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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ytalk Original · 15 scenes · 5 chapters

(서브웨이)손주 밥은 패스 금지야

서브웨이 신메뉴 촬영을 맡은 과장된 완벽주의 푸드 스타일리스트는 폐점 뒤의 매장을 할리우드 재난영화 세트처럼 꾸미며, 오이 한 장에도 분무기로 물방울을 찍는다. 초록색 타일 벽, 빛나는 메뉴 보드, 정갈하게 쌓인 서브웨이 종이봉투 사이에서 촬영용 30센티 샌드위치가 갑자기 굴러 떨어져 지하철 환풍구로 사라지고, 그는 흰 장갑을 낀 채 역으로 뛰어든다. 막차 객실에서는 야식을 든 승객들이 샌드위치를 럭비공처럼 패스하고, 경비원은 “소스 묻으면 변상”이라며 빗자루를 휘두른다. 광고 촬영까지 7분, 그는 새 샌드위치를 조립할지 아니면 선로 쪽으로 굴러가는 촬영용 샌드위치를 맨손으로 잡을지 선택해야 한다.

  • 4 characters
  • 3 locations
  • 15 scenes
  • Plot 2,306 chars
(서브웨이)손주 밥은 패스 금지야 cover image

Characters

Characters

배도겸

Male

신메뉴 촬영 한 컷에 밤샘 세팅을 거는 프리랜서 푸드 스타일리스트

Profile

배도겸은 이번 광고 사진으로 “빵 결까지 통제하는 사람”이라는 업계 별명을 되찾고 싶어 한다. 촬영용 30센티 샌드위치를 놓치면 계약금과 자존심을 함께 날리지만, 매장 매니저 나해림이 숨겨 둔 예비 재료를 쓰지 않겠다고 고집한다. 그는 역무 경비원 오봉철의 빗자루를 빌려 환풍구 아래를 뒤지면서도 흰 장갑만은 벗지 않는다.

Description

배도겸은 밤샘 촬영 탓에 눈가가 옅게 꺼진 서른일곱의 남자로, 검은 셔츠 위에 기름 얼룩 하나 없는 짙은 올리브색 작업 조끼를 걸치고 있다. 한 손에는 물방울 분무기를, 다른 손에는 역무원의 낡은 빗자루를 쥔 채 환풍구를 내려다보며 몸을 앞으로 기울이지만, 빵가루조차 닿지 않은 흰 면장갑만은 끝까지 벗지 않는다. 왼쪽 소매에 꽂힌 은색 핀셋이 조명에 번뜩이고, 이를 악문 입가에는 샌드위치 하나를 구하러 재난 현장에 뛰어든 사람의 우스운 비장함이 남아 있다.

나해림

Female

본사 점검 전날 밤 매장 재고와 촬영팀을 동시에 떠맡은 서브웨이 매니저

Profile

나해림에게는 아침 본사 점검 전에 매장을 원래대로 돌려놓는 일이 먼저라서, 배도겸의 재난영화식 조명을 당장 꺼 버리고 싶다. 그런데 도겸이 망친 양상추 산을 치우다 발견한 예비 30센티 빵을 그에게 건네면, 자신이 몰래 빼 둔 폐기 직전 재료가 장부에 드러난다. 막차 승객 윤복자의 종이봉투가 촬영용 샌드위치와 바뀐 순간부터 해림은 도겸의 시간표를 강제로 관리한다.

Description

나해림은 검은 머리를 낮게 묶고, 소매를 두 번 접은 짙은 초록 매니저 셔츠 위에 구겨진 재고 조끼를 걸친 채 카운터와 촬영 세트를 번갈아 노려본다. 한 손에는 분 단위로 적힌 타이머 클립보드, 다른 손에는 양상추 조각이 붙은 집게를 쥐고 있으며, 왼쪽 손목의 낡은 은색 시계는 늘 본사 점검 시간보다 5분 빠르다. 입가에는 피곤한 미소가 걸려 있지만, 발끝은 이미 재난영화 조명 스위치 쪽을 향해 있다.

오봉철

Male

막차 뒤 빈 승강장을 빗자루와 얼룩 수첩으로 순찰하는 역무 경비원

Profile

오봉철은 퇴근 전까지 승강장 바닥에 소스 얼룩 하나도 남기지 않아야 월말 청소 평가를 지킬 수 있다. 배도겸이 선로 가까이 달려들수록 그의 빗자루는 구조 장비가 아니라 변상 통지서처럼 날아가고, 그 탓에 도겸은 봉철의 허락 없이는 환풍구 덮개조차 못 연다. 그는 나해림이 준 쿠키 한 장에 흔들리지만, 부스러기까지 수첩에 적는다.

Description

오봉철은 빛바랜 남색 역무 조끼 위에 투명 비닐 앞치마를 덧입고, 막차가 떠난 승강장 끝을 한 치씩 쓸어 본다. 회색으로 짧게 친 머리와 깊은 팔자주름 사이로 눈이 매섭게 움직이며, 오른손의 긴 빗자루는 선로에 다가가는 사람을 막는 차단봉처럼 비스듬히 겨눠져 있다. 그의 가슴 주머니에는 모서리가 소스 얼룩으로 굳은 작은 수첩이 꽂혀 있고, 쿠키 부스러기 하나를 발견한 듯 입술을 단단히 다문 표정이 남아 있다.

윤복자

Female

야간 요가 수업 뒤 손주 몫 샌드위치를 들고 막차를 타는 단골 승객

Profile

윤복자는 손주에게 약속한 따뜻한 야식을 지키려고, 객실 안으로 굴러든 촬영용 샌드위치를 자기 봉투에 넣고 다음 역까지 버틴다. 배도겸이 그것을 되찾으려 하자 승객들에게 럭비 패스를 시키며 시간을 끄는데, 샌드위치가 차가워지면 손주가 “할머니가 또 약속 깼다”고 할까 봐서다. 오봉철이 문을 막아 세우자 그녀는 그의 얼룩 수첩에 묻은 오래된 케첩 자국을 발견한다.

Description

윤복자는 보랏빛 요가복 위에 낡은 베이지 카디건을 걸치고, 무릎 위에 꼭 붙인 서브웨이 종이봉투를 방패처럼 감싼 채 막차 좌석 끝에 앉아 있다. 은빛이 섞인 짧은 파마머리 아래 눈은 장난스럽게 가늘어졌지만, 누군가 봉투에 손을 뻗으면 발끝부터 몸을 틀어 다음 패스를 준비하는 선수처럼 단단해진다. 왼쪽 손목의 해진 빨간 고무줄 하나가, 손주에게 늦지 않겠다는 약속처럼 봉투 손잡이를 묶고 있다.


Synopsis

Plot

밤 11시 53분, 배도겸은 폐점한 서브웨이 매장을 재난영화의 마지막 생존 구역처럼 꾸민다. 초록 타일에는 조명을 비스듬히 쏘고, 메뉴 보드의 노란빛이 30센티 샌드위치의 빵결을 핥게 만든다. 그는 흰 장갑 낀 손으로 오이 한 장에 물방울 세 개를 찍는다. 한 방울은 신선함, 두 방울은 절박함, 세 방울은 계약금이라고 믿는다. 나해림은 5분 빠른 손목시계를 들이밀며 조명 스탠드를 치우라고 하지만, 도겸은 “빛은 치우는 게 아니라 길들이는 겁니다”라고 답한다. 그 순간 반사판이 양상추 트레이를 건드리고, 촬영용 샌드위치가 조리대를 미끄러져 낡은 환풍구 안으로 떨어진다.

도겸은 망설임 없이 환풍구 덮개를 뜯으려 하지만, 아래 승강장에서 올라온 오봉철이 빗자루 자루로 그의 팔을 막는다. 봉철은 바닥에 떨어진 피클 하나를 집게로 들어 올려 얼룩 수첩에 적고, 환풍구를 열면 먼지와 소스가 승강장으로 떨어질 수 있다며 통제선을 친다. 도겸은 흰 장갑을 더럽히지 않은 채 빗자루를 빼앗으려 하고, 봉철은 그를 막으려다 조명 케이블에 발이 걸린다. 둘이 넘어지는 사이 환풍구 속 샌드위치는 바람을 타고 플랫폼 끝으로 빠져나가고, 막차 객실 문이 열리자 윤복자의 초록·노랑 종이봉투 안으로 굴러 들어간다.

