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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ytalk Original · 15 scenes · 5 chapters

죄송한데 이겨야겠습니다

1932년 부산, 반죽을 치대다 씨름장에 잘못 들어선 빵집 견습생이 우승 후보를 넘어뜨리는 바람에, 밀가루 외상값 대신 사흘 동안 마을 대표로 출전하게 된다. 그를 훈련시키러 온 은퇴 장사는 오른팔을 들지 못하고, 견습생은 상대를 다치게 할까 봐 샅바를 잡을 때마다 먼저 사과한다. 두 사람은 새벽마다 밀가루 포대를 메고 계단을 오르지만, 첫 시합 날 견습생의 손에서는 아직도 버터 냄새가 나고 관중석에서는 빵 주문이 쏟아진다. 마침내 그의 사과를 조롱으로 받아들인 항구 하역반장이 작업복도 벗지 않은 채 모래판으로 들어와, 빵집 간판을 판돈으로 걸라고 요구한다.

  • 5 characters
  • 5 locations
  • 15 scenes
  • Plot 3,852 ch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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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racters

Characters

배봉출

Male

부산 항구 근처 빵집에서 새벽 반죽과 배달을 맡다가 사흘간 씨름판에 묶인 견습생

Profile

배봉출은 사흘 출전을 마친 뒤 오금례에게 화덕 한 칸을 맡겨 달라고 청하려고, 새벽 훈련으로 떨리는 손을 찬물에 담갔다가 다시 반죽에 넣는다. 상대를 다치게 하지 않으려 매번 먼저 사과하는 배봉출은 샅바의 좋은 자리까지 내주지만, 탁기섭이 빵집 간판을 요구하자 입을 다물고 자기 몫의 품삯만 판돈으로 내놓는다. 배봉출이 품삯 액수를 묻자 오금례는 주문을 받던 연필을 멈추고, 늘 외상값부터 적던 장부에 견습생에게 줄 돈을 따로 적기 시작한다.

열아홉 살 배봉출은 샅바를 잡기 전 상대의 무릎부터 살피고 “죄송합니다” 하며 허리를 숙여, 고개를 들 때면 상대 손이 이미 깊이 들어와 있다. 관중석에서 빵 주문이 날아오면 배봉출은 손가락으로 수량을 세다가도, 문덕수가 지팡이로 모래를 두드리는 순간 발뒤꿈치를 붙인다. 탁기섭이 간판을 가리킬 때 배봉출은 벌어진 입술을 눌러 닫고, 오금례 쪽으로 내밀던 손을 거두어 자기 허리의 샅바를 쥔다.

Background

1932년 부산에서 열아홉 살 견습생으로 일하던 배봉출은 뜨거운 빵을 떨어뜨린 날에도 먼저 빵을 주워 담았고, 오금례에게 손부터 식히라는 꾸중을 들었다. 배달길에 밀가루 묻은 앞치마 차림으로 씨름장 출입구를 잘못 들어선 배봉출은 차응복이 팔을 잡아 끌자, 반죽을 뒤집을 때처럼 몸을 낮추고 돌려 우승 후보를 모래 위에 눕혔다. 차응복이 외상값 대신 사흘 출전을 요구했을 때 배봉출은 앞치마를 벗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였고, 이튿날부터 문덕수 앞에서 밀가루 포대를 메고 계단을 올랐다.

Description

배봉출은 아직 볼의 둥근 살이 남은 열아홉 청년으로, 좁은 어깨 아래 반죽과 포대 나르기로 단단해진 팔뚝이 도드라진다. 빛바랜 미색 무명 저고리의 소매를 걷고 회갈색 바지 위에 밀가루 밴 앞치마를 둘렀으며, 앞치마 오른쪽 귀퉁이에는 손가락 다섯 개로 훑은 흰 자국이 겹겹이 남아 있다. 상대의 무릎을 살피느라 턱과 어깨는 먼저 내려가지만, 사과하려 벌어지던 입술을 꾹 다물 때는 두툼한 손이 허리의 샅바를 잡고 맨발의 발가락이 바닥을 움켜쥔다.

문덕수

Male

오른팔을 어깨 높이로 들지 못해 씨름을 접고 곡물 창고의 포대 수를 세는 전직 장사

Profile

문덕수는 배봉출이 모래판에서 지팡이 소리를 기다리지 않고 제 발로 버티게 만든 뒤, 마지막 경기에는 관중석에도 앉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오른팔을 들지 못하는 까닭을 설명하는 대신 포대 오르는 횟수를 늘려, 배봉출이 새벽 반죽조차 끝내지 못하게 만든다. 옛 제자 탁기섭이 간판을 요구하며 들어서면, 문덕수는 배봉출에게 계속 명령할 것인지, 사람들 앞에서 실패한 동작을 보여주고 배봉출의 판단에 맡길 것인지 골라야 한다.

쉰일곱 살 문덕수는 배봉출의 발뒤꿈치가 계단 밖으로 뜰 때마다 지팡이로 계단 모서리를 내려찍지만, 쉬는 동안에는 닳은 신발 밑창에 천을 덧대 준다. 배봉출이 오른손으로 샅바를 잡는 법을 물으면 문덕수는 왼손으로 매듭부터 고쳐 주고 곧장 포대를 다시 메게 한다. 오금례가 축 처진 반죽을 들이밀면 문덕수는 훈련이 부족하다고 대꾸하다가, 배봉출이 물잔을 두 손으로 받치는 모습을 보고 자기 잔을 내려놓는다.

Background

젊은 탁기섭의 훈련 때 문덕수는 넘어지는 법보다 버티는 법을 먼저 시켰고, 탁기섭이 손바닥을 펴 보이며 쉬자고 해도 샅바를 다시 쥐여 주었다. 마지막 출전에서 오른쪽 어깨를 다친 문덕수는 이후 시범을 청하는 사람마다 발놀림만 보라며 돌려세웠고, 탁기섭이 찾아온 날에도 겉옷을 벗지 않았다. 쉰일곱이 된 문덕수는 차응복의 부탁으로 빵집에 와서 배봉출이 반죽을 뒤집는 모습을 한참 지켜본 뒤, 화덕 앞 휴식 자리에 계단 훈련을 끼워 넣었다.

Description

쉰일곱 살 문덕수는 넓은 가슴과 굵은 목을 지녔지만, 희끗한 짧은 머리 아래 관자놀이가 꺼지고 입가에는 깊은 주름이 잡혀 있다. 바랜 먹색 무명 겉저고리와 잿빛 바지에는 곡물 먼지가 배어 있으며, 오른팔을 옷섶 가까이 붙인 채 두 발을 벌리고 서서 상대의 얼굴보다 발뒤꿈치를 먼저 살핀다. 왼손에 쥔 나무 지팡이는 끝의 한쪽만 납작하게 닳아 있고, 굳게 다문 입과 달리 그 손의 엄지는 손잡이의 갈라진 틈을 천천히 문지른다.

탁기섭

Male

부산 부두에서 하역 인부들의 작업 순서와 품삯 몫을 배정하는 반장

Profile

탁기섭은 인부들 앞에서 배봉출에게 “봐준다는 뜻은 아니었습니다”라는 말을 받아내려고, 작업복 차림으로 모래판에 들어서서 오금례의 빵집 간판을 판돈으로 요구한다. 배봉출이 자기 품삯만 걸겠다고 버티자 탁기섭은 간판을 거듭 가리키고, 관중석의 인부들은 먹던 외상 빵을 무릎 아래로 내려놓는다. 오금례가 간판을 떼어 모래판에 놓는 순간, 탁기섭은 말 한마디를 거두게 하려다 자기 하역반의 아침 끼니까지 걸었다는 항의를 직접 받게 된다.

서른여덟 살 탁기섭은 다친 인부가 빈 수레 옆에서 서성이면 말없이 포대를 빼앗아 메지만, 그 인부가 고맙다며 허리를 숙이면 “내일 네 차례나 지켜” 하고 등을 돌린다. 탁기섭은 외상 빵을 나눌 때 가장 작은 것을 집어 들다가도, 배봉출이 샅바를 잡으며 사과하자 빵 부스러기를 털 새도 없이 앞으로 나온다. 문덕수가 낮은 목소리로 물러서라고 부르면 탁기섭은 발끝을 돌리다가, 인부들의 시선이 따라오는 것을 보고 작업복 소매부터 걷는다.

Background

탁기섭은 문덕수에게 씨름을 배우던 시절, 연습 상대가 넘어지면 먼저 일으켜 세웠다가 “손부터 내주면 허리도 내준다”는 꾸중을 듣고 다음 판부터 샅바를 놓지 않았다. 서른여덟 살이 된 탁기섭은 하역반장이 된 뒤에도 부상자의 몫을 빼지 않은 품삯 봉투를 건넸고, 모자란 날에는 오금례의 외상 장부에 자기 이름을 적어 인부들의 빵을 가져갔다. 첫 시합 날 탁기섭은 그 빵을 돌리던 손으로 배봉출의 사과를 듣고, “내가 네게 봐달라고 했느냐”고 되물으며 모래판의 경계선을 넘는다.

Description

서른여덟 살 탁기섭은 목이 짧고 어깨와 허리가 함께 두꺼운 사내로, 햇볕에 그을린 네모난 얼굴에 짧게 깎은 검은 머리가 바짝 붙어 있다. 소금기 밴 남색 무명 작업 셔츠와 잿빛 바지에는 포대를 받치는 어깨와 무릎에 덧댄 천이 있고, 걷어 올린 소매 아래 왼쪽 팔뚝에는 밧줄이 쓸고 간 희끗한 띠 모양 흉터가 남아 있다. 남의 짐을 받아낼 듯 두 발을 넓게 벌리고 서지만, 입술을 얇게 다문 채 턱을 내밀고 상대를 바라보다가도 눈동자만 곁의 인부들 쪽으로 돌린다.

