영업일이다. 그래서 모든 것이 한 번 더 과하게 돌아간다. 전구는 평소보다 더 많이 켜지고, 북소리는 더 크게 울리고, 단장은 마지막 수입을 쥐려 하고, 증거를 숨기던 사람들은 더는 미룰 수 없는 선택 앞에 선다. 세계 자체가 ‘오늘 지나면 끝난다’는 압박으로 팽팽해진 순간이다.

ルール

거울 미로 안에서 자기 이름 대신 남의 목소리나 몸짓으로 세 번 이상 대답하면, 미로는 그 사람을 “대체 가능한 사람”으로 받아들이고 출구를 뒤섞는다. 그 대가로 변기태처럼 흉내로 먹고사는 사람은 누구보다 쉽게 안쪽에 붙잡히며, 자기 얼굴을 한 존재와 자리를 다투게 된다.

회전목마 말 7번 앞에서 손에 쥔 표가 8월 14일자로 남아 있으면, 아이든 어른이든 미로 쪽에서 먼저 자신을 알아본 존재에게 끌려갈 수 있다. 그래서 오인숙이 숨겨 둔 회수되지 않은 입장권은 단순한 장부 누락이 아니라, 누가 사라질 수 있었는지를 증명하는 물증이 된다.

거울 미로에서 바깥으로 완전히 나오려면 안쪽에 있는 누군가가 대신 남아야 한다. 그 결과 국해란은 탈출만 바라볼 수 없고 반드시 바깥 사람 하나를 유인해야 하며, 기태가 자기 얼굴의 이중신을 보았다는 사실은 곧 누군가의 자리를 두고 싸움이 시작됐다는 뜻이 된다.

발전기 칼날 스위치를 내리면 공원 전체의 불빛과 음악은 즉시 멈추고, 그 순간 거울 미로의 길도 잠깐 굳는다. 그러나 암전 중에 안쪽에 있던 사람은 원래 서 있던 경계에 고정될 수 있어, 누군가는 돌아오고 누군가는 영영 갇힌다. 그래서 스위치를 내리는 일은 단순한 정전이 아니라 구조와 희생을 동시에 고르는 행동이 된다.

技術と哲学

이 세계의 기술은 값싼 전기와 손기술 위에 선다. 발전기 한 대가 공원의 심장이다. 전기가 돌면 음악, 전구, 확성기, 회전목마, 무대 장치가 모두 살아난다. 그러나 전력은 늘 불안정하고, 그 불안정함이 거울 미로의 경계까지 흔든다. 마술 도구 역시 정교한 환상이 아니라 닳은 상자, 숨겨진 경첩, 훈련된 타이밍으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속임수’가 천한 기술이면서 동시에 생계의 핵심이다.

사회적 질서는 장부와 침묵으로 유지된다. 표를 누가 샀는지, 누가 나갔는지, 누가 사라졌는지는 정확한 기록보다도 누가 입을 다무느냐에 달려 있다. 가난한 노동자, 떠돌이 흥행단, 병원비가 급한 사람, 전세금을 지켜야 하는 사람은 진실보다 하루치 수입을 먼저 계산하게 된다. 이 세계에서 정의는 제도보다 개인의 결심에 의존하고, 그래서 늘 늦고 비싸다.

여기서 통용되는 철학은 간단하고 잔인하다. 얼굴은 빌릴 수 있고, 자리는 비면 누군가가 채운다. 단장은 딸을 잃은 뒤에도 공연을 멈추지 않았고, 기태는 남의 목소리와 걸음걸이를 흉내 내며 살아남았다. 거울 미로는 그 삶의 방식을 문자 그대로 되받아친다. 남 흉내를 오래 낸 사람일수록 자기 자리의 경계가 약해진다. 그래서 이 세계의 공포는 귀신보다도 “내가 아니어도 되는 사람”으로 취급되는 데서 생긴다.

視覚的描写

색은 바랜 적색, 더러운 금색, 전구의 누런 흰빛, 젖은 합판의 갈색, 밤공기의 푸른 검정이 지배한다. 모든 것은 한철 장사답게 싸고 얇고 급히 칠해져 있다. 벨벳 단장복의 닳은 가장자리, 회전목마 말의 갈라진 페인트, 거울 가장자리의 검은 부식, 매표소 창문에 맺힌 습기, 전깃줄을 감싼 천테이프가 화면에 계속 남는다.

빛은 고르지 않다. 무대와 회전목마에는 과장된 백열전구가 쏟아지고, 한 걸음만 벗어나면 얼굴 절반이 그림자에 잠긴다. 거울 미로 안의 빛은 특히 불안정하다. 전구 하나가 깜박일 때마다 같은 통로가 다른 길처럼 보이고, 사람의 얼굴은 반 박자 늦게 따라오는 것처럼 보인다. 흰 분장은 조명 아래서 웃음보다 시체 같은 평평함을 만들고, 땀에 녹은 검은 머리카락은 이마에 달라붙어 진짜 표정을 더 선명하게 드러낸다.

건축은 임시성과 속임수의 미학으로 통일된다. 못 자국이 드러난 목재 판넬, 천막을 잡아당긴 로프, 바퀴 달린 대차, 접이식 철제 울타리, 성처럼 칠해 놓았지만 가까이 가면 얇은 합판인 입구 장식. 서울 변두리의 현실 풍경은 그 바깥에 계속 보인다. 버스 정류장 표지판, 공장 굴뚝, 콘크리트 배수로, 전봇대, 습한 여름 하늘. 환상은 늘 현실의 먼지 위에 얹혀 있고, 그래서 더 초라하고 더 무섭다.


場所 · Locations

舞台となる場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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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밥 무대 계단

톱밥이 두껍게 깔린 세 칸짜리 무대 계단은 사람 발에 오래 눌려 가운데만 검게 다져져 있고, 땀 먹은 목재 가장자리에는 흰 분장 가루와 비둘기 깃털이 들러붙어 누런 백열등을 정면으로 받는다. 첫 북소리가 울리면 얇은 판자 속 빈 데가 둔하게 울려 발바닥으로 진동이 먼저 올라오고, 바로 위 무대에서는 과장된 박수 소리가 쏟아지는데도 계단 아래 한 사람 몸 돌릴 자리밖에 안 되는 폭 때문에 올라가는 사람의 어깨와 내려오는 사람의 팔꿈치가 늘 한 번은 스친다.

새틴 조끼 자락이 톱밥을 쓸고 지나간 자리에 반달 모양 미끄럼 자국이 겹겹이 남아 있어, 여기서는 누가 무대로 밀려 올랐고 누가 도중에 발을 비틀었는지가 불빛 아래 그대로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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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전목마 말 7번 앞

회전목마 말 7번 앞 바닥은 다른 자리보다 한 뼘쯤 더 어둡게 닳아 있어, 눅은 흙 위로 아이들 운동화 밑창 자국이 겹겹이 눌린 채 굳어 있다. 바랜 적색 안장과 더러운 금색 고삐를 단 목마는 페인트가 갈라져 옆구리 나뭇결이 드러났고, 머리 위 전구들은 빙글 돌 때마다 누런 빛을 같은 자리만 집요하게 핥아, 발끝에 붙은 표 반쪽과 풍선 그림자를 번갈아 밝힌다.

바로 앞에서는 회전축이 덜컹거릴 때마다 쇠가 한 번씩 목을 고는 소리가 나고, 그 사이사이로 숨을 죽인 아이의 짧은 들숨이 유난히 크게 튄다. 다른 말들 아래는 톱밥이 고르게 퍼져 있는데 이 자리만은 반원 모양으로 바닥이 맨질하게 밀려 있어, 누군가 오래 서서 망설인 발의 방향까지 카메라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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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인숙의 매표소

창문 하나 겨우 낸 합판 부스 안은 어른 하나가 몸을 돌리면 어깨가 벽에 닿을 만큼 낮고 비좁아서, 흐린 전등 아래 젖은 장부와 표 묶음이 숨 돌릴 틈 없이 겹쳐 쌓여 있다. 유리 안쪽에는 입김과 빗물이 말라 남긴 얼룩이 층층이 끼어 바깥 불빛을 누렇게 번지게 만들고, 손때 먹은 나무 받침 위에서는 표를 찢는 얇은 소리가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와 번갈아 박힌다.

닳아 해진 회색 앞치마 자락이 무릎 옆 장부 모서리를 계속 쓸고 지나가며 축축한 종이 냄새를 일으키고, 창틀 아래 못 하나에 고무줄로 묶인 회수되지 않은 표 반쪽들이 젖은 생선 아가미처럼 달라붙어 있어 이 좁은 칸이 돈을 받는 자리보다 빠져나가지 못한 흔적을 모아 두는 서랍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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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장실 거울 벽

탁한 아이보리 벽지 앞에 기대 선 전신거울은 은도금 가장자리가 검게 죽어 있고, 닦을수록 번지는 마른 손자국이 턱 높이와 어깨 높이에 겹겹이 남아 있어 누가 오래 붙들고 서 있었는지 키와 버릇까지 드러낸다. 눌린 벨벳 냄새가 밴 단장복 소매 하나가 못에 걸린 채 거울 옆으로 축 늘어져 있고, 바로 아래 좁은 선반에는 은색 회중시계 줄이 살짝만 건드려도 짤랑이며 떨려, 방 안의 숨소리까지 금속에 걸려 들리는 것처럼 얇게 울린다.

고인 그림자가 방 모서리에서 거울 밑동까지 눌러앉아 있어 불빛이 닿아도 유리 속 얼굴 절반은 늘 한 박자 늦게 밝아지고, 벽지 틈새에 박힌 작은 유리 파편 몇 점은 이 방에서 한 번도 치워지지 않은 밤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흔적처럼 그대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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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기 칼날 스위치 앞

기름 먹은 철판 벽에 등을 붙인 발전기는 사람 가슴 높이쯤 되는 칼날 손잡이를 벌겋게 달군 채 거친 숨처럼 으르렁거리고, 천테이프를 여러 겹 감아 둔 전깃줄들은 낮은 천장 밑에서 미세하게 떨며 푸른 검정을 더 짙게 만든다. 손잡이 아래 시멘트 바닥은 오래 튄 기름과 신발 뒤축 자국이 겹쳐 반질거리고, 주황 점광 하나가 금속 모서리마다 짧게 걸리다 끊겨서 누가 팔을 뻗으면 먼저 손등의 땀과 먼지가 뜨게 된다. 이 앞에서는 공원 전체의 불빛과 음악이 한 사람 손목 힘에 매달려 있다는 사실이 숨길 수 없이 드러나서, 망설이는 동안에도 엔진 떨림이 발목뼈를 타고 올라와 더 늦으면 안 된다고 몸부터 재촉한다.


場面 · Scenes

場面ごとの物語

チャプター 01

シーン 01· 1978년 8월 14일 밤, 마지막 공연이 시작되는 순간

첫 북소리

첫 북소리
場所톱밥 무대 계단, 회전목마 말 7번이 보이는 무대 옆
時間1978년 8월 14일 밤, 마지막 공연이 시작되는 순간
出来事첫 북이 울리자 변기태가 톱밥 계단 한 칸 아래에서 구두 끝으로 바닥에 선을 긋다가 고개를 든다. 그 시선 끝, 거울 미로 출구 쪽에서 자기 얼굴을 한 국해란이 붉은 풍선을 든 아이의 손목 높이에 몸을 맞춘 채 걸어 나오고, 바로 뒤의 국봉철은 무대로 올라가라는 듯 기태의 어깨를 거칠게 움켜쥔다. 기태는 계단을 오르지 않으려 몸을 비틀지만, 국봉철의 손과 이미 쏟아지기 시작한 조명이 그를 무대 쪽으로 밀어 넣는다.
影響기태는 단순히 공연을 시작해야 하는 조수가 아니라, 자기 얼굴을 한 존재가 아이를 어디로 데려가는지 직접 본 유일한 사람이 된다. 국봉철의 손이 기태를 붙드는 동안, 국해란과 아이는 회전목마 쪽으로 먼저 움직여 사건의 방향을 선점한다. 이 장면으로 무대는 생계의 자리이면서 동시에 추적을 놓치게 만드는 덫이 되고, 기태가 올라가야 할 계단과 쫓아가야 할 바닥이 한 프레임 안에서 갈라진다.

변기태가 구두 앞코로 톱밥 바닥에 짧은 선을 긋는 순간 첫 북이 울리고, 세 칸짜리 무대 계단의 빈 판자가 둔하게 떨리며 검게 다져진 가운데 자국이 누런 백열등 아래 드러난다. 흰 분장 가루와 비둘기 깃털이 들러붙은 목재 가장자리 바로 위로 박수 소리가 터지는데, 기태는 한 칸도 못 올라간 채 고개만 번쩍 들어 거울 미로 출구 쪽을 본다. 거기서 국해란이 나온다. 기태와 같은 반쯤 웃는 입매, 같은 쪽으로 기운 턱, 그러나 손목에는 붉은 풍선 줄이 감겨 있고, 그녀 옆 아이의 그림자는 회전목마 불빛 사이로 짧게 끊긴다.

국봉철이 뒤에서 기태의 젖은 어깨를 움켜쥐고 계단 쪽으로 밀어 올리자, 좁은 폭 때문에 두 사람의 소매가 거칠게 스친다. “올라가.” 국봉철의 입은 웃는 모양인데, 손가락은 기태 조끼 깃을 더 세게 잡아당긴다. 기태가 몸을 틀어 빠져나가려는 사이, 회전목마 말 7번 앞의 어두운 닳은 바닥 위로 아이가 한 번 멈춰 서고, 국해란은 기태 쪽을 보지도 않은 채 아이의 보폭에 맞춰 반 박자 먼저 멈춘다. 기태가 계단 난간도 없는 옆 판자를 손바닥으로 짚으며 버티자, 국봉철의 엄지가 흰 분장을 문질러 목덜미까지 길게 번지게 만든다.

다시 북이 울리고, 무대 위 전구가 한꺼번에 밝아지면서 기태의 반달 모양 미끄럼 자국이 계단 첫 칸에 새로 찍힌다. 국봉철의 손에 밀린 기태의 상체가 앞으로 꺾인 채 위를 향하고, 아래에서는 붉은 풍선이 회전목마 전구를 받아 한 번 붉게 번뜩인다. 아이는 말 7번 앞에서 아직도 멈춰 있다.

シーン 02· 첫 북소리 직후, 공연이 막 열리는 밤

어깨를 미는 손

어깨를 미는 손
場所톱밥 무대 계단
時間첫 북소리 직후, 공연이 막 열리는 밤
出来事국봉철이 뒤에서 변기태의 어깨를 움켜쥐고 세 칸짜리 톱밥 무대 계단 위로 밀어 올린다. 기태는 한 칸에 발을 버티며 몸을 돌려 회전목마 쪽을 보려 하지만, 계단 폭이 너무 좁아 국봉철의 팔꿈치와 가슴에 막힌다. 국봉철은 막차 품삯과 공원 바깥 자리를 미끼로 낮게 속삭이고, 기태는 그 말 사이로 거울 미로 출구 쪽에서 자기 얼굴을 한 국해란이 붉은 풍선을 든 아이를 데리고 더 멀어지는 것을 본다. 기태가 내려가려 하자 국봉철이 조끼 뒷자락을 낚아채고, 기태는 결국 무대 쪽으로 몸을 비틀어 올릴 자리를 선택한다.
影響이 장면에서 무대 계단은 단순한 출입구가 아니라 기태를 추적에서 떼어 놓는 물리적 덫이 된다. 국봉철의 회유는 협박보다 더 집요하게 작동하고, 기태는 돈과 탈출 기회를 눈앞에 두고도 아이를 놓치면 안 된다는 압박 속에 묶인다. 동시에 국해란은 기태보다 한발 앞서 회전목마 쪽으로 움직이며 사건의 주도권을 쥔다. 그 결과 기태는 무대로 올라가되, 이미 공연을 망치더라도 빠져나와 쫓아가야 할 대상을 분명히 가진 상태가 된다.

