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0년, 서울. 첨첨한 빌딩 숲 사이로 따스한 햇살이 스며드는 아침, 서른둘의 원격 진료 상담원 윤서아는 여느 때처럼 하루를 시작한다. 모니터 속 환자들의 얼굴에는 고통과 불안이 가득하지만, 서아는 침착하고 따뜻한 목소리로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첨단 기술로 연결된 화면 너머의 아픔은 익명의 목소리일 뿐, 서아에게는 그저 '일'일 뿐이었다.
퇴근 후, 서아는 낡은 레코드판에서 흘러나오는 클래식 음악으로 가득 찬 자신의 작은 아파트로 돌아온다. 유일한 말동무는 창가에 놓인 작은 화분들. "오늘은 유난히 힘든 하루였어..." 서아는 시든 잎에 물을 주며 나지막이 중얼거린다. 사실, 서아는 어릴 적 앓았던 병으로 인해 희미한 통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누구보다 첨단 의료 기술의 혜택을 잘 아는 그녀는, 정작 자신에게는 그 손길을 허락하지 않는다. 마치 자신의 고통은 중요하지 않다는 듯, 타인의 아픔을 보듬는 일에만 매달리는 서아. 그렇게 서아는 자신의 내면 깊은 곳에 자리한 상처를 외면한 채 살아가고 있었다.
한편, 서아의 단골 식당인 '영희네 밥집'에는 예순셋의 박영희 할머니가 오늘도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요즘 젊은 것들은 영..." 혼잣말처럼 잔소리를 늘어놓으면서도, 영희 할머니의 손길은 누구보다 따뜻하다. 젊은 시절 남편과 사별 후 홀로 딸을 키우며 온갖 고생을 겪었던 그녀에게는, 세상살이의 고단함을 묵묵히 견뎌내는 서아가 안쓰럽기만 하다. "그렇게 남 걱정만 하지 말고, 너 자신부터 챙기라니까!" 영희 할머니는 툴툴거리면서도 서아에게 매번 푸짐한 밥상을 내어준다. 서아에게 영희 할머니의 잔소리는 듣기 싫은 잔소리가 아닌, 마치 돌아가신 어머니의 걱정 어린 잔소리처럼 느껴진다.
어느 날, 서아는 지역 사회 센터에서 봉사활동을 하던 중 마흔다섯의 한지원을 만나게 된다. 희끗희끗한 은발을 묶고 수수한 옷차림을 한 지원은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로 가득한 사람이었다. 남편과 사별 후 홀로 딸을 유학 보낸 아픔을 봉사로 승화시키며 살아가는 지원. 서아는 지원과의 만남을 통해 진정한 '치유'는 단순히 육체적인 고통을 치료하는 것뿐만 아니라 마음의 상처까지 보듬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서로에게 기대어 살아가는 거야. 혼자 아픔을 삭이고 그러면 못써." 지원의 진심 어린 조언은 서아의 마음속 깊은 곳에 파문을 일으킨다.
하지만, 서아는 여전히 자신의 아픔을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러던 중, 서아는 우연히 영희 할머니의 낡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옛 노래를 듣게 된다. "고향의 봄"이라는 노래는 영희 할머니가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 자주 불러 달라고 졸랐던 노래였다. 영희 할머니는 노래를 들으며 옛 추억에 잠겨 눈시울을 붉힌다. 그 모습을 본 서아는 그제야 깨닫는다. 자신의 아픔을 숨기고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정면으로 마주하고 치유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 과정에서 진정한 '나'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며칠 후, 서아는 용기를 내어 병원을 찾는다. 그리고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을 괴롭혀 온 아픔과 마주하기로 결심한다. 서아는 자신을 따뜻하게 맞이하는 의사의 얼굴을 보며, 비로소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따스한 온기를 느낀다. 그것은 마치 오랜 세월 꽁꽁 얼어붙었던 마음의 문이 활짝 열리는 듯한, 새로운 희망의 시작을 알리는 따스한 햇살과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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