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0년, 서울. 눈부신 발전을 이룬 도시 한가운데 흐르는 한강은 여전히 변함없이 빛나고 있었다.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는 한강공원 벤치에 스물여덟 살의 일러스트레이터 서은수는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주변의 활기 넘치는 풍경과 달리 은수의 눈빛에는 왠지 모 릴 알 수 없는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몇 년째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하며 자신만의 색깔을 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불안정한 수입과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은 좀처럼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
"한강아, 오늘 날씨 정말 좋다. 그렇지?"
은수는 습관처럼 인공지능 챗봇 '한강이'를 불렀다. 은수의 목소리에는 쓸쓸함과 함께 어딘가 공허함이 묻어 나왔다. '한강이'는 최첨단 기술로 개발된 인공지능 챗봇으로, 마치 오랜 친구처럼 사람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었다. 은수는 '한강이'에게 시시콜콜한 일상 이야기부터 깊은 속마음까지 털어놓으며 위로를 얻곤 했다.
"은수님, 오늘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네요. 무슨 일 있으신가요?"
'한강이'는 은수의 표정을 읽어내고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은수는 자신이 개발에 참여했던 '한강이'의 섬세함에 새삼 놀라면서도, 한편으로는 인공지능 챗봇에게조차 자신의 감정을 숨길 수 없다는 사실에 자조감을 느꼈다.
"아니, 그냥... 요즘 들어 자꾸 어릴 적 꿈이 생각나서."
은수는 '한강이'에게 어린 시절 화가를 꿈꾸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던 은수는 초등학교 시절 미술 대회에서 상을 휩쓸며 미술 신동으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예술가의 삶이 불안정할 거라는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혀 결국 평범한 회사원이 되는 길을 선택해야 했다.
"그럼 지금이라도 다시 그림을 시작해 보는 건 어때요?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말도 있잖아요."
'한강이'는 은수의 이야기를 경청한 후 진심 어린 조언을 건넸다. 은수는 '한강이'의 말에 순간 가슴이 쿵쾅거리는 것을 느꼈다. 잊고 있던 꿈을 다시 떠올리게 된 것이다. 하지만 곧 현실적인 문제들이 그녀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글쎄, 지금 와서 다시 시작하기엔 너무 늦었을지도 몰라. 게다가 내가 과연 잘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은수는 자신감 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한강이'는 은수의 불안한 마음을 눈치채고 그녀에게 특별한 제안을 했다.
"은수님, 혹시 서혜련님이라고 아시나요? 옛날 사진들을 복원하는 분인데, 제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은수님과 아주 가까운 사이라고 나와 있네요."
'한강이'가 화면에 띄운 사진 속에는 낯익은 중년 여성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바로 은수의 어머니, 서혜련이었다. 은수는 어머니가 옛 사진들을 복원하는 일을 한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사실 은수는 어머니와 사이가 그리 좋지 않았다. 어릴 적부터 엄격한 어머니에게 반항하며 자랐고, 성인이 된 후에는 서로 바쁜 일상을 핑계로 연락조차 자주 하지 않았다.
"어머니께서 옛 사진들을 복원하신다고? 그런데 왜 한 번도 말씀하신 적이 없으셨지?"
은수는 의아함과 동시에 어머니에 대한 궁금증이 생겨났다. '한강이'는 은수에게 서혜련의 사진 복원 작업실 주소를 알려주었다. 은수는 왠지 모를 이끌림에 이끌려 어머니의 작업실을 찾아가기로 결심했다.
"혹시... 어머니를 통해 내가 잊고 있던 꿈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까?"
은수는 '한강이'에게 감사 인사를 건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따스한 햇살 아래 한강은 잔잔하게 흐르고 있었고, 은수의 마음속에도 새로운 희망의 물결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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