국봉철이 변기태의 젖은 어깨를 뒤에서 밀어 세 칸짜리 톱밥 무대 계단 첫 칸에 박아 넣는다. 검게 다져진 계단 가운데가 기태 구두 밑에서 미끄럽게 번들거렸고, 목재 가장자리에는 흰 분장 가루와 비둘기 깃털이 눅눅하게 들러붙어 있었다. 바로 위 무대에서는 과장된 박수 소리가 쏟아지는데도, 계단 폭은 사람 하나 몸 돌릴 자리밖에 안 돼 기태가 반쯤 돌아서는 순간 국봉철의 팔꿈치가 그의 갈비를 막았다. 기태는 그 틈으로 고개만 꺾어 회전목마 쪽을 본다. 누런 전구 아래, 국해란은 기태 얼굴을 달고 붉은 풍선 줄을 쥔 채 아이보다 먼저 걷고 있었다.

국봉철이 기태의 조끼 뒷자락을 낚아채 아래로 잡아당긴다. “오늘 밤만 웃겨. 막차 품삯 챙겨 주고, 바깥 자리도 내가 붙여.” 그의 말은 달래는 소리였지만 손은 더 세게 밀었다. 기태가 계단 난간도 없는 옆으로 발을 빼 내려가려 하자, 국봉철이 몸을 비틀어 길을 완전히 막는다. “지금 내려가면 다 끝장이야.” 그 순간 회전목마가 한 바퀴 돌아 말 7번의 바랜 적색 안장이 잠깐 빛을 받았고, 국해란이 아이의 손목 쪽으로 손을 내미는 동작이 기태 눈에 걸린다. 기태는 국봉철의 손목을 한 번 떼어내지만, 좁은 계단에서 둘의 어깨가 맞부딪치며 다시 위로 밀린다.

기태의 구두 끝이 마지막 칸 모서리를 찍고, 새틴 조끼 자락이 톱밥을 쓸며 반달 모양 미끄럼 자국을 남긴다. 국봉철은 바로 뒤에 붙어 선 채 턱으로 무대 중앙을 가리키고, 기태는 무대 불빛 쪽으로 몸을 틀면서도 시선을 끝까지 회전목마에서 떼지 못한다. 아래에서는 붉은 풍선이 사람들 머리 사이로 한 번 솟았다가, 말 7번 앞에서 멈춘다.

シーン 03· 1978년 8월 14일 밤, 첫 인사 직전

빌린 목소리

빌린 목소리
場所톱밥 무대 계단에서 무대 중앙까지
時間1978년 8월 14일 밤, 첫 인사 직전
出来事변기태는 국봉철의 손을 어깨에서 떼어내듯 비틀고, 한 사람 몸 겨우 지나는 톱밥 무대 계단을 두 칸씩 밟아 올라간다. 그는 마지막 칸에서 일부러 반 박자 늦게 멈췄다가 국봉철의 굽은 허리와 숨 고르는 소리까지 그대로 흉내 내며 무대 중앙으로 나선다. 국봉철은 계단 아래에서 그를 붙잡지 못한 채, 자기 목소리가 먼저 무대에 올라가 버린 광경을 올려다본다. 그 사이 회전목마 말 7번 쪽에서는 국해란이 아이를 데리고 사람들 틈으로 더 깊이 미끄러져 들어간다.
影響이 장면에서 변기태는 더 이상 밀려 올라간 조수가 아니라, 국봉철의 얼굴 없는 대리인이 되는 기술을 스스로 무기로 바꾼다. 관객이 그의 첫마디를 단장의 인사로 받아들이면서 공연은 시작되지만, 동시에 국봉철은 무대 바깥에서 자기 권위와 통제력을 잠깐 빼앗긴다. 기태가 빌린 목소리로 관객의 시선을 묶어 두는 데 성공한 만큼, 그는 다음 순간 무대에서 빠져나갈 틈도 스스로 만들 수 있게 된다. 반대로 국해란은 그 틈이 생기는 동안 더 앞서 나가 사건의 리듬을 선점한다.

변기태가 국봉철의 손목을 팔꿈치로 밀어내고 톱밥 무대 계단을 비틀어 올라간다. 세 칸뿐인 좁은 계단 가운데 검게 다져진 자리가 그의 구두 밑에서 미끄럽게 번들거렸고, 마지막 칸 목재 가장자리에 붙은 흰 분장 가루가 바짓단에 찍힌다. 바로 뒤에서 국봉철도 따라 오르려 몸을 들이밀지만, 올라가는 사람과 내려오는 사람의 어깨가 한 번은 꼭 스치는 그 폭에서 둘의 팔이 엉겨 잠깐 길이 막힌다. 기태는 그 막힌 틈을 오히려 발판처럼 써서 몸을 반 바퀴 틀고 무대 쪽으로 빠져나간다. 누런 백열등이 얼굴을 정면으로 때리자, 그는 입꼬리를 국봉철처럼 억지로 올린 채 객석을 향해 턱을 한 번만 끄덕인다.

국봉철이 아래에서 이를 문 채 낮게 뱉는다. “웃어. 오늘 밤만이다.” 기태는 대꾸 대신 국봉철의 숨 고르는 버릇을 먼저 훔친다. 짧게 들이마시고, 이 사이로 조금 새게 내쉬고, 오른발을 반 박자 늦게 끄는 걸음까지 맞춘 다음, 그는 확성기 앞에 서서 단장의 목으로 첫말을 던진다. “예에, 여러분. 은하유원단 마지막 밤입니다.” 객석에서 박수가 먼저 터지고, 국봉철의 얼굴은 계단 아래 그림자 속에 남은 채 잠깐 굳는다. 같은 순간 무대 밖으로 흘러나간 조명 끝자락에서 국해란이 한 번도 기태 쪽을 보지 않은 채 아이의 풍선 줄을 앞으로 당긴다.

박수 소리가 무대 판자를 울리는 동안 기태는 토끼 상자 쪽으로 한 걸음 나아가면서도 고개를 완전히 돌리지는 않는다. 대신 시선 끝만 비틀어 회전목마 쪽을 건드린다. 누런 전구가 돌며 사람들 어깨 사이를 핥고, 그 사이로 국해란의 옆얼굴과 붉은 풍선이 한 번 드러났다 사라진다. 계단 아래 국봉철은 더 이상 올라오지 못한 채 주머니 시계줄을 움켜쥐고 서 있고, 무대 위에서는 기태의 입에서 나온 단장의 목소리가 아직도 객석 위를 돌고 있다.

シーン 04· 1978년 8월 14일 밤, 첫 인사 직후

반 박자 늦은 얼굴

반 박자 늦은 얼굴
場所무대 중앙에서 내려다보이는 회전목마 말 7번 앞
時間1978년 8월 14일 밤, 첫 인사 직후
出来事변기태는 무대 중앙에서 금 간 토끼 상자를 들어 첫 마술 동작을 시작하면서도 시선을 객석 너머 회전목마 쪽으로 찔러 넣는다. 사람들 사이로 국해란이 기태와 똑같은 반웃음을 한 채 붉은 풍선을 든 아이의 등을 가볍게 밀며 지나가고, 국봉철은 무대 옆에서 박수 유도를 하다가 그 시선을 따라가려는 기태를 손짓으로 다시 정면에 묶어 둔다. 기태는 상자 뚜껑을 닫는 척하다 일부러 박자를 어긋내 관객의 시선을 손으로 끌어오고, 그 틈에 해란이 한 번도 무대를 보지 않은 채 아이를 말 7번 쪽으로 더 가까이 데려가는 모습을 확인한다. 국봉철은 웃는 얼굴로 무대 가장자리까지 올라와 기태의 동선을 막지만, 기태는 단장의 목소리로 농담 한마디를 던져 관객의 웃음을 터뜨린 뒤 반걸음 옆으로 비켜 시야를 다시 확보한다.
影響이 장면에서 기태는 자기 얼굴을 한 존재가 우연히 떠도는 환영이 아니라, 아이를 정해진 자리로 데려가는 의지를 가진 상대라는 점을 몸으로 확인한다. 동시에 국봉철 역시 기태가 단순히 공연에 몰입하지 않고 다른 것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려, 이후 무대에서 기태를 더 세게 붙들 이유를 갖게 된다. 무대 위 첫 마술은 성공한 척 넘어가지만, 실제로는 기태가 관객의 눈을 속여 추적의 틈을 만드는 기술을 시험한 첫 순간이 된다. 그 결과 다음 장면에서 말 7번 앞의 멈춤은 단순한 목격이 아니라, 기태가 반드시 무대를 버리고 쫓아가야 할 목표로 굳어진다.

변기태가 금 간 토끼 상자를 번쩍 들어 올리자 누런 전구가 상자 모서리의 금을 번들거리게 핥고, 무대 아래 톱밥 계단에서 막 올라온 흰 분장 가루가 그의 조끼 깃에 아직 묻어 있다. 그는 관객 쪽으로 상자를 기울인 채 손목만 비틀어 뚜껑을 열고, 비어 있는 속을 보여 주는 척하면서 눈은 객석 사이 틈으로 미끄러뜨린다. 회전목마 불빛이 한 바퀴 돌아올 때마다 사람들 어깨 사이로 국해란의 얼굴이 잘렸다 이어지는데, 이상하게도 그녀의 걸음보다 표정이 늘 조금 늦다. 붉은 풍선이 먼저 흔들리고, 그다음에야 기태와 똑같은 반웃음이 따라온다.

국봉철이 무대 옆에서 장갑 낀 손으로 더 크게, 더 환하게 박수를 유도하자 관객 시선이 정면으로 쏠리고, 그 틈에 기태는 일부러 토끼 상자 뚜껑을 한 박자 늦게 닫아 딱 하는 소리를 크게 낸다. “오늘 밤 마지막으로, 눈 똑바로 뜨십시오.” 기태가 국봉철의 낮은 목소리를 그대로 빌려 말하자 앞줄에서 웃음이 터지고, 국봉철의 입꼬리는 올라간 채 눈만 굳는다. 바로 그 순간 해란이 아이의 어깨를 살짝 밀어 사람들 다리 사이 빈 틈으로 통과시키고, 아이 손에 쥔 붉은 풍선 줄이 말 7번 쪽 전구 아래로 길게 끌린다. 국봉철은 한 걸음 더 올라와 기태의 앞을 가로막듯 서지만, 기태는 상자를 품에 안고 반걸음 옆으로 미끄러져 그의 팔꿈치 바깥으로 시선을 빼낸다.

회전목마가 덜컹 돌며 같은 자리를 다시 비출 때, 말 7번 앞 어둡게 닳은 바닥 위로 아이의 발이 딱 멈춘다. 해란은 그 곁에 선 채 끝내 무대를 돌아보지 않고, 기태의 얼굴로만 웃고 있다. 기태 손안의 상자 뚜껑이 아직 반쯤 열린 채 흔들린다.

シーン 05· 1978년 8월 14일 밤, 첫 마술 동작 직후

말 7번 앞

말 7번 앞
場所무대 중앙에서 내려다보이는 회전목마 말 7번 앞
時間1978년 8월 14일 밤, 첫 마술 동작 직후
出来事변기태는 금 간 토끼 상자의 뚜껑을 관객 쪽으로 확 열어 시선을 묶어 둔 채, 무대 아래 회전목마 말 7번 앞에서 아이가 멈춰 서는 장면을 본다. 아이의 손목에는 회수되지 않은 표 반쪽이 땀에 젖어 붙어 있고, 국해란은 기태와 닮은 얼굴로 아이보다 반 박자 먼저 멈춰 서서 그 자리를 비워 주듯 옆으로 선다. 기태가 상자 속 비둘기를 꺼내 올리는 척 몸을 틀자, 국봉철은 무대 옆에서 손짓으로 계속 웃으라고 재촉하지만 기태의 시선은 아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기태는 결국 국봉철의 인사 말투를 한 번 더 빌려 관객을 붙잡아 두면서도, 다음 순간 무대에서 빠져나갈 결심을 몸으로 굳힌다.
影響이 장면으로 회전목마 말 7번은 단순히 수상한 장소가 아니라, 아이들이 실제로 멈춰 섰던 규칙의 자리로 처음 또렷하게 찍힌다. 국해란이 우연한 환영이 아니라 아이를 정확한 지점까지 데려가는 존재라는 사실도 기태 앞에서 행동으로 확인된다. 국봉철은 기태가 공연보다 아래를 보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지만, 이미 관객의 시선은 기태가 빌린 목소리에 묶여 있어 당장 그를 끌어내리지 못한다. 그 결과 이 장의 끝에서 기태는 무대에 올라간 사람인 동시에, 반드시 무대를 버리고 쫓아가야 할 목표를 눈앞에 둔 사람으로 바뀐다.

변기태가 금 간 토끼 상자 뚜껑을 객석 쪽으로 홱 젖히자 누런 전구빛이 상자 안의 검은 천과 그의 흰 분장 손등을 한꺼번에 때리고, 바로 아래 회전목마 말 7번 앞에서는 아이가 발을 딱 멈춘다. 다른 말들 밑에는 톱밥이 고르게 퍼져 있는데 그 자리만 반원처럼 맨질하게 밀려 있었고, 아이 손목에 붙은 표 반쪽이 돌 때마다 같은 자리로 쓸려 나와 번뜩인다. 국해란은 붉은 풍선 줄을 손목에 감은 채 아이보다 반 걸음 앞에서 멈췄다가, 누군가 자리를 정해 준 사람처럼 조용히 옆으로 비켜 선다. 기태가 상자 안으로 팔을 깊이 넣으며 몸을 숙이자, 해란의 턱이 무대 위 그의 각도와 똑같이 기울어 오른다.

무대 옆에서 국봉철이 손바닥을 아래로 누르며 웃으라는 신호를 보낸다. 기태는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비둘기 케이지 쪽으로 손을 뻗고, 국봉철의 낮은 음색을 그대로 베껴 객석에 던진다. “자, 마지막 밤이니 눈 똑바로 뜨십시오.” 박수가 한 번 더 터지는 사이, 회전목마 축이 덜컹이며 쇠가 목을 고는 소리를 낸다. 그 짧은 틈에 아이는 누가 잡아끈 것도 아닌데 말 7번의 바랜 적색 안장 쪽으로 몸을 반쯤 돌리고, 해란은 끝내 한 번도 기태 쪽을 올려다보지 않는다.

