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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ytalk Original · 15 scenes · 5 chapters

가족분들도 줄 서세요

할머니 생신에도 근무를 빼지 못한 휴게소 서브웨이 알바생 앞에, 할머니가 접이식 왕관을 쓰고 나타나 “오늘은 네가 차린 밥 먹자”며 삼십 센티미터 샌드위치 하나를 주문한다. 빵을 묻자 틀니를 고치는 할아버지가 끼어들고, 치즈를 묻자 늘 가족 식사를 차렸던 큰딸이 난생처음 “나는 두 장”을 외치며, 야채와 소스 차례에는 따로 앉아 있던 사촌들까지 카운터 앞으로 몰려든다. 알바생은 평생 큰 냄비로 온 가족을 먹인 할머니에게 이번만큼은 원하는 맛을 골라 드리려 하지만, 할머니는 여섯 조각 모두 다르게 만들어 달라며 종이 냅킨에 가족들의 자리를 그린다.

오븐이 울릴 때마다 친척들이 생일 축가를 한 소절씩 잘못 시작하는 가운데, 알바생은 할머니 몫에만 피클을 두 배로 얹고 왕관 옆에 놓을 작은 초를 종이컵에 꽂는다. 그때 관광버스에서 내린 또 다른 대가족이 문을 열고 들어오고, 맨 앞의 아이가 왕관을 가리키며 “저희 할아버지도 오늘 생일인데 저 주문 아직 돼요?” 하고 묻는다.

  • 7 characters
  • 7 locations
  • 15 scenes
  • Plot 3,848 ch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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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racters

Characters

박소정

Female

동료의 결원으로 할머니 생신에도 마감까지 일하는 휴게소 서브웨이 알바생

Profile

박소정은 윤금례가 다른 식구 입맛을 대신 말할 때마다 집게를 멈추고 “할머니는요?”를 물어, 처음으로 할머니 취향만 담은 한 끼를 내놓으려 한다. 윤금례가 삼십 센티미터 샌드위치를 여섯 조각으로 나눠 전부 다르게 해 달라고 하자, 박소정은 뒤에 붙는 주문을 살피면서도 주문지 한 장을 더 꺼낸다. 박소정은 가족들 주문 사이에 윤금례의 대답을 따로 적어 두지만, 윤금례가 냅킨에 그린 박소정의 자리 앞에서는 자기 휴게 시간부터 다시 확인해야 한다.

23세 여성인 박소정은 손님이 “아무거나요”라고 하면 가장 잘 나가는 조합을 척척 권하면서도, 윤금례의 “나는 다 좋다”에는 빵 진열대를 처음부터 다시 가리킨다. 박소정은 최준호가 휴대전화 메모를 읽기 시작하면 “총무님, 본인 야채부터요” 하고 순서를 끊고, 가족들이 한꺼번에 대답하면 집게를 마이크처럼 윤금례 앞으로 내민다. 박소정은 여섯 조각의 수정 사항을 모두 받아 적으면서도 윤금례 몫에 얹을 피클에는 집게를 덮어 놓고 “이건 배분 끝났습니다”라고 말한다.

Background

박소정은 윤금례의 국밥집에서 밥을 먹을 때마다 가장 먼저 찬 그릇을 받았고, 윤금례가 마지막에 앉으면 빈 반찬 접시를 주방으로 날랐다. 박소정은 서브웨이에서 일하기 시작한 뒤 윤금례에게 가져간 첫 샌드위치에서 피클을 뺐다가, 윤금례가 냉장고의 오이지를 꺼내 빵 사이에 끼우는 모습을 봤다. 23세가 된 박소정은 이번 생신에는 직접 주문을 받겠다며 근무 교대를 부탁했지만 끝내 대체자를 구하지 못했고, 윤금례에게 보낼 사과 문자를 고치던 중 유리문 너머 접이식 왕관을 발견했다.

Description

박소정은 검은 챙모자 아래 짧은 꽁지머리를 단단히 묶고, 초록색 반소매 작업복 위에 잔주름 잡힌 검정 앞치마를 두른 스물세 살의 알바생이다. 둥근 턱과 짙은 갈색 눈에는 웃음기가 남아 있지만, 여러 사람이 대답할수록 한쪽 눈썹만 올라가고 몸은 정작 대답을 기다리는 사람 쪽으로 기운다. 앞치마 가슴주머니에는 주문지 두 장을 노란 집게 하나로 물려 두었고, 투명 위생장갑을 낀 손으로 피클 앞을 지킨 채 다른 손의 집게를 마이크처럼 내밀어 할머니의 말을 기다린다.

윤금례

Female

오일장 국밥 장사를 접은 뒤에도 가족 모임마다 큰 냄비를 꺼내는 할머니

Profile

윤금례는 박소정이 빠진 생일상 대신 휴게소 테이블에 여섯 자리를 마련하고, 근무 중인 손녀에게도 따뜻한 한 조각을 먹이려 한다. 박소정이 생일 주인의 입맛만 묻는데도 윤금례는 여섯 조각의 구성을 하나씩 지정하다가, “오늘도 나한테 상 차리게 하네”라며 받아 든 펜을 멈춘다. 결국 윤금례는 냅킨에 박소정 자리까지 그려 내밀고, 손녀가 집게를 내려놓을 수 있는 몇 분에 맞춰 생일상을 차려 달라고 주문한다.

77세인 윤금례는 “오늘 밥 차리는 일은 안 한다”고 선언한 뒤에도 박만수 쪽 빵은 부드럽게, 박영숙 쪽 치즈는 두 장으로 해 달라며 유리 너머를 짚는다. “할머니는요?”라는 질문이 거듭되면 윤금례는 피클 통 앞에서 손가락을 멈췄다가 “그건 내 쪽에 더 넣어”라고 말하고 박소정의 집게가 움직이는 것을 지켜본다. 박영숙이 냅킨을 접기 시작하면 윤금례는 그 손에서 한 장을 빼내 좌석표를 그리고, 정작 자기 의자는 통로 끝으로 밀어 두었다가 가족들이 당겨 주면 왕관부터 바로 쓴다.

Background

지난 생일 사진마다 윤금례는 앞치마를 두른 채 식탁 뒤에 서 있었고, 박소정이 따로 덜어 둔 음식은 설거지가 끝난 뒤에야 먹었다. 일흔일곱 번째 생일 아침, 박소정의 “마감까지 못 빠져요”라는 전화를 받은 윤금례는 꺼내 놓았던 큰 냄비를 찬장에 넣고 가족들에게 휴게소에서 만나자고 알렸다. 출발 전 윤금례는 박영숙이 가져온 접이식 왕관을 머리에 얹고, 생일 케이크를 실으려던 자리에 빈 보냉 가방만 놓았다.

Description

윤금례는 짧게 파마한 은백색 머리에 접힌 금이 선명한 금빛 종이 왕관을 얹고, 보풀이 조금 인 자주색 카디건과 잔꽃 무늬 블라우스, 무릎이 느슨해진 짙은 회색 바지를 입은 일흔일곱 살 할머니다. 깊은 눈가 주름 사이로 손녀를 올려다보며 입꼬리를 슬쩍 올리지만, 약간 굽은 등은 벌써 주문대 쪽으로 기울고 굵어진 손마디는 냅킨 위 여섯 자리 가운데 빈 한 곳을 짚는다. 앉으라는 손짓을 받으면 펜을 내려놓는 대신 왕관부터 바로잡는다.

박만수

Male

자전거 수리점을 아들에게 넘기고 집 안의 헐거운 나사까지 찾아다니는 은퇴 수리공

Profile

박만수는 여든에도 아내 윤금례 앞에서는 무엇이든 잘 씹는 남편으로 남으려고, 진열대에서 껍질이 가장 단단해 보이는 빵을 짚는다. 박만수는 박소정에게 들키지 않게 부드러운 빵으로 바꿔 달라고 부탁하려다 주문을 붙잡고, 할머니 취향만 묻던 박소정에게 두 사람의 체면까지 살펴야 할 일을 보탠다. 윤금례가 먼저 자기 빵도 부드럽게 해 달라고 하자, 박만수는 못 들은 척 진열대를 살피며 손가락만 같은 쪽으로 옮긴다.

박만수는 “이 정도야 먹지”라고 말할 때마다 턱을 들지만, 카운터 아래에서는 손수건으로 입을 가리고 틀니를 슬쩍 고친다. 여든 살 박만수는 윤금례가 작은 글씨를 읽으려고 메뉴판에 다가서면 안경부터 내밀면서도, 박소정이 빵을 작게 잘라 드릴지 물으면 “빵이 얼마나 큰데?” 하고 크기 탓으로 돌린다. 박만수는 빵을 바꾼 뒤에도 윤금례 쪽을 보지 않고, 접이식 왕관이 기울었다는 말로 박소정의 시선을 돌린다.

Background

박만수는 윤금례가 오일장 국밥 장사를 하던 시절, 막차 정비를 마치고 남은 깍두기까지 소리 내어 씹으며 빈 그릇을 돌려주곤 했다. 여든이 된 박만수는 최근 가족 식사에서 깍두기를 국물 밑에 남겼다가 윤금례가 숟가락으로 건져 주자, 다음부터는 밥그릇으로 가렸다. 생일 아침 박만수는 윤금례의 접이식 왕관을 가방 맨 위에 얹고 따라나섰지만, 휴게소에 도착해서는 박소정 혼자 카운터에 서 있는 틈부터 살폈다.

Description

박만수는 숱이 성긴 은백색 머리를 옆으로 빗고, 팔꿈치가 반질해진 감색 작업 조끼를 잔체크 셔츠 위에 걸친 여든 살 노인으로, 굽은 등과 달리 턱만은 꼿꼿이 들고 있다. 깊은 팔자주름 사이로 입술을 꾹 다문 채 단단한 빵을 가리키지만, 다른 손은 늘 지니는 파란 테두리 손수건을 입가로 가져갈 준비를 한다. 윤금례가 부드러운 빵을 고르면 고개는 그대로 둔 채 굵은 마디의 검지만 슬그머니 그쪽으로 옮긴다.

박영숙

Female

학교 급식실에서 일하고 가족 생일마다 장보기와 설거지까지 맡아 온 큰딸

Profile

박영숙은 조카 박소정에게 자기 조각의 치즈 두 장을 주문하며, 다른 식구에게 나눠 줄 여분이 아니라는 말까지 붙인다. 윤금례가 자기 치즈를 덜어 주려 하자 박영숙은 손으로 막고 지갑을 열어, 돈을 더 내더라도 어머니 몫을 가져오지 않고 주문을 끝내려 한다. 박영숙의 요구에 박소정은 가족 전체에 묻던 치즈 질문을 멈추고, 냅킨 좌석표의 여섯 자리를 하나씩 짚어 다시 묻는다.

