筋書き
나화진은 새벽 6시 40분, 해원마법고등학교 정문 앞 봉쇄 테이프를 손으로 끊고 들어간다. 손바닥에는 젖은 분필 냄새가 달라붙고, 운동장 한가운데 솟은 흑칠판 오벨리스크에는 누군가 삐뚤게 쓴 문장이 아직 마르지 않은 상처처럼 번져 있다. “오늘 지각한 자는 그림자로 먼저 등교한다.” 첫 종이 울리기 전인데도 복도에는 학생들의 그림자가 빗자루를 들고 바닥을 쓸고, 본래 주인들은 로브 소매 안에 손을 숨긴 채 자기 발밑을 보지 못한다. 나화진은 국가 발급 참나무 회초리를 꺼내 들지만 곧바로 휘두르지 않는다. 그는 분필탄 하나를 장전하고 탄피 냄새를 맡은 뒤 출석부 여백에 숫자 12를 적는다. 외부 목표는 학교를 봉쇄 전에 정상화하는 것이지만, 그가 정말로 피하려는 것은 또 한 번 “정당한 징계”라는 이름으로 아이를 조항 속에 밀어 넣는 일이다.
첫 번째 결계는 체육관에서 열린다. 배구 네트가 사슬처럼 내려앉고, 2학년과 3학년 학생들이 서로의 머리카락을 뽑아 주문 재료로 던진다. 관중석에는 개구리 의자로 변한 교사들이 앉아 있고, 그중 몇 명은 굳은 손가락으로 바닥의 분필선을 조금씩 밀어 결계의 틈을 가리킨다. 나화진은 분필탄 두 발로 네트 사슬을 끊고 학생들을 바닥에 엎드리게 하지만, 결투를 주도하던 학생 하나가 교칙서의 붉은 문장을 방패처럼 띄우자 회초리를 쥔 손을 등 뒤로 숨긴다. 그 순간 이세봄이 칠판 지우개를 까마귀로 바꿔 날려 보내 붉은 문장을 쪼아 먹게 한다. 그녀는 훔친 출석부를 품에 안고 나화진에게서 달아나려 하지만, 복도 끝에서 울던 1학년이 그림자 없이 주저앉자 멈춰 선다. 이세봄은 급식 빵 반쪽을 그 아이 손에 쥐여 주고, 대신 자기 왼손 소매를 세 번 접는다. 거짓말을 하려는 표시다. 그녀는 “출석부는 없어졌다”고 말하지만, 손톱은 품 안 책등을 두드리고 있다.
나화진은 이세봄을 붙잡아 출석부를 압수하려다, 그녀가 계단이 뒤집히기 직전 먼저 발을 빼는 것을 본다. 복도 2층이 세 번째 반복될 때 이세봄은 출석부 여백의 잉크 번짐과 천장 종의 흔들림을 보고 함정의 방향을 알아맞힌다. 나화진은 그녀의 손목을 잡아 끌고, 이세봄은 반사적으로 분필 칼날을 그의 목 앞에 세운다. 둘은 서로를 겨눈 채 미끄러운 복도 바닥을 따라 급식실 지하로 떨어진다. 추락 직전 나화진은 마지막으로 남은 계단 난간을 회초리로 걸어 이세봄을 먼저 끌어올리고, 그 대가로 회초리 끝에 머리카락 같은 금이 하나 생긴다. 이세봄은 그 금을 보고 처음으로 출석부를 완전히 숨기지 않는다. 그녀는 자기 그림자를 되찾고 싶지만, 더 큰 목적은 문도겸의 이름을 출석부에서 지워 학교 바깥으로 밀어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 이름이 지워지면 문도겸은 탈출할 수 있지만, 안쪽 사람들의 기억에서 먼저 사라진다. 나화진은 그녀의 계획이 구원인지 처벌인지 판단하지 못한 채, 출석부를 압수하는 대신 한 손으로 함께 들고 걷게 한다.