오금례

Female

빵집을 꾸리며 밀가루 대금과 항구 인부들의 외상 장부를 함께 떠안은 주인

Profile

43세 여성 빵집 주인 오금례는 다음 달에도 화덕을 켜려고 배봉출의 사흘 출전을 허락하고, 관중의 응원 사이로 들어오는 빵 주문을 장부에 붙잡는다. 오금례는 배봉출에게 우승보다 주문받은 빵을 끝까지 구워 낼 손을 돌려달라고 요구하지만, 주문을 더 받을수록 경기 뒤 배봉출이 쉬어야 할 시간까지 배달 약속으로 채운다. 탁기섭이 간판을 요구하자 오금례는 장부를 덮고 간판을 떼어 모래판의 자기 발밑에 놓으며, 배봉출에게 “네 품삯은 네가 걸어도 이것을 걸 권리는 없다”고 못 박는다.

오금례는 관중석에서 배봉출의 몸이 들려도 “여섯 개!”라는 주문이 터지면 수량부터 적고, 승부가 난 뒤에야 연필 끝을 멈추고 모래판을 살핀다. 견습생에게 빵 하나도 공짜로 주지 않는 43세의 오금례는 배봉출이 먹을 빵을 사면 가장 묵직한 것을 골라 놓되, 값을 깎아 달라는 말에는 저울추를 건드리지 않는다. 오금례는 탁기섭 앞에서 간판의 흙을 앞치마로 닦고, 돈 이야기를 하겠다며 다가오는 차응복에게 먼저 배봉출의 사흘 출전으로 지워질 외상 액수를 장부에 쓰게 한다.

Background

오금례는 빵집을 열 때 간판 글씨 값이 모자라 붓질을 직접 했고, 비가 새어 글자 한 획이 벗겨질 때마다 덧칠해 왔다. 43세가 된 오금례는 하역 인부들의 품삯이 늦어질 때도 외상 빵을 끊지 않았지만, 밀가루를 가져온 차응복 앞에서는 장부의 받을 돈과 줄 돈을 번갈아 짚으며 납기를 미뤘다. 배봉출이 차응복을 넘어뜨린 날 오금례는 사흘 출전 조건 옆에 손도장을 찍었으나, 빵집을 담보로 삼자는 말에는 끝내 빈칸을 남겼다.

Description

마흔셋의 오금례는 볕에 그을린 넓은 얼굴과 눈가의 잔주름을 지녔고, 검은 머리를 낮게 틀어 올린 채 빛바랜 쪽빛 무명 저고리와 짙은 회색 치마 위에 밀가루 밴 앞치마를 단단히 둘러 맨다. 앞치마 가슴솔기에 꽂힌 몽당연필 하나가 눈에 걸린다. 주문을 받아 적을 때는 고개만 숙이던 그녀도 장부를 덮으면 두 발을 나란히 딛고 턱을 들며, 짧고 굵은 손가락으로 장부 모서리를 누른 채 다문 입술을 풀지 않는다.

차응복

Male

밀가루 도매상 일을 물려받아 거래처를 돌면서 마을 씨름 우승을 노리는 청년

Profile

차응복은 오금례의 밀가루 외상 장부에 배봉출의 사흘 출전을 적어 넣고, 대진표에서는 힘깨나 쓰는 선수들 곁에 배봉출의 이름을 올린다. 차응복이 원하는 것은 배봉출을 넘어뜨릴 기회보다, 자신을 넘어뜨린 손이 다른 장사도 꺾는 광경이다. 그러나 배봉출이 이길 때마다 차응복의 패배를 놀리던 사람들이 배봉출을 다음 우승 후보로 부르기 시작하고, 차응복은 외상값까지 내주고 자기 자리를 비워 준 셈이 된다.

스물일곱 살 차응복은 값을 흥정할 때 포대의 터진 솔기까지 짚어 내면서, 첫 경기 전에는 배봉출의 샅바 매듭을 풀어 살이 끼이지 않도록 다시 묶어 준다. 관중이 배봉출의 승리에 환호하면 차응복도 손뼉을 치지만, “차응복보다 낫다”는 소리가 섞이는 순간 두 손을 내려 바지의 모래를 턴다. 문덕수가 대진이 너무 세다고 따질 때 차응복은 표를 접지 않고, 대신 배봉출이 경기 사이에 쉴 시간을 손가락으로 짚어 보인다.

Background

열아홉 살부터 밀가루를 나른 차응복은 포대 값을 받으러 간 가게마다 씨름 우승 때 받은 수건을 어깨에 걸쳤고, 스물일곱이 된 올해에는 오금례에게 다음 우승 상금이 들어올 때까지 대금을 미뤄 주었다. 배달길을 잘못 든 배봉출을 모래판 밖으로 끌어내려다 넘어진 차응복은 흩어진 밀가루 위에 손바닥 자국을 남겼고, 둘레의 웃음이 잦아들기도 전에 오금례의 장부를 가져오라고 했다. 출전 약속을 받아 적던 차응복은 오금례가 써 넣은 ‘사흘 뒤 빵집으로 돌려보낼 것’ 아래에 도장을 찍고, 배봉출에게 내일은 앞치마를 벗고 오라고 말했다.

Description

스물일곱 살 차응복은 포대를 나르며 두꺼워진 목과 넓은 가슴에 풀 먹인 미색 무명 저고리를 맞춰 입고, 먹색 바지의 대님까지 반듯하게 조인다. 짧게 가른 검은 머리 아래 햇볕에 그을린 각진 얼굴은 입꼬리만 살짝 올라가 있고, 짙은 갈색 눈은 웃어 주는 사람보다 모래판을 오래 살핀다. 어깨에 늘 걸친 빛바랜 우승 수건의 끝을 팔꿈치로 눌러 붙인 채, 굳은살 박인 두 손으로 남의 샅바 매듭을 고치는 손놀림은 포대 솔기를 검사할 때처럼 꼼꼼하다.


Synopsis

Plot

1932년 초가을, 배봉출은 오금례의 빵집에서 새벽 반죽을 맡는다. 열아홉 견습생이 바라는 것은 화덕 한 칸을 자기 손으로 맡는 일이다. 그러나 오금례가 굽기를 시키려 하면 그는 덜 익힐까 봐 반죽대를 떠나지 못하고, 잘못 구운 빵값을 물을 각오보다 먼저 사과할 말을 준비한다. 마을 씨름판이 열리는 날에도 배봉출은 배달 바구니를 들고 관중 사이를 지난다. 차응복이 주문한 빵을 내밀다 밀려온 사람들을 피하려고 금줄 안으로 들어선 순간, 몸을 풀던 차응복이 그의 허리를 붙잡는다. 떨어지는 바구니를 받으려 몸을 낮춘 배봉출의 어깨에 차응복의 무게가 실리고, 반죽을 접듯 돌아선 발에 우승 후보가 넘어진다. 배봉출은 빵부터 주워 담다가 뒤늦게 차응복에게 사과한다.

사람들이 웃자 차응복은 모래를 털고 배봉출을 일으킨다. 그날 저녁 그는 빵집의 좁은 반죽대 앞을 막아서서, 자기를 넘어뜨린 솜씨로 사흘간 마을 대표를 맡으라고 제안한다. 오금례는 밀가루 외상이 얼마나 줄어드는지부터 묻는다. 차응복이 액수를 쓰는 동안 배봉출은 자기 뒤에서 부푸는 반죽을 돌아본다. 그는 출전이 끝나면 화덕 일을 배워도 되겠느냐고 묻고, 오금례가 “빵 구울 손으로 돌아오면”이라고 답하자 약속을 받아들인다.

새벽부터 문덕수가 뒷계단에서 그를 기다린다. 오른팔을 몸에 붙인 은퇴 장사는 배봉출에게 밀가루 포대를 메우고, 발뒤꿈치가 계단 밖으로 뜰 때마다 지팡이로 돌 모서리를 친다. 배봉출은 힘을 쓰는 것보다 남을 넘어뜨리는 일이 어렵다고 털어놓지만, 문덕수는 포대 하나를 더 가져온다. 훈련 뒤에는 닳은 신발 밑창에 천을 덧대 주면서도 쉬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배봉출은 떨리는 손을 찬물에 담갔다가 반죽에 넣는다. 오금례는 그가 늘어뜨린 반죽을 문덕수 앞에 들고 와, 씨름꾼 하나 만들다가 빵 굽는 손을 잃겠다고 따진다. 문덕수는 훈련이 부족하다고 대꾸하다가 배봉출이 물잔을 두 손으로 받치는 모습을 보고 입을 다문다.

첫날 시합에서 배봉출은 상대 무릎의 헝겊을 보고 먼저 사과한다. 허리를 숙이는 사이 샅바 좋은 자리를 빼앗기고, 버터 냄새가 남은 손으로 겨우 버틴다. 관중석에서 “내일 아침 여섯 개!”라는 주문이 날아오자 저도 모르게 손가락을 펴다가 들려 올라간다. 문덕수의 지팡이가 모래를 치는 순간 그는 발뒤꿈치를 붙이고, 계단에서 포대를 고쳐 멜 때처럼 상대를 몸 가까이 끌어당겨 넘어뜨린다. 오금례는 주문 수량을 적은 뒤에야 그가 일어나는 것을 본다. 차응복은 환하게 손뼉을 치지만, 누군가 “차응복을 넘긴 게 우연이 아니네”라고 외치자 손을 내려 바지에 묻지도 않은 모래를 턴다.