박영숙은 “나는 두 장”이라고 외친 뒤 열린 지갑을 쥔 채 “그런데 내 입맛은 여태 아무도 안 물었네” 하고 웃다가, 추가 금액부터 묻는다. 쉰다섯 살 박영숙은 윤금례가 내미는 치즈 앞에서는 손바닥을 세우지만, 포장지가 펼쳐지자 말하던 중에도 모두의 냅킨을 반듯하게 접어 놓는다. 최준호가 냅킨을 가져가면 박영숙은 접힌 모서리를 고쳐 주려다 손을 거두고, 대신 자기 샌드위치를 먼저 한 입 먹는다.

Background

윤금례가 오일장 국밥 솥을 지키던 시절, 박영숙은 동생들 밥을 먼저 푼 뒤 남은 밥에 국을 부어 먹었고 결혼 뒤에도 가족 모임마다 빈 반찬통을 거두어 갔다. 올해 쉰다섯이 된 박영숙은 최준호가 보낸 가족 주문 메모에서 자기 이름 옆에만 ‘아무거나’가 적힌 것을 보고도, 답장으로 최다인이 오이를 빼는지부터 확인했다. 생신 당일 수선집 문을 일찍 닫은 박영숙은 최준호에게 보온가방을 빼앗기다시피 맡기고 휴게소에 왔지만, 카운터의 치즈 통 앞에서는 아들의 메모를 손가락으로 가리고 직접 주문했다.

Description

박영숙은 관자놀이에 흰머리가 섞인 짧은 파마머리와 눈가의 잔주름이 또렷한 쉰다섯 살 여성으로, 어깨가 단단하고 손마디가 굵다. 잦은 세탁으로 골이 부드러워진 자주색 조끼를 잔체크 면셔츠 위에 입고, 바랜 갈색 가죽 지갑을 펼친 채 웃는데, 치켜든 턱과 달리 눈은 상대의 반응을 한 번 더 살핀다. 한 손바닥은 남이 덜어 주는 몫을 막듯 곧게 세우고도, 다른 손의 엄지로는 탁자 위 냅킨 모서리를 정확히 맞추는 버릇이 있다.

최준호

Male

회사 단체 주문까지 도맡다가 가족 모임에서도 계산 담당이 된 물류회사 사무직 사원

Profile

최준호는 어머니 박영숙을 의자에 앉혀 두고, 사촌 박소정에게 휴대전화 메모대로 주문을 받아 달라며 가족의 대답을 도맡는다. 그러나 야채 앞에서 메모와 다른 대답이 쏟아지자, 최준호는 박영숙에게 확인하려던 화면을 거두고 직접 수정 사항을 받아 적느라 자기 차례까지 놓친다. 결국 최준호가 가장 긴 취향을 불러 주는 동안, 박소정은 가족 대표 한 명에게 묻던 주문을 각자에게 돌려주고 박영숙은 자리에서 아들의 주문에만 한마디 보탠다.

스물일곱 살 남성 최준호는 박소정이 야채를 물을 때마다 메모의 완료 표시부터 누르지만, 가족이 말을 바꾸면 표시를 취소하고 화면을 코앞까지 당긴다. 자기 칸에는 ‘아무거나’라고 써 놓은 최준호도 박소정의 집게가 마지막 올리브를 집으면 집게 끝을 따라 고개가 돌아간다. “그건 누구 거야?” 하고 끼어든 최준호는 곧 “내 건 올리브 많이, 양파 조금, 소스는 한쪽에만”을 덧붙이다가, 박영숙이 웃자 휴대전화로 입가를 가린다.

Background

지난 가족 외식에서 최준호는 박영숙이 식구들의 국에서 파를 건져 주는 동안 혼자 식사를 끝냈고, 계산대에 가서야 박영숙의 밥이 절반이나 남은 것을 봤다. 입사 2년 차인 스물일곱 살 남성 최준호는 이번 생신을 앞두고 업무용 주문 양식을 휴대전화 메모에 옮겨 가족에게 취향을 물었지만, 답장이 없는 칸은 지난번 먹던 것으로 채웠다. 휴게소에 도착한 최준호는 동생 최다인에게 “너는 매운 거 못 먹잖아”라고 말하며 순한 소스를 적었고, 최다인은 대답 대신 창가로 짐가방을 옮겼다.

Description

최준호는 짧은 검은 머리의 가르마를 반듯하게 타고, 잔골이 선 연회색 셔츠를 남색 면바지에 넣어 입은 스물일곱 살 회사원으로, 휴대전화를 받쳐 든 어깨만 앞으로 조금 굽어 있다. 가족의 대답이 바뀔 때마다 곧은 눈썹을 좁히고 엄지로 완료 표시를 되짚지만, 마지막 올리브를 든 집게가 움직이면 짙은 갈색 눈과 고개가 화면을 버리고 나란히 돌아간다. 자기 주문이 길어져 어머니가 웃으면, 모서리가 닳은 짙은 녹색 휴대전화 케이스로 올라가는 입꼬리를 가린다.

최다인

Female

타지 기숙사 입소를 앞두고 가족 외식에도 짐가방을 들고 나온 대학 신입생

Profile

최다인은 오빠 최준호의 주문 메모에서 ‘동생 것도 같은 걸로’라는 줄을 지우게 하려고, 창가에 떨어져 앉았다가 소스를 묻는 순간 가장 먼저 카운터에 선다. 최다인은 매운 소스를 가리킨 손을 거두지 못한 채 박소정에게만 따로 담아 달라고 부탁하고, 박소정은 주문을 큰 소리로 되풀이하려다 작은 소스컵을 꺼낸다. 돌아갈 때 최다인은 윤금례의 냅킨 좌석표를 들여다보고 자기 의자를 가족 쪽으로 끌어 오되, 최준호가 내민 메모 대신 자기 소스컵을 식탁에 놓는다.

최다인은 최준호가 “너 그거 못 먹잖아”라고 하면 소스통의 고추 그림을 하나씩 짚으며 가장 매운 것을 고르지만, 박소정에게 건네는 “따로 주세요”는 오븐 소리에 묻힐 만큼 작다. 최다인은 가족이 부르면 휴대전화 화면에서 눈만 들다가도, 떨어진 의자 때문에 통로를 지나는 사람이 몸을 비틀면 곧바로 일어나 의자 다리를 두 손으로 잡는다.

Background

열아홉 살 최다인은 대학 합격 화면을 가족 단체 대화방에 올린 날에도 최준호에게서 ‘기숙사 준비물은 오빠가 정리해 줄게’라는 답장을 받고, 이미 작성한 목록 사진을 뒤이어 보냈다. 생신 모임에 오기 전 최다인은 박영숙이 챙겨 준 어린이용 포크를 식기 서랍에 돌려놓았지만, 휴게소에 도착해서는 윤금례가 건넨 접이식 왕관을 반듯하게 펴 드린 뒤 혼자 창가 자리를 골랐다.

Description

최다인은 턱 아래에서 똑 끊긴 검은 단발에 둥근 볼이 남은 열아홉 살로, 연회색 면 후드 위에 짙은 청록색 캔버스 재킷을 걸치고 넉넉한 생지 청바지와 흰 운동화를 신는다. 기숙사에 가져갈 남색 짐가방에는 직접 자른 주황색 천 조각이 손잡이에 묶여 있고, 가족 쪽을 볼 때는 턱을 조금 치켜들지만 부탁할 때는 입술 끝만 작게 움직인다. 소스컵은 자기 자리 앞에 단단히 내려놓으면서도, 통로에 걸린 의자는 소매를 걷고 두 손으로 들어 가족 식탁 쪽으로 붙인다.

정우빈

Male

할아버지 생일 관광에 따라와 버스 좌석표와 휴게소 간식을 챙기는 초등학생

Profile

정우빈은 관광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윤금례의 왕관을 발견하고, 자기 할아버지에게도 사진 찍을 때만 웃고 끝나지 않는 생일을 마련하려고 가족을 매장 안으로 이끈다. 정우빈은 평소 주문을 대신하던 엄마를 뒤에 세워 놓고 박소정에게 “저희 할아버지도 오늘 생일인데 저 주문 아직 돼요?”라고 묻지만, 왕관까지 달라는 말은 못 하고 손가락만 뻗는다. 정우빈이 할아버지를 카운터 앞으로 모셔 오면서, 가족 식탁에 합류하려던 박소정은 새 주문지를 펴고 이번에는 생일 당사자에게 먼저 빵을 묻는다.

정우빈은 낯선 직원이 말을 걸면 엄마 소매 뒤로 입을 숨기지만, 여덟 살인 자기보다 훨씬 큰 가족들을 줄 세울 때는 바닥 타일을 짚으며 “여기 뒤에”라고 지시한다. 정우빈은 어른들이 할아버지 대신 메뉴를 정하려 들면 “아직 대답 안 하셨는데”라고 끼어들고도, 박소정이 왕관을 가리킨 손끝을 보면 황급히 손을 내린다.

Background

정우빈은 지난 생일 사진을 함께 넘기다가 할아버지가 사진마다 같은 웃음을 짓는 것을 보고, 휴대전화를 내린 뒤의 얼굴까지 찍었다가 “준비 안 됐잖아”라는 말을 들었다. 정우빈은 이번 관광버스에서도 어른들이 식사 장소를 정하는 동안 할아버지가 “다들 먹는 걸로”라고 대답하자, 옆자리에서 “할아버지는 뭘 먹는데?” 라고 두 번 물었다. 정우빈은 휴게소에 도착해 종이 왕관 아래서 입을 벌리고 웃는 윤금례를 보자, 버스 계단에서부터 잡고 있던 엄마 손을 놓았다.

Description

정우빈은 둥근 볼에 눈썹 바로 위로 짧게 자른 검은 앞머리를 한 여덟 살 아이로, 연두색 면 맨투맨에 남색 조거 바지를 입고 작은 운동화 두 짝을 나란히 붙여 선다. 가슴에 멘 파란 지퍼 가방의 투명 주머니에는 여러 번 접어 모서리가 하얗게 일어난 관광버스 좌석표가 꽂혀 있다. 어른들을 뒤에 세워 놓을 때는 턱을 들지만, 직원과 눈이 마주치면 입술을 꾹 다물고 한 손으로 가방 끈을 움켜쥔 채 다른 손 검지만 왕관 쪽으로 조심스럽게 뻗는다.


