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보미는 영업 종료 오 분 전 들어온 손님의 “치즈 많이요”에 집게를 멈추지 못한다. 추가 요금을 말할 기회를 찾는 동안 치즈 통 바닥이 드러나고, 손님은 감동해서 샌드위치 사진까지 찍고 나간다. 마감 담당 차서준은 옆에서 남은 치즈를 다시 센다. 최고참 오태식이 빈 통을 들고 우승 트로피처럼 흔들자 한나래가 포장지를 팡 터뜨린다. 보미도 웃는다. 늘 이런 식이다. 수도권 외곽, 버스 회차지와 전문대 후문 사이 오래된 상가 일 층의 서브웨이. 대학 축제가 끝나고 기말고사 시간표가 붙기 시작한 초여름 평일, 그날 오후 여덟 시부터 이 작은 매장에서 상금 500만 원짜리 서바이벌 예능을 찍는다. 촬영 전 저녁을 챙기는 나래가 보미에게 무슨 빵을 먹겠느냐고 묻는다. 보미는 남는 것으로 달라고 한다. 채소와 소스를 물어도 같은 대답이다. 서준이 빵 진열대에 종류별로 남은 빵을 가리키자 보미는 다른 사람들 것부터 만들라고 손을 젓는다. 보미는 휴대전화에 띄운 바닷가 숙소를 나래에게 보여주며 이번에는 혼자 여행을 가겠다고 말한다. 나래는 숙소보다 날짜부터 확인한다. 자기 공연팀 선발 연습과 겹치는 토요일이다. “예약은 촬영 끝나고 해. 나 부탁 하나만.” 보미는 대답 대신 휴대전화를 앞치마에 넣는다. 여행 경비만큼 절실한 것은, 누가 부탁했을 때 자기 일정을 지운 뒤 웃지 않는 일이다.
창가 좌석에 장비가 들어오고 출입문 가까이에 빨간 의자가 놓이자 넷은 먼저 그 자리에 앉을 사람을 찍는다. “저기 첫 탈락자 자리네.” 네 손가락이 서로 다른 동료를 가리킨다. 지역 행사 사회자 지원서에 붙일 영상을 얻으려는 태식은 보미에게 치즈 사건을 써도 되느냐고 묻는다. 보미가 입을 열기 전에 “주인공 허락 받았습니다”라며 빈 통을 카메라 앞으로 내민다. 보미는 웃으며 통을 가져와 조용히 씻는다. 제작진은 촬영 중 손바닥을 펴면 누구든 중단할 수 있고, 그 때문에 상금이나 출연료가 깎이지는 않는다고 설명한다. 태식은 중단 신호까지 자기 유행어로 만들겠다며 손을 들지만 손가락을 반쯤만 편다. 나래는 대기실 문틈으로 누군가에게 마지막 순서를 확인하고, 태식은 “우리 단골보다 센 분”이라며 비밀을 붙인다.
첫 미션은 동료의 주문 실수를 재현해 서로 점수를 주는 대결이다. 보미는 영수증 뒷면에 그린 태식의 얼굴을 펼쳐 놓고 빵 해동 시간을 지역 축제 개막식처럼 발표한다. 태식은 가장 크게 웃지만, 자기 실수 옆에 보미가 써 놓은 ‘그날 내가 한 시간 일찍 와서 수습함’을 보고 종이를 뒤집는다. 보미는 서준 차례가 되자 얼굴 대신 집게만 그려 놓는다. 서준이 손목 각도가 틀렸다며 시범을 보이다가 보미의 손등과 부딪친다. 둘이 반 박자 멈추자 나래가 효과음을 낸다. 손님 역할이 된 보미는 괜히 우승 후보답게 굴려고 올리브를 정확히 서른두 개 달라고 한다. 제작진이 요구한 사람이 직접 확인하라고 하자, 보미는 서준이 내미는 올리브를 하나씩 센다. 서준은 올리브를 건넬 때마다 보미와 눈을 맞추고, 열일곱 다음에 열일곱을 또 말한다. 다시 열일곱. 나래가 둘 중 누가 올리브인지 모르겠다고 끼어들어 결국 처음부터 다시 센다.
