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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ytalk Original · 15 scenes · 5 chapters

(서브웨이 미장센)오늘은 배달 말고 퇴근해

폐점 직전의 서브웨이 매장을 물려받은 청년은 월세를 내기 위해 ‘이별 샌드위치’ 배달 서비스를 시작한다. 손님들은 헤어진 연인의 취향대로 빵과 채소를 고르고, 그는 주문마다 적힌 사연을 읽으며 상대의 집 앞까지 샌드위치를 들고 간다. 어느 폭우 밤, 그가 가장 싫어하던 전 연인이 “터키 베이컨 아보카도, 피클은 두 배”를 주문하고 매장 문을 잠근 채 찾아와 마지막 주문을 직접 만들어 달라고 한다. 배달 마감 시각 11시 59분, 전 연인은 계산대 위에 반지를 올려두고 그에게 샌드위치를 들고 함께 나가거나 혼자 남으라고 재촉한다.

  • 5 characters
  • 15 scenes
  • Plot 2,375 chars
(서브웨이 미장센)오늘은 배달 말고 퇴근해 cover image

Characters

Characters

도윤재

Male

아버지가 남긴 폐점 예정 서브웨이 매장에서 이별 샌드위치를 만들어 직접 배달하는 점주

Profile

도윤재는 이번 달 월세와 본사 위약금을 메우려고 손님들의 이별 사연을 짧고 그럴듯한 광고 문구로 고쳐 주문을 끌어모은다. 폭우 속 서미란의 마지막 주문이 들어오자, 그는 미란이 질색하던 피클을 두 배로 담으면서도 빗물 묻은 배달 가방을 몇 번이고 닦는다. 11시 59분 전에 샌드위치를 들고 미란과 나가면 매장을 잃고, 혼자 계산대에 남으면 미란이 두고 간 반지를 잃는다.

도윤재는 사연 카드의 슬픈 문장을 지우고 “마지막 한 입까지 기억하세요” 같은 문구를 적은 뒤, 손님이 보는 앞에서는 펜 끝을 손바닥에 숨긴다. 채소통이 비면 자기 몫의 식사를 건너뛰면서도 피클 조각 하나가 빵 밖으로 삐져나오면 다시 열어 정리한다. 장복순이 계약 해지 통지서를 꺼내 보이면 웃으며 커피를 내밀지만, 문이 닫히자마자 냉장고 온도를 확인하고 배달 동선을 종이에 빽빽하게 다시 그린다.

Background

도윤재는 아버지가 남긴 매장 열쇠와 밀린 관리비 고지서를 함께 받았고, 처음에는 샌드위치만 잘 만들면 가게가 살아날 거라고 믿었다. 손님이 주문란에 남긴 이별 사연을 읽어 주며 빵을 고르기 시작한 날부터 주문은 늘었고, 그는 그 문장들을 팔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을 배웠다. 서미란과 헤어진 뒤에도 그녀가 싫어하던 피클을 빼는 손이 먼저 움직였던 탓에, 이번 주문의 ‘두 배’가 자신을 향한 지시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빨리 알아챈다.

Description

도윤재는 젖은 검은 앞머리를 이마에 붙인 채, 소매를 걷어 올린 초록 앞치마 위로 배달 가방의 빗물을 닦는다. 피클 통 앞에 선 그의 손은 지나치게 정확해서, 빵 밖으로 나온 조각 하나도 다시 밀어 넣지만 눈은 계산대 위의 반지와 벽시계 사이를 떠나지 못한다. 왼손 엄지 관절에 남은 얇은 칼자국이, 주문표를 구겨 쥔 손등 위로 희게 드러난다.

서미란

Female

폭우로 끊긴 야간 버스를 대신해 식당들의 배달 동선을 짜는 호출센터 관제원

Profile

서미란은 도윤재가 남의 이별 사연을 주문 건수와 배달비로 세기 전에, 폭우가 그친 뒤의 거리로 그를 데리고 나가려 한다. 그녀는 헤어진 날 돌려주지 못한 반지를 계산대 위에 놓고 ‘터키 베이컨 아보카도, 피클 두 배’를 결제한다. 윤재가 11시 59분까지 샌드위치를 들고 문을 나서지 않으면, 서미란은 그날 이후 그 매장 문턱을 다시 넘지 않기로 했고, 윤재는 반지와 함께 자신을 붙잡아 주던 마지막 손님을 잃는다.

서미란은 서류의 빈칸을 검은 펜으로 두 번씩 눌러 쓰고, 상대가 망설이면 날짜 칸부터 가리킨다. 윤재 앞에서는 피클을 싫어한다고 말해 놓고도 주문서에는 ‘두 배’를 적어, 그가 자신을 기억하는 방식까지 시험한다. 계산대에 반지를 올려둔 뒤에는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빗물이 바닥에 고이는 모습을 보고, 윤재가 포장지를 접는 횟수를 끝까지 센다.

Background

서미란은 윤재가 아버지의 매장을 물려받기 전, 폐점 세일 전단을 함께 붙이며 새벽마다 남은 빵을 나눠 먹던 사람이었다. 헤어지던 날 윤재가 건넨 반지는 그녀의 가방 안쪽 지퍼에 몇 달 동안 걸려 있었고, 퇴거 정산을 맡아 온 오피스텔에서 류단비가 반송 샌드위치를 쌓아 두는 광경을 본 뒤에야 그것을 돌려주기로 한다. 이별 사연이 광고 문구가 되어 매장 벽에 붙는 것을 본 서미란은, 윤재가 마지막 주문을 배달하러 나가게 만들기 위해 자신이 가장 싫어하던 피클을 미끼로 삼는다.

Description

서미란은 젖은 검은 단발을 귀 뒤로 넘긴 채, 회색 방수 재킷 안에 호출센터의 남색 셔츠와 목에 걸린 출입 카드를 그대로 달고 서 있다. 계산대 위 반지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얼굴은 지쳐 보이지만, 한 손을 재킷 주머니에 깊이 넣고 다른 손 검지로 주문서의 날짜 칸을 누르는 자세에는 물러날 생각이 없다. 오른쪽 엄지손톱 가장자리에 남은 검은 펜 자국이, 서류의 빈칸을 두 번씩 눌러 쓰던 버릇처럼 선명하다.

장복순

Female

매장 건물 2층에서 세탁소를 지키며 배달 주문의 오탈자를 고쳐 주는 임대인

Profile

장복순은 빈 점포를 빨리 정리해 세탁소 보증금을 지키려 하지만, 도윤재가 월세를 낼 때마다 계약 해지 통지서를 서랍 맨 아래로 밀어 넣는다. 윤재가 손님 사연을 광고처럼 꾸미기 시작하자 장복순은 거짓말 냄새가 나는 문장마다 줄을 긋고, 서미란의 주문이 누군가에게 보내는 화해 선물이 아니라 윤재를 매장 밖으로 빼내기 위한 탈출용이라는 것을 먼저 알아챈다. 그 사실을 윤재에게 말하면 월세가 끊길 수 있고, 숨기면 그가 아버지처럼 가게 안에 갇히는 모습을 또 보게 된다.

장복순은 주문서의 “미안해” 옆에는 동그라미를, “마지막으로” 옆에는 굵은 줄을 긋고, 지운 문장을 접어 앞치마 주머니에 넣는다. 손님 앞에서는 샌드위치 속 채소처럼 사연도 신선해야 한다며 퉁명스럽게 웃지만, 윤재가 현금 봉투를 내밀면 돈부터 세지 않고 그의 젖은 운동화 끈을 본다. 윤재의 아버지에게 받은 낡은 재봉 가위는 계산대 아래에 두고도, 사연을 자를 때만큼은 칼날 대신 붉은 펜을 쥔다.

Background

장복순은 윤재의 아버지가 매장 셔터를 올리기 전부터 골목에서 세탁소를 하며, 찢어진 교복과 망가진 지퍼를 고쳐 왔다. 아버지가 남긴 재봉 가위를 건네받던 날, 그녀는 윤재에게 가게 하나 때문에 사람을 미루지 말라고 말했지만 윤재는 대답 대신 냉장고 온도를 확인했다. 폐점 통지서가 날아든 뒤에는 빈 점포를 보러 온 세탁소 예비 임차인들에게 웃으며 열쇠를 건네고, 밤이면 그 열쇠로 윤재의 서랍을 열어 해지 서류를 더 깊이 밀어 넣는다.

