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기태는 11시 58분, 빨간 배달 가방에 새 메뉴 세트와 애플파이 여섯 개를 넣은 채 동네 맥도날드 앞 광장으로 들어온다. 황금 아치 조형물 아래에서는 장우묵이 카메라 세 대를 세우고 모델 가족에게 웃는 법을 지시하고, 백은조는 풍선 기둥이 쓰러지지 않게 무릎으로 받친 채 본사 점검표에 체크 표시를 한다. 기태의 목표는 단순하다. 12시 30분 전에 배달 완료 버튼을 누르고 오토바이 할부 독촉 전화를 피하는 것. 하지만 자동문이 열리는 순간, 창가 자리의 신복례가 그를 보고 영수증 뒷면을 접어 흔든다. 거기에는 기태의 배달 번호와 함께 삐뚤빼뚤한 글씨가 적혀 있다. “이번엔 애플파이 먼저 식는다.”
정오가 되자 자동문 위 황금 아치 네온이 한 박자 늦게 깜빡인다. 매장 안 기름 냄새가 갑자기 진해지고, 주문 전광판의 초록 숫자가 흔들린다. 생일파티 예약석에 혼자 앉아 있던 문라온이 노란 종이 왕관을 손톱으로 긁으며 가장 가까운 촬영 스태프에게 말한다. “해피밀 장난감 하나 더 주세요.” 스태프가 웃으며 해피밀 박스를 내미는 순간, 그의 무릎이 먼저 접히고 몸 전체가 플라스틱 벤치 밑 그림자 속으로 납작하게 빨려 들어간다. 카메라는 계속 돌아가고, 장우묵은 놀란 얼굴을 감추며 “리액션 좋다, 계속 가자”고 외친다. 기태는 배달 가방을 떨어뜨리고 접이식 십자가를 꺼내지만, 12시 29분에 주방 문틈에서 생일초들이 굴러나오고 전광판에 그의 번호가 뜬다. 생일 노래 반주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며 누군가의 목소리가 속삭인다. “예약 명단에서 내 이름을 찾아.” 기태가 주방으로 뛰어들기도 전에 네온이 다시 번쩍이고, 그는 12시 정각의 광장으로 되돌아온다.
두 번째 루프에서 기태는 자기만 기억한다고 믿고 곧장 라온의 왕관을 낚아채려 한다. 그러나 은조가 그의 손목을 잡아 비튼다. 그녀는 촬영팀 앞에서 아이의 생일 왕관을 찢는 배달 라이더가 매장 폐점 심사에 어떤 의미인지 너무 잘 안다. 기태가 “사람이 벤치 밑으로 사라진다”고 낮게 말하자, 은조는 미소를 유지한 채 그를 카운터 옆으로 밀어붙이고 귓속말한다. “그럼 조용히 처리해요. 오늘 매장 닫히면 여기 직원들 다 같이 사라져요.” 그녀는 바닥에 남은 콜라 자국을 닦다가, 방금 전 루프에서 사라진 스태프의 이름이 자기 점검표에서 빈칸으로 변한 것을 보고 잠깐 손을 멈춘다. 그 순간에도 그녀는 걸레를 다시 짜고, 빈칸 위에 ‘행사 정상 진행’이라고 적는다.
기태는 복례에게 끌려 창가 자리로 간다. 복례는 커피 리필 컵을 방패처럼 쥐고, 영수증 뒷면에 사라진 사람들의 주문 번호를 줄줄이 적어 두었다. 그녀는 트레이 매트 광고지를 네 번 접어 노란 M 로고가 안쪽으로 들어가게 만들면 잠깐 부적이 된다고 알려 준다. 대가로 자기 번호가 전광판에 뜨면 모른 척하라고 한다. 기태가 따지자 복례는 해피밀 박스를 병원 방문 가방에 넣으며 말한다. “손주가 장난감 기다려. 나까지 구하면 네가 못 나가.” 기태는 그 말을 못 들은 척하지만, 손가락으로는 이미 트레이 매트를 접고 있다.
루프가 반복될수록 기태의 퇴마 도구는 하나씩 망가진다. 첫 번째 트레이 매트는 라온의 왕관에 닿자마자 기름에 젖어 찢어지고, 두 번째 루프에서 꽂은 맥플러리 스푼은 스티커를 살짝 들어 올리지만 은조가 “고객 테이블 위생”이라며 빼내 쓰레기통에 버린다. 세 번째 루프에서 기태는 라온에게 말을 걸지 못하게 손님들 사이를 몸으로 막고, 복례는 커피 컵을 일부러 쏟아 벤치 앞 바닥을 미끄럽게 만든다. 하지만 라온은 매번 다른 얼굴로 변하듯 어른의 약한 곳을 찾아낸다. 촬영 모델에게는 “엄마가 안 와서요”라고 말하고, 주방 막내에게는 “형이 제일 착해 보여요”라고 말한다. 부탁을 들어준 사람은 접히고, 다음 루프의 매장 유니폼 명찰 하나가 비어 있다.
