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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ytalk Original · 15 scenes · 5 chapters

내 체온으로 산소를 만들었다

unusual White pigeon 0Creator’s page →

서기 2146년, 화성의 농업 돔에서 토양관리 기술자로 일하는 전직 화산학자는 지구에서 보내온 씨앗 대신, 사람의 체온을 먹고 자라는 검은 덩굴 한 상자를 받는다. 돔의 산소 생산기가 고장 난 뒤 덩굴은 균열 난 벽을 감싸며 공기를 내놓지만, 자정이 지나면 뿌리가 침실 바닥을 뚫고 잠든 주민들의 발목을 묶어 온실로 끌고 간다. 기술자는 돔을 봉쇄하면 312명의 주민을 살릴 수 있지만 덩굴과 함께 갇힌 자신의 열두 살 딸을 포기해야 하고, 문을 열면 식민지 전체가 진공에 노출된다. 산소 잔량이 19분으로 줄어든 가운데, 온실 유리 너머에서 딸이 비상 차단 레버를 당기기 시작한다.

  • 4 characters
  • 5 locations
  • 15 scenes
  • Plot 3,734 ch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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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racters

Characters

윤서진

Female

화성 농업 돔의 토양관리 기술자로 일하며 화산 연구 경력을 숨긴 전직 화산학자

Profile

윤서진은 산소가 다하기 전 검은 덩굴의 뿌리와 윤해온을 온실에서 함께 꺼내 돔의 균열을 살리려 한다. 그 선택은 312명의 생존을 늦추고, 딸을 포기하라는 박도겸의 봉쇄 명령과 맞부딪힌다. 윤해온이 유리 너머에서 차단 레버를 당길 때마다 윤서진은 구조 신호를 보낼지, 딸의 명령대로 봉쇄를 승인할지 결정을 다시 해야 한다.

윤서진은 흙의 수분을 재는 손으로 사람의 맥박부터 확인하고, 누군가 자신을 영웅이라 부르면 즉시 산소 수치와 실패 가능성을 소리 내어 읊는다. 평소에는 해온의 기록표에서 틀린 숫자를 찾아 빨간 선을 긋지만, 비상 통신창에 딸의 봉쇄 명령이 뜨면 그 선을 지우지 못한 채 레버 쪽으로 달려간다.

Background

화산 분화구의 압력 변화를 연구하던 윤서진은 지구의 연구소가 화성 농업 돔을 단순한 실험장으로 취급하자 현장 기술자로 내려왔다. 이태주가 보낸 검은 덩굴을 처음에는 오염된 종자로 분류했지만, 덩굴이 균열을 봉합하고 산소를 내놓는 모습을 본 뒤부터 윤서진은 생존 장치와 포식자를 가르는 기준을 손으로 다시 세우게 되었다.

Description

윤서진은 마흔셋의 나이보다 더 단단하고 지친 얼굴로, 화성 농업 돔의 흙과 금속 가루가 밴 회색 작업복 위에 낡은 압력 조끼를 걸친다. 몸은 늘 출구와 온실 사이를 잰 듯 반쯤 앞으로 기울어 있지만, 시선은 산소 수치와 유리 너머의 딸 사이에서 매초 흔들린다. 왼손목에는 해온의 기록표에서 틀린 숫자를 지우다 멈춘 빨간 선이 작은 흉터처럼 남아 있다.

윤해온

Female

농업 돔의 온실 견습 기록원으로 배정되어 검은 덩굴의 생장 변화를 손으로 기록하는 아이

Profile

윤해온은 덩굴이 내놓는 산소를 끊어 312명의 주민을 살릴지, 뿌리에 붙잡힌 사람들을 풀어 줄지 스스로 결정하려 한다. 레버를 당길 때마다 덩굴은 윤해온의 체온을 빼앗고, 윤해온은 어머니 윤서진에게 구조 신호 대신 자신을 포기하라는 봉쇄 명령을 보내 온실 밖의 판단을 뒤집는다.

윤해온은 손바닥을 레버에서 떼지 않은 채 유리 너머의 윤서진에게 손가락으로 숫자를 세어 보이며, 통신창에는 짧고 정확한 봉쇄 코드를 반복해서 입력한다. 뿌리가 발목을 조여 올수록 입술은 파랗게 식지만,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면 레버를 놓고 붙잡힌 사람의 손부터 확인한다.

Background

윤해온은 화성의 저중력 교실에서 비상 격벽 훈련을 받을 때마다 어머니 윤서진이 마지막까지 문밖의 사람을 세는 모습을 보며 자랐다. 이번에는 윤서진이 자신을 구하러 올 것을 알기에, 그 습관을 끊게 만들려고 구조 요청이 아닌 봉쇄 명령을 먼저 보낸다.

Description

열두 살 윤해온은 화성 저중력 온실의 견습 기록원답게 몸에 맞춘 회색 작업복과 얇은 보온 조끼를 입고, 손목에는 덩굴의 생장 수치를 적는 낡은 기록판을 묶고 있다. 검은 뿌리가 발목을 감아도 작은 몸을 레버 쪽으로 기울인 채, 유리 너머의 어머니에게 구조가 아닌 봉쇄를 명령하는 차갑고 집중된 눈빛을 보낸다. 손바닥을 레버에서 떼지 않는 것이 그녀의 특징이며, 손가락으로 주민 수를 세는 동작만이 아직 누군가를 놓지 못한 마음을 드러낸다.

박도겸

Male

화성 식민지의 압력·산소 운영실을 17년째 지키며 비상 격리 권한을 독점한 시설 감독관

Profile

박도겸은 남은 19분 안에 모든 격벽을 닫아 312명의 주민을 살리고 식민지의 통제권을 지키려 한다. 윤서진이 열두 살 딸 윤해온을 포기하지 못할 것을 알기에 봉쇄 승인 코드를 빼앗아 직접 입력하지만, 문밖에 누구도 남기지 않겠다는 오래된 맹세 때문에 마지막 격벽 앞에서 손이 멈춘다.

비상 방송을 할 때는 초 단위의 숫자를 또박또박 읽지만, 혼자 통제실에 남으면 죽은 사람들의 이름을 산소 사용 기록 옆에 손으로 적는다. 윤서진이 해온의 구조를 요구할 때마다 박도겸은 승인 코드를 감춘 손을 등 뒤로 돌리며 명령을 반복하고, 그 명령이 끝날 때마다 닫히지 않은 문 쪽으로 먼저 시선을 보낸다.

Background

열아홉 해 전 산소 배관 사고에서 박도겸은 격벽 바깥에 남겨진 세 명의 작업자를 구하지 못한 채 구조문을 닫았다. 그날 이후 그는 누구도 문밖에 두지 않겠다고 맹세했지만, 그 맹세를 지키려면 이번에는 윤서진의 딸을 온실 안에 남겨야 한다.

Description

박도겸은 쉰여덟의 나이보다 더 오래된 사람처럼 보인다. 희끗한 검은 머리를 짧게 밀고, 압력·산소 운영실의 짙은 회색 작업복 위에 낡은 격리 권한 조끼를 걸쳤다. 그는 한 손에 봉쇄 승인 단말기를 움켜쥔 채 등을 곧게 세우지만, 마지막 격벽을 향한 시선만은 자꾸 늦어진다. 왼쪽 손목에는 열아홉 해 전 산소 배관 사고 때 멈춘 시계를 차고 있으며, 숫자를 읽는 입술과 떨리는 엄지가 서로 다른 명령을 내린다.

이태주

Male

지구 생태복원국의 극한환경 종자 운송관으로서 금지된 생체 표본을 화성행 화물에 섞어 보낸 연구자

Profile

이태주는 화성의 갈라진 돔을 덩굴이 스스로 봉합할 수 있다는 증거를 되살리려 윤서진에게 씨앗 상자 대신 검은 덩굴을 보냈다. 그 선택으로 연구 중단 명령을 뒤집을 기회는 생기지만, 이태주는 경력과 지구 귀환 자격을 잃고 뿌리망의 의식을 입증할 마지막 관찰값까지 공개해야 한다.

통신 기록을 읽을 때마다 이태주는 덩굴의 성장 시각 옆에 사람의 체온을 숫자로 적고, 위험 경고가 울리면 그 숫자부터 지운다. 윤서진에게 진실을 털어놓는 순간에는 변명 대신 발송 승인 코드를 낭독하지만, 화면 너머에서 윤해온의 이름이 나오면 손가락으로 책상 가장자리를 세 번 두드린다.

Background

화성 돔의 균열을 닫는 식물이 예산 심사에서 폐기된 뒤, 이태주는 지구 연구소의 냉각 보관고에서 회수한 덩굴의 뿌리 반응을 혼자 기록했다. 사람의 체온에 반응해 방향을 바꾸는 뿌리망이 단순한 생장 기관이 아니라 판단하는 구조일 수 있다는 값이 나오자, 이태주는 윤서진의 화산 지질 자료를 믿고 금지된 상자를 화성행 화물에 섞었다.