Description

장복순은 빛이 바랜 남색 세탁소 앞치마 위에 회색 카디건을 걸치고, 주문서 더미를 계산대 모서리에 반듯하게 맞춘 채 앉아 있다. 희끗한 머리는 낮게 틀어 올렸고, 붉은 펜을 든 손은 사연 속 “마지막으로”에 굵은 줄을 긋는 동안에도 문 쪽의 젖은 운동화 자국을 살핀다. 왼쪽 앞치마 주머니가 유난히 처져 있는데, 그 안에는 지운 문장 조각들과 접힌 계약 해지 통지서가 함께 들어 있다.

백시후

Male

학자금 상환을 위해 이별 샌드위치의 익명 사연을 영상으로 편집해 올리는 야간 배달 보조

Profile

백시후는 자기 이름이 찍힌 보증금 통장을 만들기 위해, 윤재가 읽고 버린 이별 사연을 짧은 영상으로 편집해 몰래 올리고 주문을 끌어모은다. 영상 속 주문 번호가 늘수록 윤재는 시후에게 배달 동선을 맡기지만, 서미란의 마지막 주문까지 카메라에 담는 순간 시후는 윤재가 유일하게 믿고 맡긴 사람이라는 자리를 잃는다. 폭우 속에서 윤재가 반지를 내려다보는 장면을 찍을지 휴대폰을 끌지는, 시후의 보증금과 윤재의 마지막 밤을 맞바꾸는 선택이 된다.

백시후는 배달 가방 옆주머니에 접이식 삼각대를 넣고 다니다가, 손님이 문을 열기 직전이면 신발 끝으로 카메라 각도를 맞춘다. 주문 사연의 맞춤법은 대충 넘기면서도 울음이 섞인 음성메시지는 자막 한 줄까지 여러 번 고친다. 윤재가 “사연은 읽지 말라”고 하면 고개를 끄덕인 뒤, 영수증 뒷면에 상대가 좋아하던 채소와 헤어진 날짜를 따로 적는다.

Background

백시후는 고시원 복도 끝방에서 살며, 계약 연장 때마다 관리인이 문틈으로 밀어 넣는 보증금 인상 안내문을 모아 두었다. 배달 플랫폼에서 계정이 정지된 뒤 윤재의 매장에 들어왔고, 첫날 반송된 샌드위치를 들고 돌아온 윤재가 아무 말 없이 배달비를 쥐여 준 일을 기억한다. 그 뒤로 시후는 매장을 살리면 자기 방도 지킬 수 있다고 믿으며, 윤재가 닫아 둔 사연의 문을 휴대폰 화면으로 열기 시작했다.

Description

백시후는 비에 젖은 검은 앞머리가 눈썹 위로 들러붙은 스물두 살 청년으로, 낡은 검정 배달 조끼 위에 매장 로고가 희미해진 초록 앞치마를 겹쳐 입는다. 한쪽 어깨에는 각진 배달 가방을 멘 채, 다른 손으로는 휴대폰을 허리 높이에 숨기듯 쥐고 문틈을 향해 몸을 반쯤 기울인다. 가방 옆주머니에서 삐져나온 은색 접이식 삼각대와, 운동화 끝으로 카메라 각도를 재는 버릇이 그를 기억하게 한다.

류단비

Female

전 연인이 보낸 샌드위치를 받지 않고 경비실에 쌓아 두는 오피스텔 관리실 야간 직원

Profile

류단비는 ‘이별 샌드위치’가 화해를 배달하는 물건처럼 팔리는 일을 멈추기 위해, 도윤재에게 자신이 모아 둔 수령 거부 기록을 내민다. 몇 달 전 윤재가 자기 문 앞에 두고 간 샌드위치를 끝내 받지 않았던 류단비는, 서미란의 주소가 자신이 근무하는 오피스텔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말하지 않는다. 그 침묵을 지키는 동안 윤재의 마지막 배달은 11시 59분을 넘길 수 있고, 류단비는 처음으로 누군가의 반송을 되돌릴 기회를 잃는다.

류단비는 관리실 창구에 놓인 택배 상자의 수취인 이름을 손톱으로 한 번씩 두드린 뒤, 반송 도장을 찍는다. 입주민이 “문 앞에 두고 가세요”라고 말하면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폐기 예정 물품 목록에는 유난히 또박또박 시간을 적는다. 윤재가 사연을 광고 문구로 읽어 내려가자 그녀는 반송 전표 묶음을 계산대에 쏟아 놓고, 가장 위의 자기 이름만 뒤집어 감춘다.

Background

류단비는 몇 년 전 헤어진 사람에게 돌려보낸 상자가 세 번이나 자기 집으로 되돌아온 뒤부터, 오피스텔 관리실의 반송 업무를 자청했다. 윤재의 배달 가방이 비에 젖은 밤에도 그녀는 인터폰을 받지 않았고, 다음 날 복도 바닥에서 식은 샌드위치를 치우며 주문서에 적힌 자기 취향을 읽었다. 서미란이 야간 근무를 마치고 관리실 앞을 지날 때마다 류단비는 목적지 층을 알면서도 엘리베이터 버튼에서 손을 뗀다.

Description

류단비는 빛바랜 남색 관리실 조끼 위에 회색 후드 집업을 걸치고, 창구 안쪽의 반송 전표 더미를 한 손으로 눌러 잡는다. 젖은 머리카락을 낮게 묶은 얼굴에는 밤샘의 푸른 기색이 남아 있지만, 입주민을 향한 미소는 지나치게 정확하다. 오른손 검지 끝에 번진 붉은 도장 잉크가 그녀가 수취인 이름을 두드릴 때마다 작은 상처처럼 보인다.


Synopsis

Plot

밤 10시, 폐점 안내문이 붙은 서브웨이 매장에는 빗물 냄새와 식은 빵 냄새가 섞여 있다. 도윤재는 월세 봉투를 계산대 아래에 넣고, 손님들의 이별 사연을 “마지막 한 입까지 기억하세요”로 고쳐 붙인다. 백시후는 그 문장을 읽는 윤재의 옆얼굴을 몰래 찍다가, 장복순에게 삼각대를 발로 밟힌다. 복순은 빨간 펜으로 주문서의 “돌아와”를 지우며 “사람한테 채소처럼 유통기한 붙이지 마”라고 쏘아붙인다. 그때 서미란의 주문이 들어온다. 터키 베이컨 아보카도, 피클 두 배. 수령 주소는 골목 끝 오피스텔이다. 미란은 곧 젖은 재킷 차림으로 매장 안에 들어와 계산대 위에 은반지를 놓는다. 그리고 윤재에게 말한다. “이거 들고 나가. 오늘은 배달이 아니라 퇴근해.”

윤재는 피클을 집게로 하나씩 올리며 미란이 피클을 질색하던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미란은 주문서의 피클 두 배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답한다. 윤재가 늘 손님 사연을 대충 읽고, 메뉴만 외웠다는 사실을 확인하려고 적은 시험이었다. 윤재는 반지를 집으려 하지만 미란이 손등을 눌러 막는다. 자정 전 매장을 비우면 마지막 영업 기록이 끊기고, 본사 위약금과 월세를 감당할 방법이 없어진다. 미란은 그 돈 때문에 윤재가 아버지처럼 매장 안에서 늙어 가는 모습을 더는 볼 수 없다고 한다.

백시후는 미란의 주문을 마지막 영상으로 올리면 조회 수가 터질 거라며 휴대폰을 든다. 윤재가 그의 앞치마 멱살을 잡아 냉장고 문에 밀어붙이자, 시후의 휴대폰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깨진 화면에는 이미 오피스텔 현관과 미란의 젖은 운동화가 찍혀 있다. 시후는 그 영상으로 광고비를 받아 보증금을 만들려 했다고 털어놓는다. 윤재는 영상을 지우라고 하지만, 시후는 손가락을 움직이지 못한다. 그때 장복순이 매장 문을 잠근다. 밖으로 나가려는 미란 앞을 가로막은 채, 복순은 철수 안내문을 찢어 쓰레기통에 넣는다. 윤재의 아버지도 마지막 날 “한 건만 더”를 외치며 가게에 남았고, 결국 쓰러질 때까지 문을 열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복순은 윤재에게 계약 해지 통지서를 건네지 않는다. 대신 계산대 아래에서 낡은 재봉 가위를 꺼내, 미란의 주문 봉투에 붙은 광고용 사연 카드를 잘라 낸다. “배달은 해. 장사는 하지 마.”