Synopsis

Plot

박소정은 가을 주말의 솔내휴게소 서브웨이에서 빵 진열대를 채우다가 휴대전화에 뜬 가족사진을 뒤집어 놓는다. 할머니 생신상에 자기 자리만 비어 있다. 결근한 동료 대신 마감까지 맡았고, 교대 직원이 오기 전에는 미뤄 둔 휴게 시간도 쓸 수 없다. 소정이 답장 대신 식탁 사진을 확대해 보려는 순간 자동문이 열린다. 윤금례가 접이식 금색 왕관을 쓰고 들어와 유리 카운터를 두드린다. “오늘은 네가 차린 밥 먹자.” 뒤따라온 박영숙은 집에서 가져온 생일초를 내려놓고, 최준호와 최다인은 창가 탁자 세 개를 붙인다.

소정은 오늘만큼은 평생 남의 밥을 차린 할머니에게 원하는 음식만 만들어 주려 한다. 그러나 삼십 센티미터 샌드위치의 빵을 묻자 박만수가 가장 단단해 보이는 것을 짚고, 곧 손수건으로 입을 가린 채 틀니를 고친다. 금례가 “내 것도 부드러운 걸로 해”라고 하자 만수의 손가락이 슬그머니 옆으로 옮겨 간다. 치즈 앞에서는 영숙이 “나는 두 장”을 외친다. 금례가 자기 것을 덜어 주려 하자 영숙은 손바닥으로 막고 지갑을 연다. 소정은 그 손 사이에 집게를 세워 누구 치즈도 빼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여섯 조각을 전부 다르게 만들어 달라는 금례의 주문에 소정은 굽기 전 구성을 확정하려고 주문지를 한 장 더 꺼낸다. 준호가 휴대전화 메모를 읽지만, 다인은 ‘동생 것도 같은 걸로’라는 줄을 지우게 하고 매운 소스를 따로 달라고 한다. 정작 준호는 자기 칸의 ‘아무거나’를 읽다가 올리브 통을 따라 고개를 돌린다. 소정이 집게를 멈추자 그는 올리브 많이, 양파 조금, 소스는 한쪽에만 넣어 달라고 길게 덧붙인다. 가족이 웃는 사이 금례는 냅킨에 여섯 자리를 그린다. 마지막 빈 원은 소정의 자리다.

소정은 할머니에게 고르는 일까지 맡긴 셈이 되어 펜을 도로 받는다. “할머니는요?” 세 번째 질문 끝에 금례가 피클 통을 짚는다. “그건 내 쪽에 더 넣어.” 소정은 그 대답에 굵게 밑줄을 긋고 자기 조각도 직접 고른다. 구워 나온 빵에 재료를 올리는 동안 오븐이 울릴 때마다 가족이 축가를 다른 소절에서 시작한다. 소정은 금례 몫에만 피클을 두 배로 얹고, 불을 붙일 수 없는 작은 초를 종이컵에 세운다. 그때 관광버스에서 내린 정우빈이 문을 열고 들어와 왕관을 가리킨다. “저희 할아버지도 오늘 생일인데 저 주문 아직 돼요?”

소정은 완성된 여섯 조각을 내놓다가 손을 멈춘다. 우빈의 뒤로 어른들이 들어오고, 가족 식탁에는 자기 몫의 따뜻한 빵이 놓인다. 우빈은 가방의 투명 주머니에서 버스 좌석표를 꺼내더니 금례의 냅킨과 번갈아 본다. 생일 주문에는 자리 그림이 필요한 줄 아는 것이다. 준호가 웃으며 종이를 건네려다 소정을 돌아본다. 소정은 새 주문지를 펴고 우빈이 모셔 온 할아버지에게 먼저 빵을 묻는다.

대답은 뒤에 선 어른들에게서 쏟아진다. 부드러운 것, 평소 먹던 것, 빨리 되는 것으로 하자는 말이 겹치자 우빈이 두 팔을 벌려 가족을 유리에서 한 걸음 물린다. “아직 대답 안 하셨는데.” 할아버지가 메뉴판에 가까이 다가오자 만수도 옆으로 와서 손수건을 주머니에 넣는다. 그는 빵 크기를 두 손으로 가늠해 보인 뒤 “나는 이걸로 바꿨어요”라며 부드러운 빵을 짚는다. 두 노인이 천천히 고르는 동안 줄은 계산대 옆 통로까지 늘어난다. 소정은 창가에서 자기 빵을 덮고 있는 영숙의 손을 보고 주문 속도를 높인다.

우빈의 가족까지 조각마다 다르게 해 달라고 하면서, 소정의 노란 집게 아래 주문지가 겹친다. 준호가 가족들에게 냅킨 좌석표를 보여 주려다가 자기 샌드위치를 금례 앞에 놓고, 금례는 그것을 집어 들자마자 피클이 적다고 돌려준다. 뒤에서는 다인이 끌어 놓은 의자를 피해 손님이 몸을 비튼다. 다인은 벌떡 일어나 의자를 들고, 손잡이의 주황색 천이 걸린 짐가방까지 무릎 위로 끌어올린다. 소정은 두 가족의 주문을 동시에 기억하려다 새 손님의 치즈를 다시 묻게 된다. 창가 빵에서는 더 이상 김이 나지 않는다.

영숙이 포장지를 걷어 한꺼번에 가져와 데워 달라고 하자 소정은 오븐 손잡이를 잡는다. 금례는 벌써 샌드위치를 다시 싸고 있다. 소정이 “할머니 건 제가 따뜻하게 드리려고 했는데”라고 말하자 금례가 포장지를 멈춘다. “그럼 네 거는 누가 따뜻할 때 먹여?” 금례는 자기 빵 대신 소정 몫을 들어 보인다. 치즈가 포장지에 붙어 한쪽으로 늘어난다. 소정은 오븐 손잡이를 놓고, 빵만 자꾸 다시 데워서는 자기가 식탁에 갈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 금례에게 앉아 계시라고 한 뒤, 조금 전 도착해 안쪽에서 재료 상자를 정리하던 교대 직원에게 지금 주문을 마치면 휴게 시간을 쓰겠다고 직접 말한다.

그러나 우빈의 가족은 버스 출발 시각이 가까워졌다며 다시 메뉴를 바꾼다. 한 사람은 아이 것에서 야채를 빼 달라고 하고, 다른 사람은 생일 주인부터 포장해 달라며 앞으로 나온다. 소정이 작업을 멈추자 우빈의 할아버지가 자기 가족 쪽으로 몸을 돌린다. 그는 먼저 정한 빵을 가리키고 그대로 먹겠다고 말한다. 우빈은 바닥 타일 줄을 따라 어른들을 다시 세운다. 소정은 우빈과 눈을 맞추고, 한 사람의 대답이 끝난 다음 다음 사람에게 묻는다. 교대 직원도 옆에 서서 완성된 주문부터 계산한다.

창가에서는 금례가 자기 의자를 밀어 통로를 내주려 한다. 다인이 의자 등받이를 붙잡고 탁자를 창 쪽으로 당긴다. 준호는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고 반대쪽 탁자를 밀며, 영숙에게 냅킨을 달라고 손을 내민다. 영숙은 접힌 모서리를 고치려다가 그대로 건넨다. 세 사람이 길을 넓히는 사이 만수는 금례의 의자를 식탁 안으로 당겨 준다. 금례는 앉은 채 왕관부터 바로 쓴다. 소정에게 오라고 손짓하려던 영숙은 그 대신 자기 샌드위치를 먼저 한 입 먹는다.

소정은 마지막 소스통을 내려놓고 교대 직원 앞에서 남은 주문을 짚어 준다. 직원이 새 장갑을 끼고 카운터를 맡자 비로소 자기 장갑을 벗는다. 우빈이 왕관을 달라는 말을 못 하고 손가락만 들었다 내리는 것을 본 금례가 소정을 부른다. 소정은 잠깐 망설이다 금례에게 왕관을 벗겨 주지 않고, 우빈에게 작은 초가 선 종이컵을 건넨다. “이건 불 안 켜는 생일초야.” 우빈은 두 손으로 받아 자기 할아버지 앞에 놓는다. 금례는 왕관을 쓴 채 옆 식탁의 생일 주인에게 고개를 숙인다.

소정이 카운터 밖으로 나오자 우빈의 가족 한 사람이 추가 주문을 하려고 그녀를 부른다. 소정은 몸을 돌리다가 멈추고 카운터의 직원을 손바닥으로 가리킨다. “저는 지금 밥 먹으러 가요.” 다인은 소정이 앉을 의자를 빼고, 준호는 그녀의 앞치마 끈이 의자에 끼지 않도록 뒤로 넘겨 준다. 오븐이 울린다. 두 가족이 동시에 노래를 시작하지만, 이번에는 우빈 쪽이 반 박자 빠르다. 소정은 노래를 바로잡지 않고 식은 빵을 크게 베어 문다. 금례가 손녀의 입가에 붙은 소스를 가리키다가 냅킨만 밀어 준다.

우빈의 가족은 먼저 식사를 마치고 버스로 돌아간다. 우빈은 종이컵을 돌려주려다 할아버지가 들고 가겠다고 하자 가방 앞주머니를 비운다. 금례는 접이식 왕관을 잠깐 벗어 두 사람 사이로 내민다. 사진 한 장을 찍고 돌려받은 왕관에는 접힌 선이 하나 더 생긴다. 영숙은 빈 포장지를 모으려다 준호가 내민 손에 넘기고, 다인은 가방을 발밑에 둔 채 따로 받은 매운 소스를 아주 조금 찍어 먹는다. 기침이 나자 만수가 물컵을 밀어 준다. 누구도 못 먹을 줄 알았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휴게 시간이 끝나자 소정은 자기 자리의 냅킨을 접어 앞치마 주머니에 넣는다. 금례는 다음에는 자기도 빵 이름을 외워 오겠다며 진열대를 다시 본다. 소정은 이름을 몰라도 가리키면 된다고 말하고 새 장갑을 낀다. 가족이 식탁을 정리하는 동안 자동문이 또 열린다. 작은 여행 가방을 끈 손님이 메뉴판 앞에서 한참 서 있다가 “둘이 나눠 먹을 건데 입맛이 달라도 돼요?”라고 묻는다. 소정은 집게를 들고 먼저 묻는다. “빵은 같이 고르실 수 있으세요?” 창가에서 금례가 웃고, 두 손님이 서로를 돌아본다.