미션이 끝나자 빨간 의자에 앉아 있던 중년 여성이 일어나 삼 초 만에 계산대 맨 앞으로 끼어든다. 태식이 능숙하게 웃으며 뒤로 가 달라고 안내하고, 여성이 순순히 줄 끝으로 돌아가자 제작진이 규칙을 공개한다. 탈락자는 없다. 빨간 의자는 무리한 요구를 연기하는 진상 연기의 장인들 대기석이고, 500만 원은 네 사람이 각자 거절 연습을 마치면 받는 공동 상금이다. 촬영은 자정에 끝난다. 동료가 대신 대답하면 그 주문은 처음부터 다시 받는다. 우승 소감까지 준비했던 태식은 종이를 접고, 보미는 조용히 네 명 몫을 손가락으로 나눠 본다. 숙소에 기차표까지 사면 남는 돈은 거의 없다. 그래도 갈 수 있다. 그때 나래가 “그럼 서로 도와주면 되네”라며 서준과 보미 등에 ‘대신 화내 드림’이라고 쓴 종이를 붙인다.
처음에는 그 말대로 되는 듯하다. 억지 환불을 요구하는 연기자가 보미 앞을 가로막자 서준이 바로 나선다. 같은 주문을 다시 시작하라는 말이 나오고, 보미는 방금 돌려보낸 손님을 다시 맞는다. 두 번째에는 태식이 농담으로 분위기를 풀다가 또 재도전 판정을 받는다. 보미는 입을 열지 못한 채 속으로 올리브를 센다. 열다섯, 열여섯, 열일곱. 모니터에 ‘올리브 카운트 17…’이라는 자막이 붙자 나래가 웃음을 삼킨다. 세 번째 손님을 기다리며 보미가 집게를 쥔 손을 내리자 서준은 자기 집게까지 가져가려다 멈춘다. 보미는 손님에게 정량표를 보여주고 추가 치즈는 유료라고 말한다. 손님이 “아까 그 직원은 해준다던데”라며 서준을 가리키자 서준의 손이 다시 앞으로 나간다. 보미는 그 손에 자기 집게를 얹고 “잠깐만 들고 있어요”라고 한다. 서준이 입을 다문 사이 보미는 무료로는 더 넣을 수 없다고 끝까지 말한다. 처음으로 주문이 되감기지 않는다.
나래는 보미의 성공을 축하하다가 토요일 대타 부탁을 장난스러운 주문으로 끼워 넣는다. 빵은 아무거나, 소스는 많이, 마감은 보미로 해 달라는 말에 태식이 효과음을 넣는다. 보미는 웃다가 앞치마 끈을 손가락에 감는다. 속으로 세던 올리브가 또 열일곱에서 멎는다. 서준이 한 발 움직이자 보미가 그에게 맡긴 집게를 도로 가져온다. “토요일은 못 해. 여행 갈 거야.” 나래는 아직 예약도 안 했지 않느냐고 묻고, 보미는 빵을 담던 쟁반을 내려놓는다. “예약 안 했어도 못 해.” 나래의 웃음이 멎는다. 자기도 연습에 빠질 수 없다며 말을 잇던 나래는 보미가 보고 있던 숙소 날짜를 떠올리고, 접고 있던 포장지를 내려놓는다. 보미는 그동안 나래가 부탁할 때마다 취소했던 일정들을 늘어놓지 않는다. 대신 토요일 근무표에서 자기 이름이 아닌 나래의 이름을 손끝으로 짚는다.
