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가 유리 돔을 난타하는 밤, 스타라이트돔에 들어선 방찬은 촬영 시작 전부터 이상한 점을 먼저 본다. 폐쇄된 놀이공원인데도 중앙 회전목마만 숨 쉬듯 켜졌다 꺼지고, 말마다 스트레이키즈의 활동기 의상과 무대 소품이 한 점씩 걸려 있다. 방찬은 스태프를 불러 촬영 동선을 다시 확인하려 하지만 무전기에는 잡음만 흐른다. 곧 조명이 완전히 꺼지고, 스피커가 꺼진 천장 아래에서 누군가의 응원법이 멤버들 귓등 바로 뒤에서 속삭이듯 울린다. 프랑스 출신 스테이 클레르는 그 속삭임 속 한국어를 제일 먼저 알아듣고 굳는다. "입장 완료. 자정 전까지 공연 준비." 그 순간 입구 셔터가 바닥을 긁으며 내려오고, 젖은 바닥 위에 손도장 여덟 개와 별 모양 두 개가 차례로 찍힌다. 승민은 바로 숫자를 세고, 이곳이 스트레이키즈 여덟 명과 스테이 둘을 따로 세고 있다는 걸 짚는다.
회전목마 불빛이 한 바퀴 켜지자 어린 여자아이 유나가 말들 사이에서 나타난다. 비에 젖은 머리카락이 뺨에 붙어 있지만 목소리는 공연장 안내원처럼 공손하다. 그녀는 표를 끊는 시늉을 하며, 각자 가장 아끼는 무대 물건 하나씩을 관 위에 올리면 아홉 명을 내보내 주겠다고 말한다. 방찬은 바로 촬영 중단을 선언하고 다 같이 출구를 밀어 보지만, 셔터는 꿈쩍하지 않는다. 억지로 틈을 벌리려던 창빈의 손이 철판에 닿는 순간 바닥에 새 손자국 하나가 더 번지고, 회전목마가 천천히 돌아가며 멤버들의 오래된 무대 인사가 사방에서 겹쳐 나온다. 방찬은 모두를 뒤로 물리고, 자정 전까지 규칙을 확인하고 다른 길을 찾자며 사람 수를 다시 센다.
공포가 먼저 번지는 건 어둠보다 기억 때문이다. 유나가 첫 번째로 요구한 물건은 리노가 아끼는 낡은 인이어 케이스다. 매디슨은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 메모를 뒤져 그 케이스가 어느 투어 때부터 함께했는지, 표면의 긁힌 자국까지 알고 있다고 말한다. 아무것도 포기하지 말자고 하던 그녀는 정작 정보가 필요해지자 가장 정확한 증인이 되어 버리고, 그때마다 자신이 귀신에게 답안을 쥐여 주는 것 같아 얼굴이 하얗게 질린다. 방찬은 누구도 당장 물건을 내놓지 않겠다고 못 박지만, 유나는 거짓 대용품을 싫어한다. 현진이 비슷한 팔찌를 대신 올려놓자 회전목마가 한 바퀴 더 돌고, 천장과 유리벽 전체에 현진이 한 팬사인회에서 손을 다친 팬에게 조용히 붕대를 감아 주던 장면이 재생된다. 현장은 따뜻한 기억으로 잠깐 밝아지지만, 곧 그 장면 끝에서 아이의 숨 섞인 울음이 들린다. 진짜가 아니면, 잃고 싶지 않은 기억이 먼저 끌려 나온다는 뜻이다.
