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 1. 지하 주차장 – 심야.
침침한 형광등이 부분적으로 깜빡이고, 천장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어둠 속에 울린다. 주차장 구석마다 녹슨 파이프와 기름 냄새, 오래된 콘크리트의 축축함이 공기를 무겁게 짓누른다. 남기태는 권총을 든 채, 숨을 죽이며 한 걸음씩 전진한다. 그의 검은 양복에는 이미 피가 번지고, 이마에 땀방울이 맺힌다.]
남기태
(거칠게 숨을 쉬며, 어두운 기둥 사이를 응시한다)
거기 있는 거 다 알아. 여기까지 온 거, 나도 질렸다.
(목소리에 피로와 분노가 뒤섞임)
이제 그만하자. 손에 든 거, 내려놔.
[기둥 뒤에서 전직 경찰(범인)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낸다. 눈은 충혈되고, 손엔 낡은 서류가방을 들고 있다.]
전직 경찰
(웃음기 없는 목소리, 목이 쉼)
팀장님.
이거, 내가 왜 들고 있는지 아직도 모르겠어요?
내가 죽였던 놈들, 그 이름들. 아무도 기억 안 하잖아.
남기태
(이빨을 악물고 가까이 다가선다)
네가 뭘 포기했는지, 나도 알아.
근데, 그 방법이… 아니야.
(주먹을 쥐며, 눈을 잠시 감았다 뜸)
네가 저지른 일, 내가 끝까지 듣고 싶어서 왔다.
이름, 명단, 그 사람들. 왜 네가 심판이 돼야 했는지.
전직 경찰
(서류가방을 바닥에 내던지며)
그럼 물어봐요.
(한 손으로 머리를 쥐어뜯고, 주저앉는다)
내가 그때 말했잖아.
신고하자고. 근데, 아무도 안 들어줬지.
그때 당신도—
(목이 멘다, 말끝이 흐려진다)
남기태
(한참 망설이다, 낮은 목소리)
…나도, 그때 무서웠다.
아직도 그날 밤, 잠 안 와.
(주먹을 펴며, 총을 내린다)
그래도, 죽인 건… 네가 책임져야 한다.
[순간, 전직 경찰이 갑자기 뛰어들어 몸싸움이 벌어진다. 피가 튀고, 금속 소리가 퍼진다. 기태는 흉기에 복부를 찔리지만, 이를 악물고 범인을 제압한다. 두 사람은 피투성이가 된 채 바닥에 쓰러진다.]
남기태
(숨을 몰아쉬며, 범인을 눌러 앉힌다)
…다 끝났어.
다음은, 네가 법정에서 해야 할 말 남았다.
전직 경찰
(눈동자가 떨리며, 피로 번진 얼굴로)
내가… 잘못한 거죠, 팀장님?
그래도…
(입술이 새파래진다)
아무도… 안 지켜줬어.
남기태
(한 손으로 자신의 상처를 누르며, 다른 손으로 범인의 어깨를 붙잡는다)
나도, 널 지켜주진 못했다.
(목소리가 갈라진다)
그래도—
이제는, 내가 책임질게.
다 들어줄 테니까…
(피에 젖은 손을 떨며)
…도망치지 마라.
[경찰차 사이렌 소리가 멀리서 점점 가까워진다. 기태는 눈을 감았다 뜨며, 심호흡한다. 어둠 속에, 주차장 바닥에 번진 두 남자의 피가 천천히 섞인다.]
cut to
[장면 2. 응급실 대기실 – 새벽.
하얀 형광등 아래, 마리아가 등받이에 웅크리고 앉아 있다. 손끝이 광대의 점을 만지작거리고, 눈가엔 깊은 피로가 스친다. 팀원들은 조용히 각자의 방식으로 불안을 삭인다. 복도 끝에서 윤태희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온다. 그녀의 양복 자락엔 밤의 먼지가 묻어 있다.]
마리아
(작은 목소리로, 스스로에게)
이번에도, 난 바깥이네.
(웃으려다 멈추고, 한숨을 쉰다)
윤태희
(마리아 옆에 서서, 조용히)
기태 팀장 상태…
(말을 아낀다, 눈동자가 흔들린다)
곧 수술 끝난대.
(잠시 침묵)
다들, 고생 많았어요.
마리아
(태희를 바라보며, 약간의 냉소와 위로가 섞인 표정)
부장님도요.
(작게 웃는다)
오늘은, 우리 다 경계에 있었던 것 같네요.
윤태희
(손목의 시계를 바라보며)
경계에서, 누가 살아남는지.
(입꼬리를 아주 미세하게 올린다)
그게 중요한 것 같진 않아요.
누가, 끝까지 버티는지가 더.
[두 여자는 잠시 서로를 바라본다. 대기실 창 너머로 새벽의 강남이 흐릿하게 보인다. 마리아가 어깨를 펴고, 조용히 속삭인다.]
마리아
오늘 밤, 우린 다 이방인인 척 했지만…
사실, 여기에 남은 게 용기 아닐까요?
윤태희
(조용히, 단호하게)
진실 앞에서, 용기 말고는 남는 게 없어요.
(고개를 돌려 복도를 응시한다)
이제부턴, 내가 책임질 차례니까.
[창밖으로, 강남의 불빛이 아직 꺼지지 않았다. 대기실엔 긴장과 희망, 그리고 알 수 없는 슬픔이 흐른다.]
fade ou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