World

The world

representative image

setting

가상의 솔내휴게소 하행선 푸드동에 입점한 서브웨이 매장. 자동문에서 들어오면 빵 진열대, 재료가 담긴 유리 카운터, 계산대가 일렬로 이어지고, 계산대 옆으로 두 사람이 겨우 비켜 설 폭의 통로가 난다. 주문을 시작한 사람은 빵부터 소스까지 고르는 동안 가족과 같은 방향으로 조금씩 이동해야 한다. 앉아서 대신 외치던 사람도 자기 취향이 잘못 전달되면 결국 유리 앞으로 나온다.

창가에는 붙여 쓸 수 있는 이인용 탁자 세 개가 있다. 여섯 명이 앉을 수 있지만, 의자를 바깥으로 빼면 손님 통로를 침범한다. 금례가 손녀 자리까지 그린 냅킨을 펼치면 누군가는 일어나 탁자를 당기고, 누군가는 자기 가방을 무릎에 올려야 한다. 다인의 기숙사 짐가방은 창 아래에 들어가지만 주황색 천을 묶은 손잡이가 자꾸 의자 다리에 걸린다.

소정의 근무 자리는 가족 식탁에서 불과 몇 걸음 떨어져 있다. 서로 말은 들리는데, 소정이 그 거리를 건너려면 장갑을 벗고 카운터를 맡아 줄 사람부터 구해야 한다.

time period

스마트폰 메모와 무인 주문기가 익숙한 2020년대 중반, 가을 주말의 늦은 오후. 이 매장은 재료 변경이 많은 주문을 대면으로 받고 있어, 화면 없이 자기 입맛을 말해야 하는 시간이 남아 있다.

해가 낮아지며 관광버스 유리창에 주황빛이 번지는 때다. 저녁 식사 손님이 몰리기 전 잠깐 주문 줄이 끊겼고, 소정은 결원 때문에 미뤄 둔 휴게 시간을 아직 쓰지 못했다. 가족에게는 생일상을 펼칠 틈이지만, 주차장에 버스 한 대가 들어오는 순간 그 틈이 얼마나 짧은지 보인다.

rules

- 이 매장에서는 빵·치즈·야채·소스를 카운터 순서대로 확정한다. 가족이 앞선 선택을 바꾸면 소정은 작업을 멈춰 확인해야 하므로, 대신 대답하는 사람 하나가 여섯 사람의 주문을 붙잡을 수 있다.

- 삼십 센티미터 샌드위치를 여섯 조각으로 나누는 특별 요청은 굽기 전에 구성을 정해야 한다. 빵은 하나를 함께 골라야 하고 조각마다 넣을 재료는 따로 확인해야 하므로, 냅킨 좌석표가 없으면 누구 몫인지 뒤섞인다.

- 소정은 다른 직원에게 카운터를 인계한 뒤에만 식탁에 앉을 수 있다. 가족이 자리를 비워 두어도 주문이 이어지는 동안에는 함께 먹을 수 없어, 생일 준비에는 음식뿐 아니라 손녀의 몇 분도 필요하다.

- 식사 공간에서는 생일초에 불을 붙일 수 없다. 소정이 작은 초를 종이컵에 세워 건네면, 가족은 불꽃 대신 오븐 알림음을 축가의 시작 신호로 삼는다.

technologies philosophies

준호의 휴대전화 메모에는 가족 취향이 정리되어 있다. 주문을 빨리 끝내려 만든 기록이지만, 영숙의 치즈 두 장과 다인의 별도 소스컵은 저장된 내용에 없다. 준호는 완료 표시를 누를 때마다 취소해야 하고, 끝내 자기 칸에 적힌 ‘아무거나’를 지운다.

소정은 주문지에 조각별 재료를 적고 노란 집게로 고정한다. 금례는 냅킨에 사람의 자리를 그린다. 두 종이를 나란히 놓아야 음식과 사람이 맞는다. 가족 대표 한 명에게 묻던 주문은 점차 여섯 사람에게 돌아가고, 소정도 자기 조각에 무엇을 넣을지 대답해야 한다.

이 가족에게 음식을 챙기는 일은 먼저 움직이는 사람의 몫이었다. 그래서 영숙은 앉아서도 냅킨 모서리를 맞추고, 금례는 자기 의자를 통로 끝으로 민다. 이곳에서는 카운터가 그 손들을 잠깐 멈추게 한다. 소정이 “할머니는요?”라고 묻고 집게를 들고 기다리는 동안, 다른 사람의 입맛을 말해 주는 것만으로는 주문을 끝낼 수 없다.

visual description

초록색 메뉴판 아래로 따뜻한 흰빛이 내려앉는다. 유리 카운터에는 손님들의 손끝이 겹쳐 비치고, 스테인리스 재료통 속 피클은 젖은 가장자리만 반짝인다. 오븐 문이 열릴 때마다 구운 빵 냄새와 짧은 열기가 통로로 밀려온다. 냉장고의 낮은 진동 위로 집게 부딪히는 소리, 포장지 접히는 소리, 잘못 시작한 생일 노래가 번갈아 올라온다.

금례의 금색 종이 왕관은 천장 조명 아래에서는 번쩍이지만 창가에서는 접힌 흰 선이 드러난다. 그 아래 탁자에는 반듯한 접시 대신 포장지 여섯 장이 놓인다. 냅킨에 그린 자리마다 치즈 두 장, 양파 조금, 별도 소스컵 같은 표시가 붙고, 소정의 자리는 아직 음식 없이 비어 있다.

넓은 외경 대신 유리 너머 손과 얼굴을 가까이 잡는다. 만수의 손가락이 단단한 빵에서 부드러운 빵으로 옮겨 가고, 영숙의 손바닥이 어머니가 양보하려는 치즈를 막는다. 창밖에서는 관광버스 문이 조용히 접혀 열린다.

Theme music for the world
Lyria
Track 01 (World theme)

Keytalk Prompts Used

시각 & 음향
keytalk iconkeytalk icon2색감이 따뜻한

Locations

Where it happens

location 1 image

빵 냄새 도는 주문대

크림색 주문대 위로 초록색 메뉴판이 길게 걸려 있고, 따뜻한 천장 조명이 매끈한 유리와 빵 진열대의 둥근 빵껍질을 고르게 밝힌다. 유리 아래쪽에는 집게 끝이 거듭 닿아 생긴 짧은 흠집들이 한 줄로 나 있으며, 그 위로 서로 다른 재료를 가리키는 손끝들이 겹쳐 비친다. 오븐이 열리면 달큰한 빵 냄새와 열기가 강철 작업대 너머로 퍼지고, 재료통 가장자리를 치는 집게 소리 사이로 치즈 두 장을 청하는 목소리와 야채를 빼 달라는 말이 포개진다. 계산대까지 곧게 이어지는 좁은 주문대 안쪽에는 조각별 재료를 적은 주문지가 노란 집게에 고정되어 있다.

location 2 image

왕관 놓인 창가 식탁

붙여 놓은 이인용 탁자 세 개 위로 가을 햇살이 비스듬히 내려앉아, 구김 진 금색 종이 왕관과 여섯 장의 포장지를 꿀빛으로 물들인다. 탁자 이음새에 걸친 왕관의 뾰족한 그림자가 접힌 냅킨까지 뻗고, 냅킨에 그린 여섯 자리 가운데 음식이 놓이지 않은 한 자리 앞에는 의자가 바짝 들어가 있다. 좁은 의자 사이로 주황색 천을 묶은 짐가방 손잡이가 삐져나오고, 포장지 바스락거림 위로 제각각 먼저 시작한 생일 축가가 겹쳤다가 웃음에 끊긴다.

location 3 image

금례네 큰 냄비 부엌

낮은 천장에 매달린 살구색 전등갓 아래, 적갈색 나무 조리대 한가운데 큰 냄비가 놓여 있고 그 둘레만 여러 손이 짚어 반들반들하다. 냄비 뚜껑을 들어 올릴 때마다 테두리가 짧게 달각거리며, 벽에 기대 둔 뚜껑 뒤로 크기가 제각각인 국그릇들이 포개져 드러난다. 여럿이 둘러서면 꽉 차는 조리대 안쪽에는 마른 면 행주 한 장이 네모나게 접혀 있고, 그 앞 바닥에만 발 두 개 너비로 적갈색 칠이 벗겨져 있다.

location 4 image

금례의 옛 장터 국밥 좌판

금례가 국밥을 팔던 좌판의 볕에 바랜 주홍색 천막은 김을 머금어 가장자리가 무겁게 처지고, 낮빛이 비치는 끝단에는 집게로 물려 말리는 벽돌색 앞치마가 걸려 있다. 하늘 아래로 트인 좌판 앞, 거친 보도를 구르는 장바구니 수레의 덜컹거림 사이로 국밥 두 그릇을 찾는 목소리와 한 그릇을 더 보태는 목소리가 잇따른다. 큰 솥 옆에는 국그릇들이 줄지어 놓였지만 천막 기둥 안쪽의 낮은 나무 걸상 앞에는 밥 한 술 뜨다 만 작은 그릇 하나가 놓여 있다.

location 5 image

만수가 물려준 자전거 수리점

문턱에서 안쪽 깊은 작업대까지 길게 드는 볕이 황토색 바닥과 구릿빛 공구를 밝히고, 높이 걸린 선반 아래로 기름 먹은 고무 타이어들이 크기순으로 매달려 있다. 작업대에는 손잡이가 닳아 납작해진 렌치마다 윤곽을 그려 둔 자국이 있고, 유독 작은 렌치 하나만 제 윤곽 옆에 새로 박은 못에 걸려 있다. 받침대에 올린 자전거 바퀴에서는 바퀴살 튕기는 맑은 소리가 번지고, 그 사이로 공기펌프가 길게 공기를 밀어 넣는 숨소리가 이어진다.

Location 6

Where is this location in the real world?

영국 파인우드 스튜디오 실내 스테이지

•Address

Pinewood Studios, Pinewood Road, Iver Heath, Buckinghamshire SL0 0NH, United Kingdom

•Reason for recommendation

대관 가능한 실내 스테이지에 오래된 자전거 수리점을 조성하면, 출입문에서 깊숙한 작업대까지 이어지는 볕과 공구의 세밀한 배치를 통제할 수 있습니다. 바퀴살의 울림과 펌프 소리를 분리 녹음하기에도 적합합니다.

•Preparation for shooting

Location 7

Where is this location in the real world?