Description

36세의 이태주는 지구 생태복원국 냉각 보관고와 운송 격납고를 오가며 살아온 사람답게, 낡은 회색 운송 재킷과 열 차단 섬유 셔츠를 단정히 여미고 있다. 짧게 자른 검은 머리에는 관자놀이를 따라 이른 흰빛이 번졌고, 잠을 잊은 눈은 통신 기록과 체온 수치를 번갈아 좇는다. 그는 발송 승인 코드를 읽을 때마다 한 손가락으로 책상 가장자리를 세 번 두드리며, 손목 안쪽의 얇은 화상 흉터를 다른 손으로 가린 채 자신의 경력과 귀환 자격을 내놓을 준비를 한다.


Synopsis

Plot

산소 생산기가 멎은 순간, 아르테미스 농업 돔의 조명이 푸른색으로 꺼지고 주민들의 호흡이 한꺼번에 거칠어진다. 윤서진은 토양 실험 온실에서 균열 난 외벽을 감싼 검은 덩굴의 뿌리를 확인하다가, 지구에서 도착한 씨앗 상자 안에 덩굴 표본만 들어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상자를 보낸 이태주는 통신으로 자신이 금지된 생체 표본을 섞었다고 털어놓고, 윤서진에게 덩굴이 균열을 봉합하며 산소를 내놓는 대신 사람의 체온을 흡수한다고 경고한다. 윤서진은 그를 욕하는 대신 상자를 바닥에 내리쳐 뿌리의 방향을 바꾸려 하지만, 덩굴은 이미 온실 바깥 배수관을 타고 주거 링으로 번진다.

운영실의 박도겸은 산소 잔량을 19분으로 계산하고 식민지 전체 봉쇄를 준비한다. 윤서진은 온실 안에 남은 윤해온을 데리고 나오려 압력문으로 달려가지만, 해온은 유리 너머에서 비상 차단 레버를 당긴다. 레버가 내려갈 때마다 덩굴의 산소 배출이 줄고, 대신 뿌리에 묶인 주민 몇 명이 바닥에서 풀려난다. 박도겸은 윤서진의 손목을 붙잡아 문 앞에서 막고, 해온의 생체 인증 없이는 봉쇄가 완성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윤서진은 그의 팔을 비틀어 놓고 문을 열려 하지만, 압력 차가 생기며 온실 유리 전체에 금이 간다. 박도겸은 몸으로 레버를 밀어 닫고, 윤서진은 딸과 312명의 주민 사이에서 어느 쪽도 즉시 구하지 못한 채 뒤로 밀려난다.

해온은 덩굴에 발목을 잡힌 채 온실 통로를 기어가며 다른 주민들의 손을 하나씩 확인한다. 그녀는 의식이 흐려진 정비공의 체온을 덩굴에서 떼어내려 칼날을 뿌리 사이에 밀어 넣지만, 뿌리가 조여 오며 자신의 발목에도 검은 자국이 남는다. 해온은 손가락으로 남은 사람 수를 세어 유리 너머의 어머니에게 보이고, 봉쇄 코드를 반복해 입력한다. 윤서진은 그 신호를 구조 요청으로 해석하려 달려가다가, 해온이 의도적으로 자신을 포기하라는 명령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윤서진은 온실의 보조 통로를 통해 들어가려 하지만 박도겸이 방화 격벽 앞에서 그녀를 가로막는다. 두 사람은 좁은 복도에서 서로의 장비를 빼앗으며 몸싸움을 벌이고, 윤서진은 박도겸의 손에서 봉쇄 승인 장치를 낚아챈다. 박도겸은 17년 전 돔 붕괴 때 문을 늦게 닫아 가족을 잃은 뒤, 다시는 한 사람 때문에 전체를 위험에 빠뜨리지 않겠다고 맹세했다고 털어놓는다. 윤서진은 그의 손을 장치에서 떼어 내며 그 맹세가 이번에는 죽어 가는 사람들을 문 안에 가두는 방식으로 반복되고 있다고 맞선다. 그 순간 주거 링의 바닥 열선이 모두 켜지고, 잠들어 있던 주민들의 발밑에서 뿌리가 솟는다. 두 사람은 싸움을 멈추고 복도로 달려가 주민들을 깨우지만, 몇 명은 뿌리에 끌려 이미 온실 방향으로 사라진다.

이태주는 지구에서 보낸 긴급 착륙선을 포기하고 화성 통신 중계실에 직접 내려온다. 그는 덩굴의 발송 승인 코드를 들고 운영실에 들어오지만, 윤서진은 그가 가져온 정보보다 몸을 요구한다. 그녀는 이태주의 손목을 붙잡아 온실로 끌고 가고, 박도겸은 그의 목에 작업용 절단기를 겨눈다. 이태주는 덩굴이 단순히 체온을 빼앗는 식물이 아니라, 흡수한 생명체의 맥박과 이동을 따라 뿌리망을 재배치한다는 사실을 말한다. 그는 지구에서 실험하던 중 덩굴이 연구자의 손을 놓아 주고 균열 난 배양벽을 먼저 봉합하는 모습을 보았지만, 그 뒤 연구자가 다시 다가가자 덩굴이 그를 온실 깊숙이 끌고 갔다고 고백한다. 윤서진은 그의 말이 구조법이 아니라 실패의 반복임을 깨닫고, 이태주에게 직접 뿌리망 안으로 들어가 해온에게 접근하라고 명령한다.

세 사람은 압력문을 열지 않고 온실의 배수관을 따라 기어 들어간다. 윤서진은 화산암의 냉각 균열처럼 갈라지는 뿌리의 방향을 읽고, 이태주는 자신의 체온을 덩굴 가까이에 대어 뿌리의 이동을 유도한다. 덩굴은 이태주의 팔을 감싸며 그를 끌어가고, 박도겸은 안전줄을 잡아당겨 그를 붙든다. 이태주는 줄을 끊으려 하지만 윤서진이 그의 손목을 밟아 막고, 세 사람은 뿌리망 사이에서 서로의 몸을 연결한 채 전진한다. 그들이 해온에게 닿자 해온은 어머니의 손을 잡지 않고, 뒤에 쓰러진 정비공의 손을 먼저 덩굴에서 떼어 낸다. 윤서진은 딸의 선택을 보고 절단기를 들어 뿌리를 끊지만, 온실 전체의 산소 기포가 즉시 사라지고 주민들의 숨이 막히기 시작한다.

박도겸은 해온을 끌어내려 하지만 해온은 레버를 놓지 않는다. 그녀가 손을 떼면 덩굴이 다시 산소를 만들고, 계속 잡고 있으면 봉쇄가 확정되어 온실 안 사람들을 버리게 된다. 윤서진은 해온의 손가락을 레버에서 떼려 하고, 해온은 어머니의 손등을 밀어낸다. 두 사람의 힘겨루기 중 레버가 중간 위치에 걸리며 온실의 두 압력 구역이 동시에 열리기 시작한다. 박도겸은 비상 격벽을 닫으려 달려가지만, 윤서진은 그의 몸을 붙잡고 문 앞에 함께 넘어진다. 박도겸은 그녀를 밀어내는 대신 자신의 어깨를 격벽 틈에 끼워 문이 완전히 닫히지 않게 하고, 온실과 주거 링 사이에 좁은 공기 통로를 만든다. 그 선택으로 그의 어깨가 문에 눌리고 봉쇄 권한은 무효화된다.

이태주는 검은 덩굴의 가장 두꺼운 뿌리로 기어가 자신의 체온을 밀어 넣는다. 덩굴은 그를 온실 중앙으로 끌어당기며 주변 사람들의 발목을 놓고, 동시에 균열 난 외벽 쪽으로 새 뿌리를 뻗는다. 윤서진은 해온에게 레버를 완전히 내리라고 하지 않고, 뿌리의 방향이 바뀌는 순간 손을 놓으라고 지시한다. 해온은 산소 수치가 아니라 사람들의 맥박을 세며 때를 기다린다. 박도겸은 문틈에서 빠져나와 이태주의 안전줄을 붙잡고, 이태주가 끌려갈수록 줄을 자기 허리에 감는다. 덩굴이 세 사람을 동시에 당기자 윤서진은 절단기로 뿌리를 자르는 대신, 화산재 토양 아래 묻힌 응축수 배수관을 열어 차가운 물을 뿌리망에 쏟아붓는다.

차가운 물에 닿은 뿌리들이 수축하면서 덩굴의 힘이 약해지고, 해온은 그 짧은 틈에 레버를 놓는다. 산소 생산은 멎지만 뿌리들이 사람들의 발목에서 풀린다. 윤서진은 해온을 품에 끌어안고, 박도겸은 문틈을 지탱하다 바닥에 쓰러진다. 이태주는 덩굴에서 풀려나지만 한쪽 팔의 감각을 잃고, 자신이 만든 생명체를 죽여야 한다고 말한다. 윤서진은 그를 때리는 대신 절단기를 건네며 외벽 균열로 뻗은 뿌리를 함께 잘라 달라고 한다. 네 사람은 주민들과 함께 온실을 가로질러 이동하고, 각자 한 줄씩 뿌리를 끊어 덩굴의 산소 주머니를 주거 링의 수동 공기 저장고로 연결한다.