윤재가 샌드위치를 포장하려는 순간, 류단비가 비를 뚫고 매장으로 들어온다. 그녀는 젖은 반송 봉투들을 카운터에 쏟는다. 봉투마다 윤재가 붙인 문구가 적혀 있고, 그 아래에는 빨간 도장이 찍혀 있다. 수령 거부. 환불. 폐기. 가장 밑 봉투에는 류단비 자신의 이름이 있다. 몇 달 전 윤재가 그녀의 문 앞에 두고 간 샌드위치다. 단비는 그날 받지 않았고, 윤재는 규칙을 어기고 문 앞에 두고 갔다. 단비는 미란의 주소가 자신이 일하는 오피스텔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말하지 않았다. 윤재가 또 문 앞에 놓고 도망칠지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윤재는 단비에게 길을 비키라고 하고, 단비는 봉투 더미를 양팔로 끌어안아 출입문 앞에 선다. 미란은 반지를 주머니에 넣고 돌아서려 한다. 그때 시후가 바닥의 휴대폰을 집어 들지만, 화면을 켜는 대신 매장 유리창 쪽으로 던진다. 휴대폰은 빗물 고인 화단에 처박히고, 저장되지 않은 영상은 꺼진 화면과 함께 사라진다. 시후는 자신의 보증금보다 윤재가 남의 마지막 순간을 팔지 않는 쪽에 걸겠다고 말한다. 윤재는 잠깐 멈춘 뒤, 포장지에서 광고 문구를 뜯어 쓰레기통에 넣는다. 그리고 미란의 샌드위치 봉투를 들고 단비에게 다가간다.

단비는 “문 앞에 두고 가면 바로 찍는다”고 말한다. 윤재는 고개를 끄덕인다. “이번엔 네가 받으라는 게 아니야.” 그는 미란에게 봉투를 내민다. 미란은 받지 않는다. 윤재는 샌드위치를 든 손을 내린 채 말한다. 아버지 가게를 지키는 일이 자신을 지키는 일인 줄 알았지만, 사실은 누구든 떠나는 쪽을 먼저 욕할 수 있게 해 주는 핑계였다고. 미란은 그 말이 너무 늦었다며 웃는다. “샌드위치는 식었고, 너는 아직 뜨겁네.”

11시 58분, 복순이 문을 연다. 단비는 반송 봉투들을 발로 밀어 길을 만들고, 시후는 배달 가방을 윤재의 어깨에 걸어 준다. 윤재와 미란은 함께 폭우 속으로 나간다. 윤재는 오피스텔 현관 앞에서 미란에게 샌드위치를 직접 건넨다. 미란은 봉투를 받고, 피클 하나를 꺼내 빗물에 씻긴 화단 흙 위에 떨어뜨린다. “이건 아직도 싫어.” 그러고는 나머지 샌드위치를 반으로 갈라 윤재에게 건넨다.

자정이 되자 매장 안의 형광등이 한 번 깜빡이고 꺼진다. 복순은 어둠 속에서 계약 해지 통지서를 꺼내 세탁소 건조기 위에 올려둔다. 단비는 관리실로 돌아가 반송 도장을 씻어 낸다. 시후는 젖은 삼각대를 쓰레기봉투에 넣었다가, 망설인 끝에 다시 꺼내 접어 둔다. 윤재는 미란과 처마 아래에 서서 눅눅해진 빵을 씹는다. 매장은 잃었지만, 그날 밤 처음으로 그는 배달 완료 버튼 같은 말을 하지 않는다.


World

The world

representative image

setting

서울 외곽의 오래된 상가 건물 1층, 지하철 출구와 오피스텔 사이에 끼인 폐점 예정 서브웨이 매장이다. 매장 유리창에는 비에 번진 초록 로고와 ‘이별 샌드위치 배달’ 전단이 겹쳐 붙어 있다. 좁은 조리대 뒤로는 채소통, 식은 오븐, 본사에서 내려온 철수 안내문이 있고, 계산대 아래에는 장복순이 숨겨 둔 계약 해지 통지서가 있다.

매장 밖 골목은 배달 오토바이와 젖은 우산이 뒤엉키는 내리막길이다. 길 끝에는 류단비가 야간 근무하는 회색 오피스텔이 서 있다. 유리 현관 안쪽 관리실에는 수령 거부된 샌드위치 봉투들이 날짜별로 쌓여 있고, 비닐 포장지 안의 빵은 눅눅하게 식어 간다. 건물 2층 세탁소에서는 밤새 건조기가 돌아가며, 장복순은 그 둔탁한 회전음을 아래층의 망설임과 함께 듣는다.

time period

현재의 서울, 장마가 가장 거센 한여름 밤이다. 배달 플랫폼과 익명 사연 영상이 일상이 된 시기지만, 이 상가만은 재개발과 프랜차이즈 정리의 틈에서 멈춰 있다. 이야기는 폐점 전 마지막 영업일 밤 10시부터 배달 마감인 11시 59분까지 벌어진다.

이 매장은 윤재의 아버지가 오래 지켰고, 아버지가 쓰러진 뒤 본사는 적자와 계약 위반을 이유로 철수를 통보했다. 윤재가 만든 이별 샌드위치 서비스는 폐점 공지를 붙인 뒤에야 유명해졌다. 사람들은 끝난 관계를 정리하는 대신, 샌드위치 하나와 사연 한 줄을 주문한다.

rules

이별 샌드위치는 주문서에 적힌 수령인에게만 직접 전달해야 하며, 문 앞 방치나 대리 수령은 반송 처리된다. 윤재는 배달 성공 건수로 월세를 메우지만, 류단비가 관리실에서 반송 도장을 찍는 순간 그 주문은 환불과 폐기 비용으로 돌아온다.

매장은 자정이 되면 본사 원격 시스템이 영업 종료를 기록하고, 그 뒤에는 결제나 조리가 불가능하다. 윤재가 11시 59분 전에 미란의 주문을 들고 나가면 매장을 지킬 마지막 매출을 포기해야 하고, 남으면 미란이 내민 반지와 함께 나갈 기회를 잃는다.

주문 사연은 홍보 영상과 광고 문구에 쓰일 수 있지만, 실명과 주소를 공개하면 플랫폼 신고로 서비스가 정지된다. 시후는 익명성을 지키는 척하며 사연을 편집해 주문을 늘렸고, 미란의 마지막 장면을 촬영할지 지울지에 따라 자기 보증금과 윤재의 신뢰를 맞바꿔야 한다.

수령 거부된 샌드위치는 당일 새벽 폐기 목록에 올려야 한다. 류단비가 쌓아 둔 봉투들은 누군가의 화해가 아니라 받지 않겠다는 의사의 기록이며, 그녀가 미란의 주소를 숨기는 동안 윤재는 이미 실패한 배달들의 방식으로 마지막 주문을 처리하려 한다.

technologies philosophies

배달 앱은 음식보다 사연을 먼저 판다. 손님은 빵과 채소를 고르는 화면 아래에 ‘전하고 싶은 말’을 적고, 가장 많이 눌린 문장은 자동으로 광고 문구 후보가 된다. “마지막 한 입까지 기억하세요” 같은 문장이 주문을 끌어오지만, 윤재에게는 타인의 실패를 월세로 환산하는 계산식이 된다.

익명 사연 숏폼은 젊은 배달원과 외로운 고객을 연결하는 놀이가 됐다. 시후는 주문 번호, 흐린 목소리, 문 앞에 놓인 발끝만 편집해 올리며 누구도 특정하지 않았다고 믿는다. 그러나 반복되는 메뉴와 배달 동선은 사람의 습관을 드러내고, 익명성은 보호막이 아니라 구경거리의 포장지가 된다.

이 동네에서는 물건을 받는 행위가 관계를 받아들이는 일처럼 취급된다. 관리실의 반송 도장은 단순한 행정 절차지만, 류단비에게는 문 앞에 남겨진 마음을 돌려보내는 마지막 권리다. 반대로 윤재에게 샌드위치는 말하지 못한 사람들을 대신해 문을 두드릴 수 있는 유일한 도구다. 그래서 미란의 피클 두 배 주문은 취향이 아니라, 그가 자신을 제대로 기억했는지 확인하는 불편한 시험이 된다.

visual description

형광등이 지나치게 하얀 매장 안과, 폭우가 푸른빛으로 번지는 유리창 밖이 한 화면에서 충돌한다. 초록색 앞치마, 노란 피클, 붉은 토마토, 은색 포장지의 반짝임이 젖은 검은 아스팔트 위로 번진다. 채소통에는 물방울이 맺히고, 오븐 유리에는 손자국과 김이 흐린 막처럼 남는다.