기태가 상자에서 비둘기를 꺼내 올리는 척하다 말고 손목을 멈추자, 하얀 깃 한 장이 무대 아래로 떨어져 말 7번 앞 닳은 바닥에 붙는다. 국봉철이 무대 가장자리까지 한 걸음 올라오지만, 기태는 이미 다음 발을 어디로 내릴지 정한 사람처럼 발끝을 무대 뒤쪽이 아니라 계단 쪽으로 틀고 서 있다. 아래에서는 표 반쪽이 아이 손목에서 축 늘어진 채 흔들리고, 붉은 풍선 그림자가 말 7번의 갈라진 옆구리를 한 번 스치고 멈춘다.

チャプター 02

シーン 06· 1978년 8월 14일 밤, 첫 마술 동작 직후

무대 뒤의 빈 자리

무대 뒤의 빈 자리
場所회전목마 말 7번 앞에서 오인숙의 매표소까지
時間1978년 8월 14일 밤, 첫 마술 동작 직후
出来事변기태는 금 간 토끼 상자를 닫아 관객의 시선을 묶은 틈에 국봉철의 걸음걸이와 목소리를 그대로 흉내 내며 무대 뒤로 빠져나간다. 국봉철은 뒤늦게 그 빈자리를 알아차리고 쫓아오지만, 기태는 먼저 오인숙의 매표소 창문을 두드려 안으로 들이민다. 오인숙은 처음엔 장부 위에 손을 덮어 숨기려 하나, 기태가 말 7번 앞 아이 손목의 반쪽 표를 들이대자 결국 못 아래 고무줄에 묶어 숨겨 둔 8월 14일 표 반쪽들과 표 묶음을 뜯어 건넨다. 표 뒷면에는 이름 대신 신장과 신발 색이 적혀 있고, 젖은 장부 사이에서는 회수되지 않은 날짜들이 따로 접혀 나온다. 국봉철이 매표소 밖까지 따라와 창틀을 붙잡는 동안, 기태는 그 표들을 품에 쑤셔 넣고 다시 회전목마 쪽으로 몸을 돌린다.
影響이 장면에서 변기태는 실종이 소문이 아니라 반복된 기록이었다는 물증을 손에 넣는다. 오인숙 역시 더는 침묵만으로 버티지 못하고, 자기 손으로 감춰 둔 표를 기태에게 넘기며 공범의 자리에서 증인의 자리로 한 발 옮긴다. 반대로 국봉철은 무대와 장부를 동시에 통제하던 위치를 잃기 시작하고, 기태가 무대에서 비운 자리는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덮어 온 사건의 틈으로 드러난다. 이 표 묶음은 곧 말 7번 앞의 규칙과 두 해 전 실종의 실제 모양을 밝혀 줄 손잡이가 된다.

변기태가 금 간 토끼 상자 뚜껑을 쾅 닫고 비둘기 케이지를 일부러 한 번 넘어뜨린 채 무대 뒤 통로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관객 쪽에서는 새가 퍼덕이는 소리와 웃음이 한꺼번에 터지고, 그 틈에 기태는 국봉철처럼 오른발을 반 박자 늦게 끌며 천막 그림자 속을 가로질러 간다. 회전목마 말 7번의 누런 불빛이 합판 틈으로 잘게 잘려 들어오고, 그 끝에서 오인숙의 매표소 창이 젖은 얼룩을 번들거리며 떠 있다. 기태가 창틀을 두 손으로 붙잡고 낮게 내뱉는다. “표 내놔요. 오늘 날짜, 안 태운 것.” 오인숙은 회색 앞치마 자락으로 장부를 덮어 버린 채 고개를 젓지만, 기태가 손목에 들러붙은 반쪽 표를 흉내 내듯 두 손가락을 자기 팔에 붙여 보이자 그녀 손이 잠깐 멈춘다.

오인숙이 창틀 아래 못에 걸린 고무줄 묶음을 거칠게 끊어 내자 젖은 표 반쪽들이 한꺼번에 딸려 나온다. 그녀는 표 묶음을 건네면서도 놓지 않고 버틴다. “이거 주면 내 손부터 본다.” 기태가 그 손등 위로 자기 손을 덮어 억지로 빼내는 순간, 국봉철이 바깥에서 매표소 문짝을 세게 밀어 붙인다. 좁은 부스가 흔들리고, 창문 유리의 누런 반사가 셋 얼굴을 제멋대로 겹친다. 국봉철이 바깥에서 이를 갈며 말한다. “기태야, 지금 나오면 아직 덮는다.” 오인숙은 대꾸 대신 장부 한 장을 찢어 기태 가슴에 밀어 넣고, 찢긴 종이 끝 사이로 ‘파란 운동화’, ‘키 117’ 같은 연필글씨가 젖어 번진다.

기태가 표 묶음을 새틴 조끼 안쪽에 쑤셔 넣고 몸을 돌리자, 매표소 안에는 그가 빠져나간 자리만 사람 하나 빠진 의자처럼 비어 남는다. 오인숙은 창문 틈으로 회전목마 쪽을 한 번 보고, 곧장 창문 걸쇠를 젖혀 바깥으로 몸을 내민다. 국봉철이 그녀를 막으려 팔을 뻗는 사이, 기태는 이미 말 7번 앞의 더 어둡게 닳은 바닥으로 뛰어들고 있다. 그의 조끼 안에서 젖은 표 뭉치가 한쪽으로 쏠리며 사각거린다.

シーン 07· 1978년 8월 14일 밤, 무대에서 빠져나온 직후

말 7번의 바닥

말 7번의 바닥
場所회전목마 말 7번 앞, 오인숙의 매표소 바로 바깥
時間1978년 8월 14일 밤, 무대에서 빠져나온 직후
出来事변기태는 오인숙에게서 억지로 쥐여 받은 8월 14일 표 묶음을 들고 회전목마 말 7번 앞으로 달려가, 표 뒷면에 적힌 키 표시와 바닥에 겹쳐 눌린 아이들 운동화 자국을 직접 맞춰 본다. 오인숙은 매표소 문턱까지 따라나와 기태를 말리려다가도, 손목에 반쪽 표가 붙은 아이를 보고 끝내 한 걸음 더 다가선다. 그 순간 아이가 아무도 부르지 않았는데 기태가 무대에서 쓰던 능청스러운 말투로 “여기예요” 하고 대답하고, 회전목마 뒤 거울 미로 쪽 전구가 먼저 한 번 깜박인다. 기태는 아이를 끌어내려 손을 뻗지만, 미로 쪽이 이미 먼저 아이를 알아본 흔적이 눈앞에서 드러난다.
影響이 장면에서 변기태는 말 7번이 단순히 수상한 자리가 아니라, 반쪽 표와 몸의 흔적이 실제로 맞물리는 호출의 자리라는 것을 몸으로 확인한다. 오인숙도 장부와 표 속 숫자로만 붙들던 실종이 지금 자기 눈앞에서 다시 시작되는 것을 보며 더는 뒤에 숨을 수 없게 된다. 아이의 입에서 나온 기태의 말투는 거울 미로가 바깥 사람의 목소리까지 먼저 훔쳐 쓴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다음 장면에서 국해란이 모습을 드러낼 자리를 미리 연다. 무대 밖으로 빠져나온 추적은 이제 확인의 단계가 아니라, 누가 누구를 먼저 부르느냐의 싸움으로 넘어간다.

변기태가 표 묶음을 말 7번 앞 바닥에 털어 놓고 무릎으로 미끄러지자, 바랜 적색 안장 아래 한 뼘쯤 더 어둡게 닳은 반원 자리가 누런 전구에 번들거린다. 그의 손이 젖은 표 뒷면을 한 장씩 뒤집고, 연필금으로 적힌 키 표시를 운동화 밑창 자국 옆에 급히 갖다 댄다. 같은 크기의 자국이 둘, 셋, 겹쳐 올라와 있다. 매표소에서 뛰어나온 오인숙이 기태 팔을 붙잡아 세우려다 말고 숨을 삼킨다. 손목에 반쪽 표가 땀에 붙은 아이가 그 닳은 자리 한복판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기태가 아이 쪽으로 몸을 낮추며 손을 내밀자, 회전목마 축이 덜컹 한 번 목을 고르고 바로 뒤 거울 미로 입구 전구가 먼저 꺼졌다 켜진다. 아이는 누가 이름을 부르지도 않았는데 고개만 미로 쪽으로 돌린 채, 기태가 조금 전 무대에서 관객을 달래던 그 억양으로 “여기예요” 하고 말한다. 오인숙이 입술을 깨문 채 “저 말투, 저 애 거 아니에요” 하고 내뱉는 순간, 기태는 아이 손목의 반쪽 표를 잡아 뜯듯 떼려 한다. 그러나 아이의 발은 바닥에 박힌 것처럼 꿈쩍하지 않고, 반쪽 표 끝이 그의 손가락 사이에서 젖은 살처럼 미끄러진다. 기태가 더 세게 잡아당기자 아이의 어깨가 먼저 뒤로 끌리고, 그 뒤의 어둠에서 미로 유리 한 장이 늦게 번쩍인다.

오인숙은 끝내 기태 곁으로 붙어 서서 남은 표 몇 장을 닳은 자리 위에 떨어뜨린다. 표들이 젖은 바닥에 들러붙으며 아이 신발 자국과 거의 같은 길이로 줄을 맞춘다. 기태의 손은 아직도 아이 손목을 붙잡고 있고, 아이의 얼굴은 미로 쪽을 본 채 입만 반 박자 늦게 다문다. 회전목마 전구가 다시 돌아와 말 7번 아래를 핥을 때, 바닥의 반쪽 표 그림자가 아이 발끝보다 먼저 거울 미로 쪽으로 길게 끌린다.

シーン 08· 1978년 8월 14일 밤, 무대를 빠져나온 직후

먼저 깜박인 얼굴

먼저 깜박인 얼굴
場所회전목마 말 7번 앞, 거울 미로 입구 앞
時間1978년 8월 14일 밤, 무대를 빠져나온 직후
出来事국해란이 거울 미로 입구 천막을 젖히고 나와 아이 어깨에 손을 얹는다. 변기태는 곧바로 아이 팔을 낚아채 뒤로 빼려 하지만, 해란은 아이를 놓지 않은 채 기태의 반웃음과 턱 드는 버릇, 손목 꺾는 각도까지 똑같이 따라 하며 맞선다. 오인숙은 매표소 문턱을 붙잡고 표 묶음을 쥔 손을 떼지 못한 채 둘 사이를 본다. 그 짧은 대치 끝에 기태는 바깥으로 나온 것이 막연한 환영이 아니라 자기 자리를 노리고 몸짓까지 훔쳐 쓰는 상대임을 눈앞에서 확인한다.
影響이 장면으로 기태와 해란의 싸움은 아이를 둘러싼 구조 문제가 아니라, 누가 바깥의 얼굴을 차지하느냐의 자리싸움으로 한 단계 깊어진다. 오인숙도 해란의 얼굴과 기태의 얼굴이 같은 자리에서 겹쳐 보이는 광경을 목격하며 더는 장부 뒤에 숨을 수 없게 된다. 국봉철이 곧 개입할 수밖에 없는 긴장이 말 7번 앞에 모이고, 다음 장면의 고백과 몸싸움을 밀어 올릴 직접적인 불씨가 된다.

국해란이 거울 미로 입구의 줄무늬 천막을 한 손으로 확 젖히고 나와, 말 7번 앞에 선 아이 어깨를 먼저 감싼다. 누런 전구가 한 바퀴 돌며 바랜 적색 안장과 닳아 맨질한 바닥을 핥는 사이, 변기태는 표 반쪽이 붙은 아이 손목을 낚아채 자기 쪽으로 세게 당긴다. 아이 몸이 둘 사이에서 비틀리자 붉은 풍선 그림자가 갈라진 목마 옆구리에 흔들리고, 오인숙은 매표소 창을 반쯤 밀어 올린 채 젖은 표 묶음을 움켜쥔 손으로 입을 막는다. 해란은 아이를 놓지 않은 채 기태가 늘 무대에서 하던 것처럼 턱을 한 번 비스듬히 들고, 늦게 웃는 반쪽 입매까지 똑같이 만들어 보인다.

기태가 아이를 자기 등 뒤로 밀어 넣으려 한 걸음 비틀자, 해란도 같은 발부터 내딛어 길을 막는다. “그 얼굴, 원래 네 거 아니잖아.” 해란이 말하자 목소리는 분명 여자 것인데 끝 억양은 기태가 관객 놀릴 때 쓰던 능청스러운 톤이다. 기태는 대꾸 대신 해란의 손목을 쳐내려 들지만, 해란은 그 동작마저 반 박자 먼저 흉내 내어 아이의 어깨를 다른 쪽으로 돌려 세운다. 오인숙이 “아이부터 빼요” 하고 낮게 내뱉으며 매표소 밖으로 한 걸음 나오자, 해란의 시선이 잠깐 그녀에게 꽂혔다가 다시 기태 얼굴로 돌아간다. 그 짧은 사이에도 해란은 기태의 왼쪽 어깨가 먼저 내려가는 버릇까지 베껴 서 있다.

기태가 결국 아이를 품으로 끌어안으려 두 팔을 벌리자, 해란도 똑같이 팔을 벌려 바로 앞에서 그의 자세를 겹쳐 버린다. 회전목마 축이 덜컹이며 쇠가 목을 고는 소리를 낼 때, 누런 전구가 두 얼굴을 번갈아 비추고 먼저 깜박인 쪽이 해란 얼굴이라는 게 드러난다. 오인숙 손에서 표 묶음 한 장이 미끄러져 떨어져, 말 7번 앞 닳은 바닥에 젖은 채 들러붙는다.

シーン 09· 1978년 8월 14일 밤, 마지막 공연 도중

단장의 낮은 고백

단장의 낮은 고백
場所회전목마 말 7번 앞, 거울 미로 입구
時間1978년 8월 14일 밤, 마지막 공연 도중
出来事국봉철이 국해란의 팔과 아이의 어깨를 한꺼번에 밀어 거울 미로 천막 안으로 도로 처박으려 하자, 변기태가 그의 팔을 붙잡고 합판 벽으로 들이받는다. 오인숙은 매표소 쪽에서 달려와 둘 사이를 끊지 못한 채 아이를 빼내려 손을 뻗고, 국해란은 한 발 물러서지 않고 기태의 턱 드는 버릇을 그대로 따라 하며 자리를 지킨다. 몸싸움 속에서 국봉철은 두 해 전 국해란이 변기태 흉내를 내다가 아이 하나를 따라 미로 안으로 들어갔는데도 자기가 공연을 멈추지 않았다고 낮게 털어놓는다. 그 고백이 끝나기도 전에 그는 다시 변기태의 멱살을 틀어쥐고 무대 쪽으로 끌어가려 하고, 아이는 그 틈에 미로 문턱 쪽으로 반걸음 밀린다.
影響이 장면에서 변기태는 사라짐이 우연이 아니라 국봉철이 이미 한 번 알고도 덮은 반복이었다는 사실을 그의 입으로 직접 듣는다. 국봉철은 연민을 구하는 대신 시간을 벌기 위해 진실을 입에 올리고, 그 순간부터 그의 침묵은 더 이상 체면이 아니라 공모의 모양을 띤다. 오인숙은 그 고백을 귀로 들은 증인이 되며, 국해란은 아버지의 후회보다 바깥 자리를 먼저 겨누는 존재로 선명해진다. 말 7번 앞의 몸싸움은 이제 아이 하나를 빼내는 문제가 아니라, 누구를 다시 미로 안에 밀어 넣어 이 밤을 봉합할 것인가의 싸움으로 바뀐다.

