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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ytalk Original · 5 scenes · 1 chapters

(코카콜라 PPL)마시지 말고 밀어요

낮에는 동네 분식집에서 병따개를 잃어버린 손님을 돕고, 밤에는 빨간 배달 박스를 타고 날아다니는 반쯤 망한 슈퍼히어로가 있다. 어느 토요일 오후 2시 17분, 여름 축제의 거대한 코카콜라 냉장 트럭이 브레이크 고장으로 언덕을 내려오고, 그는 떡볶이 국물 묻은 망토와 탄산으로 움직이는 낡은 제트 운동화를 끌고 도로 한가운데 선다. 문제는 그의 힘이 차가운 콜라 한 모금을 마신 뒤 정확히 88초만 유지된다는 것, 그리고 축제장에는 빨대 금지 캠페인 때문에 컵 뚜껑만 산처럼 쌓여 있다는 것이다.

군고구마 장수, 비눗방울 광대, 팔씨름 챔피언 초등학생이 즉석 팀이 되어 트럭을 막으려는 순간, 트럭 뒤칸의 얼음 문이 터지며 수백 개의 병이 굴러나오고 그는 사람들을 구할지, 마지막 한 모금을 마실지 골라야 한다.

  • 6 characters
  • 8 locations
  • 5 scenes
  • Plot 5,717 ch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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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racters

Characters

구만복

Male

낮에는 ‘만복분식’에서 병따개와 앞치마를 찾아주고, 밤에는 빨간 배달 박스에 낡은 제트 운동화를 묶어 골목 민원을 처리하는 폐업 직전 자영업자

Profile

구만복은 여름 축제에서 코카콜라 냉장 트럭을 막아내면, 떡볶이 국물 묻은 망토를 보고 웃던 동네 사람들이 다시 박수를 칠 거라고 믿는다. 힘은 차갑게 식은 코카콜라 한 모금 뒤 88초뿐이라, 구만복은 마지막 병을 따는 순간마다 자기 체면과 누군가의 안전을 저울질하게 된다. 도담이 트럭 앞에서 컵 뚜껑 더미를 끌어안고 버티고, 옥분이 외상 장부를 든 채 그 아이를 잡아당기는 순간, 구만복에게 남은 한 모금은 명예 회복이 아니라 둘을 밀어낼 유일한 시간으로 바뀐다.

구만복은 아이들이 “진짜 날 수 있어요?” 하고 물으면 빨간 배달 박스 위에 한 발을 올리고 허리를 꺾어 포즈부터 잡지만, 운동화 밑창에서 김 빠지는 소리가 나면 곧장 기침으로 덮는다. 옥분이 외상값을 말할 때마다 구만복은 주머니에서 구겨진 영수증, 병뚜껑, 고장 난 호루라기를 차례로 꺼내며 시간을 끌고도, 도담 앞에서는 콜라 한 병을 절대 먼저 마시지 않는다. 겁이 나면 구만복은 망토 끝의 마른 떡볶이 자국을 손톱으로 긁는데, 그 손이 떨릴수록 목소리는 더 크게 “계산된 착지였다”고 우긴다.

Background

구만복은 한때 축제 퍼레이드에서 아이를 잃어버린 가족을 찾아준 뒤 ‘우리 동네 캡틴’이라고 불렸지만, 다음 해 시범 비행에서 떡볶이 가판대 천막에 거꾸로 꽂히며 웃음거리로 남았다. 그날 이후 구만복은 옥분의 분식집 뒤편 냉장고에 코카콜라 한 병을 몰래 식혀 두고, 배달이 끊긴 밤마다 88초를 재며 골목 전구를 갈고 고양이를 내려줬다. 이번 축제에서 도담이 직접 만든 종이 배지를 구만복의 망토에 달아 주자, 구만복은 처음으로 병뚜껑을 따기 전에 도망갈 길부터 보지 않게 된다.

Description

구만복은 마흔을 코앞에 둔 얼굴에 늘 덜 마른 땀과 밀가루 자국을 묻히고 다니며, 색 바랜 분식집 앞치마 위에 떡볶이 국물이 굳은 빨간 망토를 아무렇지 않게 걸친다. 낡은 제트 운동화는 발목마다 철사와 병뚜껑으로 묶여 있고, 그는 겁먹을수록 가슴을 더 펴지만 손끝은 망토 끝의 마른 얼룩을 몰래 긁는다. 가장 눈에 남는 것은 도담이 달아 준 삐뚤빼뚤한 종이 배지로, 구겨진 영수증들 사이에서도 그 배지만은 비닐로 싸서 심장 가까이에 붙어 있다.

나옥분

Female

축제장 언덕 입구에서 드럼통 화덕을 끌고 다니며 군고구마와 얼음컵 콜라를 함께 파는 노점상

Profile

나옥분은 축제 하루 장사로 자리세 봉투를 채워 손수레 압류 딱지를 떼려 한다. 코카콜라 냉장 트럭이 언덕을 미끄러져 내려오자 나옥분은 먼저 동전 든 계산대 통을 품에 끌어안지만, 구만복이 떡볶이 국물 묻은 망토를 펄럭이며 버티는 순간 팔리지 않은 고구마 포대를 바퀴 밑으로 밀어 넣는다. 그 일로 구만복은 88초짜리 힘만 믿고 서 있던 자리에서 처음으로 남의 생계까지 등에 업게 되고, 나옥분은 구조가 끝나면 고구마값과 외상값을 따로 적은 장부를 내밀 생각이다.

나옥분은 손님이 “하나만 덤”이라고 하면 집게를 딱 닫아 버리지만, 아이가 뜨거운 고구마를 놓칠까 봐 종이컵 두 겹을 말없이 끼워 준다. 위험이 닥치면 먼저 돈통 위치를 확인하고, 그다음 사람 발목과 바퀴 방향을 본다. 구만복이 영웅처럼 말끝을 올릴 때마다 나옥분은 그 망토의 국물 자국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폼값은 네가 내라”고 받아친다.

Background

나옥분은 30년 동안 겨울 장사로 버텼지만, 축제 구역이 새로 정비되며 손수레 자리세가 올라 장부 끝에 빨간 줄이 늘었다. 남편이 쓰던 낡은 드럼통 화덕을 버리지 못해 여름에도 고구마를 굽고, 그 열기 때문에 손등에는 늘 얇은 화상 자국이 남아 있다. 구만복이 예전에 병따개를 찾아 준 날, 나옥분은 고맙다는 말 대신 식은 고구마 하나를 쥐여 줬고 그때부터 그를 “외상 많은 영웅”으로 기억한다.

Description

나옥분은 햇빛에 바랜 꽃무늬 몸빼바지 위에 기름때 밴 남색 앞치마를 두르고, 한 팔로는 찌그러진 계산대 통을 품에 안은 채 다른 손으로 뜨거운 고구마 집게를 무기처럼 쥔다. 허리는 조금 굽었지만 발끝은 늘 바퀴가 굴러올 방향을 향해 벌어져 있고, 눈가의 깊은 주름 사이로 “살 사람은 살고, 외상은 갚아라”라는 표정이 먼저 튀어나온다. 손등에는 드럼통 화덕에 데인 얇은 화상 자국들이 흰 실금처럼 남아 있으며, 그녀가 던진 팔리지 않은 고구마 포대에서는 김이 올라 도로 위에 작은 흙냄새 장벽을 만든다.

배도담

Female

여름 축제 어린이 팔씨름 왕중왕전 결승에 올라간 만복분식 단골 — 상품으로 걸린 코카콜라 아이스박스를 반 전체 회식용으로 가져가려는 6학년 주장

Profile

배도담은 구만복이 허풍만 센 분식집 아저씨가 아니라는 걸, 이번 축제에서 자기 눈앞의 승부처럼 또렷하게 확인받고 싶어 한다. 그래서 팔씨름 결승 시작 종이 울리기 직전에도 구만복의 빨간 배달 박스가 뜨는 각도를 재다가, 쏟아진 코카콜라 병들 사이에서 자기 힘으로 길을 벌려야 하는 처지가 된다. 배도담이 버티는 순간 구만복은 마지막 한 모금을 자기 추진력에 쓸지, 배도담이 만든 좁은 틈을 믿고 사람들 쪽으로 몸을 던질지 선택해야 한다.

배도담은 팔씨름 탁자에 앉으면 먼저 의자 다리 네 개를 발끝으로 눌러 흔들림을 확인하고, 상대가 어른이어도 손목 각도가 틀리면 “다시 잡아요”라고 딱 잘라 말한다. 겁이 올라오면 배도담은 웃지 않고 볼 안쪽을 깨문 채 왼손으로 오른팔 팔꿈치를 감싸는데, 그 자세가 나오면 반 친구들은 결승보다 더 큰 일이 왔다는 걸 안다. 누가 “애들은 빠져”라고 말하면 배도담은 한 발 물러나는 대신 바닥의 병, 컵 뚜껑, 얼음 조각을 세어 가장 덜 미끄러운 자리를 찾아낸다.