상가 건물은 오래된 베이지 타일과 녹슨 배수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2층 세탁소 창문에서는 회전하는 세탁기 불빛이 푸르게 깜빡이고, 골목의 간판들은 비바람에 삐걱거린다. 오피스텔 로비는 지나치게 매끈한 회색 대리석과 무인 택배함으로 차갑게 빛난다. 그 안에서 반송된 종이봉투만 축축하게 처지고, 관리실의 빨간 반송 도장은 작은 상처처럼 선명하다.


Scenes

Scene by scene

Chapter 01

Scene 01· 장마 폭우가 쏟아지는 마지막 영업일 밤 10시

마지막 문구

마지막 문구
Place폐점 예정 서브웨이 매장 조리대와 계산대 앞
Time장마 폭우가 쏟아지는 마지막 영업일 밤 10시
Action도윤재는 젖은 주문서에서 이별 사연을 지우고 “마지막 한 입까지 기억하세요”라는 문구를 붙인다. 장복순은 붉은 펜으로 그 문장을 가로지르고, 윤재가 다시 붙이려 하자 주문서를 낚아챈다. 백시후는 조리대 아래에 숨긴 휴대폰으로 둘의 실랑이를 찍다가, 복순에게 삼각대를 발로 밟힌다. 윤재는 찢긴 문구 조각을 주워 계산대 유리 아래에 밀어 넣는다.
Impact윤재의 이별 샌드위치 서비스가 손님의 사연보다 팔리는 문장을 우선한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복순은 윤재가 아버지처럼 매장에 갇히는 일을 막으려 공개적으로 그의 방식에 제동을 건다. 시후는 촬영이 들켰지만 휴대폰을 거두지 않아, 마지막 밤을 상품으로 만들 준비가 이미 시작됐음을 남긴다.

도윤재가 젖은 주문서 위에 “마지막 한 입까지 기억하세요” 스티커를 세게 붙이자, 장복순의 붉은 펜이 그 문장을 한 줄로 베어 버린다. 폐점 예정 서브웨이 매장의 하얀 형광등 아래, 초록 앞치마와 노란 피클통 사이로 빗물이 묻은 전단지가 바닥에 달라붙어 있다. 윤재는 펜 자국이 난 주문서를 집어 들고 말했다. “문장 하나 바꾼다고 사람이 더 망가지진 않아요.” 복순은 주문서의 원래 문장, ‘돌아와도 돼’를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망가진 건 이미 왔고, 넌 포장지만 새걸로 갈아.”

조리대 아래에서 백시후가 휴대폰 렌즈를 살짝 들어 올리자 복순의 고무 슬리퍼가 접이식 삼각대를 밟았다. 삼각대 다리가 찌그러지며 화면이 천장을 향했고, 시후는 웃는 척하며 그것을 빼냈다. “조명 좋네요. 폐점 특집으로.” 윤재는 대답 대신 찢어진 스티커 조각을 집어 계산대 유리 아래로 밀어 넣었다.

복순은 붉은 펜 끝으로 유리 아래의 문구를 가리킨 뒤, 남은 주문서 묶음을 윤재 쪽으로 밀었다. 윤재는 한 장을 펼쳐 들고, 빗물 자국 번진 글씨 위에 다시 펜을 댔다.

Scene 02· 마지막 영업일 밤 10시 직후, 폭우가 거세지는 시간

노란 주문

노란 주문
Place폐점 예정 서브웨이 매장 조리대와 계산대 앞
Time마지막 영업일 밤 10시 직후, 폭우가 거세지는 시간
Action배달 앱 알림이 울리자 도윤재는 화면을 집어 들어 주문을 확인하고, ‘터키 베이컨 아보카도, 피클 두 배’라는 문구 앞에서 손을 멈춘다. 장복순은 주문서를 출력해 윤재의 앞에 던지고, 백시후는 주문 번호와 노란 피클통을 함께 찍을 수 있도록 휴대폰 각도를 바꾼다. 윤재는 시후의 렌즈를 손바닥으로 가린 뒤, 피클 집게를 쥔 채 주문 화면을 다시 확인한다.
Impact서미란이 피클을 질색한다는 윤재의 기억과 주문 내용이 정면으로 충돌한다. 시후는 마지막 밤의 수상한 주문을 영상 소재로 확보하고, 복순은 윤재가 주문을 음식이 아니라 돈으로 계산하려는 모습을 막아선다. 윤재는 주문을 취소하지 못한 채, 미란의 이름이 뜬 화면을 계속 붙든다.

도윤재가 배달 앱 태블릿을 조리대 위로 홱 돌리자, 화면 한가운데 노란 피클 아이콘 두 개가 떠올랐다. 형광등 아래 피클통의 국물이 흔들리고, 유리창 밖 폭우가 초록 로고를 푸르게 번지게 했다. “터키 베이컨 아보카도, 피클 두 배.” 윤재는 주문서를 뽑아 든 채 말끝을 삼켰다. 장복순이 그의 손에서 종이를 낚아채 주문자 이름을 읽었다. “서미란. 네 기억이 할인 행사라도 해?”

백시후는 찌그러진 삼각대를 발끝으로 세운 뒤, 휴대폰을 피클통 옆에 기대 놓았다. 화면에는 주문 번호와 윤재의 굳은 손등이 함께 잡혔다. 윤재가 렌즈를 손바닥으로 덮자 시후가 낮게 웃었다. “피클 두 배면 조회 수도 두 배겠는데요.” 복순은 붉은 펜으로 주문서의 피클 항목을 세게 동그라미 치고, 윤재 쪽으로 밀었다. “사람이 싫어하던 것도 네가 팔면 메뉴가 되지.”

윤재는 피클 집게를 들어 올렸다가 채소통 위에서 멈췄다. 태블릿 화면의 ‘서미란’ 아래로 배달 마감까지 남은 시간이 초 단위로 줄어들었다.

Scene 03· 장마 폭우가 쏟아지는 밤 10시 직후

계산대 위의 반지

계산대 위의 반지
Place폐점 예정 서브웨이 매장 계산대와 조리대 앞
Time장마 폭우가 쏟아지는 밤 10시 직후
Action서미란이 폭우를 뚫고 매장에 들어와 계산대 위에 은반지를 내려놓는다. 도윤재가 반지를 집으려 하자 미란은 그의 손등을 눌러 막고, 피클 두 배 주문은 자신의 취향이 아니라 윤재를 시험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한다. 장복순은 젖은 출입문을 닫아 빗물이 더 들어오는 것을 막고, 백시후는 휴대폰을 든 채 반지와 주문서가 한 화면에 잡히도록 움직인다.
Impact윤재가 미란의 피클 혐오를 기억하고도 그녀의 주문 의도를 전혀 읽지 못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미란은 샌드위치를 들고 나가 오늘만큼은 배달이 아니라 퇴근하라고 요구한다. 윤재 앞에는 마지막 매출과 미란이 놓고 간 반지가 동시에 놓인다.

서미란이 젖은 재킷 주머니에서 은반지를 꺼내 계산대 유리 위에 탁 내려놓자, 도윤재의 피클 집게가 채소통 가장자리를 쳤다. 반지는 형광등 아래서 작고 차갑게 굴러가다 월세 봉투 바로 앞에 멈췄고, 출입문 틈으로 들어온 빗물이 미란의 운동화 밑창에서 검은 바닥으로 번졌다. 장복순은 문을 밀어 닫으며 “비도 손님이면 환불해라” 하고 중얼거렸다. 백시후는 찌그러진 삼각대를 발로 끌어당기며 휴대폰을 계산대 쪽으로 기울였다.

윤재가 반지에 손을 뻗자 미란이 젖은 손등으로 그의 손을 눌렀다. “피클 두 배는 내가 먹겠다는 뜻 아니야.” 미란은 조리대 위 주문서를 들어 피클 항목을 손가락으로 두 번 두드렸다. “네가 사람보다 주문을 더 정확히 기억하는지 보려고 넣었어.” 시후의 휴대폰 화면에 은반지, 노란 피클통, 윤재의 멈춘 손가락이 나란히 떴고, 복순은 붉은 펜으로 주문서 여백을 세게 긋는다.

