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린은 제7훈련구역의 회색 급수탑 아래에서 마지막 산소 필터를 손목 밸브에 끼운다. 필터 잔량은 17분. 콘크리트 바닥의 흰 원형 표시마다 쓰러졌던 후보생들의 무릎 자국이 남아 있고, 이제프 파로딘은 태린의 목 잠금쇠를 손톱 끝으로 눌러 맞춘다. 그는 “하늘은 보상으로 주어지는 게 아니다. 살아 돌아온 자만 훔쳐 보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태린은 두려움을 감추려고 밸브를 세 번 두드리다가 네 번째에서 멈춘다. 그녀의 외부 목표는 파견자가 되어 진짜 지상을 밟는 것이다. 그러나 더 깊은 곳에서는, 자신이 어린 시절 지상 노출 사고에서 왜 혼자 살아남았는지 알고 싶어 한다. 그 질문은 헤이븐에서 입 밖에 내면 격리실로 끌려가는 종류의 질문이다.
시험은 단순한 달리기가 아니다. 후보생들은 급수탑 내부의 좁은 사다리를 올라가, 인공 포자 안개가 차오르는 탱크실에서 17분 동안 필터 교체 없이 구조 표식을 회수해야 한다. 태린은 중간 지점에서 다른 후보생 하나가 산소 부족으로 헬멧 안에 구토하는 것을 보고 멈춘다. 규정대로라면 지나쳐야 하지만, 태린은 자기 필터 라인을 잠시 떼어 그 후보생의 보조 밸브에 연결한다. 그녀의 기록계에는 즉시 비정상 호흡 수치가 찍힌다. 이제프는 관제 유리 뒤에서 그 장면을 보고 얼굴을 굳힌다. 태린은 표식 회수 시간에서 11초를 잃지만, 구토한 후보생을 사다리 아래로 밀어 내려 살린다. 시험장은 술렁이고, 이제프는 직접 문을 열고 들어와 태린의 손목을 잡는다. 그는 그녀를 탈락시키지 않는다. 대신 “너는 명령을 어겼고, 그래서 현장에서 쓸모가 있다”라고 낮게 말하며 첫 지상 임무 명단에 그녀 이름을 올린다.
같은 시각 중앙 방역청 기록실에서 민도윤은 폐기함에 실려 온 오래된 실험 로그 묶음을 분류한다. 냉각팬이 한 박자 늦게 돌자 그는 손목 안쪽을 긁으며 시간 코드를 맞춘다. 흰 라벨이 붙은 파일 하나에는 ‘노출 사고 생존아 7번’이라는 낡은 표기가 남아 있고, 생체 파형은 태린의 파견자 등록 파형과 정확히 겹친다. 민도윤은 어머니의 폐섬유화 치료권이 걸린 상위 배급 카드를 주머니에서 만지작거리다, 폐기 도장을 찍으러 온 상관 앞에서 일부러 커피 대용액을 쏟는다. 상관이 욕설을 하며 젖은 문서를 들어 올리는 사이, 민도윤은 필름 조각 세 장을 소매 안쪽에 숨긴다. 그는 그날 밤 기록실 배수관을 타고 내려가 금지된 옛 지하철 환기구에서 낡은 지상 송신기를 켠다. 하지만 파일을 보내는 것으로 끝내지 않는다. 그는 실험 장면이 새겨진 얇은 기억판을 방수천에 싸서 자신의 몸에 묶고, 헤이븐 하층의 검은 물이 차오르는 폐선로를 건너 태린이 출정하는 게이트로 직접 향한다.
태린의 첫 지상 임무는 폐유치원 주변 자원 회수와 포자 농도 측정이다. 이제프는 지휘관으로 동행하지 않고, 지하 관문 앞에서 태린의 헬멧을 두 손으로 잡아 마지막으로 밀봉한다. 그의 장갑은 차갑고 정확하다. “기록계는 너를 지킨다. 꺼지면 나도 널 지킬 수 없다.” 태린은 그 말을 믿고 싶어 한다. 지상문이 열리자 포자 안개가 계단 아래로 흘러 들어온다. 태린은 처음으로 하늘을 본다. 회색 구름 틈에 아주 얇은 새벽빛이 있고, 무너진 고가도로의 균사는 푸른 혈관처럼 떨린다. 그녀는 숨을 들이마시지 않았는데도 젖은 종이 냄새와 단내를 느낀다.