국봉철이 아이의 등을 손바닥으로 밀어 거울 미로 입구 천막 쪽으로 내던지자, 변기태가 곧장 그의 팔꿈치를 낚아채 회전목마 말 7번 옆 합판 벽에 세게 처박는다. 바랜 적색 안장을 단 말 7번 머리 위 누런 전구가 빙글 돌며 네 사람 얼굴을 번갈아 핥고, 닳아 맨질한 바닥 위에서 기태 구두와 국봉철 구두가 한꺼번에 미끄러진다. 아이는 주저앉듯 비틀리고, 손목에 붙은 표 반쪽이 흙에 쓸려 반쯤 들린다. 오인숙이 매표소 쪽에서 달려와 아이 겨드랑이를 잡아채려 하지만, 국해란이 먼저 아이 어깨에 손을 얹고 기태 쪽을 본다. 그녀는 웃지도 않은 채 기태처럼 턱만 조금 든다. 바로 옆에서 국봉철이 이를 문 입술 사이로 말한다. “두 해 전에도 저랬다. 해란이가 네 흉내 내고 웃기다가… 아이 하나 따라 들어갔어.”

기태가 멱살을 비틀어 더 붙이자 합판이 한 번 크게 울리고, 국봉철의 주머니 시계줄이 조끼 밖으로 튀어나와 둘 사이에서 짧게 흔들린다. “그런데도 안 멈췄어요?” 오인숙이 아이를 자기 쪽으로 잡아당기며 쏘아붙이자, 국봉철은 기태 얼굴도 못 본 채 낮게 뱉는다. “멈추면 끝장이었어. 단속 오고, 빚쟁이 붙고, 다 무너져.” 그 말은 변명처럼 시작했지만 끝에 가서는 숨이 짧게 꺾인다. 국해란은 아버지 쪽으로 가지 않는다. 대신 기태가 아이를 감싸려 내민 손과 똑같은 각도로 자기 팔을 뻗어 아이를 미로 문턱 쪽으로 반 걸음 옮긴다. 회전축이 덜컹 돌 때마다 쇠가 목을 고는 소리가 싸움 사이를 잘라 먹는다.

국봉철이 갑자기 기태 조끼 깃을 틀어쥐고 무대 쪽으로 몸을 홱 당기자, 기태도 놓치지 않으려 그의 재킷 소매를 잡아찢듯 버틴다. 오인숙은 아이를 끌어안으려 숙이고, 국해란은 그 틈을 타 천막 자락을 손등으로 젖힌다. 입구 안쪽 전구가 한 번 꺼졌다 켜지며 해란 얼굴과 기태 얼굴을 같은 높이로 겹쳐 보이게 만들고, 아이 발끝이 닳은 반원 바닥을 벗어나 검은 문턱 선을 건드린다. 국봉철의 고백이 아직 공기에서 가라앉기도 전에, 네 사람의 팔과 옷자락이 한꺼번에 미로 쪽으로 쏠린다.

シーン 10· 1978년 8월 14일 밤, 국봉철의 고백 직후

천막 안으로 끌린 사람들

천막 안으로 끌린 사람들
場所회전목마 말 7번 앞, 거울 미로 입구 천막
時間1978년 8월 14일 밤, 국봉철의 고백 직후
出来事오인숙이 매표소 철문을 떼어 들고 달려와 국봉철의 어깨를 후려쳐, 아이를 미로 안으로 밀어 넣으려던 동작을 끊는다. 기태는 그 틈에 아이를 끌어안아 뒤로 빼려 하지만, 국해란이 자기 손목에 감긴 붉은 풍선 줄을 풀어 오인숙 손목에 감아 잡아당기며 셋의 균형을 한꺼번에 무너뜨린다. 국봉철은 쓰러지면서도 입구 천막 자락을 붙잡고 해란을 다시 안쪽으로 몰아넣으려 하고, 기태는 그의 팔을 붙들고 버티다가 결국 아이와 오인숙, 국봉철, 해란과 함께 거울 미로 안으로 휩쓸려 들어간다.
影響이 장면으로 말 7번 앞의 추적은 끝나고, 사건의 무대가 완전히 거울 미로 안쪽으로 넘어간다. 국봉철의 죄는 더는 낮은 고백으로 봉합될 수 없고, 오인숙 역시 장부 뒤 증인이 아니라 몸으로 끌려 들어간 당사자가 된다. 기태는 표 묶음과 두 해 전 실종의 실제 모양을 손에 쥔 채, 이제 바깥에서 아이를 빼내는 사람이 아니라 안에서 자리를 두고 싸워야 하는 사람으로 바뀐다.

오인숙이 매표소 철문을 양손으로 휘둘러 국봉철의 어깨를 찍어 내리자, 회전목마 말 7번 앞 닳은 바닥 위로 누런 전구빛이 철판 가장자리를 번쩍 핥고 아이가 그 자리에서 털썩 주저앉는다. 국봉철의 몸이 합판 벽에 비스듬히 부딪히며 입구 천막이 반쯤 찢겨 들리고, 기태는 곧장 아이 겨드랑이 밑으로 팔을 넣어 뒤로 끌어당긴다. 오인숙도 앞치마 자락이 젖은 채 아이 허리를 감싸 안고 물러서지만, 국해란은 한 발도 아버지 쪽으로 가지 않고 기태가 막 아이를 들어 올리는 각도를 그대로 따라 꺾어 선다. 그녀가 손목에 감긴 붉은 풍선 줄을 홱 풀어 오인숙 팔목에 던져 감아 버리자, 고무가 젖은 살에 달라붙는 소리가 짧게 난다. “놓지 마요!” 오인숙이 외치며 뒤로 버티는데, 해란은 기태의 반웃음을 단 얼굴로 줄을 한 번 더 감아 세게 잡아당긴다.

기태가 아이를 품에 안은 채 몸을 틀어 줄을 끊어 보려 하자 국봉철이 비틀거리며 일어나 그의 멱살을 움켜쥔다. “밖에서 떠들 거면 다 같이 죽어.” 국봉철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손은 다급했고, 그는 말끝과 함께 기태를 미로 입구 쪽으로 밀어붙인다. 기태가 국봉철 팔을 비틀어 떼어내는 순간 아이 손목의 반쪽 표가 그의 조끼 단추에 걸려 찢기듯 펄럭이고, 오인숙은 줄에 끌린 채 천막 기둥에 어깨를 세게 부딪힌다. 해란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아이의 팔목을 다시 낚아채 안쪽으로 한 걸음 물러선다. 입구 전구가 한 번 꺼졌다 켜지자 천막 안 유리벽들이 제각기 다른 각도로 번쩍였고, 기태 눈앞에는 같은 얼굴이 둘, 셋 겹쳐 미끄러진다.

국봉철이 천막 자락을 걷어 올린 채 해란 등을 안으로 떠밀고, 기태는 아이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그 허리를 더 세게 끌어안은 채 같이 넘어져 들어간다. 오인숙은 풍선 줄에 묶인 손목을 빼내지 못한 채 무릎으로 끌려 들어오고, 마지막으로 국봉철이 찢어진 천막 틈을 붙잡은 손을 놓치며 안으로 몸을 들이민다. 바깥에서는 회전목마가 아직 덜컹 돌고 있는데, 안쪽 통로에서는 출구 표지 두 개가 서로 반대 방향을 가리키며 동시에 흔들린다. 천막이 뒤에서 탁 닫히고, 말 7번 앞 바닥에 남은 것은 철문에 찍힌 흰 분장 자국과 반쪽 표 한 조각뿐이다.

チャプター 03

シーン 11· 국봉철과 오인숙까지 거울 미로 안으로 끌려 들어온 직후

먼저 깜빡이는 얼굴

먼저 깜빡이는 얼굴
場所단장실 거울 벽 앞 통로
時間국봉철과 오인숙까지 거울 미로 안으로 끌려 들어온 직후
出来事변기태가 아이의 팔을 잡아 자기 뒤로 감추며 단장실 거울 벽 앞까지 물러서자, 국해란이 바로 앞에서 그의 턱 드는 버릇과 발 디디는 각도를 똑같이 베껴 길을 막는다. 해란은 바깥에서 자기 웃음을 쓰고 살았으면 이번에는 기태가 안쪽에 남으라고 말하고, 기태는 아이를 데리고 지나가려다 처음으로 발을 멈춘다. 국봉철은 딸에게 손을 내밀지만 쉽게 다가서지 못하고, 오인숙은 아이가 입을 열기 전에 그의 입을 막아 품으로 끌어당긴다. 해란이 기태의 동작을 한 박자 먼저 흉내 내며 압박하자, 이 자리의 싸움은 아이를 빼내는 일에서 누가 누구 자리를 대신 남길지 고르는 싸움으로 바뀐다.
影響이 장면에서 변기태는 국해란이 단순히 바깥으로 나온 존재가 아니라, 자기 버릇과 얼굴을 무기로 삼아 자리를 빼앗으려 드는 상대임을 정면으로 맞닥뜨린다. 기태의 망설임이 처음 몸으로 드러나면서, 그가 지금껏 빌려 쓴 목소리와 몸짓이 미로 안에서는 약점으로 되돌아온다는 장의 갈등이 본격적으로 작동한다. 국봉철은 딸을 눈앞에 두고도 곧장 끌어안지 못해 죄책감과 두려움을 동시에 드러내고, 오인숙은 아이의 입을 막는 행동으로 규칙을 본능적으로 거스르기 시작한다. 다음 장면에서 ‘세 번째 대답’의 규칙과 출구의 조건이 더 노골적으로 드러날 발판이 된다.

변기태가 아이의 젖은 팔목을 홱 끌어 자기 등 뒤로 밀어 넣자, 단장실 거울 벽 앞 전신거울의 검게 죽은 가장자리가 누런 불빛을 늦게 받아 번들거리고 국해란이 바로 그 앞을 한 걸음 막아 선다. 탁한 아이보리 벽지에는 턱 높이와 어깨 높이에 번진 손자국이 겹겹이 남아 있고, 못에 걸린 벨벳 단장복 소매가 두 사람 사이에서 축 늘어진 채 흔들린다. 해란은 아이를 보지 않은 채 기태만 보고, 기태가 늘 무대에서 그랬듯 왼쪽 어깨를 먼저 떨어뜨린 뒤 턱을 비스듬히 든다. 기태가 오른발을 뒤로 빼면 해란도 같은 발부터 미끄러지듯 따라 빼며 통로를 닫는다. “바깥에서 내 웃음을 쓰고 살았으면, 이번엔 네가 남아.” 해란이 말하자 여자의 목소리 끝에 기태가 관객을 놀리던 능청스러운 억양이 붙어, 국봉철의 손끝이 허공에서 멈춘다.

기태가 해란의 어깨를 밀치고 지나가려 하자, 해란이 반 박자 먼저 같은 자세로 팔을 들어 그의 손목을 받아낸다. 둘의 팔이 부딪히며 좁은 선반 위 은색 회중시계 줄이 짤랑 울리고, 오인숙은 그 소리에 퍼뜩 아이 입을 손바닥으로 막아 제 앞치마 쪽으로 끌어안는다. 아이는 울음을 터뜨리려다 숨만 세게 들이켜고, 국봉철은 “해란아, 아버지다” 하고 내뱉지만 해란은 그쪽을 한 번도 보지 않는다. 대신 그녀는 기태가 아이를 감출 때 쓴 손의 각도까지 그대로 흉내 내 자기 빈 옆구리 뒤를 가리킨다. 기태가 그걸 보고 잠깐 굳는 사이, 거울 속 해란 얼굴이 실제보다 먼저 웃고 실제 해란의 입매가 한 박자 늦게 따라 붙는다.

오인숙이 아이의 머리를 억지로 자기 가슴께까지 눌러 낮추고 벽 쪽으로 비껴 서자, 기태와 해란 사이에 사람 하나 겨우 지날 틈이 생겼다가 곧 다시 닫힌다. 국봉철의 뻗은 손은 딸에게 닿지 못한 채 거울 옆 공중에 걸려 있고, 해란의 얼굴만 전신거울 속에서 먼저 깜빡이며 밝아졌다 어두워진다.

シーン 12· 국해란이 기태의 버릇을 겹쳐 보인 직후, 같은 밤 몇 초 뒤

세 번째 대답

세 번째 대답
場所단장실 거울 벽 앞 통로
時間국해란이 기태의 버릇을 겹쳐 보인 직후, 같은 밤 몇 초 뒤
出来事변기태는 아이를 데리고 빠져나갈 길을 달래듯 가리키려다 무심코 국봉철의 낮은 말투를 빌려 “이쪽이다” 하고 내뱉고, 국해란은 그 말을 놓치지 않고 그가 이미 남의 목소리로 세 번 넘게 대답했다고 몰아붙인다. 해란은 기태 앞이 아니라 옆 거울판과 뒤 유리에 차례로 같은 입모양을 번지게 만들어, 반 박자 늦게 따라오는 기태 자신의 발소리를 증거처럼 들려준다. 국봉철은 해란에게 손을 내밀며 그만하라고 하지만, 해란은 아버지를 보지 않은 채 기태의 어깨 각도와 손짓까지 다시 베껴 길을 막는다. 오인숙은 아이의 입을 틀어막고 끌어안은 채, 아이가 겁에 질려 아무 말투로나 대답하지 못하게 버티면서도 통로 손잡이 높이와 매표소 벽판의 키 표시를 겹쳐 떠올리기 시작한다.
影響이 장면에서 변기태는 미로가 자신을 바깥 사람으로 두지 않으려 든다는 사실을 몸으로 확인하고, 국해란과의 대립이 단순한 실랑이가 아니라 자리 자체를 빼앗기는 싸움으로 바뀐다. 국봉철은 딸을 달래려는 손짓조차 기태가 빌려 쓴 몸짓과 닮아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며, 두 해 동안 무엇을 붙들고 있었는지 더 선명하게 노출한다. 동시에 오인숙은 이름이나 표가 아니라 몸의 높이가 출구를 가른다는 실마리를 잡아, 다음 장면에서 실제로 아이를 빼낼 수 있는 방법에 가까워진다.

변기태가 아이 팔을 낚아채 자기 옆으로 끌며 국봉철의 낮은 목소리를 빌려 “울지 마, 이쪽이 출구다” 하고 내뱉자, 단장실 거울 벽 앞 좁은 통로의 전신거울과 옆 유리판들이 한 박자씩 늦게 그 입모양을 받아 적는다. 탁한 아이보리 벽지 앞에 기대 선 거울 가장자리의 검은 은도금이 번들거리고, 못에 걸린 단장복 소매가 흔들리며 기태 어깨를 스친다. 국해란은 곧장 기태 앞을 가로막지 않고 비스듬히 한 걸음 옮겨 선다. 그리고 기태가 방금 들었던 손과 같은 높이로 자기 손을 들어 올린다. “또 남의 목소리네.” 해란이 웃음기 없는 얼굴로 말하자, 통로 안쪽 어딘가에서 기태 구두와 똑같은 발소리가 반 박자 늦게 한 번 더 난다.