미란은 반지를 윤재 쪽으로 밀어 월세 봉투에 닿게 했다. “샌드위치 들고 나가. 오늘은 배달 말고 퇴근.” 윤재는 반지도 집지 못한 채, 피클 두 배가 올라갈 빈 빵을 내려다봤다.

Chapter 02

Scene 04· 장마 폭우가 쏟아지는 밤 10시 직후

은반지와 젖은 계산대

은반지와 젖은 계산대
Place폐점 예정 서브웨이 매장 계산대와 조리대 앞
Time장마 폭우가 쏟아지는 밤 10시 직후
Action도윤재는 계산대 위 은반지를 월세 봉투 쪽으로 밀어 두고, 미란의 주문대로 피클을 한 조각씩 빵 위에 올린다. 서미란은 샌드위치 봉투를 집어 윤재의 손에 쥐여 주려 하지만, 윤재는 태블릿의 영업 기록 화면을 켜며 자정 전까지 한 건만 더 처리하면 된다고 버틴다. 장복순은 젖은 걸레로 계산대를 닦다가 윤재가 반지를 집으려는 손을 가로막고, 반지와 주문서를 같은 자리에 남겨 둔다.
Impact미란의 퇴근 제안은 윤재에게 다정한 부탁이 아니라 매장을 떠날지 시험하는 마감 시한이 된다. 윤재는 반지를 돌려받는 대신 가게를 지키는 타협안을 찾으려 하지만, 숫자로 움직이는 영업 기록 앞에서 그의 망설임이 더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복순은 두 사람의 손이 반지 위에서 부딪히는 모습을 보고도 계약 해지 통지서를 꺼내지 못한 채, 다음 충돌을 막을 준비를 한다.

도윤재가 젖은 계산대 위의 은반지를 월세 봉투 앞으로 밀어 놓고, 피클 집게로 노란 조각 하나를 빵 위에 떨어뜨렸다. 피클 국물이 흰 종이 포장지에 번졌고, 유리창 밖 폭우가 초록 로고를 물감처럼 흘렸다. 서미란은 조리대에서 배달 봉투를 빼앗아 윤재의 가슴에 밀었다. “들고 나가면 돼. 오피스텔까지 세 걸음도 아니잖아.”

윤재는 봉투를 받지 않고 태블릿을 켰다. 화면에는 영업 종료까지 남은 시간이 줄어들고, 마지막 매출 칸은 비어 있었다. “이거 완료 찍히면 월세는 넘겨요. 그다음에 나가.” 서미란이 태블릿 전원 버튼 위에 손가락을 올리자, 윤재는 급히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장복순은 젖은 걸레를 계산대에 내던지고 두 사람 사이로 손을 넣어 반지를 다시 가운데로 굴렸다. “아주 좋다. 사람 하나 퇴근시키는데 매출 보고서가 보호자네.”

윤재의 손이 반지 쪽으로 움직이자 복순이 주문서를 그 위에 덮었다. 반지의 둥근 윤곽이 종이 아래에서 희미하게 솟았다.

Scene 05· 장마 폭우가 쏟아지는 밤 10시대, 자정 마감 전

피클 두 배의 시험

피클 두 배의 시험
Place폐점 예정 서브웨이 매장 계산대와 조리대 앞
Time장마 폭우가 쏟아지는 밤 10시대, 자정 마감 전
Action서미란은 주문서 아래에 숨긴 은반지를 꺼내 도윤재의 앞치마 주머니에 억지로 넣으려 하고, 윤재는 그것을 막으며 영업 기록을 가리킨다. 미란은 피클 두 배가 자신의 취향이 아니라 윤재의 기억을 시험한 장치였다고 말한다. 장복순은 두 사람 사이에서 주문 봉투를 빼앗아 광고용 사연 카드를 확인한다.
Impact윤재는 미란의 피클 혐오를 기억하면서도, 손님들의 구체적인 사연은 팔리는 문장으로 지워 왔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된다. 미란의 주문은 화해를 위한 음식이 아니라 윤재가 매장 밖으로 나올 수 있는지 확인하는 마지막 요구가 된다. 복순은 다음 장면에서 광고 카드와 철수 안내문을 끊어 내기 직전의 위치로 밀려난다.

서미란이 주문서 밑에서 은반지를 잡아 빼내 도윤재의 앞치마 주머니를 향해 밀어 넣자, 도윤재가 피클 집게로 그녀의 손목 앞을 막았다. 집게 끝에서 피클 국물이 흰 포장지 위로 떨어졌고, 형광등 아래 노란 조각들이 빵 한쪽에만 수북하게 쌓였다. 장복순은 젖은 걸레를 발로 밀어 치우며 계산대 틈에 낀 주문 봉투를 잡아당겼다.

“피클 싫어하는 건 기억하면서.” 서미란이 집게를 손가락으로 밀어 내렸다. “남들이 적은 말은 왜 맨날 네 문장으로 바꿔?” 도윤재는 태블릿의 빈 매출 칸을 손등으로 가리켰다. “이 가게를 지키는 건, 아버지를 버리는 게 아니에요.” 서미란은 빵 위의 피클을 하나 집어 계산대 유리 위에 올려놓았다. “그럼 이건 기억해. 난 피클보다 네가 남의 이별을 할인 문구로 만드는 게 더 싫어.”

장복순이 주문 봉투를 뒤집자 광고용 사연 카드가 미끄러져 나와 은반지 위에 덮였다. 카드에는 윤재가 적은 “마지막 한 입까지 기억하세요”가 젖은 잉크처럼 번져 있었다. 복순은 낡은 재봉 가위의 손잡이를 계산대 아래에서 꺼내 쥐고, 두 사람 앞에 카드와 가위를 나란히 놓았다.

Scene 06· 폭우가 쏟아지는 밤 11시 무렵

잘린 사연 카드

잘린 사연 카드
Place폐점 예정 서브웨이 매장 계산대와 조리대 앞
Time폭우가 쏟아지는 밤 11시 무렵
Action장복순은 계산대 아래에서 꺼낸 낡은 재봉 가위로 미란의 주문 봉투에 붙은 광고용 사연 카드를 잘라 낸다. 도윤재가 카드를 붙잡으려 하지만, 복순은 철수 안내문까지 찢어 카드 조각 위에 덮는다. 서미란은 은반지를 윤재의 손앞에 밀고, 샌드위치 봉투만 들고 나가라고 재촉한다.
Impact윤재가 마지막 매출을 위한 광고 문구와 미란의 주문을 분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복순은 윤재 아버지의 마지막 영업일을 꺼내며, 매장을 지키겠다는 윤재의 말이 반복되는 핑계일 수 있음을 드러낸다. 잘린 카드는 더 이상 이별을 파는 도구가 될 수 없고, 윤재 앞에는 직접 배달할 샌드위치와 나갈 문만 남는다.

장복순이 낡은 재봉 가위를 닫아 광고용 사연 카드를 반으로 자르자, 계산대 유리 위에서 “마지막 한 입까지”라는 글자가 딱 끊겼다. 가위날은 은반지 바로 옆을 스치고, 잘린 카드 한쪽이 피클 국물 묻은 포장지 위로 떨어졌다. 도윤재가 손을 뻗어 조각을 집으려 하자 복순은 그의 손등을 붉은 펜으로 툭 밀었다. “네 아버지도 마지막 날에 그랬어. 한 건만 더, 한 건만 더.”

서미란은 젖은 재킷 소매로 계산대 물기를 훔치고, 남은 카드 조각을 윤재의 월세 봉투 위에 올려놓았다. “이건 내가 쓴 말도 아니야.” 그녀가 잘린 문장을 가리켰다. “내 주문에 붙이지 마.” 윤재는 태블릿의 빈 매출 칸을 향해 손가락을 움직였지만, 복순이 철수 안내문을 벽에서 뜯어 그의 손등 위에 내려놓았다.

