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윤은 장맛비가 가장 굵게 쏟아지는 새벽 3시 40분, 은하동산 정문 앞에 멈춘다. 호출 내용은 폐쇄 구역 안에 버려진 구급차 견인 한 건뿐이지만, 정문 철문 너머로 보이는 회전목마가 이미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부터 이상하다. 전기는 끊긴 지 오래인데도 말 목들이 젖은 불빛을 받아 천천히 오르내리고, 스피커에서는 어린이 동요가 한 소절 나오다 끊긴다. 관제실의 배소정은 전화로 경찰보다 먼저 차량 상태를 확인하라고 재촉한다. 서해윤은 욕설을 삼키고 철문 옆 좁은 틈으로 몸을 밀어 넣는다. 빗물이 고인 바닥에서 운동화가 미끄러지고, 구급차 뒤편 반쯤 열린 문 안에 들것이 보인다. 그녀가 문을 완전히 젖히는 순간, 들것 위의 열여섯 살 서해윤이 숨을 들이켜며 눈을 뜬다.
소녀의 손목에는 2009년 축제 입장권이 고무줄처럼 들러붙어 있고, 아직 녹지 않은 분홍 설탕이 빗물에 젖어 피부에 번져 있다. 소녀는 처음에는 낯선 어른을 보듯 움츠리다가, 현재의 서해윤이 무심코 “괜찮아”라고 말하는 순간 그 얼굴을 오래 들여다본다. 그리고 언니라고 부른다. 그 한마디가 떨어지자 구급차의 실내등이 꺼지고, 회전목마 스피커가 다시 켜지며 정확히 7분이 시작된다. 엔진을 걸려던 견인차는 시동이 죽고, 정문 전자 잠금도 먹통이 된다. 철문 밖에서는 우비를 뒤집어쓴 서문자가 쇠망치로 유리를 두드리기 시작한다. 그녀는 살려 주겠다고 외치면서도, 동시에 들것을 먼저 부숴야 끝난다고 악을 쓴다. 해윤이 구급차에서 소녀를 끌어내리려 하자 들것 바퀴가 문턱에 걸리고, 철문 틈으로 들어온 망치 머리가 바퀴 축을 찍어 박아 버린다. 첫 7분 동안 해윤은 소녀 하나를 구급차 밖으로 꺼내는 데 성공하지만, 대신 자기 손바닥을 문짝에 찧어 손톱 하나가 들린다.
소녀 서해윤은 비를 맞자마자 손목의 설탕 자국부터 문지르며 숨을 짧게 몰아쉰다. 도망치자는 현재의 서해윤에게 바로 따라오지 않고, 회전목마 뒤편 서비스 통로 쪽을 계속 본다. 그곳에 “언니가 기다리기로 했다”고 믿기 때문이다. 현재의 서해윤은 그 말에 얼어붙는다. 2009년 그날, 자신은 실제로 누군가를 기다리게 해 두고 돌아오지 못했다는 기억 조각이 올라오기 때문이다. 그녀는 소녀를 억지로 끌고 정문으로 가려 하지만, 정문은 아까보다 멀어진 듯 보이고 길바닥 화살표는 물에 번져 범퍼카장 쪽만 가리킨다. 철문 밖 서문자는 우비를 틈으로 밀어 넣어 소녀의 어깨를 덮어 주다가, 다음 순간 망치로 철문 자물쇠를 내리쳐 안으로 들어오려 한다. 그녀의 모순된 손길은 해윤을 더 혼란스럽게 만들지만, 서문자의 입에서 처음으로 강노을의 이름이 튀어나오는 순간 소녀가 움찔한다. 소녀는 방송실 열쇠를 강노을이 동물 모양 휴지통 배 밑에 숨겨 두는 걸 훔쳐봤다고, 그러나 그 말을 하면 “언니가 더 안쪽으로 간다”고 중얼거린다.
배소정은 계속 통화로 길을 지시하지만, 실제로는 경찰 신고를 미루고 녹음 보존 체크를 해제한 채 시간을 번다. 그 비겁함은 곧바로 대가를 부른다. 해윤이 범퍼카장 입구로 들어설 때 소정은 17년 전 민원철에서 본 번호와 호출 번호가 같다는 걸 깨닫고, 강노을이 2009년 사고 직전 정전을 일부러 늦게 끊었다는 소문을 내뱉는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범퍼카장 천장 스피커에서 남자 목소리가 살아난다. 강노을의 낡은 안내방송이다. 그는 젖은 손으로 스위치를 만지지 말라고 또박또박 반복한 뒤, 방송실로 오면 철문을 열 수 있다고 유도한다. 현재의 서해윤은 그 목소리를 듣자 오래된 체육복 냄새와 젖은 전선 냄새를 함께 떠올린다. 그날 밤, 울던 자신에게 다정한 목소리로 “여기서 잠깐만 기다리면 언니가 온다”고 말한 어른이 바로 강노을이었다는 기억이 비로소 몸으로 돌아온다. 그는 소녀를 달래려 했지만, 그 거짓말로 아이를 사고 자리 근처에 붙들어 둔 것이다.