윤복자는 봉투 속 묵직한 물체를 손주 몫의 샌드위치라고 단정한다. 그녀는 야간 요가 수업이 끝난 뒤 직접 산 샌드위치를 들고 귀가 중이었고, 손주가 기다리는 집으로 빈손으로 돌아갈 수 없다. 도겸이 객실에 뛰어들어 “그건 광고용입니다!”라고 외치자, 윤복자는 “광고는 내일도 하지만 애는 오늘 밤 배고프다”고 받아친다. 객실의 막차 승객들은 그 말을 듣고 봉투를 다음 좌석으로 넘긴다. 야간 근무자는 도시락 통으로 길을 막고, 졸던 승객은 샌드위치를 럭비공처럼 머리 위로 패스한다. 도겸은 손잡이에 매달려 객실을 가로지르고, 해림은 플랫폼에서 초시계를 흔들며 그가 남은 시간을 허비할 때마다 “한 번 더 뛰면 빵도 너도 식어!”라고 소리친다.

봉철은 객실 문 앞을 빗자루로 가로막고, 봉투가 흔들릴 때마다 소스가 샐 가능성을 경고한다. 그는 도겸에게 샌드위치를 되찾게 해 주는 대신, 승강장에 얼룩을 남기면 촬영이고 계약이고 전부 변상 처리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그러나 윤복자가 그의 수첩에서 오래된 케첩 자국을 발견한다. 봉철은 그 얼룩이 몇 달 전 막차를 놓친 아들을 위해 뛰던 승객이 흘린 것이라고, 지우지 못한 채 매일 기록만 덧붙여 왔다는 사실을 들킨다. 윤복자는 수첩을 그의 가슴에 꾹 눌러 주며 “기록한다고 다 깨끗해지는 건 아니지”라고 말한다. 봉철은 대답 대신 빗자루 끝으로 객실 바닥의 미끄러운 소스 자국을 닦고, 조용히 다음 역 비상문 쪽을 가리킨다.

그 사이 해림은 매장에 남아 예비 30센티 빵을 꺼내려다 멈춘다. 폐기 직전 재료를 따로 빼 둔 사실이 드러나면 본사 점검에서 잘릴 수 있다. 하지만 도겸이 되찾으려는 샌드위치는 이미 환풍구 먼지와 객실 바닥을 거쳤다. 그는 완벽한 한 컷을 위해 사람들을 뛰게 만들었지만, 정작 카메라 앞에 올릴 수 없는 빵을 붙잡고 있었다. 해림은 예비 빵을 들고 플랫폼으로 내려와 도겸의 가슴을 밀친다. “네가 살리려는 건 샌드위치가 아니라 네 별명이야.” 도겸은 반박하려다, 윤복자가 봉투를 가슴에 안고 문가에 서 있는 모습을 본다. 그는 처음으로 흰 장갑을 벗어 해림에게 건넨다. 그리고 예비 빵을 받지 않고, 객실 안으로 들어가 윤복자에게 촬영용 샌드위치를 손주에게 가져가라고 말한다.

막차 출발 경고음이 울리자 객실의 승객들은 멈춘다. 윤복자는 봉투를 열어 먼지 묻은 촬영용 샌드위치를 꺼내고, 자기 것이었던 따뜻한 샌드위치를 도겸에게 내민다. “이건 진짜 음식이니까, 네가 찍어.” 도겸은 손주 몫을 빼앗을 수 없다며 고개를 젓지만, 윤복자는 빵을 반으로 나눈다. 한쪽은 손주에게 줄 수 있게 봉투에 넣고, 다른 한쪽은 도겸의 손에 쥐여 준다. 해림은 그 반쪽을 받아 매장으로 달리고, 봉철은 빗자루로 사람들의 발밑을 정리하며 통로를 만든다.

촬영 시작 직전, 매장에는 반쪽짜리 샌드위치와 먼지 묻은 종이봉투, 봉철의 빗자루, 윤복자의 빨간 고무줄이 놓인다. 도겸은 더는 물방울을 찍지 않는다. 대신 해림이 지키던 예비 재료로 빈 단면을 채우고, 봉투의 구김과 고무줄까지 화면에 남긴다. 메뉴 보드의 초록빛 아래, 샌드위치는 완벽해서가 아니라 누군가가 들고 뛰고, 나누고, 닦아 낸 흔적 때문에 이상하게 살아 보인다. 촬영 셔터가 터지는 순간, 봉철은 바닥의 작은 소스 방울을 발견한다. 그는 수첩을 꺼내다가 멈추고, 빗자루로 조용히 문지른다. 윤복자의 막차는 떠나고, 도겸의 흰 장갑은 조리대 위에서 처음으로 누렇게 얼룩진 채 남는다.


World

The world

representative image

setting

수도권 지하철 2호선의 오래된 환승역 지하 2층, 막차가 끊기기 직전의 폐점 서브웨이 매장과 바로 아래 승강장이 하나의 전장처럼 붙어 있다. 매장은 초록 타일 벽, 스테인리스 조리대, 꺼지지 않는 메뉴 보드, 소독약과 구운 빵 냄새로 가득하다. 매장 뒤편의 낡은 환풍구는 승강장 천장 덕트와 이어져 있어, 떨어진 물건은 먼지와 바람을 타고 플랫폼 끝으로 굴러갈 수 있다.

매장 셔터는 반쯤 내려와 있고, 안쪽에는 촬영용 조명 스탠드, 반사판, 물방울 분무기, 양상추가 산처럼 쌓인 트레이가 놓여 있다. 아래 승강장에는 막차를 놓친 사람, 야간 근무자, 운동복 차림의 윤복자 같은 단골들이 남아 있다. 이곳에서는 샌드위치 하나가 음식이 아니라 약속, 증거물, 광고 소품, 그리고 통행을 막는 재난이 된다.

time period

가까운 현재의 늦가을 평일 밤이다. 밤 11시 53분, 광고 촬영 시작까지 7분 남은 시점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역은 다음 날 새벽의 본사 위생 점검과 광고 공개를 앞두고 있으며, 매장은 폐점했지만 완전히 닫힐 수 없다. 막차가 지나가면 환풍구 아래 선로 구역은 새벽 정비 전까지 접근 금지다.

rules

촬영용 음식은 카메라 앞에 놓이기 전까지 매장 밖으로 반출하면 안 되며, 반출 사실이 확인되면 촬영팀과 매장 모두 위생 사고 책임을 진다. 그래서 배도겸은 환풍구로 사라진 샌드위치를 포기하지 못하고, 나해림은 예비 재료를 꺼내는 순간 장부 조작이 드러날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승강장과 선로 주변에 소스나 음식물이 떨어지면 역무 경비원은 즉시 구역을 통제하고 변상 기록을 남겨야 한다. 오봉철의 빗자루와 얼룩 수첩은 단순한 청소 도구가 아니라 도겸의 구조 작전을 멈출 수 있는 권한이 된다.

막차 출입문이 닫힌 뒤에는 승객이 소지한 물건을 강제로 회수할 수 없으며, 분실물 처리는 종착역에서만 가능하다. 윤복자가 자기 봉투에 들어간 촬영용 샌드위치를 손주 몫이라 주장하면, 도겸은 객실 안의 승객들을 설득하거나 다음 역까지 따라가야 한다.

매장 재고는 폐점 후 5분 단위로 본사 서버에 자동 기록되며, 폐기 직전 재료라도 사용하면 수량 차이가 남는다. 나해림에게 예비 30센티 빵은 도겸을 살릴 수 있는 탈출구인 동시에 자신의 직장을 잃게 할 수 있는 버튼이다.

technologies philosophies

이 역의 일상은 자동화된 재고 관리, 폐점 시간 기록, CCTV, 청소 평가표처럼 작은 규정들에 지배된다. 본사는 빵과 채소의 수량을 숫자로만 보지만, 현장 사람들은 그 숫자 하나 때문에 야근, 변상, 계약 해지, 손주와의 약속을 떠안는다.