복순은 안내문을 길게 찢어 카드 조각과 함께 쓰레기통에 밀어 넣었다. 찢어진 종이가 피클통 옆에 걸리자, 미란이 샌드위치 봉투를 윤재의 가슴에 밀었다. 복순은 가위를 조리대에 내려놓고 말했다. “배달은 해. 장사는 하지 마.” 윤재의 손이 은반지 위에서 멈춘 채, 광고 카드 없는 봉투 손잡이만 구겨졌다.

Chapter 03

Scene 07· 폭우가 내리는 밤 11시 무렵

삼각대의 발끝

삼각대의 발끝
Place폐점 예정 서브웨이 매장 조리대와 계산대 앞
Time폭우가 내리는 밤 11시 무렵
Action백시후는 장복순에게 밟혀 휘어진 접이식 삼각대를 주워 조리대 아래에 숨기고, 휴대폰을 다시 녹화 상태로 둔다. 그는 은반지와 피클 집게, 광고 카드가 뜯긴 배달 봉투가 한 화면에 들어오도록 발끝으로 삼각대 다리를 밀어 각도를 바꾼다. 장복순은 그 움직임을 보고 삼각대 한쪽 다리를 붉은 펜으로 눌러 멈추지만, 시후는 휴대폰만 손에 쥔 채 계산대 반대편으로 옮긴다.
Impact시후의 촬영은 우발적인 호기심이 아니라, 이미 준비된 거래였음이 드러난다. 윤재와 미란의 마지막 대화는 매장 안에만 남지 못하고 화면 속 상품이 될 위험을 얻는다. 복순은 시후를 막으려 하지만, 윤재가 매출과 반지 사이에서 머뭇거리는 동안 시후는 더 가까운 자리를 차지한다.

백시후가 구부러진 삼각대를 발끝으로 조리대 아래 밀어 넣자, 젖은 운동화 밑창이 피클 국물 자국을 길게 끌고 갔다. 형광등 아래 계산대에는 은반지, 잘린 광고 카드, 윤재가 구긴 배달 봉투가 차례로 놓여 있었고, 휴대폰 화면은 그 셋을 초록색 사각형으로 붙잡았다. 도윤재는 봉투 손잡이를 놓지 않은 채 태블릿의 빈 매출 칸을 다시 눌렀다. 서미란은 출구 쪽으로 한 발 물러나 윤재의 손과 화면 사이를 번갈아 보았다.

시후는 삼각대 다리를 신발 끝으로 펼쳐 반지와 피클 집게가 같은 화면에 들어오게 했다. 장복순이 붉은 펜 끝으로 삼각대 다리를 꾹 눌렀다. “사람들 헤어지는 데 네 발끝까지 끼어야 하냐.” 시후는 펜을 피해 휴대폰을 가슴 가까이 끌어올리고, 낮게 말했다. “얼굴 안 나와요. 주문 번호만 나와요.”

미란이 렌즈를 향해 고개를 돌리자 시후의 엄지가 녹화 버튼 위에서 멈췄다. 윤재가 피클 집게를 내려놓는 소리가 짧게 울렸다. 화면 속 은반지 옆에서, 잘린 카드의 ‘기억하세요’라는 끝말만 빗물처럼 번지고 있었다.

Scene 08· 폭우가 쏟아지는 밤 11시 40분 무렵

보증금이 될 장면

보증금이 될 장면
Place폐점 예정 서브웨이 매장 조리대와 출구 사이
Time폭우가 쏟아지는 밤 11시 40분 무렵
Action백시후는 미란의 시선이 렌즈를 향하자 녹화를 멈추는 대신, 휴대폰을 뒤집어 배달 앱 정산 화면을 연다. 그는 예상 광고비와 보증금 액수를 윤재에게 보이지 않게 확인하다가, 미란에게 휴대폰을 내밀어 “얼굴은 안 찍혔다”고 말한다. 미란은 휴대폰을 받지 않고 렌즈를 손가락으로 아래로 꺾는다. 윤재는 피클이 쌓인 샌드위치와 영업 태블릿 사이에서 망설이고, 복순은 출입문 잠금장치를 걸어 미란이 혼자 나가지 못하게 한다.
Impact시후의 촬영이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보증금을 마련하려는 계획이었다는 사실이 매장 안에 드러난다. 미란은 익명 처리라는 말로도 자신의 마지막 밤을 팔 수 없다고 선을 긋고, 윤재는 시후의 휴대폰을 처음으로 의심하게 된다. 복순이 문을 잠그면서 매장 안의 갈등은 피할 수 없는 대면으로 좁혀진다.

백시후가 휴대폰을 뒤집어 정산 화면을 켜자, 초록빛 숫자들이 젖은 조리대 위 은반지에 흔들려 비쳤다. 화면에는 ‘예상 광고 정산’과 시후가 메모해 둔 보증금 액수가 나란히 떠 있었고, 그는 엄지로 그 부분을 급히 가렸다. 도윤재는 구겨진 배달 봉투를 든 채 태블릿의 남은 시간을 눌렀고, 서미란은 출구 앞에서 그 손과 휴대폰을 번갈아 바라봤다.

“얼굴 안 나왔어요.” 시후가 휴대폰을 미란 쪽으로 내밀었다. “이 정도면 그냥 주문 영상이에요.” 미란은 받는 대신 렌즈를 손가락으로 눌러 아래로 꺾었다. “그럼 네 보증금도 주문 번호로 받아.” 장복순은 출입문 잠금장치를 돌려 철컥 소리를 냈고, 유리문 너머 빗물이 초록 로고를 길게 지웠다.

윤재가 시후의 휴대폰 화면을 향해 고개를 들자, 시후는 정산 화면을 닫다가 손을 멈췄다. 화면 구석의 최근 촬영 목록에서 회색 오피스텔 현관과 젖은 운동화 썸네일이 잠깐 드러났다. 시후는 휴대폰을 앞치마 안쪽으로 밀어 넣었지만, 미란의 운동화 끝이 화면에 남긴 물자국은 조리대 아래까지 이어져 있었다.

Scene 09· 폭우가 쏟아지는 밤 11시 50분경

저장되지 않은 밤

저장되지 않은 밤
Place폐점 예정 서브웨이 매장 조리대와 냉장고 앞
Time폭우가 쏟아지는 밤 11시 50분경
Action도윤재는 백시후의 앞치마 안쪽에서 휴대폰을 빼앗으려다, 화면에 뜬 오피스텔 현관과 서미란의 젖은 운동화 영상을 본다. 그는 시후의 멱살을 잡아 냉장고 문에 밀어붙이고, 휴대폰은 피클 국물과 빗물이 섞인 바닥으로 떨어진다. 장복순은 출입문 앞을 막고, 서미란은 윤재에게 폭력을 멈추라고 하지만 시후는 삭제 버튼을 누르지 못한다. 깨진 화면에는 주소 일부와 운동화 발끝이 남는다.
Impact시후의 촬영이 우연한 기록이 아니라 보증금을 위한 계획이었다는 사실이 모두에게 드러난다. 윤재는 미란의 주문이 이미 익명 영상의 소재가 되었음을 확인하고, 시후를 더 이상 배달 보조로만 볼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삭제되지 않은 영상은 미란의 주소와 오피스텔 현관을 남겨, 다음에 터질 반송 기록과 윤재의 과거 규칙 위반을 향한 통로가 된다.

도윤재가 백시후의 앞치마를 움켜쥐고 냉장고 문에 밀어붙이자, 매달린 앞치마 끈이 철문 손잡이에 걸려 짧게 끊어졌다. 휴대폰이 둘 사이에서 미끄러져 피클 국물 고인 바닥에 떨어졌고, 금 간 화면이 형광등을 여러 조각으로 쪼갰다. 화면에는 회색 오피스텔 현관, 현관문 옆 주소 표기, 서미란의 젖은 운동화 끝이 멈춘 영상처럼 떠 있었다. 윤재가 시후의 목깃을 더 조이자 장복순이 붉은 펜으로 그의 손등을 세게 쳤다. “가게 망한다고 사람까지 냉장 보관하냐.”

서미란은 구겨진 배달 봉투를 윤재의 팔에 밀어 넣었다. “놓아. 저걸 지운다고 네가 나가는 것도 아니잖아.” 시후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깨진 휴대폰을 집었지만, 삭제 표시 위에서 엄지가 떨린 채 멈췄다. “이거 하나면… 보증금 첫 달은 돼요.” 윤재가 손을 놓자 시후의 젖은 앞치마가 냉장고 문을 타고 내려왔고, 복순은 잠긴 출입문 앞에서 가위를 쥔 손을 내리지 않았다.