폐유치원에 도착했을 때 보랏빛 버섯등이 그네 사슬을 감싸고 있다. 태린은 모래밭에 꽂힌 낡은 색연필을 줍다가 작은 발자국을 발견한다. 그 발자국은 금지된 늪인 구역 쪽으로 이어진다. 동행 파견자는 즉시 표식을 찍고 철수하자고 하지만, 태린은 발자국 가장자리에 묻은 피와 진흙을 본다. 그때 포자 폭풍이 운동장 담을 넘어온다. 통신은 끊기고 산소 필터는 급격히 닳는다. 태린은 미끄럼틀 아래로 몸을 던지지만, 헬멧 측면에 균열이 생긴다. 포자 알갱이가 작은 별처럼 헬멧 안으로 들어온다. 그녀가 숨을 멈춘 순간, 귀 안쪽에서 작은 종이 한 번 울린다.
쏠이 깨어난다. 먼저 쇠 맛이 혀에 번지고, 왼쪽 눈가에 푸른 빛이 퍼진다. 그 다음에야 목소리가 온다. “왼쪽. 젖은 흙 아래가 비어 있어.” 태린은 자신이 미쳐 간다고 생각하면서도 손으로 모래를 파헤친다. 그 아래에는 늪인들이 쓰는 숨은 길이 있다. 그녀가 기어 들어가자 폐유치원 커튼으로 만든 망토를 걸친 이오가 어둠 속에서 칼처럼 깨진 조개껍데기 마스크를 쥐고 서 있다. 이오는 도망치지 않는다. 그는 태린의 산소 필터 소리를 흉내 내고, 자기 마스크의 반쪽을 떼어 그녀에게 내민다. 태린은 규정상 오염 물품을 착용하면 즉시 격리 대상이 된다는 것을 안다. 그래도 그녀는 헬멧 균열 위에 그 반쪽을 묶는다. 포자 폭풍이 잦아들 때까지 태린과 이오는 미끄럼틀 아래에서 서로의 숨소리를 듣는다. 태린의 기록계는 산소 사용량과 생체 반응이 맞지 않는 붉은 수치를 계속 저장한다.
이오는 사라진 동생의 발자국을 찾고 있었다. 카리나가 막아 둔 금지선 아래에서 동생의 조개끈이 발견되었고, 이오는 어른들에게 말하지 않고 혼자 나왔다. 태린은 그를 헤이븐에 넘기지 않고 늪인 마을 쪽으로 데려다주려 한다. 그러나 그녀가 모래밭을 건널 때, 이제프의 정찰 드론이 이오의 피 묻은 발자국과 태린의 비정상 호흡 수치를 동시에 포착한다. 태린은 드론을 향해 돌을 던져 렌즈를 깨지만, 위치 신호는 이미 전송된다. 이오가 금 간 조개껍데기 가장자리를 엄지로 문지르며 피를 내는 것을 보고, 태린은 그 작은 손을 잡는다. 그 순간 쏠은 태린에게 이오의 공포를 감각으로 흘려보낸다. 차가운 발, 잃어버린 동생 이름, 버섯등 아래에서 울지 않으려 깨문 입술. 태린은 더 이상 늪인을 ‘오염체’라고 부를 수 없게 된다.
늪인 마을 입구에서 카리나가 나타난다. 그녀는 태린의 방호복 봉인을 보고 먼저 총을 들지 않는다. 대신 조개껍데기 마스크 끈을 확인하고, 태린의 목 옆에서 희미하게 번지는 푸른 균사 무늬를 본다. 카리나는 진흙 위에 잃어버린 단어의 모양을 손가락으로 그리다가 멈춘다. “네 안에 잠든 것이 길을 기억한다.” 태린은 반발하지만, 카리나는 그녀를 낮은 뿌리 굴로 데려간다. 그곳에는 헤이븐에서 버려진 아이들, 감염 판정을 받고 투기된 노인들, 방호복 조각으로 지붕을 기운 가족들이 산다. 아름다운 빛 아래에 폐기된 의료 튜브와 깨진 연구소 표지판이 박혀 있다. 카리나는 태린에게 진술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녀는 먼저 이오의 손가락 상처를 씻기고, 태린에게 그 물그릇을 잡게 한다.