한은 겁이 퍼질수록 더 요란하게 농담을 던지며 휴대폰으로 멤버들을 찍는다. 그러다 화면 속 회전목마 좌석이 현실보다 몇 초 먼저 접히는 걸 본다. 그는 장난처럼 "다음엔 왼쪽 말이 움직이겠다" 하고 던지는데, 실제로 그 말의 고삐가 튀어 올라 아이엔 팔목을 감는다. 그제야 모두가 한의 화면을 본다. 몇 초 뒤의 위험이 비치는 것이다. 이후 그의 휴대폰은 공포를 비켜 가는 예보가 되지만, 늘 몇 초뿐이라 누구를 먼저 살릴지 매번 몸으로 선택해야 한다. 방찬은 그 짧은 틈마다 제일 가까운 멤버를 밀쳐 빼내고, 자신은 한 박자 늦게 물러나면서 손목을 점점 세게 움켜쥔다.
클레르는 유나의 속삭임을 옮기는 통로가 되지만, 들을수록 자신이 확실한지 흔들린다. "가장 아끼는 것"인지, "가장 오래 들고 선 것"인지, "가장 마지막까지 쥘 것"인지 어미가 자꾸 미끄러진다. 그녀는 뜻을 확인하려고 유나가 내뱉은 마지막 단어를 입술로 따라 하고, 그 버릇 때문에 유나의 발음을 점점 더 닮아 간다. 승민은 그 미세한 차이를 놓치지 않는다. 유나가 "입장"과 "착석"을 다르게 쓸 때마다 클레르가 헷갈리는 걸 보고, 규칙이 하나가 아니라 단계로 나뉘어 있다는 걸 추려 낸다. 들어온 사람은 자정 전까지 혼자 문턱을 넘을 수 없지만, 착석하지 않으면 아직 공연의 일부는 아니라는 뜻일 수 있다. 승민은 모두를 회전목마 좌석에서 멀리 떼어 놓고, 유나가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물건 그 자체인지, 아니면 공연을 시작하게 만드는 어떤 절차인지 따지기 시작한다.
유나는 화를 내기보다 더 친절해진다. 멤버들이 망설일수록 그녀는 회전목마 말 갈기를 쓸며, 무대를 한 번만 보고 싶었다고, 제일 아끼는 걸 올리면 그 마음이 입장권이 된다고 되풀이한다. 매디슨은 그 말에 울음을 참지 못하고, 자신이 보관한 팬캠 중에 유나 같은 아이가 앞줄에서 찍혔을 가능성을 찾자고 한다. 모두는 관제실로 향한다. 비상등만 숨 쉬는 유리벽 관제실 안에는 오래된 퍼레이드 원본 테이프와 폐쇄 직전 관객 기록이 먼지 속에 남아 있다. 하지만 이 장면은 조용한 검색으로 흐르지 않는다. 회전목마가 멀리서 돌기 시작하고, 셔터 틈 아래로 스며든 빗물이 복도를 타고 올라오며 바닥을 미끄럽게 만든다. 한의 화면에는 몇 초 뒤 천장 간판이 떨어지는 장면이 떠오르고, 창빈과 필릭스가 몸으로 유리문을 받쳐 모두를 안으로 밀어 넣는다. 방찬은 뒤에서 문을 붙들고 마지막으로 사람 수를 센다. 여덟, 별 둘. 아직 빠진 사람은 없다.
관제실에서 승민은 퍼레이드 큐시트를 손으로 넘기다 한 줄을 찾아낸다. 폐장 전 마지막 여름 행사 제목이 "스테이 스타라이트 나이트"다. 관객 참여형 퍼레이드였고, 마지막 순서는 어린이 대표 한 명이 무대를 보고 소원 카드를 별 모양 함에 넣는 이벤트였다. 별 함은 지금 회전목마 중앙 기둥 안쪽에 붙어 있고, 바닥의 손도장 여덟 개와 별 두 개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출연자와 증인 표시였음이 드러난다. 유나는 스트레이키즈 여덟 명과 스테이 둘을 모두 관객이 아니라 자기 공연의 완성 인원으로 세고 있었던 것이다. 클레르는 그제야 자신이 처음 잘못 옮긴 단어를 고백한다. 유나는 "아홉 명"이 아니라 "아홉 자리"를 채우라고 했을 수도 있다. 별 두 개는 한 사람 몫이 아니라, 팬이 앉는 두 자리일 수 있다. 유나 자신은 늘 객석 없는 공연에 홀로 남았고, 그래서 관객 자리를 비워 둔 채 시간을 되감아 왔다.