광고 촬영 기술은 평범한 샌드위치를 영웅처럼 보이게 만든다. 초고속 카메라, 반사판, 핀셋, 분무기는 도겸에게 무기와 다름없지만, 실제 역의 먼지와 사람 냄새 앞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다. 이 세계에서 완벽한 한 컷은 늘 누군가의 숨겨 둔 재료, 누군가의 늦은 귀가, 누군가의 규정 위반 위에 세워진다.

역무원들은 “얼룩은 기록하면 사고가 된다”는 식의 방어적인 철학으로 움직인다. 반대로 막차 승객들은 낯선 이의 물건도 잠깐씩 넘겨 주며, 규정보다 당장의 사정을 먼저 본다. 그 느슨한 연대가 샌드위치를 객실 끝까지 보내기도 하고, 도겸에게 마지막 기회를 만들기도 한다.

visual description

형광등의 차가운 흰빛과 서브웨이 특유의 초록·노랑 조명이 서로 충돌한다. 매장 안은 지나치게 반짝인다. 오이 표면에는 도겸이 찍은 물방울이 유리구슬처럼 맺히고, 토마토 단면은 재난영화의 석양처럼 붉다. 반면 환풍구 안쪽은 회색 먼지, 검은 고무 조각, 바람에 흔들리는 영수증으로 가득한 좁은 금속 터널이다.

승강장은 젖은 타일 바닥에 메뉴 보드의 초록빛이 길게 번지고, 멀리서 들어오는 막차의 전조등이 터널을 노란 칼날처럼 가른다. 빗자루를 든 오봉철의 그림자는 벽에 과장되게 늘어나고, 윤복자의 보라색 요가복과 초록색 종이봉투는 칙칙한 객실에서 이상할 만큼 선명하다. 모든 인물은 진지하게 뛰지만, 그들이 지키려는 것은 끝내 길이 30센티의 샌드위치다.


Locations

Where it happens

location 1 image

반쯤 닫힌 촬영 매장

반쯤 내려온 셔터 아래로 초록·노랑 메뉴 보드가 젖은 타일 바닥에 길게 번지고, 스테인리스 조리대 위에는 반사판과 조명 스탠드, 물방울 분무기, 양상추가 무너진 트레이가 빽빽하게 놓여 있다. 냉장고의 낮은 진동 위로 촬영 타이머가 짧고 성급하게 울리며, 차가운 형광등은 오이의 물방울과 토마토 단면을 지나치게 선명하게 드러낸다. 카운터 아래에는 초록색 종이봉투 하나가 조명 바람에 아주 조금씩 떨리고, 뒤편 낡은 환풍구의 금속 덮개는 먼지 낀 나사 하나만 남긴 채 비스듬히 열려 있다.

location 2 image

환풍구 끝 승강장

승강장 끝 천장에서는 낡은 환풍구가 검은 고무 조각과 회색 먼지를 뱉어 내고, 그 아래 노란 안전선 바깥으로 콘크리트 바닥이 길게 뻗어 있다. 형광 백색 아래에서 막차 전조등이 터널을 칼처럼 훑을 때마다, 환풍구에서 날아온 영수증 한 장이 선로 가장자리의 작은 배수 홈에 걸려 바람에 파르르 떤다. 레일의 울림은 멀어졌다가 다시 돌아오고, 벽에 붙은 오봉철의 얼룩 점검표는 빗자루 자루가 스칠 때마다 종이 모서리만 건조하게 흔들린다.

location 3 image

윤복자의 옥상 요가터

해 뜨기 전 옥상에는 해진 보라색 요가 매트 여섯 장이 마른 시멘트 바닥에 일정한 간격으로 깔려 있고, 난간 너머 아파트 창문들은 주황빛 사각형으로 하나씩 켜져 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빨랫줄의 플라스틱 집게가 가볍게 부딪히고, 멀리서 이른 새소리가 끊어졌다 이어진다. 한쪽 구석의 접이식 의자 위에는 윤복자의 초록색 종이봉투를 눌러 둔 작은 아령과, 손주 이름이 매직으로 적힌 보온병이 놓여 있어 이곳이 운동터이면서 약속을 준비하는 자리였음을 드러낸다.


Scenes

Scene by scene

Chapter 01

Scene 01· 늦가을 밤 11시 53분

물방울의 규격

물방울의 규격
Place반쯤 닫힌 촬영 매장 조리대 앞
Time늦가을 밤 11시 53분
Action배도겸은 핀셋으로 오이 한 장을 들어 촬영용 30센티 샌드위치 위에 올리고, 분무기로 물방울을 정확히 세 번 찍는다. 나해림은 양상추 트레이를 한쪽으로 밀며 재고 기록 알림이 뜨기 전에 장비부터 줄이라고 요구한다. 도겸은 그녀가 내민 타이머를 손등으로 밀어내고, 세 번째 물방울의 위치를 다시 잡는다. 해림은 샌드위치 아래의 받침 접시를 빼려 하지만 도겸이 접시 가장자리를 붙든다.
Impact도겸의 촬영 세트는 샌드위치 하나를 위해 조리대 전체를 점령한다. 해림은 그가 광고보다 자신의 평판을 붙들고 있다는 사실을 대놓고 지적하고, 도겸은 물방울 세 개가 무너지면 빵결도 무너진다고 맞선다. 두 사람이 같은 접시를 붙든 채 버티면서, 반사판과 양상추 트레이가 환풍구 쪽으로 조금씩 밀린다.

배도겸이 흰 장갑 낀 검지로 오이 위의 세 번째 물방울을 밀어 올리자, 초록 타일 벽에 메뉴 보드의 노란빛이 번져 샌드위치가 재난영화의 마지막 생존자처럼 번들거렸다. 반쯤 내려온 셔터 아래로 조명 바람이 들어와 카운터 밑 초록색 종이봉투를 가늘게 떨었다. 도겸은 핀셋 끝을 빵결 사이에 꽂고 오이를 한 밀리미터 돌렸다. “한 방울은 신선함, 두 방울은 절박함, 세 방울은 계약금입니다.”

나해림이 손목시계를 그의 얼굴 앞에 들이밀며 양상추 트레이를 잡아당겼다. “계약금은 물로 안 붙어 있어요. 이거 치우면 재고 기록부터 맞춰야 해요.” 도겸은 그녀의 손에서 타이머를 빼앗지는 않고, 울리는 화면을 손등으로 조리대 끝까지 밀었다. 해림이 샌드위치 받침 접시를 빼려 하자 도겸의 장갑 낀 손이 접시 가장자리를 덮었다. 둘의 팔꿈치가 반사판을 스쳤고, 은색 판이 흔들리며 양상추 트레이 쪽으로 얇은 빛을 던졌다.

“손대지 마세요.” 도겸이 낮게 말하자, 해림은 접시를 놓지 않은 채 고개를 기울였다. “그럼 당신도 매장에 손대지 마요.” 두 사람 사이에서 물방울 세 개가 오이 표면에 유리구슬처럼 버티고, 트레이 끝의 양상추 한 장이 낡은 환풍구 쪽으로 미끄러졌다.

Scene 02· 밤 11시 54분, 촬영 6분 전

다섯 분 빠른 시계

다섯 분 빠른 시계
Place반쯤 닫힌 서브웨이 촬영 매장 조리대 앞
Time밤 11시 54분, 촬영 6분 전
Action나해림은 손목시계를 조리대 위에 내리쳐 도겸의 분무기 옆에 세우고, 재고 기록 알림이 뜬 태블릿으로 양상추 트레이를 밀어낸다. 배도겸은 접시를 놓지 않은 채 반사판 다리를 풀어 더 낮은 각도로 기울인다. 해림은 조명 스탠드를 끄려 하지만, 도겸이 전원선 위로 흰 장갑 낀 손을 얹어 막는다.
Impact도겸의 고집 때문에 반사판은 샌드위치와 환풍구 사이의 좁은 공간까지 침범한다. 해림이 치우려던 양상추 트레이는 조리대 끝에서 불안하게 흔들리고, 촬영 세트는 더 이상 통제 가능한 공간이 아니게 된다.