기태가 이를 물고 이번엔 제 목으로 아이 이름을 부르려는 순간, 해란이 먼저 그의 입매를 흉내 내며 셈하듯 손가락을 접는다. “말 7번 앞에서 한 번. 들어와서 두 번. 방금이 세 번째.” 국봉철이 딸 쪽으로 손을 뻗으며 “해란아, 아버지 봐” 하고 낮게 부르지만, 해란은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아버지의 손목 시계줄이 흔들리는 쪽만 잠깐 본다. 좁은 선반 위 회중시계 줄이 그 움직임에 짤랑하고 울리고, 기태가 한 걸음 물러서자 뒤 거울 속 기태는 제자리에서 반 박자 늦게 멈춘다. 오인숙은 아이 입을 손바닥으로 덮은 채 벽에 등을 붙이고, 다른 손으로 통로 손잡이를 더듬어 본다. 그녀 시선이 아이 정수리 높이와 손잡이 높이를 번갈아 재다가, 갑자기 무릎을 꺾어 아이 어깨를 아래로 누른다.

해란이 그 움직임을 보고 재빨리 오인숙 쪽으로 몸을 틀자, 기태도 동시에 팔을 뻗어 해란의 길을 가로막는다. 네 사람의 그림자가 손자국 번진 유리 위에서 서로 겹쳐 찢어지고, 국봉철의 뻗은 손은 해란 손목 대신 허공만 움켜쥔다. 그때 아이의 머리가 낮아진 자리에서, 통로 끝 벽과 거울 틈 사이로 어른 눈높이에서는 보이지 않던 검은 빈칸이 한 줄 드러난다. 오인숙이 숨도 고르지 못한 채 그 틈을 노려보고, 해란의 시선은 처음으로 기태가 아니라 국봉철 허리에서 흔들리는 은색 시계줄에 꽂힌다.

シーン 13· 8월 14일 밤, 거울 미로 안에서 출구가 뒤섞인 직후

시계줄 끝의 방

시계줄 끝의 방
場所단장실 거울 벽 앞 통로
時間8월 14일 밤, 거울 미로 안에서 출구가 뒤섞인 직후
出来事국봉철이 국해란에게 손을 뻗는 순간, 국해란은 그 손을 잡지 않고 조끼 밖으로 튀어나온 은색 시계줄을 낚아챈다. 변기태가 아이 쪽으로 붙으려 하지만, 국해란은 시계줄을 거울 모서리에 걸어 찢듯 잡아당겨 유리를 깨고 통로의 숨겨진 연결을 드러낸다. 오인숙은 아이의 입을 틀어막은 채 뒤로 물러서다가, 깨진 틈 너머에 비친 방의 손자국과 거울 높이를 보고 매표소 벽판의 키 표시를 떠올린다. 국봉철은 피가 배어나오는 손으로 깨진 틈을 막으려 들고, 기태는 그가 두 해 동안 무엇을 치우지 못했는지 눈앞에서 확인한다.
影響이 장면으로 실종의 중심이 단순히 거울 미로의 이상한 규칙이 아니라, 국봉철이 붙들고 놓지 못한 단장실 거울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국해란은 아버지의 후회보다 바깥으로 이어진 자리를 더 정확히 알고 행동하는 존재로 굳어지고, 국봉철의 침묵은 상처 난 손과 함께 물증이 된다. 오인숙은 이름이 아니라 몸의 높이가 길을 가른다는 확신을 얻어, 다음 순간 아이를 빼낼 실제 방법을 찾아낼 준비를 마친다. 변기태에게는 해란과의 싸움이 단순한 대치가 아니라, 단장이 오래 붙잡아 둔 방과 거울까지 끼어든 자리싸움으로 커진다.

국해란이 국봉철의 조끼 앞으로 손을 찔러 넣어 은색 시계줄을 홱 뽑아내자, 단장실 거울 벽 앞 통로의 누런 전구빛이 금속 줄 위에서 짧게 튄다. 국봉철이 “해란아, 그건 안 돼” 하고 손목을 붙잡으려 달려들지만, 국해란은 한 발 비켜 서며 기태가 늘 하던 각도로 턱을 들고 시계줄 끝을 거울 모서리에 걸어 버린다. 변기태가 아이를 오인숙 쪽으로 밀며 그녀에게 붙으려는 순간, 국해란이 양손으로 줄을 비틀어 당기고 검게 죽은 은도금 가장자리가 먼저 벌어진다. 유리는 한 번에 무너지지 않고 거미줄처럼 금이 갔다가, 다음 당김에 턱 높이 손자국이 남은 자리부터 퍽 소리를 내며 안쪽으로 터진다.

깨진 틈 너머에는 회전목마 불빛 대신 탁한 아이보리 벽지와 전신거울이 그대로 서 있고, 못에 걸린 벨벳 단장복 소매가 축 늘어진 채 흔들린다. 좁은 선반 아래에서 회중시계가 줄에 끌려 짤랑거리자 국봉철이 반사적으로 손을 틈 안으로 밀어 넣고, 깨진 유리 끝에 손등이 길게 베인다. “네가 안 치운 거였네.” 기태가 내뱉자 국봉철은 대꾸하지 못한 채 피 묻은 손으로 틈 가장자리를 더듬는다. 오인숙은 아이의 입을 손바닥으로 막은 채 벽 쪽으로 바짝 붙어 있다가, 깨진 틈 아래 손자국 높이와 통로 손잡이 높이를 번갈아 보고 눈을 치켜든다. 그녀는 아이 어깨를 눌러 앉히며 낮게 말한다. “높이가 맞아. 이름 말고, 키였어.”

국해란은 아버지의 피가 번지는 것도 보지 않고, 깨진 경계 앞에서 기태의 비틀린 서 있는 각도를 그대로 따라 선다. 기태가 한 걸음 옮기자 그녀도 같은 발부터 옮기고, 둘 사이 바닥에는 시계줄이 팽팽한 은빛 선으로 떨린다. 오인숙이 아이 머리를 더 낮춰 자기 치맛자락 아래로 숨기고, 국봉철은 깨진 틈 앞에 무릎을 꿇은 채 손자국 번진 전신거울을 올려다본다.

シーン 14· 1978년 8월 14일 밤, 시계줄 끝의 방이 드러난 직후

이름보다 키

이름보다 키
場所단장실 거울 벽 앞 통로
時間1978년 8월 14일 밤, 시계줄 끝의 방이 드러난 직후
出来事오인숙이 아이의 입을 손바닥으로 막아 가슴팍에 눌러 숨기고, 변기태와 국해란이 깨진 거울 틈 앞에서 서로 길을 가로막는 사이 벽과 손잡이 높이를 눈으로 재듯 재빠르게 훑는다. 국봉철은 피가 밴 손으로 딸에게 다가가려 하지만, 해란은 아버지보다 기태와 아이 쪽을 먼저 보고 한 걸음씩 자리를 옮겨 통로를 좁힌다. 오인숙은 매표소 벽 뒤에 연필금으로 새겨 두었던 신장 표시를 떠올리고, 아이의 머리를 억지로 더 낮춘 뒤 손잡이 아래쪽의 어두운 틈으로 먼저 밀어 넣는다. 아이는 몸을 구겨 겨우 빠져들지만, 오인숙 자신의 어깨는 통로 가장자리와 거울 프레임 사이에 걸려 멈춘다.
影響이 장면에서 출구는 이름이나 표가 아니라 몸의 높이로 갈린다는 규칙이 행동으로 증명된다. 오인숙은 장부를 쥐고 있던 증인에서, 아이를 몸으로 빼내는 사람으로 완전히 넘어간다. 변기태는 아이가 나갈 수 있는 길이 실제로 있다는 것을 보지만, 동시에 누군가 남아야 한다는 다음 선택이 바로 눈앞에 왔다는 사실도 같이 맞닥뜨린다. 국해란은 아이보다 기태의 자리를 더 집요하게 노리고, 국봉철은 딸과 아이 사이에서 어느 쪽도 제대로 붙잡지 못한 채 더 깊이 늦는다.

오인숙이 아이의 입을 틀어막은 채 무릎으로 바닥에 주저앉아, 단장실 거울 벽 아래 손잡이 달린 합판 틈으로 아이 머리를 먼저 눌러 넣는다. 탁한 아이보리 벽지 앞 전신거울은 깨진 모서리마다 누런 빛을 늦게 물고, 변기태는 그 옆에서 국해란의 팔을 막아 세우려 몸을 비튼다. 국해란은 기태가 움직이는 쪽 발부터 똑같이 내딛으며 길을 덮고, 국봉철은 은색 시계줄이 축 늘어진 채 “해란아, 거긴 아니야” 하고 손을 뻗는다. 오인숙은 고개도 들지 않은 채 아이 귀에만 붙어 낮게 뱉는다. “이름 말하지 마. 숙여.” 아이는 울음을 삼키다 말고 두 팔을 접어 넣고, 손잡이 아래 검은 틈으로 이마부터 미끄러져 들어간다.

기태가 해란의 손목을 낚아채 뒤로 꺾자 선반 밑 회중시계 줄이 짤랑 울고, 해란은 아픈 기색도 없이 기태의 반웃음 같은 입매를 잠깐 흉내 낸다. “넌 또 남의 목소리로 불러 세우겠지.” 해란이 말하며 몸을 틀어 아이 발목 쪽으로 손을 뻗는 순간, 기태가 어깨로 그녀를 거울 프레임 쪽에 세게 밀어 붙인다. 국봉철도 뒤늦게 딸 허리를 붙잡으려 달려들지만 손은 허공을 긁고, 대신 오인숙의 블라우스 소매만 스친다. 그 사이 아이의 다리가 틈 너머로 사라지고, 오인숙은 양손으로 바닥을 짚어 자기 몸도 따라 들어가려 한다. 그러나 한쪽 어깨가 손잡이 높이 위 나무 턱에 턱 걸려 멈추고, 천이 찢기는 소리가 짧게 난다.

오인숙이 이를 악물고 다시 몸을 비틀자 앞치마 주머니에서 접힌 영수증이 빠져 거울 밑동에 들러붙는다. 아이는 틈 바깥에서 보이지 않게 된 채 한 번 헛기침만 하고, 그 소리에 기태가 고개를 홱 돌린다. 국해란은 그 빈 순간을 놓치지 않고 아래로 숙여 기태 발목을 향해 손을 뻗고, 국봉철은 딸 이름을 다시 부르며 두 사람 사이로 비집고 들어온다. 바닥에 걸린 오인숙의 어깨만 빠지지 않은 채, 손잡이 아래 열린 검은 틈이 사람 하나 지나간 높이로 숨처럼 얇게 남아 있다.

シーン 15· 1978년 8월 14일 밤, 아이를 출구 틈으로 밀어 넣는 바로 다음 순간

빠지지 않는 어깨

빠지지 않는 어깨
場所단장실 거울 벽 앞 통로
時間1978년 8월 14일 밤, 아이를 출구 틈으로 밀어 넣는 바로 다음 순간
出来事오인숙이 몸을 낮춘 아이를 거울 벽 아래 숨은 틈으로 먼저 밀어 넣는 데는 성공하지만, 자기 어깨가 손잡이 높이의 좁은 틈에 걸려 바깥으로 빠져나오지 못한다. 변기태는 국해란을 막아 세운 채 돌아와 오인숙의 팔과 허리를 잡아 빼내려 들고, 국봉철은 깨진 거울 틈과 딸 사이에서 손을 뻗다가 끝내 아무도 제대로 붙잡지 못한다. 그 순간 국해란이 바닥을 미끄러져 들어와 변기태의 발목을 움켜쥐고 안쪽으로 잡아당기며, 구조와 희생이 같은 몸싸움 안에서 한꺼번에 시작된다.
影響아이에게 실제 출구가 있다는 사실이 행동으로 증명되지만, 어른은 같은 길로 쉽게 빠져나갈 수 없다는 제한도 동시에 드러난다. 오인숙은 증인에서 완전히 구조하는 사람으로 넘어가고, 변기태는 아이를 살리는 쪽과 자기 자리를 지키는 쪽을 동시에 버텨야 하는 위치에 묶인다. 국해란은 더 이상 아이를 쫓지 않고 변기태만 겨냥해 바깥 자리를 빼앗으려 들며, 다음 장에서 누가 안쪽에 남을지 가르는 힘겨루기가 본격적으로 점화된다.

오인숙이 아이의 등을 두 손으로 밀어 검은 틈 안으로 밀어 넣자, 단장실 거울 벽 아래 열린 낮은 출구로 작은 운동화 밑창이 먼저 사라지고 바로 뒤에 반쪽 표가 손목에서 펄럭이며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러나 오인숙이 뒤따라 몸을 구겨 넣는 순간, 탁한 아이보리 벽지 옆 금속 손잡이에 오른쪽 어깨가 턱 걸려 멈춘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한 번 더 몸을 비틀지만, 앞치마가 먼저 빠져나가고 어깨뼈는 제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는다. 변기태가 국해란을 팔뚝으로 밀어 막은 채 돌아와 오인숙의 손목을 잡아당기고 다른 손으로 허리를 받쳐 올리자, 좁은 선반 위 은색 회중시계 줄이 세차게 흔들리며 짤랑 울린다. “아이부터 가게 해.” 오인숙이 벽에 눌린 얼굴로 내뱉고, 기태는 대꾸도 못 한 채 구두 뒤축으로 바닥을 밀어 그녀 몸을 뒤로 빼낸다.

국봉철은 깨진 거울 모서리에 피 묻은 손을 얹은 채 “해란아, 그만해” 하고 소리치며 딸 쪽으로 손을 뻗지만, 국해란은 아버지를 한 번도 보지 않고 기태가 오인숙을 끌어당기는 자세를 그대로 낮춰 따라 한다. 다음 순간 해란이 유리 파편 박힌 바닥을 무릎으로 미끄러져 들어와 기태의 발목을 낚아채고, 기태 몸이 반쯤 빠져나온 오인숙 위로 기울어 통로가 한꺼번에 막힌다. 오인숙은 빠져나오려는 대신 기태 소매를 붙잡아 자기 쪽으로 버티고, 국봉철은 둘 사이에 손을 찔러 넣다가 해란의 손등만 스치고 놓친다. 기태가 벽을 짚고 몸을 세우려 하자 해란이 그의 발목을 더 세게 비틀어 당기며, 기태가 늘 무대에서 쓰던 반웃음 없는 목소리로 짧게 말한다. “이제 네 차례야.”

오인숙의 어깨가 여전히 출구 턱에 걸린 채 들썩이고, 틈 너머로는 먼저 빠져나간 아이의 거친 숨만 작게 튄다. 기태는 한쪽 무릎을 바닥에 박고 오인숙 허리를 끌어안은 채, 다른 다리는 해란 손에 붙잡혀 거울 쪽으로 질질 끌린다. 국봉철의 시계줄은 깨진 거울 모서리에 걸린 채 팽팽하게 떨리고, 검게 죽은 거울 가장자리에서는 네 사람의 뒤엉킨 팔과 어깨가 반 박자 늦게 같은 모양으로 따라온다.