다음 차례에 연기자가 나래에게 쉬는 날 단체 손님 접대를 도와 달라고 조른다. 나래는 공연 연습이 있다며 거절하다가 저도 모르게 “다른 친구한테 물어볼게요”라고 한다. 시선이 보미에게 가자 나래는 입을 다문다. 그리고 이번에는 다른 사람도 대신 구해주지 않겠다고 말한다. 제작진이 웃음이 잘 나왔다며 태식에게 보미의 치즈 사건을 한 번 더 해 달라고 청한다. 태식은 빈 통을 들고 보미에게 다가가지만, 보미가 “그 얘기는 이제 하지 마”라고 말한다. 태식은 통을 내려놓고 그 장면은 다시 하지 않겠다고 제작진에게 답한다. 자기 진행 영상을 채울 가장 쉬운 소재가 사라진다. 어색해진 나래가 포장지를 흔들자 태식은 효과음을 넣지 않고 물을 마신다.
자정까지 삼십 분이 남았을 때 마지막 손님 정우현이 들어온다. 나래와 태식이 준비한 깜짝 출연이다. 우현은 보미의 전 연인이고, 헤어질 때도 보미가 말을 고르는 사이 “그럼 우리 그만하자는 거네”라며 결론을 내렸던 사람이다. 보미가 웃지 않자 나래는 준비한 소개를 끝내지 못한다. 우현은 익숙한 듯 냅킨을 챙긴 뒤 촬영용 치즈 통을 계산대 위에 올린다. “늘 먹던 대로 해줘.” 서준의 손이 통 반대편을 붙잡는다. 두 남자가 통을 잡은 사이 보미의 작업 자리가 사라진다. 우현은 서준을 보며 자기는 추가 요금도 낼 거라고 하고, 서준은 돈의 문제가 아니라고 맞선다. 보미는 속으로 열일곱을 두 번 센다. 앞치마 끈을 너무 세게 당겨 매듭 한쪽을 풀어 버린다.
태식이 처음으로 손가락을 끝까지 펴 카메라를 향해 든다. 촬영이 멈춘 뒤에도 아무도 치즈 통을 놓지 않자 보미가 두 사람에게 손을 떼라고 말한다. 서준은 바로 놓지만 우현은 “내 말은, 난 그냥—” 하며 통을 자기 쪽으로 당긴다. 보미는 따라 잡지 않는다. 대신 통을 치우고 주문대에서 기다려 달라고 한다. 우현이 물러난 뒤 태식과 나래는 보미 앞에 선다. 태식은 자기가 우현의 출연을 제안했다고 밝히고, 보미가 싫다면 마지막 장면을 포기하겠다고 한다. 나래는 보미의 풀린 앞치마를 매주려다가 손을 거두고, 깜짝 선물을 준비한 줄 알았다고 사과한다. 보미는 둘에게 지금은 웃어 달라고 하지 말라고 한다. 둘은 웃지 않고 고개를 끄덕인다.
보미는 물을 마신 뒤 자기 손으로 앞치마를 다시 묶는다. 우현을 내보내고 다른 연기자를 불러도 된다는 안내를 듣지만, 주문 하나는 받겠다고 한다. 대신 헤어질 때 이야기를 웃음거리로 만들지 말아 달라고 조건을 붙인다. 서준은 자신이 곁에 있겠다고 말하려다 보미에게 어디에 서 있으면 좋겠느냐고 묻는다. 보미는 냉장고 문을 막지 않는 옆자리를 가리킨다. 촬영이 재개되자 우현은 치즈 통 대신 카드를 내밀며 “그래도 만날 때는 잘해줬잖아”라고 묻는다. 보미가 대답을 준비하는 동안 그가 다시 입을 열자, 보미는 손바닥을 둘 사이에 세운다. 중단 신호가 아니라 기다려 달라는 손이다. “잘해준 적도 있어. 그런데 내 주문도, 헤어지자는 말도 네가 정했어. 지금은 내가 말할게.”