Background

배도담은 만복분식 구석자리에서 숙제를 하며 구만복이 외상 장부 뒤에 히어로 출동 시간을 적는 걸 몇 번이나 봤고, 그때마다 모른 척 단무지 통을 앞으로 밀어 가려 주었다. 학교에서는 키 큰 아이들이 정한 줄서기 순서를 팔씨름으로 바꿔 놓은 뒤부터 “힘센 애”로 불렸지만, 배도담은 이기는 것보다 자기가 잡은 손을 끝까지 놓지 않는 쪽에 더 오래 매달렸다. 올해 축제에서 배도담은 코카콜라 아이스박스를 따서 반 아이들에게 돌리려 했는데, 언덕 아래로 내려오는 냉장 트럭 때문에 처음으로 상이 아니라 방향을 붙잡아야 한다.

Description

배도담은 축제 결승용 접이식 팔씨름 장갑을 한 손에 끼고, 다른 손으로는 자기 오른팔 팔꿈치를 꽉 감싼 채 병과 얼음이 흩어진 아스팔트의 빈틈을 재듯 선다. 민트색 반팔 교복 셔츠 위에 반 친구들이 매직으로 이름을 적어 준 남색 반티를 걸쳤고, 허리에는 코카콜라 아이스박스 상품표에서 떼어 낸 빨간 리본을 매듭처럼 묶어 둔 것이 유일한 장식이다. 겁먹은 얼굴인데도 턱은 내려가지 않고, 볼 안쪽을 깨문 자국 때문에 한쪽 뺨만 작게 부풀어 올라 있다.

공칠복

Male

빨대 금지 캠페인 부스 옆에서 거대한 비눗방울 쇼를 하며 아이들에게 종이컵 뚜껑을 나눠 주는 떠돌이 공연자

Profile

공칠복은 오늘 축제에서 박수보다 큰 웃음소리를 받아내 구청 상설 공연 계약을 따내려 한다. 언덕 위에서 코카콜라 냉장 트럭의 쇳소리가 밀려오자 공칠복은 음악 볼륨을 올려 관객을 붙잡지만, 도담이 굴러나온 병들 사이로 미끄러지는 순간 구만복의 낡은 제트 운동화 흡입구에 비눗물을 쏟아 탄산 추진을 부풀린다. 그 한 번의 선택으로 공칠복의 마지막 비눗방울 장비는 하얀 거품과 플라스틱 조각으로 터지고, 구만복은 88초짜리 힘을 혼자 쓰는 영웅에서 남의 무대를 빚진 영웅이 된다.

공칠복은 웃음이 작게 나오면 빨간 코를 손바닥으로 눌러 삑 소리를 내고, 아이가 울면 자기 신발 끈에 일부러 걸려 넘어져 무릎의 흙을 털지 않는다. 돈 얘기가 나오면 풍선 칼을 접어 주머니에 숨기지만, 누군가 “재미없다”고 말하면 스피커를 한 칸 더 올리고 턱 밑의 땀을 반짝이 가루로 문질러 감춘다. 공칠복은 위험한 소리와 야유를 구분하는 귀가 있는데도, 계약서가 걸린 날에는 그 귀를 스스로 음악으로 막는다.

Background

공칠복은 한때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주말마다 매진을 찍던 비눗방울 공연자였지만, 자동 버블건 대여 부스가 생긴 뒤부터 축제장 가장자리로 밀려났다. 마지막으로 남은 장비는 코카콜라 빈 박스를 덧댄 손수레와 금 간 비눗방울 통뿐이라, 공칠복은 이번 축제 담당자에게 “오늘 웃음소리만 들어 보고 결정하자”는 말을 붙잡고 왔다. 구만복이 분식집 앞에서 병따개를 찾아 주던 날, 공칠복은 그가 받은 고맙다는 인사보다 차가운 병뚜껑 따는 소리에 사람들이 더 크게 웃는 것을 보고, 저 반쯤 망한 영웅을 자기 공연의 마지막 경쟁자로 기억해 두었다.

Description

공칠복은 반짝이 가루가 땀에 뭉쳐 턱 밑에 굳은 46세의 떠돌이 광대로, 해진 노란 조끼 위에 코카콜라 빈 박스를 잘라 붙인 손수레 끈을 어깨에 걸고 다닌다. 트럭 소리가 축제 음악 밑에서 갈라질 때도 그는 스피커 볼륨을 올린 채 웃는 입을 유지하지만, 도담이 병 사이로 미끄러지는 순간 금 간 비눗방울 통을 움켜쥔 손등의 힘줄이 하얗게 선다. 그의 기억나는 표식은 한쪽만 닳아 삐걱대는 커다란 빨간 신발과, 터지기 직전의 거품처럼 흔들리는 빨간 코다.

송라미

Female

코카콜라 여름 축제의 현장 운영을 맡아 얼음 박스, 병 회수함, 무대 동선을 혼자 무전기로 맞추는 계약직 스태프

Profile

송라미는 다음 축제 계약을 따내려고 브레이크 경고등이 깜박이는 코카콜라 냉장 트럭을 언덕 위 대기선에 그대로 묶어 두려 한다. 트럭이 미끄러지기 시작하자 송라미는 만복에게 뒤칸 왼쪽 얼음통 아래 남은 병들과 가장 차가운 한 병의 위치를 알려 주지만, 그 말을 하려면 자신이 경고를 덮었다는 사실도 축제장 스피커 앞에서 꺼내야 한다. 송라미가 무전기를 놓지 않고 트럭 손잡이에 매달리는 순간, 만복은 마지막 한 모금을 찾는 일과 송라미의 고백을 믿는 일 사이에서 88초를 잃기 시작한다.

송라미는 행사표 모서리를 손톱으로 접어 시간마다 표시하고, 웃는 얼굴 안내 멘트를 하면서도 눈은 늘 전광판보다 차량 계기판을 먼저 훑는다. 실수한 스태프에게는 물티슈부터 건네고 나서 낮게 혼내지만, 자기 실수 앞에서는 무전기 버튼을 세 번 눌렀다 떼며 목소리를 삼킨다. 사람들이 쳐다보면 송라미는 더 크게 “안전선 뒤로 물러나 주세요”를 외치는데, 손바닥에는 녹은 얼음물과 콜라 라벨 접착제가 끈적하게 묻어 있다.

Background

송라미는 지역 축제 대행사에서 막내로 시작해, 비 오는 날 천막을 붙잡고 밤새운 뒤에야 진행 마이크를 잡게 됐다. 지난봄 행사 취소로 팀장이 떠난 뒤 송라미에게 남은 것은 낡은 무전기 두 대와 “이번만 무사히 끝내면 정식 계약”이라는 말뿐이었다. 그래서 토요일 오후 2시 17분, 송라미는 경고등을 본 사람의 얼굴로도 웃으며 대기선을 지켰고, 그 선택이 만복의 88초짜리 힘보다 먼저 도로를 흔들었다.

Description

송라미는 햇빛에 바랜 빨간 행사 조끼 위에 얇은 방수 점퍼를 허리에 묶고, 목에는 스태프 출입증과 낡은 무전기 이어폰 줄을 엉킨 목걸이처럼 걸고 있다. 웃는 입꼬리는 안내 멘트에 맞춰 올라가 있지만 눈은 늘 사람들 너머 트럭 바퀴와 경고등을 재고, 무전기를 쥔 오른손은 녹은 얼음물과 콜라 라벨 접착제로 번들거리며 세 번씩 버튼을 눌렀다 놓는다. 그녀의 기억나는 표식은 행사표 모서리를 접어 만든 작은 종이 삼각형들이 조끼 주머니 밖으로 삐져나와, 도망치고 싶은 마음 대신 시간을 붙잡는 깃발처럼 흔들리는 것이다.

염봉식

Male

폐자전거 가게 뒤편에서 배달 박스, 선풍기 모터, 탄산 캔을 뜯어 만복의 비행 장비를 고쳐 주는 동네 발명가

Profile

염봉식은 만복이 오늘만큼은 영웅 노릇을 쉬고 발목을 보전하길 바라서, 전날 밤 빨간 배달 박스의 배터리 나사를 몰래 빼 자기 공구함 맨 아래 칸에 숨겼다. 그러나 코카콜라 냉장 트럭이 언덕을 밀고 내려오자, 염봉식은 자기 가게 간판을 뜯어 배달 박스 옆구리에 임시 날개로 박아 넣고 만복에게 88초 안에 돌아오지 못하면 운동화보다 먼저 뼈가 못 버틴다고 못질 소리 사이로 말한다. 만복이 날아오르는 순간 염봉식은 평생 손때 묻은 간판과 마지막 수리 가능성을 함께 잃지만, 그가 멈추면 축제장 사람들의 비명만 남는다.