나해림이 다섯 분 빠른 손목시계를 조리대에 쾅 내려놓자, 은색 반사판이 울림에 맞춰 양상추 트레이 쪽으로 한 번 떨었다. 반쯤 내려온 셔터 아래로 초록·노랑 메뉴 보드 빛이 젖은 타일에 길게 깔렸고, 시계 화면은 11시 59분을 가리켰다. “내 시계 기준으로는 이미 망했어요.” 해림은 태블릿을 들어 보였다. 폐점 재고 기록 알림이 빨갛게 떠 있는 화면 위로 양상추 한 장이 축 늘어졌다.

도겸은 샌드위치 접시를 한 손으로 붙든 채 반사판의 잠금 손잡이를 풀었다. “빛은 치우는 게 아니라 길들이는 겁니다.” 그는 반사판을 낮게 숙여 빵 옆면에 메뉴 보드의 노란 줄을 걸었다. 해림이 조명 스탠드 전원선을 잡아당기자 도겸의 흰 장갑이 그 선을 밟았고, 스탠드가 삐걱이며 환풍구 쪽으로 기울었다.

“그 빛 때문에 내 매장이 넘어져요.” 해림이 트레이를 끌어당겼지만, 반사판 모서리가 트레이의 플라스틱 벽을 눌렀다. 양상추 더미가 조리대 끝으로 밀리며 낡은 환풍구 덮개에 초록 잎 하나를 걸쳤다. 도겸은 반사판 각도를 고정하려고 손잡이를 끝까지 돌렸고, 시계의 초침만 조리대 위에서 성급하게 떨었다.

Scene 03· 밤 11시 59분, 촬영 시작 직전

환풍구로 간 영웅

환풍구로 간 영웅
Place반쯤 닫힌 서브웨이 촬영 매장 조리대와 낡은 환풍구 앞
Time밤 11시 59분, 촬영 시작 직전
Action배도겸이 반사판 잠금 손잡이를 끝까지 비트는 순간, 반사판 모서리가 양상추 트레이를 밀어낸다. 나해림은 무너지는 트레이를 붙잡으려다 샌드위치 접시를 건드리고, 젖은 조리대 위의 30센티 샌드위치가 환풍구 쪽으로 미끄러진다. 도겸은 흰 장갑 낀 손을 뻗지만 샌드위치는 금속 덮개 틈으로 떨어진다.
Impact도겸이 통제하려던 촬영 세트는 샌드위치 하나를 잃으며 무너진다. 촬영용 음식이 매장 밖 환풍구로 사라져, 도겸은 광고 촬영보다 회수 작전에 매달릴 수밖에 없게 된다. 해림은 재고와 위생 규정의 위험이 현실이 된 것을 눈앞에서 확인한다.

배도겸이 반사판의 잠금 손잡이를 마지막까지 비트는 순간, 은색 판의 모서리가 양상추 트레이 옆구리를 퍽 밀어냈다. 반쯤 내려온 셔터 아래로 메뉴 보드의 초록빛이 젖은 타일에 번지고, 트레이는 조리대 끝에서 비틀거리며 환풍구를 향해 밀렸다. 나해림이 태블릿을 내던지듯 내려놓고 양상추 더미를 붙잡았다. “손 놓으라고 했죠.” 그녀의 팔꿈치가 접시 가장자리를 쳤다.

접시가 한 번 돌았다. 오이 위의 물방울 세 개가 흔들리고, 30센티 샌드위치가 물기 남은 스테인리스 조리대를 길게 미끄러졌다. 도겸은 흰 장갑 낀 손으로 빵 끝을 움켜쥐려 했지만, 손끝에는 토마토 조각 하나만 눌어붙었다. “안 돼.” 짧은 소리와 함께 샌드위치가 비스듬히 열린 환풍구 덮개를 들이받았다.

금속 덮개가 덜컹 열리며 먼지 낀 틈을 드러냈고, 샌드위치는 초록빛 양상추를 꼬리처럼 끌며 그 안으로 떨어졌다. 나해림이 환풍구 앞에 멈춰 선 도겸의 등을 밀어 비켜 세우려 했지만, 그는 텅 빈 구멍 위로 두 손을 뻗은 채 움직이지 못했다. 조리대 위에는 구겨진 양상추, 쓰러진 반사판, 그리고 물방울 하나가 터진 오이만 남아 있었다.

Chapter 02

Scene 04· 밤 11시 59분, 막차 도착 직전

노란 선 앞의 빗자루

노란 선 앞의 빗자루
Place환풍구 끝 승강장
Time밤 11시 59분, 막차 도착 직전
Action오봉철은 환풍구 아래로 떨어진 피클 조각을 집게로 집어 얼룩 수첩에 기록한 뒤, 선로 쪽으로 몸을 기울이는 배도겸의 팔을 빗자루 자루로 가로막는다. 그는 노란 안전선 바로 앞 바닥에 빗자루를 길게 눕혀 임시 통제선을 만든다. 나해림은 매장에서 들고 내려온 촬영 타이머를 흔들며 도겸을 끌어내려 하지만, 도겸은 환풍구 끝에서 흔들리는 양상추 조각을 향해 손을 뻗는다.
Impact도겸은 샌드위치가 아직 회수 가능한 거리에 있다는 생각에 더 집요하게 안전선 안쪽으로 파고든다. 봉철은 규정을 지켰다는 표시로 수첩에 도겸의 이름 첫 글자를 적지만, 빗자루 통제선 때문에 샌드위치가 굴러갈 길을 막지 못한다. 막차 전조등이 터널 끝을 훑으며 승강장 전체의 시간이 급격히 좁아진다.

오봉철이 노란 안전선 앞에 빗자루를 쾅 내려놓고, 몸을 숙인 배도겸의 팔꿈치를 자루 끝으로 밀어냈다. 환풍구는 승강장 천장에서 회색 먼지와 검은 고무 조각을 토해 냈고, 그 아래 콘크리트 바닥에는 피클 한 조각이 젖은 채 붙어 있었다. 봉철은 긴 집게로 피클을 집어 비닐 봉투에 넣고, 얼룩 수첩에 날짜와 위치를 또박또박 적었다. “피클 하나가 선로에 가면, 오늘 밤은 전부 사고야.”

도겸이 흰 장갑 낀 손으로 빗자루 자루를 밀어내려 하자, 봉철은 자루를 가로로 세워 그의 가슴 앞에 박았다. 나해림이 계단 아래로 뛰어와 타이머 화면을 들이밀었다. “도겸 씨, 지금 내려가면 촬영은 끝이에요.” 도겸은 환풍구 바람에 끌려 나온 양상추 조각이 플랫폼 끝으로 미끄러지는 것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끝난 건 저기서부터예요.”

봉철은 수첩 한쪽에 ‘배— 안전선 침범 시도’라고 적고, 빗자루를 노란 선 위에 길게 눕혔다. 터널 저편에서 막차 전조등이 번쩍이며 들어오자, 빗자루 그림자가 타일 벽을 따라 터무니없이 길어졌다. 그 바람에 환풍구 끝에서 먼지 묻은 빵 부스러기 하나가 바닥으로 튀어 나와, 열린 문이 기다리는 플랫폼 끝을 향해 천천히 굴렀다.

Scene 05· 밤 11시 59분, 막차 도착 직전

쿠키 부스러기와 7분

쿠키 부스러기와 7분
Place환풍구 끝 승강장, 노란 안전선 앞
Time밤 11시 59분, 막차 도착 직전
Action나해림은 오봉철의 빗자루 통제선 앞에 쿠키 한 장을 내밀고, 잠깐만 환풍구 아래를 확인하게 해 달라고 요구한다. 오봉철은 쿠키를 받되 부러진 부스러기까지 얼룩 수첩에 기록하며 통제선을 거두지 않는다. 배도겸은 빗자루를 빌려 환풍구 끝을 더듬으려 하지만, 오봉철이 자루를 놓지 않아 둘의 손이 빗자루 위에서 맞붙는다. 그때 막차 전조등이 승강장을 훑고, 환풍구에서 먼지 묻은 촬영용 샌드위치가 바닥으로 튀어나온다.
Impact오봉철은 규정을 지키려 쿠키 부스러기까지 증거처럼 남기지만, 샌드위치가 실제로 회수 가능한 위치에 있다는 사실을 눈앞에서 확인한다. 배도겸은 샌드위치를 향한 길을 확보했다고 믿고 통제선을 넘을 준비를 한다. 나해림은 남은 시간이 7분뿐임을 외치며, 도겸의 추격이 촬영과 재고 기록을 동시에 무너뜨릴 수 있음을 분명히 한다.

