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로/로맨스: 그 누구보다 더 많은 비밀을 간직한 듯한 여원석과 모든 것이 신비로운 차지은의 감정은 느리지만 확고하게 타오른다. 무더운 계절 속, 각각의 불안과 두려움에 맞서면서도 서로의 내면을 이해하려 하는 두 사람은, 가슴 깊이 묻어 둔 감정의 뜻밖의 폭발을 맞게 된다. 이들의 이야기는 어쩌면 한편의 슬픈 여름 동화처럼, 지나간 계절과 함께 사라질지도 모른다. 2002년, 그 여름은 유난히도 뜨거웠다. 직장 동료들과의 일상 속에서 처음 만난 그 남자, 차지은은 그의 어딘가 촌스러운 매력에 끌렸다. 두 살 연상인 여원석은 나보다 더 많은 경험을 가진 듯 보였지만, 세상과 조금 동떨어진 느낌을 주었다. 긴장할 때면 말이 더듬거려서, 그 모습이 오히려 나를 더 끌어당겼던 것 같다. 처음의 대화는 어색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의 마음을 조금씩 열어갔다. 우리는 점심시간에 함께 식사를 하며 꿈과 고민을 나누었다. 그의 눈빛 속에는 깊은 슬픔이 담겨 있었고, 나는 그 슬픔을 이해하고 싶었다. 그의 부족함이 나에게는 오히려 매력으로 다가왔다. 우리는 입사 동기였고, 퇴근 후에는 동기들과 함께 치맥으로 밤을 새우는 날이 많았다. 그러던 중 우리는 오빠와 동생처럼 친근해지기 시작했다. 원석은 지은에게 장난스러운 관심을 보이며 매일 사내 메신저로 인사를 건넸다. “지은아~ 출근 잘했어? ㅋㅋ” 지은은 알 수 없는 설렘과 함께, 한편으로는 불안한 마음을 느끼며 답했다. “응~ 오빠도 잘했지?” “지은이 오늘도 화이팅!!!” 그 순간, 지은은 괜스레 가슴이 두근거리며 등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홀로 생각하며 “그날의 일 때문에 나에게 더 친절하게 대하는 것 같은 의구심을 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씁쓸한 기분과 함께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두 달 전, 우리는 동기들끼리 회식을 하며 술잔을 기울였다. 그런데 갑자기 나와 원석이 아닌 다른 동기와의 대화가 화두가 되더니, 경자 언니와 원석이 언성을 높이며 다투기 시작했다. 언니가 원석에게 뺨을 날리며, 언니의 반지가 원석의 얼굴에 상처를 남겼다. 그 사건 이후로 두 사람은 앙숙이 되었고, 지은은 그 사이에서 어찌해야 할지 몰라 하며 양쪽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주말에 원석과 만나 언니를 용서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그러던 중, 원석과의 만남이 잦아지면서 지은은 가슴이 떨렸다. 그러나 어느 날, 우리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고 말았다. 그날의 기억은 마지막 잔을 마신 후, 눈을 뜨니 낯선 방이었다. 술에 취한 상태에서 원석은 옆에 앉아 후회하듯 한숨을 쉬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의 관계는 점점 복잡해졌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기도 전에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야 했다. 원석이 나에게 거짓말을 했던 순간들이 떠오른다. 그 거짓말들은 진실인 것처럼 포장되어 있었고, 나는 그 속에 갇혀버렸다. 일이 있은 후, 나는 기억 없는 듯한 표정을 지으려 애썼다. 원석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지은을 가끔 부르며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럴수록 지은의 마음은 깊어졌고, 원석은 거리를 두려는 듯 보였다. 그러던 중, 원석이 다른 선배 언니와 함께 차를 타고 가는 모습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결국, 그들이 집에 어른들에게 인사를 다녀왔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지은은 아닌 척하고 싶었지만, 마음속은 아프기만 했다. “왜 나는 좋아했었고, 그 마음을 말하지 못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점점 멀어져 갔고, 그 일들을 친한 동기 언니에게 털어놓고 싶었다. 