급식실은 이미 작은 왕국이다. 은솥은 왕좌처럼 조리대 위에 올라가 있고, 카레 냄새와 쇠 냄새가 김으로 엉겨 천장에 맺힌다. 문도겸은 얼룩진 앞치마를 망토처럼 걸치고 은솥 가장자리를 숟가락으로 일정하게 두드린다. 그는 겁먹은 1학년에게 카레를 더 퍼 주고, 바로 그 손으로 해골 완장을 채운다. 나화진이 문을 부수고 들어오자 문도겸은 웃으며 “선생님 편 드는 공무원 기사님, 보스방 입장권은 챙겼냐”고 묻는다. 그의 뒤에는 권마루가 서 있다. 권마루의 손가락에는 검은 분필가루가 끼어 있고, 로브 소매 안쪽에는 꺾인 만년필 촉이 숨겨져 있다. 문도겸은 권마루의 어깨를 두드리며 오벨리스크에 새 문장을 쓰라고 시킨다. “감독관의 체벌은 학생 대표의 허가를 받는다.” 권마루가 머뭇거리자 문도겸은 울고 있는 1학년의 완장을 잡아당겨 은솥 김 속으로 밀어 넣는다. 권마루는 결국 손을 든다.
나화진은 분필탄 세 발을 연달아 쏴 은솥 둘레 결계를 깨고, 이세봄은 출석부를 펼쳐 문도겸의 이름 줄 위에 물방울 모양의 삭제 부호를 그린다. 그러나 문도겸은 일부러 주문 마지막 음절을 씹어 결계를 비틀고, 이세봄의 손등에 튄 불꽃을 자기 국자로 받아낸다. 그는 그녀를 완전히 다치게 할 생각이 없다. 그 짧은 삐끗함을 나화진이 본다. 문도겸은 폭군처럼 군림하지만, 이세봄이 다칠 때마다 주문을 망친다. 나화진이 그 틈으로 돌진해 문도겸의 손목을 회초리로 눌러 은솥에서 떼어 내자, 교칙서가 허공에 붉게 떠오른다. “정당한 징계.” 나화진은 때릴 수 있다. 합법이고, 쉽고, 학생들이 숨을 죽이고 기다리는 장면이다. 하지만 그는 회초리를 휘두르는 대신 문도겸의 손목을 붙잡은 채 바닥으로 함께 굴러 은솥 밑의 불을 꺼 버린다. 카레 김이 사라지자 개구리 의자 교사 몇 명의 눈이 사람처럼 깜박인다.
그때 교장실 천장 종이 첫 번째로 크게 울린다. 학교가 한 층 더 접히고, 급식실 바닥이 벌어져 모두가 교장실 앞 복도로 쏟아진다. 천장에는 젖은 시험지들이 붙어 흔들리고, 그 위에 백윤서의 기억들이 글씨 번진 답안처럼 매달려 있다. 백윤서는 임시 교장 명찰을 비뚤게 단 채 교칙서를 들고 서 있다. 목소리는 분필을 씹은 듯 갈라졌지만, 그녀는 문장을 일부러 한 글자씩 틀리게 읽는다. “모든 학생은 즉시 복종한다”를 “모든 학생은 즉시 복도한다”로 읽자, 복도 바닥이 잠깐 열려 갇힌 학생들이 숨을 쉴 틈을 얻는다. 백윤서는 나화진에게 숨겨 둔 문도겸 퇴학 공문을 내민다. 처벌해 달라는 것이 아니다. 그녀는 문도겸을 학교 바깥으로 밀어내고 모두의 기억에서 지우는 마지막 오독을 허락해 달라고 요구한다. 문도겸은 웃지만 목덜미를 긁어 피가 배어 나오고, 이세봄은 출석부를 더 세게 끌어안는다.
바깥에서는 장휘람이 교육부 임시 통제소에서 봉쇄 도장을 꺼낸다. 그는 구두코의 분필가루를 털고, 봉쇄선 안쪽에서 들리는 비명에 만년필 뚜껑을 닫는다. 그의 눈앞 보고서에는 해원마법고가 “특수 교칙 오염”으로 분류되어 있고, 안에 남은 이름들은 각주로 들어갈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나 종이 두 번째로 울리자 통제소 책상 일부가 학교 안으로 빨려 들어가고, 장휘람 자신도 봉쇄 도장을 쥔 채 교장실 복도 끝에 떨어진다. 그는 몸을 일으키자마자 나화진의 회초리 균열을 보고 징계 절차를 읊는다. 나화진이 학생을 먼저 끌어내려 했으므로 장비 손상이 발생했고, 마지막 분필탄 사용 여부는 감사 대상이라는 말이다. 나화진은 대답 대신 무너지는 천장 아래 깔릴 뻔한 권마루를 잡아당긴다. 장휘람은 조항 번호를 낮게 읊다가, 권마루가 품에 안은 출석부에서 같은 학생 이름이 세 번 반복된 명단을 보고 손목시계 줄을 세게 조인다. 피부에 붉은 자국이 남는다. 그는 예외 문구를 알고 있지만 말하지 않는다.