나해림이 노란 안전선 위로 쿠키 한 장을 툭 내밀자, 오봉철은 빗자루 자루를 든 채 그것을 집게로 받아 들었다. 환풍구 끝 승강장 천장에서는 회색 먼지가 떨어지고, 막차 전조등이 터널 벽을 훑을 때마다 봉철의 비닐 앞치마가 희게 번뜩였다. “길은 안 열어 줍니다.” 봉철은 쿠키를 비닐 봉투에 넣고, 바스러져 바닥에 떨어진 조각 세 개를 집게 끝으로 모았다.

그는 얼룩 수첩에 ‘쿠키 부스러기, 안전선 전방’이라고 적었다. 배도겸이 흰 장갑 낀 손으로 빗자루 자루를 잡아당겼다. “환풍구 끝만 보면 됩니다.” 봉철은 자루를 놓지 않은 채 도겸의 손등을 밀어냈고, 나해림은 타이머 화면을 흔들며 “7분이에요. 쿠키 기록 끝나면 빵도 끝나요”라고 쏘아붙였다.

그 순간 환풍구 안에서 검은 고무 조각 하나가 먼저 튀어나오고, 그 뒤로 먼지와 양상추를 뒤집어쓴 30센티 샌드위치가 콘크리트 바닥에 떨어졌다. 샌드위치는 노란 선을 따라 한 바퀴 돌더니, 막차가 열 문 쪽으로 천천히 굴러가기 시작했다. 오봉철의 수첩 위에는 쿠키 부스러기 세 개가 작은 갈색 점처럼 붙어 있었다.

Scene 06· 밤 11시 59분, 막차 출입문이 열린 순간

열린 문으로 사라진 소품

열린 문으로 사라진 소품
Place환풍구 끝 승강장과 막차 출입문 앞
Time밤 11시 59분, 막차 출입문이 열린 순간
Action배도겸이 굴러가는 촬영용 샌드위치를 향해 노란 안전선을 넘어 달려들고, 오봉철은 빗자루 자루로 그의 허리를 걸어 막는다. 나해림은 조명 스탠드 전원선을 붙잡아 끌어당기지만, 늘어진 케이블이 도겸과 봉철의 발목을 함께 감는다. 두 사람이 콘크리트 바닥으로 넘어지는 사이 샌드위치는 막차의 열린 문턱을 넘어 윤복자의 초록·노랑 종이봉투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Impact오봉철은 안전선을 지켰지만, 회수할 수 있던 샌드위치를 객실 안으로 보내 버린다. 배도겸은 역의 통제선과 규정이 닿지 않는 막차 승객들 사이로 추격해야 하는 처지가 된다. 윤복자는 봉투 안의 낯선 무게를 느끼고, 출발 직전의 객실에서 샌드위치를 지킬 선택권을 손에 쥔다.

배도겸이 먼지 묻은 30센티 샌드위치를 향해 몸을 던지자, 오봉철은 빗자루 자루를 그의 허리 앞에 세게 밀어 넣었다. 막차 전조등이 환풍구 끝 승강장을 노랗게 베고 지나가며, 회색 먼지와 양상추 조각을 뒤집어쓴 샌드위치는 열린 출입문 쪽으로 빙글빙글 굴렀다. “선 넘지 마!” 봉철이 외쳤지만 도겸은 흰 장갑 낀 손을 바닥에 짚고 빗자루 아래로 기어들었다. 나해림이 계단 쪽에서 조명 스탠드 전원선을 끌어당기며 타이머를 흔들었다. “둘 다 비켜요, 빵이 도망가잖아!”

케이블이 봉철의 구두 밑창을 감고, 다음 순간 도겸의 발목까지 묶었다. 봉철의 비닐 앞치마가 펄럭이며 뒤집혔고, 빗자루는 노란 안전선을 길게 긁은 채 두 사람 사이에 떨어졌다. 봉철은 넘어지면서도 수첩을 가슴에 품었지만, 샌드위치는 그의 손끝을 한 뼘 비껴 갔다. 열린 막차 문턱이 검은 입처럼 기다리고 있었다.

샌드위치는 객실 바닥의 고무 홈을 타고 미끄러져 윤복자의 초록·노랑 종이봉투 안으로 쏙 들어갔다. 윤복자는 보라색 요가복 소매로 봉투 입구를 눌러 잡고 아래를 내려다봤다. 출입문 경고음이 울리는 동안, 봉철의 빗자루 끝에는 먼지 묻은 양상추 한 장만 매달려 흔들렸다.

Chapter 03

Scene 07· 밤 11시 54분, 출발 경고음 직전

봉투의 무게

봉투의 무게
Place환풍구 끝 승강장에 정차한 막차 출입문 앞
Time밤 11시 54분, 출발 경고음 직전
Action윤복자는 종이봉투 속에 환풍구 먼지가 묻은 긴 샌드위치가 들어온 것을 확인하고, 봉투 입구를 빨간 고무줄로 단단히 묶는다. 배도겸이 객실 문턱까지 달려와 봉투를 돌려달라고 손을 내밀지만, 윤복자는 자기 샌드위치가 든 작은 포장까지 봉투 안쪽으로 밀어 넣는다. 오봉철은 빗자루 자루를 문 앞에 걸쳐 도겸의 접근을 막고, 나해림은 플랫폼 끝에서 타이머와 예비 빵을 동시에 움켜쥔 채 그를 부른다.
Impact윤복자는 촬영용 샌드위치가 자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손주에게 빈손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선택을 행동으로 굳힌다. 도겸은 객실 밖에서 봉투를 되찾을 수 없게 되고, 다음 장면에서 승객들 사이로 들어가야 할 이유가 생긴다. 해림은 예비 빵을 꺼낼 수 있는 마지막 선택지를 손에 쥔 채 승강장에 남는다.

윤복자가 초록·노랑 종이봉투의 입구를 두 손으로 비틀어 잡고, 해진 빨간 고무줄을 세 번 감아 묶었다. 막차 출입문 앞 고무 바닥에는 먼지 묻은 양상추 조각이 붙어 있었고, 환풍구에서는 검은 고무 조각 하나가 늦게 떨어져 노란 안전선 옆을 튀었다. 봉투 안에서는 길고 묵직한 촬영용 샌드위치가 옆으로 밀리며 종이를 불룩하게 만들었다. 윤복자는 보라색 요가복 주머니에서 울리는 휴대전화를 꺼내 화면도 보지 않고 껐다.

배도겸이 문턱까지 뛰어와 흰 장갑 낀 손을 내밀었다. “그 봉투, 제 겁니다.” 윤복자는 봉투를 가슴에 눌러 안고, 안쪽에 있던 따뜻한 자기 샌드위치 포장을 손바닥으로 더 깊이 밀어 넣었다. “봉투는 내 거고, 애 밥은 더 내 거야.” 오봉철이 빗자루 자루를 출입문 앞에 가로질러 세우자 도겸의 정강이가 나무 자루에 걸렸고, 나해림은 승강장 바닥에 예비 30센티 빵이 든 종이 포장을 발로 가려 놓은 채 타이머를 흔들었다. “도겸 씨, 남은 시간 보고 있어요!”

윤복자는 묶인 봉투를 옆 좌석 쪽으로 반 뼘 밀어 두고, 객실 안쪽을 향해 눈을 가늘게 떴다. 출발 경고음이 한 번 울리자, 봉투의 빨간 고무줄이 형광등 아래에서 팽팽하게 떨렸다.