산소는 19분을 버티게 할 만큼 늘어나지 않지만, 차가운 물과 수동 저장고 덕분에 주민들은 구조선이 도착할 때까지 열흘을 버틸 최소량을 확보한다. 박도겸은 자신의 봉쇄 권한을 주민들 앞에서 내려놓고, 앞으로 모든 격리 결정에 현장 주민 세 명의 몸이 직접 참여해야 한다고 선언한다. 이태주는 지구의 연구기관에 금지 표본과 실패 기록을 공개하고 귀환 자격을 포기한다. 윤서진은 해온의 발목에 남은 검은 자국을 매일 확인하면서도 더는 기록표의 숫자만 고치지 않는다. 해온은 온실 한쪽에 남은 작은 뿌리를 제거하지 않고, 체온을 빼앗지 않도록 얼음물 관과 얇은 차단막을 둘러 새로운 재배 구역으로 만든다.

며칠 뒤 외벽의 균열은 완전히 닫히지 않았지만 더 벌어지지도 않는다. 검은 덩굴은 사람을 끌고 가지 않는 대신, 차가운 배수관 옆에서 느리게 산소 기포를 내놓는다. 윤서진은 해온과 함께 그 기포가 올라오는 속도를 세고, 해온은 어머니의 기록표에서 틀린 숫자 하나를 찾아 빨간 선을 긋는다. 이번에는 윤서진이 그 선을 지우지 않고, 덩굴과 사람 모두의 체온을 적을 빈칸을 새로 만든다. 돔 밖의 붉은 폭풍은 여전히 유리를 두드리지만, 온실 안에서는 누구도 레버 하나에 한 생명의 값을 맡기지 않는다.


World

The world

representative image

setting

화성 아르테미스 농업 돔은 적도 북쪽의 오래된 용암 평원 위에 세워진 312인 규모의 폐쇄 식민지다. 돔 내부에는 주거 링, 압력·산소 운영실, 수경 재배동, 토양 실험 온실이 동심원처럼 이어져 있다. 외벽은 운석 충돌과 열팽창으로 여러 차례 금이 갔고, 균열에는 검은 덩굴의 뿌리가 젖은 실처럼 박혀 있다. 바깥은 붉은 먼지가 시야를 지우는 밤이며, 돔 안에서는 펌프의 낮은 진동과 산소 경보음이 끊이지 않는다. 온실 바닥은 화산재 기반 토양, 응축수 배수관, 덩굴의 검은 뿌리망이 뒤엉킨 좁은 통로로 이루어져 있어 구조와 봉쇄가 동시에 어려워진다.

time period

서기 2146년, 지구와 화성 사이의 보급선이 계절성 먼지폭풍 때문에 지연되는 화성 식민지 확장기의 끝자락이다. 화성의 긴 겨울 초입, 돔의 산소 생산기가 고장 난 직후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외부 구조선이 도착하기까지 최소 열흘이 남았지만, 덩굴이 내놓는 산소를 제외하면 주민들이 버틸 수 있는 시간은 19분뿐이다. 이 사건은 검은 덩굴의 존재와 생체 연구 금지령이 동시에 공개되는 첫날이다.

rules

- 돔의 압력문은 양쪽 구역의 압력이 같아질 때만 열리며, 강제로 열면 해당 구역과 연결된 모든 공간이 진공에 노출된다. 따라서 윤서진은 해온을 구하기 위해 문을 여는 순간 312명의 생존 기반을 무너뜨릴 수 있다.

- 검은 덩굴은 사람의 체온을 흡수해야 빠르게 자라고, 흡수한 열에 비례해 산소를 내놓는다. 덩굴을 끊으면 산소 생산은 멎지만 뿌리에 붙잡힌 사람들은 풀려나며, 계속 두면 산소는 늘어도 사람의 체온과 의식이 서서히 사라진다.

- 자정 이후 덩굴의 뿌리는 돔 안의 따뜻한 생명체를 온실로 끌어온다. 침실 바닥의 열선과 격벽 센서는 이를 막지 못하므로, 주민을 살리려면 잠들기 전에 이동시키거나 직접 뿌리망에 들어가야 한다.

- 비상 봉쇄 명령은 운영실과 온실의 생체 인증이 함께 승인해야 확정된다. 해온은 온실 안에서 자신의 인증을 사용할 수 있고, 도겸은 운영실에서 식민지 전체를 봉쇄할 수 있어 어느 한 사람도 혼자 결말을 결정할 수 없다.

technologies philosophies

식민지는 산소 사용량을 개인별 생체 기록으로 계산하고, 하루 배급량을 어기면 자동으로 주거 구역의 난방과 조명이 줄어든다. 압력·산소 운영실은 모든 문과 통풍구를 통제하며, 17년 전 첫 돔 붕괴 사고 이후 생존자 우선 원칙을 법처럼 따른다. 주민들은 지구의 생태복원 기술을 믿지만, 생명체를 식민지 환경에 방출하는 행위는 금지되어 있다. 이태주는 그 금지령을 어기고 덩굴을 보냈으며, 덩굴은 인간이 관리하는 농업과 스스로 번식하는 생태계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윤서진의 화산학 지식은 덩굴의 뿌리망이 용암의 냉각 균열처럼 움직인다는 사실을 밝혀내지만, 그 지식은 동시에 덩굴을 죽이는 방법과 돔을 살리는 방법이 같을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주민들은 생존을 숫자로 기록하지만, 온실 안에서는 체온, 맥박, 숨소리가 숫자보다 먼저 판단을 요구한다.

visual description

붉은 먼지폭풍이 돔의 반투명 외벽을 두드리고, 내부 조명은 산소 절약을 위해 푸른 흰색으로 낮춰져 있다. 검은 덩굴은 빛을 반사하지 않고 젖은 석탄처럼 보이며, 잎맥 안쪽에서 희미한 청록색 기포가 올라온다. 균열 주변에는 서리가 낀 금속과 검은 뿌리가 맞물려 있고, 사람의 체온이 닿은 곳만 얇은 안개가 피어난다. 복도 바닥의 노란 대피선, 붉은 봉쇄등, 유리 너머 해온의 작은 실루엣이 반복되는 시각적 표지가 된다. 온실은 따뜻한 김과 흙냄새로 가득하지만, 유리 바깥의 화성은 무음의 붉은 진공으로 펼쳐진다.


Locations

Where it happens

location 1 image

토양 실험 온실

낮은 유리 천장 아래 젖은 화산재 통로와 미끄러운 유리판이 서로 맞물려 있고, 청백색 비상등이 검은 덩굴의 광택만 차갑게 번뜩인다. 산소 경보음이 좁은 공간을 찢는 동안, 뿌리망은 바닥과 외벽 균열을 따라 꿈틀거리며 젖은 섬유가 조여 드는 소리를 낸다. 유리 안쪽에는 사람의 체온이 닿은 자리마다 얇은 안개가 맺히고, 잎맥 깊은 곳의 청록색 기포가 어두운 흙 위로 느리게 솟는다.

location 2 image

주거 링 공동식당

주거 링 공동식당은 낮은 천장 아래 긴 마른 목재 식탁과 바랜 황갈색 천 의자가 둥근 벽을 따라 이어지는 넓은 생활 공간이다. 따뜻한 호박색 조명이 식탁 위 배급표와 반쯤 식은 그릇을 비추고, 부드럽게 해진 천 냅킨과 팔꿈치 자국 난 방석에는 312명이 함께 살아온 흔적이 남아 있다. 낮은 대화 사이로 금속 식기가 그릇 가장자리에 부딪히는 소리가 이어지지만, 바닥 난방이 켜지는 순간 식탁 아래 노란 대피선 가까이에서 마른 바닥판이 가볍게 들썩인다.

location 3 image

압력·산소 운영실

압력·산소 운영실의 높은 합금 벽면은 차가운 백색 화면으로 가득하고, 매끈한 관제 패널 위 붉은 봉쇄등이 돔 전체의 격벽과 통풍구 상태를 한 줄씩 점멸시킨다. 단단한 플라스틱 의자와 손잡이에는 오래 눌린 손자국이 남아 있으며, 릴레이가 짧게 딸깍일 때마다 천장의 방송 스피커에서 산소 잔량과 구역별 압력이 잘린 문장으로 흘러나온다. 중앙 생체 인증판 옆에는 312개의 호흡 기록이 차가운 숫자로 쌓이고, 그 아래 수동 봉쇄 레버의 붉은 표시만이 아직 사람의 손을 기다린다.

location 4 image

오래된 용암 평원

오래된 용암 평원은 낮게 깔린 지평선까지 갈라진 현무암판과 거친 모래가 이어지는 검붉은 벌판이며, 탁한 황금빛 먼지폭풍이 바위를 쓸어 붉은 막을 입힌다. 발밑의 돌은 낮의 열을 잃고 단단하게 식어 있지만, 바람이 몰아칠 때마다 모래알이 표면을 긁어 마른 금속 같은 소리를 낸다. 멀리 선 아르테미스 농업 돔은 폭풍에 반쯤 지워진 둥근 윤곽만 드러내고, 외벽을 때리는 먼지의 둔탁한 진동이 텅 빈 평원 전체로 낮게 번진다.

location 5 image

화성 통신 중계실

화성 통신 중계실의 수직형 벽면에는 보랏빛 화면이 층층이 박혀 있고, 어두운 청회색 패널 사이로 종이 기록철이 좁은 선반마다 눌러 꽂혀 있다. 냉각팬이 낮게 웅웅거리는 가운데 지구에서 늦게 도착한 음성이 천장 스피커와 빈 의자 사이를 몇 초씩 어긋나 되풀이하며, 화면 속 파형과 실제 목소리가 서로 다른 순간에 흔들린다. 바닥의 서늘한 고무 케이블은 중앙 중계 장치에서 사방으로 뻗어 발목 높이의 격자 아래로 사라지고, 케이블 위에 놓인 발송 승인 철에는 이태주의 서명이 보랏빛에 젖어 있다.