그 밤, 민도윤은 폐선로와 배수구를 지나 지상 환기탑 아래로 올라온다. 그는 숨이 차서 거의 쓰러지지만, 카리나의 정찰자들에게 발견되어 늪인 마을로 끌려온다. 태린은 그를 보고 방호복 장갑을 벗지도 못한 채 뒤로 물러난다. 민도윤은 말로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 그는 몸에 묶은 방수천을 풀어 기억판을 꺼내고, 카리나가 준비한 균사막 위에 그것을 눌러 붙인다. 빛이 켜지고, 태린은 자신의 어린 시절을 본다. 흰 조명, 손목을 묶은 고무 끈, 이제프보다 젊은 연구원들의 그림자, 그리고 아주 작은 종소리. 실험실의 유리벽 너머에는 카리나도 있다. 그녀는 당시 연구원이었고, 실험이 중단되자 아이들을 살리려다 헤이븐에서 버려졌다.
태린은 카리나의 멱살을 잡는다. “당신도 거기 있었잖아.” 카리나는 저항하지 않는다. 그녀는 태린의 손에 목이 눌린 채, 자신이 그날 태린을 빼내려다 실패했고 대신 쏠과의 결합을 안정시키는 약물을 주입했다고 말한다. 그 약물이 태린을 살렸지만, 태린의 기억 일부를 봉인했다. 태린은 카리나를 밀쳐 넘어뜨리고 뿌리 굴 밖으로 뛰쳐나간다. 쏠은 따라오지 않는 것처럼 침묵한다. 그 침묵이 더 무섭다. 태린은 처음으로 자신이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보관되었다는 사실을 몸으로 느낀다.
헤이븐은 태린을 회수하기 위해 이제프를 지상으로 보낸다. 이제프는 백색 종 살포 부대를 이끌고 숲 가장자리에 도착한다. 백색 종은 종처럼 생긴 흰 탱크를 세 개 달고 있으며, 이동할 때마다 낮고 둔한 울림을 낸다. 이제프는 늪인 마을을 향해 바로 발포하지 않는다. 그는 먼저 태린을 찾는다. 폐유치원 강당에서 두 사람은 마주 선다. 벽에는 벗겨진 토끼 그림 위로 균사가 자라 새 귀를 만든 것처럼 보인다. 이제프는 태린의 감염 판정 장비를 꺼내고, 붉은 표적이 그녀의 가슴에 뜨자 눈을 감는다. 그는 그녀에게 돌아가자고 한다. “격리하면 살릴 수 있다. 네 안의 것을 떼어 내면 된다.” 태린은 이제프의 필터 케이스 안쪽에 새겨진 전사자 이름들을 본다. 그 이름들은 그가 사랑했던 사람들의 묘비이자 칼날이다.
태린은 민도윤이 가져온 기억판을 이제프에게 내민다. 그러나 이제프는 그것을 보지 않고 바닥에 떨어뜨린다. “기록은 언제나 오염된다. 몸만 믿어라.” 그는 태린에게 다가와 직접 손목 밸브를 잠근다. 산소 흐름이 끊기고 태린의 헬멧 안이 흐려진다. 이제프는 그녀를 끌어안듯 붙잡고 격리 주사를 꺼낸다. 그 순간 태린은 쏠에게 처음으로 명령하지 않고 부탁한다. “내 손을 움직이지 마. 내가 볼 수 있게만 해.” 쏠은 종소리 대신 통증을 줄인다. 태린은 자기 힘으로 이제프의 손목을 비틀어 주사를 떨어뜨리고, 헬멧 잠금쇠를 스스로 연다. 지상 공기가 얼굴을 때린다. 그녀는 쓰러지지 않는다. 이제프는 한 걸음 물러선다. 그의 믿음에 첫 금이 간다.
하지만 이오가 동생을 찾으러 다시 금지선 아래로 들어가며 더 큰 재앙을 부른다. 이오는 동생의 조개끈을 따라가다 백색 종 선발 정찰대의 표식 말뚝을 발견한다. 그는 그것을 뽑아 도망치지만, 말뚝에 묻은 위치 추적 포자가 그의 발목 균사 끈에 달라붙는다. 이제프의 부대는 그 흔적을 따라 마을의 숨은 입구를 찾아낸다. 카리나는 피난로를 열고 아이들을 뿌리 굴 깊은 곳으로 밀어 넣지만, 가장 어린 뿌리가 신경독 예비 분사에 닿아 검게 오그라드는 것을 본다. 그녀는 망설이지 않고 바깥 피난로 하나를 닫는다. 그 길을 닫으면 백색 종의 독이 중심부로 바로 들어오지 못한다. 대신 아직 밖에 남은 어른 몇 명과 카리나 자신이 퇴로를 잃는다.