염봉식은 나사를 입술 사이에 물고 말하는 버릇이 있어 화를 낼 때도 쇳가루 섞인 발음이 새고, 손님 앞에서는 “이건 폐품이 아니라 성질 더러운 부품”이라며 망가진 물건을 꼭 한 번 쓰다듬는다. 만복이 웃으며 무리하려 들면 염봉식은 먼저 욕을 삼키고 운동화 뒤꿈치의 균열을 손톱으로 긁어 보여 주는데, 그 손톱 밑에는 늘 검은 고무 찌꺼기가 끼어 있다. 겁이 날수록 더 엉뚱한 장치를 만들며, 축제장 아이들이 지켜보는 앞에서는 떨리는 손을 감추려고 코카콜라 병뚜껑을 렌치처럼 돌린다.

Background

염봉식은 한때 오토바이 배달함을 개조해 동네 대회에 나가던 정비사였지만, 폭우 속에서 브레이크 케이블 하나를 아끼다 친구의 발목이 평생 절뚝이게 된 뒤로 속도를 믿지 않게 됐다. 만복의 빨간 배달 박스가 처음 그의 가게 셔터를 들이받은 날, 염봉식은 찌그러진 철판보다 만복의 무릎 떨림을 먼저 봤고 그때부터 수리비 대신 분식집 튀김 부스러기를 받아 왔다. 이번 축제에 걸린 ‘봉식수리상회’ 간판은 그가 처음으로 새로 맞춘 물건이었지만, 오후 2시 17분의 내리막길 앞에서는 그 간판마저 날개 재료가 된다.

Description

염봉식은 기름때가 번진 회색 작업복 위에 빨간 배달 박스 끈을 멜빵처럼 걸치고, 한쪽 어깨에는 방금 뜯어낸 ‘봉식수리상회’ 간판 조각을 날개처럼 기대고 선다. 쉰넷의 얼굴은 햇볕과 쇳가루에 거칠게 마른 편이고, 입술 사이에 문 작은 나사 때문에 화난 말도 웅얼거리며 새지만 눈은 만복의 운동화 뒤꿈치 균열에서 한 번도 떨어지지 않는다. 검은 고무 찌꺼기가 낀 손톱으로 코카콜라 병뚜껑을 렌치처럼 비틀어 쥔 모습이, 도망치고 싶은 사람보다 끝까지 망가진 것을 붙잡는 사람에 가깝다.


Synopsis

Plot

구만복은 토요일 오후, 만복분식 앞에서 병따개를 찾는 손님 셋과 떡볶이 국물 넘친 냄비 사이를 오가며 자기가 아직 쓸모 있는 사람처럼 보이려고 애쓴다. 축제장 스피커에서는 코카콜라 여름 이벤트 멘트가 밝게 흘러나오고, 언덕 아래 사거리에는 얼음컵을 든 사람들, 어린이 팔씨름 무대, 병 회수함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만복은 빨간 배달 박스 위에 한 발을 올리고 아이들에게 “오늘은 착지까지 계산했다”고 말하지만, 뒤꿈치의 제트 운동화에서는 김 빠지는 소리가 난다. 염봉식은 폐자전거 가게 앞에서 그 소리를 듣고 만복의 발목을 잡아 내린다. 그는 전날 밤 몰래 빼 둔 배터리 나사를 공구함에서 꺼내 보이며, “오늘 날면 네 발목이 먼저 폐업한다”고 으르렁댄다. 만복은 웃으며 넘기려 하지만, 망토 끝의 마른 떡볶이 자국을 긁는 손이 떨린다.

그때 배도담이 팔씨름 결승 무대에서 만복을 부른다. 도담은 상품으로 걸린 코카콜라 아이스박스를 반 친구들과 나눠 마시겠다며 손목에 붕대를 감고 있고, 상대보다 먼저 의자 다리를 발끝으로 눌러 흔들림을 확인한다. 만복은 도담 앞에서만큼은 병을 먼저 따지 않는다. 자신이 차가운 콜라 한 모금 없이는 88초밖에 버티지 못하는 히어로라는 사실을 아이에게 들키고 싶지 않아서다. 나옥분은 옆에서 군고구마 손수레를 세워 놓고 얼음컵 콜라를 팔며, 만복에게 외상 장부를 흔든다. “폼값은 네가 내고, 병값은 손님이 낸다.” 공칠복은 빨대 금지 캠페인 부스 앞에서 거대한 비눗방울을 띄우지만, 관객 웃음이 작아지자 스피커 볼륨을 한 칸 더 올린다. 그의 손수레에는 코카콜라 박스로 덧댄 비눗물 통이 달려 있고, 종이컵 뚜껑은 아이들 손에 산처럼 쌓인다.

언덕 위 임시 하역장에서는 송라미가 무전기를 쥔 채 냉장 트럭 운전석 옆을 맴돈다. 브레이크 경고등은 이미 몇 번이나 깜박였지만, 그녀는 다음 계약을 놓칠까 봐 트럭을 대기선에 묶어 두는 쪽을 택한다. 행사표 모서리를 손톱으로 접은 그녀는 기사에게 “오 분만 버티면 됩니다”라고 말하고, 바퀴 뒤에 얹은 고임목을 발로 더 깊이 밀어 넣는다. 바로 그 순간, 언덕 위에서 컵 뚜껑 더미를 옮기던 자원봉사자가 미끄러지고, 굴러간 병 회수함이 고임목을 친다. 차가운 붉은 냉장 트럭이 낮은 쇳소리를 내며 움직이기 시작한다. 송라미는 손잡이에 매달려 몸으로 버티지만, 손바닥에 묻은 녹은 얼음물과 라벨 접착제 때문에 손이 밀린다. 트럭은 그녀를 끌고 언덕 아래로 내려온다.

처음엔 사람들은 그것을 퍼레이드 차량으로 착각한다. 공칠복은 음악을 더 키우고, 옥분은 돈통을 품에 안으며 손수레를 뒤로 빼려 한다. 그러나 트럭의 앞범퍼가 첫 번째 플라스틱 안내선을 찢고, 얼음물이 아스팔트 위로 쏟아지자 웃음이 끊긴다. 만복은 빨간 배달 박스에 올라타지만 염봉식이 그의 망토를 붙잡는다. “나사도 없는 놈이 뭘 날아.” 만복은 공구함 맨 아래 칸을 뒤집어 배터리 나사를 찾아내고, 염봉식은 욕을 삼키며 자기 폐자전거 가게 간판을 뜯어 배달 박스 옆구리에 못질한다. 간판은 가게 이름의 절반을 잃고 임시 날개가 된다. 염봉식은 마지막 못을 박으며 만복의 운동화 뒤꿈치 균열을 손톱으로 긁어 보여 준다. “88초 안에 못 돌아오면 운동화 말고 네 뼈가 먼저 분해된다.”

만복은 냉장고에서 가장 차가운 코카콜라 병 하나를 집어 들지만, 빨대 금지 캠페인 때문에 주변에는 뚜껑 달린 컵만 가득하고 빨대는 없다. 그는 병뚜껑을 따서 한 모금을 들이켜려다, 트럭 뒤칸의 얼음 문이 덜컹이며 열리는 걸 본다. 수백 개의 병이 얼음과 함께 쏟아져 언덕을 굴러 내려온다. 도담은 팔씨름 무대에서 뛰어내려 병들이 관객석으로 퍼지는 길을 몸으로 막고, 미끄러운 아스팔트 위에서 가장 덜 젖은 틈을 발끝으로 찾아 선다. 그녀는 오른팔 팔꿈치를 왼손으로 감싼 채, 굴러오는 병 회수함을 어깨로 밀어 방향을 틀어 놓는다. 그 대가로 결승 무대가 무너지고, 반 아이들이 기다리던 아이스박스는 바닥으로 떨어져 얼음과 함께 깨진다.

옥분은 처음엔 돈통을 끌어안고 뒤로 물러난다. 하지만 도담의 발이 컵 뚜껑 더미 위에서 미끄러지는 순간, 옥분은 팔리지 않은 군고구마 포대를 집게로 밀어 트럭 바퀴 앞에 던진다. 뜨거운 고구마가 터지며 노란 속살이 아스팔트에 으깨지고, 바퀴는 잠깐 헛돈다. 옥분의 손수레 한쪽 축이 휘어지고, 압류 딱지가 붙은 판자는 바퀴 밑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도 만복에게 외친다. “내 포대값까지 살려서 갚아!”

공칠복은 그제야 자신이 음악으로 위험한 소리를 덮었다는 걸 깨닫는다. 그는 아이들을 뒤로 밀어내며 비눗방울 통을 끌고 만복 쪽으로 달린다. 만복의 제트 운동화 흡입구는 떡볶이 국물과 먼지로 막혀 출력이 오르지 않는다. 공칠복은 잠깐 망설이다가, 구청 계약 담당자가 보고 있던 자신의 마지막 장비를 통째로 들어 운동화 흡입구에 쏟는다. 비눗물이 탄산과 만나 흰 거품으로 폭발하고, 빨간 배달 박스가 덜컹거리며 떠오른다. 동시에 공칠복의 손수레는 압력에 찢겨 나가고, 그의 거대한 비눗방울 막대는 플라스틱 조각으로 부서진다. 그는 빨간 코를 눌러 삑 소리를 내 보지만, 이번엔 아무도 웃지 않는다.