장우묵은 처음엔 이 기괴한 반복을 숨긴다. 그는 카메라 모니터를 가슴에 붙들고, 사라진 스태프의 자리를 다른 각도로 가리며 은조에게 “이거 납품하면 매장도 살고 우리도 산다”고 압박한다. 그러나 어느 루프에서 전광판이 순간적으로 ‘장우묵’이라는 이름을 띄우자 그는 겁에 질려 기태를 따라다닌다. 그는 맥플러리 스푼을 왕관에 꽂는 장면을 클로즈업하려고 삼각대를 들이밀고, 그 바람에 라온이 놀라 울음을 터뜨린다. 울음이 생일 노래 반주와 겹치자 주방 문 너머의 고말숙이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낡은 파티 도우미 유니폼을 입은 그녀는 촛농이 묻은 예약 클립보드를 끌어안고, 정중한 미소로 라온의 왕관 끈을 다시 묶어 준다. 기태가 십자가를 펼치자 말숙은 물러서지 않고 손바닥으로 십자가 끝을 감싼다. “아이 파티는 끝까지 해야지. 그런데 내 이름이 없으면 노래가 안 끝나.”
기태는 악령이 라온을 잡아먹으려는 것이 아니라, 끝나지 않은 생일파티에 묶여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라온은 엄마가 오기 전까지 생일이 끝나면 안 된다고 믿고 왕관 안쪽의 기름진 스티커를 계속 문지른다. 그 스티커 아래에는 오래전 파티 예약 명단의 일부가 붙어 있다. 고말숙의 이름은 본사 기록에서도, 직원들의 기억에서도 지워졌지만 왕관 안쪽 기름때 밑에는 남아 있다. 문제는 스티커를 떼는 순간 라온의 파티도 끝난다는 것, 그리고 라온이 그 사실을 알면 누구에게든 다시 장난감을 요구해 시간을 접어 버린다는 것이다.
은조는 이 진실을 일부 알고 있었다. 오래된 창고 정리를 하다 말숙의 파티 리본과 예약 클립보드를 발견했지만, 폐점 심사 전날 괴담이 새어 나갈까 봐 주방 안쪽 박스 더미에 숨겼다. 그 뒤로 직원 이름이 하나씩 점검표에서 사라졌다. 기태가 그녀를 몰아붙이자 은조는 처음으로 서비스 미소를 잃고, 주방 문 앞에서 두 팔을 벌려 막는다. “나도 매일 한 명씩 잃어. 그래도 문 열어야 돼. 문 닫으면 남은 사람들 월급도 없어.” 기태는 그녀를 밀치려다 멈춘다. 자기 역시 애플파이 식는 것보다 할부와 완료 버튼을 먼저 생각했다는 것을 손에 묻은 설탕 가루를 보고 깨닫는다.
12시 20분이 되는 루프에서 복례의 번호가 전광판에 뜬다. 복례는 약속대로 모른 척하라고 눈짓하지만, 기태는 그녀의 병원 방문 가방을 낚아채고 창가 자리에서 끌어낸다. 생일초들이 복례의 발목 앞으로 굴러와 작은 불꽃을 세운다. 복례는 “젊은 놈이 말귀를 못 알아먹는다”고 욕하면서도 트레이 매트 마지막 장을 기태 손에 쥐여 준다. 그 장에는 그녀가 루프마다 적어 온 사라진 사람들의 번호가 빽빽하다. 기태는 그것을 부적으로 접지 않고, 펼친 채로 라온 앞 테이블에 놓는다. “장난감 더 받으면 이 사람들 다 네 생일 손님에서 빠져.” 라온은 처음으로 부탁을 멈춘다. 하지만 곧 왕관 안쪽을 긁으며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그럼 엄마도 안 오잖아요.”
장우묵은 마지막 기회를 조회수로 바꾸려 한다. 그는 조명 배터리를 황금 아치 아래로 끌고 와 네온 깜빡임을 더 선명하게 찍으려 하고, 그 전선이 자동문 앞을 가로막는다. 12시 27분, 손님들이 출입문으로 몰리지만 전선과 삼각대에 걸려 넘어지고, 벤치 밑 그림자가 길게 벌어진다. 은조는 처음으로 점검표를 찢어 바닥에 던지고, 풍선 기둥 끈으로 삼각대를 묶어 넘어뜨린다. 우묵이 카메라를 지키려고 달려들자 기태는 빨간 배달 가방으로 그를 밀어 카운터에 부딪히게 한다. 카메라가 바닥을 구르며 해피밀 박스 옆에 멈추고, 렌즈에는 웃는 포스터 대신 주방 문에서 번지는 촛불만 담긴다. 우묵은 겁에 질려 진행 멘트를 외치려 하지만, 스피커에서 그의 목소리로 생일 노래 첫 소절이 흘러나온다. 말숙이 그의 말을 빼앗은 것이다.