민도윤은 헤이븐으로 돌아갈 수 있는 마지막 배수문 앞에서 멈춘다. 어머니의 치료권을 되찾으려면 지금 내려가 자신이 훔친 기록판을 카리나에게 빼앗겼다고 거짓 보고하면 된다. 그는 배수문 손잡이를 잡고 한참 서 있다가, 문을 닫는 대신 반대로 잠금핀을 뽑아 늪인 아이들이 지나갈 좁은 통로를 만든다. 검은 물이 폐선로에서 역류해 그의 허리까지 차오른다. 그는 아이들을 한 명씩 들어 올려 통과시키고, 마지막으로 이오를 밀어 넣는다. 이오는 울면서 그의 손목을 붙잡지만, 민도윤은 자기 어머니 약봉지에서 떼어 온 흰 라벨을 이오의 조개 마스크 안쪽에 붙여 준다. “숨 막히면 이쪽을 물어. 찢어지지 않게.” 그가 물속에서 버티는 동안, 헤이븐 방역병들이 뒤늦게 내려와 그를 체포한다.
새벽 04:40, 포자 밀도가 잠시 낮아지고 헤이븐 방역 감시망이 교대되는 짧은 틈에 이제프는 백색 종을 작동시킨다. 숲 가장자리에 흰 종 세 개가 세워지고, 살포관이 늪인 마을의 뿌리 지붕을 향한다. 태린은 카리나가 닫은 피난로 앞에 도착한다. 카리나는 이미 신경독에 노출되어 목의 푸른 무늬가 희미해지고 있다. 그녀는 태린에게 싸우는 법을 말로 가르치지 않는다. 자기 손바닥을 태린의 맨손에 붙이고, 균사망이 기억하는 길을 몸으로 넘긴다. 그 대가로 카리나는 오래 붙잡고 있던 단어 하나를 잃는다. 그녀는 태린을 보며 무언가 말하려 하지만, 입술만 떨린다. 태린은 그 단어가 ‘용서’인지 ‘딸’인지 알 수 없다.
태린은 백색 종 앞으로 걸어간다. 이제프는 총을 겨눈다. 주변에는 파견자 부대, 늪인 피난민, 물에 젖은 민도윤을 끌고 온 방역병들, 조개껍데기 마스크를 쓴 이오가 모두 있다. 누구도 화면 뒤에 있지 않다. 모두 같은 새벽 공기 속에서 숨을 쉰다. 이제프는 태린에게 마지막으로 무릎 꿇으라고 명령한다. 태린은 손목 밸브를 세 번 두드리고, 네 번째에는 멈추지 않는다. 그녀는 밸브를 뜯어내고 생체 수치 기록계를 바닥에 던진다. 쏠은 그녀의 시야를 늪인 마을 전체와 연결한다. 버섯등, 조개 마스크, 검은 물에 젖은 배수문, 카리나의 떨리는 손, 민도윤의 찢어진 손목, 이오의 작은 발자국이 한꺼번에 들어온다.
태린은 균사망을 방패로 세우려 하지만, 그것은 벽처럼 솟지 않는다. 대신 땅 아래의 뿌리들이 백색 종의 살포관을 붙잡고, 늪인들이 몸으로 당긴 밧줄과 함께 방향을 틀게 만든다. 이제프는 이를 막기 위해 직접 살포기 위에 올라가 수동 손잡이를 잡는다. 태린도 올라간다. 두 사람은 흰 탱크 위에서 서로의 장갑과 팔을 붙잡고 밀친다. 이제프는 태린을 떨어뜨리려 하지 않고, 한 손으로 그녀의 헬멧 없는 머리를 감싸 포자 바람에서 가린다. 그 모순된 손길 때문에 태린은 울컥하지만 멈추지 않는다. 그녀는 이제프의 필터 케이스를 잡아뜯고, 안쪽에 새겨진 전사자 이름들을 그의 눈앞에 펼친다. “이 이름들 때문에 또 이름을 지우지 마세요.”
이제프는 방아쇠를 당기지 못한다. 그러나 백색 종은 이미 자동 압력을 채우고 있다. 살포를 멈추려면 수동 손잡이를 끝까지 꺾어 내부 압력을 역류시켜야 하고,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은 독성 증기를 뒤집어쓴다. 이제프는 태린을 밀쳐 아래로 떨어뜨리고 자신이 손잡이를 잡는다. 태린은 다시 올라가려 하지만, 카리나가 남은 힘으로 균사막을 당겨 그녀를 붙잡는다. 이제프는 처음으로 태린을 “후보생”이 아니라 이름으로 부른다. “정태린, 살아서 증언해라.” 그는 손잡이를 꺾는다. 흰 종들이 안쪽으로 찌그러지고, 신경독 구름은 숲으로 뿌려지지 못한 채 탱크 내부에서 굳어 회색 결정으로 떨어진다. 이제프는 무릎을 꿇고 쓰러진다. 그의 장갑 사이로 포자와 독이 함께 스며든다.
