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1시 53분, 배도겸은 폐점한 서브웨이 매장을 재난영화의 마지막 생존 구역처럼 꾸민다. 초록 타일에는 조명을 비스듬히 쏘고, 메뉴 보드의 노란빛이 30센티 샌드위치의 빵결을 핥게 만든다. 그는 흰 장갑 낀 손으로 오이 한 장에 물방울 세 개를 찍는다. 한 방울은 신선함, 두 방울은 절박함, 세 방울은 계약금이라고 믿는다. 나해림은 5분 빠른 손목시계를 들이밀며 조명 스탠드를 치우라고 하지만, 도겸은 “빛은 치우는 게 아니라 길들이는 겁니다”라고 답한다. 그 순간 반사판이 양상추 트레이를 건드리고, 촬영용 샌드위치가 조리대를 미끄러져 낡은 환풍구 안으로 떨어진다.
도겸은 망설임 없이 환풍구 덮개를 뜯으려 하지만, 아래 승강장에서 올라온 오봉철이 빗자루 자루로 그의 팔을 막는다. 봉철은 바닥에 떨어진 피클 하나를 집게로 들어 올려 얼룩 수첩에 적고, 환풍구를 열면 먼지와 소스가 승강장으로 떨어질 수 있다며 통제선을 친다. 도겸은 흰 장갑을 더럽히지 않은 채 빗자루를 빼앗으려 하고, 봉철은 그를 막으려다 조명 케이블에 발이 걸린다. 둘이 넘어지는 사이 환풍구 속 샌드위치는 바람을 타고 플랫폼 끝으로 빠져나가고, 막차 객실 문이 열리자 윤복자의 초록·노랑 종이봉투 안으로 굴러 들어간다.
윤복자는 봉투 속 묵직한 물체를 손주 몫의 샌드위치라고 단정한다. 그녀는 야간 요가 수업이 끝난 뒤 직접 산 샌드위치를 들고 귀가 중이었고, 손주가 기다리는 집으로 빈손으로 돌아갈 수 없다. 도겸이 객실에 뛰어들어 “그건 광고용입니다!”라고 외치자, 윤복자는 “광고는 내일도 하지만 애는 오늘 밤 배고프다”고 받아친다. 객실의 막차 승객들은 그 말을 듣고 봉투를 다음 좌석으로 넘긴다. 야간 근무자는 도시락 통으로 길을 막고, 졸던 승객은 샌드위치를 럭비공처럼 머리 위로 패스한다. 도겸은 손잡이에 매달려 객실을 가로지르고, 해림은 플랫폼에서 초시계를 흔들며 그가 남은 시간을 허비할 때마다 “한 번 더 뛰면 빵도 너도 식어!”라고 소리친다.
봉철은 객실 문 앞을 빗자루로 가로막고, 봉투가 흔들릴 때마다 소스가 샐 가능성을 경고한다. 그는 도겸에게 샌드위치를 되찾게 해 주는 대신, 승강장에 얼룩을 남기면 촬영이고 계약이고 전부 변상 처리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그러나 윤복자가 그의 수첩에서 오래된 케첩 자국을 발견한다. 봉철은 그 얼룩이 몇 달 전 막차를 놓친 아들을 위해 뛰던 승객이 흘린 것이라고, 지우지 못한 채 매일 기록만 덧붙여 왔다는 사실을 들킨다. 윤복자는 수첩을 그의 가슴에 꾹 눌러 주며 “기록한다고 다 깨끗해지는 건 아니지”라고 말한다. 봉철은 대답 대신 빗자루 끝으로 객실 바닥의 미끄러운 소스 자국을 닦고, 조용히 다음 역 비상문 쪽을 가리킨다.
그 사이 해림은 매장에 남아 예비 30센티 빵을 꺼내려다 멈춘다. 폐기 직전 재료를 따로 빼 둔 사실이 드러나면 본사 점검에서 잘릴 수 있다. 하지만 도겸이 되찾으려는 샌드위치는 이미 환풍구 먼지와 객실 바닥을 거쳤다. 그는 완벽한 한 컷을 위해 사람들을 뛰게 만들었지만, 정작 카메라 앞에 올릴 수 없는 빵을 붙잡고 있었다. 해림은 예비 빵을 들고 플랫폼으로 내려와 도겸의 가슴을 밀친다. “네가 살리려는 건 샌드위치가 아니라 네 별명이야.” 도겸은 반박하려다, 윤복자가 봉투를 가슴에 안고 문가에 서 있는 모습을 본다. 그는 처음으로 흰 장갑을 벗어 해림에게 건넨다. 그리고 예비 빵을 받지 않고, 객실 안으로 들어가 윤복자에게 촬영용 샌드위치를 손주에게 가져가라고 말한다.
막차 출발 경고음이 울리자 객실의 승객들은 멈춘다. 윤복자는 봉투를 열어 먼지 묻은 촬영용 샌드위치를 꺼내고, 자기 것이었던 따뜻한 샌드위치를 도겸에게 내민다. “이건 진짜 음식이니까, 네가 찍어.” 도겸은 손주 몫을 빼앗을 수 없다며 고개를 젓지만, 윤복자는 빵을 반으로 나눈다. 한쪽은 손주에게 줄 수 있게 봉투에 넣고, 다른 한쪽은 도겸의 손에 쥐여 준다. 해림은 그 반쪽을 받아 매장으로 달리고, 봉철은 빗자루로 사람들의 발밑을 정리하며 통로를 만든다.
촬영 시작 직전, 매장에는 반쪽짜리 샌드위치와 먼지 묻은 종이봉투, 봉철의 빗자루, 윤복자의 빨간 고무줄이 놓인다. 도겸은 더는 물방울을 찍지 않는다. 대신 해림이 지키던 예비 재료로 빈 단면을 채우고, 봉투의 구김과 고무줄까지 화면에 남긴다. 메뉴 보드의 초록빛 아래, 샌드위치는 완벽해서가 아니라 누군가가 들고 뛰고, 나누고, 닦아 낸 흔적 때문에 이상하게 살아 보인다. 촬영 셔터가 터지는 순간, 봉철은 바닥의 작은 소스 방울을 발견한다. 그는 수첩을 꺼내다가 멈추고, 빗자루로 조용히 문지른다. 윤복자의 막차는 떠나고, 도겸의 흰 장갑은 조리대 위에서 처음으로 누렇게 얼룩진 채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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