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다섯, 아직은 앳된 얼굴에 피곤이 서려 있었다. 강남의 화려한 불빛 아래 숨 막힐 듯 펼쳐진 성형외과의 밤은 서수연에게 고요한 공포와 같았다. 3년 차 야간 간호사. 환자들의 신음과 수술 도구의 금속성 소리 대신 정적이 감도는 수술실 복도를 걸을 때면,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걸음을 재촉하곤 했다. 어릴 적 목격했던 교통사고 현장, 그때의 냄새와 비명이 뒤섞인 기억은 여전히 그녀의 발목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예민한 감수성은 늘 그녀를 괴롭혔지만, 동시에 누군가를 돌봐야 한다는 사명감 또한 깊게 자리했다. 차분하고 꼼꼼한 성격의 수연은 환자들의 작은 불편도 놓치지 않고 세심하게 살폈고, 특유의 나긋나긋한 말투로 불안한 마음을 다독여주었다. 퇴근 후에는 서예를 하며 마음을 다스리는 그녀. 섬세한 손끝으로 한 획 한 획 글자를 새기듯, 수연은 간호사로서의 삶 속에서 흔들리지 않기 위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과 거리를 두고 있었다. 하지만 완벽한 아름다움을 향한 욕망이 들끓는 이곳에서, 그녀의 고요한 일상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려 하고 있었다.
그날 밤도 평소와 다름없이 고요했다. 수연은 습관처럼 수술실 CCTV 모니터들을 훑어보았다. 그런데, 3번 수술실 CCTV 화면에서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분명 수술이 끝난 지 한참 지났는데, 수술대 위 환자의 얼굴에서 무언가 돋아나고 있었다. 처음에는 잔털처럼 보였던 것이 점점 형태를 갖추며 기이한 꽃봉오리의 형상을 띠기 시작했다.
다음 날, 수연은 3번 수술실에서 수술받은 환자의 상태를 확인했다. 환자는 얼굴에 붕대를 감고 있었지만, 붕대 아래로 희미하게 꽃잎 같은 무늬가 비치는 듯했다. 수연은 불길한 예감을 떨칠 수 없었다. 게다가 며칠 전부터 병원에서 이상한 소문이 돌고 있었다. "밤마다 수술실에서 누군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린다", "수술실 복도에서 형체 없는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등등.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CCTV에서 목격한 기괴한 꽃과 환자의 붕대 아래 무늬를 떠올리자 등골이 오싹해졌다.
불안한 마음을 애써 누르며 수연은 윤초령의 한약방을 찾았다. "원장님, 요즘 들어 자꾸만 이상한 일들이 생겨요." 수연은 CCTV에서 목격한 이야기와 병원에서 들려오는 소문들, 그리고 알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인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초령은 한참 동안 수연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었다.
"그 꽃… 혹시… 붉은 빛깔에, 가장자리가 검게 물들고… 기형적으로 뒤틀린 모양이더냐…?"
수연은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초령이 묘사한 꽃은 CCTV에서 본 것과 정확히 일치했다. 초령은 뭔가 알고 있는 듯했지만, 더 이상 자세한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다. 다만, "네가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거라. 그리고… 조심해야 할 것이다."라는 의미심장한 말만을 남겼다.
그날 밤, 수연은 다시 한번 3번 수술실 CCTV 앞에 앉았다. 화면 속 수술실은 여전히 고요했지만, 수연은 알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그 순간, 화면 구석에서 희미하게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그림자가 나타나더니, 천천히 수술대 쪽으로 다가가는 것이었다. 수연은 숨을 죽였다. 그림자는 수술대 위에 놓인 꽃병으로 손을 뻗었다. 꽃병에는 기괴한 아름다움을 지닌 붉은 꽃, 바로 그 꽃이 꽂혀 있었다.
그때였다. CCTV 화면이 갑자기 지직거리더니 꺼져버렸다. 수연은 당황해서 다른 모니터들을 확인했지만, 모든 화면이 먹통이었다. 순간, 수술실 복도에서 찢어지는 듯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소름 끼치도록 높고 날카로운 비명. 그것은 분명 아까 CCTV에서 보았던 환자의 목소리였다.
수연은 심장이 미친 듯이 뛰는 것을 느끼며 달려갔다. 수술실 앞에 다다르자, 끔찍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수술실 문은 활짝 열려 있었고, 바닥에는 피가 흥건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훼손된 채 피투성이가 된 환자의 시신이 놓여 있었다.
수연은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으려는 찰나, 그녀의 눈에 섬뜩한 것이 들어왔다. 시신의 손에 들린 작은 메모지. 피로 얼룩진 메모지에는 떨리는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아름다움은… 저주…."
그 순간, 수연의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얼굴들이 있었다. 며칠 전 퇴원한 후 갑작스러운 사고로 죽었다는 환자, 밤마다 끔찍한 악몽에 시달린다는 환자, 그리고 얼굴에 정체불명의 흉터가 생겼다는 환자까지…. 모두 3번 수술실에서 수술을 받았던 환자들이었다.
수연은 그제야 깨달았다. 이 병원, 이곳에서 행해지는 모든 수술은… 아름다움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끔찍한 저주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리고 자신 역시 그 저주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수연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절망에 휩싸였다. 그녀의 눈앞에 아른거리는 붉은 꽃, 피 묻은 메모, 그리고 기괴하게 일그러진 환자들의 얼굴…. 그 모든 것이 뒤섞여 그녀의 정신을 흔들었다.
병원은 여전히 환자들로 북적였지만, 수연에게는 그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만 느껴졌다. 그녀는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공포와 절망감에 휩싸인 채, 깊고 어두운 나락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그 후, 수연의 모습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만, 3번 수술실 CCTV에는 여전히 기괴한 붉은 꽃이 꽂힌 꽃병과 함께, 알 수 없는 그림자가 화면 구석에서 희미하게 움직이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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