그날 밤 늘어난 주문을 굽느라 배봉출은 화덕 옆에서 졸고, 오금례는 찌그러진 빵을 자기 몫으로 골라 놓는다. 다음 새벽 문덕수가 다시 포대를 내밀자 배봉출은 받지 않는다. 반죽을 끝내고 가겠다고 하자 문덕수는 뒷문을 지팡이로 막는다. 배봉출은 포대 대신 반죽통을 그의 발치에 내려놓는다. “이것도 제가 끝내야 합니다.” 오금례는 두 사람 사이를 지나 장작을 넣고, 문덕수에게 반죽통을 받치라고 시킨다. 그는 왼손으로 통을 붙들고 배봉출이 반죽을 나누는 모습을 지켜본다. 그날 훈련은 포대 없이 시작한다.

둘째 날 배봉출은 상대가 넘어질 때 팔을 붙잡아 세우려다가 함께 모래에 처박힌다. 승리는 얻지만 손목이 부어 저녁 배달 바구니를 놓친다. 문덕수는 바구니를 왼손으로 들어 주면서도 넘어진 사람까지 책임지려 들지 말라고 쏘아붙인다. 배봉출이 왜 오른팔을 쓰지 않느냐고 묻자 그는 대답하지 않는다. 차응복은 다음 날 대진을 들고 찾아와 배봉출의 부은 손목을 보고 표를 접는다. 그래도 출전을 그만두라는 말은 못 한다. 대신 자기 어깨의 수건을 풀어 손목을 감아 준다. 배봉출이 “제가 계속 이기면 좋으십니까”라고 묻자 차응복은 매듭을 너무 세게 당겼다가 다시 느슨하게 푼다.

마지막 날, 배봉출은 부두 하역반장 탁기섭과 샅바를 잡기 전에 그의 왼팔에 남은 밧줄 자국을 살피고 사과한다. 탁기섭은 그 말을 듣자 샅바를 놓는다. 인부들에게 외상 빵을 나눠 주다 가장 작은 것을 자기 몫으로 챙겼던 그는, 이제 그들이 보는 앞에서 견습생에게 동정받았다고 여긴다. 작업복 소매를 걷은 채 모래판 한가운데로 다시 들어와 빵집 간판을 걸라고 요구한다. 문덕수가 물러서라고 부르자 잠깐 발끝을 돌리지만, 관중석 인부들의 시선에 다시 버틴다.

배봉출은 오금례 쪽으로 내밀던 손을 거두고 자기 품삯만 걸겠다고 한다. 얼마를 받는지도 몰라 묻는 그를 보며 오금례는 연필을 멈춘다. 밀가루와 인부들 외상 사이에 그의 사흘 품삯을 따로 적지만, 탁기섭은 계속 간판을 가리킨다. 오금례는 가까운 빵집으로 돌아가 낮은 발판에 올라 간판을 내린다. 그녀가 무거운 나무판을 안고 돌아오자 관중이 길을 비킨다. 오금례는 그것을 자기 발밑에 놓고 배봉출에게 말한다. “네 품삯은 네가 걸어도 이것을 걸 권리는 없다.”

탁기섭이 간판을 집으려 몸을 굽히자, 팔을 다쳐 쉬고 있는 인부가 빈 빵 바구니를 그 위에 내려놓는다. 다른 인부들도 먹던 빵을 무릎 아래로 내린다. “반장 말 한마디 받자고 내일 우리 먹을 데를 없애려는 거요?” 탁기섭은 바구니를 밀지 못한다. 배봉출은 그 앞을 가로막고, 다치게 할까 걱정한 것이지 봐주겠다는 뜻은 아니었다고 말한다. 이어 품삯도 걸지 않겠다고 한다. “오늘 씨름은 하겠습니다. 그 돈은 제가 벌었습니다.” 탁기섭은 한동안 손을 허공에 둔 채 서 있다가 간판에서 물러나 샅바를 집는다.

시합을 다시 시작하기 전 문덕수가 모래판에 들어온다. 그는 배봉출에게 자기 왼쪽 샅바를 잡게 하고, 오른팔로 상대를 받치려다 팔이 올라가지 않는 동작을 보여 준다. 몸이 기울자 배봉출이 붙들려 하지만 문덕수는 왼손을 짚고 스스로 주저앉는다. 옛날 탁기섭을 가르치던 때, 넘어가는 제자를 팔 하나로 되받으려다 어깨를 상했다고 짧게 말한다. 탁기섭은 걷어 올린 소매를 만진다. 문덕수는 이번에는 지팡이로 발을 고쳐 주지 않는다. “붙잡을 자리하고 놓을 자리는 네가 정해라.” 그는 모래를 털고 관중석 뒤로 나간다.

탁기섭은 배봉출을 들고 몰아붙인다. 배봉출은 지팡이 소리를 기다리다가,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것을 듣는다. 그는 스스로 발을 옮겨 버티고, 포대를 어깨에서 내려놓듯 탁기섭의 무게를 허리 가까이 옮긴다. 탁기섭이 뒤틀어 빠져나오려는 순간 배봉출은 손목으로 붙들어 세우지 않는다. 함께 무릎을 낮추며 다리 샅바를 놓고, 허리 샅바만 잡아 그의 몸이 모래에 닿을 방향을 바꾼다. 탁기섭의 등이 먼저 닿는다. 배봉출도 한쪽 무릎을 찧지만 자기 힘으로 일어난다.

관중이 외치기 전에 탁기섭이 배봉출의 손목을 확인한다. 괜찮다는 답을 듣고서야 내민 손을 잡는다. 그는 간판 대신 빈 바구니를 들어 오금례에게 건네며 내일 아침 빵은 평소 수량대로 달라고 한다. 오금례는 주문을 더 받으려 벌린 입을 닫는다. 오늘 약속한 것까지만 굽겠다고 못 박는다. 차응복은 배봉출의 손을 들어 주다가 자기 이름을 놀리는 소리를 듣지만, 이번에는 내려놓지 않는다.

저녁 빵집에서는 우승 이야기를 할 틈도 없이 다섯 사람이 움직인다. 탁기섭이 간판을 갈고리에 다시 걸고, 차응복은 밀가루 포대를 반죽대 곁에 내려놓은 뒤 약속한 외상 액수를 지운다. 남은 빚은 그대로다. 문덕수는 왼손으로 빵 바구니를 받치고 오금례가 수량을 센다. 배봉출은 자기 품삯으로 빵 하나를 산다. 오금례는 값을 받으며 가장 묵직한 것을 내준다.

배봉출은 빵을 반으로 갈라 문덕수 앞에 놓고, 화덕 한 칸을 맡겨 달라고 다시 청한다. 오금례는 대답 대신 빈 굽기 판을 내민다. 첫 판의 빵 하나가 짙게 그을리자 배봉출은 사과하려다 입을 닫고, 그것을 자기 접시에 옮긴다. 다음 판은 조금 일찍 꺼낸다. 문밖의 간판은 전보다 비뚤게 걸려 있고, 문덕수의 지팡이는 문 옆에 기대어 있다. 배봉출은 누구의 신호도 기다리지 않고 화덕 문을 연다.


World

The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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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tting

부산 항구에서 곡물 창고 쪽으로 두 골목 들어간 오금례의 빵집. 낮은 목조 가게는 비탈 아래에 붙어 있고, 뒷문을 열면 포대 하나를 멘 사람이 겨우 지나갈 돌계단이 나온다. 배봉출과 문덕수는 이 계단에서 새벽 훈련을 한다. 내려올 때는 빈손이어도 올라갈 때는 반드시 포대가 어깨를 누른다.

앞방에는 빵 진열함과 외상 장부가, 뒤쪽에는 반죽대와 장작 화덕이 있다. 반죽대에서 출입문까지 네 걸음뿐이라 손님은 견습생의 떨리는 손을 볼 수 있고, 견습생은 자기 품삯을 흥정하는 말을 피할 수 없다. 문밖으로는 부두에 나가는 인부와 씨름 구경을 가는 사람들이 같은 길을 쓴다. 씨름판에서 붙은 별명이 저녁 빵값을 치르기도 전에 가게까지 돌아온다.

간판은 처마 아래 두 개의 쇠갈고리에 걸려 있다. 빗물을 먹어 무겁지만, 가게 안의 낮은 발판만 가져오면 주인이 직접 내릴 수 있다. 간판 아래에는 늘 인부들의 빈 빵 바구니가 놓인다.

time period

1932년 초가을, 항구 마을의 씨름판이 열리는 사흘. 낮에는 반죽이 빨리 부풀고 새벽 돌계단에는 이슬이 남는 때다. 바닷바람에 마른 앞치마도 반죽방에 들어오면 등에 달라붙는다.

일제강점기의 부산에서는 항만과 철도로 곡물이 들어오지만, 작은 가게가 밀가루를 확보하는 길은 도매상의 장부를 거친다. 창고에 포대가 쌓여 있어도 외상 한도가 막힌 빵집의 화덕은 꺼질 수 있다. 오금례에게 이번 씨름판은 축제이면서 다음 달 장작과 밀가루를 마련할 기회다. 배봉출에게는 사흘이 끝나도 구워야 할 빵이 남는다.

rules

- 밀가루 외상은 장부에 적힌 약속으로만 줄어든다. 배봉출이 사흘 출전을 마치면 지워질 액수를 먼저 써 두어야 하므로, 오금례는 차응복의 격려보다 연필 끝을 확인한다.