만복은 차가운 코카콜라 한 모금을 삼킨다. 목을 타고 내려간 냉기가 가슴에서 터지고, 병뚜껑 금속이 운동화 안에서 딸깍딸깍 맞물린다. 그는 88초를 세기 시작한다. 첫 20초 동안 만복은 배달 박스를 낮게 띄워 굴러오는 병들을 옆 골목으로 튕겨 낸다. 병들은 병 회수함에 부딪혀 맑은 소리를 내며 쌓이고, 몇 개는 깨지지 않고 멈춘다. 35초째, 송라미가 여전히 트럭 손잡이에 매달린 채 끌려 내려오는 모습이 보인다. 만복은 그녀를 잡아채려 하지만, 송라미는 무전기를 놓지 않고 외친다. 뒤칸 왼쪽 얼음통 아래에 가장 차가운 병이 하나 더 있고, 자신이 브레이크 경고를 덮었다고. 그 말은 무전기보다 스피커에 먼저 새어 나가 축제장 전체에 울린다. 관객들의 시선이 그녀에게 꽂히고, 송라미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손잡이를 놓친다.

만복은 마지막 병을 찾으러 트럭 뒤칸으로 날아들어 갈 수도 있고, 송라미를 받을 수도 있다. 그는 순간적으로 병 쪽으로 몸을 틀었다가, 도담이 컵 뚜껑 더미를 끌어안고 바퀴 옆에서 버티는 걸 본다. 옥분이 도담의 허리띠를 잡아당기지만 둘 다 얼음물에 미끄러진다. 만복은 욕처럼 짧게 숨을 뱉고 송라미 쪽으로 떨어진다. 그는 송라미의 조끼 뒷덜미를 잡아 관객석 쪽으로 던지듯 밀어내고, 그 반동으로 트럭 뒤칸 모서리에 어깨를 부딪친다. 58초가 지난다. 그의 배달 박스 임시 날개 한쪽이 떨어져 나가고, 염봉식의 간판 조각이 길바닥을 긁으며 불꽃을 튄다.

송라미는 바닥을 구르다 일어나 도망치지 않는다. 그녀는 무대 스피커 앞으로 달려가 안전 멘트를 하는 대신, 자기 몸으로 팔씨름 무대의 남은 철제 프레임을 밀어 트럭 진행 방향에 세운다. “제가 막았어야 했습니다!” 그녀는 목이 갈라지도록 외치고, 무전기를 땅에 내려놓는다. 그 고백은 트럭을 멈추지 못하지만, 사람들을 움직인다. 관객들이 접이식 의자를 들고 물러나 통로를 만들고, 상인들이 병 회수함을 굴려 바퀴 옆으로 세운다. 누구도 깨끗한 손으로 돕지 않는다. 누군가는 자기 부스를 버리고, 누군가는 계산대를 놓고, 누군가는 방금 산 얼음컵을 쏟아 마른 자리를 만든다.

70초째, 만복은 뒤칸 왼쪽 얼음통 아래에 끼어 있는 마지막 차가운 병을 본다. 하지만 병은 굴러나온 얼음과 컵 뚜껑 사이에 박혀 있고, 그 앞에는 도담이 만든 좁은 틈이 있다. 도담은 자기 오른팔로 병 회수함을 붙잡고 왼발로 뚜껑 더미를 눌러 길을 벌린다. 아이의 손목이 떨리고, 팔씨름 장갑의 찍찍이가 뜯어진다. 만복은 병을 향해 손을 뻗지만, 도담이 이를 악물고 말한다. “아저씨, 마시지 말고 밀어요.” 그 말에 만복은 처음으로 자기 88초를 더 늘릴 방법이 아니라, 남들이 만든 1초들을 믿는다.

만복은 마지막 병을 따지 않는다. 그는 병을 옥분에게 던지고, 옥분은 그것을 집게로 받아 바퀴 앞 고구마 포대 사이에 끼운다. 차가운 병이 뜨거운 고구마 속에서 터지듯 흔들리고, 탄산 압력이 포대와 병 회수함을 동시에 밀어 올려 작은 턱을 만든다. 공칠복은 부서진 비눗방울 막대의 긴 손잡이를 들고 달려와 그 턱 밑에 끼워 넣고, 송라미는 철제 프레임을 온몸으로 눌러 지렛대가 빠지지 않게 버틴다. 염봉식은 만복의 배달 박스에서 떨어진 간판 날개를 들고 바퀴 옆에 몸을 낮춘다. 그는 손톱 밑이 찢어지도록 병뚜껑 금속 조각을 끼워 넣으며 “한 번은 더 버틴다”고 중얼거린다.

마지막 8초, 만복은 추진력이 꺼져 가는 배달 박스를 버리고 직접 트럭 앞범퍼로 뛰어든다. 그는 망토를 양손에 감아 범퍼와 팔씨름 무대 프레임 사이를 묶고, 발뒤꿈치의 제트 운동화를 아스팔트에 박는다. 탄산 거품이 운동화 옆구리에서 새고, 빨간 배달 박스는 빈 껍데기처럼 뒤로 튕겨 나간다. 도담은 만복의 옆에 서서 프레임을 함께 민다. 옥분은 돈통을 내려놓고 손수레 손잡이를 바퀴 밑으로 꽂는다. 공칠복은 미끄러지는 아이들을 자신의 커다란 신발로 막아 세우고, 송라미는 트럭 운전석 문에 몸을 부딪쳐 핸들을 오른쪽으로 꺾는다. 염봉식은 만복의 발목을 두 팔로 감싸 쥐어 운동화가 찢겨 나가지 않게 붙든다.

88초가 끝나는 순간, 만복의 힘은 거품처럼 꺼진다. 하지만 이미 트럭의 앞바퀴는 고구마 포대, 병 회수함, 철제 프레임, 손수레 축, 간판 날개가 만든 엉성한 턱 위에 올라타 있다. 무게중심이 틀어진 트럭은 아래 사거리 한복판으로 돌진하지 못하고, 만복분식 옆 빈 병 수거 구역으로 옆으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붉은 냉장 트럭은 병 회수함들을 밀고 가다 낮은 담벼락에 쿵 하고 멈춘다. 냉장 문이 열리며 차가운 김이 쏟아지고, 깨지지 않은 코카콜라 병들이 얼음 속에서 달그락거린다. 만복은 범퍼 아래 주저앉아 있고, 망토는 찢어졌으며, 운동화 한 짝은 완전히 김이 빠져 있다.

잠깐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다. 그러다 옥분이 먼저 돈통을 들어 확인하고, 찌그러진 손수레를 보더니 만복에게 외상 장부를 내민다. “고구마 포대, 손수레 축, 그리고 방금 네가 멋있는 척한 값.” 그 말에 사람들이 웃기 시작한다. 공칠복은 부서진 빨간 코를 주워 눌러 보지만 삑 소리가 나지 않아, 대신 자기 입으로 작게 “삑” 한다. 도담은 팔씨름 결승 상품이 깨진 것을 보고 입술을 깨물다가, 얼음 속에 남은 병들을 반 친구들에게 하나씩 나눠 준다. “결승은 다음에 다시 잡아요. 의자 다리부터 제대로 고치고.” 송라미는 무대 앞으로 걸어가 무전기 없이 자신의 잘못을 다시 말하고, 계약 담당자가 돌아서는 것을 보면서도 안전선 뒤로 사람들을 물린다. 염봉식은 반쯤 뜯긴 자기 간판을 바라보다가 만복의 발목을 툭 친다. “살았으면 수리비가 더 비싸다.”

축제가 완전히 끝나지는 않는다. 빨대 금지 캠페인 부스는 종이컵 뚜껑을 미끄럼 방지판으로 다시 쓰고, 병 회수함은 임시 바리케이드가 된다. 코카콜라 냉장 트럭은 멈춰 섰지만, 그 붉은 면에는 고구마 속살, 비눗물 거품, 떡볶이 국물, 손자국이 뒤섞여 있다. 만복은 차가운 병 하나를 받아 들고도 바로 마시지 않는다. 그는 병뚜껑을 따서 도담에게 건네고, 옥분에게는 찌그러진 돈통을 주워 준다. 사람들은 박수를 치지만, 예전처럼 완전히 비웃지도, 완전히 떠받들지도 않는다. 그들은 만복이 혼자 트럭을 막은 게 아니라는 것을 봤고, 만복도 그걸 숨기지 않는다. 그는 찢어진 망토 끝을 긁으려다 손을 멈추고, 빈 병 회수함 위에 앉아 말한다. “오늘 착지는… 계산이 좀 많았다.” 옥분이 장부를 펼치고, 공칠복이 입으로 다시 삑 소리를 내고, 염봉식이 병뚜껑을 렌치처럼 돌리는 사이, 언덕길 위에는 아직 얼음 냄새가 남아 있다.