Scenes

Scene by scene

Chapter 01

Scene 01· 서기 2146년, 산소 생산기가 멎은 직후

푸른 불이 꺼진 온실

푸른 불이 꺼진 온실
Place토양 실험 온실
Time서기 2146년, 산소 생산기가 멎은 직후
Action윤서진이 젖은 화산재 통로를 가로질러 지구에서 도착한 씨앗 상자의 봉인을 뜯는다. 상자 안에서 검은 덩굴이 솟아오르고, 잎맥 깊은 곳에서 청록색 기포가 올라온다. 통신 화면 속 이태주는 발송 기록을 숨긴 채 표본의 상태를 묻고, 운영실의 박도겸은 온실 격리를 명령한다.
Impact윤서진은 씨앗 대신 살아 있는 생체 표본이 들어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덩굴은 산소를 내놓는 동시에 사람의 체온에 반응하며 젖은 화산재 아래로 뿌리를 뻗기 시작한다. 온실은 더 이상 단순한 실험 공간이 아니라 돔의 산소와 주민들의 생명을 동시에 붙잡은 위험 구역이 된다.

윤서진이 씨앗 상자를 작업대에서 바닥으로 끌어내리자, 토양 실험 온실의 푸른 비상등이 한 줄씩 꺼지고 낮은 유리 천장 너머의 붉은 먼지가 어두워졌다. 그녀는 미끄러운 장갑으로 봉인 고리를 비틀어 뜯었고, 박도겸의 목소리가 벽면 스피커에서 갈라져 나왔다. “상자를 닫아. 지금 온실을 격리한다.” 윤서진이 뚜껑을 젖히는 순간, 완충재 사이의 검은 줄기가 젖은 화산재를 밀어내며 솟구쳤다.

덩굴은 빛을 반사하지 않았지만 잎맥 안쪽의 청록색 기포는 또렷하게 떠올랐다. 윤서진이 절단기를 집어 뿌리 하나를 누르자, 덩굴은 잘린 끝을 움츠리는 대신 외벽 균열 쪽으로 몸을 틀었다. 통신 화면에 이태주의 얼굴이 켜졌고, 그는 발송 승인 철을 손가락으로 세 번 두드렸다. “윤서진, 그건 씨앗이 아니야.” 그때 화산재 아래에서 가느다란 검은 실뿌리가 배수관을 향해 미끄러졌다.

윤서진이 상자를 다시 눌러 덩굴의 방향을 막자, 유리판 아래로 청록색 기포가 연달아 솟아올랐다. 온실 바깥 운영실에서는 박도겸이 붉은 봉쇄등을 켰고, 아직 닫히지 않은 격벽의 표시가 하나씩 점멸했다. 윤서진의 손등이 상자 가장자리에 닿은 자리에서 얇은 안개가 피어나는 동안, 검은 뿌리 하나가 바닥 배수구의 틈으로 사라졌다.

Scene 02· 산소 생산기가 멎은 직후, 화성의 붉은 밤

상자 안의 발송 코드

상자 안의 발송 코드
Place토양 실험 온실
Time산소 생산기가 멎은 직후, 화성의 붉은 밤
Action윤서진은 젖은 화산재 통로에 박힌 검은 뿌리를 절단기로 내리찍어 표본을 격리하려 한다. 덩굴은 칼날이 닿기 직전 몸을 접어 외벽 균열과 바닥 배수관 쪽으로 방향을 튼다. 박도겸은 통신 너머에서 온실 격벽을 닫으라고 명령하고, 이태주는 화면에 발송 승인 코드를 띄운 채 금지된 생체 표본을 보냈다고 고백한다.
Impact잘린 뿌리 끝은 멈추지 않고 외벽 안쪽의 균열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윤서진은 배수구 틈을 벌려 검은 실뿌리가 이미 주거 링 방향으로 뻗었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이태주의 고백으로 상자는 사고 화물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반입된 위험 표본이 되고, 박도겸은 돔 전체 봉쇄를 준비한다.

윤서진은 절단기를 검은 뿌리의 목처럼 굵어진 마디에 박아 넣었다. 청백색 비상등 아래 젖은 화산재가 튀었고, 칼날이 닿기 한 뼘 전 덩굴의 몸통이 납작하게 접혔다. 검은 줄기는 외벽 균열을 향해 미끄러진 뒤 바닥 배수구로 갈라졌다. 박도겸의 목소리가 벽면 스피커에서 쏟아졌다. “손 떼, 윤서진. 온실을 지금 닫는다.”

윤서진은 절단기를 거꾸로 쥐고 배수구 덮개를 후려쳤다. 금속판이 들리자 가느다란 실뿌리들이 관 안쪽에서 꿈틀거렸고, 그 끝에는 주거 링의 압력 배관 표시가 붙어 있었다. 통신 화면에 이태주의 얼굴이 켜졌고, 그는 책상 위 발송 승인 철을 밀어 카메라 앞으로 가져왔다. “승인 코드 7-아르테미스-검은 표본. 내가 보냈어. 씨앗이 아니라, 생체 복원 표본이야.”

박도겸이 운영실에서 봉쇄 레버를 당기자 온실 격벽 표시가 붉게 번졌다. 윤서진은 상자를 들어 배수구 앞 바닥에 내리쳤고, 완충재와 검은 줄기가 사방으로 튀며 잠시 외벽 쪽 뿌리를 눌렀다. 그러나 배수관 깊은 곳에서는 이미 더 얇은 실뿌리 하나가 주거 링 방향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Scene 03· 산소 생산기가 멎은 직후, 자정 전

열아홉 분의 봉쇄

열아홉 분의 봉쇄
Place토양 실험 온실과 압력·산소 운영실, 주거 링으로 이어지는 배수관 구역
Time산소 생산기가 멎은 직후, 자정 전
Action윤서진은 검은 덩굴이 배수관으로 파고드는 순간 씨앗 상자를 들어 바닥에 내리친다. 상자와 완충재가 부서지며 뿌리의 진로가 잠시 외벽에서 끊기지만, 주거 링의 바닥판 아래에서 더 가는 실뿌리가 솟아난다. 박도겸은 운영실에서 온실 격벽을 닫고, 전 주민에게 산소 잔량이 19분뿐이라고 방송한다. 윤서진은 통신 화면 속 이태주에게 표본의 출처를 추궁하고, 이태주는 발송 승인 코드를 직접 읽으며 금지된 생체 표본을 보냈다고 고백한다.
Impact검은 덩굴은 온실 안에 갇히지 않고 주거 링의 배수관과 바닥 아래까지 침투한다. 이태주의 고백으로 이번 반입이 사고가 아니라 의도된 연구였음이 드러난다. 박도겸의 봉쇄 절차가 시작되면서 윤서진은 덩굴을 끊어 주민을 구할지, 산소를 유지하기 위해 확산을 허용할지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윤서진은 배수구 앞에 놓인 씨앗 상자를 양손으로 들어 젖은 화산재 바닥에 내리쳤다. 금속 모서리가 깨진 유리판을 때렸고, 완충재와 검은 줄기가 청백색 불빛 아래 사방으로 튀었다. 외벽 균열을 향하던 굵은 뿌리가 상자 밑에 눌려 납작해지자, 통신 화면 속 이태주가 숨을 삼켰다. “그걸 부수면 안 돼.” 윤서진은 대답 대신 절단기로 부서진 상자의 가장자리를 밀어 배수구를 막았다.

바로 그때 온실 밖 주거 링에서 금속 바닥판이 들려 올라왔다. 노란 대피선 아래의 틈으로 검은 실뿌리들이 젖은 실처럼 솟아 배수관 표지를 감았고, 박도겸은 운영실의 봉쇄 레버를 끝까지 당겼다. 붉은 등이 격벽마다 켜지는 동안 그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돔 전체에 퍼졌다. “전 주민에게 알립니다. 현재 산소 잔량은 19분입니다.” 윤서진이 화면 앞으로 다가가자 이태주는 발송 승인 철을 카메라에 밀어 붙이며 말했다. “승인 코드 7-아르테미스-검은 표본. 내가 보냈어. 생체 복원 표본이야.”

박도겸은 온실의 마지막 격벽 잠금 버튼을 눌렀고, 두꺼운 문이 윤서진과 바닥 아래 솟은 뿌리 사이에서 닫히기 시작했다. 윤서진이 상자 파편을 걷어내자 배수관 안쪽에서 가느다란 검은 실 하나가 주거 링 방향으로 미끄러졌다. 운영실 화면에는 312개의 호흡 기록과 함께 ‘봉쇄 진행’이라는 붉은 문구가 떠올랐다.