Scene 08· 밤 11시 54분, 출발 경고음 직전

빗자루와 안전선

빗자루와 안전선
Place환풍구 끝 승강장에 정차한 막차 출입문 앞
Time밤 11시 54분, 출발 경고음 직전
Action배도겸이 윤복자의 종이봉투를 향해 손을 뻗자, 오봉철이 빗자루 자루를 두 사람 사이에 세워 길을 막는다. 윤복자는 봉투를 좌석 안쪽으로 밀고, 객실의 승객들을 향해 짧게 눈짓한다. 나해림은 예비 30센티 빵 포장을 발끝으로 가린 채 타이머를 흔들며 도겸에게 돌아오라고 소리친다.
Impact도겸은 봉투를 되찾으려면 막차 객실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봉철의 통제는 도겸을 막지만, 출입문 앞의 좁은 틈을 더 절박한 추격로로 만든다. 윤복자는 봉투를 지키는 대신, 촬영용 샌드위치를 객실 안에서 패스할 준비를 끝낸다.

오봉철이 빗자루 자루를 출입문 문턱에 쾅 박아 넣자, 배도겸의 흰 장갑 낀 손이 윤복자의 초록·노랑 종이봉투 바로 앞에서 멈췄다. 환풍구 끝 승강장 천장에서는 회색 먼지가 가늘게 떨어졌고, 노란 안전선 너머 레일은 막차 전조등에 번들거렸다. 윤복자는 봉투를 보라색 요가복 가슴에 끌어안은 채, 빨간 고무줄이 풀리지 않았는지 엄지로 한 번 눌렀다.

“봉투는 건드리지 마세요. 소스라도 새면 문 닫습니다.” 봉철이 빗자루를 비스듬히 밀자 도겸의 정강이가 자루에 부딪혔다. 도겸은 자루 위로 몸을 넘기려다 “그건 먹을 물건도 아니에요!” 하고 외쳤고, 윤복자는 객실 안쪽을 보며 “먹을 사람은 있지”라고 잘랐다. 나해림이 타이머 화면을 흔들며 도겸의 등을 향해 소리쳤다. “돌아와요, 지금도 예비 빵은 살아 있어요!”

윤복자는 봉투를 옆 좌석 쪽으로 밀어 놓고, 객실 안을 향해 손가락 두 개를 가볍게 들었다. 출발 경고음이 다시 울리는 사이, 객실 안쪽에서 누군가의 손이 봉투 손잡이 가까이 올라왔다. 빗자루 자루 아래로 몸을 낮춘 도겸의 흰 장갑 끝이 고무 바닥을 짚었고, 봉투의 빨간 고무줄은 형광등 아래에서 팽팽하게 떨렸다.

Scene 09· 밤 11시 59분, 출발 경고음이 세 번째 울리는 순간

막차의 첫 패스

막차의 첫 패스
Place환풍구 끝 승강장에 정차한 막차 출입문 앞
Time밤 11시 59분, 출발 경고음이 세 번째 울리는 순간
Action윤복자는 빨간 고무줄로 묶인 초록·노랑 종이봉투를 객실 안쪽 좌석으로 던진다. 배도겸은 오봉철의 빗자루 아래를 미끄러져 닫히는 출입문 사이로 몸을 밀어 넣는다. 나해림은 승강장 바닥에 숨긴 예비 30센티 빵을 발끝으로 끌어당겨 조명 케이블 뒤에 감춘다.
Impact촬영용 샌드위치는 이제 승강장이 아니라 막차 객실 안에서 승객들의 손을 타게 된다. 배도겸은 회수 작전을 포기하지 못한 채 막차에 올라타고, 나해림은 예비 빵과 재고 기록을 홀로 지켜야 한다. 오봉철의 빗자루 통제선은 문턱에서 끊기지만, 소스 얼룩에 대한 그의 감시는 객실 안까지 따라붙는다.

윤복자가 출발 경고음에 맞춰 초록·노랑 종이봉투를 옆 좌석 쪽으로 세게 던지자, 빨간 고무줄이 형광등 아래에서 팽 하고 튀었다. 봉투는 객실 바닥의 검은 고무 홈을 한 번 긁고, 열린 손들 너머로 미끄러졌다. 환풍구 끝 승강장 천장에서는 회색 먼지가 떨어지고, 노란 안전선 옆 배수 홈에 걸린 영수증이 막차 바람에 파르르 떨었다.

“손주 밥은 패스 금지야!” 윤복자가 외치자, 배도겸은 빗자루 자루 아래로 어깨를 밀어 넣었다. 오봉철이 자루를 끌어올리며 “소스 떨어지면 다음 역까지 청소다!” 하고 소리쳤지만, 도겸의 흰 장갑은 이미 문턱 안쪽 고무 바닥을 짚고 있었다. 나해림은 승강장 바닥의 종이 포장을 구두 끝으로 조명 케이블 뒤에 밀어 숨긴 뒤, 타이머를 든 손으로 도겸을 향해 주먹을 쥐었다.

출입문이 도겸의 조끼 끝을 한 번 물었다가 다시 벌어졌다. 도겸이 객실 안으로 굴러 들어가는 동안, 윤복자는 빈손을 들어 다음 좌석 쪽을 가리켰다. 봉투는 객실 안쪽으로 넘어가고, 빨간 고무줄만 문가의 초록빛 속에서 마지막으로 흔들렸다.

Chapter 04

Scene 10· 밤 11시 56분, 출발 경고음 직후

빗자루 끝의 객실 문

빗자루 끝의 객실 문
Place환풍구 끝 승강장과 막차 출입문
Time밤 11시 56분, 출발 경고음 직후
Action배도겸은 오봉철의 빗자루 자루 아래로 몸을 밀어 넣어 막차 객실 바닥에 굴러 들어간다. 오봉철은 빗자루 끝으로 문턱을 막은 채 소스가 떨어지면 즉시 통제하겠다고 외치고, 윤복자는 객실 안쪽으로 넘어간 초록·노랑 종이봉투를 손짓으로 더 멀리 보낸다. 나해림은 승강장에 남아 숨겨 둔 예비 30센티 빵과 타이머를 번갈아 붙잡는다. 도겸이 봉투 손잡이를 거의 잡는 순간, 윤복자가 빨간 고무줄을 튕겨 봉투를 객실 안쪽으로 밀어낸다.
Impact도겸은 촬영용 샌드위치를 되찾으려면 객실 안쪽까지 계속 쫓아가야 한다. 오봉철의 통제는 문턱을 넘어서도 빗자루와 경고로 따라붙고, 해림은 예비 빵을 꺼낼 결단을 더 미룰 수 없게 된다. 봉투는 도겸의 손에서 벗어나 객실 중앙으로 이동한다.

배도겸이 오봉철의 빗자루 자루를 양손으로 들어 올리고, 환풍구 끝 승강장의 노란 안전선 위를 미끄러지듯 넘어 막차 객실 바닥에 어깨부터 처박혔다. 출입문은 그의 조끼 끝을 한 번 씹듯 닫혔다가 다시 벌어졌고, 천장에서 떨어진 회색 먼지가 흰 장갑 위에 얇게 내려앉았다. 도겸이 몸을 일으키자 초록·노랑 종이봉투는 두 좌석 너머에서 빨간 고무줄을 번쩍이며 흔들렸다.

“그 봉투, 멈춰요!” 도겸이 손을 뻗자 윤복자는 보라색 소매를 걷어 올리고 봉투 손잡이를 객실 안쪽으로 밀었다. 오봉철은 문밖에서 빗자루 끝을 문턱에 쾅 찍었다. “한 방울만 떨어져도 이 문, 못 나갑니다!” 나해림은 승강장 바닥에 숨긴 종이 포장을 발끝으로 끌어당긴 채 타이머를 들어 보였다. “도겸 씨, 빵보다 시간이 먼저 죽어요!”

도겸의 장갑 끝이 봉투 손잡이를 스쳤다. 윤복자가 빨간 고무줄을 엄지로 튕기자 봉투는 검은 고무 바닥을 긁으며 객실 중앙으로 한 번 더 미끄러졌고, 도겸의 흰 장갑에는 먼지 자국만 길게 남았다.