World

The world

representative image

setting

서울 외곽의 오래된 시장 언덕길, ‘홍제천 여름 탄산축제’가 열리는 토요일 오후의 세 블록짜리 축제 구역이다. 위쪽에는 코카콜라 냉장 트럭들이 줄지어 서는 임시 하역장이 있고, 중간에는 빨대 금지 캠페인 부스와 비눗방울 공연장이 붙어 있으며, 아래쪽 사거리에는 만복분식, 군고구마 손수레, 어린이 팔씨름 무대, 병 회수함이 서로 어깨를 부딪치듯 몰려 있다. 길은 생각보다 가파르고 아스팔트는 녹은 얼음물, 콜라 방울, 떡볶이 양념, 비눗물로 번들거린다. 언덕 아래 횡단보도는 축제 관람객과 장사꾼, 아이들, 배달 오토바이, 접이식 의자로 막혀 있어 한 번 무언가 굴러오기 시작하면 피할 곳이 적다.

이 동네에서 히어로는 하늘 위의 전설이 아니라 고장 난 선풍기 모터와 배달 박스 끈으로 버티는 생활 기술에 가깝다. 구만복의 빨간 배달 박스는 시장 사람들 사이에서 웃음거리이자 보험이다. 누군가 간판에 매달린 풍선을 내려야 하거나, 하수구에 빠진 열쇠를 건져야 하거나, 병따개가 사라졌을 때 사람들은 결국 만복분식 쪽을 본다. 그래서 이 세계의 위험은 거대한 악당보다 더 치사하다. 브레이크 경고등을 못 본 척한 계약직의 손, 압류 딱지가 붙은 손수레, 결승 상품에 걸린 반 아이들의 기대, 박수를 받아야만 다음 달 무대를 얻는 광대의 스피커가 같은 언덕 위에서 한꺼번에 밀려 내려온다.

time period

현재와 거의 같은 시대, 폭염 경보가 내려진 한여름 토요일 오후 2시 17분 직전이다. 동네 축제는 친환경 홍보와 브랜드 협찬으로 겨우 유지되고, 상인들은 카드 단말기 배터리와 자리세 봉투 사이에서 하루 매출을 계산한다. 빨대 금지 캠페인이 막 대대적으로 시작되어 축제장에는 빨대 대신 투명 컵 뚜껑, 종이컵, 병 회수함, 얼음컵이 넘쳐난다. 모두가 안전 매뉴얼을 말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무전기 한 대와 임시 안내선, 땀에 젖은 계약직 스태프가 그 매뉴얼을 대신한다.

이 시기는 구만복에게도 마지막 기회처럼 보인다. 만복분식은 폐업 직전이고, 그의 히어로 장비는 염봉식의 폐자전거 가게에서 하루하루 연명한다. 동네 사람들은 그를 믿고 싶어 하지만 먼저 웃는다. 바로 그 웃음과 믿음 사이, 냉장 트럭 한 대가 언덕을 내려오기 시작하는 짧은 시간이 이 세계의 중심이다.

rules

차갑게 식은 코카콜라를 한 모금 마신 사람만 구만복의 탄산 장비와 몸이 제대로 맞물리며, 힘은 정확히 88초 뒤 거품처럼 꺼진다. 이 규칙 때문에 만복은 매 순간 병을 마실지, 병을 남에게 던져 길을 열지, 마지막 한 모금을 구조용 추진력으로 아낄지 선택해야 한다.

탄산 장비는 차가운 병, 병뚜껑 금속, 기포 압력, 마른 흡입구가 모두 맞아야 작동하고, 비눗물이나 떡볶이 국물이 들어가면 순간 출력은 커지지만 곧 망가진다. 이 규칙 때문에 공칠복의 비눗방울 장비와 염봉식의 임시 수리는 기적이 아니라 빚이 되며, 한 번의 성공 뒤에는 장비 파손과 추락 위험이 반드시 따라온다.

축제 구역 안에서는 빨대 사용이 금지되어 있어 누구도 빠르게 병이나 컵을 빨아 마실 수 없고, 남는 것은 미끄러운 컵 뚜껑과 병 회수함뿐이다. 이 규칙 때문에 가장 사소해 보이는 친환경 캠페인이 구만복의 88초를 늦추고, 도담과 옥분은 컵 뚜껑 더미와 고구마 포대를 방어물처럼 써야 한다.

언덕길의 임시 차량 동선은 한 번 막히면 되돌릴 수 없고, 냉장 트럭은 아래 사거리까지 멈출 공간이 없다. 이 규칙 때문에 송라미가 숨긴 경고등 하나가 축제 전체를 함정으로 만들며, 모든 인물은 도망치는 대신 자기 자리에서 무언가를 희생해 길을 바꿔야 한다.

technologies philosophies

이 동네의 기술은 새것보다 고친 것에 가깝다. 염봉식은 폐자전거 모터, 선풍기 코일, 병뚜껑 금속, 탄산 캔의 압력판을 엮어 만복의 장비를 만든다. 제대로 된 연구소는 없고, 설명서 대신 손때 묻은 공구함과 “아직 한 번은 더 버틴다”는 동네식 판단이 있다. 그래서 기술은 모두 임시적이고 인간적이다. 잘 작동하면 사람을 구하지만, 매번 누군가의 간판, 손수레, 공연 장비, 생계 수단을 뜯어 써야 한다.

축제의 공식 철학은 안전, 친환경, 지역 상생이다. 그러나 현장에서 그 말들은 종종 현수막 문구로만 남는다. 빨대 금지 캠페인은 좋은 뜻으로 시작됐지만, 급한 순간에는 88초짜리 히어로의 목을 막는 불편이 된다. 병 회수함은 질서를 상징하지만 트럭 문이 터지는 순간 유리병의 흐름을 통제하지 못한다. 브랜드 부스는 시원한 그늘과 얼음컵을 제공하지만, 동시에 냉장 트럭과 홍보 일정, 계약직의 침묵을 축제 한가운데로 끌고 온다.

사람들은 영웅을 믿되 공짜로 믿지 않는다. 박수를 치려면 먼저 결과를 요구하고, 도움을 받으면 외상 장부에 적고, 무대가 무너지면 다음 계약을 걱정한다. 이 세계에서 정의감은 거창한 선언보다 계산을 끝낸 뒤에도 손을 놓지 않는 행동으로 드러난다. 옥분이 돈통을 품에 안고도 고구마 포대를 밀고, 칠복이 계약을 놓치면서 비눗물을 쏟고, 송라미가 자기 실수를 스피커 앞에서 말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누구도 완전히 깨끗하지 않지만, 굴러오는 트럭 앞에서는 각자의 더러운 손으로 길을 만든다.

visual description

이 세계의 색은 뜨거운 회색 아스팔트 위에 번지는 차가운 빨강이다. 코카콜라 냉장 트럭의 광택 있는 붉은 면, 만복의 떡볶이 자국 묻은 망토, 옥분의 낡은 빨간 선캡, 칠복의 빨간 코와 신발, 축제 스태프 조끼가 같은 색으로 이어지지만 모두 조금씩 닳고 젖어 있다. 햇빛은 위에서 내리꽂히고, 얼음 박스에서 나온 냉기는 바닥 가까이 하얗게 깔린다. 화면은 늘 뜨겁고 차갑다. 땀방울은 목덜미를 타고 흐르고, 병 표면에는 물방울이 맺히며, 녹은 얼음이 배수구로 가는 길마다 비눗방울 무지개가 잠깐씩 뜬다.

건물들은 낮고 오래됐다. 만복분식의 간판은 한쪽 네온이 나가 ‘만 식’처럼 보이고, 폐자전거 가게 뒤편에는 휘어진 바퀴와 선풍기 날개, 찌그러진 배달 박스가 쌓여 있다. 축제 부스는 흰 천막과 플라스틱 접이식 테이블로 급히 세워졌고, 전선은 케이블타이로 묶여 바닥을 기어간다. 멀리서 보면 동네 잔치지만, 가까이서 보면 모든 물건이 바퀴 밑에 들어갈 수 있는 크기다. 병, 뚜껑, 얼음, 고구마, 나사, 동전, 아이의 운동화 끈까지 화면 속 작은 것들이 계속 굴러다닌다.

카메라는 자주 낮게 깔린다. 트럭 바퀴의 검은 고무, 도담의 발끝이 찾는 마른 틈, 옥분의 집게가 포대를 미는 각도, 만복의 제트 운동화 흡입구에 붙은 비눗물 거품이 먼저 보인다. 하늘을 나는 장면조차 멋지기보다 불안하다. 빨간 배달 박스는 흔들리고, 임시 날개는 덜컹거리며, 망토 끝의 마른 떡볶이 자국이 바람에 딱딱하게 펄럭인다.