Chapter 02

Scene 04· 산소 잔량 19분이 표시된 직후

붉은 숫자의 문

붉은 숫자의 문
Place토양 실험 온실과 압력·산소 운영실 사이
Time산소 잔량 19분이 표시된 직후
Action윤서진은 닫히기 시작한 격벽의 틈으로 몸을 밀어 넣고 압력문을 향해 젖은 화산재 통로를 달린다. 박도겸은 운영실에서 312개의 호흡 기록과 19분의 산소 잔량을 확인한 뒤 식민지 전체 봉쇄 절차를 작동시킨다. 윤서진은 압력문 앞에서 멈추지 않고 봉쇄 레버를 붙잡아 올리려 하며, 박도겸은 원격 잠금으로 문을 닫아 그녀의 길을 막는다.
Impact압력문 너머에 윤해온이 갇혀 있다는 사실이 분명해지고, 윤서진의 구조 시도는 돔 전체의 압력과 산소를 위험에 빠뜨리는 행동이 된다. 박도겸은 온실 격리와 식민지 봉쇄를 동시에 진행하며 윤서진과 정면으로 맞선다. 붉은 봉쇄 숫자가 온실 문 위에서 줄어드는 동안, 두 사람의 손이 같은 레버를 두고 맞붙는다.

윤서진은 닫히는 격벽의 틈에 어깨를 밀어 넣고 젖은 화산재 통로를 압력문 쪽으로 내달렸다. 청백색 비상등이 미끄러운 유리판과 검은 뿌리의 젖은 광택을 번갈아 비추었고, 그녀의 장화가 배수관 덮개를 걷어찼다. 압력문 위 붉은 표시에는 ‘온실 격리’와 함께 산소 잔량 19분이 떠 있었다. 운영실 스피커에서 박도겸의 목소리가 잘린 숫자처럼 울렸다. “호흡 기록 312건 확인. 전체 봉쇄를 시작한다.”

윤서진이 압력문 옆 수동 해제 손잡이를 잡아당기자 운영실의 원격 잠금이 먼저 걸렸다. 손잡이가 금속 안쪽으로 꺾이며 그녀의 손을 튕겨 냈고, 문 너머 유리벽에 윤해온의 작은 실루엣이 나타났다. 박도겸은 관제 화면 앞에서 붉은 레버를 아래로 밀었고, 온실과 주거 링을 잇는 격벽 표시가 하나씩 닫혔다. “강제로 열면 돔 전체가 진공에 노출돼.” 윤서진은 대답 대신 봉쇄 레버의 덮개를 절단기로 내리쳤지만, 칼날이 튕겨 나가며 손잡이에는 붉은 숫자 18이 새로 떠올랐다.

압력문 가장자리가 낮게 떨리고, 유리 안쪽의 검은 뿌리가 윤해온의 방향으로 꿈틀거렸다. 윤서진이 다시 손잡이에 매달리는 동안 박도겸은 운영실의 마지막 인증판에 손바닥을 눌렀다. 문 위의 붉은 선이 온실 전체를 둘러싼 뒤, 주거 링 바닥의 열선이 차례로 켜졌다. 닫힌 압력문 아래 틈에서 검은 실뿌리들이 조용히 솟아올랐다.

Scene 05· 산소 잔량 18분, 전체 봉쇄 직전

유리 안쪽의 손

유리 안쪽의 손
Place토양 실험 온실 압력문 앞
Time산소 잔량 18분, 전체 봉쇄 직전
Action윤서진은 압력문 수동 해제 손잡이를 양손으로 비틀어 문을 열려 한다. 온실 안의 윤해온은 검은 뿌리에 발목이 묶인 채 비상 차단 레버를 끝까지 당긴다. 덩굴의 청록색 기포가 줄어들고, 뿌리에 붙잡힌 사람들의 다리가 하나씩 풀리자 박도겸은 운영실 원격 잠금을 걸며 해온의 생체 인증 없이는 봉쇄가 확정되지 않는다고 막아선다.
Impact해온의 레버 조작은 산소 공급을 낮추는 대신 붙잡힌 사람 일부를 풀어 주고, 윤서진의 구조 시도와 식민지 봉쇄를 같은 인증 장치에 묶어 버린다. 박도겸은 온실 격리와 전체 봉쇄를 동시에 밀어붙이며 윤서진의 손을 압력문 손잡이에서 떼어 내려 한다. 해온은 유리 너머로 생체 인증판에 봉쇄 코드를 입력하기 시작한다.

윤서진은 젖은 화산재 통로를 미끄러지며 압력문 손잡이를 두 손으로 잡아당겼다. 낮은 유리 천장 아래 청백색 비상등이 그녀의 장화와 검은 뿌리의 광택을 번갈아 잘랐고, 문 너머에는 윤해온이 레버에 매달려 있었다. 해온이 손잡이를 끝까지 내리자 덩굴 잎맥의 청록색 기포가 끊기듯 줄었고, 정비용 덩굴에 감긴 발목 두 개가 바닥에서 풀려났다.

윤서진이 손잡이를 다시 비틀자 운영실의 박도겸이 원격 잠금 스위치를 내리쳤다. “해온의 인증 없이는 봉쇄가 완성되지 않아.” 붉은 잠금핀이 튀어나와 손잡이를 고정했고, 박도겸은 통신 화면 너머에서 윤서진의 손목을 겨냥하듯 봉쇄 레버를 붙들었다. 유리 안쪽의 윤해온은 풀려난 사람을 밀어 안전한 쪽으로 보내고, 떨리는 손가락으로 생체 인증판에 봉쇄 코드를 반복 입력했다.

윤서진은 해온의 코드를 구조 요청으로 읽으려 유리벽에 손바닥을 붙였다. 그러나 해온은 손가락을 하나씩 접어 보인 뒤, 자신의 가슴을 가리키고 봉쇄판을 다시 눌렀다. 그 순간 압력 차가 벌어지며 유리 전체에 가느다란 금이 번졌고, 박도겸이 봉쇄 레버를 아래로 밀어 온실 문을 닫았다. 주거 링의 바닥 열선이 붉게 켜지자 검은 실뿌리들이 잠든 주민들의 발밑에서 솟아, 닫힌 온실 쪽으로 길게 미끄러졌다.

Scene 06· 산소 잔량 18분, 자정 직전

숫자를 거꾸로 세는 아이

숫자를 거꾸로 세는 아이
Place토양 실험 온실 압력문 앞과 주거 링
Time산소 잔량 18분, 자정 직전
Action윤해온은 덩굴에 붙잡힌 발목을 끌며 유리 안쪽의 생체 인증판에 봉쇄 코드를 반복 입력한다. 유리 너머에서 윤서진을 향해 손가락을 거꾸로 접어 보이고, 자신의 가슴을 가리킨 뒤 다시 봉쇄판을 누른다. 윤서진은 그 신호가 구조 요청이 아니라 자신을 포기하라는 명령임을 알아차리고 압력문 손잡이를 잡아당긴다. 압력 차로 온실 유리 전체에 금이 퍼지자 박도겸은 운영실 원격 레버를 몸으로 밀어 문을 닫는다. 동시에 주거 링의 바닥 열선이 켜지고, 바닥판 아래에서 솟은 검은 뿌리들이 잠든 주민들의 발목을 감아 온실 쪽으로 끌기 시작한다.
Impact윤서진은 해온을 구하려는 행동과 312명의 생존을 지키는 봉쇄가 같은 문에서 충돌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해온의 생체 인증으로 봉쇄 절차가 완성되기 직전, 압력문이 닫히면서 모녀 사이의 직접적인 구조 통로가 사라진다. 그러나 온실에 갇힌 위험은 끝나지 않고 주거 링으로 번져, 봉쇄선 바깥의 주민들까지 새로운 포획 대상이 된다.

윤해온은 검은 뿌리가 감긴 발목을 끌어당기며 생체 인증판에 봉쇄 코드를 세 번 연속 입력했다. 청백색 비상등 아래에서 그녀는 유리 너머 윤서진을 보며 다섯 손가락을 펼쳤다가 하나씩 거꾸로 접고, 자신의 가슴을 가리킨 뒤 봉쇄판을 다시 눌렀다. 윤서진은 압력문 손잡이에서 손을 떼지 않은 채 고개를 저었다. “해온아, 구조 신호를 보내.”

해온은 대답 대신 손가락을 네 개, 세 개, 두 개로 줄여 보였다. 그때 인증판의 붉은 문구가 ‘온실 구역 포기 승인’으로 바뀌었고, 윤서진의 손이 손잡이를 비틀었다. 문 가장자리의 압력계가 급격히 벌어지며 유리판에 실금이 뻗자 박도겸이 운영실의 봉쇄 레버를 몸으로 밀어 내렸다. “손 놓아, 윤서진!” 레버가 끝까지 내려간 순간 압력문이 닫히고, 유리 너머 해온의 손바닥이 금 사이에 갇힌 손처럼 납작하게 멈췄다.

주거 링의 바닥 열선이 붉게 켜지자 노란 대피선 아래 금속판들이 차례로 들렸다. 검은 실뿌리들이 잠든 주민들의 발목을 감고, 닫힌 온실을 향해 바닥 위로 길게 미끄러졌다. 윤서진이 금 간 유리에서 물러서는 동안, 첫 번째 주민의 몸이 침상 가장자리에서 끌려 내려갔다.

