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센 벨크라트는 금고 안의 금화를 두 손으로 퍼 올린 뒤 거울 앞에 선다. 읽던 소설의 공작가 후계자,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마법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청년의 얼굴이 그를 따라 웃는다. 그는 원작의 첫 용 사냥에 필요한 식량을 넉넉히 사고, 견습 기사 타벤 로흐에게도 새 장갑을 내준다. 그러나 용이 내려앉자 외워 둔 주문의 첫 음절이 혀에 걸린다. 불은 용 대신 가장 가까운 짐수레를 삼킨다. 타벤 로흐가 휘어진 방패로 용의 공격을 막고 병사들을 구하는 동안, 오르센 벨크라트는 자신이 태운 밀가루 자루를 눈으로 덮는다.
그 뒤로 타벤 로흐는 임시 지휘권을 받고, 오르센 벨크라트는 부러진 수레바퀴를 붙드는 사람이 된다. 그가 길에서 건져 낸 식량은 타벤 로흐의 배급 도장 아래 들어간다. 오르센 벨크라트가 구매 장부를 내밀자 타벤 로흐는 굶주린 병사들의 그릇부터 가리킨다. 그는 장부를 접지만, 다음 배급에서는 자기 몫을 먼저 덜어 둔다. 폭설이 쏟아지는 저녁, 원정대는 바퀴를 고치던 그와 길을 찾지 못했다는 이유로 묶인 고블린 길잡이 케트를 남겨 놓고 출발한다. 오르센 벨크라트는 멀어지는 횃불을 향해 졸업생의 호칭도 공작가의 이름도 외쳐 보지만, 되돌아오는 사람은 없다. 결국 그는 케트의 결박을 풀고 남겨 둔 빵을 나눈다. 케트는 빈 밀가루 포대를 찢어 그의 발을 감싼 뒤, 짐을 버리고 자기 발이 놓이는 곳만 밟으라고 지시한다.
두 사람이 잿턱 폐광에서 마지막 장작을 난로에 넣자 문밖에서 도끼 소리가 난다. 오르센 벨크라트가 실종된 채로 돌아가면 지휘권을 잃을 것을 두려워한 타벤 로흐가 그를 탈영자로 데리러 온 것이다. 오르센 벨크라트는 문이 열리기 전에 보관함의 발파용 가루를 터뜨린다. 입구가 무너지고 도끼 소리는 구조를 청하는 두드림으로 바뀐다. 케트는 부러진 곡괭이로 낮은 배수갱을 넓히지만, 천장에서 따뜻한 물이 떨어지자 손을 멈춘다. 갱도 깊숙이 젖은 발자국이 이어지고, 난로의 불꽃이 그쪽으로 길게 눕는다. 잠에서 깬 용 우르메가 숨을 들이마시고 있다.
오르센 벨크라트는 물길을 터뜨려 추격대를 막으려던 케트의 곡괭이를 붙든다. 동시에 잔해에 손을 대지만 타벤 로흐의 목소리를 듣고 멈춘다. 밖으로 나가면 다시 그에게 붙잡힐 수 있다. 돌 너머에서는 타벤 로흐가 자기 계급을 외치다가 병사의 기침에 말을 끊는다. 오르센 벨크라트는 지휘관 이름 대신 안에 몇 명이 있는지 묻는다. 타벤 로흐를 포함해 여섯 명이다. 케트는 돌에 여섯 줄을 긋고, 그들이 배수갱을 통과할 동안 천장이 버티지 못한다고 말한다. 타벤 로흐의 허리에서 길표의 금속 고리가 울리자 그녀는 새로 판 구멍을 몸으로 막는다. 그 길표에는 자기 마을로 가는 표식이 있다. 사람들을 구해 주고 다음 부대까지 마을로 들일 수는 없다.
우르메의 턱이 두 사람 사이에 내려앉는다. 용은 케트의 곡괭이 끝을 꼬리로 밀어 물가에서 떼어 놓고, 갈라진 벽 아래로 내려가는 수면을 드러낸다. 지금 불로 틈을 봉하면 구조할 통로도 굳는다. 오르센 벨크라트는 주문을 시도하려다 입을 다문다. 대신 난로의 철문을 떼어 들고 물이 새는 좁은 틈 앞으로 기어간다. “여기부터 막겠습니다. 저쪽 사람들을 꺼낼 동안만 기다려 주십시오.” 우르메는 들이마신 숨을 입구가 아닌 철문 가장자리로 내쉰다. 젖은 바위가 붉게 녹고, 오르센 벨크라트가 소매를 감아 받친 철문이 물막이로 굳는다. 물은 멎지만 그의 마법사 외투 한쪽 소매는 타 버린다.