Scene 11· 막차 출발 경고음이 세 번째 울리기 직전

예비 빵의 가격표

예비 빵의 가격표
Place환풍구 끝 승강장과 반쯤 닫힌 촬영 매장 사이
Time막차 출발 경고음이 세 번째 울리기 직전
Action나해림은 승강장 바닥에 숨겨 둔 종이 포장을 걷어 차지듯 집어 들고, 셔터 아래 촬영 매장으로 뛰어 들어간다. 그는 카운터 아래 냉장 보관함을 열어 예비 30센티 빵을 꺼낸 뒤, 재고 서버 전송 알림이 뜬 휴대전화를 쥔 채 다시 도겸에게 달려간다. 객실 문턱에 걸친 배도겸의 가슴에 해림이 예비 빵을 밀어 넣지만, 도겸은 먼지 묻은 종이봉투만 쫓으며 빵을 받지 못한다. 오봉철은 빗자루로 문턱을 두드리며 떨어질 소스를 경고하고, 윤복자는 봉투를 객실 더 안쪽으로 끌어당긴다.
Impact예비 빵은 더 이상 안전한 대안이 아니라 나해림의 재고 장부와 직장을 걸고 꺼낸 물건이 된다. 배도겸은 손에 들어온 깨끗한 빵보다 이미 오염된 촬영용 샌드위치를 택하려 하지만, 그 선택을 말로 밀어붙일 자신조차 잃는다. 나해림은 도겸이 붙든 것이 광고 소품이 아니라 자신의 평판이라는 사실을 그의 얼굴 앞에 들이민다.

나해림이 반쯤 닫힌 촬영 매장의 냉장 보관함을 확 열어젖히고, 비닐에 싸인 예비 30센티 빵을 꺼내 승강장 쪽으로 내달렸다. 초록·노랑 메뉴 보드 빛이 젖은 타일에 길게 번졌고, 조리대 위의 분무기와 핀셋은 양상추 더미 사이에서 버려진 수술 도구처럼 흔들렸다. 해림의 휴대전화 화면에는 재고 서버 전송까지 남은 시간이 붉은 숫자로 줄어들고 있었다.

그녀는 막차 문턱에 반쯤 걸친 배도겸의 가슴에 빵을 세게 밀어 넣었다. “이거 쓰면 내 장부에 구멍 나요. 그러니까 당신도 하나는 포기해요.” 도겸의 흰 장갑은 빵 포장을 붙잡지 못한 채 객실 중앙의 초록·노랑 종이봉투를 향해 떠 있었다. 윤복자가 보라색 소매로 봉투를 감싸 안고 한 걸음 물러서자, 오봉철은 빗자루 끝으로 문턱을 쾅 찍었다. “빵 두 개면 소스도 두 배야. 내 바닥은 하나면 충분해!”

도겸의 손에서 예비 빵 포장이 미끄러져 고무 바닥에 떨어졌다. 비닐 속 깨끗한 빵은 형광등 아래 멀쩡하게 누워 있었고, 도겸의 장갑에는 환풍구 먼지가 회색 줄로 번져 있었다. 해림은 떨어진 빵을 발끝으로 막아 세운 채, 도겸의 얼굴을 향해 타이머를 들어 보였다.

Scene 12· 밤 11시 59분, 출발 경고음이 세 번째 울리는 순간

흰 장갑의 빈자리

흰 장갑의 빈자리
Place환풍구 끝 승강장에 정차한 막차 출입문 앞
Time밤 11시 59분, 출발 경고음이 세 번째 울리는 순간
Action배도겸은 고무 바닥에 떨어진 예비 30센티 빵을 주워 들었다가, 곧바로 나해림의 손에 다시 밀어 넣는다. 그는 객실 중앙으로 패스된 초록·노랑 종이봉투를 향해 뻗던 손을 거두고, 먼지 묻은 흰 장갑을 하나씩 벗는다. 오봉철은 빗자루로 문턱을 막은 채 소스가 샐지 지켜보고, 윤복자는 봉투 안의 촬영용 샌드위치를 꺼내 손주 몫으로 챙긴다. 윤복자는 대신 자신이 산 따뜻한 샌드위치를 빨간 고무줄 위에서 반으로 갈라 도겸에게 건넨다.
Impact도겸은 환풍구와 객실 바닥을 거친 촬영용 샌드위치 회수를 포기한다. 해림은 도겸이 건넨 장갑과 반쪽 샌드위치를 받아 들고 매장으로 돌아갈 이유를 얻는다. 봉철은 통제해야 할 오염과 누군가의 늦은 귀가 사이에서, 빗자루를 처음으로 길을 터 주는 도구처럼 움직인다. 광고 촬영에는 완벽한 30센티 샌드위치가 아니라, 나누어진 따뜻한 반쪽이 남는다.

배도겸이 고무 바닥의 예비 빵을 집어 나해림의 가슴으로 밀어 넣고, 환풍구 먼지로 회색 줄이 난 흰 장갑을 오른손부터 벗었다. 막차 출입문 위 경고등이 붉게 깜빡이는 사이, 오봉철의 빗자루는 문턱을 가로막은 채 바닥의 작은 소스 자국만 따라 움직였다. 해림이 빵 포장을 붙들고 낮게 쏘아붙였다. “이거면 끝낼 수 있어요.” 도겸은 대답 대신 왼손 장갑까지 벗어 해림의 손등 위에 올렸다.

윤복자가 객실 중앙에서 초록·노랑 종이봉투를 열었다. 먼지 묻은 촬영용 샌드위치가 봉투 입구로 길게 고개를 내밀자, 도겸은 그것을 향해 한 걸음도 가지 않고 말했다. “그건 가져가세요. 손주 밥으로요.” 봉철이 빗자루 끝을 들어 올리며 “먼지 묻은 걸 애한테?” 하고 묻자, 윤복자는 자기 봉투 안쪽에서 따뜻한 샌드위치를 꺼내 빨간 고무줄 위에 올렸다.

윤복자는 샌드위치를 반으로 갈라 한쪽을 봉투에 넣고, 다른 한쪽을 도겸의 맨손에 쥐여 주었다. “진짜 음식은 나눠도 음식이야.” 해림은 누렇게 얼룩진 장갑과 반쪽 샌드위치를 양손에 받아 들었고, 봉철은 빗자루를 옆으로 치워 매장 쪽 초록빛 통로를 열었다.

Chapter 05

Scene 13· 막차 출발 경고음이 울리는 밤 11시 59분

반쪽의 단면

반쪽의 단면
Place반쯤 닫힌 서브웨이 촬영 매장 조리대 앞
Time막차 출발 경고음이 울리는 밤 11시 59분
Action나해림은 배도겸의 맨손에서 반쪽 샌드위치를 낚아채 조리대 위 촬영 접시에 올린다. 그는 예비 빵 포장을 뜯어 깨끗한 30센티 빵을 꺼내려 하지만, 해림은 포장지를 다시 움켜쥐고 재고 서버 알림을 보여 준다. 오봉철은 승강장에서 따라 들어온 소스 방울을 발견하고 수첩을 펼치며 카운터 쪽을 막는다. 해림은 반쪽의 잘린 단면을 카메라 쪽으로 돌렸다가, 어떤 각도에서도 빈 속이 드러나는 것을 확인한다.
Impact해림은 예비 재료를 쓰되 예비 빵 전체를 새로 조립하지 않는 방식으로 방향을 정한다. 도겸은 완벽한 물방울 세 개를 되살리려 하지만, 해림의 손에 분무기와 촬영의 주도권을 빼앗긴다. 구겨진 종이봉투와 빨간 고무줄은 이제 되돌려 줄 물건이 아니라, 반쪽 샌드위치를 살릴 수 있는 촬영 세트의 일부가 된다.

나해림이 배도겸의 맨손에서 반쪽 샌드위치를 홱 빼앗아 스테인리스 조리대 위 검은 촬영 접시에 내려쳤다. 반쯤 닫힌 셔터 아래로 초록·노랑 메뉴 보드 빛이 젖은 타일을 길게 핥았고, 잘린 단면에서는 양상추 한 가닥과 토마토 조각이 맥없이 흘러나왔다. 도겸은 누런 얼룩이 밴 장갑을 옆에 던지고 핀셋을 집어 들었다. “단면만 숨기면 됩니다.” 그가 반사판을 밀어 빛을 기울이자, 해림은 예비 빵 포장을 그의 손등 위에서 탁 접어 버렸다.