- 빵집의 물건을 판돈으로 걸 권리는 오금례에게만 있다. 배봉출은 자기 품삯을 내놓을 수 있지만 간판은 걸 수 없으며, 탁기섭의 요구는 견습생과의 승부를 가게 주인과의 대치로 바꾼다.

- 빵 주문은 수량과 찾아갈 때를 장부에 적으면 약속이 된다. 관중석에서 받은 주문도 취소하지 않는 한 구워야 하므로, 승리가 주문을 늘릴수록 배봉출의 경기 뒤 휴식은 줄어든다.

- 이 빵집에서는 빵을 건넬 때 외상값을 받거나 장부에 더한다. 다친 인부도 아침 빵을 받아 갈 수 있지만 빚은 남으므로, 간판을 건다는 말에 인부들은 자기 끼니가 달린 가게를 돌아보게 된다.

technologies philosophies

화덕은 장작으로 달구고, 반죽의 상태는 시계보다 손바닥으로 먼저 확인한다. 배봉출이 훈련에 늦게 돌아오면 부푼 반죽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 오금례는 화덕 열기를 버리지 않으려고 다음 판을 준비하지만, 떨리는 손에 일을 더 얹으면 빵의 모양부터 달라진다.

저울과 장부는 가게에서 가장 자주 쓰는 도구다. 저울은 손님 앞에 놓여 있지만 견습생의 품삯 기록은 장부 안쪽에 있다. 배봉출이 자기 품삯을 걸겠다고 액수를 묻는 순간, 오금례는 밀가루 대금과 인부들 외상 사이에 그의 몫을 따로 적어야 한다.

부두의 작업 배정은 탁기섭을 거치고, 밀가루 공급은 차응복을 거친다. 두 사람 모두 남의 하루를 이어 줄 수 있지만 그 사실을 남들 앞에서 확인받고 싶어 한다. 이 좁은 가게에서는 사과 한마디도 듣는 사람이 많다. 배봉출이 고개를 숙이면 누군가는 예의로 받고, 누군가는 자기 힘을 낮춰 본 말로 받아들인다.

visual description

주된 색은 밀가루의 누런 흰색, 오금례 저고리의 바랜 남색, 화덕 입구의 검은 그을음이다. 새벽에는 판자벽 틈으로 들어온 푸른 빛이 반죽대 가장자리만 밝힌다. 화덕 문을 열면 배봉출의 팔 안쪽과 오금례의 연필 쥔 손이 잠깐 주황빛으로 드러난다.

진열함 유리는 소금기와 손자국 때문에 흐리다. 갓 구운 빵이 닿은 자리만 김이 서리고, 바깥 인부들의 얼굴은 그 뒤에서 일그러져 보인다. 처마 밑 간판에는 빗물이 흐른 세로 자국이 있다. 간판을 내리면 벽에는 나무가 햇볕을 가렸던 밝은 직사각형이 남는다.

뒷계단에는 포대에서 샌 밀가루가 돌 틈마다 박혀 있다. 문덕수의 지팡이가 모서리를 칠 때마다 흰 가루가 조금씩 튄다. 배봉출이 돌아오면 그 발자국이 반죽대까지 이어진다. 가게 안에서는 버터와 장작 냄새가 나고, 문이 열릴 때마다 젖은 밧줄 냄새가 섞인다.


Locations

Where it happe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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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금례의 네 걸음 빵집

버터가 밴 반죽대에서 출입문까지 네 걸음, 낮은 목조 빵집 안은 진열함과 장부 놓인 계산대 때문에 두 사람이 비켜 서기도 빠듯하다. 검게 그을린 화덕 입구에서 번지는 주황빛이 따뜻한 빵껍질과 반죽대 모서리를 비추고, 계산대에는 빵 바구니를 밀어 놓을 때마다 장부를 피해 생긴 반달 모양의 긁힌 자국이 겹쳐 있다. 반죽을 내리치는 소리가 앞방까지 고스란히 울리며, 그 사이마다 저울추가 접시 위에서 짧게 긁힌다. 장부 안쪽에는 밀가루 대금과 인부들의 외상 숫자가 빽빽하고, 그 사이 좁은 빈칸에 견습생의 품삯이 따로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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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대 하나 폭의 뒷계단

돌계단은 포대 하나를 멘 어깨가 겨우 지나갈 폭으로 가파르게 솟아 있고, 새벽의 옅은 산란광 아래 축축한 디딤면이 이슬빛 청회색으로 드러난다. 돌 틈에 박힌 밀가루는 젖어 납작하게 굳었으며, 한쪽 모서리에만 지팡이 끝이 거듭 찍힌 작은 흠들이 이어진다. 모서리를 찍는 딱 소리가 좁은 계단을 타고 오를 때마다 흠 둘레의 마른 가루가 조금 튀고, 디딤면 밖으로 들린 발뒤꿈치 아래에는 가파른 층층의 돌이 겹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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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판이 내려앉은 마을 모래판

모래판 한가운데는 그늘 없는 낮빛에 황갈색으로 드러나고, 낮게 둘러친 금줄 안쪽에는 발에 밀린 마른 모래가 초승달 모양으로 겹겹이 쌓여 있다. 팽팽한 무명 샅바를 당기는 거친 숨소리 위로 내일 아침 빵 수량을 부르는 외침이 건너오고, 둘레에 앉은 인부들의 무릎 아래로 먹다 만 빵이 내려가 있다. 모래 위에 내려놓은 빗물 자국 난 간판은 한쪽 끝이 파묻혀 기울었으며, 글씨를 가로막은 빈 빵 바구니의 성긴 틈으로 햇빛이 작은 사각형들을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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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덕수가 포대를 세는 창고

창고 안에는 누런 흰색 삼베 포대가 높은 들보 아래까지 쌓여 있고, 적재 더미 사이의 깊은 통로를 문틈에서 뻗어 온 가느다란 빛이 가른다. 포대 하나가 내려앉는 둔탁한 소리마다 바싹 마른 곡물 먼지가 솔기에서 솟아 빛 속에 잠깐 머문다. 더미 끝에 붙인 나무판에는 포대 수를 센 짧은 분필금이 왼쪽 아래에만 빽빽하고, 그 바로 밑 삼베 모서리는 손으로 거듭 짚어 보풀이 납작하게 눌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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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기섭의 아침 하역 부두

부두 가장자리를 따라 길게 늘어선 수레 너머로 짙은 남색 바다가 출렁이고, 아침빛은 배와 물가 사이에서 잘게 부서지는 은빛으로 번뜩인다. 계선 기둥에 감긴 소금 밴 밧줄이 팽팽해질 때마다 삐걱이며, 작업 차례를 부르는 목소리가 그 소리를 끊으면 닳은 수레 손잡이들이 하나씩 들린다. 수레마다 손잡이 안쪽에 빈 빵 바구니가 걸려 있고, 바퀴가 구를 때마다 바구니 밑바닥이 나무에 부딪히지만 물가에 남은 수레의 바구니만은 소리 없이 매달려 있다.


Scenes

Scene by scene

Chapter 01

Scene 01· 1932년 초가을, 씨름판이 열리는 첫날 새벽

내밀어진 굽기 판

내밀어진 굽기 판
Place오금례의 네 걸음 빵집
Time1932년 초가을, 씨름판이 열리는 첫날 새벽
Action오금례가 반죽대 앞으로 굽기 판을 내밀자 배봉출은 두 손으로 반죽을 붙들고 굽기를 미룬다. 오금례는 판을 거두어 직접 화덕에 넣고, 차응복의 주문 바구니를 계산대에 밀어 놓는다. 배봉출은 반죽에서 손을 떼고 바구니를 받아 씨름판으로 배달을 나선다.
Impact배봉출에게 처음 내밀어진 굽기 판은 다시 오금례의 손으로 돌아간다. 화덕을 맡겨 달라는 청을 꺼내지 못한 배봉출은 대신 빵을 온전히 가져다줄 일을 떠안는다. 차응복의 주문이 그를 반죽대에서 모래판 쪽으로 움직이게 한다.

오금례가 빵 반죽을 올린 굽기 판을 배봉출의 두 팔 사이로 밀어 넣자, 배봉출은 치대던 반죽을 움켜쥔 채 팔꿈치를 옆구리에 붙였다. 낮은 목조 빵집의 화덕 문은 열려 있었고, 주황빛이 판 가장자리와 버터 묻은 반죽대 모서리에 걸렸다. “이 판부터 넣어라.”

배봉출은 굽기 판 쪽으로 한 손을 뻗었다가 길게 늘어진 반죽을 다시 접으며 “이것부터 마저 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오금례는 판을 거두어 화덕에 밀어 넣고 문을 닫은 뒤, 앞방 계산대의 장부를 당겨 차응복의 주문 줄에 연필 끝을 댔다. 이어 빵 바구니를 반달 모양의 긁힌 자국 위로 밀어 놓으며 “차응복한테 가져다줘라, 씨름 시작 전에”라고 했다.

배봉출은 반죽을 통에 내려놓고 앞치마 오른쪽 귀퉁이에 손바닥을 문지른 다음, 바구니의 빵을 하나씩 세어 덮개를 여몄다. 오금례가 장부를 들어 길을 내주자 배봉출은 바구니를 가슴 앞에 받치고 반죽대에서 문까지 네 걸음을 옮겼다. 문턱에서 배봉출이 돌아섰을 때 오금례는 이미 다음 굽기 판을 들고 있었고, 배봉출은 벌렸던 입을 닫고 바구니를 문설주 바깥으로 먼저 내보냈다.