시후는 휴대폰을 뒤집으려 했지만 깨진 화면은 끝내 꺼지지 않았다. 미란의 운동화 발끝이 주소 아래에서 빗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Chapter 04

Scene 10· 폭우가 퍼붓는 밤 11시 50분경

젖은 봉투 더미

젖은 봉투 더미
Place폐점 예정 서브웨이 매장 계산대와 출입문 앞
Time폭우가 퍼붓는 밤 11시 50분경
Action류단비가 매장 문을 밀어젖히고 수령 거부된 샌드위치 봉투들을 계산대 위에 쏟는다. 봉투마다 빨간 반송 도장이 찍혀 있고, 맨 아래에는 몇 달 전 윤재가 문 앞에 두고 간 단비 자신의 주문 봉투가 있다. 윤재는 그 봉투를 감추려 하지만 단비가 그의 손목을 밀어내며 직접 전달 규칙을 어긴 사실을 모두 앞에 꺼내 놓는다.
Impact윤재가 이별 샌드위치를 배달이 아니라 문 앞에 남겨 두고 처리해 온 기록이 물증으로 드러난다. 미란의 오피스텔 주소를 알고 있던 단비가 일부러 침묵했다는 사실도 밝혀지며, 윤재는 마지막 주문을 들고 나가더라도 예전처럼 도망칠 수 없게 된다. 시후의 깨진 휴대폰 속 주소 영상과 단비의 봉투들은 같은 실패를 서로 다른 방식으로 들춰낸다.

류단비가 젖은 반송 봉투 더미를 계산대 위로 쏟아붓자, 빨간 도장들이 은반지와 잘린 광고 카드 사이로 미끄러졌다. 비에 불은 종이봉투 하나가 윤재의 앞치마에 붙었고, 봉투 앞면에는 굵은 글씨로 ‘수령 거부·류단비’라고 찍혀 있었다. 윤재가 그것을 집어 뒤집으려 하자 단비가 손등을 눌러 계산대에 붙였다. “그날도 이렇게 놓고 갔죠. 노크는 세 번, 책임은 영 번.”

시후는 깨진 휴대폰을 움켜쥔 채 냉장고 앞에서 한 발 물러났고, 금 간 화면 속 오피스텔 현관 주소가 봉투 위로 희미하게 비쳤다. 미란은 배달 봉투를 윤재의 팔에서 빼내지 않고, 대신 단비가 쏟아 놓은 봉투들을 내려다봤다. 단비는 자기 봉투를 펼쳐 눅눅해진 영수증을 꺼냈다. “문 앞 방치는 배달이 아니에요. 쓰레기 분리수거지.”

윤재가 “주소를 알고 있었으면 말했어야지”라고 쏘자, 단비는 미란의 주문서 주소 칸을 손톱으로 두 번 두드렸다. “당신이 이번에도 두고 도망치는지 보려고요.” 그녀는 빨간 도장 묻은 검지를 윤재의 배달 봉투 손잡이 가까이 들이밀었다. 계산대 위 봉투들은 빗물에 눌어붙은 채, 출입문까지 좁은 길을 막고 있었다.

Scene 11· 자정 2분 전, 폭우가 쏟아지는 밤

문턱을 막는 사람

문턱을 막는 사람
Place폐점 예정 서브웨이 매장 출입문 앞
Time자정 2분 전, 폭우가 쏟아지는 밤
Action도윤재가 서미란의 샌드위치 봉투를 들고 출입문으로 가자, 류단비는 젖은 반송 봉투들을 양팔에 끌어안고 문턱에 주저앉는다. 단비는 윤재가 봉투를 문 앞에 놓는 순간 관리실 규정대로 반송 도장을 찍겠다고 선언한다. 윤재는 문을 열려 하지만, 단비의 젖은 봉투 더미가 신발과 문틈을 함께 막는다. 백시후는 깨진 휴대폰을 움켜쥔 채 그 장면을 지우지도 찍지도 못하고, 미란은 윤재의 뒤에서 배달 가방 끈을 잡아당긴다.
Impact윤재는 미란에게 가기 위해서는 단비를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직접 전달의 규칙을 받아들여야 한다. 단비는 과거의 반송 기록을 단순한 협박이 아니라 윤재가 피할 수 없는 증거로 바꾼다. 미란은 더는 윤재의 결정을 대신 기다리지 않으며, 시후의 휴대폰은 다음 장면에서 버려질 만큼 무거운 물건이 된다.

류단비가 반송 봉투 더미를 끌어안은 채 출입문 앞에 주저앉자, 젖은 종이봉투들이 윤재의 운동화와 유리문 사이에 눌려 퍼졌다. 유리 너머 폭우가 초록 로고를 번지게 했고, 윤재의 손에는 은색 포장지로 감싼 터키 베이컨 아보카도 봉투가 매달려 있었다. 단비는 빨간 도장이 묻은 검지를 봉투 손잡이 앞에 세웠다. “이번에도 문 앞에 놓으면, 내가 직접 반송 찍어요.”

윤재가 문 손잡이를 잡아당기자 단비가 자기 이름이 적힌 눅눅한 봉투를 문틈에 밀어 넣었다. 종이가 찢어지는 소리에 시후가 움찔하며 깨진 휴대폰을 가슴 쪽으로 숨겼다. 미란은 윤재의 배달 가방 끈을 뒤에서 잡아 멈추게 했다. “나한테 주려면, 나한테 줘. 문한테 주지 말고.”

윤재의 손이 문 손잡이에서 떨어졌다. 단비는 봉투들을 발앞에 한 장씩 펼쳤고, ‘수령 거부’, ‘환불’, ‘폐기’가 형광등 아래 줄지어 드러났다. 윤재가 든 샌드위치 봉투만 그 더미 위에서 아직 마른 채 흔들렸다.

Scene 12· 밤 11시 57분, 폭우가 가장 거센 순간

팔지 않는 봉투

팔지 않는 봉투
Place폐점 예정 서브웨이 매장 출입문 앞
Time밤 11시 57분, 폭우가 가장 거센 순간
Action백시후는 깨진 휴대폰을 들고 출입문 쪽으로 다가가다가, 화면에 남은 미란의 운동화와 오피스텔 현관 영상을 끝내 보지 못하고 유리창 밖 화단으로 던진다. 류단비는 반송 봉투 더미를 끌어안은 채 그 소리를 듣고도 문 앞을 비키지 않는다. 도윤재는 은색 포장지에 붙은 광고 문구를 손으로 뜯어 쓰레기통에 버린 뒤, 서미란에게 샌드위치 봉투를 직접 내민다.
Impact시후가 보증금이 될 영상을 버리면서, 미란의 마지막 밤을 팔 수 있는 통로가 끊긴다. 윤재는 단비가 펼쳐 둔 반송 기록 앞에서 가게를 지킨 이유가 책임이 아니라 떠나는 사람을 원망할 핑계였다고 말한다. 미란은 봉투를 받지 않지만, 윤재는 문 앞 방치도 매출도 아닌 방식으로 마지막 배달을 선택한다.

백시후가 금 간 휴대폰을 출입문 유리창 쪽으로 던지자, 화면은 비에 젖은 화단에 처박히며 푸른 불빛을 한 번 튀겼다. 류단비의 발앞에는 ‘수령 거부’ 도장이 찍힌 봉투들이 젖은 생선 비늘처럼 붙어 있었고, 도윤재는 그 위에서 미란의 샌드위치 봉투를 놓지 못했다. 시후는 빈손을 앞치마에 문지르며 말했다. “보증금은 다른 데서 구할게요.” 단비가 유리창 밖 꺼진 화면을 보며 코웃음 쳤다. “그럼 이제 사람 값도 환불되겠네.”

윤재는 봉투 앞면의 ‘마지막 한 입까지 기억하세요’를 손톱으로 긁어 뜯었다. 젖은 스티커가 반쯤 찢겨 그의 손등에 달라붙자, 그는 그것까지 떼어 쓰레기통에 던졌다. 미란이 배달 가방 끈을 놓고 윤재를 바라봤다. 윤재는 봉투를 두 손으로 내밀었다. “가게 지킨다는 말, 그냥 네가 먼저 떠난 사람 되게 하려는 핑계였어.”