케트는 배수갱에서 떼어 낸 돌로 물막이 밑을 받친 다음 잔해 쪽으로 돌아온다. 오르센 벨크라트는 그녀가 고른 돌만 치운다. 틈으로 병사들을 한 명씩 당겨 들이고, 마지막 타벤 로흐의 방패가 걸리자 케트는 방패를 버리라고 한다. 타벤 로흐는 망설인다. 그 방패는 그를 영웅으로 만든 물건이다. 그러나 뒤에서 고참 병사가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자 그는 가죽끈을 자르고 빈손으로 기어 들어온다. 케트가 그의 허리에서 길표를 낚아채고, 오르센 벨크라트는 그가 내민 체포 명령서를 밟는다. 타벤 로흐가 팔을 잡으려 하자 오르센 벨크라트는 잡힌 팔을 빼지 않고 그를 갈라진 물막이 앞으로 끌고 간다. 철문 아래가 다시 젖고 있다. “저 사람들을 데려가고 싶으면, 이것부터 받쳐.”
타벤 로흐는 방패를 되찾아 철문 아래에 밀어 넣는다. 케트는 그가 허리를 굽힌 사이 지도 주머니를 열어 마을로 향하는 선을 짚는다. 오르센 벨크라트는 공작가 인장을 찍고, 타벤 로흐는 물막이를 누르던 손을 잠깐 떼어 현장 확인을 남긴다. 그가 다시 손을 대기 전에 틈이 벌어져 따뜻한 물이 발목까지 밀려온다. 케트가 길표의 마을 표식을 곡괭이로 깎아 없애는 동안, 오르센 벨크라트는 타벤 로흐와 어깨를 맞대고 철문을 버틴다. 서류를 챙긴 병사들이 배수갱으로 들어가고, 케트도 그 뒤를 따른다. 우르메는 내려간 수면을 턱으로 가리킨다. 더 기다릴 수 없다는 뜻이다.
오르센 벨크라트는 타벤 로흐를 출구 쪽으로 밀지만, 타벤 로흐는 몇 걸음 갔다가 돌아온다. 방패를 놓으면 물이 빠지고, 두 사람이 함께 버티면 아무도 나갈 수 없다. 그는 무너진 입구에서 큰 돌을 끌어와 방패 뒤에 끼운다. 오르센 벨크라트가 케트에게 배운 대로 바닥을 짚어 돌이 미끄러지지 않는 자리를 찾는다. 두 청년이 손을 떼고 배수갱으로 엎드리자 우르메가 불을 내쉰다. 철문과 방패 사이의 틈이 붙고, 뒤이어 차가운 바람이 들던 입구가 굳는다. 타벤 로흐는 갑옷 때문에 좁은 출구에 걸린다. 오르센 벨크라트는 그를 두고 나가는 대신 되돌아가 가슴판의 끈을 풀어 준다. 두 사람은 갑옷과 외투를 갱도에 남긴 채 눈 위로 굴러 나온다.
케트는 병사들을 마을이 아닌 군용도로 쪽으로 돌려보낸다. 타벤 로흐는 고참에게 오르센 벨크라트를 체포하지 말라고 말하고, 자신이 쓰게 한 탈영 보고서를 눈 위에서 찢는다. 오르센 벨크라트는 그에게 지휘권 보증서를 약속하지 않는다. 대신 마지막 병사가 고개를 넘을 때까지 함께 걷는다. 날이 밝은 뒤 그는 남은 금화로 장작을 사서 폐광의 반대편 출구로 돌아온다. 케트가 무게를 재어 짐을 나누고, 타벤 로흐도 갑옷 없는 어깨에 한 묶음을 진다. 우르메는 배수갱 앞에 놓인 장작을 보고, 마른 돌 위에 보관해 두었던 밀가루 포대를 발톱으로 밀어 준다. 오르센 벨크라트는 그것을 다시 발에 감는다. 이번에는 누구의 장면을 대신 살고 있는지 떠올리지 않는다. 케트가 먼저 발을 놓고, 그는 다음 발판을 직접 고른다.
댓글 · Comments
댓글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