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94년 서울, 희망 찬 미래가 펼쳐진 도시의 화려한 불빛 아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88세의 은퇴한 물리학자 윤 박사는 한강변 고층 건물 사이로 석양이 물드는 창밖을 바라보며 착잡한 심정을 감출 수 없었다. 손녀 지은이가 사라진 지도 벌써 24시간이 지났다.
평소와 다름없이 증강 현실 게임을 하던 지은이가 갑자기 사라졌다는 소식에 손녀의 집으로 한달음에 달려왔다. 윤 박사의 머릿속은 온갖 불길한 상상으로 가득찼다. 경찰에 신고했지만, 실종 사건은 흔한 일이라는 듯 시큰둥한 반응이다. 평생을 과학 연구에 바친 윤 박사는 인공지능과 첨단 기술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인간성이 점점 희미해져 간다고 생각한다.
그는 손녀에게 항상 비판적인 사고와 윤리적 판단의 중요성을 강조했지만, 지은이는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다. "요즘 세상에 무슨 일이 생기겠어요? CCTV가 얼마나 많은데요."라며 안심 시키던 지은이의 밝은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윤 박사는 마지막 희망을 걸고 지은이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장소로 향하기로 했다. 자율 주행 택시는 그의 불안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서울의 복잡한 도로를 조용히 가로질러 갔다.
목적지에 도착하자 낡고 을씨년스러운 지하철 역이 눈앞에 나타났다. 흐릿하게 강남역이라는 표지판이 보였다. 공중 철도가 개통된 이후 지하철 이용은 순식간에 급감했다. 오래 전에 폐쇄된 이곳은 사람 그림자 하나 없이 퀴퀴한 냄새와 음산한 기운만 감돌았다.
택시에서 내린 윤 박사는 지은이의 흔적을 찾기 위해 어둠 속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때, 어둠 속에서 날카로운 금속성 소리가 들렸다.
"움직이지 마세요, 윤 박사님."
차갑고 기계적인 목소리였다.
윤 박사는 뒤를 돌아볼 틈도 없이 누군가에게 제압 당했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다름 아닌 주서준이었다. 과거 윤 박사의 제자였지만, 인공지능을 이용한 범죄 기업을 만들어 세상을 위협하는 존재가 된 남자.
주서준은 섬뜩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랜만입니다, 윤 박사님. 당신의 손녀딸은 잘 지내고 있습니다. 적어도 아직까지는요."
주서준은 윤 박사를 끌고 지하철역 깊숙한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최첨단 장비들로 가득 찬 비밀 연구실이 숨겨져 있었다. 수십 명의 젊은이들이 의자에 묶여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들의 머리에는 복잡한 장치가 연결되어 있었고, 눈은 텅 빈 공허함으로 가득했다.
주서준은 이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들은 '미래 프로젝트'의 실험체들입니다. 젊은이들의 뇌파를 이용해 인공지능의 학습 능력을 극대화하는 프로젝트죠. 당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윤박사는 AI 시스템을 개발할 때, 강력한 윤리적 제약 코드를 내장시켜 놓았다. 주서준은 AI 시스템를 악용하기 위해 윤박사의 해제 코드가 필요했던 것이다. 윤 박사는 주서준의 제안을 단호하게 거절했다.
"나는 내 연구가 인류를 위협하는 데 사용되는 것을 절대 용납할 수 없네! 당장 내 손녀딸과 이들을 풀어주게!"
분노에 찬 윤 박사의 외침에도 주서준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윤 박사의 손녀딸 지은이를 끌고 와 그의 앞에 세웠다.
"할아버지, 도와주세요! 무서워요!" 공포에 질린 지은이의 모습에 윤 박사는 깊은 좌절감에 빠졌다.
한편, 지은이의 친구이자 15살 소년 김민수는 지은이가 사라진 것을 알고 불안한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평소 지은이와 함께 증강현실 게임을 즐기던 민수는 마지막 접속 기록을 추적해 지은이가 향한 곳이 폐쇄된 강남 지하철역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선천적 장애로 인해 첨단 기술이 적용된 휠체어에 의존하는 민수였지만, 그의 두려움은 용기로 바뀌었다.
민수는 스텔스 모드를 작동시키고 높은 기동성을 자랑하는 휠체어를 타고 강남역으로 향했다. 그의 증강현실 글래스는 어둠 속에서도 주변 환경을 선명하게 보여주었고, 그는 조심스럽게 지하 연구실로 향하는 비밀 통로를 발견했다.
윤 박사는 주서준의 감시 아래 어쩔 수 없이 연구에 참여하는 척하며 시간을 벌었다. 그는 몰래 지은이에게 다가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지은아, 두려워하지 마라. 이 할아버지가 반드시 너를 구출할 거다. 이걸 가지고 저쪽으로 가 있어."
윤 박사는 지은이에게 자신이 몰래 숨겨둔 작은 장치를 건네주었다. 그것은 바로 윤 박사가 오랜 연구 끝에 개발한 초소형 EMP 발생 장치였다. 바로 그때, 지하 연구실에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졌다.
민수가 연구실의 보안 시스템을 해킹해 혼란을 일으킨 것이다. 민수는 재빠르게 휠체어를 움직여 지은이에게 다가갔다.
민수의 등장에 주서준은 경악했고, 윤 박사는 혼란의 틈을 놓치지 않고 지은이에게서 EMP 장치를 건네 받아 작동시켰다. 순간, 연구실의 모든 전력이 차단되고 어둠이 삽시간에 공간을 뒤덮었다.
그때 민수가 몰래 영상으로 보낸 증거 덕분에 경찰이 도착해 상황을 진압했다.
사건 이후, 윤 박사는 첨단 기술의 발전과 인간성 사이의 윤리적 딜레마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데 앞장서게 되고, 민수는 그의 용감한 행동으로 사회에 희망을 불어넣는 영웅으로 칭송 받는다.
폐허 속에서 피어난 인간애와 용기는 차가운 기술 문명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희망의 불꽃으로 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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