해윤은 소녀를 데리고 동물 휴지통까지 가서 진흙과 낙엽 속을 손으로 헤집는다. 손등이 깨진 유리 조각에 베이지만, 끝내 녹슨 열쇠 꾸러미를 찾아낸다. 그 순간 서문자가 철문을 넘어 안으로 들어온다. 늙은 몸이라도 우비 속 어깨로 문을 밀고, 망치 자루를 지팡이처럼 짚으며 물을 가른다. 그녀는 소녀를 자기 쪽으로 당기려 하고, 현재의 서해윤은 서문자를 밀쳐 넘어뜨린다. 세 사람은 범퍼카장 얕은 물 위에서 미끄러지며 엉킨다. 소녀는 그 틈에서 “방송실 말고 먼저 배전반”이라고 말할 기회가 있었지만, 입을 다문다. 그 침묵 때문에 해윤은 잘못된 문으로 먼저 달려가고, 방송실 문짝은 비를 먹어 부풀어 열리지 않는다. 7분이 또 돌아오고, 회전목마 동요가 다시 켜지자 물높이가 발목에서 종아리까지 찬다. 해윤은 소녀가 일부러 바로 말하지 않았다는 걸 알아차리지만, 소녀는 울지 않는다. 대신 들것 끈에 쓸린 손으로 해윤 소매를 붙잡고, 이제 말하면 언니가 자기 대신 남을까 봐 무서웠다고 털어놓는다.
서문자는 그 고백을 듣고 처음으로 망치를 내려놓는다. 그리고 2009년 사고의 자기 몫을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드러낸다. 그녀는 범퍼카장 가장자리 배수 덮개를 발로 걷어차 숨겨진 서비스 통로를 연다. 그 통로 끝이 배전반 뒤쪽으로 이어진다는 걸 아는 사람은 관리인이었던 그녀뿐이다. 하지만 그녀는 길을 열어 주는 대신 조건을 건다. 둘 중 하나만 데리고 밖으로 나가라고. 둘을 함께 끌면 길이 틀어져 다 죽는다고. 현재의 서해윤은 거절하고, 소녀 손목에 자기 견인 와이어의 안전끈을 묶어 절대 놓치지 않겠다고 한다. 그 고집 때문에 셋은 함께 서비스 통로로 들어가고, 천장 낮은 콘크리트 복도에서 다시 막힌다. 앞문은 배전반 쪽에서 잠겨 있고, 뒤에서는 물이 차오르며 서문자의 다리가 미끄러진다. 해윤이 그녀를 부축하지 않으면 노파는 그대로 물에 처박힌다. 해윤은 망설이다가 소녀를 벽 손잡이에 잠시 묶고 서문자를 끌어 올린다. 그 선택으로 소녀는 혼자 남겨진 공포에 질려 손목 설탕 자국을 미친 듯 문지르고, 결국 안전끈을 풀려다 손목 피부를 더 벗긴다.
배전반 앞에서 강노을이 처음으로 몸을 가진 채 나타난다. 그는 비에 젖은 2009년 작업복 차림 그대로, 배전반 문짝에 등을 기대고 서 있다. 환영이 아니라, 겹쳐진 시간 속에서 현재 인물들과 같은 공간을 차지하는 존재다. 그는 소녀에게는 부드럽게, 현재의 서해윤에게는 다급하게 말한다. 철문 개방 회로는 배전반 뒤에 있지만, 회전목마 방송 루프를 끊지 않으면 문이 열려도 다시 닫힌다고. 그러니 누군가 젖은 손으로 수동 스위치를 내려야 한다고. 서문자는 강노을을 보자마자 망치를 집어 들어 그의 머리를 치려 달려든다. 아들을 향한 분노와 끝내 스스로 못 끊은 연민이 한 동작으로 튀어나온다. 강노을은 피하지 않고, 대신 망치 자루를 붙잡은 채 현재의 서해윤에게 진실을 토해낸다. 정전의 첫 원인은 회전목마가 아니라 범퍼카장 배선 합선이었고, 그는 축제 중단 책임을 피하려고 방송을 먼저 살린 뒤 메인 차단을 늦췄다. 그 몇 분 사이, 길을 잃은 아이가 더 안쪽으로 남았다. 그 아이가 열여섯의 서해윤이었다. 그 순서를 말하는 순간 배전반 주변 공간이 또렷해지고, 문틈의 물방울 하나하나까지 멈춘 듯 보이지만, 동시에 철문 쪽에서 닫히는 금속음이 울린다. 진실이 길을 보여 주는 대신 모두를 더 깊게 묶은 것이다.