부산영화촬영스튜디오 실내 세트

•Address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해운대해변로 52

•Reason for recommendation

샌드위치 매장의 좁고 긴 주문 동선을 세트로 구현하고, 조명과 소음을 통제하며 촬영하기 적합한 영화 촬영 시설이다. 유리 반사와 집게 소리, 오븐의 열기처럼 장면을 구성하는 세부 요소를 반복 촬영하기에 유리하다.

•Preparation for shooting


Scenes

Scene by scene

Chapter 01

Scene 01· 가을 주말 늦은 오후, 미뤄 둔 휴게 시간을 다시 확인할 무렵

뒤집은 사진 앞의 왕관

뒤집은 사진 앞의 왕관
Place솔내휴게소 서브웨이 주문대와 창가 탁자
Time가을 주말 늦은 오후, 미뤄 둔 휴게 시간을 다시 확인할 무렵
Action박소정이 근무표와 휴대전화 시각을 대조하다 생신상 사진이 뜬 휴대전화를 뒤집는다. 윤금례가 금색 접이식 왕관을 쓰고 들어와 유리 주문대를 두드리고, 박영숙은 생일초를 내려놓은 뒤 박만수와 창가 탁자를 붙인다. 윤금례가 손녀에게 밥을 주문하자 박소정은 주문지를 꺼내 할머니에게 직접 원하는 맛을 묻는다.
Impact집에 남겨 둔 생신상이 박소정의 일터로 옮겨 온다. 그러나 박소정은 주문대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가족은 유리 너머에서 생일 식사를 시작해야 한다. 박소정은 주문지 맨 위에 윤금례의 이름부터 적어, 다른 식구보다 먼저 할머니의 대답을 받을 자리를 만든다.

박소정은 근무표의 빈 교대 칸과 휴대전화 시각을 번갈아 짚다가, 생신상 사진이 떠 있는 휴대전화를 크림색 작업대에 뒤집어 놓는다. 사진 속 비어 있는 의자가 검은 화면 아래로 사라지고, 자동문으로 들어온 윤금례의 금색 접이식 왕관이 초록색 메뉴판 아래에서 번쩍인다. 윤금례가 유리를 두 번 두드리자 박소정은 들고 있던 빵 쟁반을 내려놓고 입을 벌린다.

박영숙은 포장도 뜯지 않은 생일초를 계산대 옆에 놓고, 박소정이 옆문 쪽으로 발을 떼자 손바닥을 펴 보인다. “나오지 마, 우리 여기서 먹으면 돼.” 박영숙이 창가 탁자 한쪽을 당기자 박만수가 맞은편을 밀지만, 어긋난 탁자 다리끼리 걸려 두 사람이 동시에 손을 멈춘다. 윤금례는 그쪽으로 몸을 돌렸다가 유리 앞에 다시 붙어 서서 왕관의 접힌 꼭짓점을 세운다.

“오늘은 네가 차린 밥 먹자.” 박소정은 계산대 옆 생일초를 집으려던 손을 거두고 새 주문지를 꺼내 맨 위에 ‘윤금례’라고 쓴다. 뒤에서 박영숙과 박만수가 탁자 모서리를 맞추는 동안, 박소정은 빵 진열대 쪽으로 손을 펴 보이며 “할머니, 어떤 맛으로 드실래요?” 하고 묻는다.

Scene 02· 가을 주말 늦은 오후, 생일 주문을 시작한 직후

빵보다 단단한 고집

빵보다 단단한 고집
Place솔내휴게소 서브웨이 빵 진열대 앞
Time가을 주말 늦은 오후, 생일 주문을 시작한 직후
Action박만수는 삼십 센티미터 빵 하나를 함께 골라야 한다는 설명을 듣고 단단한 빵을 가리킨다. 박소정은 빵을 꺼내려다 박만수가 손수건으로 입을 가리고 틀니를 고치는 모습을 보고 집게를 멈춘다. 윤금례가 먼저 부드러운 빵을 청하자 박만수는 손가락을 그쪽으로 옮기고, 박소정은 바뀐 선택만 소리 내어 확인한다.
Impact함께 먹을 빵은 부드러운 것으로 정해지지만, 주문지에 적힌 윤금례의 이름 아래에는 아직 할머니 자신의 취향인지 확인되지 않은 선택이 놓인다. 박소정은 박만수의 체면을 건드리지 않고 주문을 이어 간다.

박만수는 창가 탁자에서 돌아와, 삼십 센티미터는 빵 하나를 함께 골라야 한다는 박소정의 설명이 끝나기도 전에 갈색 껍질이 갈라진 빵을 짚는다. “이 정도야 먹지.” 박영숙은 뒤에서 밀려 나온 의자를 탁자 밑으로 넣으며 “아버지, 아직 아무도 뭐라고 안 했어” 하고 웃고, 박소정은 입꼬리를 올린 채 진열대 문을 연다.

박소정이 빵 양옆으로 집게를 벌리는 사이, 박만수는 파란 테 손수건을 입 앞에 펴고 턱을 비틀며 틀니를 고친다. 박소정의 집게가 빵에 닿기 직전 멈추자 윤금례가 유리 위로 손을 뻗어 옆의 매끈한 빵을 가리킨다. “내 것도 부드러운 걸로 해, 괜히 입 크게 벌리다 왕관 떨어지겠다.” 박만수는 윤금례의 기울어진 왕관 끝을 바로 세워 주고는, 유리 위에 남겨 둔 손가락을 부드러운 빵 앞으로 옮긴다.

박소정은 손수건 쪽으로 고개를 들지 않고 집게를 옆 칸으로 옮겨 “그럼 함께 드실 빵은 이걸로 할까요?” 하고 묻는다. 윤금례가 고개를 끄덕이자 박만수도 같은 빵을 두 번 짚고, 박소정은 꿀빛 조명 아래로 부드러운 빵을 꺼내 흰 작업지 위에 길게 놓는다.

Scene 03· 가을 주말 늦은 오후, 빵을 고른 직후

두 장은 제 몫

두 장은 제 몫
Place솔내휴게소 서브웨이 치즈 진열대 앞
Time가을 주말 늦은 오후, 빵을 고른 직후
Action박소정이 빵 선택을 기록하고 치즈를 묻자 박영숙이 접던 냅킨을 내려놓고 다가와 자기 몫으로 두 장을 요구한다. 윤금례가 자기 치즈를 빼서 주라고 하자 박영숙은 손바닥으로 막고 지갑을 연다. 박소정은 유리 너머 두 사람의 손 사이에 집게를 세우고 누구의 치즈도 덜지 않겠다고 말한 뒤 추가분을 별도로 적는다.
Impact윤금례의 치즈는 그대로 남고, 박영숙의 두 장은 따로 값을 치를 주문이 된다. 박소정은 윤금례의 이름 아래에 몰아 적던 주문을 멈추고 박영숙의 이름으로 새 줄을 만든다.

박소정이 주문지에 부드러운 빵 이름을 적고 치즈 통으로 집게를 옮기자, 창가에서 냅킨 모서리를 맞추던 박영숙이 접힌 냅킨을 내려놓고 다가온다. “나는 두 장, 남 줄 것 말고 내 거.” 박영숙이 손가락 두 개를 펴자 박만수는 유리 앞에서 팔꿈치를 거두어 자리를 내주고, 박소정은 치즈 위로 벌리던 집게를 멈춘다.

윤금례가 금색 왕관 아래로 고개를 기울이며 “그럼 내 치즈를 빼서 줘” 하고 유리 너머 치즈를 짚는다. 박영숙은 그 손가락 앞에 손바닥을 세운 채 다른 손으로 갈색 지갑을 열고, “엄마 건 놔둬, 더 내면 되지”라며 박소정 쪽으로 지갑을 내민다. 지갑 속 지폐 한 장이 반쯤 따라 나오자 윤금례는 치즈를 짚던 손으로 지폐 끝을 도로 밀어 넣으려 한다.

박소정은 두 손이 겹쳐 비치는 유리 안쪽에 집게를 똑바로 세운다. “누구 치즈도 안 뺍니다, 고모 추가분은 따로 적을게요.” 윤금례가 손을 거두자 박영숙도 지갑을 당기고, 박소정은 주문지에 ‘박영숙 — 치즈 두 장’이라고 새 줄을 쓴다. 따뜻한 조명 아래서 박소정은 그 줄 앞에 더하기 표시를 붙이고, 종이가 밀리지 않도록 노란 집게를 다시 물린다.

Chapter 02

Scene 04· 가을 주말 늦은 오후, 치즈 추가분을 적은 직후

완료 표시를 지우는 주문

완료 표시를 지우는 주문
Place솔내휴게소 서브웨이 유리 주문대
Time가을 주말 늦은 오후, 치즈 추가분을 적은 직후
Action박소정은 윤금례의 여섯 조각 요청에 주문지를 더 꺼내고, 굽기 전에 조각별 구성을 확인한다. 최다인은 최준호의 메모에서 자신을 같은 주문으로 묶은 줄을 지우게 하고 매운 소스를 따로 요청한다. 박소정은 자기 몫을 ‘아무거나’로 넘기는 최준호 앞에서도 집게를 멈춰, 구체적인 선택을 받아 적는다.
Impact최준호가 완료 처리한 가족 주문이 다시 열린다. 최다인의 별도 소스와 최준호의 세부 취향이 각각 주문지에 생기고, 윤금례에게 한꺼번에 확인하던 질문이 주문 당사자에게 돌아가기 시작한다.

박소정은 윤금례가 “여섯 조각, 속은 다 다르게 해 줘”라며 펼친 손 아래로 주문지 한 장을 더 꺼내 노란 집게에 끼운다. 초록색 메뉴판 아래 최준호가 휴대전화를 내밀자, 박소정은 아직 굽지 않은 빵 옆에 여섯 칸을 긋고 메모에 적힌 재료를 차례로 짚는다. 최준호가 ‘동생 것도 같은 걸로’ 옆의 완료 표시를 누르자, 창가에서 다가온 최다인이 휴대전화 윗부분을 손가락으로 눌러 화면이 내려가지 못하게 한다.

“그 줄 지워, 내 건 내가 말할게.” 최준호가 완료 표시부터 해제하자 최다인은 고추 그림이 붙은 소스통을 가리키고, 곧 박소정 쪽으로 몸을 숙여 “그런데 따로 주세요”라고 작게 덧붙인다. 윤금례가 유리 쪽으로 손을 들자 박소정은 먼저 작은 소스컵을 꺼내 최다인에게 보여 주고, 주문지의 이름 옆에 ‘매운 소스 별도’를 적는다.