Locations

Where it happe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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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복분식 앞 냄비골목

가게 앞 낮은 골목은 떡볶이 냄비 셋이 뿜는 주황빛 김으로 꽉 차 있고, 한쪽 네온이 나간 간판의 낡은 빨강이 땡볕에 바랜 플라스틱 의자들 위로 번진다. 끓는 국물이 냄비 가장자리에서 툭툭 넘칠 때마다 양념이 아스팔트에 끈적하게 말라붙고, 병따개를 찾는 손님들의 웅성임이 카드 단말기 삑 소리와 섞여 좁은 가게 앞을 더 비좁게 만든다. 기름 묻은 앞치마가 출입문 못에 걸려 바람도 없이 흔들리고, 배달 박스 하나가 의자 사이에 비스듬히 끼어 있어 누군가 올라서면 곧장 영웅 흉내와 미끄러운 착지가 동시에 시작될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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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자전거 가게 뒤뜰

낮은 슬레이트 지붕 아래, 휘어진 자전거 바퀴와 선풍기 모터, 찌그러진 빨간 배달 박스 조각들이 사람 허리 높이까지 쌓여 그늘을 더 좁게 만든다. 회색 먼지 낀 틈새로 들어온 햇빛은 멈춘 선풍기 날개 사이를 잘게 지나가고, 바닥에서는 고무 찌꺼기와 기름때가 신발 밑창에 검게 묻어난다. 공구함 맨 아래 칸에서 굴러나온 나사 하나가 알루미늄 간판 조각을 톡 치면, 곧이어 쇠망치의 짧은 타격음이 뒤뜰 벽돌담에 부딪혀 돌아온다. 한쪽에 기대 놓은 낡은 가게 간판은 이미 절반쯤 뜯겨 있으며, 못 자국 난 갈색 뒷면이 누군가의 날개가 되기 전 마지막으로 녹슨 빛을 붙잡고 있다.

Where is this location in the real world?

서울시 구로구 구로공단 철공소 골목

•Address

서울특별시 구로구 구로동 604-1

•Reason for recommendation

낡은 슬레이트 지붕과 공업용 잔해들이 실제로 쌓여 있어, 자전거 부품과 기름때, 햇빛의 먼지 낀 질감까지 묘사된 공간을 그대로 재현할 수 있습니다.

•Preparation for shooting

location 3 image

팔씨름 결승 무대

흰 천막 아래 낮은 합판 단상이 한낮 그림자를 칼날처럼 잘라 내고, 중앙의 팔씨름 탁자는 네 다리마다 먼지 묻은 고무발을 덧대도 아이들이 발끝으로 누를 때마다 삐걱거린다. 민트색 반 티셔츠를 맞춰 입은 아이들이 단상 가장자리에 빽빽이 붙어 손바닥을 흔들고, 땀 밴 손목 붕대와 매직으로 쓴 응원 문구가 햇빛에 번들거린다. 상품으로 세워 둔 빨간 아이스박스는 천막 기둥에 묶인 얇은 끈 하나에 기대어 있고, 그 아래 합판 틈에는 떨어진 병뚜껑과 의자 나사가 굴러다녀 작은 힘겨루기 하나도 금방 무너질 것처럼 보인다.

location 4 image

빨대 금지 캠페인 부스

흰 천막 아래 좁은 통로에는 재활용 초록 현수막이 낮게 걸려 있고, 산란된 햇빛이 투명 컵 뚜껑 더미를 지나 바닥에 동그란 얼룩처럼 흩어진다. 접이식 테이블마다 마른 종이컵과 얇은 뚜껑이 키 작은 탑처럼 쌓여 있으며, 누군가 팔꿈치로 건드릴 때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안내 멘트의 밝은 목소리를 잘게 갉아먹는다. 케이블타이로 묶인 전선은 천막 기둥을 타고 내려와 통로 가장자리를 비틀비틀 기고, 발끝에 걸린 투명 뚜껑 하나가 팽이처럼 돌다가 멈추며 이곳이 좋은 뜻으로 세운 작은 장애물임을 드러낸다.

Where is this location in the real world?

서울새활용플라자

•Address

서울특별시 성동구 자동차시장길 49

•Reason for recommendation

실제 재활용 소재와 임시 천막 구조물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어 묘사된 좁은 통로와 산란광, 어수선한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연출할 수 있습니다.

•Preparation for shooting

location 5 image

비눗방울 공연장

중간 언덕의 트인 광장에는 노란 조끼를 입은 진행 보조들이 젖은 판지 상자를 눌러 만든 낮은 경계선이 삐뚤게 둘러져 있고, 그 안쪽으로 무지갯빛 비눗막이 한낮의 백색광을 잘게 찢어 아이들 얼굴과 코카콜라 박스 손수레 위에 번쩍인다. 과하게 큰 스피커 음악은 박자를 놓친 채 울리고, 웃던 아이들 목소리는 비눗방울이 터지는 순간마다 뚝 끊겼다가 다시 억지로 붙는다. 바닥은 비눗물로 얇게 코팅되어 말랑한 광대 신발 자국이 움푹움푹 남고, 찢어진 종이컵 뚜껑 몇 개가 물결처럼 미끄러져 내려가며 작은 위험을 미리 연습한다.

공연장 한가운데의 비눗물 통은 젖은 코카콜라 판지로 덧대어져 있어, 누군가 그것을 들어 쏟는 순간 이 우스운 무대 전체가 추진제이자 빚으로 바뀔 준비가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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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 위 임시 하역장

광택 나는 붉은 냉장 트럭들이 가파른 대기선에 비스듬히 물려 서 있고, 강한 직사광이 차체 옆면을 때릴 때마다 흰 냉기가 바닥 가까이 얇게 흘러내린다. 트럭마다 금속 손잡이는 얼음물로 차갑게 젖어 있으며, 라벨 접착제가 묻은 문짝 가장자리에는 손바닥 자국이 끈적하게 겹쳐 있다. 무전기 잡음 사이로 브레이크 경고음이 짧게 깜박이고, 거친 고임목들은 바퀴 뒤에서 조금씩 눌려 나무결을 드러낸다. 대기선 끝에는 떨어진 병뚜껑 하나가 햇빛을 받아 빨갛게 번쩍이며, 작은 충격만 와도 언덕 아래로 굴러갈 자세로 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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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고구마 손수레 자리

숯검정 드럼통 화덕이 손수레 한가운데 박혀 있고, 벌어진 틈마다 붉은 열기가 숨을 쉬며 고구마 껍질을 검게 오그라뜨린다. 뜨거운 포대자루는 손수레 옆에 낮게 쌓여 노란 속살이 터진 자국을 드러내고, 낡은 고무장갑 한 짝은 동전통 옆에서 땀과 재를 먹은 채 말라붙어 있다. 집게가 딱딱 닫힐 때마다 사거리 가장자리의 소음이 짧게 잘리고, 흔들리는 동전통 속 잔돈은 바퀴가 굴러오기 전부터 작은 경고처럼 떨린다. 이 낮은 자리는 장사판처럼 보이지만, 포대와 화덕과 손수레 축이 모두 한 번쯤 길을 막아 본 물건처럼 바닥 가까이 버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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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병 수거 구역

낮은 콘크리트 담벼락 옆 막다른 자리에는 유리 초록빛 빈 병들이 젖은 배처럼 누워 있고, 찌그러진 회수함들은 서로 기대어 마지막 충격을 받아 낼 각도로 비뚤어져 있다. 얼음물에 식은 바닥에서는 흐린 흰 냉기가 발목 높이로 깔리고, 병목끼리 부딪히는 달그락 소리가 하나씩 짧아지다가 담벼락에 닿아 멈춘다. 붉은 냉장 트럭이 밀고 들어오면 도망칠 길은 없지만, 이 좁은 끝자리의 병 더미와 차가운 벽만이 무게를 옆으로 흘려 보낼 수 있다. 잠깐의 정적 뒤, 깨지지 않은 병들이 얼음 속에서 다시 작게 울리고, 늦게 따라온 박수가 젖은 유리 위로 흐릿하게 번진다.


Scenes

Scene by scene

Chapter 01

Scene 01· 토요일 오후 2시 10분, 홍제천 여름 탄산축제 초입

병따개 수색대와 끓어넘친 빨간 냄비

병따개 수색대와 끓어넘친 빨간 냄비
Place만복분식 앞 냄비골목
Time토요일 오후 2시 10분, 홍제천 여름 탄산축제 초입
Action구만복이 끓어넘치는 떡볶이 냄비를 앞치마로 막으려다 병따개를 찾는 손님들의 주문을 동시에 받아치고, 빨간 배달 박스 위로 올라가 즉석 수색대를 꾸린다. 배도담은 팔씨름 결승장으로 가기 전 만복분식 접이식 의자 밑과 냄비 받침 사이를 뒤져 병따개를 찾아내려 하고, 나옥분은 군고구마 집게로 만복의 망토를 들어 올리며 “영웅이면 병 하나는 따야지”라고 몰아붙인다. 만복은 허세를 지키려고 주머니 속 고장 난 호루라기와 병뚜껑만 쏟아내지만, 그 사이 빨간 냄비의 국물이 넘쳐 그의 망토 끝에 새 주황색 얼룩을 만든다.
Impact만복은 축제 첫 장면부터 동네 영웅이 아니라 분식집 잔심부름꾼처럼 굴러다니며 체면을 잃는다. 그러나 배도담 앞에서 웃음을 버티고 병따개를 찾아내는 일에 매달리면서, 그가 인정받고 싶어 하는 대상과 약점이 동시에 드러난다. 나옥분의 빈정거림은 만복의 허세를 가볍게 찌르지만, 냄비와 병, 배달 박스와 망토가 한 프레임에 엉키며 앞으로 벌어질 더 큰 사고의 작은 예행연습이 된다.