현재의 서해윤은 그제야 자신이 평생 품어 온 기억의 빈칸이 죄책감만이 아니었다는 걸 안다. 누군가 자신을 버린 것이 아니라, 여러 어른이 각자 책임을 미루는 사이 자기가 같은 밤에 남겨졌던 것이다. 그녀의 바깥 목표는 두 해윤 모두를 데리고 나가는 것이지만, 안쪽의 필요는 그 밤의 버려진 아이를 이번에는 끝까지 자기 손으로 놓지 않는 데 있다. 그래서 그녀는 강노을의 유도대로 소녀를 남기고 먼저 문을 열자는 제안을 거부한다. 대신 배전반 문을 발로 차 열고, 안에 쌓인 물을 맨손으로 퍼내며 서문자에게 망치로 상단 고정핀을 부수라고 외친다. 소녀는 울면서도 좁은 틈으로 기어와 해윤의 젖은 소매를 잡고, 강노을은 마지막으로 스위치 순서를 몸으로 막아 준다. 그는 감전될 걸 알면서도 맨손으로 노출선을 치워 해윤의 손이 바로 메인 레버에 닿게 만든다. 손등이 타는 냄새와 함께 그의 왼손 화상 자국이 새것처럼 벌어진다.
클라이맥스는 좁은 배전반실에서 네 사람이 서로의 몸을 밀치고 붙드는 싸움으로 벌어진다. 서문자는 망치로 회전목마 루프 차단기를 내리치려 하고, 강노을은 그 충격이 소녀 쪽으로 튈까 봐 자기 몸으로 가린다. 현재의 서해윤은 물속에 무릎을 꿇은 채 메인 레버를 당기려 하지만 손이 미끄러지고, 소녀 서해윤은 뒤에서 그녀 허리를 붙잡아 버틴다. 그 와중에 또 동요가 켜지려는 소리가 스피커에 오르자, 서문자가 갑자기 방향을 바꿔 아들의 어깨를 밀어낸다. 그리고 자기 몸으로 차단기를 눌러 버린다. 쇠망치 머리와 노파의 팔뚝이 함께 젖은 금속에 닿고, 불꽃이 터지며 회전목마의 불빛이 한 줄씩 꺼진다. 같은 순간 현재의 서해윤이 메인 레버를 끝까지 내리고, 소녀가 배전반 뒤 철문 개방 회로의 수동 손잡이를 잡아당긴다. 손잡이가 내려가며 정문 쪽에서 묵직한 철문 열리는 소리가 난다.
그러나 문이 열렸다고 끝나지 않는다. 이름으로 불린 존재는 혼자 나갈 수 없다는 규칙이 마지막으로 값을 요구한다. 정문까지 이어진 서비스 통로가 반쯤 무너지고, 물살이 뒤에서 밀어닥친다. 강노을은 더는 바깥으로 갈 수 없는 사람처럼 통로 입구에서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는 소녀에게 더 이상 기다리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대신 현재의 서해윤에게 아이를 데리고 먼저 가라고, 이번에는 순서를 바꾸라고 말한다. 서문자는 감전으로 한쪽 팔이 말을 듣지 않지만 끝까지 일어나, 뒤에서 무너지는 선반을 망치로 받쳐 길을 만든다. 현재의 서해윤은 소녀를 들것째 밀어 철문으로 돌진하지 않는다. 대신 소녀를 업고, 비틀거리는 서문자의 허리에 안전끈을 감아 함께 끌고 간다. 세 사람은 하나의 매듭처럼 묶인 채 정문 쪽으로 나아가고, 물이 목까지 차오르기 직전 철문 밖으로 넘어져 나온다.
철문 바깥 아스팔트에 몸이 굴러나오는 순간 비는 갑자기 잦아든다. 회전목마 동요는 더 이상 돌아오지 않는다. 그런데 밖에 나온 것은 셋이 아니라 둘이다. 현재의 서해윤 품에 안긴 소녀는 살아 있고, 서문자는 철문 바로 안쪽에 주저앉은 채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 그녀의 손에는 망치 대신 찢어진 우비 자락이 쥐어져 있다. 강노을의 모습은 마지막 불꽃과 함께 배전반실에 남아 사라진다. 철문은 반쯤 열린 채 멈춘다. 배소정은 한참 뒤에야 현장에 도착하지만, 구급차도 견인차도 설명할 수 없는 상태를 보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그녀는 삭제하려던 통화 파일을 지우지 못한 채, 젖은 담배갑을 구겨 쥐고 경찰 대신 119를 부른다. 처음으로 기록을 없애지 않고 남기는 쪽을 택한 것이다.
해가 뜰 무렵, 소녀 서해윤은 구급차 담요를 뒤집어쓴 채 현재의 서해윤 옆에 앉아 있다. 둘은 같은 얼굴이지만, 더 이상 같은 방식으로 떨지 않는다. 소녀의 손목에 붙어 있던 2009년 입장권은 비에 풀어져 글자가 번졌고, 현재의 서해윤 손바닥에는 배전반 레버 자국이 붉게 남아 있다. 그녀는 소녀에게 집에 가자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네가 기억하는 집까지 같이 걸어가 보자고 한다. 누가 누구의 언니인지, 어느 쪽이 남은 밤인지 아직 완전히 정리되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한쪽을 설명 없이 남겨 두지 않겠다는 약속만은 몸으로 증명된 뒤다. 은하동산 안쪽에서는 더 이상 동요가 들리지 않고, 철문 안에 남은 빗물은 처음으로 단순한 고인 물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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