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뜬 순간, 익숙한 안방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평소와 다른 점이 있었다. 모든 창문이 두꺼운 철판으로 막혀 있었고, 희미하게 새어 들어오던 햇살마저 완벽히 차단된 채 기이할 정도로 고요했다. 불길한 예감에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아내 서연을 흔들어 깨웠지만, 방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마치 거대한 무언가에 갇힌 듯, 숨 막히는 공포가 우리를 짓눌렀다. 그때였다. 협탁 위 낯선 휴대폰에서 날카로운 진동 소리가 울려 퍼졌다. “당신들의 죄를 고백하세요.” 의문의 메시지는 마치 우리의 과거를 꿰뚫어 보는 듯 서늘했다.
서로를 의심하는 눈초리로 바라보는 순간, 잊고 있던 과거의 사건들이 떠올랐다. 뺑소니 사고, 거짓 증언, 그리고 침묵. 그 당시 우리는 서로를 지키기 위해, 아니 어쩌면 우리 자신을 속이기 위해 필사적으로 진실을 외면했었다. 하지만 벽 속 저승사자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매일 밤, 벽 너머에서 들려오는 기괴한 소리, 꺼져가는 화면 속 18이라는 숫자, 그리고 끊이지 않는 죄의 고백 요구. 서연은 점점 쇠약해져갔고, 나는 발광할 것만 같았다.
"진실을 밝혀라." 벽에서 흘러나오는 메시지는 점점 더 강렬해졌다. 18이라는 숫자는 어느새 16으로 바뀌어 있었다. 벽 속 저승사자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경고하는 듯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벽에서 섬뜩한 영상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어린 아이가 검은 천으로 뒤덮인 채 의자에 묶여 있었다. 아이의 눈에는 공포가 가득했고, 숨소리는 가빠져만 갔다.
"당신들이 외면한 진실이 바로 이 아이의 죽음과 관련된 것입니다." 벽 너머의 목소리는 차갑고 잔혹했다. 영상 속 아이는 우리가 저지른 뺑소니 사고의 희생자였다. 우리는 그 아이를 구할 수 있었지만, 성공과 안위를 위해 침묵했던 것이다. 죄책감과 공포에 휩싸인 나는 서연을 끌어안고 오열했다.
다음 날 아침, 벽에는 새로운 메시지가 나타났다. "진실을 밝히고 속죄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당신들도 같은 운명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서연은 공포에 질려 모든 것을 자백하자고 애원했다. 하지만 나는 아직 용기를 내지 못했다.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나를 짓눌렀다.
시간이 흐르고, 벽 속 숫자는 끊임없이 줄어들었다. 5, 4, 3... 마지막 숫자가 나타나자, 방 전체가 붉은빛으로 물들었다. 귀청을 찢는 듯한 경고음과 함께 벽이 갈라지기 시작했고, 그 틈으로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이제 당신들의 죄값을 치르십시오."
검은 그림자는 순식간에 나와 서연을 삼켜버렸고, 우리는 영원히 어둠 속에 갇히게 되었다. 벽에는 마지막 메시지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아직도 지은 죄의 댓가는 다 치뤄지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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