구만복은 끓어넘친 빨간 냄비를 팔꿈치로 밀어 붙잡고, 다른 손으로는 만복분식 앞 플라스틱 의자 밑에 굴러간 병따개를 더듬었다. 주황빛 떡볶이 국물이 냄비 가장자리에서 툭 터져 아스팔트에 번졌고, 한쪽 네온이 나간 ‘만 식’ 간판 아래로 코카콜라 얼음 박스의 붉은 면이 햇빛을 받아 번쩍였다. 그는 빨간 배달 박스에 한 발을 올리고 외쳤다. “병따개 수색대, 출동.” 말끝은 당당했지만 제트 운동화 뒤꿈치에서 피식, 김 빠지는 소리가 났다.

배도담은 웃지 않고 접이식 의자 다리를 발끝으로 눌러 흔들림을 확인한 뒤, 의자 밑으로 손을 넣었다. 나옥분은 군고구마 손수레를 골목 입구에 비스듬히 세우고 집게로 만복의 망토 끝을 집어 올렸다. “여기 국물값부터 찾아라. 병따개보다 네 체면이 먼저 없어졌다.” 만복은 주머니를 뒤집어 보였고, 구겨진 영수증, 빨간 병뚜껑 세 개, 고장 난 호루라기가 철그럭거리며 배달 박스 위로 떨어졌다. 그 순간 배도담이 냄비 받침 아래 낀 납작한 병따개를 잡아 뺐고, 만복은 얼른 낚아채듯 받아 들어 코카콜라 병 하나의 뚜껑을 땄다.

뚜껑은 시원한 소리를 내며 튀어 올라 나옥분의 돈통 옆을 맞고 굴렀다. 만복은 병을 손님 쪽으로 내밀며 허리를 젖혀 영웅 포즈를 잡았지만, 넘친 떡볶이 국물이 망토 끝을 타고 한 방울씩 떨어졌다. 배도담은 병따개가 있던 냄비 받침 자리를 다시 발끝으로 눌러 보고, 만복의 운동화 뒤꿈치에서 새어 나온 작은 거품 자국을 말없이 바라봤다. 만복은 망토 얼룩을 손톱으로 긁으려다 멈추고, 병따개를 가슴 앞에서 배지처럼 들어 보였다.

Scene 02· 토요일 오후, 축제 안내 멘트가 막 커지는 때

빨간 배달 박스 위의 3초짜리 포즈

빨간 배달 박스 위의 3초짜리 포즈
Place만복분식 앞 냄비골목
Time토요일 오후, 축제 안내 멘트가 막 커지는 때
Action구만복은 배도담이 보는 앞에서 빨간 배달 박스 위로 뛰어올라 3초짜리 영웅 포즈를 잡으려 한다. 나옥분은 군고구마 집게로 그의 망토를 잡아당겨 넘어뜨리려 하고, 배도담은 박스 밑에 낀 병뚜껑을 발끝으로 빼내며 착지 자리를 살핀다. 만복의 제트 운동화가 짧게 튀어 오르지만 곧 김 빠지는 소리를 내며 주저앉고, 코카콜라 병뚜껑 하나가 튕겨 나가 떡볶이 냄비 손잡이에 걸린다.
Impact만복은 사람들 앞에서 웃음을 얻는 데는 성공하지만, 배도담에게 장비가 불안정하다는 단서를 더 선명하게 보인다. 나옥분은 만복의 허세를 외상 장부와 망토 자국으로 찌르며 그의 영웅 흉내를 장사판 위로 끌어내린다. 빨간 배달 박스와 제트 운동화가 처음으로 공개적으로 삐걱거리면서, 뒤따를 염봉식의 경고가 장난이 아니라는 바닥을 깐다.

구만복은 병따개를 가슴에 꽂듯 들고 빨간 배달 박스 위로 훌쩍 올라탔다. 만복분식 앞 냄비골목의 플라스틱 의자들이 박스 모서리에 밀려 삐걱였고, 넘친 떡볶이 국물은 아스팔트 위에서 주황색 풀처럼 번들거렸다. 그는 한쪽 무릎을 굽히고 망토를 팔꿈치로 걷어 올리며 외쳤다. “홍제천의 평화는 내가 딱 3초 안에 지킨다.” 제트 운동화 뒤꿈치에서 파란 불꽃 대신 하얀 거품 한 줄이 피식 새었다.

나옥분이 군고구마 집게로 그의 망토 끝을 콱 집었다. “3초면 외상 한 줄 읽기도 모자라.” 배도담은 웃지 않고 박스 밑으로 발끝을 넣어 빨간 병뚜껑 하나를 밀어냈고, 병뚜껑은 튀어 올라 떡볶이 냄비 손잡이에 짤랑 걸렸다. 그 순간 만복의 운동화가 딱 한 뼘 떠올랐다가, 배달 박스가 옆으로 기울며 플라스틱 의자 두 개를 밀어 넘어뜨렸다. 코카콜라 얼음 박스 옆에 있던 병들이 서로 부딪쳐 맑게 울렸고, 만복은 허리를 꺾어 넘어짐을 포즈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배도담은 손목 보호대를 고쳐 감으며 만복의 뒤꿈치 균열을 똑바로 봤다. 만복은 아무 일 없다는 듯 병따개를 다시 들어 올렸지만, 망토 끝은 나옥분의 집게에 잡힌 채 길게 늘어져 있었다. 나옥분은 외상 장부를 팔꿈치로 펼치고, 병뚜껑이 걸린 냄비 손잡이를 턱으로 가리켰다. “영웅님, 저것도 구조해라. 국물에 빠지기 전에.” 만복은 배달 박스 위에서 3초 늦게 웃었고, 운동화 밑창에서는 다시 한 번 작고 민망한 김 빠지는 소리가 났다.

Scene 03· 토요일 오후 2시 10분 무렵, 팔씨름 결승 전

아이스박스 앞에서 삼킨 한 모금의 비밀

아이스박스 앞에서 삼킨 한 모금의 비밀
Place만복분식 앞 냄비골목, 코카콜라 얼음 박스 옆
Time토요일 오후 2시 10분 무렵, 팔씨름 결승 전
Action구만복이 넘어진 플라스틱 의자를 세우는 척하며 코카콜라 얼음 박스 뚜껑을 팔꿈치로 열고, 차가운 병 하나를 몰래 집어 든다. 배도담이 그의 뒤꿈치 균열과 얼음 박스 사이로 움직이는 손을 동시에 보고 다가오자, 구만복은 병을 앞치마 안쪽에 숨긴 채 허세 섞인 구조 시범을 하려 한다. 나옥분은 군고구마 집게로 그의 망토를 당기며 “돈 내고 마셔라”라고 막고, 구만복은 들키기 직전 병뚜껑을 이빨로 따 한 모금만 삼킨다. 그 순간 제트 운동화가 잠깐 살아나 빨간 배달 박스를 반 뼘 띄우지만, 튄 탄산과 떡볶이 국물이 배도담의 손목 보호대에 묻으며 비밀의 흔적이 남는다.
Impact만복은 도담 앞에서 힘의 원천을 숨기려 했지만, 도담은 그가 코카콜라 한 모금 뒤에야 장비가 반응한다는 사실에 가까이 다가간다. 나옥분은 만복의 허세를 장사값과 외상값으로 끌어내리며, 그의 영웅 흉내가 공짜로 굴러가지 않는다는 압박을 더한다. 만복은 순간적인 비행으로 체면을 조금 되찾지만, 그 비행이 너무 짧고 지저분해서 약점을 더 선명하게 드러낸다. 이 장면은 이후 염봉식이 장비 문제가 아니라 만복의 몸 문제를 들이밀 때, 이미 흔들리기 시작한 비밀의 틈을 만든다.

구만복은 넘어진 플라스틱 의자를 발목으로 밀어 세우는 척하며 코카콜라 얼음 박스 뚜껑을 팔꿈치로 슬쩍 들어 올렸다. 만복분식 앞 냄비골목에는 떡볶이 냄비 셋이 주황빛 김을 뿜었고, 한쪽 네온이 나간 ‘만 식’ 간판 아래 얼음 박스의 붉은 면이 땡볕을 받아 번쩍였다. 그는 손님 쪽으로 병따개를 흔들며 웃었지만, 다른 손은 얼음 속으로 들어가 가장 차가운 병목을 움켜쥐었다. 배도담이 접이식 의자 다리를 발끝으로 눌러 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아저씨, 지금 뭐 숨겨요?”