Scene 02· 1932년 초가을, 씨름 시작 전 오전

빵부터 주운 승자

빵부터 주운 승자
Place마을 씨름판의 낮은 금줄 안쪽
Time1932년 초가을, 씨름 시작 전 오전
Action배봉출은 차응복의 주문 바구니를 내밀다가 밀려드는 구경꾼을 피해 금줄 안으로 들어선다. 몸을 풀던 차응복이 허리를 붙잡자, 배봉출은 기울어진 바구니를 받으려고 몸을 낮추고 발을 돌린다. 그 움직임에 차응복이 모래판으로 넘어지고, 배봉출은 흩어진 빵부터 주워 담은 뒤 사과한다.
Impact빵을 배달하러 온 배봉출이 사람들 앞에서 우승 후보를 넘어뜨린다. 차응복은 웃음소리 속에서 배봉출을 일으켜 세우고, 빵을 받는 대신 그를 금줄 안에 붙들어 둔다. 배봉출이 서둘러 끝내려던 배달은 저녁 빵집에서 이어질 출전 제안의 발단이 된다.

배봉출은 주문 바구니를 차응복 쪽으로 내밀다가 뒤에서 밀려오는 어깨들을 피해 낮은 금줄을 넘었다. 오전 햇빛 아래 마른 모래가 신발 가장자리를 덮었고, 차응복은 몸을 풀던 두 팔을 뻗어 배봉출의 허리를 붙잡았다. 바구니가 가슴에서 미끄러지자 배봉출은 손잡이를 따라 몸을 낮췄다.

차응복의 가슴이 등 위로 실리는 순간, 배봉출은 반죽을 접을 때처럼 한 발을 안으로 들이고 돌아섰다. 차응복의 발이 모래에서 떨어졌다가 등이 먼저 떨어졌고, 열린 덮개 아래로 빵 두 개가 굴러 나왔다. 금줄 밖에서 웃음이 터지는 동안 배봉출은 무릎을 꿇고 빵껍질에 붙은 모래를 앞치마 귀퉁이로 털었다.

차응복이 팔꿈치로 몸을 일으키자 배봉출은 마지막 빵을 바구니에 넣고서야 고개를 들었다. “죄송합니다. 어디 다치셨습니까?” 차응복은 내민 바구니를 받지 않고 배봉출의 팔뚝을 잡아 일으킨 뒤, 자기 어깨에 걸린 수건으로 그의 소매에 묻은 모래를 털었다. 배봉출이 금줄 쪽으로 발을 빼자 차응복의 손이 팔뚝에 남았고, 두 사람 사이에서 바구니 덮개만 반쯤 열린 채 흔들렸다.

Scene 03· 차응복을 넘어뜨린 날 저녁

반죽이 부푸는 동안의 계약

반죽이 부푸는 동안의 계약
Place오금례의 네 걸음 빵집
Time차응복을 넘어뜨린 날 저녁
Action차응복이 반죽대 앞을 막고 배봉출에게 사흘간 마을 대표로 출전하라고 제안한다. 오금례는 장부를 펼쳐 차응복에게 출전으로 줄어들 밀가루 외상 액수를 직접 쓰게 한다. 배봉출은 출전 뒤 화덕 일을 배우겠다는 조건을 꺼내고, 오금례의 조건부 허락을 받은 뒤 약속을 받아들인다.
Impact배달 중 벌어진 실수가 장부에 액수를 명시한 출전 약속으로 이어진다. 배봉출은 사과만 하는 대신 자신이 원하는 일을 약속에 보탠다. 빵집의 외상 감액과 배봉출의 굽기 수련이 사흘간의 출전에 함께 걸린다.

차응복이 빈 빵 바구니를 계산대에 밀어 놓고 반죽대 앞을 가로막자, 배봉출은 반죽 묻은 두 손을 들고 옆으로 비켜섰다. 저녁의 낮은 목조 빵집에서 화덕 빛이 차응복의 저고리 자락에 붙은 모래를 비췄고, 반달 모양으로 긁힌 계산대 위에서는 바구니 손잡이가 장부 표지에 걸렸다. 차응복은 손잡이를 눕히며 “나를 넘긴 손으로 사흘만 마을 대표를 맡아라”라고 말했다.

배봉출이 고개를 숙이자 오금례는 두 사람 사이로 장부를 펼쳐 넣고, 밀가루 외상 줄 아래에 짧은 연필을 가로놓았다. “사흘을 다 나서면 얼마를 지울 건지, 여기 써요.” 차응복은 연필을 집어 액수를 적고 그 옆에 사흘 출전이라는 말을 붙였으며, 오금례는 장부를 당겨 숫자 끝까지 손가락으로 짚었다. 배봉출은 등 뒤의 통 가장자리까지 올라온 반죽을 돌아보다가 앞치마에 손을 닦고 장부 앞으로 한 걸음 나왔다.

“출전이 끝나면 화덕 일을 배워도 되겠습니까?” 오금례는 배봉출의 손을 내려다본 뒤 “빵 구울 손으로 돌아오면”이라고 답했고, 배봉출은 “그럼 나가겠습니다”라며 차응복을 똑바로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차응복이 반죽대 앞에서 몸을 비키자 배봉출은 통 가장자리를 넘기 시작한 반죽을 안으로 접었고, 오금례는 아직 마르지 않은 숫자를 피해 장부를 펼쳐 두었다.

Chapter 02

Scene 04· 출전 약속을 맺은 다음 날 새벽부터 아침까지

뒤꿈치 아래의 돌

뒤꿈치 아래의 돌
Place포대 하나 폭의 뒷계단과 오금례의 네 걸음 빵집
Time출전 약속을 맺은 다음 날 새벽부터 아침까지
Action배봉출은 이슬 젖은 돌계단 중턱에서 밀가루 포대를 고쳐 메다가 발뒤꿈치를 계단 밖으로 내민다. 문덕수가 지팡이로 모서리를 찍어 발을 고치게 하자, 배봉출은 남을 넘어뜨리는 일이 어렵다고 말한다. 문덕수는 대답 대신 올라갈 횟수를 늘린다. 훈련 뒤 오금례는 배봉출의 손에서 늘어진 반죽을 문덕수에게 들이밀고, 문덕수는 훈련 부족을 탓하다가 배봉출이 물잔을 두 손으로 받치는 모습을 보고 말을 멈춘다.
Impact배봉출은 지팡이 소리에 발을 고쳐 버티지만, 빵집으로 돌아온 손은 반죽을 제대로 받치지 못한다. 오금례가 반죽을 들고 따지면서 문덕수의 훈련이 가게 일과 직접 부딪힌다. 문덕수는 더 시키려던 말을 거두지만, 배봉출에게는 첫 시합과 아침 반죽이 그대로 남는다.

배봉출이 밀가루 포대를 어깨 위로 밀어 올리자, 아래쪽 발뒤꿈치가 이슬 젖은 돌계단 밖으로 밀려났다. 출전 약속을 맺은 다음 날 새벽, 포대 하나 폭의 계단 아래에서 문덕수가 왼손의 지팡이로 돌 모서리를 찍었고 배봉출은 발을 안쪽으로 끌어당겼다. 흠 둘레의 흰 가루가 튀는 동안 배봉출은 포대 밑을 받친 채 “남을 넘어뜨리는 건 어렵습니다”라고 말했다. 문덕수는 몸에 붙인 오른팔 대신 지팡이 끝으로 계단 위를 가리키며 “두 번 더 올라가라”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내려온 배봉출이 신발을 벗자, 문덕수는 벌어진 밑창에 천을 덧대고 왼손으로 눌러 끼웠다. 배봉출은 빵집 안으로 들어가 떨리는 손을 찬물에 담갔다가 반죽을 들어 올렸지만, 접어 넣기도 전에 반죽 가운데가 손가락 사이로 길게 처졌다. 오금례는 그 반죽을 떼어 문덕수 앞에 내밀며 “씨름꾼 하나 만들다가 빵 구울 손을 잃겠어요”라고 말했다.

문덕수가 “훈련이 부족해서……”라며 지팡이를 반죽대에 기대는 사이, 배봉출은 물잔을 들다가 다른 손까지 가져다 받쳤다. 잔 가장자리에서 넘친 물이 반죽대에 떨어지자 문덕수는 벌린 입을 닫고 자기 잔을 내려놓았다. 오금례는 축 처진 반죽을 통에 돌려놓았고, 배봉출은 물잔을 내려놓은 뒤 젖은 두 손으로 통 가장자리를 붙잡았다.

Scene 05· 1932년 초가을, 첫 출전 날 낮

여섯 개를 세는 손

여섯 개를 세는 손
Place마을 모래판의 낮은 금줄 안쪽
Time1932년 초가을, 첫 출전 날 낮
Action차응복이 배봉출의 샅바 매듭을 다시 묶어 준다. 배봉출은 상대 무릎의 헝겊을 보고 사과하며 고개를 숙였다가 깊은 샅바 자리를 내준다. 관중석의 빵 여섯 개 주문에 손가락을 펴는 순간 몸이 들리지만, 문덕수의 지팡이 소리에 발뒤꿈치를 붙이고 상대를 몸 가까이 끌어당겨 넘어뜨린다.
Impact배봉출은 훈련에서 익힌 동작으로 첫 승리를 얻는다. 다만 빵 주문에 응답하는 버릇은 경기 도중에도 그의 손을 풀어 버린다. 모래판에서 몸을 일으키는 동안에도 오금례의 장부에는 새 주문이 들어간다.

