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렷한 굉음이 들린다. 눈을 떴다. 온 세상이 하얗고 공허했다.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나의 이름은 무엇인지. 나는 그나마 희미하게 보이는 하얀 집을 향해 걷는다.
집 속에서 나는 두려움을 감출 수 없었다. 집은 온통 알 수 없는 책들과 둥둥 떠다니는 물건들로 가득찼다. 무색 무취의 공간이었다. 어째서인지 익숙한 느낌이 드는 이 집은 이상하게도 밖에서 봤을 때와 달리 지극히 넓은 것 같다. 나는 이 하얀 집에서 내가 누구인지 알아내기 위해 곳곳을 돌아다닌다.
한 곳은 전부 악기로 가득한 방이었다. 양옆은 갖가지의 악기들과 전시품들이 놓여있었고 끝없는 복도가 눈앞에 펼쳐 있었다. 가끔 벽이나 틈 사이에서 기이한 악기 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무엇보다 형태를 알아볼 수 없는 노이즈의 괴물이 곳곳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나는 기억과 관련된 독특한 퍼즐을 풀며 그 방을 빠져나온다.
바로 앞에는 눈이 부실 정도로 밝은 빛을 내는 피아노가 망가진 채 놓여 있었다. 그곳에 손을 가까이 하자 갑자기 미미한 흔들림이 느껴지고 어두워진다. 그곳에서 들리는 목소리. 노이즈가 낀 목소리였다. 노이즈로 인해 형태가 보이지 않는 사람은 피아노 앞에 앉은 어떤 아이 앞에서 피아노 건반을 때려 부수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분명 화가 잔뜩 난 목소리였고 아이는 크게 울부짖고 있었다. 그리고 암전이 되며 다시 방으로 돌아왔으나 방의 악기들은 전부 망가지고 파손되어 있었다. 그리고 방이 더 이상 완전한 하얀색이 아닌 희미하게 붉은빛을 띠는 듯 했다. 그는 방금 겪었던 일이 자신의 기억의 일부라는 것을 깨닫고 자신의 기억을 더 찾기 위하여 이 집을 수색하기로 한다.
이런 식으로 나는 나의 기억이 담긴 각각 다른 특색이 있는 방들에서 불안함과 우울함의 원천인 위험한 괴물들을 피하거나 기억과 관련된 어렵고 독특한 퍼즐을 풀어가면서 앞으로 나아가며 다른 기억들을 찾아나간다. 그는 또한 중간에 빛나는 물체가 떠다니며 길을 안내하거나 퍼즐을 풀어주는 것을 깨닫고 신뢰한다. 그리고 집은 점점 색을 되찾아간다. 그러던 중 한 소녀를 만나고 이 어린 소녀 또한 길을 잃어버렸다고 하여 같이 동행하게 된다.
처음에는 소녀에게 매우 잘해준다. 돌아다니다 발견한 조그만 간식을 주기도 하고 먼저 보호하려고 했다. 그러나 나는 기억을 되찾으면서 소녀가 점점 크는 것을 눈치채고 소녀에게 알 수 없는 감정을 느끼고 거리를 두기 시작한다. 이후로는 아예 소녀와 다른 길을 가게 된다.
수많은 고난 끝에 소년(강태한)은 기억을 모두 되찾고 소녀와 재회한다. 소년은 소녀를 보자마자 외면하고 피하려 하지만 갑작스럽게 바닥이 붕괴하고 소년과 소녀는 밑으로 떨어진다. 그 공간은 매우 습했으며 지금까지 다른 방들과 달리 유난히 어둡고 색이 칙칙하였다. 그곳에서 검은 액체로 뒤덮인 알 수 없는 생명체가 소년을 덮치며 분노와 불신으로 가득찬 소년은 더욱 흑화하여 성인이 된 소녀에게 달려든다. 소년은 소녀의 목을 조르고 죽이려고 한다. 그러나 빛나는 물체가 소녀(강태한의 어머니)의 손 위에 착지하며 소년의 기억을 재구성한다. 소년은 재구성된 기억 속에서 알 수 없는 따뜻함을 느끼며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검은 액체 덩어리에서 풀려난다. 소년은 눈물을 흘리며 나는 절대 당신의 행동을 용서할 수 없다, 그렇지만 나는 당신이 괴로운 건 볼 수 없다며 소녀에게 손을 떼고 집의 문(현관문) 앞으로 다가간다. 소녀는 죄책감과 극도의 불안감에 몸을 떨며 소년에게 손을 뻗지만 손 위에 착지하는 것은 빛나는 물체였던 나비였을 뿐, 강태한은 문을 열고 먼지 속으로 사라진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나는 병원에 있었다.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곧 깨달았다. 나는 강태한이 아닌 강태한의 어머니(조은화)였다. 나는 교통사고를 당했었으며 몸을 움직이기 힘들었다. 강태한은 나로부터 심한 학대를 당했고, 그가 집을 떠났다는 것을 알고는 급하게 찾아갔지만 교통사고를 당했던 것이다. 2주 후, 나는 금방 완쾌했고,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가족 사진을 보며 눈물을 쏟고 창문 밖을 바라보며 텅 빈 눈으로 아무 말 없이 놀이터를 바라본다. 그리고 부러진 악기들과 강태한이 가지고 있던 물건들을 정리하고 실종 신고를 넣었지만 죽었으리라는 것을 이미 직감하고 있었기에 희망은 품지 않았다. 나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강태한을 사진 속으로 보며 밧줄을 매달고 자살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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