권마루는 오벨리스크를 깨운 첫 낙서가 자기 장난이었다고 털어놓는다. 입학식 날 로브 주머니에서 검은 분필을 발견했고, “지각하면 그림자가 청소한다”고 쓴 문장이 다음 날 진짜 교칙이 되었다. 문도겸은 그를 겁주고 달래며 예언자로 만들었다. 하지만 문도겸이 권마루를 이용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유급과 생활기록부 한 줄에 묶여 학교 밖에서도 계속 불량품 취급을 받던 문도겸은, 오벨리스크의 종을 손에 넣으면 바깥의 질서까지 끊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자기 왕국을 만들었고, 그 왕국 안에서 후배들에게 밥을 퍼 주며 완장을 채웠다. 나화진은 그 모순을 눈앞에서 본다. 문도겸은 구해야 할 학생이자, 지금 당장 막아야 할 폭군이다.
장휘람은 봉쇄 도장을 바닥에 찍으려 한다. 도장이 닿으면 종은 멈추지만, 안에 남은 사람들은 교칙서의 각주로 정리된다. 백윤서가 몸을 던져 그의 팔을 붙잡고, 이미 굳어 가는 손가락으로 바닥 분필선을 밀어 도장 자리를 비껴 나가게 한다. 장휘람은 그녀를 밀쳐내며 예외 문구는 “현장 감독관이 교육 목적의 비징계 행위로 던전 핵심 규칙을 중단시킬 때”만 가능하다고 말해 버린다. 말하고 나서야 그는 입을 다문다. 나화진은 그 문구를 듣고 마지막 분필탄 하나를 꺼낸다. 교칙서를 태우면 던전의 규칙은 멈출 수 있지만, 복도 어딘가의 아이 하나가 벽 속으로 접힌다. 학생들을 구하는 데 쓰면 교칙서는 더 많은 조항을 삼킨다. 모두가 그 선택을 기다리는 순간, 권마루가 나화진의 회초리에 난 금을 본다. 그는 오벨리스크로 뛰어간다.
문도겸은 권마루를 막으려 달려들고, 나화진은 그를 몸으로 가로막는다. 둘은 교장실 문턱에서 서로의 멱살을 잡고 넘어지며 종줄처럼 늘어진 마이크 케이블에 얽힌다. 문도겸은 나화진의 손목을 비틀어 감독관 도장을 빼앗으려 하고, 나화진은 회초리로 그의 팔을 치지 않고 바닥에 박아 움직임을 막는다. 회초리에 금이 더 번진다. 이세봄은 출석부를 펼쳐 문도겸의 이름을 지우려 하지만, 손끝이 멈춘다. 지우면 문도겸은 사라진다. 남기면 그는 또 종을 칠 수 있다. 이세봄은 삭제 부호 대신 자기 이름 옆 결석 사유란에 “그림자 회수”를 완성하고, 빼앗겼던 그림자가 복도 빗자루에서 떨어져 나와 그녀의 발밑으로 기어온다. 그림자는 돌아오자마자 문도겸의 발목을 붙잡는다. 이세봄은 그를 지우지 않고 붙든다.
권마루는 오벨리스크 앞에서 검은 분필을 쥔다. 문도겸이 “쓰지 마”라고 외치자 권마루는 처음으로 그를 똑바로 본다. 그는 새 교칙을 쓰는 대신, 자기가 처음 쓴 장난 문장을 손바닥으로 문지르기 시작한다. 검은 가루가 살갗에 박히고, 나화진의 회초리에는 금이 빠르게 번진다. 나화진은 고통에 무릎을 꿇으면서도 마지막 분필탄을 쏘지 않는다. 그는 분필탄을 권마루에게 던진다. 무기가 아니라 지우개처럼 쓰라는 뜻이다. 권마루는 분필탄을 깨뜨려 흰 가루를 손바닥에 묻히고 오벨리스크를 문지른다. 흑칠판 표면이 비명을 내듯 갈라지고, 복도 청소를 하던 그림자들이 하나씩 주인에게 돌아간다. 대신 나화진의 회초리는 거의 반으로 갈라진다.