차응복은 배봉출의 허리에 묶인 샅바를 풀어 끼인 저고리 자락을 빼고, 금줄 옆에서 매듭을 다시 당겼다. 낮빛에 드러난 배봉출의 손에는 밀가루가 손금마다 남아 있었고, 차응복은 그 손을 다리 샅바 쪽으로 내려 주었다. 배봉출은 모래판에 무릎을 대고 상대 무릎의 헝겊을 내려다보다 “죄송합니다” 하고 고개를 숙였으며, 그 사이 상대의 손이 그의 허리 샅바 안쪽으로 깊이 들어왔다.

두 사람이 일어서자 배봉출의 팔꿈치가 벌어졌고, 버터 냄새가 남은 손바닥에서 팽팽한 무명이 조금씩 밀렸다. 금줄 밖에서 “내일 아침 여섯 개!”라는 외침이 날아오자 배봉출은 샅바를 쥔 손가락을 하나씩 펴기 시작했다. 상대가 그 틈에 허리를 붙여 들어 올렸고, 배봉출의 두 발 아래에서 모래가 쏟아졌다.

문덕수가 왼손의 지팡이로 모래를 내리찍자 배봉출은 내려오는 발뒤꿈치를 붙이고 무릎을 굽혔다. 배봉출은 포대 밑을 고쳐 받치듯 상대를 제 허리 가까이 당긴 뒤 발을 돌렸고, 상대의 등이 모래에 닿으면서 허리 샅바가 느슨해졌다. 배봉출이 손가락을 다시 오므려 모래를 짚는 동안, 금줄 밖의 오금례는 펼친 장부에 여섯이라는 숫자를 적었다.

Scene 06· 첫 시합 직후부터 그날 밤까지

우승보다 먼저 적힌 주문

우승보다 먼저 적힌 주문
Place마을 모래판과 오금례의 네 걸음 빵집
Time첫 시합 직후부터 그날 밤까지
Action오금례는 주문을 장부에 적은 뒤에야 일어서는 배봉출을 바라본다. 차응복은 박수를 치다가 자신과 비교하는 환호에 손을 내린다. 밤에 빵집으로 돌아온 배봉출은 졸다가 반죽을 찌그러뜨리고, 오금례는 그것을 구워 자기 몫으로 빼놓은 뒤 남은 주문을 펼쳐 보인다. 배봉출은 다시 반죽을 나눈다.
Impact첫 승리는 빵집으로 돌아온 배봉출의 일을 줄이지 않고 늘린다. 오금례가 찌그러진 빵을 가져가도 장부에 적힌 수량은 줄어들지 않는다. 배봉출은 다음 새벽 훈련을 앞두고도 약속한 빵을 만들 손을 쉬지 못한다.

오금례는 장부에 적은 여섯이라는 숫자 아래에 줄을 긋고 연필을 들어, 모래를 짚고 일어서는 배봉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낮은 금줄 옆에서 차응복이 손뼉을 치다가 “차응복을 넘긴 게 우연이 아니네”라는 외침에 두 손을 내렸고, 배봉출이 다가오자 자기 바지의 모래를 털었다. 문덕수는 지팡이 끝으로 배봉출의 발치에 벗어 놓은 신발을 밀어 주었지만, 오금례는 장부를 덮지 않은 채 다음 주문을 받아 적었다.

그날 밤, 네 걸음 빵집의 화덕 옆에서 반죽을 나누던 배봉출은 고개를 떨어뜨리며 손바닥으로 둥근 반죽 하나를 납작하게 눌렀다. 오금례가 굽기 판을 그의 팔 아래로 밀어 넣자 배봉출은 몸을 바로 세우고 찌그러진 반죽을 떼어 올렸다. “몇 개 남았습니까?” 오금례는 계산대의 장부를 반죽대 쪽으로 돌려 놓고, 아침에 찾아갈 주문 줄들을 연필 끝으로 차례로 짚었다.

오금례는 화덕에서 꺼낸 판의 빵을 세다가 납작하게 구워진 하나를 자기 접시에 옮겼다. 배봉출이 그쪽으로 손을 뻗자 오금례는 빈 굽기 판을 내밀며 “이쪽부터 채워라”라고 했다. 배봉출은 판을 받아 반죽대에 붙여 놓고, 밀가루 묻은 손가락으로 반죽을 하나씩 떼어 빈자리에 놓았다.

Chapter 03

Scene 07· 첫 승리를 거둔 이튿날 새벽, 아침 주문을 굽기 전

포대 대신 내려놓은 통

포대 대신 내려놓은 통
Place오금례의 네 걸음 빵집과 포대 하나 폭의 뒷계단
Time첫 승리를 거둔 이튿날 새벽, 아침 주문을 굽기 전
Action배봉출은 문덕수가 내미는 밀가루 포대를 받지 않고 반죽부터 끝내겠다고 한다. 문덕수가 지팡이로 뒷문을 막자 배봉출은 반죽통을 그의 발치에 내려놓는다. 오금례는 두 사람 사이로 장작을 옮긴 뒤 문덕수에게 통을 받치게 하고, 배봉출은 그 앞에서 주문받은 반죽을 나눈다.
Impact문덕수가 정한 훈련 순서가 처음으로 배봉출의 요구에 따라 바뀐다. 문덕수는 배봉출을 계단으로 끌어내는 대신 빵집 일을 마치는 데 손을 보탠다. 반죽을 끝낸 배봉출은 훈련을 피하지 않고 뒷계단으로 나서되, 이날은 포대를 메지 않는다.

배봉출은 반죽통을 들어 문덕수의 발치에 내려놓고, 뒷문을 가로지른 지팡이 앞에서 두 손을 뗐다. 첫 승리를 거둔 이튿날 새벽, 문턱 밖 돌계단에는 이슬이 남아 있었고 문덕수가 끌어다 놓은 밀가루 포대가 출입구 절반을 차지했다. 문덕수는 지팡이를 거두지 않은 채 포대 윗부분을 배봉출 쪽으로 밀었지만, 배봉출은 통이 기울지 않도록 발끝으로 밑을 받쳤다. “이것도 제가 끝내야 합니다.”

오금례는 장작 두 토막을 옆구리에 끼고 두 사람 사이로 들어와, 화덕 앞에 걸린 포대를 발로 밀어냈다. 장작을 넣은 오금례가 계산대의 장부를 돌려 아침 수령 시각이 적힌 줄을 짚자 문덕수의 지팡이 끝이 바닥으로 내려갔다. “통부터 받쳐 주세요.” 문덕수는 지팡이를 문 옆에 기대고 왼손으로 통 가장자리를 붙들었으며, 배봉출은 통을 반죽대에 올려 반죽을 떼어 빈 굽기 판에 놓았다.

마지막 자리를 채운 배봉출은 굽기 판을 오금례 쪽으로 밀고 앞치마를 벗어 반죽대 아래에 걸었다. 문덕수는 빈 통을 내려놓고 먼저 뒷문으로 나갔으며, 배봉출이 뒤따라 첫 돌계단에 발을 붙이는 동안 밀가루 포대는 문턱 안에 남아 있었다.

Scene 08· 둘째 날 낮부터 저녁 배달 직전까지

이긴 손이 놓친 바구니

이긴 손이 놓친 바구니
Place마을 모래판과 오금례의 네 걸음 빵집
Time둘째 날 낮부터 저녁 배달 직전까지
Action배봉출은 모래판에서 넘어지는 상대의 팔을 붙잡아 세우려다가 함께 쓰러지고 손목을 다친다. 승리를 얻은 뒤 빵집으로 돌아와 배달 바구니를 들지만, 계산대까지 옮기는 도중 손잡이를 놓친다. 문덕수가 왼손으로 바구니를 대신 들며 꾸짖자 배봉출은 그의 오른팔을 왜 쓰지 않는지 묻는다.
Impact둘째 날 승리는 확보되지만 배봉출은 맡은 배달을 혼자 해낼 수 없게 된다. 문덕수는 바구니를 들어 주면서도 자신의 부상에 관한 질문에는 답하지 않는다. 오금례는 쏟아진 빵을 다시 세고, 배봉출의 부은 손목은 계산대 위에 남는다.

배봉출은 넘어가는 상대의 팔을 잡아 위로 당겼다가, 상대의 등이 닿은 모래 위로 함께 고꾸라졌다. 포대 없이 발을 디뎠던 새벽이 지나고 둘째 날 낮, 황갈색 모래에 박힌 배봉출의 손목이 몸 아래 꺾였으며 문덕수는 금줄 밖에서 지팡이를 앞으로 내밀었다. 차응복이 들어와 샅바를 풀어 주자 배봉출은 한 손으로 땅을 짚고 일어났지만, 승리를 알리는 외침 속에서도 다른 손은 저고리 자락에 감춰 두었다.

저녁에 배봉출은 오금례가 빵을 채운 바구니를 들어 반죽대에서 계산대 쪽으로 옮겼고, 네 번째 걸음에서 부은 손목이 꺾이며 손잡이가 손가락을 빠져나갔다. 바구니 모서리가 계산대에 부딪혀 빵 두 개가 바닥으로 굴렀다. 오금례는 장부를 들어 피한 뒤 바닥의 빵을 집어 따로 놓았고, 문덕수는 지팡이를 반죽대에 기대고 왼손으로 바구니를 들어 올렸다.