최준호는 자기 칸의 ‘아무거나’를 읽으며 다시 완료 표시를 누르지만, 박소정이 올리브 통 위로 집게를 옮기자 휴대전화 너머로 고개를 뺀다. 박소정은 집게를 멈춘 채 “총무님, 본인 야채부터요”라고 하고, 최준호는 “올리브 많이, 양파 조금, 소스는 한쪽에만”을 연달아 붙인다. 최다인이 화면 속 ‘아무거나’를 톡 짚자 최준호는 휴대전화로 웃는 입을 가렸다가, 엄지로 그 네 글자를 지우고 박소정이 적은 세 줄을 옮겨 쓴다.

Scene 05· 가을 주말 늦은 오후, 준호의 주문을 고쳐 적은 직후

마지막 원의 이름

마지막 원의 이름
Place솔내휴게소 서브웨이 유리 주문대
Time가을 주말 늦은 오후, 준호의 주문을 고쳐 적은 직후
Action윤금례는 창가에서 가져온 냅킨에 여섯 자리를 그리다가 펜을 멈춘다. 마지막 원이 자기 자리라는 것을 알게 된 박소정은 펜을 돌려받고 근무표와 시각을 확인한다. 아직 카운터를 떠날 수 없는 박소정은 윤금례에게 다시 취향을 묻고, 피클을 더 넣어 달라는 대답과 자신의 재료를 각각 주문지에 적는다.
Impact가족의 선택을 정리하던 윤금례가 펜을 내려놓고 자기 몫의 피클을 요구한다. 박소정은 만드는 사람으로만 남아 있던 주문지에 자기 이름과 취향을 채운다. 여섯 자리의 주인은 정해지지만, 박소정이 식탁에 앉을 시간은 아직 확보되지 않는다.

윤금례는 창가에서 가져온 냅킨을 크림색 주문대에 펼치고, 박소정에게서 빌린 펜으로 탁자 둘레에 원 여섯 개를 그린다. 최준호가 수정한 휴대전화 메모와 주문지를 번갈아 짚는 옆에서, 최다인은 말려 올라오는 냅킨 귀퉁이를 눌러 준다. 윤금례는 원마다 이름을 붙이다 마지막 원 앞에서 펜을 세운다. “오늘도 나한테 상 차리게 하네.”

박소정이 남은 원에 펜 끝을 대려 하자 윤금례는 그 안을 두 번 두드리며 “거긴 네 자리야” 하고 펜을 내민다. 박소정은 받아 든 펜으로 자기 이름을 쓰고, 벽의 근무표와 휴대전화 시각을 차례로 확인한 뒤 휴대전화를 다시 엎어 놓는다. 최준호가 냅킨을 창가로 가져가려 손을 뻗자 박소정은 주문지 옆을 가리켜 그대로 두게 하고, 윤금례 앞으로 집게를 내민다.

“할머니는요?” 박소정이 묻자 윤금례는 최준호 쪽으로 향하던 손가락을 돌려 피클 통을 짚고 “그건 내 쪽에 더 넣어”라고 말한다. 박소정은 ‘윤금례 — 피클 더’ 아래에 굵은 줄을 긋고, 마지막 칸에는 ‘박소정 — 양파 없이, 올리브’를 적는다. 최다인이 누르고 있던 손을 떼자 박소정은 여섯 원이 그려진 냅킨과 여섯 칸을 채운 주문지를 나란히 놓고, 따뜻한 조명 아래 노란 집게로 두 종이의 위쪽을 함께 물린다.

Scene 06· 가을 주말 늦은 오후, 여섯 조각의 구성을 확정한 직후

불을 켜지 않은 생일

불을 켜지 않은 생일
Place솔내휴게소 서브웨이 주문대, 창가 식탁 앞
Time가을 주말 늦은 오후, 여섯 조각의 구성을 확정한 직후
Action박소정은 구운 빵을 꺼내 냅킨 좌석표와 주문지를 대조하며 조각마다 재료를 올린다. 오븐 알림음을 축가 신호로 삼은 윤금례와 최준호, 최다인은 서로 다른 소절을 불러 작업을 웃음으로 끊는다. 박소정이 윤금례 몫에 피클을 두 배로 얹고 종이컵에 생일초를 세우자, 자동문으로 들어온 정우빈이 왕관을 가리키며 또 다른 생일 주문을 청한다.
Impact여섯 사람의 선택이 실제 음식으로 완성되고, 윤금례의 피클과 박소정의 올리브도 각자의 조각에 남는다. 가족에게 음식을 내놓으려던 순간 새 주문이 들어와, 박소정의 자리는 마련되어 있어도 함께 먹을 시간은 아직 확보되지 않는다.

박소정은 오븐에서 꺼낸 빵 쟁반을 크림색 작업대에 내려놓고, 노란 집게 아래 냅킨과 주문지를 번갈아 짚으며 여섯 몫의 경계를 맞춘다. 오븐 알림음에 최준호가 “생일 축하합니다”를 시작하자 윤금례는 곧장 “사랑하는”으로 건너뛰고, 최다인은 박수를 한 번 친 뒤 두 사람을 번갈아 가리킨다. 박소정은 웃다가 집게를 작업대 위에 멈춰 세우고, 최준호가 내미는 휴대전화 화면 대신 주문지의 이름을 손끝으로 두드린다.

최다인은 자기 소스컵을 받아 뚜껑을 닫고 창가의 포장지 옆에 내려놓으며, 최준호는 냅킨 그림을 따라 빈 의자 앞에도 포장지 한 장을 펼친다. 박소정은 양파 없는 자기 조각에 올리브를 넣은 뒤 윤금례 몫에만 피클을 한 번 더 얹고, 따라오는 최준호의 손가락 앞을 집게로 막는다. “이건 배분 끝났습니다.” 윤금례가 왕관을 바로 쓰며 두 손을 들자 아직 멈추지 않은 오븐 알림음에 최다인까지 노래를 시작하고, 이번에는 최준호가 첫 소절을 놓쳐 휴대전화로 웃는 입을 가린다.

박소정은 계산대 옆 생일초 포장을 뜯어 작은 종이컵 바닥에 초를 세우고, 윤금례가 몸을 숙이자 “불은 못 켜요, 오븐이 대신 해 줬어요”라며 컵을 유리 너머로 들어 보인다. 자동문이 열리고 정우빈이 들어와 금색 왕관을 가리킨다. “저희 할아버지도 오늘 생일인데 저 주문 아직 돼요?” 박소정은 종이컵을 계산대 위에 내려놓고 정우빈 쪽으로 몸을 돌리고, 창가에서는 최다인이 박소정의 빈 의자 앞 포장지 모서리를 눌러 둔다.

Chapter 03

Scene 07· 가을 주말 늦은 오후, 생일 샌드위치를 완성한 직후

덮어 둔 한 조각

덮어 둔 한 조각
Place솔내휴게소 서브웨이 주문대와 창가 식탁
Time가을 주말 늦은 오후, 생일 샌드위치를 완성한 직후
Action박소정은 여섯 조각을 박영숙에게 건네고, 정우빈이 펼친 버스 좌석표 옆으로 노란 집게에 물려 있던 냅킨을 빼내 보여 준다. 정우빈은 두 종이의 자리 그림을 번갈아 짚다가 할아버지를 빵 진열대 앞으로 안내한다. 박소정의 질문에 어른들의 대답이 먼저 쏟아지자 정우빈이 팔을 벌려 막고, 박소정은 할아버지의 대답을 받아 새 주문지에 적는다.
Impact정우빈의 요청이 실제 생일 주문으로 이어지면서 박소정은 가족에게 음식을 내놓고도 카운터에 남는다. 정우빈이 대신 대답하는 어른들을 막아 주지만, 늘어나는 줄과 창가에 놓인 자기 빵 사이에서 박소정의 손은 더 빨라진다. 박영숙은 빈 의자 앞 한 조각을 포장지로 덮어 둔다.

박소정은 여섯 조각을 담은 쟁반을 유리 너머 박영숙의 두 손에 밀어 주고, 정우빈이 계산대에 펼친 버스 좌석표 옆으로 노란 집게에서 빼낸 냅킨을 내려놓는다. 정우빈은 좌석표의 네모와 냅킨의 원을 번갈아 짚더니, 왕관을 바로 쓰는 윤금례에게 냅킨을 돌려주고 할아버지를 빵 진열대 앞으로 모셔 온다. 박영숙이 창가로 옮긴 쟁반에서는 포장지 여섯 귀퉁이가 꿀빛 햇살 아래 벌어진다.

박소정이 빵 진열대 위로 손바닥을 펴며 “어떤 빵으로 드릴까요?”라고 묻자, 정우빈 뒤에서 부드러운 것과 평소 먹던 것을 고르라는 말이 한꺼번에 나온다. 정우빈은 진열대를 향해 뻗는 손들 앞에 두 팔을 벌린다. “아직 대답 안 하셨는데.” 박소정은 꺼내려던 빵을 놓고 기다렸다가, 할아버지가 유리 한 곳을 두드리자 그 앞의 빵을 들어 보인다.

계산대 옆까지 줄이 이어지는 동안 박영숙은 빈 의자 앞에 놓인 박소정의 조각에서 빠져나온 올리브 하나를 포장지 안으로 밀어 넣는다. 박소정은 빵을 작업대에 펼치다 그 손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박영숙은 양쪽 포장지를 겹쳐 덮은 뒤 손바닥으로 가볍게 눌러 둔다. 박소정은 새 주문지를 노란 집게 맨 위에 끼우고 치즈 통을 열며, 앞선 질문이 끝나자마자 다음 질문을 붙인다.

Scene 08· 가을 주말 늦은 오후, 새 생일 주문을 받는 동안

피클로 찾는 주인

피클로 찾는 주인
Place솔내휴게소 서브웨이 주문대와 창가 식탁
Time가을 주말 늦은 오후, 새 생일 주문을 받는 동안
Action박소정은 조각별 추가 요청을 적다가 겹쳐진 주문지를 다시 펼치고 치즈 선택을 재차 묻는다. 창가에서 윤금례는 피클이 적은 샌드위치를 박영숙에게 돌려준다. 박영숙은 통로로 나온 의자를 당겨 넣은 뒤, 식은 가족의 빵을 쟁반에 모아 주문대로 가져온다.
Impact새 주문을 빨리 끝내려던 박소정의 작업대에 이미 내보낸 가족 음식까지 돌아온다. 가족의 식사는 시작되지 못한 채 재가열을 기다리는 일이 되고, 박소정은 새 주문지와 돌아온 쟁반 사이에 놓인다.