チャプター 04

シーン 16· 8월 14일 밤, 아이가 출구 틈으로 빠져나가고 오인숙의 어깨가 걸린 직후

발전기 앞의 손목

발전기 앞의 손목
場所발전기 칼날 스위치 앞, 단장실 거울 벽과 이어진 틈
時間8월 14일 밤, 아이가 출구 틈으로 빠져나가고 오인숙의 어깨가 걸린 직후
出来事변기태는 빠지지 않는 오인숙을 뒤에서 밀어 깨진 경계 밖으로 빼내려 하고, 그 틈을 타 국해란은 그의 발목을 붙잡아 다시 안쪽으로 끌어당긴다. 국봉철은 피 묻은 손으로 깨진 거울 틈을 더 벌리며 딸 쪽으로 몸을 들이밀지만, 해란은 아버지 대신 기태의 서 있는 각도와 손버릇만 따라 하며 자리를 겨눈다. 바깥에서는 서복순이 발전기 칼날 손잡이로 달려가고, 국봉철이 뒤늦게 빠져나와 그 손목을 붙잡아 스위치를 막으면서 발전기 앞 몸싸움이 시작된다. 미로 안의 끌어당김과 발전기 앞의 제지가 동시에 벌어지며, 암전을 늦출수록 누가 바깥에 남을지 더 불리해지는 형세로 바뀐다.
影響이 장면에서 구조와 방해가 처음으로 두 장소에서 한몸처럼 맞물린다. 기태는 오인숙을 빼내는 행동과 자기 자리를 지키는 싸움을 동시에 떠안게 되고, 해란은 아이가 아니라 기태만 남기려는 의도를 분명히 드러낸다. 국봉철은 딸을 살리려는 아버지의 얼굴로 서복순을 막지만, 그 행동 때문에 오히려 바깥 사람들까지 다시 경계 쪽에 묶어 두는 쪽으로 기운다. 서복순이 손잡이에 닿았다는 사실 자체가 이제 암전이 선택이 아니라 곧 벌어질 충돌의 문제임을 못 박는다.

변기태가 오인숙의 허리를 두 팔로 감아 뒤로 확 잡아당기자, 단장실 거울 벽 아래 깨진 유리턱에 걸려 있던 그녀의 어깨가 퍽 소리를 내며 빠져나오고 같은 순간 국해란의 손이 기태 발목을 낚아챈다. 탁한 아이보리 벽지 앞 전신거울은 금 간 틈마다 누런 불빛을 잘게 쪼개고, 못에 걸린 벨벳 단장복 소매가 셋의 몸에 휩쓸려 흔들린다. 오인숙은 바깥쪽 바닥으로 반쯤 넘어지면서도 기태 소매를 놓지 못하고, 기태는 무릎이 꺾인 채 한 손으로 그녀 등을 밀고 다른 다리로 해란의 끌어당김을 버틴다. 해란은 바닥에 낮게 붙은 자세 그대로 기태가 늘 그랬듯 턱을 비스듬히 들고 웃는다. “넌 나가도 또 남의 얼굴로 서.” 국봉철이 피 흘리는 손을 깨진 틈에 들이밀며 “해란아, 손 놔” 하고 소리치지만, 해란은 아버지를 보지 않고 기태 구두 끝이 버티는 각도만 똑같이 따라 맞춘다.

오인숙이 끝내 바깥으로 굴러 떨어지자 기태도 몸을 빼려 돌아서는데, 해란이 발목을 한 번 더 세게 비틀어 잡아 그의 구두가 기름 먹은 먼지를 길게 긁는다. 국봉철은 그제야 딸 쪽으로 기어들어오다 말고 바깥에서 울리는 발전기 쇳소리에 고개를 홱 돌린다. 공원 끝 발전기실에서 서복순이 천을 감은 손으로 칼날 손잡이를 움켜쥐는 순간, 국봉철이 거울 틈에서 몸을 빼내 피 묻은 손 그대로 달려들어 그녀 손목을 붙든다. 벌겋게 달아오른 손잡이 아래 시멘트 바닥에 두 사람 그림자가 뒤엉키고, 천테이프 감긴 전깃줄이 낮은 천장 밑에서 떨린다. “지금 내리면 해란이 박혀 버려!” 국봉철이 손목을 비틀어 돌리자 서복순은 몸을 낮춰 버티며 그의 팔꿈치를 밀어 올린다. 미로 쪽에서는 해란이 아직도 기태 발목을 놓지 않은 채 뒤로 기고, 발전기 앞에서는 서복순의 팔맥이 불거진 손등 위로 국봉철의 피가 번져 손잡이까지 미끄럽게 적신다.

기태가 유리 위에 손바닥을 짚고 몸을 돌려 해란의 손목을 붙잡아 떼어내려 하자, 깨진 거울 속 두 사람 팔이 실제보다 반 박자 늦게 엉겨 붙는다. 바깥으로 빠져나온 국봉철의 한쪽 구두 뒤축이 발전기실 문턱에 걸린 채, 그는 서복순 손목을 놓지 않고 뒤를 돌아 딸 이름을 다시 한 번 내지른다. 그 소리에 해란의 손가락이 잠깐 굳고, 기태 발목에는 다섯 개 손톱자국이 흰 분장 가루처럼 선명하게 남는다.

シーン 17· 1978년 8월 14일 밤, 아이가 출구 틈으로 빠져나간 직후

시계줄과 뺨의 피

시계줄과 뺨의 피
場所발전기 칼날 스위치 앞, 단장실 거울 벽과 이어진 틈
時間1978년 8월 14일 밤, 아이가 출구 틈으로 빠져나간 직후
出来事서복순이 칼날 손잡이를 향해 몸을 던지자 국봉철이 피 묻은 손으로 그녀 손목을 붙잡고 스위치 앞을 가로막는다. 국봉철은 지금 불을 내리면 국해란이 경계에 박힌다며 매달리고, 서복순은 미로 쪽에서 들려오는 아이 기침과 거친 엔진 떨림 사이에서 더는 버티지 못하고 그의 무릎을 걷어찬다. 국봉철의 몸이 꺾이며 손이 손잡이에서 떨어지지만, 그는 마지막으로 은색 시계줄을 휘둘러 서복순의 뺨을 찢는다. 같은 순간 기태는 이어진 틈 너머에서 그 몸싸움을 보고, 해란이 자기 발목을 놓치지 못하게 버티는 사이 스위치까지 닿을 시간이 거의 없다는 걸 눈앞에서 확인한다.
影響이 장면에서 서복순은 망설이는 관리인이 아니라, 피를 감수하고서라도 불을 끊는 쪽으로 넘어선 사람이 된다. 국봉철은 딸을 살리려는 아버지의 얼굴로 매달리지만, 그의 손이 실제로 막고 있는 것은 구조의 마지막 기회라는 점이 더 선명해진다. 기태에게는 바깥의 스위치와 안쪽의 거울 경계가 한몸처럼 묶여 있다는 사실이 행동으로 드러나고, 암전은 더 이상 가능성이 아니라 몇 걸음 앞의 사건으로 압축된다.

서복순이 천을 감은 손으로 벌겋게 달군 칼날 손잡이를 움켜쥐자, 발전기 칼날 스위치 앞 시멘트 바닥에 번들거리는 기름 자국 위로 국봉철이 미끄러지듯 달려들어 그녀 손목을 두 손으로 꺾어 잡는다. 낮은 천장 밑 천테이프 감긴 전깃줄들이 잘게 떨리고, 주황 점광이 국봉철 손등의 피를 금속처럼 번쩍이게 한다. “지금 내리면 해란이는 거기 박혀.” 국봉철이 숨을 씹듯 말하자, 서복순은 그의 팔을 떼어내려 어깨를 들이받고도 밀리지 않는다. 기태는 단장실 거울 벽과 이어진 깨진 틈 너머에서 그 둘의 그림자가 손잡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엉키는 걸 본 채, 해란에게 잡힌 발목을 비틀어 빼려 든다.

서복순이 갑자기 발을 빼 국봉철 정강이를 걷어차고, 그가 휘청이는 틈에 무릎을 들어 올려 정면으로 접어 버린다. 국봉철이 한쪽 무릎으로 주저앉으며 손잡이에서 손이 떨어지자, 그는 넘어지는 자세 그대로 조끼 앞에서 은색 시계줄을 낚아채 복순 얼굴 쪽으로 휘두른다. 가느다란 금속줄이 허공에서 짧게 울고, 서복순의 왼쪽 뺨이 옆으로 터지듯 벌어지며 피가 작업복 깃과 턱선으로 번진다. 서복순은 비명을 삼킨 채 눈도 닦지 않고 국봉철 손등을 구두 뒤축으로 밟아 바닥에 붙여 버린다. “애 기침 소리 안 들려?” 그녀가 내뱉는 동안, 국봉철의 시계줄 끝이 피와 기름이 섞인 바닥을 한 번 끌고 지나간다.

깨진 틈 안쪽에서는 해란이 기태의 종아리를 끌어당기며 같은 각도로 몸을 낮추고, 기태는 거울 가장자리에 어깨를 부딪친 채 바깥의 손잡이 쪽으로 손을 뻗는다. 서복순의 뺨에서 떨어진 피 한 방울이 칼날 손잡이 아래 철판에 찍히고, 그녀의 다른 손이 다시 천 감긴 손잡이를 찾아 올라간다. 국봉철은 바닥에 눌린 채도 딸 이름을 한 번 더 부르지만, 그 소리 위로 발전기가 더 거칠게 울어 손잡이 밑 금속판이 떤다.

シーン 18· 8월 14일 밤, 암전 직전

손자국 위의 손바닥

손자국 위의 손바닥
場所단장실 거울 벽과 이어진 발전기 칼날 스위치 앞
時間8월 14일 밤, 암전 직전
出来事변기태는 깨진 단장실 거울 틈으로 몸을 비틀어 들어가 손자국 번진 전신거울 위에 자기 흰 분장 묻은 손바닥을 세게 눌러 찍는다. 그 순간 국해란이 달려들어 그의 손목을 뜯어내려 하고, 국봉철은 피 묻은 손으로 둘 사이를 가르려다 오히려 경계를 더 흔든다. 발전기 칼날 스위치 앞에서는 서복순이 국봉철을 밀쳐 낸 상처 난 얼굴로 다시 손잡이에 매달리고, 안쪽과 바깥의 몸싸움이 한 박자씩 엇물린다. 기태와 해란은 같은 자리의 상처를 얼굴에 남긴 채 서로를 거울 안팎으로 밀어 넣으려 버틴다.
影響기태의 손바닥이 오래된 손자국 위를 덮으면서, 국봉철이 두 해 동안 붙들고 있던 길은 더 이상 한 사람만 기억하는 출구로 남지 못한다. 해란은 아이 대신 기태를 남겨 두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기태도 처음으로 자기 자리를 몸으로 지키는 싸움에 들어선다. 국봉철은 딸을 구하려는 손으로 오히려 경계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서복순은 더 늦으면 안 된다는 판단을 굳힌다. 다음 순간 스위치가 내려가면 누가 바깥에 고정될지가 이 몸싸움 하나에 달리게 된다.

변기태가 깨진 거울 틈으로 상반신을 들이밀어 단장실 전신거울의 마른 손자국 위에 자기 손바닥을 철썩 눌러 찍자, 검게 죽은 은도금 가장자리가 누런 불빛을 반 박자 늦게 토해 내고 선반 위 회중시계 줄이 짧게 짤랑거린다. 탁한 아이보리 벽지 앞에서 그의 손은 흰 분장과 피가 섞인 채 턱 높이 손자국을 덮고, 눌린 벨벳 냄새 밴 단장복 소매가 그 팔꿈치에 걸려 축 늘어진다. 국해란은 바로 그 손을 떼어내려 기태 허리에 몸을 부딪치며 달려들고, 기태는 어깨로 그녀를 밀어내면서도 손가락을 더 벌려 유리 위에 문지른다. “지워 봐.” 기태가 이를 드러내고 내뱉자, 해란은 대답 대신 그의 손등을 손톱으로 긁어 내린다. 유리 표면에 번진 흰 자국이 두 갈래로 밀리고, 거울 속에서는 기태의 손이 실제보다 늦게 떨어지려다 다시 붙는다.

국봉철이 피 묻은 손으로 둘 사이에 팔을 찔러 넣으며 “거기서 떼, 해란아!” 하고 외치지만, 해란은 아버지를 보지 않고 기태의 왼쪽 뺨을 향해 머리를 들이받는다. 얇은 유리 파편이 둘 사이에서 튀고, 기태와 해란의 얼굴에 같은 자리로 붉은 선이 그어진다. 기태가 비틀리며도 손바닥을 더 세게 눌러 끌어내리자, 오래 남아 있던 어깨 높이 손자국과 그의 새 자국이 한 덩어리로 번져 전신거울 속 통로가 순간 삐끗한다. 그 틈에 바깥 발전기 칼날 스위치 앞에서 서복순이 찢어진 뺨으로 숨을 몰아쉬며 국봉철의 등을 걷어차고 손잡이를 움켜쥔다. 국봉철의 시계줄은 아직 깨진 모서리에 걸린 채 팽팽하고, 그의 몸이 뒤로 꺾이면서 거울 틈도 함께 떨린다.

국해란이 기태의 손목을 두 손으로 비틀어 떼어내자 손바닥 자국이 미끄러진 채 길게 남고, 기태는 놓친 손으로 이번엔 해란의 손목을 붙잡아 깨진 경계 쪽으로 함께 넘어뜨린다. 둘의 구두와 맨다리가 유리 위에서 엉키며 같은 자세로 미끄러지고, 거울 안 얼굴과 바깥 얼굴이 어느 쪽이 먼저인지 분간되지 않게 겹친다. 그 뒤에서 서복순의 팔이 칼날 손잡이를 아래로 끌어당기기 시작하고, 발전기의 붉은 떨림이 금속 벽을 타고 한 번 크게 울린다.

シーン 19· 1978년 8월 14일 밤, 암전 직전

칼날이 내려가는 순간

칼날이 내려가는 순간
場所발전기 칼날 스위치 앞, 단장실 거울 벽과 이어진 틈
時間1978년 8월 14일 밤, 암전 직전
出来事서복순이 국봉철의 팔을 뿌리치고 마침내 칼날 스위치를 아래로 찍어 내린다. 같은 순간 단장실 거울 벽 앞에서 변기태와 국해란은 서로를 경계 안팎으로 밀어 넣으려 풍선 줄과 조끼를 붙잡고 동시에 몸을 던진다. 국봉철은 스위치에서 밀려난 채 딸 이름을 부르며 둘 사이로 기어들어와 팔을 끼워 넣고, 그 무게가 깨진 거울 쪽으로 쏠린다. 공원 전체의 불빛과 음악이 한꺼번에 꺼지면서, 굳어 가는 어둠 속에서 누가 바깥이고 누가 안쪽인지 분간되지 않는 상태가 만들어진다.
影響서복순의 선택으로 더는 망설일 시간이 사라지고, 구조와 희생이 동시에 고정되는 국면이 열린다. 변기태는 해란과의 자리싸움을 끝까지 몸으로 버티지만, 국봉철의 개입이 경계의 무게를 안쪽으로 기울게 만든다. 이 장면은 다음 장면에서 해란만 미로 안에 남게 되는 직접적인 원인이 되며, 국봉철이 딸을 붙잡으려 한 행동이 오히려 딸을 안쪽에 고정시키는 비극으로 이어질 발판을 놓는다. 공원의 암전은 단순한 정전이 아니라, 누가 돌아오고 누가 남는지를 결정하는 물리적 순간으로 굳어진다.