구만복은 병을 앞치마 안으로 밀어 넣고 빨간 배달 박스 위에 다시 올라섰다. “숨기긴. 영웅은 원래 보급품을 전략적으로 관리하지.” 나옥분의 군고구마 집게가 그의 망토 끝을 콱 물었다. “전략은 계산하고 해라. 그 병값, 얼음값, 폼값 따로다.” 구만복은 망토에 끌려 허리가 꺾이면서도 병뚜껑을 이빨로 따고, 고개를 돌린 채 한 모금만 삼켰다. 차가운 탄산이 목을 내려가자 제트 운동화 뒤꿈치에서 딸깍 소리가 나고, 빨간 배달 박스가 반 뼘 떠올라 의자 그림자를 흔들었다.

배도담은 웃지 않았다. 그녀는 튄 탄산 방울과 떡볶이 국물이 묻은 자기 손목 보호대를 내려다본 뒤, 만복의 운동화 뒤꿈치에서 새는 작은 거품을 세었다. 구만복은 얼른 병을 등 뒤로 숨기고 두 팔을 벌려 착지를 포즈처럼 만들었지만, 배달 박스는 곧바로 툭 내려앉았다. 나옥분은 얼음 박스 뚜껑을 닫아 버리고 외상 장부 모서리로 병목을 톡 쳤다. 구만복의 입가에는 콜라 거품이 얇게 남아 있었고, 배도담의 눈은 그 거품에서 운동화 균열로 조용히 옮겨 갔다.

Scene 04· 토요일 오후 2시 10분 무렵

외상 장부가 망토보다 크게 펄럭일 때

외상 장부가 망토보다 크게 펄럭일 때
Place만복분식 앞 냄비골목
Time토요일 오후 2시 10분 무렵
Action나옥분이 외상 장부를 펼쳐 구만복의 망토 위에 덮치듯 흔든다. 구만복은 배도담 앞에서 영웅 포즈를 유지하려고 빨간 배달 박스 위에 버티지만, 장부 모서리가 망토의 떡볶이 자국과 숨겨 둔 코카콜라 병목을 동시에 들춰 낸다. 배도담은 만복의 운동화 뒤꿈치와 병을 번갈아 보며 의심을 굳히고, 만복은 허세로 상황을 덮으려다 장부에 발이 걸려 배달 박스째 미끄러진다. 장부 한 장이 찢겨 날아가고, 거기 적힌 외상 목록이 사람들 앞에서 드러난다.
Impact만복은 코카콜라 한 모금의 비밀을 완전히 들키지는 않지만, 배도담이 그의 힘과 병의 관계를 더 분명히 의심하게 된다. 나옥분은 만복의 영웅 흉내를 장사판의 빚과 비용으로 끌어내리며, 앞으로 구조가 공짜로 이루어지지 않을 것임을 보여 준다. 만복은 웃음으로 체면을 겨우 지키지만, 장비가 삐걱이는 소리와 병목을 감추는 손짓 때문에 그의 영웅 이미지에는 더 큰 금이 간다. 이 소란은 곧 염봉식이 등장해 빠진 나사를 들이밀 수 있는 틈을 만든다.

나옥분이 외상 장부를 확 펼쳐 구만복의 빨간 망토 위로 휘둘렀다. 만복분식 앞 냄비골목의 떡볶이 냄비 셋은 주황빛 김을 뿜고, ‘만 식’ 간판 아래 코카콜라 얼음 박스는 햇빛에 젖은 빨강으로 번쩍였다. 구만복은 빨간 배달 박스 위에서 두 팔을 벌린 채 버텼지만, 장부 모서리가 망토 끝의 마른 국물 자국을 치고 앞치마 속에 숨긴 병목을 톡 건드렸다. 나옥분이 말했다. “영웅님, 날기 전에 외상부터 착지시켜.” 장부 종이가 바람보다 크게 퍼덕였고, 만복의 망토는 그 밑에서 젖은 행주처럼 눌렸다.

배도담은 접이식 의자 다리를 발끝으로 누르다 말고 만복의 앞치마 쪽을 보았다. 구만복은 병목을 팔꿈치로 가리며 웃었다. “이건 비밀 병기가 아니라, 손님 서비스용 냉장 자산이지.” 그가 한 발을 뒤로 빼는 순간 제트 운동화 뒤꿈치에서 피식 소리가 났고, 빨간 배달 박스가 떡볶이 국물 묻은 아스팔트 위에서 반 뼘 밀렸다. 배도담이 재빨리 박스 모서리를 발로 막았지만, 나옥분의 장부 한 장이 찢겨 날아가 냄비 손잡이에 걸렸다. 종이에는 ‘코카콜라 병값’, ‘얼음값’, ‘폼값 미납’이 삐뚤빼뚤 적혀 있었다.

구만복은 냄비 손잡이에 걸린 장부 조각을 병따개로 콕 찍어 떼어 내며 허리를 젖혔다. “증거 보존 완료.” 말은 컸지만 그의 손은 망토 끝을 긁으려다 멈췄고, 앞치마 속 병은 차갑게 물방울을 떨어뜨렸다. 나옥분은 돈통을 겨드랑이에 끼고 찢어진 장부를 다시 접었으며, 배도담은 만복의 운동화 균열 옆에 맺힌 거품 하나를 발끝으로 문질러 없앴다. 그때 폐자전거 가게 뒤뜰 쪽에서 쇠붙이가 공구함 안에서 구르는 소리가 짧게 났다.

Scene 05· 토요일 오후, 팔씨름 결승 직전의 땡볕 아래

봉식의 손바닥에 놓인 빠진 나사

봉식의 손바닥에 놓인 빠진 나사
Place만복분식 앞 냄비골목에서 폐자전거 가게 뒤뜰 입구
Time토요일 오후, 팔씨름 결승 직전의 땡볕 아래
Action염봉식이 폐자전거 가게 뒤뜰에서 공구함을 들고 나와 구만복의 빨간 배달 박스 앞에 쾅 내려놓는다. 그는 공구함 맨 아래 칸에서 전날 밤 빼 둔 배터리 나사를 꺼내 손바닥 위에 올려 보이고, 만복이 배달 박스에 오르려는 발을 손으로 눌러 막는다. 나옥분은 외상 장부로 만복의 망토를 걷어 올리고, 배도담은 만복의 제트 운동화 뒤꿈치 균열을 직접 확인한다. 만복은 웃으며 장난처럼 넘기려 하지만, 봉식이 그의 발목을 잡아 비틀자 통증 때문에 포즈가 무너진다.
Impact만복의 비행 문제는 단순한 장비 고장이 아니라 그의 몸이 이미 한계에 가까운 상태라는 사실로 드러난다. 도담은 만복이 차가운 코카콜라와 장비에 기대어 허세를 세우고 있었다는 의심을 더 굳힌다. 옥분의 빈정거림은 잠깐 멈추고, 냄비골목의 웃음은 박수와 조롱 사이에서 어색하게 걸린다. 봉식의 손바닥에 놓인 작은 나사는 이후 만복이 날아야 할 때 반드시 되돌려 받아야 하는 위험한 약속이 된다.

염봉식이 기름 묻은 공구함을 만복분식 앞 빨간 배달 박스 위에 쾅 내려찍자, 병따개와 빨간 병뚜껑들이 떡볶이 국물 묻은 아스팔트로 튀었다. ‘만 식’ 간판 아래 주황빛 김이 냄비 셋에서 솟고, 구만복은 한 발을 박스에 올린 채 웃음을 크게 냈다. “정비사님 등장하셨습니다. 박수는 현금으로.” 나옥분이 외상 장부 모서리로 그의 망토를 걷어 올렸다. 배도담은 말없이 쪼그려 앉아 제트 운동화 뒤꿈치의 갈라진 고무를 손가락 끝으로 눌렀다.

염봉식은 공구함 맨 아래 칸을 열어 작은 배터리 나사 하나를 꺼냈다. 나사는 그의 검은 기름때 낀 손바닥 한가운데서 햇빛을 받아 빨갛게 번쩍였다. “이거 없으면 네 배달 박스는 도시락통이고, 있어도 오늘 날면 네 발목이 먼저 폐업한다.” 구만복은 병따개를 검처럼 들어 올리며 “계산된 정비 공백”이라고 받아쳤지만, 염봉식이 그의 발목을 잡아 살짝 비틀자 무릎이 꺾였다. 피식, 운동화 밑창에서 빠진 탄산 같은 소리가 새고, 배달 박스가 의자 다리 사이로 반 뼘 밀렸다.

나옥분은 돈통을 겨드랑이에 끼운 채 집게를 내려놓았고, 배도담은 만복의 입가에 남은 콜라 거품을 보다가 봉식의 손바닥으로 시선을 옮겼다. 구만복은 쓰러진 자세를 팔꿈치로 버티며 억지로 엄지를 세웠다. “관절 점검도 쇼의 일부지.” 아무도 바로 웃지 않았다. 염봉식은 나사를 다시 쥐지 않고 손바닥을 편 채 만복의 눈앞에 들이밀었고, 그 작은 금속 조각 아래로 만복의 찢어진 망토 끝이 떡볶이 국물에 천천히 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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