우현은 카드를 든 채 멈춘다. 보미는 치즈 한 통은 넣어 줄 수 없고, 정해진 추가량과 가격 안에서 주문해 달라고 한다. 우현이 “우리 사이에도?”라고 웃자 보미는 같은 말을 웃지 않고 반복한다. 서준의 손이 앞치마 주머니 안에서 움직이지만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우현은 마침내 카드를 내려놓고 추가 치즈 한 번만 주문한다. 보미가 샌드위치를 포장하는 동안 제작진이 서준에게 보미 대신 마지막 한마디를 해 달라고 청한다. 서준은 주머니에서 손을 빼지 않은 채 거절한다. 보미가 이미 자기 말을 다 했다고 한다. 넷의 마지막 연습이 끝나고, 태식은 박수를 치려다 보미를 본다. 보미가 먼저 자기 샌드위치 완성 종을 누른다. 그제야 나래가 포장지를 터뜨리고 태식이 요란한 우승 효과음을 넣는다.
상금은 네 사람에게 똑같이 나뉜다. 태식은 촬영이 끝난 뒤에도 우현을 부른 일을 다시 사과하고, 보미는 다음부터는 자기에게 먼저 물어보라고 답한다. 나래는 토요일 근무를 바꿀 사람이 없으면 선발 연습에 늦겠다고 말한다. 보미가 습관처럼 입을 열자 나래가 먼저 포장지를 한 장 건넨다. 부탁이 아니라 남은 재료를 덮어 달라는 것이다. 넷은 촬영 때문에 밀린 마감을 함께 끝낸다. 태식은 빈 치즈 통을 씻고, 나래는 바닥을 닦고, 보미는 서준 옆에서 재료를 센다. 이번에는 올리브를 열일곱에서 다시 세지 않는다.
재료통 뚜껑을 닫기 전, 서준이 저녁을 제대로 못 먹었다며 보미 앞으로 빵 집게를 밀어 놓는다. 보미는 남은 빵 중 맨 앞의 것을 집으려다 손을 옆으로 옮긴다. 파마산 오레가노를 꺼내 가르고, 자기가 먹을 샌드위치를 만든다. 태식이 양파를 듬뿍 넣으면 맛있다고 참견하자 보미는 “내 건 조금만”이라며 두 가닥을 덜어 낸다. 나래가 소스 병을 들고 기다리자 보미는 손을 내밀어 직접 받는다. 소스를 한 줄 짜고, 빵을 덮으려다 다시 연다. 올리브가 빠졌다. 서준이 집게를 들었다가 보미 앞에 내려놓는다. 보미는 올리브를 자기가 먹고 싶은 만큼 집어 넣는다. 나래가 “서른두 개 아니야?”라고 묻자 “그건 방송용이고”라며 빵을 접는다. 한입 베어 문 보미의 입가에 소스가 묻는다. 서준은 닦아 주는 대신 냅킨을 밀어 주고, 태식은 맛 평가를 기다린다. 보미는 씹던 것을 삼킨 뒤 “다음엔 소스 덜 넣어야겠다”고 말하고 한입 더 먹는다.
유리문을 잠그기 전 보미는 셋이 보는 앞에서 숙소와 기차표를 예약한다. 남은 잔액을 보고 잠깐 입술을 깨물지만 취소 버튼을 찾지는 않는다. 서준이 근무표와 상관없는 날에 같이 밥을 먹자고 묻는다. 보미는 “아무 때나”라고 했다가 말을 멈추고, 여행에서 돌아오는 다음 날 저녁 일곱 시를 고른다. 나래가 그날도 자기는 마감이라며 투덜대자 넷이 웃는다. 문밖에는 비가 그쳤고 버스 회차지에서 마지막 차가 출발한다. 문을 열자 비 갠 보도블록 냄새가 남은 빵 냄새에 섞인다. 서준이 보미 등에 붙은 ‘대신 화내 드림’을 떼어 주려 손을 뻗자 보미가 먼저 종이를 잡는다. 보미는 자기 종이를 직접 떼어 서준의 것과 함께 접고, 다음 약속의 날짜를 그 뒷면에 써서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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