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짓달 저녁, 임보늬는 손님들이 벗어 놓은 젖은 신발을 난로에 밀어 넣는다. 썩은 냄새가 나는 신발까지 치우면 곽정분이 내일도 자신에게 잠자리를 내줄 것이라 여긴다. 그러나 곽정분은 아이를 밀쳐내고 맨손으로 불 속을 뒤진다. 장화와 짚신은 몇 짝씩 건져지지만, 백오목의 작은 신발은 검게 주저앉는다. 곽정분은 문밖에 놓은 신발이 밤마다 주인의 발자국을 길에 세우며, 짝을 잃은 발자국은 집 안에서 신지 않은 발을 찾는다고 말한다. 임보늬는 난로보다 먼저 장작더미를 돌아본다. 그 밑에는 아까 숨겨 둔 자기 짚신이 있다.
신막례는 딸을 업은 채 최길수의 장화를 끌어안는다. 최길수는 새벽에 표지 말뚝을 점검하지 못하면 다음 달 일을 잃는다며 장화를 잡아당긴다. 신막례가 품삯 전부를 내밀어도 그는 돈을 밀쳐낸다. 임보늬가 남은 신발을 내놓으라고 소리치자 최길수는 아이를 붙들고 자기 장화 밑창의 못 자국부터 확인하라고 한다. 그 사이 늙은 길손들은 건져낸 신발을 짝짓지만, 새로 온 손님들은 마른 것부터 움켜쥔다. 곽정분이 한 짝만 신어서는 소용없다고 외쳐도 누구도 먼저 손을 펴지 않는다. 난로에서 문까지 여섯 걸음인 마루가 무릎과 팔꿈치로 막힌다.
임보늬는 높은 선반의 아기 신발을 가리킨다. 곽정분이 고개를 젓자 빈 상자를 끌어와 올라서고, 나무 집게 끝으로 못을 뽑는다. 곽정분은 그가 내려오는 순간 손목을 붙든다. 수십 년 전 딸이 신었던 두 짝 아래로 먼지 없는 신발 모양이 드러난다. 임보늬는 “날이 밝으면 나가라고 하실 거예요?”라고 묻는다. 대답이 없자 신발을 등 뒤로 숨기지 않고 백오목 쪽으로 내민다. “혼내는 건 신고 나서 해요.” 곽정분의 손아귀가 조금 풀린다.
신막례가 백오목을 무릎에 앉히고 임보늬가 작은 뒤꿈치를 받친다. 그러나 발가락이 들어간 신발은 뒤축에서 멎는다. 바로 그때 문 밑의 눈이 맨발 모양으로 눌리고, 젖은 발자국 하나가 임보늬 앞에 찍힌다. 백오목은 무릎을 가슴으로 당긴다. 아이는 양말을 벗어 발자국 앞에 놓고 “여기서 쉬어”라고 말한다. 다음 자국은 양말을 비켜 찍힌다. 임보늬가 허리를 붙들지 않았다면 백오목은 양말을 주우려고 바닥으로 내려갔을 것이다.
신막례는 자기 치맛자락을 찢어 임보늬의 맨발을 감싼다. 곽정분은 천으로는 막을 수 없다고 말하지만, 신막례는 매듭을 끝까지 묶는다. 그러고는 아기 신발을 뒤집어 오래된 바느질을 살핀다. 발이 길어서가 아니라 굳은 뒤축과 좁은 발등 때문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다. 뒤축 솔기를 조금 풀어 천을 덧대면 신길 수 있다. 신막례가 바늘집을 꺼내자 곽정분은 신발을 도로 잡는다. 바랜 붉은 실을 자르려는 가위 앞에서 두 사람의 손이 맞붙는다. 젖은 자국이 한 칸 더 다가오고, 백오목이 임보늬의 목을 끌어안는다. 곽정분은 가위를 빼앗는 대신 뒤축을 펴서 잡는다. 신막례가 첫 실을 끊는다.
임보늬는 백오목을 안고 상자 위로 올라간다. 발자국은 상자 아래까지 따라온다. 최길수가 장작더미를 밀어 통로를 넓히다가 짚신 끈을 발견한다. 그가 두 짝을 들어 올리자 손님들의 눈이 임보늬에게 쏠린다. 남들에게 신발을 내놓으라던 아이가 자기 것은 숨겼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임보늬는 백오목을 더 세게 안을 뿐 변명하지 못한다. 최길수는 짚신을 아이 발에 대본다. 자기에게는 너무 작고, 임보늬에게는 꼭 맞는다. 그는 짚신을 바닥에 던지지 않고 상자 가장자리에 나란히 놓는다. “신어. 그러고 내 장화가 누구 것인지 말해.”