“넘어진 사람까지 네가 붙들어 세우려 들지 마라.” 문덕수가 바구니를 계산대에 내려놓자 배봉출은 그의 몸에 붙은 오른팔을 가리키며 “그 팔은 왜 안 쓰십니까?”라고 물었다. 문덕수는 대답 대신 왼손으로 바구니를 돌려 오금례 앞으로 밀었다. 오금례가 남은 빵을 하나씩 세는 동안 배봉출은 손잡이를 향해 뻗던 손을 거두어, 장부 옆 빈자리에 부은 손목을 내려놓았다.

Scene 09· 둘째 날 시합을 마친 밤, 저녁 배달을 다시 챙기는 동안

너무 단단한 매듭

너무 단단한 매듭
Place오금례의 네 걸음 빵집, 계산대와 반죽대 사이
Time둘째 날 시합을 마친 밤, 저녁 배달을 다시 챙기는 동안
Action차응복은 계산대에 놓인 배봉출의 부은 손목을 보고, 가져온 다음 날 대진표를 접어 넣는다. 어깨의 수건을 풀어 손목을 감던 차응복에게 배봉출이 자신이 계속 이기면 좋겠느냐고 묻는다. 차응복은 매듭을 너무 세게 당겼다가 배봉출이 손을 움츠리자 다시 느슨하게 푼다.
Impact차응복이 가져온 마지막 날 출전 이야기는 대진표와 함께 접히지만, 출전을 그만두라는 말도 나오지 않는다. 배봉출은 손목을 맡기는 데서 그치지 않고 차응복에게 승리를 원하는지 직접 묻는다. 손목을 감싸는 수건은 남고, 질문에는 답이 붙지 않은 채 장면이 끝난다.

차응복은 장부 옆에 내려놓인 배봉출의 손목을 받쳐 들고, 반쯤 펼쳤던 대진표를 접어 저고리 안에 밀어 넣었다. 둘째 날 시합을 마친 밤, 오금례는 계산대의 긁힌 자국 위에 바구니를 붙여 놓고 배달할 빵을 다시 셌다. 문덕수는 왼손으로 바구니 손잡이를 눕혀 두 사람 앞의 자리를 비워 주었다.

차응복은 어깨의 수건을 풀어 좁은 반죽대 위에 펴고, 길게 접은 천으로 배봉출의 부은 손목을 감았다. 배봉출은 다른 손으로 계산대 모서리를 붙든 채 “제가 계속 이기면 좋으십니까”라고 물었다. 차응복이 수건 양 끝을 당기자 매듭 아래의 살이 눌렸고, 배봉출은 손가락을 오므리며 팔을 몸 쪽으로 당겼다.

오금례는 빵 하나를 든 채 두 사람 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문덕수는 바구니 손잡이를 쥐었다. 차응복은 대답하지 않고 매듭에 손가락을 넣어 천을 조금씩 빼냈다. 배봉출이 손을 다시 계산대에 내려놓자, 차응복은 느슨해진 수건 끝을 접어 매듭 밑에 끼웠다.

Chapter 04

Scene 10· 1932년 초가을, 씨름판 마지막 날 낮

놓아 버린 샅바

놓아 버린 샅바
Place마을 모래판의 낮은 금줄 안쪽
Time1932년 초가을, 씨름판 마지막 날 낮
Action배봉출이 탁기섭의 왼팔에 남은 밧줄 자국을 보고 사과하자, 탁기섭은 잡고 있던 샅바를 놓는다. 탁기섭은 작업복 소매를 걷고 빵집 간판을 판돈으로 요구한다. 문덕수가 물러서라고 부르지만, 금줄 밖으로 향하던 탁기섭의 발은 다시 모래판 안쪽으로 돌아온다.
Impact마지막 경기가 시작되기 전에 멈춘다. 배봉출의 사과는 탁기섭을 달래지 못하고, 빵집 물건까지 요구하는 대치를 불러온다. 오금례가 장부를 덮고 금줄 앞으로 나오면서 배봉출 혼자 답할 수 없는 요구가 된다.

탁기섭은 배봉출의 허리 샅바를 놓고 몸을 일으켰으며, 당겨져 있던 무명천이 배봉출의 배 앞에서 축 늘어졌다. 마지막 날 낮빛 아래, 배봉출은 수건으로 감싼 손목을 거두고 탁기섭의 왼팔에 남은 밧줄 자국에서 눈을 떼었다. 방금 건넨 “죄송합니다” 뒤로, 금줄 밖에서 내일 아침 빵 수량을 부르던 목소리도 끊겼다.

탁기섭은 소금기 밴 작업복 소매를 팔꿈치 위까지 밀어 올리고, 가까운 골목의 빵집 처마를 가리켰다. “그렇게 미안하면 간판을 걸어.” 배봉출이 벌어진 샅바를 다시 내밀자 탁기섭은 받지 않고 손가락을 더 높이 뻗었으며, 오금례는 쓰던 연필을 장부 사이에 끼우고 표지를 닫았다.

문덕수가 지팡이를 금줄 안으로 내밀며 “탁기섭, 물러서라” 하고 불렀다. 탁기섭은 한쪽 발끝을 문덕수 쪽으로 돌렸다가 금줄 밖에 모인 시선 앞으로 고개를 돌렸고, 그 발을 다시 모래에 깊이 박았다. 오금례가 닫힌 장부를 옆구리에 끼고 금줄 앞으로 나오는 동안, 배봉출이 내민 샅바 끝은 두 사람 사이에서 모래에 닿았다.

Scene 11· 씨름판 마지막 날 낮, 경기가 멈춘 직후

장부의 좁은 빈칸

장부의 좁은 빈칸
Place마을 모래판과 오금례의 네 걸음 빵집
Time씨름판 마지막 날 낮, 경기가 멈춘 직후
Action배봉출은 오금례에게 내밀던 손을 거두고 간판 대신 자기 품삯을 걸겠다고 말한다. 액수를 묻자 오금례는 장부를 펼쳐 외상 숫자 사이에 그의 사흘 품삯을 따로 적는다. 탁기섭이 계속 간판을 요구하자 오금례는 빵집으로 돌아가 직접 간판을 내리고, 모래판에 가져와 자기 발밑에 놓는다.
Impact배봉출의 품삯이 처음으로 장부에서 별도의 몫을 얻지만, 그것으로 탁기섭의 요구를 막지는 못한다. 오금례는 간판을 가져오되 배봉출에게 건네지 않고, 가게 물건을 걸 권리가 그에게 없음을 분명히 한다. 탁기섭이 가리키던 간판이 이제 세 사람의 발 앞에 놓인다.

배봉출은 모래에 닿은 샅바 끝을 끌어 올리고, 금줄 앞으로 나온 오금례에게 뻗던 손을 자기 허리로 거두었다. 마지막 날 낮빛 아래 수건 매듭이 손목에서 벌어졌고, 배봉출은 그 끝을 누르며 “간판 말고 제 품삯을 걸겠습니다, 제가 받을 돈이 얼마입니까?” 하고 물었다. 오금례는 장부 사이의 연필을 빼 들었다가 멈춘 뒤, 밀가루 대금과 인부들의 외상 숫자 사이 좁은 빈칸에 배봉출의 이름과 사흘 품삯을 적었다.

탁기섭은 펼쳐진 장부를 받지 않고 빵집 처마를 다시 가리켰으며, 문덕수가 지팡이 자루로 그 팔 앞을 막자 손가락만 더 뻗었다. 오금례는 장부를 덮어 배봉출에게 쥐여 주고 골목으로 들어갔고, 배봉출은 그것을 다치지 않은 팔에 끼워 뒤따랐다. 네 걸음뿐인 빵집에서 오금례는 낮은 발판을 처마 밑으로 끌어내 두 쇠갈고리에서 간판을 차례로 벗겼다. 배봉출이 아래쪽을 받치려 손을 올리자 오금례는 나무판을 제 가슴 쪽으로 당겼고, 처마 아래에는 햇볕에 덜 바랜 직사각형이 드러났다.

모래판으로 돌아온 오금례는 간판을 자기 발밑에 내려놓았으며, 무거운 한쪽 끝이 마른 모래를 밀고 비스듬히 박혔다. “네 품삯은 네가 걸어도 이것을 걸 권리는 없다.” 배봉출은 벌어진 장부 표지를 눌러 닫았고, 탁기섭이 한 발 다가오자 오금례는 간판 가장자리에 발을 붙였다.

Scene 12· 1932년 초가을, 씨름판 마지막 날 낮

빈 바구니가 막은 손

빈 바구니가 막은 손
Place간판이 내려앉은 마을 모래판
Time1932년 초가을, 씨름판 마지막 날 낮
Action탁기섭이 간판을 집으려 몸을 굽히자 다친 인부가 빈 빵 바구니를 그 위에 내려놓는다. 인부의 항의에 탁기섭의 손이 멈추고, 배봉출은 장부를 오금례에게 돌려준 뒤 바구니 앞으로 나선다. 배봉출은 사과의 뜻을 바로잡고 자기 품삯도 걸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Impact간판을 가져가려던 요구가 인부들의 아침 끼니를 위협하는 일로 드러난다. 배봉출은 돈을 대신 내놓아 대치를 끝내려던 제안을 거두고, 판돈 없는 경기만 받아들인다. 탁기섭이 간판에서 물러나 샅바를 집으면서 멈췄던 시합을 다시 시작할 길이 열린다.