이 사실은 방찬에게 다른 계산을 강요한다. 지금까지 그는 누가 무엇을 포기할지, 누가 대신 남을지를 생각했다. 이제 중요한 건 아무도 물건을 버리지 않고도 유나를 혼자 남겨 두지 않는 방식이다. 그러나 자정이 가까워질수록 유나는 더 급해진다. 퍼레이드 음악이 관제실 스피커 없이 복도 전체에서 울리고, 회전목마 말들이 스스로 관제실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유나는 방찬 앞에 직접 나타나 작은 손을 내민다. 리더니까 제일 먼저 정해야 한다고, 네가 올리면 다들 따라올 거라고 속삭인다. 방찬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것을 내주려 한다. 늘 마지막 선택 문장을 자신이 끝내려 했던 습관대로, 자기 소지품 하나로 끝내려 한다. 승민은 그 손을 막아선다. 방찬이 먼저 희생하는 순간 나머지 모두도 같은 방식으로 줄 세워질 뿐이라고.
그때 매디슨이 관제실 서랍 맨 아래에서 젖은 별 모양 카드를 찾아낸다. 이름은 번져 읽기 어렵지만, 뒷면에는 삐뚤한 한국어와 영어가 함께 적혀 있다. "다음엔 꼭 같이 소리 질러요." 클레르는 그 문장을 소리 내어 읽다가 멈춘다. 발음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 유나의 것처럼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유나는 그 종이를 보자 처음으로 말을 잃고, 손끝으로 허공에 표를 끊는 동작만 반복한다. 방찬은 그 틈을 붙잡는다. 유나가 원한 건 물건을 빼앗아 입장권으로 삼는 일보다, 자기 소원이 실제 관객의 자리에서 받아들여졌다는 확인일 수 있다. 그래서 그는 모두를 다시 회전목마 광장으로 데려간다. 혼자 움직일 수 없다는 규칙 때문에 전원이 함께 달린다. 비에 젖은 고무 매트에서 신발이 미끄러지고, 한의 화면은 몇 초 뒤 닫힐 통로와 끊어질 전구를 미리 보여 준다. 리노와 창빈이 넘어지는 매디슨을 끌어 세우고, 승민은 젖은 손도장 위를 밟지 말라고 외치며 길을 잡는다.
광장에 도착하자 자정 직전의 퍼레이드 음악이 천장을 흔든다. 유나는 약속대로 물건을 올리라고 재촉하고, 회전목마 좌석의 안전봉이 하나둘 내려오기 시작한다. 한의 화면에는 몇 초 뒤 방찬이 가장 먼저 붙잡히는 장면이 뜬다. 이번엔 방찬도 그 화면을 보고 피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회전목마 중앙 관 앞에 서서 자신의 물건이 아니라 별 카드를 올린다. 그리고 마이크도 스피커도 없이 맨목소리로 멤버 소개를 시작한다. 리노, 창빈, 현진, 한, 필릭스, 승민, 아이엔이 하나씩 자기 이름을 받고 앞으로 선다. 클레르는 떨리는 발음으로 한국어 응원법을 잇고, 매디슨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뒤를 받는다. 두 사람의 별 자리가 빈 의자가 아니라 살아 있는 팬이라는 걸 몸으로 보여 주는 순간이다. 유나는 화를 내며 안전봉을 더 내리지만, 승민이 발견한 규칙의 빈틈이 여기서 작동한다. 아직 누구도 착석하지 않았다. 아직 공연은 시작 직전일 뿐이다.