서복순이 천을 감은 손으로 칼날 손잡이를 끝까지 찍어 내리자, 발전기 칼날 스위치 앞 벌겋게 달아오른 쇳날이 짧게 번뜩인 뒤 아래로 꺾이고 국봉철의 피 묻은 손이 그 위를 헛짚는다. 기름 먹은 시멘트 바닥에서 국봉철이 무릎으로 미끄러지고, 낮은 천장 밑 천테이프 감긴 전깃줄들이 한 번에 떨린다. 단장실 거울 벽과 이어진 틈에서는 변기태가 깨진 경계 쪽으로 몸을 날려 국해란의 손목에 감긴 붉은 풍선 줄을 움켜쥐고, 국해란은 기태 조끼 앞섶을 비틀어 잡은 채 똑같은 각도로 어깨를 들이민다. “내려!” 서복순이 이를 악물고 외치는 소리와 동시에 북소리가 먼저 꺼지고, 바로 뒤에 회전목마 전구와 확성기 잡음이 목 잘린 듯 멎는다.

어둠이 덮치자 거울 속 반사만 반 박자 늦게 남아, 변기태와 국해란의 얼굴이 한몸처럼 붙었다 갈라진다. 국봉철은 발전기 문턱을 짚고 일어나려다 다시 넘어지면서도 “해란아!” 하고 소리치며 둘 사이로 팔을 밀어 넣고, 그 팔이 깨진 유리 모서리에 걸려 경계 한쪽을 안으로 눌러 버린다. 변기태는 바깥쪽 바닥을 구두 뒤축으로 긁으며 버티고, 국해란은 풍선 줄이 손목 살을 파고드는데도 놓지 않은 채 기태를 끌어당긴다. 서복순은 내려간 손잡이를 두 손으로 끝까지 눌러 붙든 채 움직이지 않고, 국봉철의 시계줄은 거울 모서리에 걸려 어둠 속에서 한 번 짤랑 울린다.

그 짧은 정지 속에서 깨진 거울 틈이 돌처럼 굳고, 변기태의 몸은 바깥 바닥 쪽으로 반 치수 밀려난 반면 국해란의 치맛단은 안쪽 유리 파편 사이에 붙잡힌다. 국봉철의 팔은 두 사람 사이에 비스듬히 끼인 채 떨리고, 붉은 풍선 줄만 검은 틈을 가로질러 팽팽하게 당겨진다. 꺼진 공원 한복판에서 마지막으로 보이는 것은, 단장실 거울 벽 안쪽으로 더 깊게 기울어진 국해란의 어깨와 바깥 바닥을 긁고 멈춘 변기태의 구두 끝이다.

シーン 20· 1978년 8월 14일 밤, 암전이 내려간 직후 불이 돌아오기 직전

안쪽으로 기운 무게

안쪽으로 기운 무게
場所발전기 칼날 스위치 앞, 단장실 거울 벽과 이어진 틈
時間1978년 8월 14일 밤, 암전이 내려간 직후 불이 돌아오기 직전
出来事서복순이 칼날 스위치를 끝까지 내리자 공원 전체가 꺼지고, 단장실 거울 벽과 이어진 틈의 경계가 돌처럼 굳는다. 변기태는 깨진 거울 앞에서 국해란의 손목에 감긴 풍선 줄을 자기 팔에 휘감아 버티고, 국해란은 기태의 조끼 앞섶을 움켜쥔 채 동시에 바깥으로 몸을 밀어 넣는다. 국봉철은 발전기 앞에서 무너진 자세 그대로 딸 이름을 부르며 기어들어와 둘 사이에 피 묻은 팔을 끼워 넣고, 그 무게가 거울 쪽으로 쏠리면서 경계가 안쪽으로 기운다. 기태는 국봉철의 팔을 딛고 바깥 바닥으로 넘어지고, 해란은 한순간 같이 따라 나오다 발뒤꿈치부터 다시 굳은 경계 안에 붙잡힌다.
影響이 장면으로 누가 바깥에 남고 누가 안쪽에 고정되는지가 돌이킬 수 없이 정해진다. 국봉철이 딸을 붙잡으려 몸을 던진 행동은 해란을 구하는 대신 안쪽에 박아 두는 결과를 만든다. 변기태는 자기 얼굴을 한 상대와의 자리싸움에서 살아 나오지만, 해란을 남겨 두고 나온 사실을 몸으로 떠안게 된다. 다음 장은 살아 나온 사람들의 셈과, 해란을 다시 잃은 국봉철의 붕괴, 그리고 더는 숨길 수 없어진 진실의 폭로로 이어진다.

국봉철이 어둠 속 바닥을 긁으며 기태와 해란 사이로 피 묻은 팔을 밀어 넣자, 발전기 칼날 스위치 앞 주황 점광까지 꺼진 자리에서 깨진 거울 모서리만 희끗하게 번뜩였다. 기태는 한 손으로 거울 프레임을 붙들고 다른 팔에 감긴 붉은 풍선 줄을 잡아챘고, 해란은 그의 조끼를 쥔 채 기태가 늘 무대에서 버티던 각도로 턱을 들고 같이 밀어 나왔다. 굳어 가는 경계에 국봉철의 팔꿈치가 먼저 끼자, 시계줄이 유리 끝에 걸려 짤랑 한 번 울리고 거울의 무게가 안쪽으로 푹 기울었다. “해란아!” 국봉철이 쉰 목으로 내지르자 해란이 처음으로 아버지 쪽을 봤고, 그 짧은 틈에 기태가 발뒤꿈치로 시멘트 바닥을 박차 몸을 바깥으로 꺾었다.

해란도 동시에 따라 붙었지만, 그녀의 한쪽 발이 깨진 경계선 안쪽 유리턱에 붙들린 채 멈췄다. 기태 조끼 앞섶이 해란 손에 뜯겨 나가고, 흰 분장 묻은 천 조각이 두 사람 사이에서 팽팽히 늘어났다 끊어진다. 국봉철은 자기 팔이 둘 사이를 더 벌리는 것도 모른 채 어깨를 더 들이밀었고, 그 힘에 해란의 몸이 허리부터 뒤로 젖혀졌다. 서복순은 뺨의 피를 닦지도 못한 얼굴로 꺼진 손잡이 곁에 선 채, 국봉철 등이 안쪽으로 밀어 넣는 모양을 그대로 보고만 있었다.

다시 전구에 불이 들기 직전, 기태는 바깥 바닥에 무릎부터 떨어지고 해란은 거울 안쪽에서 같은 자세로 한 박자 늦게 멈췄다. 누런 불빛이 돌아왔을 때 바깥에는 기태의 팔에 감긴 붉은 줄만 남아 있었고, 안쪽의 해란은 빈 손으로 깨진 틈 앞에 서 있었다. 국봉철의 팔은 아직 둘 사이에 끼인 채 떨리고, 해란의 신발 끝은 유리턱 안쪽에서 한 치도 더 나오지 못한 채 굳어 있었다.

チャプター 05

シーン 21· 암전 직후, 전구가 다시 들어온 새벽 직전

불이 돌아온 자리

불이 돌아온 자리
場所단장실 거울 벽과 톱밥 무대 계단 사이 통로
時間암전 직후, 전구가 다시 들어온 새벽 직전
出来事변기태가 다시 켜진 전구 아래에서 국해란의 손목을 놓아 버티던 자세를 풀자, 거울 안쪽에 고정된 해란이 한 걸음 뒤로 물러난다. 국봉철은 피 묻은 팔을 깨진 경계 안으로 찔러 넣어 딸을 잡으려 매달리지만, 해란은 그의 손을 받지 않고 풍선 줄을 바닥에 떨어뜨린 채 뒤로 더 물러선다. 오인숙은 아이를 끌어안은 채 통로 바깥으로 기어나와 아이 입을 막고, 서복순은 찢어진 뺨에서 피를 흘리며 발전기 쪽에서 비틀거리다 국봉철의 어깨를 뒤에서 잡아당겨 거울에서 떼어 낸다. 기태는 그 틈에 바닥에 떨어진 표 반쪽과 풍선 줄을 주워 한 손에 움켜쥔다.
影響국해란이 스스로 아버지의 손을 끊고 안쪽으로 물러나면서, 방금 전까지 흔들리던 경계는 더는 협상의 자리가 아니라 상실이 굳어진 자리가 된다. 국봉철은 딸을 되찾겠다는 말로 버티던 사람에서, 눈앞에서 두 번째로 놓친 사실을 몸으로 떠안는 사람으로 무너진다. 변기태는 해란을 끌어낼 마지막 몸싸움이 끝났음을 확인하는 동시에, 살아 나온 사람과 남겨진 사람의 수를 직접 셀 수밖에 없는 증인의 자리에 선다. 오인숙과 서복순도 각각 아이를 바깥으로 빼내고 국봉철을 떼어 내는 행동으로, 침묵보다 끝내는 쪽으로 몸을 기울인다.

변기태가 깨진 거울 모서리에서 국해란의 손목을 놓고 뒤로 주저앉자, 단장실 거울 벽 앞 전신거울의 금 간 면이 다시 켜진 누런 전구를 잘게 쪼개며 해란 얼굴에서 기태의 닮은선을 지워 버린다. 탁한 아이보리 벽지에 박힌 유리 파편 사이로 국해란은 숨도 고르지 않은 채 한 걸음 물러서고, 국봉철은 발전기실 쪽에서 끌려온 무릎으로 바닥을 긁으며 “해란아, 이번엔 나와. 이번엔 공연 안 해” 하고 깨진 틈 안으로 팔을 들이민다. 해란은 아버지를 보지 않은 채 손목에 파고든 붉은 풍선 줄을 천천히 풀어 바닥에 떨어뜨린다. 얇은 고무가 유리 위에 닿아 붙는 소리가 나자, 기태는 자기 손등과 해란 뺨에 같은 자리로 난 상처를 한 프레임 안에서 본다.

오인숙이 아이를 품에 감싼 채 통로 밖으로 몸을 끌어내며 “입 열지 마, 아무 말도 하지 마” 하고 낮게 내뱉고, 아이 손목에 젖어 붙어 있던 표 반쪽이 툭 떨어져 톱밥 가장자리에 들러붙는다. 서복순은 찢어진 뺨을 소매로 훔칠 새도 없이 뒤에서 국봉철 겨드랑이에 팔을 걸어 그를 한 번에 잡아당긴다. 국봉철이 버티며 거울 가장자리를 쥐자 검게 죽은 은도금 틀이 삐걱 울리고, 선반 위 은색 회중시계 줄이 짤랑 떨린다. “놔요.” 서복순이 이를 악물고 끊어 말하자, 국봉철 손끝에서 피가 미끄러져 유리 아래로 길게 번진다. 그 사이 해란은 떨어진 풍선 줄을 한 번 내려다본 뒤, 뒤꿈치부터 어둠 쪽으로 물러난다.

변기태가 몸을 숙여 표 반쪽과 붉은 줄을 함께 집어 들 때, 거울 안쪽의 국해란은 끝내 돌아서서 통로 안으로 걸어간다. 국봉철은 서복순 팔에 붙들린 채 무릎으로 한 번 더 앞으로 쏠리지만 닿지 못하고, 오인숙은 아이 머리를 자기 어깨에 눌러 숨긴 채 톱밥 무대 계단 쪽으로 비틀비틀 물러난다. 다시 불이 들어온 자리에는 바깥으로 나온 사람들의 진흙 묻은 신발과, 안쪽으로 남은 사람의 붉은 줄 한 가닥만 유리턱에 걸려 흔들린다.

シーン 22· 암전 직후, 불이 돌아온 새벽 직전

거울 벽 앞의 아버지

거울 벽 앞의 아버지
場所단장실 거울 벽 앞 통로
時間암전 직후, 불이 돌아온 새벽 직전
出来事국봉철은 단장실 거울 벽 앞으로 비틀거리며 가서, 안쪽으로 물러난 국해란을 다시 붙잡으려 거울틀에 매달린다. 변기태는 그 뒤를 따라가 국봉철이 또 입을 다물고 밤을 덮으려 들기 전에, 바닥에 떨어진 회수되지 않은 표 묶음과 깨진 거울 조각 사이의 물증을 먼저 걷어 쥔다. 오인숙은 아이를 품에 붙인 채 통로 끝에서 버티며 국봉철을 말리지 않고 지켜보다가, 기태에게 표를 챙기라고 짧게 밀어붙인다. 서복순은 찢어진 뺨을 손등으로 누른 채 들어와 국봉철의 어깨를 거칠게 떼어 내고, 그 틈에 국봉철은 스스로 전신거울을 벽에서 들어 올려 공터 바닥 쪽으로 내던진다.
影響이 장면에서 국봉철은 딸을 붙들기 위해 남겨 둔 길을 자기 손으로 부수며, 더는 거울을 변명이나 희망으로 붙들 수 없는 자리로 밀려난다. 변기태는 그 붕괴를 옆에서 목격하면서도 연민 쪽으로 멈추지 않고, 표 묶음과 깨진 거울이라는 증거를 챙기는 쪽으로 몸을 옮긴다. 오인숙과 서복순 역시 국봉철을 달래거나 숨겨 주는 대신, 아이를 살리고 공원을 끝내는 편에 선다는 태도를 행동으로 굳힌다. 해란을 다시 데려오는 길은 닫히고, 남은 사람들은 이제 침묵이 아니라 폭로와 폐장의 순서로 움직일 수밖에 없게 된다.

국봉철이 피 묻은 두 손으로 전신거울 틀을 끌어안고 벽에서 떼어내려 달라붙자, 단장실 거울 벽 앞 탁한 아이보리 벽지가 그의 어깨에 구겨지고 좁은 선반 위 은색 회중시계 줄이 미친 듯 짤랑거린다. 불이 돌아온 누런 빛 아래 거울 속에는 국해란이 이미 몇 걸음 뒤로 물러난 채 서 있고, 못에 걸린 벨벳 단장복 소매가 국봉철 팔에 휘감겨 같이 끌려온다. 국봉철은 유리 쪽으로 얼굴을 들이밀며 “한 번만, 한 번만 나와라” 하고 쉰 소리로 내지르지만, 안쪽의 국해란은 대답하지 않고 붉은 풍선 줄을 바닥에 놓은 채 더 어두운 통로로 한 발 물러선다. 변기태는 그 옆으로 미끄러져 들어가 톱밥과 유리 파편 사이에 젖어 붙은 8월 14일 표 묶음을 집어 들고, 다른 손으로 깨진 모서리에 걸린 시계줄을 빼낸다.