임보늬는 백오목을 곽정분에게 넘기고 짚신을 신는다. 젖은 자국이 그의 발 앞에서 멎었다가 곽정분 쪽으로 방향을 바꾼다. 임보늬는 이제 자기 발이 안전하다는 것을 확인하고도 물러나지 않는다. 신막례가 무릎 사이에 끼운 장화를 빼내 최길수에게 밀어주며 밑창의 덧댄 뒤꿈치와 못 배열을 짚는다. 신막례가 다시 잡으려 하자 그는 장화 대신 백오목의 발을 어머니 손에 얹는다. 큰 장화는 아이를 지켜주지 못한다. 신막례는 빈 팔꿈치를 풀고 바느질을 계속한다. 최길수도 다른 손님이 움켜쥔 신발을 빼앗는 대신 밑창을 맞대어 짝을 찾는다. 늙은 길손들이 주인을 불러 한 켤레씩 돌려주자, 서로 다른 신발을 신었던 손님들이 마루에 앉아 다시 갈아 신는다.
밤이 지나 문틈의 푸른빛이 옅어진다. 최길수는 장화를 신고 문고리를 잡는다. 지금 나가야 점검 시각을 겨우 맞출 수 있다. 곽정분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두 번째 신발을 잡고 있고, 임보늬는 백오목의 첫 번째 신발에 뒤꿈치를 밀어 넣는다. 백오목은 바닥에 남겨 둔 양말을 보자 다시 발을 빼려 한다. 최길수가 문을 조금 열자 눈보라가 들이치고, 바닥의 양말이 문 쪽으로 미끄러진다. 백오목이 곽정분의 팔에서 몸을 던지듯 기울어진다. 임보늬는 신발을 놓고 아이의 허리를 받친다.
최길수는 열린 문과 아이 사이에서 멈춘다. 그러고는 문을 닫고 돌아와 백오목의 양말을 주워준다. 젖은 발자국이 그의 장화 곁을 지나 아이 아래에 찍힌다. 그는 백오목 손에 양말을 쥐여주고 상자를 붙든다. 신막례가 마지막 매듭을 당기는 동안 곽정분은 신발 입구를 벌리고, 임보늬는 아이 발뒤꿈치를 손바닥으로 감싼다. 백오목은 양말의 푸른 뒤꿈치 조각을 만지며 처음으로 다리를 펴 준다. 첫 신발이 들어가고, 두 번째 뒤축도 발꿈치 위로 올라온다. 곽정분이 손가락을 빼자 두 짝이 온전히 남는다. 바로 아래까지 와 있던 젖은 자국은 더 찍히지 않는다.
첫 햇빛이 들기 전, 신발을 되찾은 늙은 길손 하나가 자기 여분의 짚신을 처마 밑에 가지런히 놓는다. 모두 마루에 앉아 그 앞코에 빛이 닿기를 기다린다. 최길수는 품속의 확인 종이를 꺼내지도 않고 문 옆에 기대 앉는다. 안전해지는 시각이 오기 전에 그의 점검 시각은 지나간다. 햇빛이 짚신의 젖은 끈을 비추자 마루의 발자국들이 가장자리부터 마른다. 백오목은 양말을 들고 내려와 마지막 물자국 위에 올려놓는다. 이번에는 새 자국이 생기지 않는다.
손님들이 떠날 채비를 할 때 신막례는 남은 천으로 최길수 장화의 벌어진 뒤축을 덧댄다. 돈을 다시 내밀지는 않는다. 최길수는 수선이 끝날 때까지 백오목을 무릎에 앉혀둔다. 곽정분은 선반으로 손을 뻗었다가 못 두 개만 앞치마 주머니에 넣는다. 아기 신발은 백오목이 신고 떠나도록 둔다. 임보늬가 장작을 나르기 시작하자 그녀는 그를 문턱으로 불러 신발의 짝과 앞코 방향부터 가르친다. 아이는 자기 짚신을 벗어 손님들의 신발 옆에 놓는다. 장작 밑에는 더는 숨겨 둔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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