Chapter 03

Scene 07· 자정 직전, 봉쇄 절차가 진행되는 중

손가락으로 센 사람들

손가락으로 센 사람들
Place토양 실험 온실의 압력문 안쪽
Time자정 직전, 봉쇄 절차가 진행되는 중
Action윤해온은 발목을 조이는 뿌리를 칼날로 밀어내며 정비공에게 기어간다. 그녀는 정비공의 손목을 덩굴에서 떼어 맥박을 확인한 뒤, 붙잡힌 주민들의 손을 차례로 잡아 살아 있는 사람 수를 센다. 유리 너머 윤서진에게 남은 사람 수를 손가락으로 보인 해온은 생체 인증판에 봉쇄 코드를 반복 입력한다.
Impact해온은 자신을 구조 대상이 아니라 봉쇄를 완성할 마지막 인증자로 내세운다. 윤서진은 딸의 손짓이 구조 요청이 아니라 자신을 포기하라는 명령임을 알아차린다. 온실 안의 포획된 사람 수가 줄어드는 대신, 봉쇄 승인은 한 단계 더 확정된다.

윤해온은 발목을 감은 뿌리를 칼날로 눌러 밀어내며 정비공 쪽으로 몸을 끌었다. 젖은 화산재가 작업복 무릎에 들러붙고, 청백색 비상등 아래 검은 뿌리의 매듭마다 청록색 기포가 느리게 부풀었다. 정비공의 손은 덩굴에 붙잡힌 채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고, 해온은 자신의 발목을 더 조이는 뿌리를 무릎으로 버티며 그의 손가락부터 하나씩 풀었다.

유리 너머에서 윤서진이 두 손을 들어 압력문을 두드렸다. “해온아, 나를 봐.” 해온은 대답하지 않고 정비공의 손목에 두 손가락을 대고 맥박을 센 뒤, 옆에 쓰러진 주민들의 손을 차례로 확인했다. 한 사람의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자 해온은 그 손을 가슴 위에 올려놓고, 살아 있는 사람 수를 손가락으로 세어 윤서진에게 보였다.

해온은 몸을 돌려 생체 인증판에 손바닥을 눌렀다. 붉은 입력창에 봉쇄 코드가 떠오르자 그녀는 떨리는 엄지로 숫자를 반복해서 눌렀고, 윤서진은 유리벽에 손을 붙인 채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해온은 마지막 숫자를 입력한 뒤 다시 손가락을 펼쳐 남은 사람 수를 보였다. 그 순간 온실 바깥 주거 링에서 금속 바닥판이 연달아 들려 올라갔고, 유리 너머 윤서진의 얼굴이 압력문이 아니라 어둠 속으로 끌려가는 여러 실루엣을 향해 돌아갔다.

Scene 08· 자정 직전, 해온이 봉쇄 코드를 반복 입력한 직후

닫힌 문 앞의 맹세

닫힌 문 앞의 맹세
Place방화 격벽 앞 복도
Time자정 직전, 해온이 봉쇄 코드를 반복 입력한 직후
Action윤서진은 압력문 옆 보조 통로의 덮개를 뜯고 안으로 몸을 밀어 넣으려 한다. 박도겸은 방화 격벽 앞을 막아서며 봉쇄 승인 장치를 빼앗고, 두 사람은 좁은 복도에서 장치를 두고 몸싸움을 벌인다. 박도겸은 17년 전 돔 붕괴 때 한 사람을 위해 문을 늦게 닫았고 가족을 잃었다는 사실을 털어놓으며, 다시는 한 사람 때문에 전체를 잃지 않겠다고 맹세한다.
Impact윤서진은 박도겸의 손에서 봉쇄 승인 장치를 낚아채지만, 방화 격벽은 이미 절반 이상 닫힌다. 박도겸의 맹세는 과거의 상실에서 나온 것임이 드러나고, 윤서진은 그가 지키려는 봉쇄선이 해온과 온실 안 사람들을 가두는 벽이라는 사실을 정면으로 마주한다. 두 사람의 충돌이 이어지는 동안 공동식당 쪽 바닥 난방이 켜지고, 검은 뿌리가 주민들의 잠자리 아래에서 솟기 시작한다.

윤서진은 방화 격벽 옆 보조 통로의 금속 덮개를 절단기로 뜯어내고 젖은 화산재 바닥에 무릎을 밀어 넣었다. 청백색 비상등이 좁은 복도와 붉은 봉쇄등을 번갈아 비추었고, 그녀의 손에는 온실 격리선을 우회할 수 있는 작은 승인 장치가 걸려 있었다. 박도겸이 뒤에서 그녀의 허리띠를 잡아당기자 윤서진은 장치를 가슴 쪽으로 끌어안은 채 팔꿈치로 그의 턱을 밀쳤다.

“그 문을 넘으면 주거 링까지 날아가.” 박도겸은 장치를 빼앗으려 그녀의 손목을 비틀었다. 윤서진은 복도 벽에 그의 손을 내리눌렀고, 박도겸의 낡은 시계가 합금 벽에 부딪혀 유리가 갈라졌다. 그는 숨을 몰아쉬며 17년 전 붕괴 때 한 사람을 기다리느라 격벽을 늦게 닫았고, 그 뒤로 가족의 이름을 산소 기록 옆에 적어 왔다고 말했다. “다시는 한 사람 때문에 전부를 잃지 않아.” 그가 장치를 낚아채 봉쇄판에 갖다 대는 순간, 윤서진은 그의 엄지손가락을 밀어내고 승인 장치를 손 안에서 비틀어 빼냈다.

방화 격벽이 금속 마찰음을 내며 절반쯤 내려오자 복도 반대편 공동식당에서 의자들이 연달아 넘어지는 소리가 났다. 노란 대피선 아래 바닥판이 들리고, 검은 뿌리 몇 가닥이 따뜻한 식탁 쪽으로 미끄러져 나왔다. 박도겸은 윤서진의 손에서 장치를 되찾으려 몸을 던졌고, 윤서진은 장치를 등 뒤에 감춘 채 닫힌 격벽과 어둠 속으로 끌려가는 첫 실루엣 사이에 섰다.

Scene 09· 자정 직후, 산소 잔량 17분

자정의 바닥

자정의 바닥
Place주거 링 공동식당과 토양 실험 온실 사이의 봉쇄 복도
Time자정 직후, 산소 잔량 17분
Action공동식당 바닥 난방이 켜지자 윤서진은 박도겸과 함께 식탁을 밀어 주민들의 발목에서 솟은 검은 뿌리를 끊어 내리 한다. 박도겸은 한 손으로 봉쇄 승인 장치를 움켜쥔 채 격벽 쪽 통로를 막고, 윤서진은 잠든 주민들을 차례로 깨워 대피선 밖으로 밀어낸다. 그러나 뿌리 몇 가닥이 식탁 아래에서 주민들을 온실 방향으로 끌고 가며, 닫혀 있던 봉쇄선의 바닥 잠금이 연달아 튀어 오른다.
Impact윤서진과 박도겸이 서로의 손에서 승인 장치를 빼앗으려 몸싸움을 벌이는 동안 공동식당의 주민 여러 명이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온실 격리는 더 이상 안쪽의 해온과 붙잡힌 사람들만 가두는 장치가 아니게 되고, 주거 링까지 포획 구역으로 바뀐다. 윤서진은 박도겸이 지킨 격리선을 넘어 해온에게 닿기 위해, 바닥 아래로 이어진 새로운 통로를 찾아야 한다.

윤서진은 식탁을 두 손으로 밀어 넘어뜨리며 박도겸의 팔을 노란 대피선 밖으로 걷어 냈다. 마른 목재 식탁 아래 바닥판이 벌어지고, 검은 뿌리들이 젖은 끈처럼 솟아 잠든 주민들의 발목을 감았다. 호박색 조명이 흔들리는 동안 박도겸은 봉쇄 승인 장치를 가슴에 붙들고 한 주민의 어깨를 잡아당겼지만, 뿌리가 그의 의자를 통째로 온실 쪽으로 끌었다.

“깨워! 손을 놓지 마!” 윤서진이 주민의 팔을 붙잡아 당기자 박도겸은 반대편에서 그녀의 허리띠를 잡아 격벽 쪽으로 끌었다. 두 사람의 손 사이에서 승인 장치가 부딪혀 붉은 잠금 표시가 깨졌고, 공동식당 바닥 아래에서 격벽 해제음이 연속으로 울렸다. 그 틈에 검은 뿌리 세 가닥이 식탁 사이를 가로질러 주민들을 어둠 속으로 끌고 갔고, 윤서진은 박도겸의 손목을 뿌리쳐 온실 반대편 벽의 배수 덮개를 절단기로 찍었다.

금속 덮개가 들리자 바닥 아래 좁은 관로와 젖은 화산재가 드러났다. 박도겸이 윤서진의 장화를 붙잡았지만 그녀는 승인 장치를 그의 손에서 빼내 배수관 안으로 밀어 넣고 몸을 먼저 끼웠다. 뒤쪽에서는 닫혀야 할 격벽이 반쯤 열린 채 멈추고, 검은 뿌리와 끌려간 주민들의 발끝이 그 틈 너머에서 차례로 사라졌다.