미란은 봉투를 받지 않고 윤재의 손을 내려다봤다. 단비는 반송 도장을 쥔 손을 천천히 내렸고, 시후가 던진 휴대폰 자리에서는 빗물이 검은 화면 위로 계속 흘렀다. 형광등 아래, 광고 문구가 뜯긴 은색 봉투만 윤재와 미란 사이에 매달려 있었다.

Chapter 05

Scene 13· 밤 11시 58분

반송 봉투가 만든 길

반송 봉투가 만든 길
Place폐점 예정 서브웨이 매장 출입문과 빗물 고인 골목
Time밤 11시 58분
Action장복순이 잠가 둔 출입문을 열고, 류단비는 바닥에 흩어진 반송 봉투들을 발끝으로 밀어 문까지 이어지는 좁은 길을 만든다. 도윤재는 광고 카드가 뜯긴 은색 샌드위치 봉투를 든 채 그 길을 밟아 밖으로 나간다. 서미란은 먼저 골목으로 들어가고, 단비는 윤재의 뒤에서 문 앞 방치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끝까지 확인한다.
Impact윤재는 매장에 남아 영업 기록을 붙드는 대신, 직접 전달을 위해 폭우 속으로 나가는 행동을 선택한다. 반송 봉투들은 더 이상 윤재를 막는 증거가 아니라 그가 지나가야 하는 길이 된다. 복순은 윤재가 매장을 잃는 장면을 지켜보면서도 붙잡지 않고, 단비는 반송 도장을 찍을 손을 잠시 내린다.

장복순이 유리문 잠금을 풀어 젖힌 순간, 류단비가 젖은 반송 봉투들을 구두 끝으로 밀어 출입문까지 한 줄로 깔았다. 빨간 ‘수령 거부’ 도장이 형광등 아래 번들거렸고, 문밖의 폭우는 초록 로고를 물감처럼 흘려보냈다. “밟고 가요,” 단비가 말했다. “이번엔 두고 가지 말고.”

도윤재는 은색 봉투 손잡이를 두 번 고쳐 쥐었다. 봉투에는 뜯겨 나간 광고 스티커의 끈적한 자국만 남아 있었다. 장복순이 계산대 쪽을 돌아보며 말했다. “자정 지나면 본사 놈들이 불 끈다. 사람이 먼저 나가.” 미란은 문턱 밖에서 젖은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고 윤재를 향해 고개만 한 번 기울였다.

윤재가 첫 봉투를 밟자 종이 안에 남은 빗물이 운동화 밑에서 터졌다. 단비는 반송 도장을 앞치마 주머니에 넣고 문을 비켜 섰다. 윤재는 배달 가방도 메지 않은 채 미란의 뒤를 따라 골목으로 뛰어들었고, 열린 문 안쪽에는 복순과 식어 가는 채소통, 반송 봉투가 만든 젖은 길만 남았다.

Scene 14· 밤 11시 59분 직전, 폭우가 가장 거센 순간

현관 앞의 수령인

현관 앞의 수령인
Place골목 끝 회색 오피스텔 현관과 관리실 창 앞
Time밤 11시 59분 직전, 폭우가 가장 거센 순간
Action도윤재는 미끄러운 대리석 현관 앞에서 서미란의 앞을 막지 않고, 은색 샌드위치 봉투를 두 손으로 내민다. 류단비는 관리실 창 안에서 반송 도장을 꺼내 유리창에 붙이고, 문 앞에 내려놓는 순간 찍겠다고 경고한다. 장복순은 빗물에 젖은 채 골목 입구까지 따라와 윤재가 매장 쪽으로 되돌아가지 못하게 출입문을 등지고 선다. 윤재는 봉투를 바닥에 놓지 않은 채, 자신이 가게를 지킨 것이 아버지 때문만은 아니었다고 미란에게 말한다.
Impact윤재는 배달을 핑계로 미란을 붙잡으려는 대신, 직접 전달하고 떠날 권리를 미란에게 돌려준다. 단비는 윤재의 손이 봉투를 끝까지 들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반송 도장을 찍지 못한다. 미란은 윤재의 늦은 말에 용서를 주지 않지만, 더 이상 그가 문 앞에 물건만 남기고 달아나는 사람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게 된다.

도윤재가 빗물로 번들거리는 대리석 현관 앞에서 서미란에게 은색 봉투를 밀어 내밀자, 봉투 손잡이에서 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무인 출입문은 닫힌 채 두 사람의 젖은 운동화를 유리에 비췄고, 관리실 창 안의 류단비는 빨간 반송 도장을 손가락 사이에서 굴렸다. 장복순은 골목 쪽에 선 채 젖은 앞치마 주머니를 눌렀다. “바닥에 내려놓으면 내가 네 다리부터 접는다.”

미란은 봉투를 받지 않고 윤재의 손만 봤다. 윤재는 봉투를 든 팔이 떨리자 손잡이를 더 세게 잡았다. “가게가 필요했던 게 아니야. 네가 먼저 떠났다고 욕할 데가 필요했어.” 단비가 관리실 창을 반 뼘 열고 말했다. “고백은 접수 안 됩니다. 수령만 돼요.” 미란의 입꼬리가 잠깐 올라갔다가 곧 사라졌다.

윤재는 문턱도, 화단도 보지 않고 봉투를 미란의 가슴 높이까지 다시 들어 올렸다. 미란은 끝내 그의 손에서 봉투 손잡이를 잡았다. 단비의 도장은 허공에서 멈췄고, 복순은 매장 쪽을 한 번 돌아본 뒤 젖은 셔터 소리 속에서 팔짱을 풀었다.

Scene 15· 밤 11시 59분에서 자정

피클 하나와 자정

피클 하나와 자정
Place골목 끝 회색 오피스텔 현관과 처마 아래
Time밤 11시 59분에서 자정
Action서미란이 윤재의 손에서 은색 샌드위치 봉투를 직접 받아 든다. 그녀는 봉투를 열어 피클 하나를 꺼내 빗물에 씻긴 화단으로 던지고, 남은 샌드위치를 반으로 갈라 윤재에게 건넨다. 류단비는 관리실 창 안에서 반송 도장을 내려놓고, 장복순은 골목 너머 매장 쪽을 돌아본다. 자정이 되자 멀리 서브웨이 매장의 형광등이 꺼진다.
Impact윤재는 미란에게 샌드위치를 직접 전달함으로써 문 앞 방치와 매출 기록의 방식에서 벗어난다. 미란은 윤재를 용서한다고 말하지 않지만, 그의 손에 반쪽을 남긴다. 단비는 반송 처리를 하지 못하고, 복순은 윤재가 매장을 잃는 장면을 막지 않는다. 윤재는 배달 앱의 완료 버튼을 누르지 않은 채, 처음으로 주문 밖의 시간을 선택한다.

서미란이 윤재의 손에서 은색 봉투를 낚아채듯 받아 들고, 젖은 대리석 현관 앞에서 포장지를 찢었다. 류단비는 관리실 창 안에서 빨간 반송 도장을 든 채 손목을 멈췄고, 장복순은 골목 입구의 빗물 고인 곳에 운동화 끝을 박았다. 미란은 샌드위치 속 노란 피클 하나를 집어 화단으로 툭 던졌다. 피클은 빗물에 젖은 흙 위에 붙었다. “이건 아직도 싫어.”

미란은 눅눅해진 빵을 손으로 반 갈라 한쪽을 윤재의 가슴에 밀어 붙였다. 윤재가 받지 못하고 손을 펴자, 미란은 그 손바닥 위에 빵을 올렸다. 관리실 창 안에서 단비가 도장을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직접 수령 확인,” 단비가 말하고는 젖은 전표를 뒤집었다. 복순은 웃지도 않은 채 중얼거렸다. “폐점식 치고는 케이크가 너무 길다.”

자정의 원격 종료음이 골목 건너 매장에서 짧게 울리고, 초록 로고 뒤 형광등이 한 번 깜빡인 뒤 꺼졌다. 윤재의 휴대폰 화면에는 ‘배달 완료’ 버튼이 떠 있었지만, 그의 엄지는 빗물 묻은 빵 부스러기만 문질렀다. 윤재와 미란은 오피스텔 처마 아래에서 반쪽씩 든 샌드위치를 씹었고, 단비의 반송 도장은 끝내 마른 종이를 찾지 못했다.

'(서브웨이 미장센)오늘은 배달 말고 퇴근해'Story Ch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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