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마지막 무대, 화려함 없이 진짜 자신으로
[장소] 경연 대회장 백스테이지 — 결승 무대 직전
희미한 형광등 아래, 세 개의 접이식 의자에 앉은 이현, 주빈, 원빈. 각자 손에 작은 물병 하나씩 들고 있다. 무대 위로 새어나오는 베이스음이 벽을 타고 미세하게 흔들린다. 한쪽 벽에는 무대 순서표와 팀 이름이 적힌 종이가 어수선하게 붙어 있다.
이현
(고개 숙인 채 손가락으로 물병 라벨을 뜯는다. 잔뜩 굳은 어깨,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내쉰다.)
…다들 준비됐지.
주빈
(휴대폰을 무음으로 바꾼 뒤, 무심하게 주머니에 찔러 넣는다. 시선을 이현에게 주지 않고, 다리만 조심스럽게 흔든다.)
뭐, 망쳐도 이상한 거 없잖아. 우리답게 하면 되지.
원빈
(의자에 걸터앉은 채, 무릎 위에 손을 올리고 있다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벽에 기대선다. 표정은 굳어 있지만, 손끝이 떨린다.)
형, 오늘 진짜 솔직하게 하기로 했잖아요.
(잠깐 침묵. 이현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린다.)
나 오늘, 춤 틀려도 상관없어요. 그냥… 다 보여줄 거라서.
이현
(헛웃음. 입꼬리만 살짝 올라간다. 원빈과 잠깐 눈이 마주친다.)
그래. 우리, 오늘만큼은 좀 망가져도 되지 않냐.
(주빈을 향해 고개를 끄덕인다.)
주빈아, 너도.
주빈
(작게 한숨. 목에 손을 올려 문지른다.
머뭇거리다 조용히 입을 뗀다.)
…진짜, 오늘만큼은 나 목 터져도 돼요?
(이현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자신만의 결심을 되새긴다.)
어차피, 이거 아니면… 나한테 남는 거 없으니까.
[조명이 어둡게 바뀌고, 무대 진입을 알리는 신호음. 담당 스태프가 손짓한다.]
스태프
루시온, 무대 준비하세요.
(무심한 목소리지만, 긴장감이 백스테이지 전체에 퍼진다.)
[세 사람, 서로를 바라본다. 잠시, 아무 말도 없이.
이현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난다. 원빈, 뒤따라 일어서고, 주빈이 마지막으로 물병을 내려놓는다.
이현이 조심스럽게 두 사람의 어깨를 감싼다.]
이현
(낮은 목소리, 거의 속삭임)
야, 우리 지금 이 순간까지만, 남 신경 끄자.
진짜 우리로.
[세 사람, 무대 입구에 선다.
원빈은 맨 앞에서 숨을 고르고, 주빈은 손등으로 바지를 닦는다.
이현은 피아노 앞에 앉기 전, 깊게 숨을 들이마신다.]
[무대 위 — 조명 없음, 객석 어둠.
이현이 첫 건반을 누르자, 서서히 조명이 켜진다.
세 사람의 그림자가 무대 바닥에 길게 늘어진다.
주빈이 첫 소절을 부르려다, 잠깐 목이 멎는다.
원빈이 뒷짐을 지고, 무대 한가운데로 천천히 걸어 나간다.]
주빈
(떨리는 목소리, 그러나 곧 힘을 얻는다)
내가, 내가—
(숨을 삼키고 다시 부른다)
내가… 여기 있어.
[이현의 피아노, 주빈의 고음, 원빈의 자유로운 움직임.
무대 위에는 아무 장치도 없다.
관객석,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세 사람, 서로를 바라보며 노래하고, 춤추고, 연주한다.]
[곡이 끝남과 동시에, 전광판 불빛이 꺼지고 정적.
관객석 어둠 속에서 누군가 숨죽인 듯 눈을 닦는다.
세 사람, 무대 위에서 서로를 바라본다.
이현이 제일 먼저 주저앉고, 주빈이 옆에 앉는다.
원빈이 두 사람을 향해 달려와, 세 사람 껴안는다.
어깨를 흔들며, 셋 다 울고 있다.
잠깐, 아무 말도 없다.]
이현
(울음 섞인 목소리, 그러나 어딘가 해방된 미소)
야, 우리… 해냈다.
원빈
(코를 훌쩍이며)
이게… 이게 진짜였나 봐요.
주빈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형들, 고마워요.
[무대 뒤.
결과 발표 — 2등.
플래시 터지고, 소속사 관계자들이 다가와 화려한 제안서와 약속을 내민다.
세 사람, 서로 눈짓을 주고받는다.
잠시 후, 아무 말 없이 각각 자신의 길로 걷기 시작한다.
뒤돌아보지 않고, 그러나 서로의 존재를 느끼며.]
[cut to —
무대 위, 아직 희미하게 남은 조명 아래 세 사람의 그림자가 점점 멀어진다.
관객석에서 누군가 조용히, 박수를 친다.
침묵 속, 청춘의 밤이 저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