정화 작전은 멈추지만 승리는 깨끗하지 않다. 카리나는 살아남으나, 그날 이후 몇몇 단어를 더 잃는다. 민도윤은 방역병들에게 끌려가지만, 늪인 아이들이 통과한 배수문을 닫지 않았다는 죄목 때문에 재판장에 세워진다. 태린은 헤이븐으로 돌아간다. 도망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제프가 마지막으로 남긴 명령을 자기 방식으로 끝내기 위해서다. 그녀는 격리복을 입지 않은 채 중앙 광장의 방역 봉인선 안으로 걸어 들어간다. 시민들은 물러서고, 방역병들은 총을 든다. 태린은 기록판을 높이 들지 않는다. 대신 민도윤을 끌고 온 방역병 앞에 무릎을 꿇고, 자기 목의 푸른 균사 무늬를 드러낸다. 그리고 이오가 준 깨진 조개껍데기 마스크를 한 아이에게 씌워 준다. 그 아이는 지상 공기가 묻은 물건이라며 울지만, 태린은 마스크 끈을 천천히 묶어 준다.
민도윤은 재판장에서 숫자를 읽는 대신, 폐기함에서 외웠던 아이들 이름을 하나씩 말한다. 이름을 들은 시민들이 배급 줄에서 빠져나와 봉인선 앞으로 모인다. 카리나는 늪인 몇 명과 함께 헤이븐의 하층문까지 내려온다. 그녀는 잃어버린 단어 때문에 긴 연설을 하지 못한다. 대신 진흙 묻은 손으로 콘크리트 벽에 호흡 가능한 포자 농도를 표시하고, 조개껍데기 마스크를 시민들에게 나눠 준다. 헤이븐 수뇌부는 태린을 다시 실험대에 묶으려 하지만, 이제프의 부대였던 파견자 몇 명이 길을 막는다. 그들은 전 지휘관의 필터 케이스를 태린에게서 받아 보고, 안쪽의 이름 옆에 새로 생긴 빈칸을 본다. 누군가 그 빈칸에 이제프 파로딘의 이름을 긁어 넣는다.
결말에서 지하와 지상의 장벽은 한 번에 무너지지 않는다. 첫 문은 아주 작게 열린다. 헤이븐 하층의 낡은 환기구 하나가 공식 통로가 되고, 시민들은 17분 산소 필터를 세금처럼 바치는 대신 조개껍데기 마스크를 배워 만든다. 늪인들도 헤이븐으로 내려와 검은 물의 병을 치료하는 균사 여과막을 설치한다. 태린은 파견자 영웅 동상에 오르지 않는다. 그녀는 회색 급수탑 아래 훈련장의 흰 원형 표시를 지우지 않고, 그 옆에 폐유치원에서 가져온 작은 버섯등을 심는다. 밤마다 그 빛은 콘크리트 위에서 약하게 흔들린다. 쏠은 여전히 태린의 귀 안쪽에서 종소리처럼 말하지만, 이제 태린은 그 목소리가 들릴 때마다 기록계를 켜지 않는다. 그녀는 먼저 자신의 손을 보고, 그 손이 무엇을 붙잡고 무엇을 놓았는지 확인한다.
마지막 새벽, 태린은 이오와 함께 폐유치원 그네를 고친다. 이오는 동생을 완전히 찾지 못했지만, 금지선 아래에서 발견한 작은 조개끈을 버섯등 옆에 묶는다. 카리나는 멀리서 그 모습을 보며 손가락으로 흙 위에 잃어버린 단어의 모양을 그린다. 민도윤은 헤이븐 하층 치료소에서 어머니의 산소관을 갈아 끼우고, 몰래 가져온 흰 라벨 하나에 새 이름을 적어 벽에 붙인다. 태린은 하늘을 올려다본다. 하늘은 아직 맑지 않고 포자는 여전히 떠다닌다. 그러나 누군가의 숨을 끊어야만 살아남는 세계는 그날 새벽, 처음으로 다른 방법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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