언니에게 비밀을 지켜주길 바랐지만, 언니는 원석과 싸웠던 경자 언니에게 이 이야기를 전했다. 언니는 이 일을 엄청난 상황으로 몰고 갔고, 결국 원석과 지은에게 각각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그런데 원석은 끝까지 그날의 이야기를 부인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언니들은 원석의 말에 더 신뢰를 보였고, 나는 배신감을 느꼈다. 주말에 서로 연락하며 따로 만남을 가졌냐는 비난이 쏟아졌다. 지은은 왜 이런 상황이 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끝까지 만난 적이 없다고 부인하는 원석 앞에서 처참하게 무너졌다. 언니들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자신을 믿어달라고 했지만, 그 눈물 앞에서 언니와 원석은 한 팀이 된 듯했다. 다음 날, 회사에 출근했을 때 이미 동기들과 팀장님, 심지어 인사팀까지 이 일이 보고되었다. 상황은 마치 극단적인 미스터리 소설처럼 퍼져갔다. 나는 홀로 일에 집중할 수 없었다. 팀에서도 나는 이상한 사람이 되었고, 그들은 내 뒤에서 나를 향해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하루가 처럼 느껴지며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5년을 그곳에서 보내며, 나는 점점 아래로 추락하는 듯한 시간을 보냈다. 결국, 그들의 조롱과 비난에 숨을 쉴 수 없었다. 너무 괴로운 시간이었다. 다른 회사를 다니면서도 지은은 문득 그때의 일을 떠올리며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원석이 절박하게 그 기회를 잡고 싶었고, 하루빨리 지옥 같은 가정환경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 같았다. 20년이 지난 지금, 그때의 기억은 여전히 내 마음을 괴롭힌다. 그 남자와의 관계는 좋지 않은 결말을 맞았고, 그로 인해 나는 많은 상처를 받았다. 그가 나에게 남긴 것은 사랑의 기억이 아니라, 배신과 아쉬움이었다. 그 시절의 감정이 다시 떠오를 때마다, 나는 그가 왜 내 눈에 그렇게 특별하게 보였는지, 그리고 왜 그와 가까워졌는지를 되새기게 된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면, 가슴 한 켠이 아려온다. 원석과의 관계가 그렇게 끝나버린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나는 그동안 그를 이해하려 애썼지만, 결국 그는 나와의 관계를 숨기고 싶어했던 것 같았다. 그날의 사건 이후, 그가 나에게 보였던 애정은 진심이었는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나는 내가 원석에게 과도한 기대를 했음을 깨달았다. 그가 나에게 기댈 수 있는 존재가 되어주길 바랐던 것과는 달리, 그는 자신의 복잡한 상황을 해결하려 애쓰고 있었다. 나는 그를 위로해주고 싶었지만, 결국 그에게 더 큰 부담이 되었던 것 같다. 지금은 그때의 아픔이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그 경험을 통해 사람과의 관계에서 무엇을 기대해야 할지, 어떻게 나 자신을 지켜야 할지를 배웠다. 그리고 그때의 감정들이 여전히 내 마음속에 남아있더라도, 나는 앞으로 나아가고 싶었다. 이제는 내가 나를 사랑하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과거의 상처는 여전히 아프지만, 그것이 나를 정의하지는 않는다. 원석과의 이야기가 나에게 주었던 교훈은 앞으로의 나를 더 밝게 만들어줄 것이다. 그를 잊지 못하겠지만, 이제는 그 기억을 나의 성장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싶다. 다시 그 여름으로 돌아간다면, 나는 그에게 솔직하게 내 마음을 전할 수 있을까? 아니면 그냥 멀리서 그의 행복을 바라보는 것에 만족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들을 하며, 나는 오늘도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