오인숙이 아이의 손목에서 떼어 낸 반쪽 표를 구겨 쥔 채 통로 끝에서 “기태 씨, 그거 다 챙겨요. 이번엔 떨어뜨리지 말고” 하고 말하자, 국봉철이 홱 돌아서며 기태 멱살을 잡으려 든다. 서복순이 곧바로 끼어들어 국봉철의 팔꿈치를 뒤로 꺾고 벽 쪽으로 밀어붙이자, 그녀의 찢어진 뺨에서 번진 피가 작업복 깃에 검게 스민다. “이제 그만 놓으소.” 서복순이 이를 악물고 말하는 동안 국봉철은 버티다 말고 힘이 풀린 사람처럼 주저앉았다가, 다음 순간 다시 벌떡 일어나 두 팔로 전신거울 아래를 번쩍 떠받친다. 거울 밑동이 벽지 틈의 유리 파편을 우수수 떨구며 들리고, 변기태가 한 걸음 비켜서자 국봉철은 아무도 못 말리게 몸을 틀어 그 거울을 통로 바깥 공터 쪽으로 내던진다.

전신거울은 문턱을 찍고 넘어가며 검게 죽은 은도금 가장자리를 한 번 번쩍인 뒤, 바깥 흙바닥에서 둔탁하게 깨져 퍼진다. 국봉철은 빈 손으로 앞으로 고꾸라져 깨진 자리까지 기어가다 멈추고, 변기태는 팔에 표 묶음을 끼운 채 문턱에 서서 산산조각 난 유리 위로 더는 아무 얼굴도 이어지지 않는 것을 내려다본다. 뒤에서 오인숙이 아이를 안아 돌리고, 서복순은 벽에 걸린 단장복 소매를 잡아뜯어 바닥에 던진다.

シーン 23· 불이 돌아온 직후, 새벽 직전

아이를 데리고 나가는 길

아이를 데리고 나가는 길
場所단장실 거울 벽 앞 통로에서 톱밥 무대 계단으로 이어지는 길
時間불이 돌아온 직후, 새벽 직전
出来事오인숙이 아이 손목에 들러붙은 8월 14일 표 반쪽을 손톱으로 뜯어내고, 그대로 아이를 안아 울타리 바깥 버스 종점 쪽으로 데려가겠다고 못 박는다. 변기태는 그녀가 비운 손 대신 매표소 벽판에 새겨진 연필금 흔적을 뜯어 들라는 말을 듣고, 침묵을 깨는 쪽으로 떠밀린다. 국봉철은 피 묻은 손으로 길을 막으려다 아이 쪽이 아니라 표 조각 쪽으로 먼저 손을 뻗어, 아직도 사건을 장부와 회수물로 봉합하려는 버릇을 드러낸다. 서복순은 그 손목을 쳐내고 국봉철을 벽 쪽으로 밀어 붙여, 오인숙과 아이가 지나갈 틈을 몸으로 만든다.
影響이 장면에서 아이는 처음으로 공원 안쪽의 규칙에서 물리적으로 분리된다. 오인숙은 증언만 쥔 사람이 아니라 살아 있는 아이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는 보호자의 자리로 완전히 옮겨선다. 변기태는 따라 나갈 수 있는 기회를 눈앞에 두고도 남아 증거를 들라는 말을 받으면서, 마지막 무대에 설 이유를 강제로 떠안는다. 국봉철은 딸을 잃고도 여전히 표와 침묵 쪽으로 손이 먼저 가는 사람으로 드러나고, 서복순은 이제 사람을 살리는 쪽과 공원을 끝내는 쪽 사이에서 더는 물러서지 않는다.

오인숙이 아이 손목에 땀으로 눌어붙은 표 반쪽을 손톱으로 확 뜯어내자, 단장실 거울 벽 앞 통로의 누런 전구 아래에서 종이섬유가 하얗게 일어나고 아이가 짧게 숨을 멈춘다. 그녀는 아이를 자기 치마폭 쪽으로 끌어당긴 채 몸을 돌려 톱밥 무대 계단 쪽 좁은 길을 막아 선 변기태 앞에 선다. “넌 따라오지 마.” 오인숙이 젖은 앞치마로 아이 손목을 한 번 감싸 쥐고, 다른 손으로 기태 가슴을 밀어 매표소 쪽을 가리킨다. “벽판 뜯어. 키 금 간 거, 전부.” 계단 가장자리엔 흰 분장 가루와 비둘기 깃털이 톱밥에 눌어붙어 있고, 뒤쪽에서는 국봉철이 깨진 거울 쪽에서 비틀거리며 따라 나온다.

국봉철은 “그 표 내놔” 하고 쉰 목으로 내뱉으며 아이보다 먼저 오인숙 손안의 표 조각으로 손을 뻗는다. 변기태가 그 팔을 막아채자, 국봉철 소매 끝에서 피가 번진 채 두 사람이 톱밥 계단 첫 칸에 같이 부딪히고 검게 다져진 가운데가 푹 꺼진다. 서복순이 곧장 끼어들어 작업화 앞코로 국봉철 정강이를 밀어 접고, 찢어진 뺨을 닦지도 않은 얼굴로 그의 어깨를 벽 쪽에 찍어 누른다. “애부터 내보내.” 그녀가 짧게 자르자, 오인숙은 더 말하지 않고 아이를 번쩍 안아 계단 아래로 내려선다. 내려가는 사람과 막으려는 사람이 스치는 좁은 폭에서 아이의 구두 끝이 톱밥을 길게 그으며 지나가고, 오인숙의 팔 안쪽으로 뜯겨 나온 표 반쪽이 구겨진 채 사라진다.

변기태는 계단 아래로 멀어지는 아이 뒷머리를 한 번 보다가, 돌아서 매표소 벽판 쪽으로 달린다. 국봉철은 서복순 팔 밑에서 다시 몸을 빼내려 하지만, 그녀가 그의 재킷 깃을 틀어쥔 채 통로를 비워 두지 않는다. 오인숙은 뒤도 보지 않고 아이를 안은 채 울타리 쪽 어둠으로 나가고, 아이 손목에서는 방금 뜯긴 자리만 벌겋게 남는다. 변기태가 매표소 옆 판넬 틈에 손가락을 박아 넣자 얇은 합판이 못째 울며 벌어지고, 연필금이 촘촘히 새겨진 안쪽 면이 새벽빛 앞에 드러난다.

シーン 24· 8월 14일 밤이 새벽으로 넘어가는 직전

불을 끝내는 사람들

불을 끝내는 사람들
場所톱밥 무대 계단과 발전기실 앞
時間8월 14일 밤이 새벽으로 넘어가는 직전
出来事서복순은 발전기 기름 밸브를 직접 잠그고, 무대 뒤 천막을 붙든 줄을 칼로 끊어 공원의 불이 다시 살아날 길을 몸으로 없앤다. 국봉철은 무대 앞 접의자에 주저앉은 채 오인숙이 넘긴 회수되지 않은 표 묶음을 품고 버티지만, 도망치지도 숨기지도 못한 채 기태와 마주 본다. 변기태는 매표소 벽판에서 뜯어 온 연필금 흔적을 한 손에 들고 톱밥 무대 계단 아래에 서서, 더는 누구의 목소리 뒤로 숨을 수 없는 자리에 밀려 선다. 오인숙은 아이를 안고 울타리 바깥으로 먼저 사라지고, 남은 셋은 공원을 끝내는 방식만 다를 뿐 같은 자리에서 마지막 정리를 치른다.
影響이 장면에서 서복순은 망설이던 관리인 자리에서 완전히 내려와, 은하유원단의 심장을 자기 손으로 멈춘 사람이 된다. 국봉철은 끝내 도망치지 않음으로써 변명할 길마저 잃고, 표 묶음을 안은 모습 자체가 그가 알고도 덮어 온 밤들의 증거가 된다. 변기태는 단장이나 증인의 뒤에 숨을 틈을 잃은 채, 다음 장면에서 자기 목소리로 진실을 외칠 수밖에 없는 마지막 위치에 선다. 공원은 아직 서 있지만 이미 장사판이 아니라 폐쇄된 현장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서복순이 발전기실 옆 기름 밸브를 두 손으로 비틀어 끝까지 잠그고, 곧장 돌아서 무대 뒤 천막을 잡아당긴 굵은 줄에 녹슨 작업칼을 깊게 밀어 넣는다. 질긴 섬유가 몇 번 버티다 툭 끊어지자, 누런 전구줄 한쪽이 힘없이 처지고 톱밥 무대 계단 위로 벨벳 조각과 비둘기 깃털이 함께 떨어진다. 발전기실 문턱에는 아직 피가 묻은 국봉철의 구두 자국이 남아 있고, 서복순의 찢어진 뺨에서는 마른 핏줄이 턱까지 굳어 있다. 그녀는 칼을 앞치마에 문질러 넣으며 국봉철 쪽을 돌아본다. “다 끝났어요. 이번엔 다시 안 켜.” 국봉철은 무대 앞 접의자에 주저앉은 채 표 묶음을 가슴에 눌러 안고 있다가, 그 말에 고개만 들고도 일어나지 못한다.

변기태가 매표소에서 뜯어 온 벽판을 겨드랑이에 낀 채 세 칸짜리 톱밥 무대 계단 아래로 걸어오자, 가운데만 검게 다져진 계단면에 그의 구두 끝이 반달 모양으로 미끄러진다. 흰 분장이 반쯤 지워진 얼굴로 국봉철을 내려다보는 동안, 국봉철 손안의 8월 14일 표 모서리들이 땀에 젖어 구겨진다. “경찰 오기 전까진…” 국봉철이 입을 떼지만, 말은 끝까지 붙지 못한다. 기태는 대꾸하지 않고 그의 무릎 위 표 묶음을 한 번, 바닥에 떨어진 은색 시계줄을 한 번 본다. 서복순이 뒤에서 남은 천막 줄 하나를 더 끊자, 성처럼 칠해 놓았던 입구 장식이 옆으로 비스듬히 주저앉고 공장 담벼락 쪽 새벽빛이 울타리 틈으로 바로 들어온다.

국봉철은 끝내 도망치지 않은 사람처럼 의자에 붙은 채 숨만 거칠게 몰아쉬고, 변기태는 벽판의 연필금 자국이 보이게 손을 내려뜨린다. 서복순은 잘린 줄 끝을 발로 밀어 치우고, 꺼진 발전기 쪽으로 등을 돌린다. 무대와 객석 사이에는 박수 대신 늘어진 전구줄 그림자만 길게 걸려 있다.

シーン 25· 8월 15일 새벽 직전, 불이 꺼진 공원이 식어 가는 순간

박수 없는 새벽 무대

박수 없는 새벽 무대
場所톱밥 무대 계단과 무대 앞
時間8월 15일 새벽 직전, 불이 꺼진 공원이 식어 가는 순간
出来事변기태는 오인숙이 아이를 울타리 밖으로 데리고 나가는 등을 확인한 뒤, 매표소 벽판에서 뜯어 온 연필금 자국 판자와 8월 14일 표 묶음을 팔에 끼고 톱밥 무대 계단을 올라간다. 서복순은 발전기 기름 밸브를 잠그고 천막 줄을 칼로 끊어 전구 줄 몇 가닥을 아예 바닥으로 떨어뜨리고, 국봉철은 무대 앞 의자에 주저앉은 채 표 묶음 끝을 놓지 못하다가 기태가 무대에 서자 비틀거리며 일어나 그를 막으려 든다. 기태는 계단 중간에서 국봉철의 손을 뿌리치고, 찢어진 조끼 앞섶 사이로 드러난 셔츠에 묻은 피와 흰 분장을 그대로 둔 채 객석과 울타리 밖을 향해 아이들이 여기서 사라졌고 국봉철이 알고도 공연을 멈추지 않았다고 자기 목소리로 외친다.
影響이 장면에서 변기태는 처음으로 빌린 말투와 흉내를 버리고, 증거를 든 증인이자 고발자가 된다. 국봉철은 더는 단장이나 아버지의 말로 상황을 붙들지 못하고, 무대 아래에서 자기 죄가 밖으로 퍼져 나가는 소리를 몸으로 듣는 자리로 밀려난다. 서복순이 불을 끝내고, 오인숙이 아이를 데리고 나가며, 기태가 무대에서 진실을 입 밖에 냄으로써 은하유원단은 장사판의 얼굴을 잃고 범죄 현장으로 굳어진다. 이야기는 품삯도 박수도 없는 끝으로 닫히지만, 침묵만은 더 이어지지 못하게 된다.

변기태가 연필금이 패인 매표소 벽판을 겨드랑이에 끼고 톱밥 무대 계단 첫 칸을 밟자, 검게 다져진 가운데 자리가 그의 구두 밑에서 얕게 무너지고 누런 백열등 몇 개만 남은 무대 위로 흰 분장 가루가 떨어진다. 계단 아래에서는 서복순이 천막 줄을 칼로 한 번 더 끊어 전구 줄을 툭 떨어뜨리고, 오인숙은 아이의 머리를 자기 어깨에 눌러 숨긴 채 울타리 쪽 어둠으로 급히 걸어간다. 무대 앞 의자에 웅크리고 있던 국봉철이 표 묶음을 가슴에 눌러쥔 채 벌떡 일어나 “내려와. 이제 끝났어” 하고 쉰 목으로 외치며 계단 밑을 가로막지만, 기태는 둘째 칸에서 그의 손목을 쳐내고 마지막 칸을 올라선다.

변기태는 무대 한가운데서 금 간 토끼 상자 옆에 표 묶음과 벽판을 내던져 관객석 쪽으로 펼쳐 보인다. 반쯤 지워진 흰 얼굴 아래 입술이 벌어지고, 이번에는 국봉철의 저음도 능청도 아닌 목소리가 확성기 없는 새벽 공기 위로 곧게 나간다. “아이들이 여기서 사라졌습니다. 오늘만이 아닙니다. 저 사람은 알고도 공연을 계속했습니다.” 국봉철이 무대로 기어오르듯 달려들다 톱밥 계단 모서리에 발을 헛디뎌 한쪽 무릎부터 꺾이고, 서복순이 뒤에서 그의 어깨를 붙잡아 더 못 오르게 누른다. 기태는 발치의 판자를 발끝으로 밀어 앞으로 세우고, 거기 새겨진 키 자국들을 무대 아래로 향하게 돌린다.

울타리 밖 어둠에서는 몇 사람이 걸음을 멈추고 철제 살 사이로 안을 들여다보고, 오인숙은 아이를 안은 채 한 번도 돌아보지 않고 버스 종점 쪽으로 사라진다. 국봉철이 바닥에 손을 짚은 채 고개를 들지 못하는 동안, 서복순은 무대 옆 마지막 전구 선을 잡아당겨 소켓째 뽑아 버린다. 불빛이 한 줄 더 죽자 기태 얼굴에 남은 흰 분장은 반쪽만 떠 있고, 그는 아무 인사도 받지 않은 채 계단을 내려와 표 없는 매표소 앞을 지나 울타리 문 밖으로 걸어 나간다. 뒤편 공터에는 넘어뜨린 의자, 찢어진 천막, 펼쳐진 표 묶음과 키 자국 판자만 남아 새벽빛을 먼저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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