종이 세 번째로 흔들린다. 백윤서는 마지막 힘으로 교칙서를 펼치고, 이번에는 틀리게 읽지 않는다. 그녀는 학생들의 이름을 하나씩 끝까지 발음한다. 이름을 부를 때마다 천장에 붙은 젖은 시험지 하나가 떨어져 바닥에서 마른다. 그러나 문도겸의 이름에 이르러 목소리가 끊긴다. 문도겸은 몸부림을 멈추고, 자기 목덜미를 긁던 손을 내린다. 그는 이세봄에게 출석부를 빼앗으려 하지 않고, 권마루에게도 명령하지 않는다. 대신 은솥에서 가져온 찌그러진 국자를 종 쪽으로 던져 종의 추가 흔들리는 각도를 바꾼다. 종은 울리지 않고 천장에 금만 낸다. 그 대가로 문도겸의 해골 완장이 불에 탄 종이처럼 부서지고, 그가 왕처럼 부리던 학생들이 하나둘 그에게서 물러난다.
나화진은 마지막으로 회초리를 든다. 교칙서가 다시 붉은 문장을 띄운다. “정당한 징계.” 장휘람은 숨을 죽이고 본다. 문도겸도 눈을 감지 않는다. 나화진은 문도겸을 때리지 않는다. 그는 갈라진 회초리를 자기 무릎에 대고 꺾어 버린다. 국가가 발급한 체벌권의 물리적 증거가 부러지는 순간, 교칙서는 새 처벌 조항을 만들 대상을 잃고 허공에서 페이지를 마구 넘긴다. 나화진은 맨손으로 문도겸의 멱살을 잡아 교장실 바닥에 앉힌다. “징계는 나중에 받자. 지금은 출석부터 해.” 그 말에 백윤서가 문도겸의 이름을 끝까지 부른다. 문도겸은 처음으로 대답한다. “네.” 그 한 음절이 교장실 벽을 때리고 돌아오자, 오벨리스크의 검은 표면이 칠판처럼 벗겨진다.
학교는 한꺼번에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급식실 은솥은 여전히 찌그러져 있고, 체육관 천장에는 사슬 자국이 남아 있으며, 몇몇 교사는 개구리 의자에서 풀려난 뒤에도 한동안 손가락을 접지 못한다. 그러나 복도는 더 이상 같은 2층을 세 번 반복하지 않고, 출석부는 이름을 부를 때 숨소리를 내지 않는다. 이세봄은 자기 그림자를 발밑에 둔 채 출석부를 나화진에게 넘긴다. 다만 마지막 장 여백에는 작은 글씨로 탈출 주문 대신 결석 사유들이 적혀 있다. 아팠음, 무서웠음, 돌아오고 싶었음. 나화진은 그것을 증거물 봉투에 넣지 않고 백윤서의 책상 위에 둔다.
장휘람은 부러진 회초리를 회수하며 나화진에게 현장 권한 남용과 장비 파손을 통보한다. 그의 목소리는 차갑지만, 봉쇄 도장은 끝내 찍히지 않는다. 그는 보고서 맨 아래에 작은 별표를 달고, 그 옆에 예외 문구를 적는다. 손목시계 자국은 아직 붉다. 백윤서는 목소리를 거의 잃었지만 손바닥에 “조회는 내일”이라고 적어 학생들에게 보여 준다. 권마루는 오벨리스크가 있던 운동장 흙 위에 분필가루로 “지각해도 사람은 남는다”라고 쓰려다가 멈추고, 손등으로 지운다. 이번에는 어떤 문장도 교칙이 되지 않는다.
문도겸은 퇴학도 왕좌도 얻지 못한다. 그는 급식실 청소를 한다. 은솥을 닦다가 겁먹은 1학년이 다가오면 카레를 더 퍼 주려 손을 뻗지만, 해골 완장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국자를 내려놓는다. 이세봄은 그 모습을 보고 웃지 않는다. 나화진은 정문을 나서며 남은 분필탄 숫자를 출석부 여백에 적으려다, 손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새벽빛이 유리 위에서 천천히 떨어지고, 학교 운동장에는 검은 발자국 대신 학생들의 진짜 그림자가 길게 늘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