Chapter 04

Scene 10· 자정 직후, 공동식당의 바닥 아래에서 뿌리가 주민들을 끌고 가기 시작한 직후

승인 코드 뒤의 기록

승인 코드 뒤의 기록
Place화성 통신 중계실
Time자정 직후, 공동식당의 바닥 아래에서 뿌리가 주민들을 끌고 가기 시작한 직후
Action윤서진은 박도겸에게서 빼앗은 봉쇄 승인 장치를 이태주의 발송 승인 철 위에 내리찍어 통신 중계실의 잠금 서랍을 연다. 보랏빛 화면에 남은 과거 실험 기록에서, 이태주는 덩굴이 연구자의 손을 놓은 뒤 그가 다시 다가가자 온실 깊숙이 끌려간 장면을 재생한다. 윤서진은 발송 승인 철을 움켜쥐고 이태주에게 자신의 맥박과 체온으로 덩굴의 뿌리 방향을 유도하는 미끼가 되라고 명령한다.
Impact이태주는 덩굴이 단순히 사람을 붙잡는 것이 아니라 맥박과 이동을 따라 표적을 바꾼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윤서진은 그 지식을 안전한 구조법이 아니라 누군가의 몸을 먼저 내놓아야 하는 위험한 절차로 받아들인다. 박도겸은 이태주의 안전줄을 챙기며 작전 참여를 선택하고, 세 사람은 압력문을 열지 않고 온실 배수관으로 들어갈 준비를 한다.

윤서진은 박도겸의 손에서 빼앗은 봉쇄 승인 장치를 보랏빛 중계 화면 아래 발송 승인 철에 내리찍었다. 잠금 서랍이 튀어나오며 종이 기록철과 낡은 생체 영상판이 바닥 케이블 위로 쏟아졌고, 이태주는 서명 위에 찍힌 자신의 손도장을 발로 가리려 했다. 윤서진이 그의 발목을 밀어내자 화면 하나가 자동으로 켜져, 덩굴에 감겼던 연구자의 손이 풀리는 장면을 반복했다.

영상 속 연구자는 뒤로 물러났다가 다시 검은 뿌리에 손을 댔다. 다음 순간 뿌리망이 손목과 팔꿈치를 차례로 감아 그를 온실 안쪽으로 끌고 갔고, 이태주의 늦은 목소리가 천장 스피커에서 겹쳐 울렸다. “놓아준 게 아니야. 맥박이 멀어진 걸 확인한 뒤, 다시 움직인 쪽으로 방향을 바꾼 거야.” 윤서진은 발송 승인 철을 움켜쥔 채 그의 손목을 기록철 위에 눌렀다. “그럼 이번엔 네 맥박을 따라가게 해.”

박도겸이 이태주의 팔에 안전줄을 감는 동안 윤서진은 중계실 바닥의 배수관 도면을 뜯어냈다. 붉은 봉쇄등이 도면 위에서 깜빡였고, 바깥 복도에서는 끌려가는 발끝과 금속 바닥판이 부딪히는 소리가 가까워졌다. 이태주는 손을 빼려다 멈추고 자신의 발송 승인 철을 윤서진의 손에서 받아 주머니에 넣었으며, 세 사람은 압력문 대신 온실로 이어진 좁은 배수관 입구 앞에 무릎을 꿇었다.

Scene 11· 자정 직후, 산소 잔량이 줄어드는 가운데

배수관의 세 사람

배수관의 세 사람
Place온실로 이어지는 좁은 배수관과 토양 실험 온실의 뿌리망 아래
Time자정 직후, 산소 잔량이 줄어드는 가운데
Action윤서진, 이태주, 박도겸은 압력문을 열지 않고 배수관 안으로 기어 들어간다. 이태주의 체온에 반응한 검은 뿌리가 그의 팔을 감아 온실 안쪽으로 끌고 가고, 박도겸은 안전줄을 당겨 그를 붙잡는다. 윤서진은 뿌리가 갈라지는 방향을 화산암의 냉각 균열처럼 읽으며 해온과 붙잡힌 주민들이 있는 곳으로 통로를 이끈다.
Impact이태주는 더 이상 기록을 설명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몸으로 덩굴의 움직임을 유도하는 미끼가 된다. 박도겸은 봉쇄 승인 장치를 지키는 대신 이태주의 안전줄을 놓지 않으며 구조에 직접 가담한다. 윤서진은 압력문을 열지 않고 뿌리망 안쪽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경로를 찾아 해온에게 접근하지만, 이태주의 팔은 덩굴 깊숙이 붙잡힌다.

윤서진은 배수관 덮개를 몸으로 밀어 올리고, 이태주와 박도겸을 젖은 화산재가 깔린 좁은 관 안으로 먼저 밀어 넣었다. 청백색 비상등이 관 벽의 물방울과 세 사람의 헬멧을 끊어 비추었고, 뒤쪽 압력문에서는 붉은 봉쇄등이 짧게 깜빡였다. 이태주의 팔이 검은 틈 가까이 닿자 뿌리 하나가 즉시 솟아 그의 소매를 감았다.

이태주가 팔을 빼려 몸을 비틀었지만 뿌리는 팔꿈치까지 조여 오며 그를 온실 쪽으로 끌었다. 박도겸은 안전줄을 양손에 감아 뒤로 버텼고, “놓치면 네가 아니라 전부 끌려가!”라고 외쳤다. 윤서진은 절단기를 들지 않고 뿌리의 갈라진 선을 따라 손가락으로 관 벽의 균열을 짚은 뒤, 박도겸에게 왼쪽 줄을 당기라고 지시했다.

줄이 팽팽해지자 이태주의 몸이 한 뼘 뒤로 밀렸고, 그 틈에서 뿌리망의 일부가 갈라져 해온 쪽으로 이어지는 검은 통로가 드러났다. 윤서진은 이태주의 어깨를 밟고 그 갈라진 길로 기어갔으며, 뒤에서 박도겸은 안전줄을 자신의 허리에 다시 감았다. 온실 바닥 아래로 빠져나온 세 사람의 앞에는 청록색 기포가 맺힌 뿌리들이 해온의 레버 쪽으로 잇달아 방향을 틀고 있었고, 이태주의 한쪽 팔은 그 뿌리 속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Scene 12· 자정 직후, 산소 잔량이 급격히 줄어드는 순간

손목을 놓는 물

손목을 놓는 물
Place토양 실험 온실의 뿌리망 아래 통로
Time자정 직후, 산소 잔량이 급격히 줄어드는 순간
Action윤해온은 윤서진의 손을 뿌리에서 밀어내고 정비공의 손목을 먼저 덩굴에서 떼어 낸다. 해온은 사람들을 풀어 주면서도 비상 차단 레버를 놓지 않는다. 윤서진은 절단기를 내려놓고 화산재 아래 응축수 배수관의 밸브를 비틀어 연다. 차가운 물이 뿌리망 전체로 퍼지고, 수축한 뿌리들이 해온과 주민들의 발목을 놓는 순간 해온은 레버에서 손을 뗀다.
Impact덩굴의 산소 생산은 즉시 멎지만, 온실 안에 갇힌 사람들에게 움직일 통로가 열린다. 이태주의 한쪽 팔은 가장 깊은 뿌리 속에 붙잡혀 감각을 잃고, 박도겸은 안전줄을 놓지 않은 채 그를 붙든다. 윤서진은 해온을 끌어내는 대신 풀려난 사람들의 맥박을 확인하며 다음 구조 작업으로 넘어간다.

윤해온은 윤서진의 손등을 밀어내고 정비공의 손목을 덩굴 매듭에서 먼저 뽑아냈다. 젖은 화산재가 무릎 아래에서 무너지고, 청백색 비상등은 해온의 한 손이 정비공을 붙드는 모습과 다른 손이 붉은 레버를 누르는 모습을 번갈아 비췄다. 윤서진은 절단기를 들어 올렸다가 이태주의 움직이지 않는 팔과 청록색 기포가 맺힌 뿌리 주머니를 보고 칼날을 바닥에 박아 멈췄다.

“해온아, 지금 놓으면 돼.” 윤서진이 외쳤지만 해온은 고개를 저으며 레버를 더 깊이 눌렀다. 박도겸은 이태주의 안전줄을 허리에 감고 뿌리망에 끌려가면서도 손을 놓지 않았고, 윤서진은 화산재 아래로 손을 파고들어 응축수 배수관의 금속 밸브를 찾아 온 힘으로 돌렸다. 갈라진 관에서 찬물이 솟아 검은 뿌리 사이를 가로질렀고, 조여 있던 섬유들이 한꺼번에 수축하며 발목과 손목을 풀었다.

정비공의 손이 바닥으로 떨어지자 해온의 손가락도 레버에서 미끄러졌다. 청록색 기포가 잎맥 안에서 꺼지고 온실의 산소 경보음이 끊겼지만, 해온과 풀려난 사람들 사이에는 몸을 끌고 나갈 좁은 길이 남았다. 가장 깊은 뿌리는 이태주의 팔을 놓지 않았고, 박도겸은 물에 젖은 안전줄을 다시 움켜쥔 채 그를 향해 몸을 낮췄다.