방찬은 유나를 향해 한 걸음 더 다가가 묻는다. "보고 싶었지. 그럼 무대 앞에 서." 그 말은 위로가 아니라 선택이다. 객석 없는 관람자로 남아 시간을 묶을지, 이번 한 번 관객이 아니라 관람자로 들어와 끝내고 나갈지. 유나는 처음엔 고개를 젓는다. 공연이 끝나면 모두 집에 가고 자신만 또 남는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때 매디슨이 별 카드 뒷면의 영어 문장을 다시 읽고, 클레르가 한국어로 옮긴다. "같이 소리 질러요." 혼자 보는 무대가 아니라 같이 보는 무대여야 한다는 뜻이다. 방찬은 자신의 자리를 비운다. 리더의 자리를 비워 유나 앞에 한 칸을 만든 뒤, 멤버들과 스테이들이 반원으로 서서 응원법을 유나 쪽으로 보낸다. 물건을 바치는 대신, 가장 아끼는 것을 쥘 때의 자세와 목소리를 그대로 내어 준다. 누군가의 소중한 물건을 떼어 내 입장권으로 만들려던 유나의 규칙이, 살아 있는 응원 앞에서 처음 흔들린다.
그러나 끝은 순하게 오지 않는다. 자정을 알리는 마지막 퍼레이드 구간이 시작되면서 회전목마가 미친 듯이 돌고, 빗물이 광장 바닥까지 차올라 발목을 친다. 안전봉 하나가 튀어 올라 유나를 다시 말 위로 끌어당기려 한다. 한의 화면에는 몇 초 뒤 별 카드가 물에 젖어 찢어지는 장면이 보인다. 방찬은 망설임 없이 뛰어들어 카드를 잡고, 동시에 승민은 손도장 사이의 빈 바닥을 세어 가장 안전한 발판을 외친다. 창빈과 필릭스가 방찬의 허리를 붙잡아 끌고, 리노와 현진이 내려오는 안전봉을 팔로 밀어 유나에게 닿지 못하게 막는다. 클레르는 유나의 바로 앞에서 잘못 옮겼던 단어들을 하나씩 바로잡는다. 입장이 아니라 초대, 착석이 아니라 함께 보기. 매디슨은 마지막으로 자신의 휴대폰에 저장한 팬들의 함성 음원을 스피커 대신 틀어 버린다. 기록은 증거였지만, 이제는 한 아이를 혼자 남기지 않는 목소리가 된다.
함성과 빗소리와 퍼레이드 음악이 한 덩어리로 뒤엉키는 순간, 유나는 처음으로 회전목마 말에서 발을 내린다. 작은 운동화 밑창이 젖은 바닥에 닿자 회전목마 중심 관의 별 함이 저절로 열리고, 안에서 오래 눅눅해진 종이별들이 바람처럼 흩어진다. 유나는 방찬이 들고 있는 별 카드 위에 자기 손을 포갠 뒤, 아주 작게 응원법 마지막 구호를 따라 한다. 그 순간 셔터를 누르던 힘이 풀리고, 회전목마 전구가 하나씩 꺼진다. 아무도 물건을 바치지 않았지만, 유나는 처음으로 객석 없는 관람자가 아니라 함께 소리 지른 아이가 된다. 그래서 규칙이 끝난다.
문이 열리고 비 냄새가 더 선명한 새벽 공기가 들어온다. 바닥의 젖은 손도장은 천천히 마르며 사라지고, 광장에는 멤버들의 의상과 소품이 그대로 남는다. 유나는 사라지기 직전, 표를 끊는 시늉 대신 손을 흔든다. 방찬은 마지막까지 사람 수를 센 뒤에야 밖으로 나간다. 여덟, 별 둘, 그리고 아무도 뒤에 남지 않았다. 며칠 뒤 공개된 납량 특집 영상에는 설명되지 않는 몇 초가 남는다. 조명이 꺼진 회전목마 앞, 스트레이키즈와 두 스테이가 카메라를 보지 않고 누군가를 향해 응원법을 외치는 장면이다. 팬들은 연출인지 실수인지 논쟁하지만, 클레르와 매디슨은 영상 끝의 희미한 어린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입장 완료"가 아니라, "잘 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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