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쉬블루색 단발머리 사이로 옅은 아쿠아 향이 스치듯 지나갔다. 마흔한 살의 시나리오 작가 스텔라는 텅 빈 모니터 앞에서 한숨을 내쉬었다. 19년의 세월 동안 수많은 작품을 써내려 온 그녀였지만, 언젠가부터 창작의 고통이 그녀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매 작품마다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완벽주의적 성향은 끊임없는 스트레스로 이어졌고, 결국 그녀의 머릿속은 백지장처럼 하얘진 지 오래였다.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어..."
스텔라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제주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오롯이 자신과 마주하며 삶의 변곡점을 찾기 위한 여정이었다. 에메랄드빛 바다가 펼쳐진 제주도에 도착한 스텔라는 조용한 한림읍의 독채 풀빌라 펜션을 빌렸다. 바닷바람에 실려 오는 짭조름한 공기, 창문 너머로 보이는 그림 같은 풍경은 삭막했던 그녀의 마음에 작은 파문을 일으켰다.
어느 날, 스텔라는 우연히 들른 카페에서 햇살처럼 밝은 미소를 가진 서른한 살의 건축 디자이너 메이든을 만나게 된다.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치는 메이든은 마치 댕댕이처럼 스텔라에게 다가왔고, 그의 순수한 열정은 메마른 감정의 웅덩이에 갇혀 있던 스텔라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스텔라는 메이든과의 대화를 통해 잊고 있던 삶의 소소한 행복과 열정을 다시금 떠올리게 된다.
"영화는 작가님의 소설 원작을 다 담지 못하더라구요."
메이든의 말은 스텔라의 가슴 깊은 곳에 잠들었던 창작에 대한 열정을 다시금 일깨워 주었다. 스텔라는 메이든과 함께 제주도 곳곳을 여행하며 그의 건축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전통 가옥의 아름다움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건축물, 자연과 조화롭게 어우러진 디자인은 스텔라에게 새로운 영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그러던 중 스텔라는 메이든에게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하게 되고, 잘 들어주고 위로해주는 그의 모습에 미묘한 감정의 변화를 느낀다.
하지만 이들의 평화로운 시간은 스텔라의 고등학교 동창 석영의 등장으로 인해 혼란스러운 상황이 시작된다. 4번의 사업 실패 후 무인 편의점 개업을 준비 중인 석영은 스텔라와 여행을 하기 위해 제주도에 왔지만 메이든의 존재가 신경쓰인다.
19년 동안 수많은 이야기를 써내려 온 베테랑 시나리오 작가 스텔라. 이제 그녀는 자신의 삶이라는 백지 위에 어떤 이야기를 써내려 갈까? 푸르른 제주 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스텔라의 선택과 사랑, 그리고 성장 이야기가 이제 막 시작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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