Chapter 05

Scene 13· 차가운 물이 뿌리망을 수축시킨 직후, 산소 경보가 멎은 순간

멎은 기포

멎은 기포
Place토양 실험 온실
Time차가운 물이 뿌리망을 수축시킨 직후, 산소 경보가 멎은 순간
Action윤서진은 젖은 화산재 통로에 풀려난 주민들을 눕히고 한 사람씩 맥박을 확인한다. 박도겸은 이태주의 감각을 잃은 팔을 안전줄로 고정하고, 이태주는 가장 가까운 산소 주머니의 연결관을 붙잡아 떼어 내려고 한다. 서진은 절단기를 빼앗아 뿌리를 자르려는 이태주의 손을 막고, 수동 저장고의 수치를 확인한 뒤 뿌리가 아니라 산소 주머니만 분리하라고 명령한다.
Impact덩굴을 전부 끊으면 저장고의 공기가 열흘을 버티지 못하지만, 산소 주머니만 떼면 약해진 뿌리와 주민들의 체온을 함께 보존할 수 있다. 박도겸은 봉쇄 승인 장치를 내려놓고 저장고 밸브를 열며 작업에 합류한다. 이태주는 절단기를 거두고 첫 번째 연결관을 자르며, 온실 안에는 풀려난 주민들의 짧은 호흡과 저장고로 넘어가는 공기의 압력만 남는다.

윤서진은 젖은 화산재 위에 풀려난 주민의 어깨를 눌러 눕히고 손가락 두 개를 목에 댔다. 청백색 비상등 아래에서 맥박은 느렸지만 끊기지 않았고, 그녀는 곧바로 다음 사람의 손목으로 이동했다. 박도겸은 물에 젖은 안전줄을 이태주의 허리에 다시 묶었고, 이태주의 감각 없는 팔은 가장 두꺼운 검은 뿌리 곁에 축 늘어져 있었다. 이태주가 절단기를 들어 올리자 윤서진이 그의 손목을 잡아 칼날을 아래로 눌렀다. “뿌리를 자르면 사람은 풀리지만, 저장고도 죽어.”

박도겸이 수동 저장고의 휴대 단말을 내밀자 붉은 수치가 유리판 위에 떠올랐다. 덩굴을 모두 끊을 경우 열흘치 공기 기준선 아래로 떨어지는 숫자였다. 윤서진은 뿌리 사이에서 청록색 기포가 고인 주머니를 가리켰다. “뿌리는 남겨. 주머니만 분리해.” 이태주는 떨리는 손으로 연결관을 잡았고, 박도겸은 그의 팔꿈치를 받쳐 칼날이 사람 쪽으로 미끄러지지 않게 했다.

첫 번째 산소 주머니가 뿌리망에서 떨어지자 투명 관 안의 기체가 수동 저장고 쪽으로 밀려갔다. 윤서진은 풀려난 주민들의 맥박을 다시 확인한 뒤, 이태주가 다음 주머니에 절단기를 대는 순간까지 손을 놓지 않았다. 온실 바닥에는 잘리지 않은 검은 뿌리가 낮게 꿈틀거렸고, 저장고의 붉은 수치는 열흘 기준선 바로 위에서 멈췄다.

Scene 14· 산소 기포가 멎은 직후, 붉은 봉쇄등이 아직 꺼지지 않은 밤

권한을 내려놓는 손

권한을 내려놓는 손
Place주거 링 공동식당에서 토양 실험 온실로 이어지는 통로
Time산소 기포가 멎은 직후, 붉은 봉쇄등이 아직 꺼지지 않은 밤
Action박도겸은 젖은 봉쇄 승인 장치를 공동식당의 긴 목재 식탁 위에 내려놓고, 주민들 앞에서 격리 권한을 포기한다. 이태주는 자신의 발송 승인 코드와 과거 실험 영상을 식당의 공용 화면에 띄워 금지 표본과 연구 실패를 공개한다. 윤서진은 두 사람이 말로 책임을 끝내려 하자 장치를 낚아채고, 이태주의 기록철과 박도겸의 안전줄을 들고 두 사람을 다시 온실로 몰아간다.
Impact봉쇄 승인 장치는 더 이상 박도겸 한 사람의 손에 있지 않게 되고, 이태주의 숨겨 둔 책임은 주민들이 보는 기록으로 남는다. 윤서진은 사과나 선언을 받아들이지 않고 두 사람을 산소 주머니 연결 작업에 참여시켜, 책임을 실제 노동과 위험으로 바꾼다. 세 사람은 풀려난 주민들이 기다리는 온실로 돌아가고, 해온은 남은 뿌리망 옆에서 첫 번째 저장관을 잡는다.

박도겸이 공동식당의 긴 목재 식탁 위에 봉쇄 승인 장치를 내려치자, 붉은 봉쇄등이 배급표와 반쯤 식은 그릇 위로 번졌다. 그는 장치에서 손을 떼고 주민들을 향해 승인 코드를 말했지만, 윤서진은 그의 손목을 붙잡아 다시 장치 위에 올렸다. “내려놓는 건 말이 아니라, 다시 못 잡는 거야.” 박도겸이 손을 빼자 윤서진은 장치를 식탁 중앙으로 밀어 놓고, 그 위에 안전줄을 감아 누구도 몰래 가져가지 못하게 했다.

이태주가 공용 화면에 발송 승인 코드와 낡은 실험 영상을 띄우자, 검은 뿌리에 끌려가던 연구자의 팔이 식당 벽에 반복해서 나타났다. 화면 아래에는 이태주의 서명과 실패 기록이 차례로 떠올랐고, 그는 자신의 승인 번호를 한 글자씩 읽었다. 윤서진은 영상이 끝나기 전에 기록철을 접어 이태주의 가슴에 밀어 넣고, 박도겸에게는 젖은 안전줄을 던졌다. “둘 다 따라와. 책임을 저장고까지 운반해.”

그녀가 온실 쪽으로 돌아서자 이태주는 기록철을 품에 안고 뒤따랐고, 박도겸은 식탁 위 장치를 주민들 사이에 남긴 채 안전줄을 허리에 묶었다. 청백색 비상등 아래에서 해온은 남은 뿌리 옆에 무릎을 꿇고 투명한 저장관의 끝을 들고 있었다. 윤서진은 이태주의 감각 없는 팔을 받쳐 첫 번째 산소 주머니에 연결관을 대게 했고, 박도겸은 밸브를 돌렸다. 검은 뿌리를 자르지 않은 채 청록색 기체가 관을 따라 수동 저장고로 흘러가자, 해온의 손가락이 젖은 관 위에서 다음 연결 지점을 가리켰다.

Scene 15· 사고 발생 며칠 뒤, 화성의 긴 겨울 초입

빈칸의 재배 구역

빈칸의 재배 구역
Place토양 실험 온실
Time사고 발생 며칠 뒤, 화성의 긴 겨울 초입
Action윤해온은 남은 작은 뿌리 주위를 파내고 얼음물 관을 화산재 토양 아래로 밀어 넣는다. 윤서진과 이태주는 얇은 차단막의 양끝을 잡아 덩굴이 사람 쪽으로 뻗지 못하도록 고정하고, 박도겸은 밸브를 돌려 차가운 물을 순환시킨다. 윤서진은 기포의 양만 적혀 있던 기록표를 찢어 새 표를 펼친 뒤, 사람과 덩굴의 체온을 나란히 적을 빈칸을 만든다.
Impact덩굴은 차가운 배수관과 차단막 안에서만 느리게 자라며 더 이상 주민을 끌어당기지 않는다. 윤서진은 산소 생산량만으로 재배 구역의 안전을 판단하던 기록 방식을 버리고, 사람의 체온이 내려가는 순간 즉시 중단할 기준을 세운다. 해온은 새 구역의 경계를 닫고 첫 기포가 저장관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다.

며칠 뒤 윤해온은 젖은 화산재 통로에 무릎을 박고 삽날로 남은 작은 뿌리 주변을 파냈다. 청백색 비상등 아래에서 검은 섬유가 꿈틀거리자 윤서진이 차단막 한쪽을 붙잡고, 이태주는 반대편 고정핀을 바닥 틈에 박았다. 박도겸은 얼음물 관의 밸브를 열었고, 투명한 관 속 찬물이 뿌리 둘레를 돌며 얇은 김을 밀어냈다. 덩굴의 끝이 해온의 장화 쪽으로 한 뼘 뻗었지만 차단막에 닿자 수축해 화산재 속으로 물러났다. “사람 쪽 온도가 내려가면 바로 닫아.” 윤서진이 말하자 해온은 대답 대신 자신의 손목 측정기를 차단막 안쪽에 걸었다.

윤서진은 낡은 기록표에서 기포량과 산소 수치가 적힌 칸을 칼끝으로 잘라 냈다. 박도겸이 봉쇄 승인 장치를 식탁에 내려놓았던 손으로 새 기록판을 눌러 주었고, 이태주는 감각이 돌아오지 않는 팔을 옆구리에 붙인 채 해온의 관 연결부를 조였다. 첫 청록색 기포가 얇은 저장관을 타고 올라오자 윤서진은 새 표의 두 칸에 각각 덩굴의 체온과 사람의 체온을 적었다. 해온은 마지막 차단막 고리를 잠갔고, 작은 구역 안의 뿌리는 사람에게 닿지 않은 채 차가운 관 옆에서 느리게 기포를 밀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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