다친 인부가 탁기섭의 뻗은 손 아래로 빈 빵 바구니를 내려놓아, 오금례의 발밑에 기울어진 간판 글씨를 가렸다. 마지막 날 낮빛이 바구니의 성긴 틈을 지나 나무판에 작은 사각형들을 찍었고, 탁기섭은 손가락을 벌린 채 손을 멈췄다. “반장 말 한마디 받자고 내일 우리 먹을 데를 없애려는 거요?” 금줄 둘레의 인부들이 먹던 빵을 무릎 아래로 내리는 동안, 문덕수는 지팡이를 모래에 짚고 탁기섭과 간판 사이로 한 걸음 들어왔다.

배봉출은 끼고 있던 장부를 오금례에게 돌려주고 바구니 앞을 가로막았다. “다치게 할까 걱정했습니다. 봐주겠다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탁기섭이 몸을 펴자 배봉출은 수건으로 감싼 손을 허리에서 떼어 내렸다. “품삯도 걸지 않겠습니다. 오늘 씨름은 하겠습니다. 그 돈은 제가 벌었습니다.”

오금례는 장부를 옆구리에 끼고 간판 가장자리에 붙였던 발을 그대로 두었으며, 문덕수는 지팡이를 옆으로 옮겨 두 사람 사이를 비웠다. 탁기섭은 바구니 위에 머물던 손을 거두고 모래판 안쪽으로 물러나, 배봉출의 허리에서 늘어진 샅바를 집었다.

Chapter 05

Scene 13· 1932년 초가을, 마지막 날 낮, 시합을 다시 시작하기 직전

스스로 주저앉는 장사

스스로 주저앉는 장사
Place간판이 내려앉은 마을 모래판
Time1932년 초가을, 마지막 날 낮, 시합을 다시 시작하기 직전
Action문덕수가 다시 샅바를 잡은 두 사람 사이로 들어와 탁기섭의 손을 물린다. 배봉출에게 자기 왼쪽 샅바를 잡게 한 뒤, 오른팔로 넘어가는 몸을 받치려는 동작을 보여 준다. 팔이 올라가지 않아 몸이 기울자 배봉출의 부축을 막고 왼손으로 모래를 짚어 스스로 주저앉는다. 문덕수는 탁기섭을 되받으려다 어깨를 다쳤다고 밝히고 금줄 밖으로 물러난다.
Impact배봉출이 물어도 답하지 않았던 오른팔의 사연이 탁기섭 앞에서 드러난다. 문덕수는 넘어지는 몸을 끝까지 붙드는 대신 바닥에 내려놓는 동작을 직접 보여 준다. 발을 고쳐 주던 스승이 자리를 떠나면서, 배봉출은 다음 경기에서 붙잡고 놓을 때를 직접 정해야 한다.

문덕수가 배봉출과 탁기섭 사이로 지팡이를 밀어 넣고, 샅바를 당기던 탁기섭의 손등을 왼손으로 눌러 내렸다. 마지막 날 낮빛 아래 오금례는 간판 위의 빈 바구니를 가장자리로 옮겨 두 사람이 물러설 자리를 내주었다. 문덕수는 지팡이를 모래에 눕히고 자기 허리의 샅바를 풀어 길게 내밀었다. “배봉출, 왼쪽을 잡아라.”

배봉출이 수건 감긴 손목을 굽혀 천을 쥐자 문덕수는 몸을 비틀며 오른팔을 들어 올리려 했지만, 팔꿈치는 옆구리에서 조금 벌어지다 멎었다. 기울어진 어깨로 배봉출이 손을 뻗자 문덕수는 그 손을 왼손으로 밀어내고, 곧장 모래를 짚어 엉덩이를 내려놓았다. “탁기섭이 넘어갈 때 이 팔로 되받다가 어깨를 상했다.”

탁기섭은 문덕수 쪽으로 내디딘 발을 멈추고 걷어 올린 소매를 잡아당겼으며, 배봉출은 놓친 샅바 끝을 무릎 옆에 내려놓았다. 문덕수는 왼손으로 지팡이를 집어 일어난 뒤 “붙잡을 자리하고 놓을 자리는 네가 정해라” 하고 금줄을 넘어갔다. 배봉출이 탁기섭의 샅바를 다시 쥐었을 때, 문덕수의 지팡이 끝은 금줄 밖에서 모래를 누른 채 움직이지 않았다.

Scene 14· 1932년 초가을, 마지막 날 낮

놓아야 닿는 모래

놓아야 닿는 모래
Place간판이 내려앉은 마을 모래판
Time1932년 초가을, 마지막 날 낮
Action탁기섭이 배봉출을 들어 올려 모래판 안쪽으로 몰아붙인다. 배봉출은 지팡이 신호 없이 발을 옮겨 버티고, 함께 무릎을 낮추면서 다리 샅바를 놓는다. 허리 샅바로 넘어지는 방향만 바꾸자 탁기섭의 등이 먼저 모래에 닿는다. 탁기섭은 배봉출의 손목을 확인한 뒤 빈 바구니를 오금례에게 건넨다.
Impact배봉출은 상대를 붙들어 세우려던 동작을 멈추고 자기 판단으로 마지막 경기를 끝낸다. 탁기섭은 간판에서 손을 거두고 평소의 빵 주문으로 돌아온다. 오금례는 추가 주문을 막아 배봉출이 돌아가서 해야 할 일을 오늘의 약속 안으로 제한한다.

탁기섭이 배봉출의 허리 샅바를 당겨 두 발을 모래에서 떼어 올리자, 배봉출은 수건 감긴 손목을 그의 허리에 붙이고 발끝을 아래로 뻗었다. 그늘 없는 모래판에 발가락이 끌린 자국이 길게 나고, 금줄 밖 문덕수의 지팡이는 모래를 누른 채 움직이지 않았다. 배봉출은 한 발을 탁기섭의 발 옆에 내려 꽂고, 뒤로 밀리던 허리를 돌려 그의 무게를 몸 가까이 끌어왔다.

탁기섭이 몸을 비틀어 빠져나가려 하자 배봉출의 수건 매듭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배봉출은 함께 무릎을 낮추며 다리 샅바를 놓았고, 남은 허리 샅바를 옆으로 당겨 탁기섭의 등이 먼저 모래에 닿게 했다. 한쪽 무릎을 찧은 배봉출이 일어나자 탁기섭은 내밀려던 손을 멈추고 그의 손목을 가리켰으며, 배봉출이 “괜찮습니다”라고 답한 뒤에야 그 손을 잡았다.

탁기섭은 일어나 간판 가장자리의 빈 바구니를 집어 오금례에게 건네며 “내일 아침은 평소 수량대로 주시오”라고 말했다. 오금례는 바구니를 받아 간판 옆에 내려놓고, 장부를 펴려던 손을 멈췄다. “더는 안 받습니다. 오늘 약속한 것까지만 굽겠습니다.” 오금례가 장부를 덮는 동안 배봉출은 놓아 버린 다리 샅바 끝을 주워 허리에 끼웠다.

Scene 15· 마지막 씨름을 마친 날 저녁

그을린 빵의 자리

그을린 빵의 자리
Place오금례의 네 걸음 빵집
Time마지막 씨름을 마친 날 저녁
Action탁기섭이 처마의 쇠갈고리에 간판을 다시 걸고, 문덕수는 왼손으로 주문 빵을 담을 바구니를 받친다. 배봉출은 자기 품삯으로 빵 하나를 사서 문덕수와 나눈 뒤 오금례에게 화덕 한 칸을 맡겨 달라고 청한다. 굽기 판을 건네받은 배봉출은 첫 판에서 그을린 빵을 자기 접시로 옮기고, 다음 판은 직접 꺼낼 때를 정한다.
Impact오금례가 굽기 판을 넘기면서 사흘 출전 뒤의 약속이 실제 굽기 일로 이어진다. 첫 실패는 주문 바구니에 섞이지 않고 배봉출의 접시에 남는다. 배봉출은 스승의 신호나 주인의 지시 없이 다음 판을 꺼내며 장면을 끝낸다.

배봉출이 빈 빵 바구니를 계산대 안쪽으로 밀어 넣자, 오금례는 장부를 들어 반달 모양의 긁힌 자리를 비워 주었다. 마지막 씨름을 마친 날 저녁, 문밖의 탁기섭은 간판을 두 쇠갈고리에 걸었고 문덕수는 지팡이를 문 옆에 기대고 왼손으로 바구니 밑을 받쳤다. 배봉출이 품삯에서 빵 한 개 값을 내놓자 오금례는 장부의 그의 이름 옆에 지급한 돈을 적고, 진열함에서 가장 묵직한 빵을 꺼내 주었다.

배봉출은 빵을 갈라 문덕수 앞에 반쪽을 놓고, 수건 감긴 손목을 반죽대 가장자리에 받쳤다. “화덕 한 칸을 맡겨 주십시오.” 오금례는 빈 굽기 판을 내밀었고, 배봉출이 두 손으로 받아 들자 손을 놓고 주문 바구니 쪽으로 돌아섰다.

첫 판을 꺼냈을 때 구석의 빵 하나가 짙게 그을려 있었고, 오금례는 그것을 집으려던 배봉출 앞에 주문 바구니를 내밀었다. 배봉출은 입을 벌렸다가 다물고, 그 빵을 바구니 대신 자기 접시에 내려놓았다. 문덕수가 나눠 받은 빵을 든 채 판 가장자리를 비켜 주자, 배봉출은 다음 판을 화덕에 밀어 넣었다. 문 옆의 지팡이가 그대로 기대어 있는 동안 배봉출은 문틈으로 드러난 빵껍질을 살피다가, 첫 판보다 조금 일찍 화덕 문을 열어 굽기 판을 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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