박소정은 노란 집게 아래 비스듬히 끼워진 주문지를 뽑아 펼치다가 치즈 집게를 내려놓는다. 조각마다 덧붙인 요청이 앞장의 치즈 표시를 가리고, 박소정이 유리 너머로 “죄송해요, 이쪽 조각은 치즈 두 장 맞으세요?”라고 다시 묻자 정우빈이 내밀던 버스 좌석표를 가슴 쪽으로 거둔다. 박소정은 대답을 받아 새 줄에 적고, 집게가 물 수 있도록 종이 모서리를 한꺼번에 누른다.

창가에서 윤금례는 벌어진 빵을 들여다보더니 박영숙 앞으로 포장지째 밀어 놓는다. “이건 내 거 아니야, 피클이 이렇게 적을 리가 없어.” 박영숙이 다른 조각의 포장지를 열어 보려는 순간, 통로를 지나던 손님의 몸이 의자 등받이를 피해 옆으로 돌아가고 박영숙은 손에 든 빵을 내려놓아 의자부터 탁자 밑으로 당긴다.

박영숙은 다시 펼친 빵들을 쟁반에 모으고, 빈 의자 앞에 덮어 둔 박소정의 조각도 포장지 양 끝을 잡아 올린다. 윤금례가 자기 앞에 남은 포장지를 접는 동안 박영숙은 쟁반을 주문대로 가져와 “소정아, 이것도 조금만 다시 데워 줄래?” 하고 내민다. 박소정이 새 주문지를 들어 자리를 비우자, 꿀빛 햇살을 받던 여섯 포장지가 초록색 메뉴판 아래 작업대 위로 미끄러져 들어온다.

Scene 09· 가을 주말 늦은 오후, 가족의 빵이 주문대로 돌아온 직후

놓아야 열리는 자리

놓아야 열리는 자리
Place솔내휴게소 서브웨이 주문대, 오븐 앞
Time가을 주말 늦은 오후, 가족의 빵이 주문대로 돌아온 직후
Action박소정은 돌아온 쟁반을 옮겨 놓고 오븐 손잡이를 잡는다. 윤금례가 쟁반에서 박소정의 빵을 집어 다시 싸려 하자, 박소정은 포장지에 붙어 늘어진 치즈와 양파 없이 담긴 올리브를 본다. 윤금례의 질문을 들은 박소정은 손잡이를 놓고, 교대 직원에게 현재 주문을 마친 뒤 휴게 시간을 쓰겠다고 요청한다.
Impact가족의 빵을 다시 데우는 일은 멈추고, 박소정이 식탁으로 갈 시점이 처음으로 정해진다. 박소정은 카운터를 곧바로 떠나지 않되, 지금 받는 주문 뒤에도 계속 일을 붙잡고 있지는 않겠다고 말한다. 윤금례와 박영숙은 빵이 아닌 박소정의 대답을 받아 든다.

박소정은 박영숙이 가져온 쟁반을 작업대 안쪽으로 밀고, 다른 손으로 오븐 손잡이를 잡는다. “할머니 건 제가 따뜻하게 드리려고 했는데”라는 말에, 주문대까지 따라온 윤금례가 쟁반에서 한 조각을 집어 들다 포장지를 멈춘다. 벌어진 종이 안쪽으로 치즈가 붙어 늘어지고, 양파 없는 빵 끝에서 검은 올리브 하나가 굴러 나온다.

윤금례는 올리브를 종이 귀퉁이로 막고 그 조각을 박소정 쪽으로 들어 보인다. “그럼 네 거는 누가 따뜻할 때 먹여?” 박영숙은 다른 빵의 포장지를 벗기려던 손을 거두고, 박소정은 닫힌 오븐 손잡이에서 손가락을 하나씩 편다.

박소정은 “할머니, 앉아 계세요”라고 말한 뒤, 안쪽에서 재료 상자를 정리하는 교대 직원 쪽으로 몸을 돌린다. “지금 받는 주문 마치면 저 휴게 시간 쓸게요, 카운터 부탁드려요.” 교대 직원이 상자를 내려놓고 고개를 끄덕이자, 박소정은 노란 집게 아래에서 현재 주문지를 꺼내 작업대 앞쪽에 따로 펼친다. 윤금례는 들고 있던 빵을 쟁반에 내려놓고, 박영숙은 치즈가 붙은 포장지를 더 누르지 않은 채 양쪽 귀퉁이만 덮는다.

Chapter 04

Scene 10· 가을 주말 늦은 오후, 휴게 시간을 요청한 직후

빨리 끝내려면 기다리세요

빨리 끝내려면 기다리세요
Place솔내휴게소 서브웨이 유리 주문대
Time가을 주말 늦은 오후, 휴게 시간을 요청한 직후
Action박소정은 야채 변경과 포장 순서를 재촉하는 말이 겹치자 집게를 내려놓는다. 먼저 고른 빵을 그대로 먹겠다는 정우빈의 할아버지와, 어른들을 타일 선 뒤로 물리는 정우빈의 도움으로 한 사람씩 선택을 확정한다. 박소정은 완성된 주문을 따로 분리해 교대 직원에게 계산을 맡긴다.
Impact거듭 수정되던 주문이 처음으로 완성된 것과 남은 것으로 나뉜다. 박소정은 모든 일을 혼자 끝내려는 대신 계산부터 넘기기 시작한다. 아직 장갑을 벗지는 못하지만, 휴게 시간 앞에 남은 주문은 더 이상 뒤섞이지 않는다.

박소정은 유리 주문대 위로 손끝들이 한꺼번에 뻗어오자 야채 집게를 재료통 옆에 내려놓는다. 초록색 메뉴판 아래에서 버스 출발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과 아이 조각의 야채를 빼 달라는 말, 생일 주인 것부터 싸 달라는 말이 포개진다. 박소정은 펼친 빵 위를 빈손으로 가리고 말한다. “빨리 끝내려면 한 분씩 말씀해 주세요.”

정우빈의 할아버지는 뒤쪽으로 몸을 돌려 먼저 고른 빵을 가리키며 그대로 먹겠다고 하고, 정우빈은 가슴에 안았던 버스 좌석표를 접어 가방에 밀어 넣는다. 두 손이 빈 정우빈이 바닥 타일의 줄을 따라 양팔을 벌리자, 유리에 붙어 있던 어른들의 손이 내려가고 신발들이 선 뒤로 물러난다. 정우빈은 자기 발끝도 선에 맞춰 붙인 뒤 박소정을 올려다본다.

박소정은 주문지의 한 칸을 손가락으로 짚고 해당 조각을 들어 보여 대답을 받은 다음에야 야채를 얹는다. 완성된 조각을 포장지로 감싼 박소정은 주문지에서 그 항목을 가로줄로 지우고, 따로 적은 계산 내역과 함께 교대 직원 쪽으로 밀며 “완성된 것부터 계산 부탁드려요”라고 말한다. 교대 직원이 첫 포장을 계산대 쪽으로 옮기자, 정우빈은 선 너머로 나가려던 발을 도로 붙이고 박소정이 들어 보이는 다음 조각을 기다린다.

Scene 11· 가을 주말 늦은 오후, 주문 포장이 끝나 갈 무렵

왕관은 그대로 두고

왕관은 그대로 두고
Place솔내휴게소 서브웨이 주문대와 창가 식탁
Time가을 주말 늦은 오후, 주문 포장이 끝나 갈 무렵
Action최다인은 윤금례가 의자를 뒤로 밀기 전에 탁자를 창 쪽으로 당긴다. 최준호도 휴대전화를 넣고 맞은편을 밀어 통로를 넓히며, 박영숙에게 냅킨을 받아 놓는다. 박만수가 윤금례의 의자를 식탁 안으로 당겨 주는 동안 박소정은 남은 업무를 교대 직원에게 인계한다. 장갑을 벗은 박소정은 왕관을 바라보는 정우빈에게 불 없는 생일초가 선 종이컵을 건넨다.
Impact윤금례가 자리를 비키지 않고도 박소정이 식탁으로 갈 길이 열린다. 박소정의 손에서 주문지가 직원에게 넘어가고, 정우빈에게는 윤금례의 왕관 대신 자기 식탁에 놓을 생일 장식이 생긴다. 박소정은 카운터를 떠날 수 있는 상태가 되지만 아직 식탁에는 앉지 않는다.

최다인은 창가 식탁에서 윤금례가 의자를 뒤로 밀자 등받이를 붙잡고, 다른 손으로 탁자를 창 쪽으로 당긴다. 주황색 천이 묶인 짐가방 손잡이가 탁자 다리에 걸리자 최다인은 가방을 발목 사이로 빼내고 “할머니는 그대로 앉아 계세요”라고 말한다. 최준호는 켜진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고 맞은편 탁자를 밀어, 계산대 옆 통로에 걸쳐 있던 모서리를 안으로 들인다.

최준호가 박영숙에게 손을 내밀자 접힌 냅킨 뭉치가 넘어오고, 박영숙이 모서리를 맞추려고 뻗던 손은 빈 채로 내려간다. 박만수는 윤금례가 몸을 조금 일으킨 틈에 의자를 식탁 안쪽으로 당겨 주고, 윤금례는 다시 앉으며 기울어진 금색 왕관을 바로 쓴다. 주문대 안에서 마지막 포장지를 접은 박소정은 남은 주문지를 교대 직원 앞으로 돌려놓고 “여기까지 계산했고, 이쪽 포장만 더 드리면 돼요”라며 두 칸을 짚는다. 교대 직원이 종이를 자기 쪽으로 당기자 박소정은 장갑을 뒤집어 벗어 버린다.

정우빈은 타일 선을 벗어나 계산대 끝으로 다가오다가 왕관 쪽으로 손가락을 들고, 박소정과 눈이 마주치자 가방 끈을 움켜쥔다. 박소정은 창가 탁자 끝에 놓인 종이컵을 가져와 “왕관은 할머니 거고, 이건 불 안 켜는 생일초야”라며 정우빈의 두 손 사이에 내려놓는다. 정우빈이 컵을 바로 세워 받자 작은 초가 따뜻한 조명 아래 곧게 서고, 창가의 윤금례는 왕관을 쓴 채 넓어진 통로 너머 박소정에게 손짓한다.