12시 29분, 전광판에 기태의 번호가 다시 뜬다. 주방 문이 저절로 열리고, 수십 개의 작은 생일초가 바닥을 따라 굴러나와 카운터와 생일파티석 사이에 불빛 길을 만든다. 기태, 은조, 복례, 우묵은 같은 공간에 갇힌다. 라온은 왕관을 움켜쥐고 테이블 밑으로 숨으려 하고, 말숙은 주방 문턱에 서서 생일 노래를 끝까지 부르라고 손짓한다. 기태는 접이식 십자가를 버리고, 식어 딱딱해진 애플파이 상자를 뜯어 촛불 앞에 내려놓는다. 그는 라온에게 새 장난감을 주지 않는다. 대신 애플파이를 반으로 갈라 하나는 라온에게, 하나는 주방 문턱의 말숙에게 밀어 준다. “생일은 더 받는 날이 아니라, 온 사람 이름 부르는 날이래.”
복례가 영수증 뒷면을 펴고 사라진 번호들을 읽기 시작한다. 은조는 찢어진 점검표 뒷면에 기억나는 직원 이름을 손으로 눌러 쓰고, 우묵은 떨리는 손으로 카메라를 내려놓은 뒤 조명 배터리를 들어 주방 문이 닫히지 않게 괴어 둔다. 기태는 맥플러리 스푼의 휘어진 끝을 라온의 왕관 안쪽 스티커 밑에 밀어 넣는다. 라온이 울면서 그의 손을 물어뜯고, 기태의 장갑에 침과 소금이 묻는다. 은조가 라온을 뒤에서 끌어안고 “파티 끝나도 매장은 안 없어져. 내가 안 숨길게”라고 말한다. 그 말에 말숙의 미소가 처음으로 무너진다. 그녀는 클립보드를 내밀지만, 기태는 받지 않는다. 그는 라온의 머리 위에서 왕관을 통째로 찢지 않고, 스티커만 천천히 벗겨 낸다. 기름때 밑에서 ‘고말숙 파티 진행’이라는 흐린 글씨가 드러난다.
생일 노래가 마지막 소절에 닿자 초들이 한꺼번에 꺼지지 않고 하나씩 낮아진다. 말숙은 라온의 앞에 무릎을 꿇고, 자기 몫의 식은 애플파이를 두 손으로 받는다. 그녀는 라온에게 장난감을 더 주지 않는다. 대신 왕관 안쪽에서 떨어진 스티커 조각을 그의 손바닥에 올려놓고 “이제 기다리는 건 네 일이 아니야”라고 말한다. 라온은 테이블 밑으로 접히지 않는다. 그는 처음으로 왕관을 벗어 은조에게 건넨다. 그 순간 전광판은 주문 번호 대신 복례가 읽은 이름들을 빠르게 띄우고, 벤치 밑 그림자에서 접혔던 사람들이 기침하며 기어 나온다. 모두 돌아오지는 않는다. 복례의 영수증에 적힌 몇몇 번호는 끝내 빈칸으로 남고, 은조는 그 빈칸을 손바닥으로 가리지 않는다.
12시 30분이 지나도 네온은 깜빡이지 않는다. 매장 안에는 식은 감자튀김 냄새와 꺼진 초의 냄새가 섞여 있다. 장우묵은 바닥에 주저앉아 카메라를 확인하지만, 녹화본에는 선명한 공포 대신 사람들이 서로를 붙잡고 이름을 부르는 흔들린 장면만 남아 있다. 그는 그걸 지우려다 은조의 시선을 받고 손을 멈춘다. 은조는 본사 점검표 대신 말숙의 이름이 적힌 낡은 리본을 카운터 옆 직원 게시판에 꽂는다. 라온의 엄마는 늦게 도착하고, 라온은 울지 않고 식은 애플파이 반쪽을 내민다. 복례는 해피밀 장난감을 병원 가방에 넣고 자동문을 세 걸음 넘어간다. 이번에는 돌아오지 않는다.
기태는 배달 완료 버튼을 12시 31분에 누른다. 앱은 지각을 표시하고, 할부 독촉 문자는 그대로 온다. 빨간 배달 가방 안에는 애플파이 상자 하나가 비어 있고, 접이식 십자가는 카운터 밑에 두고 왔다. 그는 오토바이 헬멧을 쓰려다 유리창에 비친 황금 아치 로고를 본다. 네온은 조용하다. 그런데 트레이 매트 새 광고지 한 귀퉁이가 혼자 접히며, 작은 글씨 하나를 만든다. ‘리필.’ 기태는 욕을 한마디 삼키고, 다시 자동문 쪽으로 돌아선다. 이번에는 도망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누군가 이름을 잃기 전에 먼저 물어보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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