“그 빵을 통째로 쓰면, 내일 아침에 난 빵 도둑이에요.” 해림은 휴대전화의 붉은 재고 전송 알림을 도겸 코앞에 들이밀고, 포장 안에서 피클과 양상추, 치즈만 꺼내 작은 트레이에 쏟았다. 그때 오봉철이 빗자루 끝으로 카운터 아래를 가리켰다. 승강장에서 묻어 온 주황빛 소스 방울 하나가 타일 위에서 메뉴 보드 빛을 받아 번들거렸다. 그는 얼룩 수첩을 펼치며 말했다. “이건 찍기 전에 적어야 합니다. 번지면 두 줄이에요.” 멀리 객실 쪽에서 윤복자의 보라색 소매가 흔들리고, 초록 종이봉투의 빨간 고무줄이 셔터 틈 바람에 가늘게 떨렸다.

해림은 도겸의 분무기를 빼앗아 조리대 구석으로 밀어 놓고, 구겨진 종이봉투를 반쪽 샌드위치 뒤에 세웠다. 이어 빨간 고무줄을 봉투와 접시 사이에 걸어, 빈 단면 앞을 가릴 얇은 초록 그림자를 만들었다. 도겸의 핀셋은 공중에서 멈췄고, 해림이 예비 트레이의 양상추 한 줌을 잘린 빵 쪽으로 끌어당겼다.

Scene 14· 막차 출발 경고음과 재고 서버 전송 직전

얼룩의 가격

얼룩의 가격
Place반쯤 닫힌 서브웨이 촬영 매장 조리대와 환풍구 끝 승강장
Time막차 출발 경고음과 재고 서버 전송 직전
Action오봉철이 카운터 아래의 주황빛 소스 방울을 발견하고 얼룩 수첩을 펼치자, 나해림은 배도겸의 분무기를 빼앗아 조리대 끝으로 밀어 버린다. 도겸은 물방울로 반쪽 샌드위치의 단면을 속이려 하지만, 해림은 윤복자의 구겨진 종이봉투와 빨간 고무줄을 촬영 접시 주변에 올려 빈 부분을 가린다. 봉철은 얼룩을 기록하겠다며 빗자루를 들고 조리대 앞으로 다가오고, 해림은 예비 재료 트레이를 열어 잘린 단면을 채우기 시작한다.
Impact촬영의 기준이 도겸의 완벽한 물방울 세 개에서 해림이 만든 구김과 흔적으로 바뀐다. 예비 빵 전체를 쓰지 않는 대신, 예비 재료 사용은 피할 수 없게 되어 해림의 재고 기록 위험이 더 선명해진다. 봉철의 수첩은 바닥의 소스 방울과 촬영 세트 사이에 놓이며, 다음 순간 그가 기록할지 닦을지 결정해야 하는 위치로 밀려난다.

나해림이 배도겸의 손에서 분무기를 낚아채 조리대 끝으로 던지자, 투명한 병이 스테인리스 벽에 부딪혀 물방울 몇 개를 바닥에 뱉었다. 반쯤 닫힌 셔터 아래 초록·노랑 메뉴 보드 빛이 젖은 타일을 가르고, 오봉철은 카운터 아래의 주황빛 소스 방울 앞에 빗자루를 세운 채 얼룩 수첩을 펼쳤다. “이건 한 줄 아닙니다. 신발 자국까지 붙으면 두 줄이에요.” 도겸이 핀셋으로 양상추 가닥을 세우려 하자 해림은 그의 손목을 밀어 냈다.

해림은 윤복자의 초록 종이봉투를 반쪽 샌드위치 뒤에 세우고, 빨간 고무줄을 봉투 손잡이와 접시 가장자리 사이에 팽팽하게 걸었다. 구겨진 봉투 면이 조명 바람에 흔들리며 잘린 단면 앞에 초록 그림자를 만들었다. “물 뿌리지 마요. 오늘은 구긴 걸 찍어요.” 해림은 비닐 포장 안에서 피클, 치즈, 양상추를 한 움큼 꺼내 반쪽 빵의 빈쪽으로 밀어 넣었고, 도겸의 핀셋 끝은 그 옆에서 허공만 집었다.

승강장 쪽에서 윤복자의 막차가 낮게 울리자, 오봉철은 수첩에 펜촉을 댄 채 소스 방울과 촬영 접시를 번갈아 보았다. 해림은 예비 토마토 한 조각을 단면 속에 꽂고, 빨간 고무줄을 한 번 더 당겨 봉투의 구김을 프레임 쪽으로 끌어왔다. 조리대 위에는 반쪽 샌드위치, 열린 재료 트레이, 누렇게 얼룩진 흰 장갑, 그리고 아직 적히지 않은 소스 방울이 한 줄로 놓였다.

Scene 15· 막차 출발 직전, 재고 서버 전송 직전

영웅은 반쪽으로 선다

영웅은 반쪽으로 선다
Place반쯤 닫힌 서브웨이 촬영 매장 조리대 앞
Time막차 출발 직전, 재고 서버 전송 직전
Action나해림은 예비 재료를 반쪽 샌드위치의 잘린 단면에 밀어 넣고, 빨간 고무줄과 구겨진 종이봉투로 빈쪽을 가리는 구도를 강제로 완성한다. 배도겸은 물방울을 되살리려 하지만 해림이 그의 핀셋을 빼앗아 카메라 쪽으로 돌려세운다. 오봉철은 소스 방울을 기록하려다 윤복자의 막차 경고음에 멈추고, 빗자루로 얼룩을 닦는다.
Impact해림은 예비 빵 전체를 쓰지 않고도 촬영용 샌드위치의 빈 단면을 숨길 방법을 만들어 낸다. 도겸은 완벽한 표면 대신 구김, 고무줄, 얼룩이 남은 프레임을 찍게 된다. 봉철이 수첩을 닫으면서 매장과 승강장을 묶던 마지막 통제도 느슨해진다.

나해림이 예비 치즈와 양상추를 반쪽 샌드위치의 벌어진 단면에 거칠게 쑤셔 넣고, 빨간 고무줄을 접시 가장자리에 감아 종이봉투 쪽으로 팽팽히 당겼다. 반쯤 내려온 셔터 아래에서 초록·노랑 메뉴 보드 빛이 구겨진 봉투 면을 비추자, 봉투의 접힌 주름이 빵의 빈쪽을 가리는 얇은 벽처럼 서 있었다. 배도겸이 핀셋으로 토마토를 더 반듯하게 세우려 하자 해림은 그의 손목을 쳐냈다. “오늘은 빵결 말고, 살아남은 모양을 찍어요.”

도겸의 맨손이 잠깐 허공에서 굳었지만, 해림은 핀셋을 그의 손에서 뽑아 접시 옆에 던지고 카메라를 조리대 앞으로 끌어당겼다. 오봉철은 카운터 아래 주황빛 소스 방울 앞에서 수첩을 펼친 채 펜을 들었다. 승강장 쪽에서 윤복자의 막차가 길게 울리자, 그는 수첩의 케첩 자국을 한 번 내려다보고 펜을 접었다. “한 방울이네. 빗자루 한 번이면 되지.” 봉철의 빗자루가 타일을 쓸며 소스 방울을 지웠고, 그 끝이 조명선 밖으로 젖은 흔적을 밀어 냈다.

해림이 종이봉투의 구김을 한 번 더 눌러 프레임 안으로 세우자, 반쪽 샌드위치는 초록 그림자와 빨간 고무줄 사이에서 길게 이어진 것처럼 보였다. 배도겸은 누렇게 얼룩진 흰 장갑을 조리대 한쪽에 남겨 둔 채 셔터를 눌렀다. 찰칵 소리와 함께, 멀어지는 막차의 초록빛이 셔터 틈 아래로 미끄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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