Scene 12· 가을 주말 늦은 오후, 카운터 인계를 마친 직후

식은 빵의 첫입

식은 빵의 첫입
Place솔내휴게소 서브웨이 카운터 밖과 창가 식탁
Time가을 주말 늦은 오후, 카운터 인계를 마친 직후
Action박소정은 카운터 밖으로 나오다가 추가 주문을 청하는 목소리에 돌아선다. 주문대로 되돌아가는 대신 교대 직원을 가리키며 식사하러 간다고 말한다. 최다인이 의자를 빼고 최준호가 앞치마 끈을 등받이 너머로 넘겨 주자, 박소정은 자리에 앉아 엇갈리는 두 가족의 축가 속에서 식은 빵을 크게 베어 문다.
Impact추가 주문은 인계한 카운터에 남고, 박소정은 비워 두었던 식탁의 여섯 번째 자리를 차지한다. 음식을 만들고 나르던 손이 자기 빵을 받쳐 든다. 두 가족의 노래는 끝내 박자가 맞지 않지만, 박소정은 첫입을 미루지 않는다.

박소정은 카운터 끝을 돌아 창가로 한 걸음 내딛다가, 등 뒤에서 추가 주문을 청하는 목소리가 들리자 어깨를 돌린다. 주문대 쪽으로 옮기던 발을 멈추고, 빈손을 펴 교대 직원을 가리킨다. “저쪽 직원에게 말씀해 주세요, 저는 지금 밥 먹으러 가요.”

최다인은 박소정이 다가오자 빈 의자를 빼고, 의자 다리 앞에 걸린 주황색 가방 손잡이를 발 옆으로 밀어 넣는다. 박소정이 앉으려는 순간 최준호가 길게 늘어진 앞치마 끈을 들어 등받이 너머로 넘겨 주고, 접힌 냅킨 한 장을 포장지 옆에 놓는다. 박소정은 의자를 당겨 앉아 치즈가 붙은 포장지를 천천히 벌리고, 빵 끝으로 빠져나온 올리브를 엄지로 받친다.

오븐이 울리자 정우빈이 종이컵 앞에서 박수를 시작하고, 최준호와 최다인이 반 박자 늦게 노래를 붙인다. 옆 식탁은 벌써 다음 소절로 넘어가지만 박소정은 고개로 박자를 맞추려다 말고, 김이 나지 않는 빵을 두 손으로 들어 크게 베어 문다. 꿀빛이 내려앉은 여섯 장의 포장지 사이로 박소정의 팔꿈치가 들어오고, 최준호는 노래를 부르면서 냅킨을 박소정의 손 가까이 밀어 준다.

Chapter 05

Scene 13· 가을 주말 늦은 오후, 식사를 시작한 지 몇 분 뒤

왕관에 늘어난 접힌 선

왕관에 늘어난 접힌 선
Place솔내휴게소 서브웨이 창가 식탁
Time가을 주말 늦은 오후, 식사를 시작한 지 몇 분 뒤
Action정우빈은 돌려주려던 생일초 종이컵을 가져가려고 가방 앞주머니를 비운다. 박소정은 주머니 입구에 걸린 컵을 받쳐 구겨지지 않게 넣어 준다. 윤금례는 직접 왕관을 벗어 옆 식탁의 생일 주인에게 사진을 함께 찍자고 청하고, 촬영이 끝난 뒤 왕관을 돌려받는다.
Impact정우빈에게 가져갈 생일 기념이 생기고, 윤금례의 왕관은 박소정이 대신 내주는 물건이 아니라 윤금례가 직접 빌려주는 물건으로 남는다. 박소정은 식탁을 떠나지 않은 채 아이의 짐 꾸리기를 돕는다. 돌아온 왕관에는 접힌 선이 하나 더 생긴다.

정우빈이 창가 식탁으로 내밀던 생일초 종이컵을 도로 끌어안고, 파란 가방 앞주머니에서 여러 번 접은 버스 좌석표를 꺼낸다. 박소정이 먹던 빵을 포장지 위에 내려놓자 정우빈은 “할아버지가 이거 가져가신대요”라며 주머니를 벌리지만, 컵 가장자리가 지퍼에 걸려 안쪽으로 찌그러진다. 박소정은 컵 밑바닥을 손바닥으로 받치고, 최다인은 탁자에서 떨어지려는 좌석표를 잡아 정우빈의 가방 뒤 칸에 끼워 준다.

박소정이 주머니 천을 바깥으로 당겨 컵을 세워 넣는 동안, 정우빈의 손가락이 윤금례의 왕관 쪽으로 올라갔다가 컵 가장자리로 돌아온다. 윤금례는 왕관 양옆을 잡아 직접 벗더니 옆 식탁 쪽으로 내민다. “사진은 같이 찍읍시다. 찍고 나면 내 머리로 돌아와야 해요.” 최다인이 휴대전화를 가로로 들자 박소정은 의자를 당겨 자리를 내주고, 화면 가장자리로 정우빈이 초가 선 가방을 안은 채 바짝 붙는다.

사진을 찍은 최다인이 화면을 돌려 보여 주자 정우빈은 컵을 누르지 않도록 팔꿈치를 벌린 채 고개만 앞으로 뺀다. 윤금례가 돌려받은 왕관을 쓰려다 새로 꺾인 꼭짓점을 펴자, 박소정은 손을 뻗는 대신 탁자 위 휴대전화를 윤금례 쪽으로 밀어 준다. 윤금례는 접힌 선이 하나 더 생긴 왕관을 머리에 얹고, 화면 속 자기 왕관을 손끝으로 짚는다.

Scene 14· 우빈 가족이 버스로 떠난 뒤, 가을 늦은 오후

물부터 밀어 주기

물부터 밀어 주기
Place솔내휴게소 서브웨이 창가 식탁
Time우빈 가족이 버스로 떠난 뒤, 가을 늦은 오후
Action최준호가 박영숙이 모으던 포장지를 받아 가고, 최다인은 짐가방을 발밑으로 넣어 자기 자리를 넓힌다. 따로 받아 둔 매운 소스에 빵을 조금 찍어 먹은 최다인이 기침한다. 박소정은 입을 열었다가 말을 삼키고, 박만수는 최다인의 손 앞으로 물컵을 밀어 준다. 박소정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남은 빵을 마저 먹는다.
Impact뒷정리가 박영숙 한 사람의 손에 모이지 않고, 최다인의 소스 선택도 가족의 참견으로 취소되지 않는다. 박소정은 다른 사람의 식사를 고쳐 주는 대신 자기 식사를 끝낸다. 식탁에는 아직 치울 것이 남지만, 윤금례도 박소정도 그것을 맡으려고 일어나지 않는다.

최준호가 박영숙의 손에 쌓인 포장지를 아래에서 받쳐 가져가자, 최다인은 창가 식탁 밑으로 짐가방을 밀어 넣는다. 자동문 너머로 정우빈의 파란 가방이 멀어지고, 주황색 천이 묶인 손잡이는 최다인의 두 신발 사이에 들어간다. 박영숙이 탁자에 붙은 포장지 한 장을 더 떼어 내밀자 최준호는 받아 든 뭉치로 그것까지 눌러 잡는다.

최다인은 무릎을 탁자 안으로 당기고 작은 소스컵의 뚜껑을 완전히 젖힌다. “이만큼만.” 최다인은 빵 모서리에 붉은 소스를 조금 묻혀 베어 물지만, 두 번 씹고는 고개를 옆으로 돌려 기침한다. 박소정은 빵을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가 다물고, 박만수는 최다인의 팔꿈치를 피해 물컵을 밀어 준다.

최다인이 컵을 잡을 때까지 박만수의 손가락이 컵 밑동을 받치고 있다가 떨어진다. 윤금례는 금색 왕관을 쓴 채 소스컵 옆으로 냅킨 한 장을 밀어 놓고 자기 포장지에 남은 피클을 집어 먹는다. 물을 마신 최다인이 소스컵 뚜껑을 닫지 않고 빵 옆에 내려놓자, 박소정도 남은 빵을 들어 마지막 올리브를 엄지로 받쳐 입에 넣는다.

Scene 15· 가을 주말 늦은 오후, 소정의 휴게 시간이 끝날 무렵

주머니 속 여섯 자리

주머니 속 여섯 자리
Place솔내휴게소 서브웨이 창가 식탁과 주문대
Time가을 주말 늦은 오후, 소정의 휴게 시간이 끝날 무렵
Action박소정은 정리 중인 식탁에서 여섯 자리가 그려진 냅킨을 빼내 접어 앞치마 주머니에 넣는다. 최다인이 남은 정리를 맡는 동안 윤금례에게 빵 이름을 외우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고 주문대로 돌아간다. 새 장갑을 낀 박소정은 입맛이 다른 두 손님의 주문을 받되, 조합을 대신 정하지 않고 함께 먹을 빵부터 고르게 한다.
Impact박소정은 식탁 정리를 모두 끝내야만 돌아갈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식사를 마치고 근무로 복귀하는 사람이 된다. 윤금례가 그려 준 자리는 버릴 냅킨 더미에 섞이지 않고 박소정의 주머니에 남는다. 생일 식사는 끝나지만, 주문대에서는 또 다른 두 사람이 각자의 입맛을 말하기 시작할 차례가 열린다.

박소정은 휴게 종료 시각이 뜬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창가 식탁의 빈 포장지 밑에서 여섯 원이 그려진 냅킨을 빼낸다. 최다인이 벌린 정리 봉투 앞에서 박소정이 냅킨을 반으로 접자, 윤금례가 손끝으로 종이 밖에 남은 ‘소정’을 짚는다. 박소정은 이름이 안쪽으로 들어가도록 한 번 더 접어 앞치마 주머니에 넣고, 최다인은 남은 포장지를 봉투에 담으며 박소정의 의자를 탁자 밑으로 밀어 넣는다.

윤금례는 금색 왕관의 꺾인 꼭짓점을 세우며 빵 진열대를 가리키고 “다음에는 저 이름을 외워 와야겠네”라고 말한다. 박소정은 “이름 몰라도 가리키면 돼요” 하고 대답한 뒤, 윤금례가 집으려던 빈 소스컵을 최다인 쪽으로 밀어 놓는다. 최다인이 컵을 받아 뚜껑을 닫는 사이 박소정은 넓어진 통로를 건너 주문대 안으로 들어가 손을 씻고 새 장갑을 낀다.

자동문이 열리고 작은 여행 가방을 끈 두 손님이 초록색 메뉴판 아래로 다가와 “둘이 나눠 먹을 건데 입맛이 달라도 돼요?”라고 묻는다. 박소정은 집게를 들어 빵 진열대 쪽으로 펼치며 “빵은 같이 고르실 수 있으세요?”라고 되묻는다. 창가에서 윤금례가 웃으며 들었던 손을 내려놓고, 두 손님은 서로를 돌아본다. 박소정은 집게를 어느 빵에도 대지 않은 채 두 사람의 대답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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